Am I the only one in the apocalypse who thinks the genre is weird? RAW novel - chapter 259
“공격시킨다?”
“맹렬하게?”
“이쪽에 눈을 두지 못하게. 과하게?”
“그렇다!”
인간이었다면 성동격서 같은 이야기가 나왔을 법한 방법이 나오고 모여 있던 서른 남짓한 존재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앞에 있는 [심연의 짐승]을 향해 돌격 그리고 돌격을 명령했다. 눈을 가리고 꼬리에 불을 붙인 황소처럼 앞으로 달려들기를.
“이제?”
“지금?”
“맞다?”
“간다!”
시체를 무시하면서 달려드는 이들을 보면서 등을 돌렸다. 그리고 한 걸음, 그 한 걸음 만에 수십m를 이동한 [심연의 짐승]들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기도 전에,
쾅―. 콰쾅―. 퍼억―!
그들은 파리채에 얻어맞은 벌레처럼 다시 왔던 자리로 돌아갔다. 당연히 자의가 아니라 외력에 의해 강제로 돌아왔다. 그것도 땅바닥을 뒹구는 모습으로.
“뭐다?”
“아프다?”
“빠르다?”
“죽인다!”
마흔이 넘는 [중층] 출신 [심연의 짐승]이 피워올리는 살기는 원초적이고, 농밀하고, 찐득했으며, 혐오감이 들었다. 그래서 [심연] 출신이 아니라면 살기에 닿는 것만으로도 본능에서 오는 거부감에 쉽게 공포에 빠진다.
그러나,
“도망. 안 됨. 우두머리 카르마 포인트 필요. 이안테 용돈 필요. 너희 죽음.”
그들 앞에 선 분홍색 동전 지갑을 목에 걸고, 소매가 없는 은색 니트를 입은 볼륨감 있는 여인은 손톱만 움직여서 중층 출신 [심연의 짐승]을 모두 도살할 수 있는 강자였다.
“넌 뭐다?”
“강하다?”
“약하다?”
“모르겠다.”
그러나 괜히 ‘짐승’이라는 이명이 붙었을까? 이들은 이안테를 눈앞에서 보고도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짐작조차 못 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높이의 벽이라면 올려다보면 벽이라는 걸 알 수 있지만, 구름보다 높이 솟은 벽이라면 그것이 벽이라는 걸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것처럼, 너무 강하기에 [심연의 짐승]은 이안테를 두고 살기를 거두지 않았다.
또한, 올리비아와 유다연의 손에 이끌려 인간처럼 옷을 챙겨 입고, 목에는 분홍색 동전 지갑을 매고 다니는 아름답고 귀여운 외형도 그녀의 진면목을 가리는데 한 몫 했다.
“죽인다!”
“죽여!”
“죽이자!”
“그래!”
마흔여섯의 [심연의 짐승]이 이안테 하나를 노리고 달려든다.
누군가는 그럴 것이다. 합공이라는 건 전후와 좌우 그리고 최대로 머리 위만 방어하면 되는 일이라고.
하지만 그건 인간이 인간을 합공할 때의 이야기다. [심연]에서 태어난 것들 중에는 몸을 연기처럼 만들 수 있는 생물도 있고, 부정형의 기괴한 몰골을 가진 존재들도 있다.
[심연]에서 가장 많은 전투가 벌어지는 [중층] 출신의 [심연의 짐승]들이기에 지금 합공하는 짐승들은 서로 수백 번은 전투를 치렀던 이들이고, 따로 지시를 내리지 않아도 알아서 움직였고, 마흔여섯의 짐승이 동시에 이안테를 공격하는 기적 같은 합격을 이뤄냈다.어쩌면 짐승들에게 깊이 잠재된 의식 속에서 눈앞의 태연하고 말이 어눌한 여자가 엄청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반응도 못 한다?’
‘이겼다!’
‘죽이고!’
‘먹고!’
‘도망친다!’
[심연의 짐승]들이 이겼다고 자신하는 그 순간,차칵―.
마치 검을 검집에서 살짝 꺼냈다가 다시 넣은 것 같은, 무언가 나왔다가 들어가면서 내는 아주 작은 소음이 마흔여섯의 [심연의 짐승] 귀에 선명하게 들렸다.
긴박한 그 순간에 말이다. 머릿속에 의문이 떠오르기도 전에,
‘어?’
‘왜 점점 커지는?’
‘엄청 크다?’
‘커진다?’
갑자기 덩치가 커지는 여인의 모습에 의문이 생겼고,
‘아직 살아 있어?’
‘언제 죽어?’
‘왜 닿질 않아?’
‘아!’
시간이 벌써 몇 분은 지난 것 같은데 아직도 닿지 않은 자신의 공격에 의문을 품다가 깨달았다.
‘커지는 게 아니었어?’
‘내가 쓰러지는 거야?’
‘죽었구나?’
‘모두가.’
보이지도 않는 공격에 휘말려 모두가 찰나에 온몸이 수십 갈래로 찢어져 죽었음을 말이다.
“흐음. 만족스럽군. 정확히 마흔하고 여섯 마리였네. 좋아. 대왕에게 말하고 칭찬 받고, 용돈도 받아야지.”
피웅덩이가 되어 버린 [심연의 짐승]이었던 것들을 내려다보며 하는 이안테의 말은 평소 그녀가 보여주던 어눌하고 어색한 말투가 아니었다. 어떤 면에서는 유다연보다 유창하게 언어를 구사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면 대왕의 씨를 받아 아이를 낳아야겠어. ‘최초’ 반인반수 아가를 낳는 부인은 내가 되어야 한다. 설기 그 녀석이 은근히 암컷으로 성별을 선택하려고 한단 말이지. 위험해. 더 은밀히 준비해야겠어. 대왕을 꼬실.”
“어눌하고 어색한 말투에 머리 위에 짐승 귀가 축 처져 있으면 엄청 귀여움 받을 거라고 했는데? 아니었나? 분명히 기록된 책에는 그런 걸 인간 남자는 환장한다고 했는데?”
단편적으로 보면 조금 꺼림칙하게 보이지만, 이안테가 바라는 것은 주인의 씨를 받아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키워 반인반수로 된 종족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다만 그 방법이 유다연처럼 정면 돌파로 ‘내 임신 공격을 받아랏!’ 이러는 게 아니라, 뒤에서 계속 뭔가를 꾸며대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왜냐하면,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엘리아나가 자꾸 이안테를 경계하기 때문이다. 정확히 뭔지를 모르지만, 아무도 모르게 무언가를 꾸며대고, 지금처럼 혼자 있다고 생각하면 말도 유창하게 하니까.
[성벽] 위의 엘리아나가 실피드까지 소환해서 괜히 그녀를 경계하는 게 아니다.이안테와 엘리아나, 정확하게는 엘리아나의 발달된 촉이 이안테가 정직하지 않다는 걸 감지하면서 시작된 일방적인 오해였다.
그리고 그걸,
“누구?”
[흐응~?]실피드가 들어 버렸다. 애초에 바람의 정령왕이다. 혼자 움직이더로 그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저절로 귀에 들어오는데, 지금 이 전장에는 각성자와 [엘븐나이츠]가 소환한 정령들이 바글바글하다.
이안테의 혼잣말은 당연히 실피드의 귀에 들어왔다.
“바람?”
[너 들켰어.]움찔.
“뭐…가?”
[어휴. 너 그거 아니야.]실피드는 지금까지 자신의 친구이자 동반자인 엘리아나가 했던 고민과 고뇌가 뻘짓이었다는 것에 당황과 황당 그리고 허탈함을 느끼면서 자신도 모르게 뾰족한 말투가 나왔다.
“아니야?”
[그래. 그거 아니야.]“왜?”
[엘라의 반려는 그런 걸 알아주지 않아. 왜? 주위에 여자가 엄청 많잖아? 그것도 각자 다른 매력을 지닌 여자들이. 그것뿐이야? 종족도 다양해. 너도 알지? 얼마 전에는 용인족도 안았고, 묘인족 여자는 첫날부터 침실로 숨어들었다고.]“음. 맞아.”
[엉뚱한 설기를 견제할 게 아니라고.]“그럼 어떻게 해?”
[나중에 엘라의 반려가 깨어나면.]“응응.”
[그에게 다가가서 당당하게 말해.]“당당하게? 뭐라고?”
[따먹어주세요!!]“……?”
[왜?]“진짜루……?”
[그럼 당연히 진……히에엑?!]당연히 진짜라고 말하려던 실피드는 언제 온 건지 바로 자신 옆에, 그러니까 땅에서 5m 높이에 떠 있는 엘리아나를 발견하고 기겁했다.
[까, 깜짝 놀랐잖아!!!]단순히 바람의 정령왕인 그녀의 기감에 걸리지 않고 나타나서 놀란 게 아니라,
“실―피―드!”
엘리아나가 자아내는 분위기가 살벌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장난기가 많은 이프리트와 실피드에게 종종 보이는 모습이었기에,
이 끝에 뭐가 있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콰앙―!!
[켁!]정령이란 영체에 가깝다. 일반적인 무기로는 칼로 물을 벤 것처럼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한다. 다만 일반적이지 않다면 말이 다르다. 그리고 엘리아나는 충분히 일반적이지 않은 존재였다.
[저, 저기……. 엘라아~? 화났어?]실피드가 조심스럽게 엘리아나에게 물으면서도 여전히 아픈지 엘리아나에게 맞은 정수리를 손으로 쓰다듬고 있었다.
“아프지 않은 거 다 알아. 실피드. 그리고 화나지 않았으니까. 눈치 그만 봐.”
[헤헤. 어쩐 일이야? 여기까지?]“이안테라면 순식간에 처리하고 돌아올 줄 알았는데. 오지 않으니까 걱정돼서 와 봤어.”
[흐응~. 그게 아니지~.]“뭐?”
[이안테가 혹시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닌가 해서 온 거잖아? 맞지?]“시, 실피드!!!”
엘리아나는 진심으로 놀랐다. 자신이 이안테를 약간 의심스럽게 보고 있다는 건 자신과 정령왕 사이의 비밀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런데 그걸 이렇게 대놓고 말할 줄이야.
[괜찮아. 얘는 그런 거 아니야.]“그런 거 아니라니?”
[그러니까…….]실피드는 자신이 듣고 예상한 내용, 이상한 책에서 이상한 지식을 주입 받아 어눌하게 말하고 귀여움을 받으려고 했다는 걸 다 말했다.
“…정말?”
“응.”
[그렇다니까!]“아니……. 음. 아니……. 왜?”
실피드의 설명을 듣고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은 엘리아나가 그렇게 묻자,
“어……? 어?”
이안테도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몰라 했다. 그녀는 배운 대로 했을 뿐이니까.
“객관적으로 봐도 이안테는 예쁘잖아? 특히 몸이 그냥 보기만 해도 탄력적이라는 게 느껴질 정도로 아름답고, 건강하고, 섹시하잖아.”
“내가? 그래?”
“그렇지?”
[그것봐! 내 말이 맞지?! 그냥 말하라니까? 엘라의 반려에게. 따먹어달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거야! 내가 바로 네 여자다! 당당하게 따먹어라!]실피드가 잔뜩 흥분해서 하늘에서 몸을 여러번 뒤집으면서 하는 말을 들은 엘리아나는,
“닥쳐!”
[꺄악!]주말에 남의 집 소파를 차지하고서 뒹굴뒹굴하다가 치킨을 내놓으라고 땡깡을 부리는 여동생을 본 오빠처럼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서 순수한 마력이 깃든 주먹으로 실피드를 후려쳤다.
그러다가 문득,
“그런데 지금 이 상황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맞아?”
지금 상황에 참 어울리지 않는 대화를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의 뒤쪽, [성벽] 쪽으로 여전히 적지 않은 수의 [심연의 짐승]이 달려들고, [심연의 짐승]이 죽으면서 내놓은 거무튀튀한 기운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역한 느낌을 주는 상황에 남편 잠자리를 하려는 여자에게 남편에게 어떻게 하면 섹스 어필이 될지를 충고하는 대화라니.
“이, 일단 돌아가요. 이안테.”
“응. 주모.”
“그리고 그 이상한 말투는 그만해요. 답답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