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I the only one in the apocalypse who thinks the genre is weird? RAW novel - chapter 277
“그러니까 심연의 짐승들아. 너희끼리 힘 빼지 말고 이쪽으로 덤비렴?”
이요한의 말은 깊은 절망의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자존심을 확실하게 박살 내는 것이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본인의 말이 우습게 여긴다 이거지.”
그렇기에 깊은 절망은 그 순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자신의 계획은 애초에 틀려 먹었다는 것과 권능이 망가진 것은 모두 저 빌어먹게 얄미운 놈 때문이라는 것을.
“그렇다면……. 너희도 다 죽어라!”
깊은 절망은 지금까지 숨겨두고 있던 힘을 온전히 개방했다. 그 순간 [외곽]의 바닥에 쌓여 있던 어두운 회색 안개가 맹렬히 진동하며 움직였다.
“전투 준……? 응?”
당장이라도 자신에게 달려들 것 같아 경고하던 이요한을 당황스럽게 했다. 그것들은 이요한을 비롯한 지구에서 온 병력이 아니라,
“왜 저리로 가?”
심연의 [외곽]을 막고 있는 [소멸의 벽]을 향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몰려든 어둡고 탁한 회색 안개가 [소멸의 벽] 밑바닥에 몰려들자 자연스럽게 안개가 아니라 끈적하고 꾸덕꾸덕한 타르 같은 형태가 되었고,
“오라!!!!!”
[소멸의 벽]과 [심연]의 바닥이 닿는 곳에 틈을 만들어냈다. 그 틈을 타고 [심연]의 지배자의 명령에 따라,“큭?!”
심연의 심층에 있는 거북하고 더럽고 악독한 심연의 기운이 물밀 듯이 밀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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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278.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소멸의 벽].이것이 ‘벽’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해서 정말 벽돌 같은 것으로 쌓은 벽처럼 생긴 게 아니다. 일종의 관념이다. 마치 초등학교 시절 짝궁과 선을 긋고 ‘넘어오지 마’라고 하던 그런 것과 비슷하다. 진짜로.
흐릿하지만 선명한 경계.
이 모순적인 설명이 정확하게 [소멸의 벽]이라는 것을 표현하는 설명이다.
[소멸의 벽]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와 닿은 순백의 빛으로 이뤄진 커튼이었다. 입으로 불기만 해도 흩어져 사라질 것처럼 보이지만 저건 절대로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저런 커튼처럼 하늘하늘한 모습이기에 섬뜩하고 무서운 거다. 허용되지 않은 것은 ‘닿는 순간’ 소멸하기에 굳이 넓고 튼튼할 필요가 없어서 저런 모습인 거니까.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소멸의 벽]에 대해서 장황하게 늘어놨느냐?
깊은 절망이 주저리주저리 떠든 것처럼, [소멸의 벽]이 소멸할 대상이라고 판정하는 기준은 명확하다.
차원 〈심연〉 밖으로 나가면 안 되는 것.
심연에서 본래 소멸해야 할 악의와 마기 같은 것은 나가면 안 되는 것이다.
심연에서 태어나서 살아가는 내내 고약한 폐기물을 남기고, 죽은 뒤 남는 시체마저도 주변을 오염시키는 [심연의 짐승] 역시 나가면 안 되는 것에 속한다. 그러니 [심연의 짐승]이 [소멸의 벽]에 닿으면 소멸한다.
그러나 깊은 절망이 언급한 것처럼 절망이라는 감정은 그 대상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소멸의 벽]을 통과할 수도 있고, 벽 주변에 머물 수도 있고, 그 [소멸의 벽]에 동화되어 있을 수도 있다.
절망은 슬픔과 애환에서 출발한 감정이고, 그것은 인간을 비롯한 지성체의 기본적인 감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슬픔보다 더 진하고 애환보다 더 짙은 감정이기에 절망은 [심연]의 기운과 닮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심연]의 기운을 소멸시키는 [소멸의 벽]에도 동화되면서 [심연]의 기운에도 동화되는 기운이고 감정인 것이다.
[소멸의 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심연의 [외곽]에서 [상층]으로, [상층]에서 [중층]으로, [중층]에서 [하층]까지 스며든 절망은 그곳에 있는 심연의 기운과 섞였다.그리고,
“오라!!!”
깊은 절망의 외침에,
그그그그그긍―.
일제히 움직였다. 주변에 동화한 심연의 기운을 모조리 이끌고. 심연에 모이는 기운들은 명확한 형태를 지닌 물체가 아니다. 액체와 기체 그 사이의 어딘가. 그리고 질량이 존재하지 않는 부정형의 무언가다.
그렇기에,
쿠쿠쿠쿵―!!
갑자기 기존과 다른 반대 방향을 향한 흐름이라도 그 흐름이 압도적인 범위에서 벌어지면 자연스럽게 따라가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변화된 흐름은,
콰콰콰콰콰콰!!
제방을 무너뜨리는 홍수가 되었다.
“다 뒈져라!!”
깊은 절망이 계획을 세우고 퍼트린 절망을 타고 역류했다.
콰콰콰콰콰―!!!
갑자기 쏟아진 폭우에 계곡의 경계가 무너지고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폭류처럼 [소멸의 벽] 쪽에 있던 [심연의 짐승]들을 덮치고 이어서 이요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요한은 자신을 향해 덮치는 홍수와 같은 거무튀튀한 물결에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하지만,
“[천의무봉(天衣無縫)].”
그런 표정을 지은 이유가 두렵다는 뜻은 아니었다.
『권능 [멸마(滅魔)]가 발현됩니다. 권능 [멸마(滅魔)]는 완전무결하여 흠이 없는 상태로 발현됩니다.』
『권능 [정화(淨化)]가 발현됩니다. 권능 [정화(政化)]는 완전무결하여 흠이 없는 상태로 발현됩니다.』
『권능 [정화(淨火)]가 발현됩니다. 권능 [정화(淨火)]는 완전무결하여 흠이 없는 상태로 발현됩니다.』
『권능 [멸절(滅絶)]이 발현됩니다. 권능 [멸절(滅絶)]은 완전무결하여 흠이 없는 상태로 발현됩니다.』
『권능 [내로남불]이 발현됩니다. 권능 [내로남불]은 완전무결하여 흠이 없는 상태로 발현됩니다.』
『권능 [소거(掃去)]가 발현됩니다. 권능 [소거(掃去)]는 완전무결하여 흠이 없는 상태로 발현됩니다.』
『권능 [역류(逆流)]가 발현됩니다. 권능 [역류(逆流)]는 완전무결하여 흠이 없는 상태로 발현됩니다.』
『권능 [수호(守護)]가 발현됩니다. 권능 [수호(守護)]는 완전무결하여 흠이 없는 상태로 발현됩니다.』
메시지가 순간 빠르게 나타나면서 잠시 시야를 가렸지만, 그런 불편함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변화는 즉각적이고 기적적이었다.
급류의 흙탕물처럼 서로 경쟁하듯이 밀려오는 [심연]의 기운이 경계를 기준으로 마치 댐에 막힌 것처럼 멈춰서며 장벽을 타고 오르는 것처럼 급격히 쌓인 기운의 흐름이 높게 솟구쳤다.
권능 [수호(守護)]의 힘이었다.
단순히 그렇게 흐름을 막는 것에서 그쳤다면 이요한의 마력 30%가 날아가진 않았을 거다. 권능 [수호]에 닿은 거무튀튀한 기운의 급류는 권능의 벽을 넘지 못하고 오히려 역류하며 서로 엉키고 흩어졌다.
권능 [역류(逆流)]가 작용한 결과였다.
그리고 그렇게 뭉치고 흩어진 기운에 [정화(淨火: 신성하고 깨끗한 불)]가 닿아 [소거(掃去: 불로 태워 사라지게 함)]하고 [정화(淨化: 불순한 것을 깨끗이 함)]의 과정까지 일사불란하게 이어진다.
남은 흔적과 재는 마(魔)를 멸하는 힘인 [멸마(滅魔)]가 소멸의 힘을 더하고, 쉬지 않고 덤벼드는 기운의 흐름을 [멸절(滅絶)]이 끊어낸다.
그리고 권능 [내로남불]이 이 압도적으로 불합리한 과정이 순식간에 일어나는 것을 ‘개연성이 있게’ 보조한다.
길게 설명했지만, ‘콰콰콰콰’하면서 들이닥친 심연의 기운은 권능 [수호]의 경계이자, [태고의 깃발]의 경계인 곳에 닿는 순간 ‘파스스스’하는 소리를 내며 사라진다.
마치 저기 멀리서 본격적으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소멸의 벽]처럼 말이다.
[소멸의 벽]을 닮았지만, [소멸의 벽]은 기준이 명확하다면 지금 이요한의 권능 결합으로 탄생한 보이지 않는 방법은 닿는 모든 것을 배제하고 멸한다. 닿는 것 마이너스한 모든 것을 멸하고 소멸시킨다.이요한은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든지 상황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고 이 전장에 나섰다. 몰아칠 수 있을 때, 몰아친다.
『권능 [생신(生神)]이 발현됩니다.』
“부정한 것은 감히 닿지 못할 것이리라.”
생신으로 발현된 기적은 우윳빛 광휘가 이요한을 비롯한 지구에서 침공한 이들의 몸에 스며들었다.
“한 놈도 놓치지 마.”
“네에!!”
이요한이 권능의 조합으로 세운 보이지 않는 방벽은 기운만 처리한다. 그러나 지금 이요한 일행에게 심연의 기운만이 문제가 아니다. 홍수처럼 모든 것을 휩쓰는 기운에 같이 휩쓸려서 떠밀려온 [심연의 짐승]들이 있다.
더욱이 심연의 기운을 짙게 받을수록 강해지는 것이 [심연의 짐승]이라는 종족의 특성이다. 그리고 현재 차원 〈심연〉에 남아 있는 짐승들은 모두 [중층]에서도 평범하게 숨을 쉬며 살아가던 강자들이다.
[심연]과 공방전 초기에 기운에 노출된 것만으로도 죽어 나가던 그런 약한 존재가 아니라.“걱정하지 마세요! 반려! 이프리트. 엘라임. 실피드. 노아스.”
“여보는 이제 가만히 기다려요. [성녀 수호대]. 모두 정화 의식을 준비하세요.”
엘리아나 주변으로 네 개의 선명하고 진한 속성의 기운이 넘실거린다. 사대 정령의 왕이 차원 〈심연〉에 등장하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소피아 주변을 둘러싼 [성녀 수호대]의 신성력이 넘실거린다. 펠리타 교 특유의 깨끗하고 악의를 배척하는 기운이 한톨의 낭비도 없이 [성녀 수호대] 중심에 있는 소피아에게 모였다.
그렇게 몇 분.
파아아앗―.
소피아의 몸 위로 거대한 빛의 거인이 스며들었다.
아니, 아니다.
그건 스며든 게 아니라 소피아에게 모였던 [성녀 수호대]의 신성력과 소피아가 내뿜던 신성력이 더해져 구현된 것이다.
눈을 감고 있던 소피아가 아무런 소음도 나지 않게 몸을 일으키며,
“주께서 말씀하시니, [사멸(死滅)하라. 삿된 것들아.]라고 하시자. 그리 되었도다.”
성전의 한 구절을 읽는 것처럼 그렇게 중얼거리며 눈을 뜬 순간,
“끼에에에에엑!!”
“끄아아아악!!”
“뜨, 뜨거워어어어!!”
…
급류에 밀려 다가온 [심연의 짐승] 중, 소피아의 시선이 닿은 곳에 있던 짐승의 몸이 순백색 불길에 휩싸여 타들어갔다.
타닥, 타닥 소리를 내며 타들어간다고 생각한 순간 어느새 재가 되어 흩날리는 수준으로 백색 불꽃은 무시무시했다.
“린포스 퍼니시먼트(Reinforce Punishment).”
하늘을 가리키는 즈마제비티의 손짓에 〈심연〉의 하늘에 금빛 마법진 수십 개가 찰나의 순간 나타난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있던 그녀의 손이 땅으로 내리꽂히는 순간,
꽈짜짜자작―!!! 콰으르르르릉!!
전봇대 만한 뇌전이 장대비처럼 쏟아지며 급류에 휩쓸렸거나 막 몸을 일으킨 [심연의 짐승]들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세 여인은 포문을 열었을 뿐이다. 그녀들의 뒤를 이어 서로 경쟁하듯이 급류처럼 터져 나온 기운에 휩쓸린 [심연의 짐승]을 향한 공격이 이어졌다.
“주군.”
혼란에 혼란을 더한 난장판과 같은 전장에서 거의 유일하게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던 즈마제비티가 이요한 옆으로 다가간 것은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지고 1시간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무슨 일이야?”
“그 놈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 놈이라고 대충 말했지만, 말을 꺼낸 즈마제비티나 말을 들은 이요한이나 둘 다 그 놈이 누군지 모르지 않았다.
“깊은 절망이라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특이하게 고블린과 코볼트를 섞어 놓은 것처럼 생긴 놈이었는데. 아무리 살펴도 존재감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도, 감지할 수도 없습니다.”
“후우……. 도망쳤을까?”
이요한은 권능을 유지하느라 빠르게 줄어드는 마력에 한숨을 쉬면서 마력 포션을 물처럼 마시며 물었다.
“…확신할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주군.”
즈마제비티는 자신이 더 냉철했어야 했다고 자책했다. 아무리 혼란스러웠어도 주적이나 마찬가지인 놈을 놓친 것은 어떤 변명으로도 부족하니까.
“아니. 나도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당황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처음에는 폭격지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주변에 심연의 기운이 넘쳐서 마음 먹고 살폈어도 놓쳤을 거야. 어쩌면 놈이 생각한 게 이런 것일 수도 있고.”
“…….”
입술에 피가 보일 정도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즈마제비티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며 위로와 격려를 더한 이요한의 속은 그의 말과 달리 편하지 않았다.
‘어디로 간 거지? 안쪽으로는 도망가지 못했을 거야. [소멸의 벽]이 있으니까.’
“아아!”
“주군?”
“이 새끼? 설마?”
* * *
차원 〈지구〉에서 차원 〈심연〉을 역으로 침공한 순간에도 두 차원의 공방전은 이어졌다. 당연한 소리로 왜 글자수를 잡아먹느냐고?
그런 게 아니라, 이요한 일행이 [주도]를 비우고 〈심연〉에 도착한 순간에도 [주도] 주변으로는 [심연의 짐승]이 도착하고 있다는 뜻이다.
“어휴. 저것들은 징글징글하네. 정말.”
요제프는 그렇게 투덜대면서도 [정령성자]라는 클래스에 어울리게 쉽게 [심연의 짐승]을 저지하고 처치했다. 그녀의 곁에서 맴도는 신성력을 받은 정령들이 날뛰는 것으로, 요제프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으니까.
“그나저나 우리 대장은 잘 하고 있겠지?”
“당연하지. 서방님이잖아?”
조이 퓌쉬스가 요제프 옆에 나타나서 그녀의 혼잣말을 받아줬다.
“죽거나 이런 걱정은 안 되는데, 혹시라도 다칠까 봐. 그게 걱정이네.”
“에헹~. 나무의 정령 출신 정령성자는 솔직하지 못하네~.”
“뭐가?”
“그런 게 아니라, 서방님 옆에 서서 서방님께 도움이 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가 아니고?”
“…….”
“누굴 속이려고? 나도 같은 마음인데~.”
“칫. 어휴. 그래. 맞아. 젠장. 이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 좀 어려운 일을 맡았으면 마음이 더 편했을 건데.”
“그러게~. 어디서 위험한 놈 하나 안 떨어지려나~?”
콰아앙―!!!
“어라?”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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