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I the only one in the apocalypse who thinks the genre is weird? RAW novel - chapter 37
“아아. 그럼 그렇지. 서 대통령이 삽질해도 민정수석 그 양반이 나서서 수습했을 텐데. 잘린 건 아니고 사직서를 던지신 거네요. 사직서를 서 대통령 그 새끼 마빡에 던지고 오셨어야죠.”
“그럴 가치도 없다.”
“그럼 이제 형님이라고 부르겠습돠. 형님. 적당한 곳에 일단 자리를 잡고 쉬었다가 가야 할 겁돠. 지금까지 잠도 안 자고 걷고 쉬고를 반복했거든요. 쉬려고 모여 있으면 귀신처럼 괴물 놈들이 우르르 나타나는 바람에.”
“그러자. 괴물이라니까 갑자기 그 미친놈이 떠오르네.”
“미친놈이요? 누굽니까? 그게?”
김준에게서 차대두에 대한 일화를 들은 민형석은 쉽사리 믿지 못했다.
“하긴 각성자도 등장하는 판에 빌런도 있을 수 있죠. 어휴. 세상이 어찌 되려고 이러는 건지.”
“세상은 이미 망했어. 그때 그 메시지 못 봤냐? 지구 입장에서 인간이 하는 짓이 하도 X 같아서 샤따 내리는 거라잖냐.”
“그러고 보면 이요한 회장님은 대단하네요. 갑자기 성을 짓다니.”
“그래. 네가 보기엔 어떨 거 같냐? 이요한 회장.”
“최소한 문전박대는 안 하지 않겠습니까?”
“왜?”
“왜라뇨? 일단 우리는 출신 성분이 명확하지 않습니까? 대통령 경호처! 그리고 여기에만 각성자가 200명 넘게 있는뎁쇼?”
“그게 뭐?”
“우리 정도 정도 전력이면 전쟁에서 혼잔 줄 알고 쫄았다가도 두 팔 벌려 환영 받아야 하는 병력 아닙니까?”
“글쎄…….”
김준은 똑똑하고 잔머리가 좋은 민형석의 말에도 어딘가 모르게 찜찜하고 불안했다. 그는 이요한 회장의 유튜브 영상뿐만 아니라, 가이아 게시판에 올라온 영상도 몇 번이나 확인했다.
“그런 사람 같지 않았어. 부족한 게 없는 것 같았거든.”
“잘못 들었습니다?”
“잘 들었어. 너도.”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전투에 베테랑인 특수 부대 출신 각성자 200명인데요. 너무 걱정하지 마십쇼! 형님!”
“그래. 그렇겠지. 음.”
그러나 민형석의 호언장담은 쉬엄쉬엄 이동해서 나흘 만에 도착한 성벽 위에 나타난 이요한을 본 순간 산산이 부서졌다.
“당신들인가? 청와대에서 나온 사람들이?”
지독히도 보기 싫은 원수를 마주한 것 같은 그 차가운 눈빛과 형형하게 흘러나와 모를 수가 없는 확연한 적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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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안녕하세요.
심행입니다.
먼저 늦어서 죄송합니다아.
30화 축하한다고 했더니 그새 빠져가지고 늦은 거냐?
아닙니다. 저 그런 캐릭터 아닙니다 ㅠㅠ
어제 유난히 글이 안 써지더라고요.
퇴고하는데도 몇 번이나 수정했는데도 마음에 안 들고.
그런 날이 가끔 있습니다.
내글 구려병이 지독하게 발발하는 날이.
그러고 있는데 오늘도 동생놈이 집에 와서는 저를 보더니,
“어휴. 또 이러네. 나가자.”
이러고 저를 끌고 나가서 자그마치 3시간을 걸었습니다;;;
이럴 땐 빡세게 몸이 힘들면 그딴 거 문제도 아니라면서.
제 스마트폰을 산 이후, 삼성 헬스에서 최고 기록을 처음으로 갱신했다고 뜨고 난리도 아닙니다.
네.
제 무릎과 다리와 허리도 난리도 아닙니다.
지금 회사에 오자마자 마지막 퇴고를 하고 업로드 하는 겁니다만, 시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지각했습니다.
오랜만이네요. 이런 당황스러움.
저의 걸음걸이는 거의 아주 어릴 때, 아득히 예전에 아버지가 돈까스 사주신다고 해서 나갔다가 고래를잡은 그날의 걸음걸이와 비슷하네요.
아…인생
인포서(Enforcer)
만약 어느 날 갑자기 좀비가 창궐하고, 당신 옆에 있는 이웃이 좀비가 되어 세상을 뒤덮는 사건이 벌어진다면, 세상은 망할 거다.
당연한 소리를 하려고 이 고루한 논문을 쓴 게 아니니 안심해라.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세상은 좀비에 의해 멸망하는 게 아니라, 동족인 인간 때문에 멸족할 거다.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인간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 종잘알(종말 잘 아는) 아포 더 칼립스 교수의 논문 서문.
*
종말이 지구를 뒤덮었다. 그런데 이 수간에 내게 짜증과 분노를 한아름 가져다준 건 뜻밖에도 그린스킨 따위가 아닌, 같은 인간이다.
그래. 빌런 아니고.
그냥 인간. 생존자 말이다.
성안에도 인간이 갑자기 늘었는데, 성밖에 사람이 찾아와서 짜증 난 거냐고?
아니다.
나 그렇게 쪼잔한 놈 아니다. 진짜다.
내가 짜증이 난 건, 성벽 밖에서 나를 찾는 인간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종말 전 그들의 직장? 같은 것 말이다.
내게 다급하게 보고한 도로시는……? 올리비아였었나? 아무튼, 다급하게 성벽 밖에 찾아온 대규모 생존자 그룹이 ‘청와대’에서 나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신적 존재가 내 안에 있는 분노 발작 버튼을 누른 것 같았다.
내가 종말을 겪어 본 쉘터 주인으로 종말에 쉘터에 들이면 안 되는 존재 1, 2위가 ‘정치인’과 ‘종교인’이다. 회귀 전 나를 담그려고 주도한 놈들이거든.
‘심지어 종교쟁이 놈들은 내가 식물인간이 되었을 때, ‘형제님을 위해 기도합시다.’라며 우르르 몰려와 지들끼리 기도하고 요상한 찬송가 같은 거 부르고 가곤 했지. 무슨 킬 따놓고 시체 위에서 티배깅 하는 것도 아니고.’
“당신들인가? 청와대에서 나온 사람들이?”
당연히 성벽 위에서 생존자 그룹을 바라보는 내 시선에는 적의가 담길 수밖에 없다.
“…어. 음.”
가장 앞에 무리의 대표로 보이는 남자는 누가 보더라도, KTX 타고 지나가면서 보더라도 군인이다라고 알아볼 정도로 전형적인 군인이었다.
짧은 머리. 단단한 몸. 그리고 최소 한 번 이상 인간을 죽여 본 사람이 마력을 얻으면 숨길 수 없이 은은히 흐르는 미약한 살기.
군인이다. 그것도 베테랑 군인.
‘그런데 그게 뭐?’
각성자라고 다 같은 각성자가 아니다. 얼마나 빠르게 각성했는가가 중요하며, 지구의 의지의 후원을 받는 각성자라면 금상첨화다. 그게 바로 내 동료들이고.
“뭡니까? 바쁜 사람 불러놓고.”
시간이 흐를수록 내 심사가 불편해지고, 그에 따라 마력이 위협적으로 으르렁거리는 건 이해해줘야 하는 부분이다. 아마도.
성벽 밑에 있는 청와대에서 왔다는 군인이 왜 말문이 막혀 있는 건지 정말 모르냐고? 안다. 나도. 지금 시기에는 없는 오렌지 랭크 마력을 집중적으로 받고 있고, 또 내가 못마땅해 하는 걸 아는 엘라의 살기가 집중되니 그렇겠지.
‘그런데 그게 뭐!’
어쩌라고.
“오빠.”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다. 유다연의 만류를,
“보스.”
올리비아까지 거들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알았어.”
마력을 풀자 엘라에게서 은은하게 뿜어지던 기세가 걷어지는 게 느껴진다. 그제야 성벽 아래서 앞에 나선 삼십 대 후반의 군인이 숨을 헐떡이며 부족한 산소를 맹렬히 흡입했고, 그 뒤에 모인 오백 명은 넘을 법한 사람들이 숨을 내쉬며 자리에 주저앉는다.
“설명.”
어딜 쉬려고. 어림도 없지.
“아, 네. 저, 저는……. 저희는……. 아! 그, 그러니까 저, 저는 전 대통령 경호처장 기, 김준입니다.”
말을 몇 번이나 더듬어 가면서 간신히 자신이 할 말을 끝낸 김준의 말에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내용이 세 개나 있다.
“대통령 경호처장? 그 나이에? 그리고 전?”
“예? 아, 예. 그렇습니다. 회장님.”
그리고 조금은 진정이 됐는지, 아니면 본래 성격이 묵묵한 건지 그는 차분히 자신이 겪은 일을 설명했다.
“잠깐, 잠깐만.”
내가 분명히 그의 소개에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게 세 가지라고 했지? 대통령 경호처장이라는 것과 전이라는 수식어까지 두 개였다면,
“당신 이름이 김준이라고? 외자야?”
마지막 하나는 김준이라는 이름 그 자체다.
“네? 아, 네. 맞습니다.”
군인 외형, 그리고 김준이라는 이름에 한국 국적 각성자.
회귀 전 가이아 게시판에서 이 세 가지 조건을 입력하면 한 명이 나타난다.
“인포서. 김준.”
“네?”
인포서(Enforcer). 일명 집행관.
멸망을 맞이한 한국에서 괴물보다 빌런이나 침식자를 더 많이 사냥하던 각성자이며 영웅.
단어의 뜻 그대로다. 마피아 같은 폭력조직에서 실력행사를 위해 특별히 직접 나서는 인물을 뜻하는 그대로, 빌런과 침식자를 어떻게든 찾아내 기필코 처리하고야 마는 집행자.
‘하지만 저건 인포서 김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순둥순둥한데? 군인처럼 보이니까 순둥순둥은 좀 아닌가?’
못 알아볼 수밖에 없다. 가이아 게시판에서 확인한 김준의 모습은 저렇게 근육질의 남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호리호리한 느낌에 암살자에 가까웠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적의를 드러낸 ‘인간’을 그대로 두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가 누군가를 죽이겠다고 마음 먹은 순간에는 가이아 게시판의 영상에서도 농밀한 살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악인에게, 인류를 배신한 이들에게 저승사자 같은 존재였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고?
내가 식물인간이 되었을 때, 그에게 내 소식이 알려지길 간절히 바랐으니까. 물론 알려지진 않았지만.
“당신이 김준이라는 거지? 각성자고?”
“그, 그렇습니다.”
“좋아. 일단 당신만 안으로.”
“…네.”
* * *
김준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날 아나?’ 같은 말을 중얼거리다가 열린 성문을 통해 처음으로 이요한의 성벽 안쪽으로 들어섰다.
고작 서너 걸음.
그 정도 거리의 차이가 전부인데 영지 안과 밖은 천지 차이였다.
“숨이……?”
일단 가장 먼저 숨쉬기가 훨씬 편해졌다. 그게 바로 체감되는 느낌이었다. 마치 공기가 희박한 곳에 있다가 신선한 산소가 가득한 집중 회복실로 들어온 느낌?
그걸 깨닫고 나자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활동적인 영지 내부 분위기.
생각했던 것과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많은 수의 생존자들.
종말 이후로 씻는 게 어려운데다가 노숙을 해와서 꾀죄죄한 자신의 일행과 달리 아침에도 샤워를 한 것처럼 깔끔한 이요한과 그 주변 사람들.
“이리로.”
이요한 회장 옆에 서 있는 비서처럼 보이는 백인 여인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김준이 빠른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그래서 생존자까지 이끌고 여기로 온 이유는? 정부 아니, 서 대통령 그 멍청이의 말을 전하기 위해선가?”
“아, 아닙니다.”
무슨 이유에선지 성벽 위에서보다 조금 누그러진 말투로 묻는 이요한의 질문에 김준은 맹렬히 손과 머리를 흔들며 부정했다. 비록 군인 출신으로 청와대에 입성했지만, 그도 듣고 본 게 있다.
‘이 남자. 이유는 모르겠지만, 대통령을 싫어해. 아니, 혐오한다.’
더 정확하게는 이요한은 정치인을 싫어하는 거지만, 얼추 비슷하게 유추해냈다. 그렇기에 그는 애초에 실망하다 못해 답이 없다고 느낀 청와대를 등에 업을 생각을 버렸다.
“그래? 그럼 목적이 뭐야?”
“저, 저희를 받아주실 수 있습니까? 몸을 쓰는 일이나, 무력을 다루는 일은 웬만하면 다 잘하는 편입니다. 그게 아니면 제 후임과 동료의 가족만이라도 받아주십시오.”
김준은 처음에 자신과 특수부대 출신의 동료의 유용성을 어필했지만, 표정에 변화가 없는 이요한의 얼굴을 보면서 끝에 가서는 각성자가 아닌 생존자라도 받아주십사 부탁했다.
“인간은 누구나 받아줄 수 있지. 그건 문제가 안 돼.”
“그, 그럼?!”
“다만 확인을 거쳐야지.”
“확인……? 말입니까?”
그 순간 천생 군인인 김준은 ‘사상 검증 같은 거라도 하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 간단해. 어렵지 않아. 나는 영지에 들어온 사람의 카르마 포인트를 대략적으로 확인할 수 있고, 범죄 기록을 열람할 수 있으니까. 그 과정을 거치는 게 문제지.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싶어 하잖아?”
이요한은 행청청의 1번에 있던 건물의 주요 기능을 떠올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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