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I the only one in the apocalypse who thinks the genre is weird? RAW novel - chapter 5
“전 경험자잖습니까.”
지구의 의지.
이 존재는 어떤 의미에서는 막연하게 상상만 하던 신이라는 상상에 제법 가까운 존재들이다. 그것도 실존하며 인간에게 고난을 비껴갈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는.
잘못 걸리면 진짜 좆 되는 게 뭔지 온몸과 온 정신으로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게 종말 이후 지구의 의지다.
그런 지구의 의지가 이제는 완전히 인간의 편에 서겠다고 선언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종말 이후 삶에 희망을 걸어도 되지 않겠나.
“고건 맞지. 히힛. 그럼 만담은 여기까지만 할까? 일 이야기로 넘어가자?”
“일…이요?”
“내가 왜 하필이면 ‘오늘’ 이 아이의 몸을 빌려서 너를 마주하겠니?”
그러니까요. 왜 그러셨어요. 간 떨어질 뻔했잖아요. 나올 때 미리 말이라도 좀 하고 나오시던가요.
“들어보렴. 네게 해가 될 일은 아닐 테니. 먼저 내 존재를 걸고 확실하게 해두자면, 나는 애초에 인간 종족의 말살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단다.”
그렇다면 일단 조금은 더 안심이랄까? 뭐, 플러스 카르마를 담당했다고 해서 선한 존재라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과거 이야기를 좀 더 할까? 명백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신이 아니란다. 다만 각자가 담당하는 분야가 있지. 신은 아니지만 권능을 다룰 수 있는 제한된 분야가. 너도 대충 알겠지만.”
안다. 그래서 지구의 의지가 아니라, 지구의 의지‘들’이다.
“가끔 기적적으로 암이 나아 죽음을 앞두고 생환하는 인간들이 있지. 그건 모두 ‘치유’를 관장하는 지구의 의지가 일으킨 변덕이란다. 그 아이는 마음이 약하거든.”
끙. 암이라는 말을 들었더니, 위가 아프다. 나도 그 암 하나 가지고 있다. 큰 놈으로.
“그래. 너도 가지고 있는 그거. 다른 녀석을 예로 들어볼까? 인간이 갑자기 급사하는 경우가 있지? 어제까지 건강했는데, 갑자기 죽는 경우. 맞아. ‘죽음’을 다루는 녀석도 있어. 자, 그렇다면 나는 응? 나는 뭐라고 생각해?”
뜬금없이 나타난 존재였으나, 몇 가지 힌트가 있었다. 인간이 멸족하는 걸 반대했다는 입장. 그리고 예상보다 훨씬 많은 당첨금.
“재신(財神)……? 입니까?”
“어머! 맞아! 맞아! 너 똘똘하구나? 생각한 것과 다르게 말이지?”
똘똘하면 그냥 똘똘한 거지 거기에 굳이 생각한 것과 다를 건 또 뭔가?
“무려 쉘터를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진 각성자가, 그것도 아포칼립스에서, 그런 힘을 가지고서 멍청하게 당해서 십 년을 누워만 있었는데. 그런 너를 내가 어떻게 생각했겠니?”
아, 예. 제가 천하의 그 모지리입니다. 그리고 십 년 아니고 9년 5개월 11일입니다만.
“아니 다행이네. 너의 그 멍청함 때문에 반대하는 지구의 의지도 있었어. 그래 봤자지. 어차피 이 ‘보험’의 대가는 온전히 내가 낸 거니까. 그들의 의견은 상관 없지. 다 내 마음대로야!”
알아들을 수 없는 내용이 태반이긴 했지만, 나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의지가 있다는 건 알겠다.
“그래.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니까 차치하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지금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해줄게. 어디부터 설명할까……. 아! 그래! 일단 네가 회귀하기 전, 그때 상황부터 간략하게 설명하면 되겠다. 그때 지구는 죽어가고 있었어.”
“예?”
“모든 생물처럼, 행성도 끝이 있고, 차원도 소멸할 수 있지. 그런데 지구는 그 속도가 빨랐고, 점점 가속화가 이뤄지고 있었다는 게 문제야. 지구의 의지가 모일 수밖에 없는 일이었지. 여러 의지들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를 살폈고.”
“인간 탓이다?”
“빙고. 맞아. 인류 말살 프로젝트가 진행된 거야.”
아……. 인간이 또.
“됐어. 마저 이야기나 들어. 그런데 웃긴 건, 이걸 지구의 의지들이 직접 나서서 인간을 죽일 수 없다는 거야. 그렇게 처리하기에는 이미 인류의 숫자가 너무 많았던 거지. 76억. ‘직접’ 손을 쓰면 그 카르마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아, 마이너스 카르마(Minus Karma).
76억의 인간을 말살하면 대략 7천6백억?
“그래. 너도 익숙한 그거. 인간이 인간을 죽이면 대략 100정도 내외의 악업을 얻지? 그렇게 따지면 고작 7천6백억 정도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아니야.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건 동족살해의 일환이라 저렴한 거고. 우리처럼 권능을 지닌 존재가 ‘공생’하던 휘하 종족을 직접 죽이는 건 수만 배의 악업이 쌓여.”
수, 수만 배? 수만이 아니라 수만 배?
“그래. 배수. 인간 하나를 그냥 우리가 나서서 죽이면 수백만의 마이너스 카르마가 쌓이는 거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충 한 명당 100만으로 계산해도 75억의 인구를 죽이는 데 7천 5백조의 마이너스 카르마가 든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냐? 아니지. 단순히 한두 명 죽이는 게 아니라 하나의 종족을 ‘멸족’한다? 그럼 최종적으로 다시 몇 만 배가 더 필요하지.”
허어? 그럼 조 단위를 넘어 경 단위 인 건가? 경 다음 단위가 될 수도 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래서 외주를 주기로 한 거야. 카르마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아니, 오히려 마이너스 카르마가 쌓이는 걸 원하는 쓰레기들에게.”
“네?”
그런 게 있을 수 있나? 카르마(Karma), 업(業)이라는 건 신경을 쓰고 안 쓰고의 문제가 아닌 거로 알고 있는데?
“그런 존재들이 있어. 영혼이 타락하다 못해 망가져서 자극만 찾는. 너도 봤잖아? 익숙하고?”
아. 아. 그 빌어먹을 괴물 새끼들.
인류가 멸망하게 된 건 좀비 같은 것 때문이 아니다. 존재 자체가 기이한 괴물들 때문이다. 그 놈들은 인간을 단순히 감염시키거나 잡아 먹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에휴.’
“그건 나중에 다시 만나면 갚아주던지하고. 그렇게 외주를 줘서 지구에서 인간이라는 종족을 말살하는 쪽으로 결정이 났는데. 모두가 찬성한 건 아니야. 아까 말했듯이 나 역시 반대하는 쪽이었고.”
그랬겠지. 지구의 의지는 독특한 이름으로 명명되는 것만큼이나 개성이 강하고 담당하는 권능도 다르니까.
“하지만 너도 짐작했다시피 내 의견은 묵살 됐어. 재신(財神)의 힘이라는 게, 인간 사회에 제한적으로 강력한 힘이니까. 내가 그래서 반대한다고 생각했던 거겠지. 그 당시 내 힘이 지구의 의지 중에서도 강한 축에 속했는데도 막지 못했어.”
하긴, 예전이라면 어떨지 몰라도 지금 세상에서 인간의 지위를 결정하는 가장 큰 힘 중 하나가 돈이니까.
“그런데 난 딱히 그런 이유로 반대한 게 아니야. 재화(財貨). 재물을 다루다 보니까 흐름에 민감했어. 그리고 이렇게 급진적이면서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식의 계약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문제가 생긴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거든. 그래서 반대한 거야.”
이 말도 맞다. 그 미친놈들은 단순히 인간만 죽인 게 아니라, 지구라는 환경을 최악으로 만들었다. 숨을 쉬는 것조차 조심해야 하고, 물을 마실 때도 주의를 기울여야 할 만큼.
“그래서 난 보험을 들기로 했어. 뻔히 위기가 보이는데,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
“그게 회귀였다는 겁니까?”
“아니지. 정확하게는 이 아이를 내 사제로 삼은 거지. 그리고 점차 일이 심각해졌다는 걸 다른 의지들이 인정하기 시작했을 때, 해결책으로 네가 선택된 거야.”
나? 내가 왜?
“넌 멍청한데 착하거든. 그런데 또 강하고, 적응력도 상당히 뛰어났지. 재앙 초기에 각성해서 아이들을 지키고 쉘터를 키웠을 만큼 능력도 있고. 유일한 단점은 사람을 너무 믿고, 착해 빠졌다는 건데. 그건 이젠 안 그럴 거잖아?”
“당연하죠.”
사람을 믿었다. 그리고 서울의 유일한 ‘대규모’ 안전지대나 마찬가지인 내 고유 능력 때문에 모여든 사람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 효율적으로 각자 잘하는 일을 맡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정치는 정치인이, 행정은 행정 관리가, 치안은 경찰이나 군인 출신이.
그리고 뒤통수를 거하게 맞았다. 정치인, 행정 관리인, 치안대 모두에게. 척추에 칼이 박혔지.
“그래. 그래서 회귀를 너를 중심으로 하기로 결정했지.”
“네? 이왕 회귀할 거면, 아예 계약? 외주? 그런 걸 하기 전으로 오면 문제가 해결되는 거 아닙니까?”
“쯧쯧. 너는 여전히 멍청하구나? 카르마 시스템의 공증 아래 차원의 의지인 우리가 직접 체결한 계약을 차원의 의지 중 하나인 내가 거스를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아무리 내가 의지 중에 강한 축에 속한다고 해도?”
아, 예. 제가 그딴 걸 알 리가 있습니까? 일개 인간나부랭이가.
“그러네. 그걸 생각 못 했네. 멍청하다는 말은 일단 취소.”
새침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취소한다고 하는 모양새가 영락없는 얄미운 고딩 여동생이다. 딱 한 대만 쥐어 박고 싶을 만큼 얄미운.
“안 돼. 아무튼, 네가 회귀한 그 날이, 우리가 계약을 맺은 날이야. 네가 회귀한 순간, 나는 저절로 알게 됐지. 이 계약이 거짓이 덕지덕지 발린 사기 계약이라는 걸. 우리가 실수했다는 걸, 이해하고 인정하는 데 며칠이 걸렸어.”
그래서 월요일인 오늘 나를 찾아온 건가?
“맞아.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덕분에 이제 우리는 전과 달리 피아식별이 확실한 상태가 된 거야. 최소한이지만,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거든.”
음? 고작 나 혼자?
“그래. 너 혼자. 하지만 ‘고작’은 아니지. 내가 지켜볼 거고, 내 사제가 너와 함께 할 건데? 보험 덕분에 이제 내가 제일 끗발이 세! 자부심을 가져도 좋아.”
“아, 네.”
내게 그녀의 당찬 포부는 큰 감흥이 없이 다가왔다. 어차피 회귀 직후 뒈지려고 했던 게 나다. 이번에도 X 같이 고생만 할 것 같으면 그냥 시작 전에 뒈져버릴 거다.
“그래? 못 할 걸?”
“뭘 못한다는 겁니까? 죽는 거? 지금이라도 당장 옆에 빌딩에 올라가서 뛰어 내릴까요?”
“그래? 그럼 네가 아끼던 보육원 아이들은? 그리고 이 아이, 유다연이는?”
해맑게 웃으면서 아무렇지 않는 얼굴로 내뱉는 협박에 나도 모르게 머리를 얼음물 속에 담근 것처럼 뇌리가 차갑게 식었다. 단언컨대 이런 내 변화는 재신이라는 지구의 의지의 협박에 겁을 먹은 게 아니다.
내가 정말로 화가 났을 때, 나타나는 신체 반응이다. 화가 날수록 냉정해진다? 그것도 아니다. 마치 얼음물에 뇌를 담근 것처럼 차갑게 식은 머릿속은 온갖 잡념이 사라지고 하나의 문제에 집중하는 거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시야가 좁아진 채로 말이다.
그러니까,
“아. 개빡치네.”
난 지금 화가 났다. 내 평생을 통틀어서 열 번이 넘지 않을 만큼 엄청.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안녕하세요. 심행입니다.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몸을 치료했어. 아니, 각성시켰어.
그러니까,
“아. 개빡치네.”
난 지금 화가 났다. 내 평생을 통틀어서 열 번이 넘지 않을 만큼 엄청.
“아이들이요? 안타깝네요. 어쩌겠어요. 종말이 시작되면 죽는 이들은 한둘이 아닌데. 어쩔 수 없죠. 유다연? 고마운 아이였죠. 그래서 뭐요? 지금, 빌어먹을 아포칼립스에서 아이들을 보호했던 제 앞에서 애들을 볼모로 협박하는 겁니까?”
당연히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에는 지구의 의지라는 상위 존재에 대한 필터 따위가 사라져 버렸다.
“…….”
“지금 정말 X 같은 상황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까? 애초에 그 계약이라는 거에 제가 주도하거나 참여했습니까? 아니면 내가 거수기 노릇이라도 했나? 아니지! 당신들이 한 거잖아! 똥은 너희가 싸놓고 대신 치워달라는 상황에서 협박?!! 하! X발!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뒈질 거. 손에 손 잡고 다 같이 뒈지면 되지.”
“너.”
“뭐! 어차피 뒈질 건데. 반말이 대수야? 좆 같아? 그럼 죽여. 왜? 못 죽이겠어? 그럼 내가 죽지 뭐. 이대로 자살도 못하게 막을 거라고? 그래.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내년 8월 되면 죽을 건데. 지금부터 8개월 개빡세게 욜로나 하지 뭐.”
유다연의 몸을 빌린 재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 게 보인다. 그게 뭐. 솔직히 회귀 첫날 그렇게 쫄 필요가 없었다. 어쩌면 그때는 말만 죽는다, 죽는다 하면서 사실을 나도 살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제는 뭐. 다 귀찮다.
막말로 지들이 사기 계약 당해놓고 누구한테 화풀이를 건지.
인간 때문에 지구가 멸망한다?그래서 뭐?!
지구 나이가 45억 년이다. 그정도 살았으면 오래 산 거 아닌가? 그런데 거기서 더 살아보겠다고 삽질해서 똥물을 끼얹었으면 똥물을 뿌린 연놈들이 처리해야지!
어디 은근슬쩍 사실은 너희 때문이야, 라고 물타기로 덮어씌우려고?
“…….”
“…….”
불편한 침묵이 나와 유다연 사이에 내려앉았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만 하더라도 이런 분위기가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나도. 유다연도. 그리고 재신 역시도 그랬을 거다. 아마도.
“먼저 일어나지. 다시 보지 맙시다. 서로 불편한데.”
그리고 난 그런 불편한 침묵을 감내할 이유가 조금도 없었다. 드드륵 소리가 나도록 거칠게 의자를 밀면서 일어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하면. 창피한 줄 아쇼! 상위 존재는 염병.”
씹어뱉듯이, 회귀 전부터 진짜 하고 싶었던 속마음이 담긴 일방적인 말을 뱉어내고 카페를 나섰다.
“젠장!”
명확하게 이유를 확정할 수 없는 짜증에 그렇게 침을 뱉듯이 중얼거리고는 걸음을 옮겼다.
입이 쓰다. 그게 믿었던 신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에 대한 실망 때문인지, 아니면 나 자신에 대한 혐오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위에 자리한 암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유료 주차장에 주차한 차가 보이자 ‘유다연의 짐이 집에 있는데.’라는 생각이 스쳤으나, 될 대로 되라 싶었다.
지금 기분 같아서는 평생 입에 대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이 피우는 냄새도 싫어한 담배가 피워보고 싶을 지경이었으니까.
바로 집으로 들어가지도 않았다. 아니, 못했다. 대상이 명확하게 확정되지 않은 분노에 머리가 뜨거워졌다가 차가워졌다가를 반복했기에 이대로면 누가 조그만 시비를 걸어도 죽여버릴 것 같았기에 정처 없이 차를 끌고 돌아다녔다.
그렇게 서울 시내를 배회하다가 삼청동을 지나 북악스카이웨이에 차를 대고 사람이 없는 곳에 앉아 서울 시내 야경을 두 눈에 담았다.
별처럼 형형색색으로 반짝이는 서울의 겨울 야경. 이 아름다우면서도 생명력이 넘치는 야경이 몇 개월만 지나면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어휴. 이요한. 어리다 어려.”
보통의 사람이라면 조금 전처럼 일방적으로 상대에게 화를 내고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지구의 의지들의 말일 빌리면 멍청한데 착한 나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에이! 어떻게든 되겠지. 빌어먹을 왜 날씨는 춥고 지랄이야.”
괜히 여기서 지지리궁상을 떨어봐야 나오는 것도 없고, 혼자 이게 무슨 추태인가 싶어 현타가 찾아왔다.
“일단 집에 가자.”
그렇게 한참을 밖에서 멍을 때리다가 도착한 집 앞에는,
“어?”
처음 만난 날 사준 옷을 입고 아침에 집을 나섰던 모습 그대로의 유다연이 쪼그리고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빠…….”
누가 봐도 울었다는 걸 알 수 있는 몰골이다. 눈이 퉁퉁 부었고, 눈물 자국이 주변에 가득했다. 아이의 안쓰러운 얼굴을 마주하니 짜증이나 분노보다,
“밥은?”
연민이 먼저 튀어나온다. 답답하다.
“훌쩍. 아직이요.”
“들어가자. 밥부터 먹어야지.”
그런데 유다연은 손을 꼼지락거리만 할 뿐, 열린 문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까 이상하네.
“내가 비밀번호 알려줬잖아? 왜 밖에서 이러고 있었어? 날도 추운데?”
“저 밉지 않아요? 오빠? 계속 옆에 있어도 돼…요?”
그제야 나를 만난 후, 항상 해맑던 아이가 처한 상황이 하나둘 떠올랐다. 갓난아기일 때부터 보육원에서 자라서 종말을 겪고 다시 회귀까지 경험한 아이가.
“네가 미운 게 아니라.”
“그래도! 재신 님이!”
“됐어. 그냥 아까는 나도 많이 감정적이었으니까. 춥다. 감기 걸리겠어. 빨리 들어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