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I the only one in the apocalypse who thinks the genre is weird? RAW novel - chapter 71
생각보다 희생이 컸다. 만약 김준이 빠르게 판단해서 첫 희생자가 나오자마자 리철우를 죽이지 않았다면? 사망자는 두 배가 넘었을 거다.
또한, 영주님이 설기를 보내주시지 않았다면?
사망자의 단위가 달라졌을 거다. 천 단위가. 2천여 명에서 사망자가 천 단위 사망자라면, 전멸에 가까운 피해라는 뜻이었다.
“죽다 살아났네. 어휴.”
“성벽, 그거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는데.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네.”
“아이고. 되다. 돼.”
아직 전투가 끝나지 않았지만, 전장은 빠르게 정리되고 있다. 그렇기에 저렇게 잡담이라도 할 여유가 생긴 거고.
“다 닥쳐! 이 빌어먹을 놈들아. 우리 설기가 최고야.”
“크르르르.”
마치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설기는 어린 아이 머리통만한 눈동자를 굴리며 뒷걸음치는 침식자를 눈에 담는다.
후웅―.
거대하고 육중한 몸이 움직였다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소음이 없다. 그저 강한 바람이 한 번 불어온 순간, 뒤로 물러나던 침식자 뒤에 나타나 퇴로를 끊었다.
“조, 종간나 고양이 새끼가!”
퇴로가 끊어졌다는 절망감과 도주하려고 했던 걸 들켰다는 수치심이 더해져 본능에 몸을 맡기고 달려들었다.
콰득―. 콰득―!
어차피 귀여운 고양이의 모습을 벗어던지기로 한 이상 더럽게 회색 괴물 놈들의 피를 발톱에 묻히고 싶지 않았다.
바닥에서 튀어나온 석창이 분노에 몸을 맡기고 그린스킨으로 화한 침식자의 몸을 세로로 꿰뚫었다.
“젠장. 젠장!!”
“내, 내래 항복하갔시오! 살려주시라요!”
…
퇴로가 사라졌다는 걸 깨달은 침식자들 중, 일부가 그렇게 반응한다. 항복하겠다고. 그러자 김준에게로 시선이 모인다.
“가치 있는 정보를 가진 놈은 좋은 쪽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내, 내래 많은 정보를 알고 있시요!!”
“닥치라! 내, 내가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소!”
…
끝까지 저항하려는 침식자는 많지 않았다. 그들을 따라서 오직 인간에 대한 악의로 가득한 그린스킨만이 항복하지 않고 덤볐지만, 전황은 급격히 기울었다.
항복을 원하는 침식자를 제외하고 모두가 죽었다. 사망한 각성자의 시체는 찾아볼 수도 없다. 이미 지구에 흡수되듯이 사라졌으니까.
중상자를 상대로 몇 명 없는 힐러들이 힘을 내고 있지만, 그 수가 많아서 더디기만 할 뿐이다.
김준은 그런 전장을 일별하고, 직속 부하들을 데리고 항복한 침식자를 모아놓은 곳으로 이동했다.
“자, 지금부터 따로 떨어져서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정보를 청취할 거야. 만약 각자 내놓은 정보 중 다른 게 있다? 그러면 일단 둘의 팔이랑 다리를 한짝 자르고 사실 확인에 들어갈 거야. 이해했어?”
섬뜩한 말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하는 김준을 보면서 침식자들은 질린 얼굴을 했다. 하지만 김준의 속마음을 그들이 알았다면 질린 얼굴을 할 게 아니라, 도주하거나 덤볐을 거다.
1시간이나 흐른 뒤, 규합하고 취합한 정보를 확인한 김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침식자들의 얼굴에 안도감과 안온함이 드러나는 순간,
차칵―! 촤악!
무릎이 꿇린 채로 앉아 있던 침식자들의 목이 일제히 떨어진다.
갑자기 목이 떨어진 이들의 얼굴에는 ‘왜? 살려준다며?’ 같은 죽기 직전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거짓말은 아니지. 좋은 쪽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했지, 살려준다고는 안 했어. 좋은 쪽으로 생각해보니까. 역시 영주님 말씀이 맞더라고. 좋은 침식자는 뒈진 침식자뿐이라더라고.”
억울하다는 감정을 드러낸채 목이 잘려 나뒹구는 시체 앞에서 중얼거리던 김준은 자신을 향해 모인 시선에,
“왜? 뭐? 여기서 나만 쓰레기야?”
괜히 제 발이 저려 하면서 발끈했다.
말도 많고, 처음으로 희생자가 생긴 북쪽 원정은 그렇게 끝이 나고 있었다. 전장을 정리하고 부상자를 안전하게 옮기는 방법을 강구하는 사이,
“설기야.”
김준은 늠름하게 전장을 오연히 내려다보는 설기에게 다가왔다.
“고마웠다. 영지로 복귀하면 통조림 구해줄게.”
“크르르르.”
자신에게 공물을 바치겠다는 말에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설기는 날개를 크게 펄럭이며 하늘로 떠올랐다.
“이따가 보자! 설기야!!”
“우리 설기 멋지다!”
“예쁘다!!”
…
아래에서 주인의 부하들의 호들갑에 코웃음을 치면서 영지로 복귀하는 설기의 입은 웃고 있었다. 입꼬리가 한껏 올라간 채로 영지까지 빠르게 도착했다.
그리고 영지에 도착한 설기는,
‘이런.’
가득한 그린스킨의 시체를 보면서 불안해하며 주인을 찾았다.
“설기야아!!”
그리고 북쪽의 성벽 위에 주인이 손을 흔들며 해맑게 자신을 반기는 모습을 발견하고서야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주인은 좋은 사람이야.’
동물에 불과한 자신을 걱정하다가 무사히 도착했음에 안도하는 기색이 영혼을 이어 맺은 계약을 통해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옐로 랭크에 오른 육체 스탯으로 자신을 발견하자마자 빠르게 부상이 있는지, 생채기는 있는지를 살피는 주인의 배려에 성벽 아래의 그린스킨을 발견하고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던 차가운 기운이 온풍으로 바뀌었다.
“어이구. 내 새끼! 고생했어!”
설기는 몸을 작게 바꿔 주인의 품에 안기면서 역시 이곳이 가장 안온하고 편한 곳이라는 걸 재차 확인했다.
“우리 설기. 이거 먹어볼래?”
이요한은 설기를 기다리면서 창고를 뒤져서 찾아냈다. 고양이 통조림과 간식을 말이다. 정작 찾아낸 이요한도 ‘이게 왜 여기 있어?’라는 반응이었지만.
전부 꺼내 온 게 아니다. 네 종류의 통조림을 하나씩만 꺼내왔다. 애초에 설기는 음식을 먹지 않았으니까.
만약 설기가 음식을 섭취해야 했다면 영지는 망했을 거다. 설기의 본체 크기가 얼마나 큰데.
오히려 설기는 음식보다 깨끗한 마력을 좋아했다. 그래서 이요한의 품이 아니라면 주로 세계수 밑의 그늘에서 몸을 말고 자곤 했다.
“자, 여기.”
이요한이 따서 접시에 덜어준 고양이 캔에는 흰 살 참치와 연어라고 적혀 있었다. 이요한의 품에서 내려와 흥미를 보이며 킁킁 냄새를 맡던 설기가 눈을 조금 크게 뜨더니 조심스럽게 통조림에 입을 댔다.
“먀아~.”
게 눈 감추듯이 먹어 치운 설기가 츤데레처럼 딱히 맛있어서 먹은 게 아니라, 니가 주니까 생각해서 먹어주는 거라는 듯이 입 주변을 고르며 새침하게 울어댄다.
그걸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엘리아나는,
“참나.”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고,
[역시 고양이는 요물이네요.]반지의 에고는 설기가 자이언트 윙 샤벨 타이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 이제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고양이라고 했음을 자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요한은,
“아유. 우리 설기! 귀여워 죽겠다니까!! 오구오구. 더 먹고 싶어요?! 응?”
멍청해졌다. 지능 스탯이 있었다면 이 순간에 상태창에는 지능 –50이라고 표기되었을 정도로.
“먀아~.”
관심 없다는 듯이 울었지만, 설기가 언급했듯이 설기와 이요한은 영혼이 연결된 계약이 체결되어 있다. 즉, 설기의 츤데레 모먼트는 이요한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딸깍―.
이요한이 통조림 뚜껑을 열어 접시에 쏟았다.
다다다다―!
지금까지 아무 관심이 없다는 듯이 새로촘하게 앞발을 핥던 설기가 통조림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참치와 새우라고 적혀 있는 캔이었다. 아까와 냄새가 미묘하게 달랐기 때문일까? 달려들어 막 입에 넣으려던 설기는 처음처럼 ‘킁킁’ 냄새를 맡고 조심히 아주 작은 양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커진 눈동자와 함께 또 게 눈 감추듯이 캔 하나를 먹어 치웠다.
그 후 참치와 치즈라고 적힌 캔을 땄을 때도, 참치와 게맛살이라는 캔을 땄을 때도, 설기는 냄새를 맡고 조심히 입에 넣고 다음에 게 눈 감추듯이 먹어 치웠다. 다 먹고는 마치 먹지 않은 척을 하거나, 허겁지겁 먹었던 건 자신이 아니라고 주장하듯이 새침하게 입 주변을 정리했다.
다만 한 가지 설기도 숨기지 못한 것은,
“꼬리가 흔들리는군. 설기.”
엘리아나의 말처럼 기분이 좋은 것처럼 살랑살랑 움직이는 새하얀 꼬리였다. 통조림을 먹을 때마다 봄바람에 살랑살랑 나부끼는 들꽃처럼 귀엽게 움직였다.
엘리아나의 지적에 우뚝 멈춘 꼬리의 모습에 이요한은,
“하하하하! 아이구 우리 설기! 귀여워 죽겠다! 진짜!!”
“먀아~!”
다시 멍청해졌다.
불과 고개를 들기만 해도 성벽 아래는 아직도 흡수가 끝나지 않은 그린스킨의 시체가 가득했다. 이번에 추가로 충성 스탯이 85에 도달하며 각성자가 된 이들이 이천 명이지만, 40만에 달하는 그린스킨을 영지 건물과 이요한 그리고 엘리아나가 죽인 거다.
그런 직후임에도 성벽 위에서는 고양이와 엘프 그리고 인간 남자의 웃음이 끊이질 않고 들려왔다.
그렇게 해가 서산 너머로 넘어가고 어둠이 발목을 찾아왔을 무렵에,
“오빠아!!!”
원정단이 하나둘 복귀하기 시작했다. 북한으로 향했던 김준 원정단과 다르게 한국 내부를 훑었던 이들은 대충 세어도 천 단위는 됨직한 생존자를 보호해서 데려오는 중이었다.
“성공이네.”
“수고하셨어요. 주인님.”
“먀아~.”
엘리아나가 이요한의 팔을 끌어안으면서 그를 올려다보고, 설기는 이요한의 발치에 머리를 비비면서 귀엽게 울었다.
해가 지면서 물들이고 간 석양을 등에 지고 길게 늘어선 채로 들어서는 차량 행렬을 보며 남긴 이요한의 감상이다.
한국에 ‘구해줄 만한’ 가치가 있는 생존자는 어느 정도 영지로 모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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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안녕하세요.심행입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어디까지 가려고?
김종은이 주술이 주는 쾌락에서 깨어난 것은 리철우가 추격을 위해 출발하고 20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김종은은 어느새 죽어 버린 류하이칭의 시체를 누군가 밤사이에 길에 토해놓은 토사물을 출근길에 발견한 사람처럼 경멸하는 눈으로 내려다보더니,
딱딱―.
신경질적으로 손가락을 튕겼다. 문 앞에서 대기하던 이들이 바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와 경계를 붙인다.
“저것들 모두 치우라. 그리고 철우는 출발한 지 얼마나 됐나?”
김종은이 리철우가 아니라 이름만 부를 정도로 리철우는 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존재였다. 그걸 현재 평양에 모여 있는 생존자와 각성자 그리고 침식자 중,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24분 됐습니다. 지도자 동무.”
“음. 기래? 기럼 얼마 안 남았겠구나.”
“그렇습네다!”
“기래. 기렇구나. 음. 이번에는 또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고 오려나. 동무는 가서 와인이나 한 병 가져오라우.”
비서의 보고를 받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와인을 마시던 김종은의 얼굴이 일그러진 것은 와인 한 병이 다 비워지기 전이었다.
“쿨럭! 커헉!”
목과 몸통이 분리된 채로 나타난 리철우의 모습에 마시고 있던 와인 잔을 내팽개치며 달려들었다.
“철우야!!”
“쿨럭! 죄, 죄송……. 쿨럭!”
피가래가 섞인 기침을 해대는 몸통과 떨어진 목이라니.
보통 사람이 피가래를 뱉거나 내장 조각을 토해내는 것은 내상을 입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다.
하지만 이미 목이 잘려 몸통과 분리가 됐는데, 어떻게 내상의 징후가 잘린 머리에서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아니, 그것보다 더 앞서서.
머리가 잘렸는데 어떻게 말도 하고 살아도 있는 건데?
그러나 그런 건 김종은에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차피 리철우가 이런 상태로 생존할 수 있게 한 것도, 절체절명의 순간 안전지대로 설정한 주석궁으로 복귀한 것도 모두 김종은의 주술 덕분이니까.
“어이! 밖에!!”
“부, 부르셨습니까!”
“제물을 준비하라우!”
“제, 제물 말씀……? 아, 알갔습네다!!”
제물이라는 단어에 기겁하던 보위병이 핏발이 선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김종은의 눈빛에 기겁하며 알겠다는 말과 함께 몸을 밖으로 날리듯이 나갔다.
“━━, ━━━, ━━━━━! Bewahrung!”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처럼, 그러나 음의 고저가 기이하고 듣는 것만으로도 불쾌한 운율을 가진 흥얼거림의 끝에 핏빛 마기가 쏟아지자, 리철우의 잘린 목이 스르륵 움직여 몸통에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