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I the only one in the apocalypse who thinks the genre is weird? RAW novel - chapter 93
“그럴 리가요.”
엘라와 유다연 그리고 올리비아가 저 밑에서 일종의 입국심사를 하는 엘프를 대신해서 답한다.
“그럼 저기서 소란을 피우는 여자를 왜 두고 보는 거지?”
“제가.”
엘라가 팔짱을 풀고 성벽 위에 발을 하나 올리며 단호하게 나선다.
“치울게요.”
드드드드드―.
그녀의 선언에 마치 명령을 받은 것처럼 땅이 울린다. 거칠고 흉포하게 흔들린 땅에서 거대한 손이 튀어나온 것도 그때였다.
“우왓!?”
“아악!”
“피, 피해!”
“으악!”
…
…
비명이 난무하고 사람들이 몸을 날리듯이 자리를 피한다.
“꺄아아아아아―!”
흙과 바위의 손에 움켜쥔 전 여자친구―진짜로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의 비명이 빠르게 멀어진다. 굳이 도플러 효과를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빠르게 멀어지면서 비명은 마치 있었는데, 없습니다, 같은 인터넷 밈처럼 사라졌다.
물론 각성자가인지 아닌지는 나도 모른다. 나한테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했다고 설마 비각성자일까?
비각성자면 죽는 거 아니냐고? 죽거나 말거나.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지금이야 평화의 날이니 뭐니 하면서 안전하지만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죽어나가는 사람이 수두룩했다.
“주인님.”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던 걸까? 소란스럽던 성벽 아래에는 정적이 내려앉은 채로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내가 가이아 게시판과 너튜브로 경고했지? 죄짓고 살지 말라고. 죄를 짓지 않았다면 당당하게 검사를 받아. 괜히 있지도 않은 친분 들먹이지 말고. 내가 챙겨야 할 사람들이라면, 이미 종말 전에 다 챙겼으니까.”
물론 나도 놓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챙겨야 할 만큼 선한 사람이라면, 그리고 아직까지 살아 있다면? 그런 사람이라면 굳이 나와의 친분을 들먹이지 않고 성실하게 조사를 받을 거다.
“빨라졌네요?”
남문에서 소동이 실시간으로 전해져서였을까? 엘프의 질의에 대답하고 승낙과 거절을 결정하는 시간이 엄청나게 빨라졌다.
한 사람 혹은 한 가족 당 1분이 넘지 않을 정도였다.
“혹시 이걸 위해서?!”
“아니…일걸?”
아닐 거다. 그래. 아마도. 아니, 확실하게 아니다. 하지만 뭐 어떤가? 이쯤 되면 잘 된 일이지.
“그런데 왜 갑자기 영지민을 더 받아들이시는 거예요? 이전보다 허들도 낮추시고?”
샤나스가 특유의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묻는다. 은근슬쩍 내 등에 기대면서.
“플러스 카르마 포인트가 부족해. 저거 봐.”
난 손으로 무너진 채로 유지 중인 성벽을 가리키며 답했다.
“플러스 카르마 포인트가 부족해서 성벽 수리도 못 하고 있어. 이 난리가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카르마 포인트가 남아서 여유로웠는데, 그때 내가 멍청했던 거지.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고작 1억도 가지지 못한 주제에 여유는 개뿔!”
세금이 들어왔을 때만 하더라도 꿈과 희망에 부풀었었다. 하지만 현실은? 엄청 시궁창이다.
랭크가 올라갈수록 필요한 카르마 포인트와 시간은 5배가 넘게 폭증한다. 당장 그린 랭크 시설 물 중, [연구소]는 건설조차 못했다. 랭크가 문제가 아니라.
게을러서?
천만에!
단순히 화이트 랭크로 건설하는데 필요한 플러스 카르마 포인트가 25만이다. 시작이 25만이라고. 시작이.
어디 영지 건물뿐일까?
그린 랭크에서 특수 스탯인 위엄을 하나 올리는데 들어가는 플러스 카르마 포인트는 19만 2천 포인트다. 거의 20만 포인트. 100개를 올리려면? 2천만에 가까운 플러스 카르마 포인트가 필요하다.
블루(Blue) 랭크 영지?
그게 어디 가능하겠나? 당장 영지 건물도 그린 랭크로 올리는 것도 까마득한데.
“아니지. 블루 랭크를 찍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번처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언제라도 블루 랭크를 찍을 수 있는 플러스 카르마 포인트를 비축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쉬울까? 2천만에 가까운 플러스 카르마 포인트를 비축하고 있는 게?
더 깊이 들어가면 끝도 없다. 옐로 랭크부터는 단순히 위업 스탯만 높다고 영지 랭크가 상승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영지 건물 랭크도 그에 맞춰야 했다.
그것까지 따지면?
까마득하다.
“흠.”
“플러스 카르마 포인트는 딱히 쓸데가 없는데. 제가 드릴 수 있으면 좋을 텐데요. 참.”
전투 계열은 플러스 카르마 포인트가 크게 필요하지 않지만, 카르마 포인트는 거래가 되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는 문제다.
“그래서 영지민을 받아들이는 기준을 낮춘 거야. 나중에 100만 정도 되면 살만하지 않을까?”
100만 정도나 되는 사람이 영지에서 살면 최소한 전달 보다 2배 이상의 플러스 카르마 포인트가 들어올 테니까.
“그것보다 생산 계열 각성자들은? 많이 들어왔어?”
“네! 엄청요! 농부 막 이런 분들은 대우가 엄청 안 좋았나봐요. 그래서 제시했던 조건을 듣더니 엄청 좋아하더라고요? 땅바닥에서 절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설마.”
“진짜예요! 진짜 절하면서 우는 아저씨 있었다고요!”
옷이나 이런 건 파밍으로 조달한다고 해도 음식을 파밍으로 조달하면 40만 아니, 이제는 100만을 향해가는 영지민을 먹일 수 없다.
다행이라면 이 고유 능력 [영지]의 건물에 [농장]이 있다는 점이다. 클래스 중, 농부나 목수 그리고 목동 같은 생산 계열 각성자에게 낙원과 같은 곳이 바로 우리 영지다. 전투 클래스가 전투를 통해 카르마 포인트를 획득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듯이 생산 계열은 생산 활동을 하면서 포인트를 획득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농부 클래스 각성자가 다루는 농장의 식물들은 열 개가 맺혀야 할 사과나무에서 20, 30개의 과실이 맺게 한다. 어디 그것뿐일까? 농부의 랭크가 상승하면 100개, 200개가 맺히는 사과나무가 된다. 또한, 영지 효과도 있다.
목장에는 닭부터 돼지와 소는 물론이고, 칠면조나 오리도 크고 있으며, 항만에는 낚시배가 구비 되어 있고, 광산에는 기본적은 광석과 신비한 듣도 보도 못한 광물도 존재한다.
생산 계열 각성자들이 절을 하는 게 아주 농담만은 아닐 거다.
“그런데 생산 계열 분들 덕분인지 농장이 확 달라졌어요! 어쩌면 우리 매일 고기 반찬을 먹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오빠!”
인간이 행복함을 느끼는 포인트 중, 가장 가성비 좋은 건 언제일까? 좋은 옷을 샀을 때? 아니면 좋은 집을 장만했을 때? 비싼 시계를 샀을 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다. 더욱이 이런 종말의 상황에서 깨끗하고 맛있는 음식, 이제는 다시는 맛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음식을 먹을 때, 인간은 행복해 한다.
그리고 그 행복함은,
‘플러스 카르마 포인트가 되어 내게 돌아오겠지.’
영지에 더욱 많은 투자할 수 있게 한다. 영지가 단단해지면 더 안전해지고, 종말의 끝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 열심히 하라고 해줘.”
“네. 오히려 쉬지 않고 일해서 말려야 할 정도라고요. 당장에도 하루에 12시간만 일하라고 했더니 엄청 서운해하던데요?!”
“…그게 맞나?”
12시간 일을 하는 건, 9시에 출근해서 9시에 퇴근한다는 말이다. 점심 시간을 1시간 더하면 10시에 퇴근한다는 소리다.
물론 농부나 생산 계열의 아침을 일찍 시작한다. 대략 오전 6시? 그래도 이게 맞나?
“너무 일을 많이 시키는 거 아니야?”
“제 말이요!”
“응?”
“네?”
“자기는 하루에 18시간을 일할 수 있대요. 미친 사람들이라니까요.”
“…18시간? 밥 먹는 시간이랑 자는 시간 빼면 일만 하겠다는 거네?”
“그렇죠. 그리고 밥 먹는 시간을 아침, 점심, 저녁을 포함하면 자는 시간은 4시간에 불과하다고요!”
“진짜 다들 도랐나.”
“그러니까요!”
어쩌면 이 땅이 문제가 아닐까? 그래. 터가 문제다. 터가. 조상님의 묘를 잘못 썼다던가? 응? 수맥이 흐르거나? 왜 멀쩡하던 사람들이 영지로 들어오기만 하면 다들 정신 나간 놈들이 되는 걸까? 응?
“적당히 하라고 해. 적당히.”
“네에~. 안 그래도 그랬어요. 90분 일하고 30분 쉬는 시스템이고요. 휴식 시간과 식사 시간을 포함해서 하루 12시간 근무! 어때요?”
“잘했어.”
“오예! 칭찬 받았다! 헤헤.”
“지금까지 집계된 생산 계열 각성자와 영지 건물의 생산력으로 계산을 하면 115만까지 수용할 수 있어요.”
똑똑한 올리비아는 손에 태블릿을 들고 말 없이 계산하더니 그렇게 말했다.
“영지 랭크가 그린(Green)으로 상승하면서 세계수의 효과도 증폭됐다는 것도 계산에 넣은 거겠지?”
“네.”
“생산 계열 각성자들이 그들의 일을 하면서 랭크가 상승하는 것도?”
“그건 변수에 포함하지 않았어요. 그것까지 넣으면 계산이 불가능하니까요. 그래도 확실한 건 앞으로 더 많은 생존자를 받아들여도 된다는 거예요. 지금은 115만이지만, 생산 계열 각성자는 계속 합류할 거고, 합류한 이들의 랭크는 점점 상승할 테니까요.”
올리비아의 계산이니 믿어도 좋으리라. 올리비아 옆에서 제시 모건도 공학 계산기를 들고 몇 번이나 검산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니까.
“좋아. 그건 그렇고 순찰조는?”
“출발했어요. 저는 세상에 인간 이하의 놈들이 그렇게 많은 줄 생각도 못했어요. 보스.”
인간에게 뭘 기대한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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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안녕하세요. 심행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기에 걸려서 지금 약간 비몽사몽입니다.
다음 주에 뵐게요.
인간이 그렇지 뭐.
95. 인간이 그렇지 뭐.
이요한의 영지로 가기 위해서 필수로 거쳐야 하는 곳이 몇 군데 있다. 특히 김포 공항에서 출발하는 이들은 깔끔하게 정돈된 도로를 따라 이동하게 된다.
교통수단이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이, 잘 정비된 그 도로를 따라서 움직이는 게 현대인의 본능 같은 거다. 그러니 그 도로가 보이는 곳에 매복하고 있다면 그 길을 지나는 이들을 일목요연하게 관찰할 수 있다.
‘역시 사람은 눈치가 빨라야 해.’
조쉬도 이요한이 있는 영지로 향하던 무리 중 하나였다. 엄밀히 따지면 무리의 이인자였다. 그런데 문득 조쉬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요한의 성향과 자신이 이끄는 무리가 맞을까?
그리고 결론은 금방 나왔다. 너튜브만 보더라도 이요한의 성향은 자신들과 맞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돌아가지고 말했다. 하지만 리더는 듣지 않았고, 무리는 그렇게 반으로 갈라졌다.
결론?
보나마나지. 영지로 입국을 거부당한 이들의 말에 따르면 사람을 죽이고 노예처럼 부린 놈들은 모두 목이 잘렸다나?
그래서 조쉬는 안도하며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었다. 그걸 본 것은 우연이었다. 잠시 쉬려고 길 한쪽에 앉아 있다가 꾸역꾸역 밀려드는 행렬을 본 것은 말이다.
그리고 문득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쩌면 이곳에서 자신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고.
그렇게 조쉬는 이요한의 영지, 유토피아로 향하는 길목 중, 한 곳에 자리잡았다. 사흘 정도 자신의 무리와 함께 관찰하다가 늦은 저녁 적당한 사람을 발견했다.
초라한 행색. 남루한 옷. 무엇보다 피로에 쩌든 것 같은 표정의 일가족 다섯 명. 특히나 어린 아이까지 있다.
그가 노리기 딱 좋은 일행이다. 특히 젊은 여자가 포함된 일행이니 더욱 그렇다.
“시간이 늦었는데, 좀 쉬었다가 가는 게 어때?”
그 일행 앞에 조쉬와 그를 다르는 무리가 나타나 길을 막으며 말했다. 당연히 그 소리를 들은 가족들은 원치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앞으로 나서며 가족을 자신의 등 뒤로 돌려 보호했다.
“아저씨 각성자구나? 그런데 이걸 어쩌지? 쟤도, 쟤도, 그 옆에 있는 애도 그리고 나도 각성잔데?”
조쉬의 농담 같은 말에는 은연중에 살기가 배어있었다. 그가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살인을 밥 먹듯이 했기 때문이리라.
“좋은 말로 할 때 따라오는 게 어떨까? 응?”
그 섬뜩한 협박에 다섯 명의 가족의 얼굴에 절망이 드리운 순간,
“나도 궁금한데? 그 좋은 말이라는 거.”
조쉬와 그 일행 뒤에서 조금은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조쉬를 비롯한 이 일을 꾸민 쓰레기들은 섬뜩한 기분에 부르르 떨어야 했다. 각성자가 된 이후로 이렇게 뒤로 바짝 접근할 때까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에.
“어이. 아저씨. 나도 궁금하다니까? 그 좋은 말이라는 거?”
변성기가 지나지 않은 것 같은 앳된 목소리와 내용만 보면 교복을 입고 담배를 뻐끔뻐끔 피워대는 일진 중고딩을 떠오르게 하지만, 조쉬와 그 일당을 포위한 이들은 평범한 이들이 아니다.
“누, 누구……?”
“아저씨. 좀 짜증 나네? 누가 질문에 질문으로 답해도 된다고 했어?”
160이 조금 넘는 작은 키의 갈색 머리카락과 얼굴에 주근깨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아이. 그러나 조쉬는 아이와 그 일행을 보고 조금도 비웃거나 무시할 수 없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마력의 색이 무려 ‘주황색’이었으니까. 연해서 붉은색으로 보일 정도의 주황색이 아니라, 선명하디 선명한 오렌지(Orange) 랭크였다.
그것도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스무 명의 어린 각성자들 전부가.
“대답이 없네?”
어린 각성자가 한 걸음을 내딛자 화들짝 놀라서 뒤로 훌쩍 물러선 조쉬는 어느새 자신이 협박하던 가족과 거리가 가깝다는 걸 본능적으로 떠올렸다.
그리고 그 본능에 몸을 맡겨 가장 가까이 있던 각성자로 보인 중년 남자에게 손을 뻗었다.
‘됐다! 이제 이 새끼를 인질로 삼아서? 어?’
뭔가 이상했다. 마력까지 동원해서 뻗은 오른손인데, 바로 코앞에 있던 남자가 딸려오지 않는다. 오히려 중년 남자가 놀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푸쉬이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