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I the only one in the apocalypse who thinks the genre is weird? RAW novel - chapter 96
“빌어먹을 고블린 놈은 못 찾았어?!”
“네. 이 정도면 숨거나 도망간 게 아닙니다.”
“그럼? 설마 소멸이라도 했다는 거야?”
“네.”
“뭐?!”
이번 일의 전후사정을 모두 알고 있는 고블린 주술사 제스터가 소멸했기 때문이다. 그냥 죽기만 했다면 영혼을 불러내는 건 일도 아니다. 그린스킨은 마법보다 주술이 발달한 종족이니.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제스터의 영혼은 포스트무르를 지구에 더 머물게 하기 위한 재료로 사용되었으니까.
주술 재료로 사용된 영혼은 환생도 못하고 완벽하게 소멸한다. 환생이 불가능한 소멸이기에 어떤 주술로도 그 영혼을 다시 소환할 수 없다.
즉, 그린스킨 왕족은 갑자기 벌어진 일의 전후사정도 모르고 그냥 무턱대고 처맞고 있는 중이다.
“허! 이런 빌어처먹을!”
욕이 나오지만 방법이 없다. 이건 어떻게 뻗대고 뭐하고 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 완벽한 외통수.
항상 암컷의 신음이 끊이지 않고, 신선한 피비린내가 진동하던 궁전에는 불편한 침묵만이 자리했다.
『모두 모였군요? 이번 차원 공방전을 담당한 메인 시스템입니다. 상황은 모두 알고 있으리라는 전제로 진행하겠습니다.』
『마지막 변명할 기회를 드릴게요.』
진행하겠다는 말에 이어서 ‘마지막’이라는 말을 꺼낸다. 뭔가 앞뒤가 안 맞고 많은 부분이 생략된 것 같은데, 차원 시스템은 원래 이렇다. 이들은 연민과 인정 같은 게 통하지 않는다. 물론 반대로 뇌물 같은 것도 통하지 않고.
그래서 공정하지만,
‘망했군.’
그렇기 때문에 망했다. 변명할 기회를 준다고 했지만, 이건 변명이 통할 문제가 아니었다. 차라리 뒤로 뭔가를 하다가 걸렸다면 모를까 이렇게 대놓고 걸리는 걸 차원 시스템은 경멸한다. 싫어한다 정도가 아니라, 명백히 경멸한다.
『없나 보군요? 그렇겠죠. 증거를 저리 남겨둘 정도면 변명 따위는 하지 않을 만큼 당당하다는 건데. 그런데 이렇게 너무 당당하니까. 이걸 받아들이는 나는 좀 그렇네요? 내가 그렇게 개 X으로 보였어요? 네?』
쿠웅―.
궁전의 내부의 공기가 수십 배는 무거워졌다. 서열이 낮은 왕의 혈족은 자신의 의지에 상관없이 무릎을 꿇고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가장 상석에 앉은 그린스킨의 왕도 거대한 뼈로 만든 용상의 팔걸이를 움켜쥐고 있었다.
무려 권능을 지닌 존재가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버티는 게 고작. 흔히 출력되는 시스템 메시지만 보고 게임에서 나오는 NPC 정도로 생각하는데, 차원 시스템은 그런 게 아니다. 차원의 규칙을 수호하고, 지켜보며, 때로는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존재들이다. 실체는 없으나 실존하는 기이한 존재들. 그들은 함부로 힘을 드러내지 않으나, 힘을 드러냈을 때는 엄정한 칼과 같았다.
단순하게 따져봐도 이 천방지축에 본능대로 사는 그린스킨이 여러 꼼수를 부리면서까지 차원 시스템이 정한 규칙을 벗어나지 않는 것만 봐도 그들의 힘을 짐작할 수 있잖은가.
『그렇게 주둥이를 꾹 다물고 계시면 제가 마음대로 처리해도 되나요? 이번에 살펴보니까 계약도 이면 계약으로 사기를 쳤던데요? 지구의 의지가 수집한 증거가 수두룩하네요. 최대한 조심히 일을 진행했어도 부족한데, 무슨 배짱이셨을까요? 너희들?』
그그그긍―. 부스스스.
궁전 위에 내리박히는 힘은 더욱 거세지면서 건물이 무너지고, 왕이 앉은 드래곤의 뼈로 만든 용상도 비명을 지르며 무너져내렸다.
『이미 시체가 나와서 빼도 박도 못하겠어요. 웬만하면 귀찮아서 그냥 넘어갈 텐데. 어쩌겠어요. 법대로 해야지.』
“큭!”
“콜록! 콜록!”
법대로 해야지라는 말과 함께 장내를 짓누르던 기색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조금 전 분노를 씹어 삼킨 것 같던 목소리는 마치 착각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기계적인 음성으로 변했다.
『페널티를 선택하십시오.』
『하나, 계약금의 666배의 카르마 포인트를 지구 측에 지불하고 계약을 파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추가로 차원 시스템의 수수료를 위약금에 맞춰 납입하면 됩니다. 지금 즉시.』
『둘, 계약금의 66배의 카르마 포인트를 지구 측에 위약금으로 지불하고 계약을 일부 조정한 후, 차원 쟁탈전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추가로 차원 시스템의 수수료도 위약금에 맞춰 납입하면 됩니다. 지금 즉시.』
『셋, 계약금의 6배의 카르마 포인트를 지구 측에 위약금으로 지불하고 ‘패배’를 인정하고 차원 정탈전을 종료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추가로 차원 시스템의 수수료‘는’ 쟁탈전이 예정대로 이어졌다는 가정으로 추가로 계산해서 납입하셔야 합니다. 지금 즉시.』
“젠장! 그놈의 지금 즉시 좀 그만 해! 알아들었으니까!”
왕의 혈족 중, 왕의 자리에 가장 가깝게 앉은 이들 중 하나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반발했다.
『아! 이걸 빠트렸군요. 어떤 선택지를 선택하든 푸른 피의 절반은 죽는다는 걸요.』
벌떡.
지금까지 가만히 상황을 ‘감내’하는 것처럼 보였던 그린스킨의 왕이 몸을 일으켰다.
『억울하다느니 부당하다느니 같은 개소리하시면 안 돼요. 지금까지 해먹은 게 너무 많아서 어쩔 수 없으니까요. 걸리지 말았어야지. 걸리지를! 업보라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그 업보 만큼 카르마 포인트로 물어낼래요? 오히려 이쪽은 그걸 환영해요. 피해 차원에 카르마 포인트로 보상을 대신할 수 있으니까요.』
이어진 말에 왕은 선뜻 카르마 포인트로 대신하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왜냐고?
피해 차원에 보상한다는 말 때문이다. 피해 차원이란, 그동안 지구와 마찬가지로 이면 계약고 편법과 위법 사이의 교묘한 수작으로 뽑아 먹은 차원을 말한다. ‘이미’ 뽑아 먹은 차원. 그러니까 지성체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차원이기도 하다.
‘돌겠군.’
그런 차원에 ‘보상’을 한다? 그건 이미 황폐화한 차원에 생기를 넣어줘야 하는 일이고, 그 정도 카르마 포인트라면 그린스킨이 넓히고 정복한 차원의 카르마 포인트를 모두 회수해서 줘도 부족할 거다.
그동안 잡아 먹은 차원이 한두 개여야지.
“우리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누군가 벌떡 일어나 허공을 노려보며 외쳤다.
『오! 반항! 환영합니다! 적극적으로 반항하고 저항해주세요! 그 편이 피해 차원 입장에서도 더 좋아할 테니까요!』
왕은 한탄했다. 그리고 인정하기로 했다. 이번에 된통 걸렸음을. 또한, 매번 차원을 정복하고 훔쳐먹을 때마다 협조했던 놈들이 자신을 버렸음을. 더하여, 차원 시스템도 자신들을 벼르고 있었음을.
그렇기에 왕은 순식간에 떠오른 여러 가지 꼼수를 뇌리에서 지워버렸다.
‘엎드릴 땐 납작 엎드린다.’
그게 그가 저주받은 그린스킨으로 태어나 차원을 먹을 수 있게 된 성향 같은 거다.
“흠.”
몸을 일으킨다. 차원에서 납치한 특별한 암컷들에게서 태어난 자신의 피를 이은 것들에게서는 기대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 절반은 내가 선택하는 건가?”
그러나 왕의 말은 그 기대감을 무참히 박살 내는 내용이다.
『아뇨. 제가 선택합니다. 가장 먼저 내게 대들었던 두 놈은 당첨.』
“알았다.”
『그래서 몇 번을 선택하실 거죠?』
“마지막 선택지를 고르지. 우리의 패배를 선언한다.”
『하! 쓰레기에서 태어난 종족이라서 그런가요? 역시나 카르마 포인트를 아끼는 쪽으로 선택하네요? 덕분에 그린스킨 종족은 8할이 사라지겠네요.』
그렇다. 앞서 몇 번이나 설명했듯, 그린스킨이라는 종족은 애초에 ‘생산’이라는 걸 모르는 종족이다. 그런 이 빌어먹을 종족이 살아갈 수 있는 건 오로지 타 차원을 침략해서 얻는 전리품 덕분이다.
그런데 지금 침략 한 달이 조금 넘은 시점에서 패배를 인정한다면?
그린스킨 종족의 8할을 차지하는 병사 계급 그린스킨은 곧 자멸할 거다.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왕은 벌레나 마찬가지인 일반 그린스킨을 위해 자신의 카르마 포인트를 낭비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계약금의 6배의 카르마 포인트를 지구 측에 위약금으로 지불하고 ‘패배’를 인정하고 차원 쟁탈전을 종료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추가로 차원 시스템의 수수료‘는’ 쟁탈전이 예정대로 이어졌다는 가정으로 추가로 계산해서 납입하셔야 합니다. 지금 즉시.』
『현 시각을 기준으로 그린스킨의 차원 ■■■는 인류 차원 지구의 의뢰에 실패했음을 차원 시스템이 공증합니다.』
여기까지는 왕도 예상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린스킨은 계약금에 해당하는 카르마 포인트의 10배를 의뢰 실패의 대가로 지구에 지급해야 합니다.』
“뭣?!!”
이어진 차원 시스템의 메시지는 그도 예상치 못한 내용이었다.
“이건……!”
『뭔가요? 계약서에 나온 대로 집행한 겁니다.』
“이이익!!”
『익숙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계약서에 사인할 때는 신중해야지. 그걸 이제 와서 불평하면 어떡하나?’ 당신이 꼼수로 다른 차원을 훔쳐먹을 때 하던 말이네요. 제가 더 설명해야 합니까?』
“…….”
그제야 왕은 깨달았다. 차원 시스템이 파놓은 함정에 제대로 걸려들었다는 것을.
저 세 가지 선택지 중, 자신이 선택할 건 당연히 카르마 포인트 손해가 가장 적은 세 번째라는 걸 미리 알아차리고 그 항목에 ‘패배’라는 걸 집어넣은 거다.
6배와 10배를 곱하면 60배라는 위약금을 내야 하는 선택지가 되는 걸 마치 6배만 내면 되는 것처럼 보이도록.
차라리 이러면 두 번째 선택지를 선택했을 거다. 그렇다면 적어도 추가로 카르마 포인트를 수급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래서 이런 분위기를 조성한 건가? 내가 패배 뒤에 따라오는 위약금을 떠올릴 수 없게?”
『그건 모르죠. 우리는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라, 판단하는 존재이니까요. 뭐, 가끔 판단하는 존재들도 생각이라는 걸 할 수도 있겠죠. 짜증 나는 기생충 새끼를 오래 보다 보면?』
그런 거였다. 자신의 혈육을 죽인다는 내용 역시 같은 맥락에서 나온 협박 아니, 실재하는 위협이었을 거다.
“젠……장.”
왕은 깨달았다. 수천 년을 쉬지 않고 일군 자신의 왕국이 망하기 직전이라는 것을.
그리고 왜 지금까지 끈끈한 협력 관계를 이어가던 동업자들이 자신에게 등을 돌렸는지도 깨달았다.
“위험하군.”
그들에게 자신의 차원은 위협적인 동업자가 아니라, 먹음직스러운 먹이가 되었음을.
『어쩌겠어요? 당신이 뒤통수를 친 지구의 한국에 이런 속담이 있더라고요? 뿌린 대로 거둔다. 당신이 뿌린 대로 거두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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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안녕하세요.
심행입니다.
먼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연재 주기가 결정되었습니다
앞으로 이틀에 한 번 격일로 연재가 됩니다.
8월 22일 이후에는 수~월까지 주 6연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26일부터는 동시연재가 시작됩니다.
그동안 일정을 맞추기 위해서 연재 주기가 너무 길었던 점 송구하고 죄송합 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너희 좀 친다?
98. 너희 좀 친다?
자그마치 열흘하고 이틀이나 더 지속됐다. 그린스킨이 사라진 이후, 갑자기 전투가 멈춘 일명 ‘평화의 날’이라고 하는 기간이 말이다. 기존에 21일이라고 말한 최소한의 기간에서.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평화의 날이 유지되는 동안 한국을 기준으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에서까지 우리 영지를 찾았다.
첫날 전직 테러범을 잡아낸 뒤, 나를 비롯한 우리 영지는 공식적으로 매우 강력한 경고를 남겼다. 이런 놈이라면 한국 땅을 밟을 생각조차 말라는 식이었다.
어떻게 보면 각성자가 된 후, 힘이 생겨 자신이 넘치는 이들이 보기에는 불편하고 불쾌한 내용의 경고였지만, 가이아 게시판 최상단에 걸리더니 그 아래 댓글은 모두 우호적이다 못해 찬양하는 댓글들이 줄을 이었다.
“왜 이래? 이거?”
“아? 아항! 오빠 당연히 좋아하죠.”
“당연하게 좋아한다고? 오면 죽인다는 말인데? 그냥 죽이는 것도 아니고 고문하듯이 해놓고 죽인다는 뜻인데?”
“참나. 오빠. 가이아 게시판을 보려면 기본적으로 각성자여야 하잖아요?”
“그렇지. 당연히.”
“오빠가 그랬잖아요~. 각성자는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과 지구의 의지가 판단하기에 최소한 플러스 카르마가 마이너스 카르마보다 높은 사람들이 되는 거라고.”
“어? 어. 그랬지. 아아.”
“그러니까요. 여기 댓글을 달고 좋아요를 누를 수 있는 건 최소한 각성자라는 거잖아요. 그런 각성자니까 애초에 저기에 해당 사항이 없죠. 물론 각성자 중에 쓰레기로 변한 연놈들도 있겠지만, 그런 놈들은 굳이 댓글을 달았겠어요?”
유다연이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이제 이해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이 일어난 이유 역시도.
“그러네. 요즘 내가 이렇게 정신이 없다. 아! 그것만이 아니겠네.”
“맞아요.”
“저 경고는 우리 영지는 저런 놈이 없다는 뜻이니까.”
“네. 보통의 각성자라면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도 안전해진다는 뜻이죠. 반길만 하지 않아요?”
“그래. 좋아할 만하다.”
그렇게 유다연을 비롯한 올리비아와 대화하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는 건, 목표로 했던 100만이라는 생존자를 모았기 때문이고, 이상하게 이 평화가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미치겠네.’
회귀 전에는 이런 일이 아예 없었기 때문에 갑자기 맞이한 이 평화가 나는 왠지 계속 불안했다.
[마스터.]그리고 그때, 평화의 날이 시작되고 33일이 되는 날이자, 기사 여왕이 영지에 등장했다가 쫓겨나고 한달이 되는 날, 사라진 것처럼 반응이 없던 반지의 에고가 나타났다.
‘오랜만이다.’
[오랜만입니다. 마스터. 이제 곧 지구의 의지가 진행한 회의 결과를 전할 수 있습니다.]‘엉? 그게 뭔 소리야?’
뭘 이제 곧이야? 그냥 말하면 안……?
『안녕하십니까?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에서 안내드립니다.』
되겠구나. 함부로 떠들면.
뜬금없이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이 등판할 줄은 몰랐다. 하긴 평화의 날이 시작되는 순간에도 등장하긴 했으니까, 개연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
아무튼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이 등장했다는 건,
『멈췄던 계약을 다시 진행하겠습니다.』
이 전쟁이 다시 시작된다는 뜻이었다. 오히려 언제 끝날지 모를 제한된 평화가 끝났다는 것에 속이 다 후련했다면 내가 좀 이상한가 ?
하지만 후련함은 이내 곧 경악으로 바뀌었다. 그 목소리의 시스템 메시지는 지구인의 입장에서 심장이 위장까지 내려갈 법한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꺼냈기 때문이다.
『멈췄던 계약의 진행에 앞서 몇 가지 문제를 정리하고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