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Angel lives in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10
211화 아카데미에 천사가 산다 (完)
소녀는 바라보았다. 한때 자신이 집이라고 불렀던 붉은 색 타일이 붙여진 작은 연립주택을.
그곳은 먼 곳이었다. 소녀의 위치에서는 조그마한 점으로 보일 정도로 먼 곳. 그러나 소녀는 그 작은 점만으로도 저택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떠올리고 말았다.
금이 갈라진 인조석 계단 위로 올라가면 페인트가 벗겨진 철문 두 개, 또 계단을 오르면 2층에 보이는 비슷한 철문 두 개.
그중 오른쪽 문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현관. 구두 주걱과 신발장 그리고 우산이 놓인 통. 그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거실.
파란색 벽지, 해질 때까지 읽었던 동화책, 자신이 공부하던 식탁 겸 책상, 그리고, 그리고 항상 싱크대 앞에 서서 학교 숙제가 뭐 있는지 물어보던.
“…….”
소녀는 챙을 내렸다. 가끔은 보고 싶어도 보고 싶지 않는 게 있는 법이니까.
“보고 싶지 않아.”
성, 외국어로는 패밀리 네임, 가족을 증명하는 이름은 이미 버린 지 오래다. 아니, 버린 게 아니다. 자신은 버려진 거다.
버려진 아이로서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권리가 있다면, 그건 바로 자신을 버린 부모를 원망하는 것. 그리고 소야는 그 권리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다만 미련이 남는 게 하나 있다면.
소녀는 고개를 몇 번 저은 후 소매로 얼굴을 쓱쓱 닦아 내고는 챙을 올렸다.
“저 사람들을 확인하러 온 건 아니야. 마왕이 구서울에도 큰 피해를 입혔으니까, 용사로서 도시가 괜찮은 지 확인…….”
아무도 듣지 않는 허공을 보고 누구에게 하는 건지 모를 변명을 하는 소녀. 그렇게 소녀는 변명을 늘어놓은 후 포탈을 열어 아카데미로 복귀하려고 하였다.
그 순간이었다.
‘소야, 알고 싶은 게 있었잖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의 목소리일까. 너무나 익숙하고 반가운 이 목소리는.
‘그걸 알 때까진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마음속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소야의 발을 멈추었다. 맞아. 소야에게는 정말로 알고 싶었던 무언가가 있었다.
가장 어두운 악몽 속에서도 그걸 알 때까진 살 수밖에 없다고 맹세할 정도로. 정말로, 정말로 알고 싶었던 게 하나 있었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
‘소야야, 미안해…….’
왜, 그런 말을 한 걸까. 왜, 어째서. 자신을 마도 가문들에게 팔아넘겼으면서. 그토록 종교를 맹신하던 사람이 흑마법사가 된 자신에게 왜 그런 말을.
소야는 그 이유가 너무나도 알고 싶어졌다.
소녀는 어느새 달리고 있었다. 나뭇가지에 손이 긁히는 것도 신경 쓰지 않으며 산을 타고 내려갔고, 폐가 터질 듯이 아파 오기 시작해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하아, 하아.”
지금 당장, 지금 당장 묻고 싶어.
금이 갈라진 인조석 계단 위로 올라가면 페인트가 벗겨진 철문 두 개, 또 계단을 오르면 2층에 보이는 비슷한 철문 두 개.
“비밀번호는, 분명 3456이었지.”
띠로리- 경쾌한 멜로디와 함께 열리는 문. 소녀는 조심스럽게 그 문을 열고 한때 집이라고 불렀던 공간을 바라보았다.
구두 주걱 옆에 신발을 벗고 조금 돌아서 싱크대 쪽을 보면.
“…소, 소야.”
“엄마, 나 묻고 싶은 게 있어.”
날개를 펼친 천사가 지상을 바라보았다. 지상에서는 한 소녀가 엄마의 품에 안겨서 눈물을 펑펑 쏟아 내고 있었다.
* * *
세상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이자 이종족 피난민들의 성지인 구묘성채. 그 구묘성채를 지배하는 종족을 사람들은 달고양이 일족이라고 부른다.
구묘성채의 지배자로서 수많은 부와 강력한 권력을 틀어쥔 달고양이들이지만, 그런 그들에게도 걱정거리가 없는 건 아니었다.
‘마왕’이나 ‘교수들’ 아니면 ‘후계자’. 이 셋 정도가 바로 그들의 걱정거리였다. 그러나 마왕이 사라지고 교수들이 몸을 추스르게 된 지금, 달고양이 일족 족장 적월에게 걱정거리는 자연스럽게 후계자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에휴, 그 아이가 어쩌다가.”
적월은 한숨을 쉰 후 옆에 앉아 있는 남자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반쯤 벗은 남자는 갸르릉거리며 적월의 손에 자신의 볼을 부벼 왔다.
“요즘, 말은 지지리도 안 듣고 또 가업에 관련된 교육은 전부 빠지려 하면서 심지어 아카데미에서 나오라는 ‘명령’도 듣지 않다니.”
붉은 꼬리를 살랑거리며 적월은 중얼거렸다.
“교수 놈들, 내 딸에게 도대체 무슨 물을 들인 거야?”
족장의 분노를 읽어서일까. 교태를 부리던 남첩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자신의 주인에게 조언을 올렸다.
“그렇다면 더 물들기 전에, 실력 행사로 소족장을 데려오는 게 어떨까요.”
“냐아- 가능한 소리를 해라. 나조차도 승산을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아이는 강해졌어.”
자신과 간부들의 공격을 막아 낸 그 움직임, 적월은 그 움직임의 시작과 끝 전부를 읽지 못했다.
시작을 읽지 못했다는 건 육감에서 밀린다는 거고, 끝을 읽지 못했다는 건 속도로써 밀린다는 소리였다. 한쪽만 밀려도 승산을 장담하기 어려운데 두 쪽이 전부 밀린다라.
자신의 딸과 자신이 싸운다? 만약 그런 상황이 온다면? 인정하기 싫지만 적월은 자신의 패배를 예상하고 있었다.
탁- 탁- 대리석 바닥을 투욱투욱 건드는 적월의 붉은 꼬리. 그녀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걸 보여 주는 징표 중 하나였다.
그 소리를 들은 남첩은 목소리를 조금 더 조심스럽게 가다듬었다.
“실력 행사로도 데려올 수 없다면 족장님, 혹시 다른 방책이 있으신가요?”
“있지. 마음에 드는 방법은 아니지만.”
타악- 타악- 허공을 가르는 꼬리의 소리.
그 소리와 소리 사이 적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월이를 데려와. 오늘부터 소월이에게 후계자 교육을 시행하겠다.”
타악- 타악- 꼬리가 바닥과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는 밤. 오늘은 높고 맑은 달이 뜨는 밤이었다.
그런 달이 뜬 밤에도 아니, 그런 달이 뜬 밤이기에 짙은 그림자가 공간을 물들인다. 그림자에 깊게 물든 방, 분홍색 머리칼을 가진 자매가 눈을 빛내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야, 들었어?”
“들었어요.”
중앙 초인 아카데미의 교복을 만지작거리는 소녀, 소월은 언니의 말을 긍정했다.
“오늘부터 제가 후계자 교육을 받을 거래요.”
“그래서 좋아?”
“좋아요. 명예로운 달고양이 일족의 족장이 될 수 있는 기회니까.”
명예로운이라. 홍월은 그 말을 듣고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달고양이 일족의 명예라는 건 도대체 뭐지?
“후계자 교육 때 뭘 배우는지 알아?”
“알아요. 일족에게 필요한 물건을 가져오는 훈련, 적의 목숨을 거두는 훈련. 그리고.”
“그리고 구묘성채의 지배자로서 해야 할 일도 배우지.”
크고 밝은 달, 그 달의 빛이 홍월의 눈을 빛낸다.
“넌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게 될 거야.”
“…….”
“그리고 넌 악당이 되어서 중앙 아카데미 학생들과 싸우게 되겠지. 아카데미에서 친해진 네 친구들 말이야.”
그 순간 흔들리는 소월의 눈동자. 힐끔- 하고 아카데미 교복에게 닿은 시선을 홍월은 놓치지 않았다.
“그래도 상관없어요.”
자매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구름이 달을 가려서 세상이 어둠에 물들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한번 세상을 비출 때까지.
창문으로 달빛을 받으며 홍월이 입을 열었다.
“알았어. 마음대로 해라.”
“잠깐, 언…….”
그리고 홍월은 사라졌다. 원래부터 이 방에 없었던 것처럼 너무나도 깔끔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언니…….”
어딘가 애틋한 목소리가 그림자에 잠겼다. 그 대신 들려오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 그다음으로는 “소월 님, 후계자 교육 시간입니다.”라는 말이 이어졌다.
달빛이 하얀 옷을 비춘다.
달빛처럼 하얀 중앙 초인 아카데미의 교복, 무고한 자를 해치는 악당과 맞서는 영웅을 가르치는 자신의 학교.
너무나 하얘서 피 묻은 손으로는 입기 힘든 옷이었다. 오늘따라 왜 이리 교복이 밝게 빛나는지.
“소월 님?”
“그래, 나갈게.”
그림자에 물든 방을 떠나는 소녀. 그리고 소녀 앞에 펼쳐진 그림자에 물든 복도.
“따라오십… 냐아?”
그리고 그 복도에 반짝이는 수상한 붉은 점. 소월은 왠지 모르겠지만 저 점을, 매우 매우 잡아 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살랑- 살랑-
꼬리 흔들리는 소리가 복도를 채웠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다른 달고양이들도 전부 사냥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자신처럼 말이다.
“저건 뭐야?”
“뭔지 모르겠지만, 밟고 싶어.”
“으읏, 내가 왜 이러지?”
그리고 그 점은 동글동글, 마치 잡아 달라는 것처럼 놀리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결국 못 참고 뛰어나가는 일족의 여성들.
“냐아!”
소월도 마찬가지로 점을 쫓으려고 하였으나, 달고양이의 약점인 목덜미를 붙잡혀 움직이지 못했다.
그런 소월의 목덜미를 붙잡은 자는 바로…….
“성능 확실하구만, 역시 소야제 레이저 포인트야.”
바로 홍월이었다. 붉은 점을 쫒아가는 동족들을 보고 홍월은 진저리가 난다는 듯 중얼거렸다.
“저 점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후우, 넌 상상도 못할걸.”
“홍월 아가씨,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십니까?!”
겨우 정신을 차린 달고양이 간부가 홍월을 보고 소리친다.
“무슨 짓이긴. 달고양이답게 내 동생을 훔치러 왔지.”
“네? 그게 무슨?! 비상! 비상! 전부 모여서 빨리 홍월 아가씨를 제압해!”
그러자 홍월은 기다렸다는 듯 품속에서 여러 물건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럴 줄 알고 준비했어. 자, 소야제 포박 실뭉치! 소야제 만드라고라 츄르! 소야제 미끼 낚시대… 아니, 소야 이 꼬맹이는 나 엿 먹이려고 이걸 전부 다 만든 거야?”
그렇게 비상 근무조가 실뭉치에 엉키고 츄르를 핥다가 잠들고 낚시대에 낚여서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사이, 더 많은 달고양이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중에는 소월과 홍월의 어머니, 적월도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나타난 하얀 소년. 날개를 볼 수 있는 자만 볼 수 있는 날개를 펼친 이 소년의 이름은 레프리.
“선배천사 레프리, 등장!”
레프리는 달보다도 더 밝은 미소를 지으며 소녀들에게 손을 뻗었다.
“자, 밤하늘에 날아 본 적 없지?”
“으으. 으으! 밝은 하늘에도 날아 본 적 없는데!”
높고 맑은 달이 뜨는 밤, 날개를 펼친 천사가 밤하늘을 갈랐다.
* * *
이 세상은 어둠이 지배하고 있다. 뿔이 달린 소녀는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마왕의 가루가 이 아이들에게 쓰였다는 말씀이죠?”
마왕의 가루, 먼지가 되어 사라진 마왕이 남긴 먼지들. 교수들이 그 가루들을 모두 봉인하기 위해 온갖 애를 썼으나 결국 이렇게 사용되고 말았다.
검게 물든 소년과 소녀는 겁에 질린 채 마리와 아카데미 직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연고 없는 고아를 이용해 생체 병기로 만들려고 한 것 같습니다. 만약 이 아이들 중에 마왕의 힘을 1퍼센트라도 발현하는 아이가 나타난다면, 그것만으로도 최강의 생체 병기가 될 테니까요. 이런 독재국가에서는 핵보다도 더 싸게 핵보다 더 위험한 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방법이겠죠.”
“만약 1퍼센트를 넘어 10퍼센트, 혹은 20퍼센트를 발현한다면…….”
“그렇다면 인류는 새로운 마왕을 맞이하게 될 겁니다.”
마리는 물었다.
“직원분은 이 아이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옳다고 보세요.”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인류는 또 다른 마왕과 맞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라.”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을 싫어하는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의 얼굴을 떠올린 마리는 싱긋 웃으며 무릎을 굽혔다.
그렇게 아이와 시선을 맞추게 된 마리.
“얘들아, 너희 중앙 초인 아카데미에 입학해 볼래?”
“마리 회장님!”
직원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마리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중앙 초인 아카데미, 들어 본 적 있어?”
소년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못 들어가요.”
“왜?”
“이미 우리는, 어둠에 물들고 말았으니까.”
그리고 소년은 담담하게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말했다. 자신이 말을 듣지 않자 눈앞에서 대신 죽어 버린 여동생, 아무리 울어도 멈추지 않던 칼날들, 누구도 구해 주지 않는 고독 속에서 손을 꼼지락대던 차가운 방을.
“이 어둠에서 절대 못 벗어나요… 절대로…….”
“그래,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어둠을 알았다면 이제는 빛을 알 시간이 아닐까?”
“빛이요?”
“응, 우리 아카데미에는 빛을 가르쳐 주는 일타 강사님이 있거든.”
이 세상은 어둠이 지배하고 있다. 마리는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세상에서도 사람은 사람을 믿었다. 사람은 사람을 달래 주었다.
“누군데, 누군데 우리를 구해 줄 수 있다는 거예요?”
“우리 아카데미에는.”
마리는 그 사실을 믿었다.
그렇기에 소녀는 소년을 안아 주었다.
“우리 아카데미에는 천사가 살고 있어.”
– 완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