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Art Student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3)
두 번 사는 미대생 13화(13/93)
*
은밀하게 한국대 팀의 뒤를 따라가기를 잠시.
그들은 상자가 실린 카트를 밀고 가기를 한참, 행사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밑층으로 내려갔다.
‘어디까지 가나 보자.’
나도 서둘러 비상문을 열고 들어가 계단을 타고 따라갔다.
띵.
드르륵.
한국대 팀은 지하 3층 주차장에서 내렸다.
이곳은, 행사장 건물 내에서 가장 인적이 드문 공간이었다.
‘왜 여기로 온 거지?’
게다가 은근슬쩍 CCTV의 위치를 확인하기까지.
‘수상한 짓만 골라서 하네.’
기둥 뒤에 숨어 그들을 지켜보는데, 한국대 팀은 곧 누군가와 통화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네. 지금 지하 3층이에요. 죄송하지만 빨리 와 주세요. 급해요.”
그렇게 통화하기를 잠시.
숨어서 지켜보고 있으려니, 곧 어느 중년 남성이 걸어왔다.
‘누구지?’
어딘가 익숙한 얼굴의 남자였다.
나는 곧 깨달았다.
‘석도욱 교수?’
한국대의 산업 디자인과 교수였다.
한예원에 이종이 교수가 있다면, 한국대에는 석도욱 교수가 있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여러 분야를 섭렵한 인재로 유명했다.
‘저 양반이 여기에는 왜?’
의아한 표정으로 보고 있는데, 한국대 팀원들은 그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카트째로 내밀었다.
“최대한 빨리 부탁드리겠습니다.”
“후우. 이래서 매뉴얼 좀 제대로 숙지하라고 말했는데. 내가 너희들이 부르면 달려오는 사람이야?”
“죄송합니다.”
“알아서 잘하자.”
“예.”
“됐다. 얼른 일이나 보자.”
석도욱 교수는 혀를 차기를 잠시.
카트에 실린 박스를 뜯더니, 안에 실린 모형을 끄집어내 내부를 살피기 시작했다.
나는 곧 깨달았다.
‘고장을 봐 주는 건가?’
이상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상한 상황이었다.
어떤 점이 이상한가 하면, 굳이 남에게 고쳐달라고 하는 점이 그러했다.
만약 저 모형이 한국대 팀 자기들의 손으로 만든 작품이라면, 자기 손으로 고치면 그만 아니겠는가.
설령 시간이 급하다고 해도 그러했다.
아니, 시간이 급하다면 더더욱 그들이 고쳐야만 했다.
왜냐.
자못 기계란 개인 제작품일수록 구조 파악에 긴 시간이 걸리는 법이니까.
‘특히 공장 기계처럼 정밀한 구조라면, 내부 증상 진단을 못 해서 공장 전체가 몇 주를 멈추기도 하지.’
고로, 대다수의 경우에는 제작자 본인이 고치는 게 제일 빨랐다.
그런 것을 왜 굳이 남의 손을 빌리는가.
‘심지어 저렇게 굽신거려가면서. 그것도 보는 사람이 없는 주차장까지 와서.’
이쯤에서 내 심증이 굳어졌다.
‘석도욱 교수가 제작에 참여했다. 그것도 작품의 핵심 파트에.’
확실해 보였다.
그렇다면 이번 공모전의 규정 위반이었다.
아마 이 실태가 알려지거든, 한국대는 참가 자격을 박탈당하리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장 따지긴 힘들었다.
아니라고 발뺌하면 그만이니.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나는 모습을 드러내는 대신, 핸드폰을 꺼냈다.
‘증거 동영상을 찍어가자.’
다행히도 지금은 2000년대 초반.
내가 쓰는 핸드폰에는 아직 카메라 촬영음이 없었다.
그렇게 기둥 뒤에 몸을 숨긴 채로 정신없이 촬영했다.
“아. 여기가 문제였네. 구동부에 이물질이 끼었다.”
“어디에요?”
“여기.”
“아!”
“매뉴얼만 봐도 너희들이 알아서 고쳤어야 하는 거야. 정신 똑바로 못 차려?”
“죄송합니다.”
그리고 한국대 팀이 문제를 해결했는지 한숨을 돌릴 무렵, 나는 재빨리 주차장을 빠져 나왔다.
이제, 타이밍을 보는 일만 남았다.
*
전시장으로 돌아온 나를 두고 주지훈 선배가 의아한 눈길로 바라봤다.
“어딜 그렇게 오랫동안 다녀왔어?”
“화장실이요.”
“그러게 국밥 좀 적당히 먹으라니까. 자취생이라고 채소는 안 먹고 매일 탄수화물만 섭취하면 몸이······.”
“농담이에요.”
잔소리가 길어질 것 같아 끊었다.
“사실, 한국대 팀을 따라갔다가 왔어요.”
“걔들을? 왜?”
주지훈 선배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나는 핸드폰을 꺼냈다.
“엄청난 걸 발견했어요. 이거 보세요.”
주차장에서 찍은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구형 핸드폰 카메라다 보니 어두운 주차장이 제대로 찍히지는 않았지만, 누군가가 한국대 팀의 모형을 뜯어고치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볼 수 있었다.
또 대화 내용을 통해 석도욱 교수가 제작에 참여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뭐야? 이 사람 누구야?”
“한국대 석도욱 교수예요.”
“뭐?”
주지훈 선배가 눈을 크게 떴다.
“교수가 지금 여기에 있다고?”
“네.”
“이런 미친.”
“맞습니다. 미친 것 같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쯤에 한설 선배도 분노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어쩐지 작품이 좋더라니, 뒤에서 이런 꼼수를 저지르고 있었어? 대상 하나 때문에? 정신 나갔나?”
“그러니까요. 정신 나갔나 봅니다.”
“지금 바로 신고하자.”
당장이라도 터뜨리려는 듯한 한설 선배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조금만 기다려 봐요.”
“왜?”
나는 그녀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일이든 가장 좋은 타이밍이 있는 법이니까요.”
반성합니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에게나 한 번쯤 찾아오는 순간이 있다.
내 손 안에 폭탄이 들어온다.
그것도 보기 싫은 상사를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폭탄이.
그런 순간이 찾아왔을 때, 직장인들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어떻게 써먹지?’
폭탄을 포기하는 사람은 우선 미뤄두고, 어떻게든 터뜨리려는 사람들은 크게 세 부류로 갈라진다.
먼저 하수.
그들은 폭탄을 빨리 터뜨리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한다.
위험요소가 자기 손안에 있다는 것 자체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수는 어떨까.
‘자신에게 돌아올 이득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터뜨린다.’
왜 최고 이득인데 중수인가를 묻는다면, 하이리턴 하이리스크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건이든 수혜자를 찾다 보면 누가 폭탄을 터뜨렸는지 유추할 수 있기 마련.
그럼 보복을 당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가 중수와 하수.
고수는 달랐다.
‘모든 일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아무도 모르는 순간 은밀하게 터뜨린다.’
사회생활은 야생과도 같다.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는 내 안전이 우선이었다.
전생의 나는 하수조차도 못 됐다.
폭탄이 손에 들어와도 외면하기만 했으니.
이번 생에는, 나도 고수가 되어 볼 생각이었다.
‘어차피 지금 터뜨려 봤자 큰 의미는 없다.’
공모전 주최 측은 일을 키우고 싶어 하지 않을 터.
한국대 팀 문제는 당장 고발한들 조용하게 처리될 공산이 컸다.
더욱이 한국대는 예술계 전반에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여차하면 내가 입막음 당할 수도 있겠지.’
아닐 수도 있겠지만, 이런 문제일수록 최대한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게 좋았다.
주최 측도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나는 그들도 어찌할 수 없는 순간이 왔을 때 터뜨릴 생각이었다.
그게 내 계획이었다.
“어때요?”
“······ 으음.”
내 장황한 설명에 주지훈 선배는 가만히 있다가 말했다.
“사탄이 통곡하겠네.”
“큼.”
나도 모르게 헛기침이 나왔다.
하지만 할 말은 있었다.
“그래도 할 수 있을 때 해야죠. 뒤에서 이런 짓이 있는 줄도 모르고 당했더라면, 우린 그냥 바보 되는 거였어요.”
“그렇지. 맞는 말이야.”
“게다가 저희만 피해 보는 게 아니잖아요. 다른 학교가 모조리 속을 뻔했는데, 생각해 보면 이 정도는 해 줘야 수지가 맞지 않겠어요?”
“음. 그것도 맞는 말이야.”
주지훈 선배는 내 말에 구구절절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처음부터 반박할 생각은 없었던 것 같았다.
다음은 한설 선배의 차례였다.
“누나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
그녀는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있다가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잘 모르겠어.”
“······.”
“지금까지 속았다는 걸 생각하면 억울해 죽겠고, 걔들 신난 꼴도 보기 싫어. 지금 당장 가서 한 대 때려주고 싶어.”
단순히 짜증이 난 수준을 넘어 분노한 눈치였다.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이번 작품에 가장 큰 애착을 품고 있었다.
주지훈 선배와 내가 사업가에 가깝다면, 그녀는 예술가에 가깝기 때문이었다.
저런 놈들에게 잠깐이라도 밀려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크나큰 치욕이리라.
“누나. 하지만.”
내가 추가로 설득하려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재하가 하자는 대로 할게.”
“네?”
한설이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네가 용기를 내줘서 이런 기회가 생긴 거잖아.”
“······.”
“그러니까, 그 동영상을 어떻게 쓸지도 너한테 맡길게.”
아무래도 그녀 나름대로 방안을 찾아낸 듯했다.
내가 알아서 잘할 거라고 믿는 것이었다.
나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그래요. 당분간은 참아 봐요.”
조금만 기다릴지어다.
돌아올 상은 언제가 됐건 제자리를 찾아올 것이니.
*
짧은 시간이 흘렀다.
한국대 팀은 전시장에 복귀하더니, 곧 전시를 재개했다.
“구동부에 잠시 고장이 있었습니다.”
금방 다시 인파 싹쓸이를 시작했다.
전시품이 현장에서 문제가 터진 것치고는 관대한 광경.
이게 기업 전시회였다면 신뢰성에 문제가 생기겠지만, 대학생이라면 아무래도 어리다고 봐 주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에게는 호재였다.
잠깐이나마 우리 팀으로 왔던 방문객들도 저쪽으로 몰려갔다.
“불타오르네.”
“이야. 아주 대단해.”
한설과 주지훈이 중얼거렸다.
유독 저쪽만 화끈화끈했다.
기다렸던 사람이 많아진 만큼 주목도도 더 커졌다.
‘이럴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조금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네.’
하지만, 괜찮다.
대책 없이 밀리기만 한다면 모를까, 우리에게는 계획이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도 기승전결의 한 단계에 불과했다.
‘그리고, 상황이 마냥 나쁜 것도 아니야.’
우리 팀의 주목도는 여전히 일정 이상 유지되었다.
한국대 팀을 제외하고는 회장 내 전체에서 가장 잘 나가는 수준.
특히나 기업 고객에게 평가가 괜찮았다.
내 눈에는 그들이 보였다.
왜냐.
질문하는 문맥이 달랐기 때문.
“어떤 소재를 쓰셨죠?”
“원목 위주로 활용했습니다.”
일반 방문객의 질문이 대게 감상적인 측면에 머무른다면, 기업 방문객들은 이 디자인의 실제 활용성에 집중했다.
“제작비가 많이 들겠네요. 실제 사이즈로 설치한다고 가정했을 때도 같은 소재로 만드실 생각이신가요?”
“그때는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대의 소프트우드가 어떨까 싶습니다. 합판으로 조립식 설계를 한다면 설치에 필요한 시간도 크게 단축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재질을 바꾸면 미관상 떨어지지 않을까요?”
“괜찮습니다.”
주지훈이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 작품의 진짜 가치는, 겉으로 보이는 멋이 아닌 그 기능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작품에 대해서 완벽하게 파악한 말이었다.
내가 세뇌에 가깝게 교육했다.
“······ 오.”
방문객들도 그의 대답에 크게 만족하는 눈치.
“괜찮으시다면 나중에라도 따로 연락을 나눠보고 싶습니다.”
슬쩍 명함을 주고 가는 방문객도 있었다.
아니, 많았다.
수집한 명함만 벌써 10개를 넘겼다.
현역 업계인들의 압도적인 호응.
이게 우리 팀과 다른 팀의 차이였다.
‘이대로 간다면 우수상은 확실하겠네.’
그렇게, 전시장에서의 1부 시간이 끝났다.
어느덧 오후와 저녁의 경계 시간.
2부가 시작하기 전까지 30분의 짧은 휴식이 주어졌다.
다른 전시전이었다면 이런 휴식시간은 없겠지만, 대학생 전시전이니만큼 배려한 모양이었다.
“아. 힘들었다.”
“이렇게 입을 많이 놀린 건 처음이다.”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아.”
여기저기서 각 대학의 학생들이 지친 기색으로 푸념을 털어놓았다.
“뭐 이렇게 질문이 날카롭냐.”
“중간에 모형 무너지는 줄 알고 계속 긴장했다.”
우리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부분이었다지만, 산책이 간절한 건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잠시 전시장을 빠져 나와 인근 공원을 걸으며 수다를 떨었다.
“다들 고생이 많았어.”
“다가 아니죠.”
한설이 주지훈을 째려보며 말했다.
“재하가 제일 고생했죠. 디자인부터 소재까지 어지간한 건 재하가 다 했잖아요. 사실상 혼자서 다 한 거 아니에요?”
“그런가?”
“네. 오빠가 밥만 축내는 동안에요.”
“야! 나도 내 할 일 했어!”
가뜩이나 짧은 휴식시간을 왁자지껄 떠들며 보내려니 이 순간이 더 짧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렇게 휴식을 즐기는 찰나였다.
‘어?’
조금 떨어진 공원 벤치에서 익숙한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쟤네들은?’
한국대 팀이었다.
그들은 1부 전시 내내 관객을 유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불편한 기색이 완연했다.
“아까 그 고장만 아니었어도······.”
“누가 장난질한 거 아니야?”
난 이들이 불안해하는 이유를 알았다.
‘대상을 못 탈까 봐 불안하겠지.’
교수의 손을 빌렸으니만큼 반드시 대상을 타야만 했다.
혹여 그러지 못하거든, 그 무능함에 대한 책임은 완전히 그들에게 돌아갈 테니.
후련한 패배도 노력해본 사람의 권리다.
아마 저들은 이번 공모전에서 승리하더라도, 기분은 그리 좋지 못하리라.
켕기는 마음을 평생 가지고 가겠지.
‘뭐, 그래도 그런 사람 중에 성공한 사람이 많지만.’
찝찝한 구석이 많은 사람이 위로 올라가는 상황을 몇 번이고 겪었다.
당장 나만 해도 그랬다.
회사 사장의 아들이 저지른 잘못을 내가 뒤집어썼다.
나는 한 방에 몰락했지만, 그는 앞으로도 잘만 살아가리라.
요컨대, 여벌 목숨을 가진 것과 같았다.
‘그래도 이번에는 조금 다를 거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저들을 슬쩍 바라보고 있는 찰나였다.
“아까 한예원 팀 기억나냐?”
우리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오?”
나와 주지훈 선배, 그리고 한설 선배는 하던 대화를 멈추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다.
그들은 우리가 대화를 엿듣고 있는 것도 모르고 말을 이었다.
“아까 거기서 누가 나 계속 쳐다보던데.”
“누구?”
“키 작은 남자애.”
안 작은데.
평균인데.
지훈이 형이 너무 큰 건데.
아무튼, 그 말을 들은 한국대 팀원은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
“아. 나 걔 누군지 알아.”
“누군데?”
“한예원 시디 1학년. 이재하. 과에서 나름 유명한가 보던데. 저쪽 다니는 친구가 알려줬어.”
“허.”
가만히 있던 학생이 어처구니없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1학년이 뭘 해야 벌써 유명해지냐.”
“교수들 사이에서 잘 보였나 보지. 왜. 신입생 때부터 아부 떠는 애들 많잖아. 딸랑딸랑~.”
그들이 킥킥 웃었다.
“한예원도 사람이 없나 보다. 1학년을 공모전에 다 데리고 오고.”
“그러게? 생각이 있었다면 고학년을 데려왔을 텐데.”
“떨어지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지.”
“한예원도 한물갔네.”
“나머지 둘만 불쌍하다. 사실상 애 하나 돌보는 거 아냐?”
점차 비아냥이 거세졌다.
나는 저들이 이러는 이유를 알았다.
자기들의 불안감을 바깥으로 돌려 해소하려는 거겠지.
한마디 할까 하다가, 그냥 참았다.
‘그래, 지금은 웃어라.’
아직은 때가 아니다.
어차피 저들의 몰락은 정해져 있다. 굳이 앞장서서 문제를 일으킬 필요는 없다.
그런 생각에 참고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참을 생각이 없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바로 옆에.
“선 넘네.”
한설 선배였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다짜고짜 한국대 팀으로 걸어갔다.
‘갑자기?’
오히려 내가 놀란 사이에 그녀가 말했다.
“말하는 거 봐라.”
“······!”
“너희들이 재하에 대해서 뭘 알아?”
한국대 팀이 움찔했다.
설마 갑자기 당사자들이 등장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걸까.
그들은 잠시 우물쭈물하다가 말했다.
“······ 시비 걸지 마. 우리가 무슨 말을 했다고.”
“발뺌하지 마. 다 들었거든? 한예원에 사람이 없느니. 재하가 1학년이라 뭐가 어떻다니.”
“아니, 1학년 맞잖아.”
“그래서 뭐? 재하 진짜 일 잘하거든?”
한설 선배의 쏟아지는 반박에 한국대 팀원들이 다시 움찔했다가 말했다.
“애초에 전디전에는 고학년을 데리고 오는 게 정상 아니야?”
“아 그래?”
한설 선배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피식 웃더니 말했다.
“그럼 우리가 교수님이라도 데리고 왔어야 했나?”
그 순간이었다.
“······!”
한국대 팀원들이 눈에 보일 만큼 덜컥 굳었다.
한설의 말에 반박할 말을 못 찾은 걸까.
아니면 찔리는 곳이 있어서 섣불리 말을 못 꺼내는 걸까.
우두커니 가만히 있는데, 한설은 차갑게 식은 표정으로 말했다.
“재하가 없었으면 우리 조는 아무것도 못 했어. 입 함부로 놀리지 마. 얼굴도 못생긴 것들이.”
한설은 그대로 우리에게로 돌아왔다.
주지훈은 시퍼렇게 바랜 얼굴로 한설에게 속닥였다.
“설아! 왜 그랬어. 자극했다가 문제 터지면 어쩌려고.”
“화낼 거면 내보라고 해요. 자기들이 뭘 안다고 저딴 말을 하고 있어. 짜증 나게. 쪽팔린 줄 알아야지.”
한설은 이번에는 날 돌아보면서 말했다.
“이재하.”
“넵.”
화가 난 듯한 그녀의 말투에 나도 모르게 솜털이 쭈뼛 섰다.
“너는 잘못한 거 하나도 없으니까 기죽지 마. 쟤네들이 무슨 말을 하건 네가 참아야 할 필요는 없어. 알았지?”
“그러다가 문제 터지면요.”
“문제 터지면 뭐가 어쩌긴.”
그녀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나나 지훈이 오빠가 수습해야지.”
“나도?”
“오빠는 조용히 해.”
“······.”
“아무튼, 재하야. 나이 어려서 좋은 게 뭐야. 문제 터뜨려도 욕은 덜 먹는 거잖아.”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문제는 지금 자기가 터뜨렸으면서.’
그렇다고 기분이 나쁜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나를 위해 터뜨렸던 거 아닌가.
한설은 머릿속에 생각은 없지만, 후배를 생각할 생각은 있는 사람이었다.
‘이번 생에는 날 위해서 화내주는 사람이 다 있네.’
전생에는 한 명이라도 있었을까.
글쎄, 모르겠다.
이유 모를 감정에 내 얼굴로 웃음이 떠올랐다.
“알았어요. 다음부터 화낼 때는 화낼게요.”
“반성해.”
“반성합니다. 그게 반성이니까요.”
그렇게.
첫 공모전은 평화롭게 끝났다.
*
내가 폭탄을 터뜨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DNA(수정)
한예원 회의실.
중앙 테이블을 둘러싸고 일곱 사람이 앉았다.
어딘가 익숙한 구성이었다.
그렇다.
지난 공모전 참가 인원을 두고 회의를 나눴던 교수들이었다.
그런데, 나름 뜨거웠던 그때와는 달리 오늘의 분위기는 영 어두웠다.
패잔병의 해우소라고 할까.
‘이 순간이 왔군.’
전번과 마찬가지로 사회자 역을 맡은 교수가 입을 열었다.
“공모전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의 말을 듣는 교수들의 얼굴에는 불편한 기색이 가득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한예원은 우수상입니다. 대상은 한국대에 돌아갔습니다.”
한국대에 밀렸기 때문.
조금 전 결과가 발표됨과 동시에 온갖 기사가 올라왔다.
그 기사들에는 언제나 한 작품의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한국대의 작품이었다.
‘저 자리에 우리 작품이 있어야 했는데.’
기분이 좋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한예원의 작품도 나름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2등.
올림픽에서 한국팀이 2위를 차지하더라도, 일본팀이 1위라면 찝찝한 법이었다.
“이로써 한예원이 2년 연속으로 대상을 빼앗기게 됐군요. 유감입니다.”
사회자 교수는 답답한 속을 애써 억누르며 말했다.
“이번 공모전에서 우리 한예원이 밀린 이유를 생각해 봤는데, 혹시 이 교수님께서는 의견 없으신지요.”
“음.”
이종이 교수는 빙긋 웃고는 말했다.
“한국대생들 작품이 뛰어났나 봅니다.”
“······ 그게 아닙니다.”
사회자 교수는 당장이라도 터지려는 심정을 애써 참으며 말했다.
“제가 한번 말해보겠습니다. 신입생을 무리하게 팀에 넣었던 게 원인 아니었을까요? 신입생을 넣었는데도 우수상입니다. 그렇다면, 충분히 준비된 고학년생을 넣었더라면 어땠을까요?”
질책이 쏟아졌다.
평소의 그였더라면 이렇게까지는 말을 안 했으리라.
동료 교수의 체면도 중요한 문제니까.
하지만, 이번 사태는 그만큼 무거웠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종이 교수는 평소 이름값에 힘입어 몇 가지 특권을 누리고는 했는데, 이번 기회에 책임을 확실히 해 둘 필요가 있었다.
‘언제까지고 눈치만 볼 수는 없지.’
그런 의도를 내비치는 사회자 교수가 마음에 안 들었던 걸까, 강노아 교수가 입을 열었다.
“애들이 그럴 수도 있지요. 실패하면서 배우는 거지. 계속 성공만 할 수는 없잖아요? 사실 우수상도 잘한 거 아닙니까.”
그렇다.
공모전이라는 게 원래 학생들의 실력 증진 차원의 행사였다.
하지만, 이번 상황이 특수하기는 했다.
“강 교수님도 이번 일에 관해서는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신입생을 추천하셨던 건 교수님도 마찬가지 아니었습니까?”
“······ 언제는 서지원이를 추천하려고 하셨으면서.”
“예?”
“아무것도 아닙니다.”
대충 밑밥은 깔았다.
사회자 교수는 슬슬 본론을 꺼낼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다음 회의부터는 두 분 교수님도 다수결에 따라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내년에도 또다시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음.”
이종이 교수는 구체적으로 대답하지 않고 싱긋 웃기만 했다.
그렇게 일단락이 나는 건가 싶은 찰나였다.
[이렇게 멋진 붉은 하늘 위로~]벨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서 들리는가 했더니, 사회자 교수의 양복 안주머니였다.
“실례하겠습니다.”
그는 자리에 앉은 그대로 풀더폰을 펼치고는 말했다.
“어. 박 교수. 지금은 회의 중이니까 다음에 다시······.”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뭐?”
그의 눈이 크게 뜨였다.
수화기 너머에서 무슨 말을 들은 걸까.
사회자 교수는 멍하니 입을 벌린 채 듣기만 하다가,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어. 회의가 끝나고 다시 연락하지.”
전화를 끊고 헛기침하며 호흡을 가다듬고 있으려니, 강노아 교수가 추궁했다.
“무슨 일이죠?”
사회자 교수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면서 말했다.
“한국대가, 이번 공모전에서 대작을 출품했다고 합니다.”
“예?”
그 말이 폭탄이 되었다.
순식간에 회의실이 시끌벅적해졌다.
“대작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 작품이 학생들이 만든 게 아니었단 말씀이신가요?”
“설마 그럴 리가.”
“잠시만요. 제 말이 아직 안 끝났습니다.”
사회자 교수가 설명을 보충했다.
“지금 막 난리가 났는데, 한국대 석도욱 교수가 공모전 작품 제작에 참여했다는 의혹이 지금 인터넷에 다발적으로 올라왔다고 합니다.”
“그럼······.”
한 교수가 희망찬 목소리로 물었다.
“수상 결과가 뒤집힐 수도 있다는 건가요?”
모두가 바라는 그 질문이었다.
이 질문에 사회자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확실히 모릅니다. 증거 사진이 몇 장 올라왔을 뿐입니다.”
“어떤 사진이었죠?”
“행사장의 지하 주차장에서 석도욱 교수가 학생들과 함께 작품을 만지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
아직 증거가 모자라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어쩐지 이상했습니다.”
회의실의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저희가 우리 학생들을 오해했습니다.”
“제작자가 석도욱 교수라면 어쩔 수 없지요.”
“오히려 학부생이 교수와도 견주었다며 칭찬해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경쟁자의 비리가 발각됐다.
잘 풀리면 한예원에게 대상이 돌아올 수도 있었다.
설령 그렇지 못하더라도 괜찮았다.
한예원이 한국대보다 우위에 서는 게 진짜 중요한 것이지, 반드시 1위를 차지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래.
월드컵에서 한국팀이 예선에서 탈락하더라도 일본팀만 꺾으면 되는 것과도 같은 원리였다.
그렇게 회의실이 떠들썩해졌을 무렵이었다.
“음.”
이종이 교수가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 저녁은 교수님께서 사시는 걸로 알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