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Art Student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5)
두 번 사는 미대생 25화(25/93)
*
전시회를 열기 전날.
나는 규태와 함께 짐을 챙겨서 그로브 170 별관에 방문했다.
우리를 본 심하윤 대표가 살짝 놀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게 다 뭐예요?”
“이번에 전시할 작품들이요.”
“······.”
내 대답에 심하윤 대표는 말없이 고민하는 듯하다가 내게 물었다.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 설마 아직 완성 못 하신 건가요?”
그렇다.
나는 전시품을 미완성 상태로 가지고 왔다.
쓰레기가 한가득 담긴 비닐봉지와 음료 캔, 풍선, 종이쪼가리나 인조 풀과 천이나 테이프 등등.
겉보기에는 쓰레기통에서 집어 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물건들의 향연이었다.
“작가님.”
심하윤 대표가 진지하게 걱정이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
“전시 기한을 못 맞출 것 같으면 차라리 말씀을 주시지 그러셨어요. 그랬더라면 제가 어떻게든 일정을 재조정했을 거예요.”
“그런 거 아니에요.”
나는 고개를 저어 부인하고는 말했다.
“오늘 하루면 충분해서 그래요.”
“하지만 지금.”
심하윤 대표는 뭐라고 말하려다가, 내게서 뭔가를 느꼈는지 말을 멈췄다.
“······ 알았어요. 작가님이 의도한 바가 있으리라고 믿을게요.”
“감사합니다.”
“대신, 내일 아침부터 전시가 시작이니까 그때까지는 끝내주셔야 해요.”
“그 정도면 충분해요. 믿어 주세요.”
나는 확신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심하윤 대표는 곧 일이 있는지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내 옆에서 짐을 풀고 있던 규태가 놀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분이 여기 대표님이야?”
“그러하다.”
“······ 오우.”
규태가 놀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되게 젊어 보이시는데 저 나이에 이만한 갤러리 주인이면. 와. 돈 진짜 많으신가 보다.”
놀라는 포인트가 조금 이상하다.
아무튼, 규태는 내가 가지고 온 풍선에 바람을 불어 넣기 시작했다.
땀을 뻘뻘 흘려가며.
“아, 현기증 난다. 나 이러다 죽겠다.”
“끝나고 밥 사줄게.”
“고기.”
“고기 좋지.”
“돼지고기 말고 소고기.”
“그건 너 하는 거 봐서.”
한편, 나도 할 일이 있었다.
종이들을 조금씩 구겨 형태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구긴 종이들을 투명 실과 테이프를 이용해 바닥에 붙이고, 때때로는 규태가 불어놓은 풍선 위에 붙였다.
이 둘만이 아니었다.
가져온 물건들 태반을 투명 실와 테이프로 얼기설기 붙였다.
그 결과.
순식간에 기막힌 쓰레기 더미 하나가 완성됐다.
“이야. 장관이네.”
규태가 큭큭 웃었다.
술 파티를 벌인 다음 날 바닥 한구석에 쌓여 있을 것만 같은 비주얼.
물론, 의도한 바였다.
‘이제 대충 완성이다.’
나는 미리 준비해 온 조명을 쓰레기 더미 앞에 설치하고, 이내 전원을 넣었다.
딸깍.
그와 동시에 조명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한쪽 벽면을 가득 채웠다.
규태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다시 봐도 끝내준다.”
“그렇지.”
그림자 풍경화였다.
조명이 쓰레기 더미를 통과하자, 이내 벽에 그림 한 폭이 나타났다.
내가 의도한 나만의 풍경화.
분명 내가 설치한 건 쓰레기더미였는데, 빛이 그 쓰레기더미를 통과하니 풍경화 한 폭이 나타난 것.
‘좋아. 설계가 잘 먹혔다.’
내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쓰레기봉투로 전체적인 상을 구성했다.
반투명한 풍선은 빛의 광량을 조절하며 포근하게 난반사시켰다.
찌그러뜨린 캔과 구긴 종이는 저마다 형태에 맞는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나무와 산맥, 다람쥐까지 온갖 형태의 그림자가 벽에 나타났다.
아름답다.
‘게다가, 아름다운 그림자 풍경화가 더러운 쓰레기더미와 대조되며 모순된 미를 연출하지.’
억지로 해석한다면 자연 보호 홍보물로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성공이다.’
이게 내가 설계한 물건이었다.
쉐도우 아트(Shadow art).
지금부터 10년도 더 지나서야 본격적으로 유행할 설치미술의 최신 트렌드였다.
‘이 시기에는 해외의 일부 예술가들만이 다루고 있을 뿐이지.’
쉐도우 아트의 최고 장점은 스케일이었다.
이런 좁은 방 하나를 채우기에는 차고 넘치는 스케일.
게다가, 어떻게든 빛을 가릴 수 있다면 소재의 한계 자체가 없었다. 쓰레기봉투나 고철이라도 좋은 소재가 될 수 있었다.
완벽하다.
다만 설치 환경의 영향을 심하게 타는 한계가 있어, 미완성 상태로 가지고 온 뒤 재설계할 필요가 있었다.
‘없는 예산으로 있어 보이는 예술품을 만들기에는 이만한 게 없지. 좋아. 할 수 있는 만큼은 했다.’
이 정도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자신하고 있는데, 옆에서 규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 네가 빛 하나는 진짜 잘 다룬다니까.”
“누가 들으면 이상한 말인줄 알겠다.”
“빛 속성 마법사. 이재하.”
“······ 조용히 해라, 박규태.”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과물이 만족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한편, 송태엽이 맡은 방을 슬쩍 훔쳐보니 그쪽에는 아직 작품 한 점 보이지 않았다.
‘내일 아침에 설치하려고 그러나.’
의아해하고 있는데, 규태가 반쯤 바닥에 퍼져서는 중얼거렸다.
“다 됐으면 이제 밥이나 먹으러 가자.”
“밥 좋지. 어떤 거 먹을래?”
“아까 말했잖아. 소고기 들어간 거.”
“음 그럼······.”
나는 고민하는 척하다가 말했다.
“갈비탕이지.”
“······.”
규태는 침묵하더니 다시 물었다.
“······ 진짜로?”
“농담이고, 구이 먹으러 가자. 구이.”
“크. 이 맛에 예술 합니다.”
기뻐하는 규태를 바라보는데, 어쩐지 파블로프의 개를 보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돈이 들어가면 노동력이 나온다.
이대로 몇 년만 지나면 내 충실한 종이 되지 않을까.
‘지금은 맛있게 먹어라. 지금은.’
*
다음 날.
나는 이른 아침부터 그로브 170에 방문했다.
‘잠이 안 오네.’
현직 중견 예술가와 작품으로 겨뤄야 한다는 생각 탓인지, 영 잠이 안 왔다.
그렇게 아직 오픈 전인 전시장으로 올라갔을 때, 나는 한 남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송태엽, 그가 전시장에 도착해 있었다.
아직 내가 올라온 건 모르는 모양.
‘뭐 하려는 거지?’
그는 내 방으로 들어가서 쓰레기더미를 곰곰이 관찰하더니, 이내 자리를 떠나려는 듯 몸을 돌렸다.
그 순간이었다. 나와 눈을 마주쳤다.
“······!”
송태엽이 눈에 보일 만큼 덜컥 떨었다.
“안녕하세요.”
“······.”
그는 내가 먼저 인사를 했음에도 입술을 한 번 깨물고는 말없이 지나쳤다.
그런데, 스쳐 지나가는 그의 옆모습이 조금 이상했다.
퀭한 눈매도 눈매지만, 어딘가 화가 난 표정이라고 할까.
‘가만, 그러고 보니까 이제 전시 다 했을 것 같은데.’
나는 천천히 걸어 송태엽이 배정받은 방에 갔다.
그곳에는 작품 다섯 점이 걸려 있었다.
전부 풍경화.
예전에 봤던 그림들과 유사했다.
속이 탁 트일 만치 광활한 풍경을 소재로 삼은 작품들.
잘 그렸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아무래도 전체적인 완성도가 아쉬웠다.
‘우유니 사막 저건 괜찮지만······ 아무래도 나머지 네 점이 좀 그렇네.’
알프스산맥이 한 점.
네덜란드의 튤립밭이 한 점.
녹차밭이 한 점.
계단식 논이 한 점.
무엇하나 광활하기 짝이 없었다.
쏟아지는 빛과 구름의 조화는 말할 것도 없었다.
송태엽이 그리고자 하는 예술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완성도에서 뒤죽박죽이었다.
‘미완성이라는 게 이걸 말하는 거였구나.’
작품 전체에서 공을 들인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심하게 티가 난다고 할까.
그림을 천천히 뜯어보고 있으려니, 심하윤 대표의 심정까지 이해가 됐다.
‘저만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사람이 이렇게까지 망가졌다면, 안타까울 수밖에 없겠지.’
같은 사람이 그렸다고는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차이가 심하다.
안타깝다.
그렇다고는 하나, 내가 배려할 부분은 아니었다.
슬럼프 극복도 작가 본인의 몫이니.
‘하긴, 슬럼프여도 저만큼 그린다는 게 대단하기도 하네.’
어쩐지 오늘의 전시 결과는 장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한 시간 뒤.
본격적인 전시가 시작되었다.
< 빛과 그림자 > 끝
ⓒ 이한이™
< 운이 좋군 >
관객들을 맞이하기 직전.
나는 전시품을 최종 점검하던 중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번 전시는 진열부터 안내, 조명까지 심하윤 대표가 직접 담당했다는 사실이었다.
“보통 갤러리에는 큐레이터가 따로 있지 않나요?”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심하윤 대표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런 곳도 있어요. 하지만, 전 가능한 한 직접 일하는 걸 선호해요.”
“이유가 따로 있나요?”
“제가 이 일을 시작한 건 미술품이 좋아서였거든요. 시간이 없을 때는 다른 직원분에게 맡기지만, 오늘은 여유가 있으니까 괜찮아요.”
어딘가 인상 깊은 대답이었다.
사업체의 대표를 떠나,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이 일을 사랑하는 모양.
그런데, 그녀는 방에 놓인 한 작품을 보고는 여전히 의문이 섞인 표정을 보였다.
“지금 이 상태가 완성작 맞나요?”
내가 만들어 둔 쓰레기 더미였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쓰레기 더미의 형태를 한 쉐도우 아트.
“이게 작가님이 생각하신 완성품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아, 잠시만요. 이걸 까먹고 있었네. 지금 바로 보여드릴게요.”
나는 급히 방의 불을 끄고는 전등의 스위치를 넣었다.
그러자, 어두워진 벽면으로 풍경화 한 폭이 모습을 드러냈다.
“······ 세상에.”
심하윤 대표가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림자로 작품을 만드셨을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 했네요.”
“예전에 대표님이 송태엽 작가님 작품을 보여주셨잖아요. 그걸 보니까 저도 풍경화를 만들어 보고 싶어서 나름대로 뭔가 해 봤어요.”
내 설명에 심하윤 대표는 멍하니 있다가 중얼거렸다.
“······ 어린 왕자 때도 그랬지만, 작가님은 발상력을 유독 타고나신 것 같아요.”
뭔가 칭찬이 많다.
과찬이다.
듣는 내가 다 부끄럽다.
“음. 이번 전시는 느낌이 좋아요.”
심하윤 대표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그럼 전 건물 오픈하고 금방 다시 올 테니, 작가님도 그때까지 쉬고 계세요.”
그녀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전시장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나는 홀로 남아 내 작품들을 차례차례 둘러봤다.
1학기부터 하나씩 만들었던 작품들.
무엇 하나 내 자식이라고 부를 수 있을 물건들이었다.
나는 속으로 말을 걸듯 중얼거렸다.
‘자, 애들아. 힘내 보자. 힘.’
목표는 매진이다.
*
전시가 시작됐다.
나는 심하윤 대표와 함께 전시장 테이블에 앉아 관객들의 방문을 기다렸다.
그런데.
어째 관객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아니,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게 옳았다.
“생각보다 한산하네요.”
“아직 오전이기도 하고, 작은 전시라서 어쩔 수 없어요. 잊을 만할 때 한두 명씩 오고 그럴 거예요.”
심하윤 대표는 챙겨온 문서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말했다.
“가만히 앉아만 있는 게 영 심심하죠?”
사실, 그녀는 내게 자리를 비우기를 권유했었다.
지루할 텐데 괜찮냐고 물어봤었지.
예의상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진심이었나 보다.
물론, 나는 전혀 심심하지 않았다.
“괜찮아요. 요즘 너무 정신없이 살았었는데, 이런 것도 좋네요.”
저절로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이다.
정 할 일이 없으면 과제라도 하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무엇보다도, 나는 내 눈으로 전시 첫날의 분위기를 익혀 두고 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관객들이 좀 심하게 안 오네.’
오긴 온다.
심하윤 대표의 말 그대로 잊을 만할 때 몇 명씩 들어와서는 둘러보다가 나가는 정도.
“이거 봐. 신기하다. 그림자로 그림을 그렸네.”
“이것도 파는 건가?”
“저기 어린 왕자 그림 예쁘다.”
아무래도 단순 관객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내 작품의 평가는 생각보다 좋았다.
‘이 정도면 기대 이상이지.’
한편, 송태엽 작가의 작품은 생각보다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잘 그렸네.”
“크다. 우리 집에는 걸어둘 곳도 없겠어.”
우유니 사막 그림 외에는 잠깐 훑어보는 데서 그치고는 했다.
한 작품당 10초도 안 보고 지나치는 경우가 잦았다.
‘관객들도 미완성작과 완성작의 차이를 본능적으로 느끼는 걸까.’
그렇게 가만히 지켜보기를 한참.
어느 순간이었다.
저벅저벅.
관객 한 명이 심하윤 대표에게 대뜸 다가와서는 물었다.
“저 죄송한데, 혹시 직원분이신가요?”
“네.”
“혹시 작품 설명을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심하윤 대표는 기다렸다는 듯 밝은 목소리로 관객을 응대했다.
“어떤 작품이 궁금하신가요?”
“저 작품입니다. 첫 번째 자식이라는 제목의 작품.”
관객이 가리킨 건, 내 작품 중에서도 레트로 텔레비전이었다.
첫 번째 자식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설마 팔리는 건가.
심하윤 대표는 내 마음을 대변하듯 경쾌한 목소리로 내 작품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고전 텔레비전의 형태를 통해 70년대의 감성과 향수를 재현한 작품입니다. 단순히 그 시절의 외관을 본뜨는 데 그치지 않고, 작가 본인이 바라본 시대의 한 장면을 재해석해냈다는 점이 본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인데요, 작가님께서는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완전히 초심으로 되돌아가야 했다고 합니다. 그런 고뇌 또한 작품 속에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저게 그런 작품이었나.
잘 생각해 보면 내가 비슷하게 설명을 했던 것 같기는 한데, 남의 입으로 들으려니 왠지 어색하다.
노래방에서 내 노래를 녹음해서 들으면 이런 느낌일까.
그렇게 심하윤 대표의 작품 설명을 듣던 관객이 한순간 물었다.
“음, 작품 이름이 첫 번째 자식인 건 혹시, 작가님의 첫 작품이라서 그런 건가요?”
“네. 신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섬세한 조형과 완숙한 소재 활용이 잘 나타난 작품으로서, 소장하실 경우 향후의 가치 상승을 기대해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좋군요. 혹시 가격은 어떻게 될까요?”
나도 좋다.
가격 이야기까지 나왔다.
어느 정도 구매 의사가 있다는 뜻이리라.
심하윤 대표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작품의 퀄리티와 장기적인 소장 가치를 고려해, 본 작품에는 육십만 원을 책정했습니다.”
육십.
앞서 말했던 대로 백만 원 아래의 가격이었다.
물론, 내 기준에는 썩 만족스러운 가격이었다.
저 가격에 팔리거든, 내가 가져갈 금액은 수수료를 떼고도 오십은 넘는다.
좋다.
당장 팔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손님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삼십에는 안 되겠습니까?”
“······!”
순간적으로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절반에 가까운 가격을 흥정하려 들다니.
동네 재래시장에서도 이런 파격적인 후려치기는 없을 텐데, 실로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정작 심하윤 대표는 태연해 보였다.
‘갤러리에서는 이런 흥정이 보통인가?’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찰나,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 가격은 조금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음······.”
손님은 잠시 팔짱을 끼고 고민하더니 말했다.
“조금 더 생각해 보고 오겠습니다.”
“예. 편안한 관람 되시길 바랍니다.”
심하윤 대표는 다시 자리에 앉고는 읽던 문서를 다시 집어 들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연스러운 모습.
나는 손님이 전시장을 완전히 빠져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제야 작은 목소리로 슬쩍 물었다.
“원래 저렇게까지 가격을 후려치고 그래요?”
“아뇨. 잘 없죠.”
심하윤 대표가 고개를 저었다.
“저렇게까지는 깎는 경우는 흔치 않아요. 보통은 많이 깎아야 30% 정도?”
“그럼 저 사람은 왜 그랬대요?”
“작가님이 신인이셔서 그랬을 거예요.”
심하윤 대표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신인 작가님들 작품은 잘 안 팔려서 무작정 쌓이기만 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 부분을 찔러본 거죠.”
“썩힐 바에는 싼 맛에 넘기라는 거군요.”
“맞아요. 아예 이쪽으로만 노리는 컬렉터들도 있어요. 일종의 구매 전략인 셈이에요.”
엄청난 진상인 줄 알았더니마는, 생각보다 흔한 일인 모양.
나는 살짝 허탈한 목소리로 물었다.
“미술품이라서 그런가, 고상한 고객이 많을 줄 알았는데 예상외네요.”
“몰랐죠? 생각보다 별로 안 고상해요.”
내 말에 심하윤 대표가 피식 웃더니 말했다.
“저도 이 업계에 그리 오래 머문 건 아니지만, 작품을 돈으로 보는 사람도 엄청 많은 게 이 업계 같아요.”
“작품을 돈으로 본다고요?”
“글쎄, 오죽하면 미술품 이름을 가격으로 부르는 사람도 봤다니까요. 이건 삼십짜리 그림, 저건 이백짜리 그림. 이러면서요. 가끔은 제 학력을 묻는 사람도 가끔 있는데, 그걸로 또 빌미 잡아서 싸게 달라고······.”
그렇게 깨알 같은 경험담이 시작되려는 찰나였다.
부우웅.
심하윤 대표의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그녀는 깜짝 놀라더니, 급히 핸드폰을 집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작가님, 죄송하지만 잠시만 자리 좀 봐 주시겠어요? 지금 막 거래처에서 연락이 와서······.”
“전 괜찮으니까 천천히 일 보세요.”
“감사합니다. 혹시 다른 고객분이 큐레이터를 찾거든,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말씀해 주세요.”
심하윤 대표는 그렇게 자리를 떠났다.
나는 한층 심심해진 채로 책상 앞에 앉아서 기다리는데. 그녀가 생각보다 빨리 돌아오지는 않았다.
기다리기만 거의 이십 분.
‘생각보다 통화가 길어지네.’
그저 하염없이 기다리는 와중이었다.
‘어?’
중년쯤 되는 관객 한 명이 갤러리 안으로 들어왔다.
아니, 관객이라기보다는 클라이언트였다.
그것도 익숙한 클라이언트.
‘저 사람이 여긴 왜 왔어?’
오경진 회장이었다.
*
“혹시 해서 왔는데, 재하 씨 전시가 맞았군요.”
그가 즐거운 듯한 목소리로 웃었다.
그렇다.
오경진 회장이 갑작스럽게 갤러리에 방문했다.
나는 살짝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지나가다가 우연히 봤습니다.”
그래.
지나가다가 우연히 봤을 수 있지.
옛날 한국 동화책에 자주 등장하는 ‘지나가는 선비’처럼.
다만, 그게 어디 미술 업체들이 똘똘 뭉친 인사동이라면 모를까 여기는 혜화역 대학로였다.
알고서 찾아온 게 아닌 이상 어지간하면 지나칠 일이 없는 곳.
“원래 미술에 관심이 많으셨나 봐요?”
내가 의아한 듯 묻자 오경진 회장은 흐뭇하게 웃더니 말했다.
“농담입니다. 작가님 이름을 미리 보고 왔습니다.”
“저 때문에 찾아오셨다고요?”
“네. 그런 이유도 있지만, 사실 요즘 열리는 전시란 전시는 전부 방문하고 있었습니다.”
전부라.
이건 또 의외의 면모였다.
“원래 전시를 좋아하셨나 보네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만, 저희 프랜차이즈가 갤러리 카페를 표방하고 있으니, 저도 기본적인 안목은 갖추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아.
그럼 이해가 간다.
남에게 전부 맡기기보다는 자기 발로 직접 뛰겠다는 말.
미술 사업이라는 게 작품에 대한 깊은 안목이 필요하다는 점을 생각해 보거든, 경영자로서 모범적인 자세라고 볼 수 있었다.
‘심하윤 대표님도 그렇고, 오경진 회장님도 그렇고 발로 뛰는 걸 좋아하시네.’
내가 겪은 디자인 업계는 한탕 먹고 빠질 생각만 하는 사람들이 그득했는데, 그에 비하면 이들은 성인(聖人)으로 보일 정도였다.
오경진 회장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설마 재하 씨가 전시까지 하실 줄은 몰랐군요.”
“운이 좋았어요.”
“음.”
내 대답에 오경진 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신은 스스로 돕는 사람을 돕는다고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재하 씨가 준비된 사람이었기에 운을 붙잡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
“제 아들이 곧 스물인데, 재하 씨의 반이라도 했으면 좋겠군요.”
역시 이 사람, 칭찬을 좋아한다.
나이가 좀 있는 중년 특유의 칭찬법이라고 할까. 듣는 사람 민망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버린다.
친구 아들내미한테 넌 미래의 대통령감이라고 말하는 그런 느낌.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천천히 구경하세요.”
아무튼, 오경진 회장은 곧 전시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안목을 기르겠다는 말이 사실이었던 건지, 그는 작품 하나를 보더라도 좋은 술을 음미하듯 매우 꼼꼼하게 살폈다.
‘뭐 하나 사가실 수도 있겠네.’
그렇게 생각하는 찰나였다.
그의 시선이 한 작품에 고정되더니, 나를 보며 물었다.
“재하 씨.”
“네.”
“혹시 이 조각, 헤븐즈 도어 본점에 있었던 작품이 맞습니까?”
레트로 텔레비전, 그러니까 [첫 번째 자식]을 말하는 것이었다.
오경진 회장은 아직 기억하는 듯했다.
“아, 네. 그때 그 작품 맞아요.”
“아예 팔려고 내놓으신 거군요.”
“작품을 전체적으로 교체하는 김에 겸사겸사 제 것도 내려놨어요. 가게에 계속 두자니 조금 그래서요.”
내 설명에 오경진 회장이 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그럼 이번에는 제가 운이 좋았군요.”
“예?”
운이 좋다니.
무슨 이야기일까 하는데, 그가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이 작품을 가지고 싶었던 참이었는데, 잘 됐습니다.”
< 운이 좋군 > 끝
ⓒ 이한이™
< 쌍무적 계약 관계 >
오경진 회장이 말했다.
“이 작품을 구매하고 싶습니다.”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득해졌다.
혹시 사 갈 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즉시 말이 나오다니.
나는 급히 의식을 다잡으며 말했다.
“지금은 담당자분이 자리를 비우셔서 그런데, 잠시만 기다리실 수 있으신가요?”
“오래 걸릴까요?”
“밖에서 통화하고 계셔요.”
“그렇다면 잠시 저희끼리 얘기라도 나누고 말씀을 드려도 좋겠군요.”
오경진 회장이 흐뭇하게 웃었다.
어쩐지 불길한 웃음.
그가 인자한 목소리로 물었다.
“얼마에 파시고 싶으십니까.”
다시 한번 정신이 아찔해졌다.
이 사람, 비상식적이다.
미술품 구매가 게임 속 장사꾼들끼리 흥정하는 것도 아니고 ‘님선’이라니.
차라리 얼마냐고 물어봤으면 괜찮았을 텐데, 얼마에 팔고 싶냐고 물어보니 할 말이 안 나온다.
‘가만, 그래도 대충 가격대는 제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조금 전 심하윤 대표가 관객과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내 작품이 육십만 원이라고 했었지.
또한, 미술품은 흥정으로 할인이 들어가는 경우가 잦다고 했다.
그렇다면 육십만 원은 흥정을 미리 계산한 가격 아닐까.
‘심하윤 대표가 제시했던 금액을 기준으로 이야기하면 손해는 안 볼 것 같은데.’
나는 행동에 옮겼다.
“육십만 원입니다.”
“음. 생각보다 저렴하군요.”
“신인 작품은 백만 원 아래에서 거래되는 게 관례라고 해요.”
“그렇다면 나머지 작품들도 비슷한 가격대라고 생각해도 되겠군요.”
오경진 회장은 잠시 고민하는 눈치를 보이다가 말했다.
“혹시, 제가 작품을 구매했을 때 재하 씨에게 돌아가는 이득이 있을까요?”
“판매 가격에서 수수료를 제외하고 제가 받게 되겠죠?”
“그 수수료는 갤러리에 지불하는 수수료겠군요.”
“네.”
“그렇다면······.”
오경진 회장은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 작품들을 살펴봤다.
그리고.
마침 그때쯤 심하윤 대표가 타이밍 좋게 전시장으로 돌아왔다.
“작가님. 미안해요. 오래 기다리셨죠? 통화가 생각보다 길어졌어요.”
“아니에요. 딱 적당한 때 오셨어요.”
나는 그녀에게 오경진 회장을 소개하며 말했다.
“이분께서 제 작품에 관심이 있으시대요.”
“예?”
심하윤 대표가 살짝 의아해하는데, 오경진 회장이 그녀에게 인사하고는 말했다.
“저 작품을 구매하고 싶습니다.”
“잠시만요. 작품 설명 먼저 해 드릴게요.”
심하윤 대표는 오경진 회장을 데리고 내 작품 앞으로 가더니, 조금 전 다른 관객에게 했던 것과 같은 설명을 시작했다.
조금은 다르지만 같은 설명.
눈 감고도 달달 외울 정도로 연습한 거 아닐까.
오경진 회장은 그 말을 전부 천천히 듣더니 말했다.
“음. 알겠습니다. 혹시 구매가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육십만 원을 책정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오경진 회장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바로 구매하고 싶습니다.”
그 순간이었다.
심하윤 대표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전시품이 판매되었을 때 가장 큰 수혜자일 나보다도 더 기쁜 모양.
그녀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쪽으로 오시면 절차를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오경진 회장은 좀 더 할 말이 있는 듯했다.
“저기,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예?”
심하윤 대표가 의아해하는데, 오경진 회장이 손으로 전시품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여기 있는 다른 작품들은 가격이 어떻게 됩니까?”
“다른 작품이라면, 혹시 재하 작가님의 작품들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예.”
오경진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안쪽의 그림자 작품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도 전부 구매하고 싶습니다.”
“······ 네?”
심하윤 대표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
오경진 회장이 몰아닥친 뒤, 심하윤 대표가 얼떨떨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설마 첫날에 이렇게까지 팔릴 줄이야······ 이건 정말 상상도 못 했네요.”
그리고.
“그러게요······.”
나도 상상 못 했다.
오경진 회장은, 쉐도우 아트 작품을 제외한 네 점을 구매해갔다.
그것도 아무런 흥정도 없이, 심하윤 대표가 가격을 부르는 대로 즉답했다.
그렇게 그가 구매해간 작품의 총액이 370만 원 남짓으로서, 수수료를 제하면 내 손에 들어올 액수만 대강 330만 원.
목돈이다.
한 순간에 2학기 학비를 전부 벌어들인 셈이었다.
‘······ 이렇게 버는 대학생은 전국을 뒤져봐도 손에 꼽겠지?’
설마 신인의 작품을 제자리에서 모조리 구매할 줄이야. 오경진 회장의 씀씀이에 다시 한 번 감탄이 나왔다.
다만, 정작 본인은 작품을 구매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건 자기가 이득 보는 장사라고.
‘나중에 더 비싸게 팔 생각인가.’
내 몸값이 오른다는 가정하에 올바른 판단이기는 하다.
실제로 내 몸값은 높은 확률로 오를 터.
이건 자만이 아닌, 가능성의 차원에서 하는 말이다.
다만, 오경진 회장이 내가 성공하리라고 믿는 건 또 별개의 문제였다.
‘투자하는 셈으로 그랬던 건가?’
헤븐즈 도어라는 프랜차이즈가 완전히 망하지 않는 이상, 그와 나는 앞으로도 빈번하게 마주치게 될 터.
그러니 조금 전의 거래에는 복합적인 계산이 작용했으리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호혜적 이타주의인가 뭔가 하는 거네.’
물론, 그런 뒷사정을 모르는 심하윤 대표는 그저 얼떨떨할 뿐이었다.
그녀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 제가 이 일을 시작하고 10년이 조금 안 됐는데요. 신인 작가님 첫 전시에서 이렇게까지 팔리는 건 처음이에요.”
“운이 좋았네요.”
내 말에 그녀는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 아뇨. 신인 전시에서 운은 없어요. 오히려 실력으로만 겨루는 진검승부죠. 작가님 작품이 훌륭했던 덕이에요.”
글쎄.
과연 어떨까.
‘오경진 회장과 인간관계를 만들어 둔 것도 실력이라면 실력이기는 한데.’
지금 내 작품에는 빨간 딱지가 하나씩 붙어 있었는데, 이는 작품이 판매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다섯 작품 중 넷이 판매됐다.
그것도 전시를 시작하고 불과 몇 시간 만에.
이게 뭘 의미하는지는, 전시가 오후로 접어들며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오전과는 달리 관객이 꽤 늘었는데, 그중 미술품에 익숙한 관객들이 이따금 중얼거리는 말이 있었다.
“이거 벌써 팔렸다는데?”
아마 오늘 하루 가장 많이 들은 말 아닐까.
“신인 아니야? 무슨 신인 작품이 이렇게 빨리 나가?”
“좀 더 둘러보고 생각하려고 했는데 늦었네.”
“아깝다······.”
이미 못 가지는 물건이 되어서일까.
그들이 내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이 크게 바뀌었다.
언제든 가질 수 있는 물건에서, 이제는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물건으로.
그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이럴 수가 있나. 나 이런 건 처음 본다.”
“이재하, 이름 외워둬야겠다. 다음에는 일찍 찾아와야겠네.”
그들은 작품을 떠나, 나라는 작가에 대해 관심을 품기 시작했다.
그 탓일까.
물건이 이미 팔렸음에도 욕심을 보이는 컬렉터가 여럿 있었다.
“혹시 작가님의 다른 작품을 알 수 있을까요?”
전시가 안 된 내 작품을 구매하려 들거나, 개인적인 연락처를 알고 싶다며 심하윤 대표에게 묻기까지.
하지만, 그녀는 알려주지 않았다.
어떻게든 돌려서 말하는데, 그 모습이 내 눈에는 퍽 신선하게 비쳤다.
‘꼭 자기 물건 간수하는 것 같네.’
그런 내 질문에 대해 심하윤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저런 곤란한 일이 일어날 수 있거든요. 끈덕지게 들러붙는다거나, 아직 시장을 잘 모르는 작가를 구워삶으려고 한다거나.”
듣기로는 다짜고짜 작가 작업실에 찾아가서 작품 하나 내놓으라며 드러누운 사례도 있는 모양이었다.
적어도 미숙한 작가에게는 안 좋은 일이 잦은 모양.
“가끔은 다른 업자들이 작가를 빼가려 들기도 해요.”
“빼간다고요?”
“괜찮은 작가가 있으면 슬쩍 자기들이 영입하려고 수를 쓰는 거예요.”
나름 민감한 사안인 모양.
그런데, 그녀의 말을 듣고 있으려니 어색한 점이 있었다.
“저 여기 전속 작가였나요?”
“······.”
그녀가 멍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아뇨, 그건 아닌데······ 일단은 전시 중이니까······.”
말을 얼버무리다가 결론이 나왔다.
쌍무적 계약 관계.
당분간은 이걸로 간다.
그리고, 저녁까지 전시가 이어지며 나는 의외의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송태엽 작가의 작품은 아예 안 팔리네.’
이 부분이었다.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는 관객은 많았다.
묘사력에 감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랫동안 구경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정작 구매 의사를 보이는 사람은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잘 안 팔리네요. 비싸서 그런 건가요?”
내 질문에 대해, 심하윤 대표는 한 마디로 설명했다.
“가격대가 가격대이기도 하지만, 작품 크기가 워낙 커서 그럴 거예요.”
“크면 안 팔리나요?”
“전시할 곳이 애매하거든요. 일반적인 가정집에서는 둘 곳이 없으니까요.”
“······ 아.”
그렇다.
이 부분이 문제가 되는 듯했다.
기본적인 가격이 워낙에 높기도 한데, 구매한다고 한들 보관할 공간이 애매했다.
그녀가 설명을 덧붙였다.
“요즘은 재산으로서의 예술품도 예술품이지만, 장식품으로서의 예술품이 잘 나가는 경향이 있어요. 물론, 태엽 작가님의 작품도 팔리길 팔릴 거예요. 시간은 더 걸리겠지만요.”
상대적으로 내 작품에 문의가 잘 들어오는 이유도 알 수 있을 듯했다.
‘적당히 걸어두기 좋아서겠지.’
테이프 아트든 어린 왕자 연작이든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적당한 크기에, 적당히 알아보기 쉽다.
대중적으로 설계했던 만큼, 대중에게 사랑받기 좋았다.
‘그럼 쉐도우 아트 작품이 안 팔리는 건 그 반대라서 그런가?’
이 부분이 의아했다.
사실, 오늘 전시한 작품 중에서는 그 작품이 가장 자신 있었다.
그런데 문의 한번 없으니 의아할 지경.
“저 작품은 왜 안 팔리는 걸까요?”
내 질문에 심하윤 대표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답했다.
“설치 미술이라서 그럴 거예요.”
“······ 설치 미술은 잘 안 팔리나요?”
“보통은 그래요.”
세상에.
“전문 딜러나 컬렉터가 아니면 아예 취급 자체를 안 하는 경우가 많아요. 작가의 이름값이 확 뛰면 또 모르겠지만······ 모두가 백남준이 될 수는 없잖아요?”
돌려 말했지만, 결론은 설치 미술품을 팔기에는 아직 내 경력이 부족하다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아쉽진 않았다.
‘하루에 네 작품이나 팔린 것부터가 이미 행운이었어. 더 바라는 건 욕심이지.’
어차피 본전은 진즉 메꿨다.
이제부터는 보너스 스테이지다.
그렇게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고 있으려니, 슬슬 저녁이 되었다.
전시 종료까지 고작 10분을 남기고 전시장에 인기척이 거의 사라졌을 무렵, 심하윤 대표가 물었다.
“오늘 어땠어요?”
나는 잠시 답변을 고민하다가 답했다.
“재밌었어요.”
“어떤 점에서요?”
“음······ 제 작품을 두고 관객들이 이런저런 해석을 던지는 게 생소하다고 해야 하나. 뿌듯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그렇더라고요. 앞으로도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겠다. 그런 생각도 들고.”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난 순간, 거기서부터는 관객의 영역이 된다고 했다.
그 말은 실로 옳은 말이었다.
관객들이 보는 작품은 내 시선과는 다른 부분이 있었는데, 그 차이가 내게 또 다른 재미를 주었다.
‘이 맛에 작가 하는구나.’
보람차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내 반응에 심하윤 대표는 조금 안도하는 눈치였다.
“다행이네요.”
“뭐가요?”
“작가님께서 관객 반응에 크게 신경 쓰지 않으시는 게요.”
“그래요?”
이 정도면 신경 많이 쓴 거 아닌가 싶은데, 그녀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했다.
“사실, 첫 전시에서 상처받는 분들도 여럿 있거든요.”
“아······.”
그런 이야기였구나.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신경.
심하윤 대표가 한숨 한 번 쉬고는 말을 이었다.
“작품이 안 팔리면 더 그래요. 슬럼프에 빠지거나, 심하면 아예 미술을 관두기까지 하죠. 전시를 위해 노력했던 시간이 전부 물거품이 됐다고 느끼는 거예요. 도전을 두려워하게 되고요.”
“그래도 작품은 남지 않나요?”
“한 번 안 팔렸던 작품을 다시 건다고 팔릴지 안 팔릴지는 모르는 거니까요.”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대충 듣고 있으려니 알 것도 같았다.
‘관객들의 반응 때문에 자기 작품을 못 믿게 된 창작자들이 많은 건가.’
자기 작품을 너무나도 사랑하는데, 소비자의 입에서 다이렉트로 비평을 듣는다면 어떨까.
끔찍하겠지.
자기 예술관이 잘못된 건가 의심스럽기도 하리라.
예술가 중에는 자기 작품을 자식이라고 일컫는 사람도 많다.
그런 작품을 부정당한다면, 그 고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으리라.
“······ 저도 조심해야겠네요.”
내가 중얼거리는데, 심하윤 대표는 피식 웃더니 말했다.
“작가님은 앞으로도 문제없이 잘하실 것 같아요.”
“그래요?”
“자세히는 설명 못 하겠지만, 작가님은 다른 신인 작가분들이랑은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여유로워 보인다고 해야 하나?”
그야 어쩔 수 없다.
2회차니까.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 지으려는 찰나였다.
“저, 혹시.”
전시장의 조명을 끄려는데, 양복을 입은 남성 한 명이 다가와서는 물었다.
“저기 저 작품도 판매하는 건가요?”
“송태엽 작가님 작품 말씀이신가요?”
심하윤이 묻는데, 그는 고개를 젓더니 말했다.
“아니요. 저기 안쪽에 그림자로 만든 작품이요.”
“······!”
그 순간, 심하윤 대표와 나는 거의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세상에.
오늘이 정말 무슨 날이긴 날인가 보다.
< 쌍무적 계약 관계 > 끝
ⓒ 이한이™
< 외주를 하자 >
전시 종료 10분을 남기고 마지막 작품이 판매되었다.
즉.
매진이었다.
‘첫날에 매진이라니······ 이거 말 되나?’
구름 속을 걷는 것만 같은 것이 현실감마저 희미했다.
물론 매진을 바라기야 했다.
간절했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목표로 노렸던 일이었다.
게이머라면 누구나 프로게이머를 꺾는 상상을 하는 그런 것.
그마저도 첫날에 달성할 거라고는 감히 상상도 못 했다.
‘설마 나 이쪽에 적성 있나.’
머릿속이 붕 뜬 채로 멍하니 있는데, 심하윤 대표가 말을 걸었다.
“아까 그 손님이요. 작품을 어디에 설치하려는 걸까요?”
문득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공익 광고 아닐까요?”
“광고요?”
“왜, 쓰레기로 자연환경을 만들었잖아요. 저걸로 작품 하나는 뽑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렇게 생각해 보면 저렴하게 먹히는 것 같기도 하고.”
우스갯소리지만 그나마 그럴듯하지 않을까.
심하윤 대표는 내 말에 곰곰이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는 있네요. 설치 미술은 메시지 전달에서 큰 힘을 발휘하니까요.”
그녀는 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듯했다.
반쯤 농담으로 한 말인데.
아무튼, 그렇게 전시 첫날은 더 바랄 수가 없을 호조로 끝났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나는 전시장에 오지 않았다.
딱히 재미가 없어서는 아니고, 학교에 나가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