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Art Student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44)
두 번 사는 미대생 44화(44/93)
*
‘누구지?’
아예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중년의 나이에 호기심이 많아 보이는 인상.
혹시 이종이 교수가 말한 그 사람인가 했는데, 아직 약속한 시각까지는 한참 남은 상황이었다.
‘점심시간에 잠깐 나오는 거라고 했으니까 벌써 내려왔을 리는 없고. 목에 사원증도 안 매고 있네.’
넥스트 측 사람이 맞긴 한 걸까.
그가 대뜸 내 노트북을 가리키고는 물었다.
“이거 게임 작업하고 계시는 거죠?”
“네? 네.”
“넥스트에서 이런 작품도 만들고 있었나요?”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는 말했다.
“개인적으로 작업하고 있었습니다. 저 여기 다니는 사람 아니에요.”
“아, 그래요?”
그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흥미롭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럼 어디서 오신 건가요?”
“대학생인데, 여기 직원분이랑 이따가 약속이 있어서요.”
“아, 그렇군요. 혹시 어떤 분이랑?”
말해도 될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뭐 딱히 비밀도 아닌데 뭐.
켕길 것도 없고.
“AD(아트 디렉터)분입니다. 그런데 저 혹시 성함이······.”
“아.”
그는 이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실례했습니다. 저도 여기서 개발 쪽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인데, 어떤 게임을 만들고 계시나 궁금해서 구경을 좀 했습니다. 예전 오락실 게임 느낌이라 흥미가 가서요. 잠깐 봐도 될까요?”
딱히 의도가 있는 건 아니고, 순수한 호기심이 느껴졌다.
단순히 게임 이야기가 하고 싶은 건가.
그렇다면 내 입장에서도 딱히 거리낄 건 없었다.
‘심심했는데 잘됐네.’
넥스트 쪽 사람과 친해져서 나쁠 게 없다.
그리고, 프로가 우리 작업물을 본다면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기도 한 참이었다.
좋은 기회다.
“설명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저 시간 많습니다.”
본인이 그렇다면야 뭐.
나는 그에게 내 작업물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횡스크롤 액션 게임인데, 3명에서 4명이 인스턴스 던전 하나에 들어가서 클리어하는 형식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흠.”
그는 내 설명을 천천히 듣더니 대뜸 물었다.
“왜 이런 방식으로 만드셨죠? 아무래도 좀 옛날 게임 느낌인데, 상업성을 생각한다면 구조적인 리스크를 짊어지고 시작하는 게 아닐까요? 요즘 제작사들은 RPG 게임이라면 거의 다 MMORPG로 힘을 쏟고 있다는데, 그쪽으로는 생각을 안 해 보셨나요?”
왜 그렇게 만들었냐는 질문.
다소 무례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현직 개발자라면 얼마든지 할 법한 질문이었다.
이에 대한 대답이라면, 지금도 내 머릿속에 몇 개가 들어 있었다.
‘이게 성공 공식이니까.’
미래의 성공한 결과물을 그대로 재현하는 게 내 목적이라서 이대로 만들 생각이라는 답변.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건 오답이었다.
저 사람은 과정을 묻는 거지 결과를 묻는 게 아니니까.
그렇다면, 다른 대답을 해야 한다.
‘옛날 아케이드 게임 느낌을 내고 싶어서.’
던전 앤 네스트 같은 옛날 게임들의 향수를 유도하고 싶어서.
이것도 나름대로 괜찮은 대답이다.
또한, 대외적으로 잘 알려진 [던전 앤 스토리]의 개발 이유이기도 했다.
‘제작진들이 전부 던전 앤 네스트의 광팬이라고 했지.’
하지만, 이건 구라다.
내가 이번 생에 이 팀을 겪어본바, 실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사실 저희도 처음에는 MMORPG를 개발하려고 했습니다.”
“호오. 그런데 왜 지금은······.”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
내 다음 말에 온갖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의 눈을 지그시 응시하며 말했다.
“저희 프로그래머가 어려워서 못해 먹겠다면서 포기했어요.”
“푸흡.”
내 말에 상대가 폭소를 터뜨렸다.
그렇게 웃기를 한참.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아, 비웃는 게 아닙니다. MMORPG 제작이 유독 어렵기는 하죠. 그에 비하면 이 방식도 좋아 보이네요. 자원도 적게 먹을 것 같고.”
그래.
이게 정답이었다.
온라인 게임은 구조적으로 접속자가 늘어날 때마다, 서버 프로그래밍 난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어 있다.
그 난이도는 하늘과 땅 차이.
오죽하면 초기 배틀로얄 게임들은 전부 최적화나 버그 문제를 달고 살지 않았던가.
AAA급 인력들만 뭉쳐서 만들었는데도 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MMORPG도 일개 학부생이 반짝 머리를 굴린다고 커버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이 시기에는 참고할만한 자료도 얼마 없으니까 더 힘들었겠지.’
그래서 남운은 생각했다.
[그냥 MMORPG를 안 만들면 되는 거 아니냐?]던전 앤 스토리는, 플레이어의 수를 줄이는 것으로 간단히 이 문제를 벗어났다.
“영리한 해결책을 찾았군요.”
“꼼수라고 해주십시오.”
“오······ 그렇게 말해도 괜찮나요?”
“어차피 제가 프로그래밍한 것도 아니라서 괜찮습니다.”
“크흐흐.”
그가 큭큭 웃었다.
몇 마디의 대화를 더 나눈 뒤, 그는 호기심을 다 충족시켰다는 듯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직원과 약속이 있다고 하셨죠?”
“네.”
“좋네요. 많이 물어보고 배우세요. 뭐가 됐든 하나는 얻어갈 수 있을 겁니다.”
그가 그렇게 말하는데, 순간 난 어느 위화감을 느꼈다.
‘잠깐, 아까 우리 직원이라고 했나.’
보통 자기네 회사 사람을 우리 직원이라고 하나.
그것도 AD급 인사를.
이상한 느낌에 그의 구체적인 정체를 물어보려는 찰나였다.
“제 명함입니다.”
그가 내게 명함을 건넸다.
< 꼼수 > 끝
ⓒ 이한이™
작가의 말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
< 아트팀 >
“······.”
순간적으로 정신이 멍해졌다.
아니, 이 이름이 여기서 왜 나와?
[김종수]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이름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고등학교에서 카레 급식 나오면 많이 달라고 조를 것만 같은 이름이었다.
이 세 글자 아래로 직함 몇 글자만 없었더라면 말이다.
[주식회사 넥스트/대표 이사]대표 이사.
즉, 넥스트의 CEO였다.
그 사실을 깨달음과 동시에 정신이 멍해졌다.
‘CEO씩이나 되는 양반이 업무 시간에 지금 여기서 뭐 하냐.’
왜 한가롭게 로비에서 나뒹굴면서 대학생이랑 수다나 떨고 있냐.
CEO면 바빠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반대가 정답일 수도 있겠다.
CEO씩이나 되니까 업무 시간에 여기서 노닥거릴 수 있는 거 아닐까.
‘왜, 옛날에 읽었던 미식 만화에도 그런 에피소드가 있었잖아.’
휴가를 나온 주인공이 양복을 입은 채로 점심시간에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는데, 지나가는 회사원들이 그 모습을 보고는 부러워했다는 내용의 에피소드였다.
자기 시간을 자기 맘대로 쓰는 것이야말로 성공한 직장인의 증거라는 것.
어쩌면 이 아저씨, 김종수 대표 이사도 같은 거 아닐까.
‘모르겠다. 깊게 생각하지 말자. 괜히 눈치 보면 그거야말로 학생답지도 않다.’
나는 애써 평정심을 되찾은 뒤 입을 열었다.
“사장님이셨네요.”
“네.”
그가 흐뭇하게 웃었다.
그 웃음을 보니 이마에 힘줄이 솟는 것만 같다.
‘······ 이 아저씨, 딱 봐도 즐기고 있네.’
힘을 숨겼던 게 이런 이유였네.
사람을 놀리고 반응을 보다니. 못 된 습관이다.
나는 속으로 혀를 차면서 중얼거렸다.
“미리 말씀을 주셨으면 설명에 더 신경을 썼을 텐데, 좀 아쉽네요.”
“제 직함 때문인가요?”
“네.”
“신경 쓰지 마세요. 게임 이야기 나누는데 거추장스럽잖아요?”
거추장스러운 게 더 낫습니다.
괜히 아까 했던 대답이 머릿속에서 되새김질 되었다.
‘아, 그냥 적당히 똑똑해 보이는 대답할걸. 뭐하러 유우머 한번 던져 보겠다고.’
기술 면접을 보듯 말했더라면 더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아무튼.
그가 내가 손을 내밀었다.
“반가웠습니다. 기회가 되면 또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때는 완성본도 보여줄 수 있겠죠?”
“······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나는 그의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노력은 해 보겠습니다.”
“좋습니다. 뭐든 노력해 볼 일입니다. 게임 제작이라는 게 조금 힘들 때가 있어도 노력만 있으면 어떻게든 되더라고요. 오히려 어려운 시기가 길기에 더 매력적인 일 같기도 합니다. 몇 년 동안 힘들게 준비해서 유저들과 단판 진검승부를 겨루는 거지요.”
그는 그렇게 훈화 몇 마디를 더 던지고는, 슬슬 약속이 있다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흥미가 있을 때는 열심히 대화를 나눴으면서, 때가 됐다고 확 떠나 버리는 모습이 마치 바람과도 같았다.
그렇게 홀로 남고서야 깨달았는데, 어쩐지 주변이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조용했다.
그야 당연하지.
사장이 옆에 있으면 말이 없어질 수밖에.
‘······ 그래도 시간은 잘 갔네.’
시계를 보니 약속한 시각까지 앞으로 몇 분이 채 남지 않은 상황.
문득 김종수 대표 이사가 남기고 간 명함을 보고 있으려니 이유 모를 감정이 솟았다.
대표 이사의 명함이라.
이것도 한 시간 일찍 온 덕에 얻은 보너스 아닐까.
아무리 명함이란 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도전과제처럼 쌓이는 장식에 불과하다지만, 대표 이사의 명함쯤 되면 또 달랐다.
‘나중에 완성되면 보여달라고 했지.’
원래 사회인끼리 주고받은 명함에는 어지간하면 연락 안 하는 게 정석이지만, 지금의 나는 대학생이다.
사회생활을 잘 몰라서 연락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겠지.
아참.
그러고 보니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 명함, 코인 소프트로 돌아가서 식구들한테 보여주면 다 깜짝 놀라겠네.’
돌아갈 길이 기대됐다.
*
그렇게 몇 분을 더 기다리고 있자, 곧 직원 한 명이 로비로 내려오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저 사람인가?’
냄새가 난다.
후줄근한 와이셔츠를 입고 있는데, 인상은 퀭하고 자세가 구부정한 게 개발자라는 인상이 확 풍기는 사내였다.
‘좀비 같네.’
좀 많이 피곤해 보인다.
얼핏 보인 사원증에서, 그가 내가 찾는 사람이 맞단 사실을 확인했다.
[아트팀 AD 심동호]이종이 교수님이 일러준 이름이었다.
그가 눈을 비비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나를 찾고 있는 모양.
그래서, 나는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이종이 교수님에게 연락받으신······.”
“아!”
그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반갑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는 말했다.
“반갑습니다. 심동호라고 합니다. 개발2 본부 아트팀에서 AD를 맡고 있습니다.”
“한예원 시각디자인과 2학년 이재하라고 합니다.”
우리 둘은 서로 짧은 통성명을 나눴다.
그는 천천히 내 모습을 살피다가, 이유 모를 흐뭇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종이 형님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
뭔가 불길한 말이다.
이종이 교수가 남들 앞에서 내 이야기를 꺼냈다면, 대체로 흐름이 뻔했다.
나는 반쯤 체념한 심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혹시 제 칭찬을 조금 과할 정도로 하지 않으시던가요? 아끼는 제자라면서.”
“네? 네. 어떻게 아셨나요?”
“자주 그러시거든요.”
“맞습니다.”
그는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말했다.
“한예원 최고의 인재라면서, 조만간 저희 쪽에서 모셔가야 할 테니 잘 보여두라고 하시더군요.”
“······.”
어쩐지 이런 말을 했을 것 같더라니.
딱 예상했던 그대로다.
칭찬의 수위가 내 예상보다 훨씬 높다는 점만 달랐다.
‘교수님······ 칭찬도 적당히 하셔야죠······.’
나는 헛기침을 뱉고는 말했다.
“그분이 원래 칭찬이 많으십니다.”
“종이 형님이 그렇게 아무나 고평가하는 분은 아닙니다.”
“······ 그래요?”
“얼마나 깐깐한데요. 저도 그 형님만 만나면 잔소리 지긋지긋하게 듣습니다.”
하긴, 그분이 나 빼고 다른 학생을 칭찬하는 모습을 거의 못 보긴 했다.
그는 피식 웃더니 말했다.
“사무실을 둘러보고 싶다고 하셨죠?”
“네.”
“그럼 바로 가서 보시죠.”
나는 그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위이잉.
곧 창밖으로 강남역 대로의 광경이 빠르게 지나치는데, 심동호 AD가 내게 말했다.
“대학생이라고 했지요?”
“네. 요즘 이것저것 만들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
어색한 정적이 몇 초.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요즘은 크런치 기간이라서 외부 방문객은 안 들이는 게 원칙입니다. 종이 형님 부탁이라서 받는 거예요.”
크런치 기간.
발매나 박람회 같은 큰 행사를 앞두고, 개발팀의 총력을 기울이는 기간을 의미했다.
쉽게 말해서, 인력을 갈아 넣는 기간.
개발자들은 원래부터 야근을 달고 산다지만, 이 기간에는 한층 더했다.
아예 회사에서 살다시피 하는 수준.
‘게임 업계가 싸잡아 블랙 기업 취급받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했나.’
업계 자체의 고질병이었는데, 오죽하면 그 노동법이 잘 갖춰진 서양 선진국들도 크런치 기간만큼은 모르는 체할 정도였다.
나는 새삼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그에게 말했다.
“바쁘실 텐데 제가 크게 실례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지금은 급한 불 하나 끄고 쉬는 시기라서 괜찮습니다. 천천히 둘러보시고, 모르는 게 있으면 뭐든 물어보세요. 팀원들한테는 미리 말해뒀는데, 대학생이 열심히 한다고 다들 좋아하더랍니다.”
“여러모로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나중에 졸업하시고 저희 회사에 오실지도 모르는데.”
그가 후후 웃었다.
그리고, 나도 속으로 멋쩍게 웃었다.
‘그렇네.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
대학생이 회사에 견학을 온다고 하면 대개 이런 느낌으로 비치지 않을까.
취업 정보 얻으려고, 혹은 취업하기에 앞서 눈도장을 찍으려고 오는 것으로.
뭐, 대충 맞긴 하다.
눈도장을 찍으려고 온 거.
하지만, 나는 여기에 취업을 하려는 건 아니다.
협력을 구하러 왔다면 모를까.
위잉.
이런 흑심을 되새기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멈춰섰다.
“들어가시죠.”
“실례하겠습니다.”
사무실로 들어간 뒤 처음으로 내 눈에 비친 광경은, 사람들이 축 늘어져서 쉬고 있는 모습이었다.
‘말라 비틀어진 호떡 같네.’
조금 전에 커피 마시던 사람들이 그냥 커피라면, 이 사람들은 티오피.
엎어져서 쪽잠을 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멍하니 앉아 있는 사람들도 피곤한 기색이 완연하다 못해 뿜어져 나왔다.
‘와, 이 사람들 제대로 호흡은 하고 있나.’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이 깊었던 건 그림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원래부터 사람들 눈 밑에 다크서클이 눅진했지만, 이 사람들은 하나같이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모니터를 코앞에서 바라보고 살다 보니 생긴 문제인 모양.
그런데, 그 모니터 화면에 떠 있는 일러스트가 어쩐지 좀 익숙했다.
아니, 많이 익숙했다.
‘크레이지 라이드 아냐?’
분명했다.
아직 컨셉 아트에 불과한 것 같지만, 캐릭터 디자인만 봐서는 그 게임이 맞았다.
크레이지 라이드.
대박이 날 레이싱 게임이자, 먼 미래까지도 현역으로 달리며 넥스트를 먹여 살릴 그 게임이 분명했다.
그렇지.
이거 아직 발매 안 했지.
‘진짜 과거로 돌아왔다는 느낌이 확 드네.’
기묘하다.
이 게임이 십몇 년 뒤에도 현역일 걸 생각하면 더더욱 기묘하다.
‘이 시기가 딱 리즈 시절이었구나.’
넥스트는 이 몇 년 사이에 씨앗 한번 잘 뿌려놔서 이걸로 쭉 먹고 살 예정이다.
대체 어떻게 하면 그게 가능한가.
컨텐츠를 얼마나 추가하고, 또 얼마나 판매 루트를 개척해야 할까.
게이머로서는 몰라도 개발자로서는 존경스러운 부분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지켜보고 있으려니 날 데려온 심동호 AD가 자기 모니터 앞에 앉으며 내게 말했다.
“느낌이 좀 어때요. 신기하죠?”
신기하다.
게임이 신기한 게 아니라, 여기에서 다시 보고 있는 게 신기하다.
“이건 저희가 새로 개발하고 있는 레이싱 게임인데, 아직 대외적으로는 비밀이니까 비밀로 해주세요.”
비밀이라고 할 것도 없이 잘 알고 있다.
앞으로 어떤 업데이트를 할지도 굵직하게는 알고 있다.
“일본에 포켓 카트라는 게임이 있거든요. 그거 벤치마킹해서 만들었는데, 그것보다는 좀 더 속도감을 중시하려고요.”
이것도 잘 알고 있다.
고소 이야기까지 나왔다가, 사업 루트나 구체적인 시스템은 안 겹쳐서 어떻게 좋게좋게 해결되었다던가.
‘다 아는 이야기네.’
이후로도 게임에 대한 설명이 계속 들려왔다.
어떤 시스템을 적용했고, 어떤 아트웍을 지향하고 있고 그런 이야기.
“요즘 게이머들은 게임 한 판당 플레이 시간이 짧아지는 대신, 플레이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저희도 그래서 한 판을 짧게 플레이할 수 있게끔 설계했어요. 당연히 캐쥬얼한 분위기를 노렸죠. 원색 위주로 디자인할수록 연령대를 낮출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촌스러운 느낌이 잘 안 들죠.”
대체로 듣지 않아도 잘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나는 이 말에서 한 가지 신기한 점을 느꼈다.
“혹시, 이 게임 개발팀은 기획팀이랑 아트팀 구분을 따로 안 한 건가요?”
이 부분이었다.
심동호 AD의 말만 듣거든, 그들은 아트팀임에도 불구하고 맵디자인을 포함한 레벨 디자인 전반에도 참여하고 있다는 듯했다.
“원래는 따로따로 맡는 줄 알았는데.”
내가 알기로 이 둘은 별개의 영역이었다.
이 의문에 대해, 심동호 AD는 한 마디로 일축했다.
“스튜디오마다 달라요.”
“······.”
응, 그렇구나.
케바케라면 어쩔 수 없지.
‘업무 프로세스 이야기도 좀 들으려고 했더니, 이렇게 되면 애매해지겠네.’
어찌 되었든, 그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그가 자기 작업물에 진한 자부심을 품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나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한 마디 물었다.
“출시는 언제 하나요?”
“이건 비밀인데.”
이건 비밀인데.
오늘 이곳에서만 벌써 여섯 번째 듣고 있는 말이었다.
아무튼, 그가 말했다.
“공개 자체는 빠르게 할 예정입니다. 서울게임쇼라는 행사가 조만간 있는데, 거기에서 일차적으로 공개하게 될 것 같네요.”
“베타 테스트는 어떻게 될까요?”
“일정이 문제없이 진척된다면 올해 말쯤에는 가능하지 않을지······.”
이 부분에서는 말을 흐렸다.
지금까지 그렇게 자신감이 가득했는데, 갑자기 기세가 죽다니.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걸리는 부분이 있나요?”
“그런 거 없습니다.”
“올해 안에 베타 테스트를 진행할 수 있을까요?”
“그건······.”
거 봐라.
자신 없는 거 맞네.
그는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사실, 특별히 걸린다기보다는 짤막하게 개선했으면 하는 부분이 있긴 있습니다. 살짝 있습니다. 살짝.”
“그게 어떤 건가요?”
“음.”
그는 이 말을 해도 되는지 조금 고민하는 듯하다가,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원래는 비밀로 하는 게 맞는데, 이종이 형님 제자니까 특별히 말씀드리는 겁니다. 이쪽입니다.”
< 아트팀 > 끝
ⓒ 이한이™
< 걸리버 대모험 >
‘일정을 연기할 정도로 고민되는 사안이라.’
대체 뭘 보여주려는 걸까.
역사적인 현장에 선 기분에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심동호 AD는 어느 책상에 놓인 노트 한 권을 집어 들며 말했다.
“이겁니다. 한 번 읽어 보세요.”
“실례하겠습니다.”
받아서 펼쳐보자, 그 안에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컨셉 스케치가 그려져 있었다.
주로 트랙(맵) 디자인에 관련한 부분.
플레이어가 달릴 트랙의 주행로 및 컨셉트와 관련된 스케치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퀄리티가 엄청나네.’
생생하다.
눈으로 훑어보기만 해도 직접 플레이하는 화면을 상상할 수 있을 정도의 스케치가 한가득했다.
그런데, 어딘가 어색했다.
내가 아는 크레이지 라이드의 트랙 디자인과는 근본적으로 거리가 있었다.
대체 뭐가 문제일까.
다 그럴듯한데, 뭐가 문제일까.
‘이 이질감이 어디서 느껴지는 거지?’
고민하고 있으려니 곧 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 디자인이 너무 현실적이네.’
전반적으로 너무 현실적이었다.
단순히 현실 속 레이싱 트랙을 옮겨둔 것만 같은 느낌.
심심하기 짝이 없었다.
우주를 달리고, 구름 위를 달리고, UFO 위를 달리던 내 기억 속의 크레이지 라이드와는 거리가 있었다.
아무래도 그런 방향성이 잡히기 전의 컨셉트인 모양.
‘쓰읍. 이거 좀 아쉬운데.’
흔히 말하기로, 레이싱 게임 속 재미의 90%는 트랙이 결정한다고 하였다.
숲을 달리든, 사막을 달리든, 우주를 달리든.
무엇을 타고 달리느냐도 중요하다만, 진짜로 중요한 건 어디를 달리느냐였다.
트랙의 중요성은 FPS 게임의 맵에 필적하거나 그 이상이었다.
‘오픈할 때는 그래도 무난한 트랙이 나왔던 것 같은데, 그때까지 계속 고친 건가.’
이런 디자인으로는 시장에서 좋은 반응 정도라면 몰라도, 폭발적인 반응을 얻긴 어렵겠지.
물론 이건 내 추측일 뿐이다.
어찌 되었든 크레이지 라이드는 전생에 이미 대박 난 작품이 맞았다.
문제점이 있다면 이들이 알아서 고치고 출시했을 터.
즉, 내가 걱정해 줄 이유는 전혀 없었다.
‘알아서 잘하겠지.’
대충 그런 눈길로 훑어보고 있으려니 심동호 AD가 입을 열었다.
“어떻습니까?”
“음.”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모르겠다.
나한테 어떤 대답을 요구하는 걸까. 어떤 대답을 해야 적절할까.
‘그냥 감상 물어보는 건데, 내가 괜히 의미 부여하는 건가?’
문득 아까 로비에서 만났던 김종수 대표 이사가 생각났다.
어설프게 농담을 던졌다가 민망해졌지.
여기서도 같은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러니, 이번에는 솔직하게 답하길 결심하고 입을 열었다.
“아쉽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아쉬운가요?”
캐묻는다.
나는 눈을 딱 감고 질렀다.
“트랙이 단순해요. 다른 레이싱 게임들과의 차별성이 크게 안 느껴집니다.”
“차별성이라고 하면······?”
“조금 전에 게임이 캐쥬얼한 게 특징이라고 하셨는데, 기왕 가벼운 게임을 지향한다면 조금 더 과감한 디자인을 다뤄도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어차피 현실이 아니라 게임이니까요.”
“그 말도 일리는 있습니다.”
심동호 AD는 일견 공감한다는 듯 피식 웃더니 말했다.
“어떻게 해도 기존 레이싱 게임의 마이너 카피에서 못 벗어나는 느낌인데, 이 부분을 고치기가 쉽지 않더군요. 시각적인 충격이 받쳐줘야 공개할 때도 큰 화제성을 얻을 수 있을 텐데······ 이래서야 어렵겠지요.”
하긴.
나라도 이렇게 평범한 트랙을 달리는 게임에는 별 흥미가 안 생기겠다.
“그럼 당분간은 일정 잡기가 어렵겠네요.”
“예. 내부적으로 목표로 삼은 라인에 못 도달한다면, 그만큼 뒤로 미룰 수밖에 없겠죠? 다른 건 몰라도 완성도에서 타협할 수는 없겠습니다.”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군.
내 추측을 본인 입에서 확인받자, 목구멍이 한층 더 간질간질해졌다.
왜냐.
나는 이 문제점을 꿰뚫을 해답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라면 바로 정답을 줄 수 있는데.’
왜냐.
해 봤으니까.
이 게임 속 트랙을 수백 번도 넘게 달려 봤으니까.
머리로 떠올리기 전에, 이미 내 영혼이 밀리세컨드 단위로 기억하고 있으니까.
‘······ 좀 잘난 체를 해도 되나?’
하려면 할 수 있다.
문제라면, 내가 이들에게 그러한 오지랖을 부려도 되는가였다.
이들은 어차피 프로다.
대학생의 참견 따위를 필요로 하긴 할까.
끼어들 명분이 없어 괜히 답답한 찰나였다.
“그냥 해 보는 말인데.”
심동호 AD가 입을 열었다.
“혹시 학생한테 괜찮은 아이디어 없나요?”
“아이디어요?”
“이 트랙을 어떻게 구상하면 좋겠다던가. 젊은 사람의 눈에는 조금 다른 게 보일 수도 있잖아요? 학생이 같은 개발자로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오.
명분이 생겼다.
‘꿀이네.’
마침 근질거리는 찰나였는데, 저쪽에서 먼저 명분을 던져줬다.
그럼 못할 이유는 뭐가 있겠는가.
오히려 여기서 뒤로 빼면 어색해진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기왕 부릴 오지랖, 제대로 부려 볼 순간이다.
“알았어요.”
나는 손바닥을 쭉 내밀어 스트레칭을 켜며 말했다.
“노트랑 샤프 좀 빌려주실래요?”
“호오.”
심동호 AD가 흥미롭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는 노트 한 권과 필통을 통째로 건넸다.
“어떻게 그리면 되나요?”
“그냥 생각나는 대로 하나 떠올린다는 생각으로 적당히 그려 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그는 이 말 뒤에 한 마디를 덧붙였다.
“너무 긴장하지는 마요. 어차피 시안 100개 떠올려서 1개만 건져도 횡재입니다. 그렇다고 앞선 실패가 엎던 게 되는 것도 아니고, 뭐든 시도는 해봤다는 부분에 의의가 있는 거지요.”
쓸데없이 위로가 길다.
나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 사람, 애초에 별 기대도 안 하고 있군.’
한참 아래뻘 사람이 재롱 잔치를 부린다니 귀엽게 보이겠지.
그림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러하듯, 내 실력이 얼마나 되나 확인해 보고 싶을 테고.
단순한 추측이 아니다.
이종이 교수님이 내 칭찬을 어마어마하게 해 뒀다니 더더욱 그럴 거다.
‘결국, 이번 작품 하나로 날 테스트하는 거라고 봐도 되겠지. 동시에 이종이 교수님의 안목도 떠보는 걸 테고.’
좋다.
테스트는 환영이다.
다만, 기왕 한다면 어중간한 결과물은 좀 그렇다.
압도적인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다.
‘크레이지 라이드 트랙 중에서 유명한 게 뭐가 있었더라.’
대강 떠올려 보자, 플레이어들에게 많이 사랑받았던 트랙 몇 개가 떠올랐다.
‘오리엔탈 판타지아, 하수도 탐험, 피노키오의 집.’
그중에서 일차적으로 내가 많이 안 해본 것들은 뺐다.
머릿속에 잘 안 그려지기 때문.
또한, 난이도가 지나치게 어려운 것들도 뺐다.
어디까지나 테스터들을 대상으로 한 트랙이기 때문.
지나치게 기믹이 복잡한 것도 뺐다.
개발 부담은 낮을수록 좋기 때문.
이렇게 몇몇 필터를 걸어서 추려내자, 마지막으로 한 작품이 남았다.
‘걸리버 대모험. 그걸로 하자.’
걸리버 대모험.
걸리버 여행기를 테마로 한 트랙이었다.
‘처음에는 플레이어가 거인국을 돌아다니는 컨셉으로 시작했다가, 중간에 트랙이 소인국으로 뒤바뀌는 맵이다. 시각적인 충격은 충분하겠지.’
머릿속에 구체적인 트랙 내용은 훤하니 그려져 있었다.
나도 소싯적에는 신기록 좀 찍어 보겠다고 수백 번도 넘게 직접 달려본 트랙.
눈 감고도 훤히 그릴 수 있었다.
다만, 트랙의 구성을 아는 것과 구체적인 디테일을 그릴 수 있느냐는 또 다른 이야기였다.
‘그 부분은 내 상상력으로 때워야겠다.’
다소 빈약한 기억력을 내 창작과 합쳐서 그럴듯하게 혼합해 볼 생각.
시안을 보는 이에게 와닿게끔 그리는 것도 내게 주어진 과제였다.
“힘들면 말로만 해도 괜찮습니다.”
심동호 AD가 날 배려하듯 말했다.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지니 주눅 든 거라고 판단한 눈치.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잠깐 뭘 그릴지 생각하고 있었어요.”
생각 정리는 끝났다.
이제부터는 그리는 일만 남았다.
나는 곧바로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사사삭.
내 손끝으로 샤프 선이 미려하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건축물을 그린다는 생각으로 그리자.’
빠르고 정교하게 그리는 거라면 자신 있다.
어지간한 프로보다 나은 건 물론, 여기 아트팀 사람들만큼이나 잘할 수 있다.
‘음, 좋아. 잘 그려진다.’
하다 보니까 작업물이 마음에 들었다.
내친김에, 카트의 디자인도 오리지널로 한 번 구성해 보는 건 어떨까.
바로 실행에 옮겼다.
‘걸리버 여행기니까······ 신발을 형상화 시킨 디자인이 좋겠어.’
신발 밑으로 바퀴가 달린 거다.
그 안에 캐릭터가 앉아 있고.
나는 인체 그림에 약한 편이지만, 이 게임의 캐릭터들은 기본이 2등신이다 보니 그리기 어려울 것도 없었다.
사사삭.
손이 빠르게 내달렸다.
‘좋아, 할만하다.’
처음 러프 한 장을 그리는 데는 10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다음부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노래 가사와도 같았다.
첫 마디를 떠올리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핵심이 되는 멜로디 한 줄기만 짚으면 그 앞뒤는 자연스럽게 연상되기 마련.
‘여기서 안개 속으로 들어가고, 빠져나오자 이젠 소인국으로 들어가 버린 거야.’
나는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가 된 듯 머릿속 기억을 재생하며, 떠오르는 그대로 종이 위에 그려냈다.
‘더 정밀하게 그리자. 더 이해하기 쉬운 구도로.’
한 번 집중이 시작되자, 주변 소음이 점차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오직 나와 노트.
그리고 종이 위로 샤프심 사각거리는 소리만이 내 공간을 오롯이 차지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지도 잊었을 무렵.
툭.
이만하면 다 그렸다는 생각에 샤프를 내려놓고 보자, 그제야 주변으로 몇몇 직원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
멀뚱멀뚱 쳐다보는데, 그중 한 명이 중얼거렸다.
“대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