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Art Student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49)
두 번 사는 미대생 49화(49/93)
*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코인 소프트 직원들이 전부 침묵한 채로 모니터에만 시선을 집중했다.
“······.”
“······.”
키보드 딸깍거리는 소리만 가득하기를 한참.
모니터에 한 문장이 떠올랐다.
[congratulations!]< 성능 확실하네 > 끝
ⓒ 이한이
< 참치 받고 소고기 추가 >
[congratulations!]모니터에 떠 있는 문장 하나.
번역하거든 말 그대로 축하한다는 말이었다.
무엇을 축하하는가 하면, 게임 클리어를 축하한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아직은 안심할 수 없었다.
‘23번째 클리어다. 이제 다음으로······.’
아직 한 발 남았다.
짧은 크레딧이 흐른 뒤, 개발자 메시지가 주르륵 이어졌다.
[던전 앤 스토리 체험판을 즐겨주신 모든 용사님들에게]타다닥.
[코인 소프트 일동이 뜨거운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타다다닥.
타닥.
타다닥.
[본격적인 게임 런칭에 앞서, 본 게임의 사전 체험자들에게 몇 가지 특전을 준비했습니다.]탁.
[아래 링크를 확인 부탁드리겠습니다.]곧이어 링크 주소가 나타났다.
딸깍하고 누르자, 곧 어느 사이트로 연결되었다.
체험판 작업에 사용된 리소스 및 체험판용으로 리믹스 된 OST를 받을 수 있는 사이트였다.
“······ 드디어.”
식구들은 그제야 감동에 겨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해냈다.”
“여기 하나에서 몇 번이나 터졌는지.”
남운은 거의 울먹이는 수준으로 입술을 악물더니 중얼거렸다.
“여기서 버그 터지고, 저기서 버그 터지고, 여기 막으면 저기 다시 터지고, 위에서 터지고, 아래에서 터지고. 진짜 죽는 줄 알았다.”
그렇다.
막바지 작업에 앞서, 버그가 어마어마하게 터졌다.
플레이어가 벽을 뚫고 들어가는가 하면, 화면 프리징은 예사였다.
OST가 무한 도돌이표마냥 반복하기도 했고, 보스 몬스터는 아예 안 움직일 때도 많았다.
“운이 형이 고생 많았어요.”
“아니다. 네가 고생이 많았지.”
이런 버그가 어디서 터졌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터졌다.
그중에서도 우리를 가장 곤란하게 만들었던 게 마지막 버그, 개발자 메시지에서 특전 다운로드 링크로 이어지는 버그였다.
여기서 게임이 터지는 경우가 랜덤하게 발생했던 것.
‘이거 하나에 며칠을 고생한 건지.’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게임에 큰 영향도 없는 사소한 버그 하나 때문에 며칠 동안 이도 저도 못 하며 마음만 졸였다.
그래도, 어떻게든 되긴 됐다.
“전 그냥 이거 빼게 될 줄 알았는데. 어떻게 넣긴 넣었네요.”
“내가 자존심이 있지. 어떻게 빼냐.”
“솔직히 시간 대비로 따지면 그렇게 남는 장사는 아니었는데, 후회되지는 않아요?”
내 말에 남운이 크크 웃더니 말했다.
“그냥 게임만 끝내면 끝이라니. 그럴 수는 없지. 이런 유종의 미가 있어야 진짜 완성이다. 이 말씀이야.”
그가 고집을 부렸다.
게임 클리어뿐만 아니라, 기어코 엔딩 크레딧과 특전까지 집어넣어야겠다며 땡깡을 부렸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는 시간 낭비로 보였지만, 막상 결과물을 보니 썩 나쁘지 않았다.
‘어쨌든 추억에는 남겠네.’
나는 길게 심호흡을 내쉬고 말했다.
“그럼 이대로 최 과장님한테 전달할게요.”
“오야.”
“그리고 오늘 저녁에 회식 메뉴 말인데.”
그 순간이었다.
사무실에 정적이 찾아왔는데,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치킨에 맥주 어때요?”
“······ 휴.”
“왜요?”
“아무것도 아니다.”
*
그렇게 몇 시간 뒤.
최 과장에게 체험판 파일을 보내고 적당한 시간이 흐른 무렵이었다.
부우웅.
핸드폰으로 연락이 걸려왔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은 순간이었다.
[대박입니다.]수화기 너머에서 다짜고짜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설픈 축하 인사보다 인상 깊은 한 마디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꽤 괜찮았나 봐요.”
[괜찮은 수준이요? 겨우 그 정도일 리가요. 후. 여기 직원들 전부 다 깜짝 놀랐습니다.]“그래요?”
[네. 사실 지금도 몇몇 직원들은 재하 씨가 보내 주신 체험판 플레이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단순하게 말해서, 재밌네요. 한 달 남짓한 시간에 이렇게까지 만들다니. 솔직히 믿기질 않습니다.]“흐흐.”
입가에서 절로 웃음이 흘러나오는데 최 과장이 떠보듯 물었다.
[좋지요?]“네, 좋습니다.”
심히 흐뭇했다.
광대에 한 번 깃든 웃음이 쉬이 떠날 줄을 몰랐다.
그간의 노고를 한 방에 보상받는 기분.
‘말이 체험판이지, 어지간한 고전 게임 실제 판매제품 수준으로 만들었지.’
대충 80년대 수준의 그래픽과 구성으로, 30분가량의 플레이타임을 뽑아냈다.
아무리 간소화를 했다고 하나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정할 부분은 따로 없을까요?”
[없습니다. 이대로 진행해도 될 것 같네요.]“정말이죠?”
[딴지 거는 사람이 있으면 제가 딴지를 걸겠습니다.]그는 흥분이 덜 식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퀄리티 보니까 직원분들이 엄청나게 갈려 나갔겠는데요?]“그들의 자발적인 선택이었습니다.”
[흐흐. 다음에 사무실 찾아가서 뭐라도 사야겠습니다. 참치 어떠세요?]“아, 참치 좋습니다. 요즘 자주 먹네요.”
[좋은 가게를 찾았거든요. 그리고······ 또 뭐야, 배너 일정도 말씀을 드려야겠는데요. 아마 최대한 빠르게 걸지 않을까 싶습니다. 구체적인 사항은 다음 미팅 때까지 전달 드리겠습니다.]“네,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건승 하십시오.”
그렇게 짧은 통화가 끝났다.
어차피 자세한 대화는 만나서 나누면 그만이기도 하고, 당장은 이만하면 충분했다.
‘기대되네.’
할 수 있는 만큼은 했다.
이제부터는 정말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
그렇게 짧은 시간이 흘렀다.
본격적인 여름이 찾아왔다.
그리고.
한예원의 2학기가 시작되었다.
“졸업전시를 하긴 해야 하는데.”
한설 선배가 중얼거렸다.
“뭐 어떻게 진행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전시장은 알아보셨어요?”
“그게 또 문제인데. 으음······ 졸업전시야 그냥 남들도 다 하니까 나도 하는 거라지만 대충 하기는 싫거든.”
한설 선배는 졸업전시 문제로 머리가 지끈지끈한 듯했다.
하긴, 그녀도 이제 4학년이니만큼 슬슬 졸업전시를 준비할 시기가 되었다.
지금은 JH 디자인의 훌륭한 일꾼이 된 한설 선배지만, 어쨌든 그녀는 작가주의가 강한 사람이었다.
‘애초에 작가 일이랑 겸업하겠다고 했던 거니까······.’
아무리 사소한 전시회라도 대충 하기는 싫은 모양.
가만.
그러고 보니, 여기서 도와주면 가산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머리를 굴리다가 말했다.
“누나, 저만 믿어 봐요. 제가 어떻게든 해 볼게요.”
그렇게 말한 찰나였다.
“풋.”
그녀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
“웃겨. 네가 나 대신 전시장이라도 구해다 주게?”
“못할 것도 없죠.”
“진짜로?”
“네.”
정말로 그랬다.
전시장이라면 마침 생각나는 바가 있기도 했다.
그런데, 한설 선배는 배시시 웃더니 말했다.
“우리 재하, 갑자기 왜 이렇게 기특한 말을 해?”
왜 하긴.
당신이 유능해서 그렇지.
하지만 이런 말은 대놓고 하면 멋이 죽는 법.
나는 한 바퀴 둘러서 말했다.
“이런 게 다 사원 복지잖아요.”
“흐응. 말이라도 고맙네요.”
“고마우면 반찬 좀 싸다 줘요.”
“너 하는 거 봐서.”
그렇게 떠들면서 사무실로 돌아온 순간이었다.
“키야아. 이거지.”
“크으, 이거거든요.”
남운과 상민이 나란히 붙어 사이좋게 감탄을 뱉고 있었다.
이 둘이 사이가 좋다니.
“뭐가 그렇게 신났어요.”
보기 드문 광경에 어리둥절한데, 남운이 나를 보며 말했다.
“야, 너도 얼른 앉아. 우리 배너 걸렸다.”
“배너요?”
“그래. 사장씩이나 돼서 이걸 몰라.”
“저 사장 아닌데요.”
“······ 쓸데없는 데서 꼬투리 잡지 말고. 아무튼, 진짜로 우리 게임이 배너가 걸리는 날이 다 오네.”
나도 재빨리 앉아서 모니터를 둘러보는데, 그의 말이 맞았다.
넥스트 홈페이지에 대문짝만한 배너가 박혀 있었다.
[개발자가 만들고, 넥스트가 돕는다.] [모두와 함께 만드는 게임.]‘벌써 이런 시기가 됐네.’
최 과장에게 사전에 일자를 연락받았음에도 확인이 늦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대이다 보니, 이런 소식을 뒤늦게 접하고는 했던 것.
아무튼, 배너를 클릭하자 가장 먼저 우리의 작품 소개 문구가 대문짝만하게 찍혀 있었다.
-어떤 게임을 플레이하고 싶은가-
[Back to 90s] [우리가 게임을 만들기에 앞서 가장 먼저 고려했던 건, 우리 스스로 게이머로서 어떤 게임을 하고 싶은가 하는 점이었습니다.많은 게임을 플레이했고, 많이 고민했습니다.
또 많이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90년대 오락실.
오락실의 분위기를 풍기는 게임을 만들어 보자.
우리는 모두 90년대 오락실의 불량아들이었습니다.
부모님 몰래 오락실에 가서 동전 하나로 게임을 플레이하는가 하면, 그러다가 학원을 빠지기도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저희가 느꼈던 감동을 여러분에게도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에게 소개하겠습니다.
오락실 감성이 충만한 액션 RPG 게임.
던전 앤 스토리입니다.
–
개발자로서의 포부와 나름의 향수가 느껴지는 소개문이었다.
그것을 읽은 내가 중얼거렸다.
“이야, 사기 잘 쳤다.”
“사기?”
“형 오락실 안가잖아요. 형 오락실 마지막으로 간 게 언제였죠?”
“작년? 아니면 재작년? 기억 안 나는데.”
앞서 했던 말이지만, 남운이나 상민이나 오락실 게임을 그렇게 막 좋아하는 축은 아니었다.
그냥 MMORPG 게임을 만들려다가 기술력의 한계에 부딪혀 노선을 틀었을 뿐.
‘모르는 사람이면 속겠네. 전생의 나처럼.’
어찌 되었든 소개문 아래로 스크롤을 내리자,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게임이 어떤 게임인지 주르륵 적혀 있었다.
이쪽 페이지도 유저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게 설계했다.
‘이런 부분에서 사기 치는 거지.’
게임을 소개한다기보다는, 게임의 제작과정을 소개하는 식으로 적어 놨다.
대학생 넷이서 죽이 맞아 반지하에서 시작했던 것부터, 서서히 멤버를 영입해 규모를 늘린 것까지.
중간중간 이 게임의 프로토타입(원형)이라고 할 수 있을 사진들도 첨부했다.
“이쪽 소개 페이지도 네가 직접 디자인한 거 맞지?”
“넥스트랑 반반 정도요.”
“크. 역시 미대생이라 그런지 사기 치는 기술이 남다르네. 소개 페이지만 보면 무슨 영화 줄거리 보는 것 같다.”
당사자인 코인 소프트 직원들조차 인정할 압도적인 사기.
그리고.
진짜배기는 그 아래부터 적혀 있었다.
[여러분의 손으로 게임 제작에 참여해 보세요.]본격적인 장사의 시작이었다.
실버 (1000원)
– 게임 체험판 다운로드 제공
– 추후 테스트 시 우선 초대권 제공
골드 (10000원)
– 게임 크레딧에 이름을 등재해 드립니다.
– 게임 속에서 사용 가능한 칭호를 지급합니다. (1 계정당 1개)
플래티넘 (20000원)
– 에코백과 대형 포스터를 제공합니다.
다이아몬드 (50000원)
– 마우스 패드
– 실물 패키지
– 실물 엽서
– 실물 달력
– 실물 아트북 사인본을 제공
현실적으로 어려웠던 부분을 제외하고는 거의 반영됐다.
이외에도 이런저런 보상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보상이라면 딱 하나가 있었다.
챌린저 (500000원)
– 게임 속에 후원자의 NPC를 제작해 드립니다.
시간이 걸릴 수 있음.
#20명 한정.
50만 원짜리 후원 보상.
더럽게 비싸다.
최신형 게임기 한 대 가격인데, 이걸로 고작 데이터 쪼가리에 불과한 NPC 한 명이라니.
“세상에 어떤 돈이 썩어 넘치는 사람이 이런 걸 지르겠냐.”
남운이 낄낄 웃었다.
하지만, 나는 그와 함께 웃을 수 없었다.
‘그 돈 썩어 넘치는 사람이 좀 많을 텐데.’
이런 크라우드 펀딩에서 가장 빨리 매진되고는 하는 게 저런 부류의 보상이었다.
나는 슬쩍 떠보듯 물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잘 팔리지 않을까요?”
“나는 안 팔린다는 데 건다.”
“왜요?”
내 질문에 그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라면 안 살 거거든.”
오.
경험주의에 입각한 발언이었구나.
이건 근거가 좀 빈약한데.
“에이, 그래도요.”
“그럴 일은 없다니까.”
“만에 하나도요?”
“앙.”
“그럼요.”
나는 은밀하게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내기하실래요?”
“내기?”
“네. 저거 스무 개 다 매진되면요, 형이 참치 사세요.”
“안 팔리면.”
“제가 사야죠.”
“흠······.”
남운은 막상 내기가 걸리자 주저되는지 주저했다.
어허.
생각이 많으시구나.
나는 그의 고민을 덜어주기로 했다.
“쫄?”
그 순간 남운이 눈을 여포마냥 부릅뜨더니 말했다.
“참치 받고 소고기 추가.”
“무르기 없습니다.”
“무르면 내가 네 동생이다.”
“콜.”
참치랑 소고기, 혹은 동생 한 명을 습득했다.
뜬금없이 찾아온 보상에 후후 웃고 있는데, 한설 선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
얼마 뒤.
대전의 어느 고등학교.
컴퓨터 수업 시간이 끝나며 선생이 말했다.
“수업 끝. 지금부터는 종 칠 때까지 너희 하고 싶은 거 해라.”
“네.”
컴퓨터 수업 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 학생들이 어느 한 자리로 몰려들었다.
“뭐하냐?”
“이거 얼마 전에 새로 나온 게임.”
“와, 이 똥컴에서 돌아가는 게임이 다 있네.”
그들은 지금 어느 게임 이야기로 열을 띄고 있었다.
이 게임의 정체는 바로.
넥스트에서 내놓은 던전 앤 스토리 체험판.
한 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플레이하는 데 고작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게임이었다.
그런데, 이게 마침 학생들에게는 딱 알맞은 게임이었다.
“이거 수업 시작 전까지 깰 수 있나?”
“우리 형 하는 거 보니까 실수만 안 하면 10분에도 깨던데.”
극도로 짧은 플레이타임에.
‘엄마가 사 온 컴퓨터로도 돌아가네.’
사양을 거의 타지 않는 그래픽.
“나도 이거 보내주라.”
그리고 낮은 용량 덕에 친구들 사이에서 돌려서 플레이하기도 수월했다.
물론 불법 복제이지만, 애당초 이 시절의 학생들에게 준법 의식을 기대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도 하였다.
애당초 잘 퍼지라고 노린 것도 있고.
“수혁이 죽었다.”
“비켜. 이번에는 내 차례야.”
“나 한 판만 더 하고.”
“아, 쫌!”
학생들은 고목에 붙은 매미마냥 컴퓨터 앞에 붙어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리고.
같은 일이 전국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던전 앤 스토리는 제대로 공개도 하기 전부터 유저들 사이에서 서서히 녹아 들어갔다.
< 참치 받고 소고기 추가 > 끝
ⓒ 이한이
< 잔소리 많이 하는 동생 >
“와, 설마 이렇게 뜰 줄은 몰랐는데.”
남운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상민도 그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응. 뜨긴 뜨더라도 이렇게 뜰 줄은 몰랐다.”
뜨긴 떴다.
그런데, 이 말에는 해석이 필요했다.
뜬 방향성이 조금 이상했다.
생각해 보니까 조금도 아니고 좀 많이.
“그러니까요.”
나도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불법 다운로드로 이렇게 뜰 줄 누가 알았겠어요. 어이가 없네.”
그렇다.
우리가 만든 던전 앤 스토리 체험판은, 불법 다운로드로 어마어마하게 떴다.
첫날부터 기미가 심상치 않더라니, 입소문을 타고 순식간에 전국의 학생들 사이에서 퍼져 나갔다.
그렇게 불과 일주일.
비공식적으로 집계된 불법 다운로드 수만 계산해서도, 무려 30만을 넘겼다.
‘······ 확실히 이런 환경이면 패키지 게임으로 먹고살기 힘들기는 하겠다.’
30만이면 사실 미래의 어지간한 대박 인디 게임과 비슷한 숫자다.
전 세계적으로 출시한 게임이 30만장 팔리면 잘 팔렸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던전 앤 스토리가 30만장이 나갔다.
이게 일주일 동안 나온 수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고려해 보거든, 얼마나 충격적인 숫자인지 알 수 있었다.
“아, 속 쓰리네.”
규태도 분위기에 편승하듯 중얼거렸다.
“저거 불법 다운로드만 아니었으면 돈 꽤 만졌을 것 같은데. 사업방해로 고발은 못 해?”
“하면 할 수야 있겠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조금 아니꼽기는 해도, 지금은 내버려 두는 게 좋은데.”
“왜?”
“어차피 돈 벌려고 만든 것도 아니잖아. 홍보 효과를 챙겼으면 충분해. 어차피 체험판은 미끼상품에 불과하기도 했고.”
그냥 정신승리로 하는 말이 아니다.
실제로 그러했다.
제아무리 체험판이 잘 나간다고 해 봐야 체험판의 본질은 체험판.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상품에 불과했다.
‘기본적으로 개당 다운로드에 천 원이라고 치면, 30만이라고 해 봐야 3억이지. 여기서 수수료 떼고 뭐 제하고 하면 사실 그렇게 큰 액수는 아니야.’
억이 큰돈이기는 하다.
다만, 앞으로 던전 앤 스토리로 벌어들일 액수에 비하면 티끌이라고 말할 수준인 것도 사실이다.
순이익 수천억.
그게 10년 뒤 이 게임이 매년 벌어들일 액수니까.
“자잘한 건 신경 쓰지 말고.”
나는 남운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보다 오늘 넥스트에서 공식적으로 계정 발급 받았어요. 이걸로 저희 자료 조회 가능하대요.”
“어떤 자료?”
“이벤트 진행 현황이요.”
최 과장에게 요청해서 받아 왔다.
“아, 지난번에 말한 그거.”
남운은 기대된다는 듯 중얼거렸다.
“야. 얼른 보자. 궁금해서 죽는 줄 알았다.”
“잠시만요.”
나는 넥스트에서 미리 일러준 사이트에 들어갔다.
협력사 전용으로 개설된 사이트였는데, 이곳에서 이번 이벤트의 후원액부터 시작해 후원받은 액수와 세부적인 판매 내역을 조회할 수 있었다.
특히, 상품을 구매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이름과 및 기타 개인정보까지 조회할 수 있는 구조였다.
물론 본인들의 동의 하에 이루어진 일.
‘유저 뒤에서 이런 사이트가 돌아가고 있었단 말이지.’
전국의 게이머 중에서 이런 사이트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라도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거대한 비밀을 엿보고 있는 기분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또한, 한 달 남짓한 시간에 이런 사이트를 구축한 넥스트가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지간히 갈렸겠네.’
나는 프로그래밍은 잘 모르긴 하지만.
아님 말고.
그렇게 그 사이트를 띄워두고 이리저리 구경하기를 잠시.
남운이 곧 눈을 깜빡였다.
“······ 뭐가 이렇게 잘 팔렸대?”
지금 그의 눈앞에는.
자그마치 판매액 11억을 조금 넘긴 액수가 당당하게 적혀 있었다.
나는 큭큭 웃고는 말했다.
“그거 보세요. 제가 말했잖아요. 이거 잘 팔릴 거라고.”
“아니······ 그래도 정도가 있지.”
남운은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세상 사람들이 돈이 많나? 무슨 게임에 이렇게 돈을 막 질러. 진짜 돈이 썩어 돌아서 주체할 줄을 모르나?”
“게임 개발자가 할 말이에요?”
“야!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무슨 일주일 만에 이렇게 팔려.”
그는 거의 비명을 지르기까지 하는 게 기뻐하는 법도 잊어버린 듯했다.
나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진정해요. 오히려 기대치보다 안 팔린 것 같은데.”
“이게 무슨 안 팔린 거야. 넌 무슨 20억은 팔릴 줄 알았나 보다.”
“더 팔려야죠.”
“······ 예라이.”
남운이 어이가 없다는 눈길로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나이도 어린놈이 욕심만 그득해서는.”
“나이가 무슨 상관이에요.”
“원래 대한민국에서 발언권은 밥 많이 먹은 순인 거 몰라?”
“그럼 제가 형보다 위죠.”
“왜.”
“제가 형보다 더 많이 먹었을 테니까요.”
“아, 쫌.”
남운이 혀를 끌끌 찼지만, 내 나름대로 진심이었다.
‘11억이라. 그냥저냥 나쁘지 않게 팔렸네.’
적당히 팔렸다.
국내 크라우드 펀딩의 역대 최고 후원액이 30억 조금 안 된다고 했던가.
거기에 비하면 조금 아쉽기는 하다.
아직 넥스트가 그렇게 큰 기업이 아니라는 점이 영향을 끼쳤겠지.
이 시기에는 연간 매출이 1000억도 안 됐다고 했으니까.
‘그래도, 일단 이 정도면 당분간 홍보용으로는 쓸만할 거야.’
10억을 넘겼다.
자그마치 10억.
언론에서 어마어마하게 떠들 게 눈에 훤히 보이는 듯하다.
[발칙한 대학생들의 유쾌한 반란!] [던전 앤 스토리. 대체 어떤 게임이길래.] [오락실 ‘어른이’들이 일구어낸 작은 기적.]“······.”
생각해 보니까 너무 행복회로 같기도 하다.
설마 저렇게 노골적으로 기사를 쓰리라고.
아무튼, 이 자료 내에서 각별하게 눈에 띄는 항목이 있었다.
“형, 여기 보세요.”
“뭐.”
“안 팔린다고 했던 거 있잖아요. NPC 캐릭터 넣는 거.”
50만 원 이상을 후원할 경우, 게임 내에 NPC를 제작해 주겠다고 말한 상품이었다.
그 판매 내역을 조회한 순간이었다.
“······.”
남운이 얼음처럼 딱딱하게 굳었는데, 내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때요. 거의 다 팔렸죠?”
20개 중, 무려 18개가 벌써 팔렸다.
앞으로 2개밖에 안 남았다.
잘 팔리다 못해, 이제 곧 매진될 게 확실한 상황.
“······.”
남운은 굳어있기를 잠시, 영화 속 삼류 악역처럼 단말마를 토해냈다.
“야! 이거 말도 안 돼! 조작이야!”
“조작은 무슨. 그냥 순순히 결과에 승복하고 참치나 내놓으세요. 형이라고 불러도 좋고요.”
낄낄 웃는데, 남운은 아직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는지 중얼거렸다.
“잠깐. 넥스트잖아. 넥스트에서 무슨 수작을 부린 게 분명해. 이것도 구매자 내역 볼 수 있지? 얼른 들어가 봐.”
“잠시만요.”
안 그래도 이걸 누가 구매했는지 조금은 궁금하던 참이었다.
나는 그의 말대로, 50만 원짜리 챌린지 상품의 구매자 상품을 확인했다.
그리고.
나도 굳었다.
“······.”
“······.”
첫 번째로 구매한 사람의 기록이 조금 이상했다.
[연령 및 성별: 40대 남성] [후원 금액: 50,000,000원/입금 완료] [구매자의 메시지: 축하드립니다^^ 건승하세요.]누가 다짜고짜 5천을 던지고 갔다.
그런데, 저기 적힌 이름이 다소 익숙했다.
[후원자 성함: 김종수]“······.”
당혹스럽다.
자기가 제일 먼저 지르다니.
모금 목표액이 1억이니 혼자서 50%를 넣고 본 셈이었다.
어이가 없어서 가만히 있는데,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남운이 중얼거렸다.
“난 이제 기업이 하는 일은 못 믿을 것 같다.”
산타클로스의 진실을 깨달은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였다.
*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중간 미팅을 빙자한 밥 모임으로 최 과장을 만났는데, 그거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기대치가 많이 커졌습니다.”
10일 동안 모인 금액이 자그마치 18억.
반응이 예상을 한참 넘어선 덕일까.
넥스트 입장에서도 상당히 놀란 모양이었다.
“지금 회사 사람들 다 난리인 거 아십니까? 그동안 발표할 신작이 없다고 죽을상이었는데, 어디서 복덩어리를 가져왔냐고 기대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신작 발굴해 보자고 계속 그렇네요.”
“크흠.”
“처음에 그 반대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최 과장은 고소해 죽겠다는 듯 말했다.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다고 합니다.”
“······.”
그렇구나.
빠른 태세 전환은 환영이다.
“어떻게 잘 풀려서 다행이네요.”
“축하드립니다.”
“저야말로.”
“흐흐.”
그렇게 웃으면서 농담을 떨기를 잠시, 최 과장이 한숨을 돌리더니 말했다.
“며칠 뒤에 정식으로 모금 현황과 공식 오픈 행사일정을 공개할 생각인데, 여파가 엄청날 겁니다.”
“언론에 발표할 예정이군요.”
“예. 그렇습니다. 넥스트 마케팅팀에서도 이번 일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도전 정신이 있고, 개발자를 후원하는 회사. 그런 방향으로 밀어붙이려고 하나 봅니다.”
그렇게 말하고 보니 한 가지 회사가 떠올랐다.
“혹시, 엔지 소프트를 의식한 건가요?”
“음, 정확합니다.”
최 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엔지 소프트.
현재 한국 게임계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회사.
부동의 콘크리트 유저층을 가지고 승승장구하는 회사였다.
‘판매전략이 노골적이어서 욕을 먹기는 했지만, 어쨌든 수요층들을 잘 만족시켜주는 회사였지.’
엔지 소프트 게임은 건물주만 할 수 있다고 했던가.
지금 이 시점의 엔지 소프트는, 넥스트의 매출을 몇 배는 뛰어넘는 거대한 회사였다.
넥스트도 나름 엔지 소프트를 라이벌로 의식하면서도 답이 없는 상황이었는데, 좋은 계기가 나와서 즐거운 모양.
“그쪽이 조금 올드한 취향의 고객을 노린다면, 넥스트는 좀 더 젊은 분위기를 지향하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캐쥬얼한 작품을 밀겠군요.”
“당장 지금은 그렇습니다.”
최 과장이 흐흐 웃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밝은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한술 더 떴다.
과장 조금 보태서 생일 맞이한 어린아이 같다.
그가 기뻐하고 있는 이유라면 대충 알 것도 같았다.
‘인사고과에서 좋은 영향이라도 있었나 보군.’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우리가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고 있으니까 이렇게 대하는 걸 수도 있겠지.’
조금만 상황이 나빠져도 돌변하는 경우야 얼마든지 봤다.
넥스트라고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어떤 이유든, 중간다리가 지금 당장 우릴 호의적으로 대해 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나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서울게임쇼가 기대되네요. 부스 준비는 잘 되고 있나요?”
“예. 보내주신 시안에 맞춰서 제작하고 있는데, 수정할 부분이 거의 없어서 놀랐습니다.”
“저희가 이래 봬도 디자인 회사니까요.”
“사실 잘 믿기지는 않습니다만. 그건 그렇고.”
최 과장은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말했다.
“예전부터 궁금한 게 하나 있었는데, 하나만 여쭤도 괜찮겠습니까?”
“제가 대답할 수 있는 일이라면요.”
잠시 뒤.
그가 살짝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 코인 소프트의 대표는 누구입니까?”
“······.”
어려운 대답이 튀어나왔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잠시 눈을 깜빡거렸다.
‘차라리 오늘 팬티 무슨 색이냐고 물어보는 게 대답하기 쉽겠는데.’
코인 소프트의 대표라.
솔직히 말해서, 기존 대표자라고 하면 남운과 상민이었다.
개발자 성향이 강한 남운.
경영자 성향이 강한 상민.
이 둘이 황금 밸런스를 이루며 회사를 성장시킨 것으로 익히 알려졌지 않았던가.
그랬던 것이, 이번 생에는 중간에 내가 끼면서 조금 바뀌었다.
‘지금은 둘 다 개발자 성향이 강해졌지.’
굳이 따지자면 남운이 돌격대장, 상민이 군기반장 정도 되겠다.
시시각각 뻘짓하는 남운을 제동하는 군기반장.
아니다.
잘 생각해 보니 엄마에 가까운 것 같다.
철부지 자식 때문에 흰머리가 느는 엄마.
‘······ 그럼 대표를 누구라고 해야 하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설마 나 아냐?’
최근 들어서는 거의 내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해야 하나.
당장 최 과장과의 미팅 자리에 나 혼자서 나온 것만 해도 그러했다.
[어차피 내가 따라가 봤자 할 이야기도 딱히 없을 것 같은데, 네가 알아서 다녀오고 어떻게 됐는지 결과만 알려줘.]남운이 한 말이었다.
그는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내가 대표라고 자칭한다면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고민하다가 말했다.
“대표가 누군지는 몰라도 제 역할을 말하자면.”
“예.”
소리가 적막하게 흐르는 것만 같은데.
내가 입을 열었다.
“그냥 잔소리 많이 하는 동생 정도 될 것 같습니다.”
“크흐흐흐. 그렇군요.”
그는 자지러지게 웃더니 말했다.
“재하 씨는 술은 안 드시나요?”
“회사에 밀린 일이 있어서요.”
“쩝. 아쉽네요. 예전에는 한잔하면서 업무 이야기 나누는 게 보통이었는데, 요즘은 영업 문화가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그렇게 어색함을 무마하려는 듯 몇 마디를 나누는데, 그가 말했다.
“그럼 앞으로도 코인 소프트에 많은 기대 하겠습니다.”
“예.”
그리고 그가 다시 한번 말했다.
“그래도 한 잔만 하시는 거 어떻겠습니까.”
“과장님도 돌아가서 일을 보셔야.”
“그래서 마시자는 겁니다.”
최 과장이 지극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술을 마셔야 이대로 퇴근할 핑곗거리가 생깁니다.”
“······.”
왜 자꾸 술을 권유하는가 했더니.
이거 농담인가 진담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