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Art Student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66)
두 번 사는 미대생 66화(66/93)
*
며칠 뒤.
“······ 세상에.”
작업실에 방문한 심하윤 대표가 심각하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70평에 가까운 작업실을 한 바퀴 둘러보고는 말했다.
“이게 다 작가님께서 이번에 준비한 작품들이라고요?”
“네. 나름대로 열심히 만들었어요.”
심하윤 대표는 말도 없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내게 말했다.
“작가님이랑 저랑 안 봤던 게 얼마나 됐죠?”
“으음, 길어야 일주일?”
“그렇죠? 그런데 작가님은 그 사이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요.”
“그래요?”
“네.”
그녀는 확신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아예 다른 사람한테 맡겼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네요.”
“······.”
그렇게까지 차이가 나나.
하지만 나도 어느 정도는 그 의견에 동의하는 바였다.
‘뭔가 예전이랑은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단 말이지.’
작품을 만들 때 느끼는 감정이 달라졌다.
작품 하나에 넣을 수 있는 애정의 깊이를 갱신했다고나 할까.
그 깊이를 경험하고 나자, 나머지 작품에도 애정을 불어넣기가 수월해졌다.
다이버가 한 번 깊이 잠수해 보고 나면, 이제 그 깊이는 제집처럼 들락날락할 수 있게 되는 것과도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심하윤 대표가 물었다.
“작가님, 혼자 만든 거 아니죠?”
“네? 네. 어떻게 아셨어요? 설이 누나한테 도움 많이 받았어요.”
“어쩐지. 작품만 봐도 조금 그런 것 같았어요.”
“왜요?”
어리둥절해서 묻는데, 심하윤 대표는 배시시 웃더니 말했다.
“여자의 감이요.”
“······?”
그런 게 있나.
물어보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라 안 물어봤다.
심하윤 대표는 고개를 둘러 다시 한번 작업실을 쭉 둘러보더니 내게 물었다.
“그럼 이대로 전시하는 거 맞죠?”
“네.”
“알았어요. 그럼 여기에 맞춰서 전시장에서 진열을 준비할게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야죠.”
그렇게 서로 고개를 꾸벅인 순간이었다.
심하윤 대표의 시선이 작업실 어느 구석으로 고정되었다.
“저, 작가님.”
“네?”
“저기 저 작품은 어떤 작품인가요?”
“아, 저거요.”
내가 며칠 전에 그린 작품이었다.
이번 전시전에는 설치미술 위주로 진행할 생각이었지만, 저것만큼은 예외다.
연필로 그렸다.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며칠 전에 그린 작품인데요. 한 번 보실래요?”
“당연하죠.”
나는 그 그림을 가져와서는 심하윤 대표에게 보여주었다.
그 순간 심하윤 대표의 눈이 크게 뜨였다.
“저, 작가님.”
“왜요?”
“제가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말했다.
“제가 지금까지 본 작가님 작품 중에서 제일 좋은 것 같아요.”
감탄이었다.
나는 생각보다 별 감흥이 들지 않았다.
왠지 이런 말을 들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요?”
“네. 지금까지 봤던 작품들도 좋았지만, 이 작품은 뭐라고 해야 할까. 그래요. 작가님만 그릴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건 좀 감흥이 드는 칭찬이다.
역시 심하윤 대표.
갤러리 대표답다.
작가의 마음을 구워삶는 법을 아는군.
“이런 작품은 음. 너무 인상이 깊어서 초반부에 배치하면 조금 그렇거든요. 이걸 앞에서 보면 다른 작품들이 묻히고 말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할까요?”
“전시 순서에서 가능한 뒤로 미루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심하윤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확신이 든 모양.
“이번 전시에서 최고를 꼽자면, 저는 이 그림이 될 것 같아요.”
“토마스 킨케이드가 같이 참가하는데요?”
“이게 사실 저한테만 그런 걸지도 모르겠는데요.”
그녀는 뭔가 미묘한 웃음을 짓더니 말했다.
“저는 그 사람 작품보다 작가님 작품이 맘에 들어요.”
“······.”
“취향 문제라는 게 있잖아요. 그냥 제 취향이 그래요. 작가님 첫 전시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어요. 한 방에 꽂혔다고 해야 하나. 이 사람의 작품을 내가 다루고 싶다. 그런 직감을 느꼈죠.”
아.
진짜 칭찬 잘한다.
나는 이 말을 조금만 더 듣고 있으려면 영영 중독될 것 같아서 말했다.
“크흠. 우선은 알겠습니다. 그럼 이걸 어떻게 전시할지는 대표님한테 맡길 테니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제가 책임지고 뭔가 해 볼게요.”
그렇게 전시의 마지막 준비가 끝났다.
슬슬 밥이나 먹으러 갈까 고민되는데, 문득 머릿속으로 호기심이 하나 들었다.
“그러고 보니까 토마스 킨케이드 그 사람은요?”
“으음.”
심하윤 대표는 살짝 신음을 흘리더니 말했다.
“자기 나름대로 뭔가 생각이 있다고 하던데······ 일시는 맞추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는데 일단 봐야 알겠네요. 지금은 연락도 안 돼요.”
“작품 만드느라 바쁜가 봐요.”
“설마 펑크 나지는 않겠죠?”
“에이, 설마요. 그래도 토마스 킨케이드잖아요.”
“그래도 안심할 수는 없어요.”
심하윤 대표는 심오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송태엽 작가님도 처음에는 펑크 낼 줄 몰랐어요.”
“······.”
그렇구나.
이 사람도 뭐든 송태엽을 기준으로 생각하는구나.
하긴, 그러면 여간해서 배신당할 일은 없겠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작가님.”
“네.”
“아까 그 작품 혹시 제목이 따로 있을까요?”
“아.”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말했다.
“아버지요.”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그렇게 다음 달 초가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전시장에 방문했다.
“와.”
“어때요. 진짜 넓죠?”
심하윤 대표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이곳은 국내 미술 전시용 갤러리 중에서 손에 꼽는 시설이라고 할 수 있는 곳.
서울시립미술관이었다.
“설마 여기서 전시를 맡게 될 줄은 몰랐네요. 제 전시는 아니지만.”
심하윤 대표가 웃으면서 말하는데, 내 가슴속에도 심히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이거 레벨업이 너무 빠른 거 아닌가.’
첫 전시가 중견급 갤러리인 그로브 170이었다.
그다음은 갑자기 스위스 아트 페어.
이번에는 서울 내에서 플래그쉽급 전시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 서울시립미술관이다.
‘한국에서 이만큼 휙휙 건너뛰는 사람이 또 얼마나 있을까.’
음.
모르겠다.
확실한 건 내가 특별한 케이스라는 것.
“토마스 킨케이드 작가님 작품은 어떻게 됐나요?”
“사실 이미 도착했어요.”
“벌써요?”
깜짝 놀라는데, 그녀가 말했다.
“네. 지금 저쪽 창고에 보관하고 있는데, 한 번 보시겠어요?”
“저야 좋죠.”
나는 창고로 가서 그의 작품을 확인했다.
그리고.
얼마 전 토마스 킨케이드를 만났을 당시, 그가 나를 통해 얻어갔다는 영감이라는 게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 사람, 화가 맞네.’
< 우물 > 끝
ⓒ 이한이™
< 서울시립미술관 >
서울시립미술관.
80년대부터 서울 예술계의 중심을 지켜온 전시장.
이 전시장의 특징이라면, 특유의 엄격한 선별 과정이었다.
‘어지간한 작가들은 발도 못 들이지.’
작가들의 선별에 각별하게 공을 들인다.
깐깐하기 짝이 없다.
단순히 명성이 드높다고 해서, 돈이 많다고 해서 입성을 허락하는 곳이 아니었다.
이곳에서 전시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작품성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 경력을 가진 작가는, 그 누가 되었든 작가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은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기분이 이상하네.’
토마스 킨케이드야 그럴 수 있다.
아니, 애초에 토마스 킨케이드라면 어느 전시장이든 자기 맘대로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서울시립미술관에 작품을 전시한다니.
쉬이 짐작하기 힘든 일이었다.
“어떻게 제가 여기에 전시를 할 수 있게 된 건지.”
“정말 힘들게 성사시켰어요.”
심하윤 대표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 심사하는 사람들 콧대가 장난 아니거든요. 어지간한 작가님들은 발도 못 들여요. 자기가 잘난 줄 알고 신청했다가 냄새만 맡고 튕겨 나는 작가님들이 한둘이 아니에요.”
“그런데 저는 붙었네요.”
되씹을수록 정신이 얼떨떨한데 그녀가 말했다.
“당연하죠. 토마스 킨케이드 이름을 팔았거든요. 작가님 퇴짜 내면 토마스 킨케이드도 없는 거라고.”
“······.”
아 그렇구나.
뭔가 곁다리 상품이 된 느낌이다.
심하윤 대표는 내 모습을 보고 킥킥 웃더니 말했다.
“농담이고요. 제가 열심히 밀긴 했어요.”
그녀가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한두 번 까였거든요. 그런데 제가 작가님 작품 이야기하면서 계속 들이밀었어요. 이 작가님이 아니면 누가 하겠냐고. 새로운 예술가를 키워 줘야 하지 않겠냐고. 왜 외국에서 온 젊은 예술가들은 우대하면서 국내파는 홀대하냐고 엄청나게 따졌어요. 나중에는 작가님을 모시고 싶어도 못 모실 거라고.”
설움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나는 작은 감격을 느끼면서 말했다.
“대표님이 최곱니다.”
“이 말 들으니까 조금 힘이 나네요.”
“대표님 만세.”
“더 하세요.”
아무튼, 나는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조금 전에 봤던 토마스 킨케이드의 작품에는, 그가 예전에 내게 했던 말마따나 영감이라 불러 마땅할 게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한국적인 작품 투성이로군.’
한국의 정취가 그대로 남긴 일련의 연작이었다.
흔히 한국적인 요소라고 하면 생각할 한옥이나 탈춤 같은 게 아니었다.
일반적인 한국인들이 평생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을 한국인의 정서가 가득했다.
‘이게 한국이지.’
왜 굳이 나랑 여행을 다니자고 했던 건지 알겠다.
그가 보고자 했던 건 관광지 따위가 아니었다.
진짜 한국.
한국인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현실이었다.
토마스 킨케이드는 그 현실 위에 동화라는 조미료를 뿌렸다.
그게 지금 눈앞의 연작이었다.
‘관찰력이 대체 얼마나 좋은 건지.’
말이 쉽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외국에서 몇 년을 살아도 그곳 현지인의 감성을 습득하기란 어렵다.
토마스 킨케이드는 나와 함께했던 하루만으로 그 감성을 겉핥기로나마 훔쳐왔다.
“진짜 괴물이에요.”
심하윤 대표가 넌지시 말했다.
“외국인이 이런 작품을 만들었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이 정도는 해야 세계 최고 소리를 듣는 건가 봐요.”
“그러게요. 저도 갈 길이 한참 멀었네요.”
“굳이 비교하면서 비관적으로 말할 필요 없어요.”
심하윤 대표는 피식 웃더니 말했다.
“제가 아까 말했죠? 작가님 작품은 여기에 전혀 안 밀린다고.”
“진짜요?”
내 추궁에 심하윤 대표는 우뚝 굳더니 말을 흐렸다.
“······ 아뇨.”
“거 봐요.”
“으음. 그래도 아버지라는 작품만큼은 진짜예요. 그건 이 사이에 놓아도 전혀 안 밀릴 걸요?”
과연 어떨까.
봐야 알 것 같다.
하지만 나도 그 작품이 밀리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자만심이 아니었다.
내 오감이 그렇게 말했다.
‘뭐, 결과는 조만간 알게 되겠지.’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대표님, 전시는 언제부터죠?”
“아마 다음달부터요. 기대하세요. 반응이 어마어마할 거예요.”
그래.
남들은 평생을 준비해도 감히 서지 못하는 무대다.
이젠 내 무대가 되었다.
“대표님 최고.”
“더 말하세요.”
*
시간이 흘렀다.
본격적으로 홍보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금세기 최고의 화가 토마스 킨케이드 x 한국의 신예 아티스트 이재하] [빛과 그림자 전(展)] [우리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예술의 미래를 만난다] [그로브 170이 함께합니다]인터넷 포털과 길거리 포스터, 버스정류장.
장소와 매체를 가리지 않고 홍보문이 넘나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헤븐즈 도어에도 한 가지 변화가 찾아왔다.
“와, 이거 진짜 예쁘다.”
토마스 킨케이드 관련 상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훨씬 잘 뽑혔네.’
상대적으로 주문 제작이 간단한 티셔츠부터 시작해, 머그컵이나 텀블러.
액자와 블렌딩 원두까지 판매했다.
물론 전부 Limited Edition이라는 이름을 붙인 채 한정판으로 판매했다.
“그림이 너무 아기자기해. 동화 같다.”
“분명 어디서 본 그림 같은데.”
손님들은 토마스 킨케이드의 그림을 신기해하며, 콜라보 상품을 구매해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속된 말로, 지갑이 열었다.
나는 종로 헤븐즈 도어 2호점에 앉아 커피를 쪽쪽 빨며 그 모습을 구경했다.
‘역시 토마스 킨케이드야. 판매력 하나는 확실하다니까.’
사실, 토마스 킨케이드보다 작품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작가라면 얼마든지 존재했다.
굳이 먼 르네상스까지 갈 것도 없다.
요즘 세상의 작가 중에서도 그보다 작품성에서 고평가를 받는 사람은 많았다.
당장 앤디 워홀이나 키스 해링이 그렇지 않은가.
작품성과 상품성은 조금 다른 이야기였다.
하지만 내가 단언할 수 있는 게 딱 하나 있다면, 그보다 대중성 있는 작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토마스 킨케이드의 작품 세계는 이해하기 쉽지.’
빛난다.
척 봐도 잘 그렸다.
이거 하나면 끝장이다.
실제로 카페에 방문하는 고객은 상당히 높은 비율로 그의 콜라보 상품을 구매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보십시오. 재하 씨 것도 잘 팔리지 않습니까.”
오경진 회장이 내 옆에서 흐뭇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렇다.
내 것도 엄청나게 잘 팔렸다.
“이야. 이게 참 이렇게 되어 버리네요.”
“제가 말했지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나도 당황스러운 수준.
‘이렇게까지 팔릴 줄은.’
사실, 이렇게 잘 풀린 데는 토마스 킨케이드의 영향이 지대했다.
얼마 전 그와 헤븐즈 도어 본점에서 그림으로 승부를 가렸을 당시, 나는 일종의 스타일을 정립하는 데 성공했다.
미래의 인스타 그림체라고나 할까.
그걸 카페 콜라보 상품에 적용해 보았더니, 썩 든든하게 먹혔다.
“신기하네요. 그래도 전 이름 없는 작가에 불과한데.”
“국내에서 인지도가 크게 없는 건 토마스 킨케이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안목이 그렇게 나쁘지 않습니다. 어떤 상품이 좋은 상품인지는 본능적으로 느끼는 거지요.”
“크흠.”
“이게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오경진 회장이 웃더니 말했다.
“작가님의 진가를 알아본 제 안목은 그만큼 더 좋다는 겁니다.”
“······.”
낯간지럽지만 부정하기는 어려운 말이었다.
실제로 눈앞의 광경이 증명하고 있으니.
‘하긴, 인스타 그림체가 카페랑 찰떡궁합이기는 하지.’
현대인들은 그럴듯하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예술을 선호한다.
내 작품이 그러했다.
딱 봐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쉬우면서, 눈이 편안했다.
이건 비단 미술의 이야기만이 아니었다.
‘음악도 그랬지.’
현대 음악의 흐름이 그렇게 나아갔다.
록발라드나 소몰이 발라드 같은 진한 음악이 지배하던 시절이 지나며, 차차 가벼운 이지 리스닝의 시대가 도래했다.
같은 원리로 내 작품도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게 아닐까.
각박한 현실 속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그림으로서.
“이미 입소문을 타고 품절 난 곳도 많다고 합니다. 저희도 사실 놀랐습니다. 수요를 잘못 예측했지요.”
“더 발주해야겠네요.”
“예, 아마 그쪽에서도 당황했을 겁니다.”
오경진 회장이 흐뭇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앞으로는 인기 있는 아티스트가 있으면 이런 콜라보 상품을 자주 발매해야겠군요.”
“전부 한정판으로요.”
“맞습니다. 작가분들이 새로운 시도를 할 때마다, 저희 헤븐즈 도어도 새로운 상품을 내놓을 겁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내가 가져갈 로열티도 상승하겠지.
아.
생각만 해도 신난다.
‘김봉식 아저씨, 연우 선배님, 모두 절 위해 힘내 주세요. 힘.’
나는 한결 편안해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전시 대박 났으면 좋겠네요.”
“물론입니다. 이번 기회에 작가님이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게 됐으면 좋겠군요.”
“에이, 거기까지는 안 바라고요.”
“아닙니다. 헤븐즈 도어 본점을 디자인할 때만 해도 이렇게 될 줄 알았겠습니까. 꿈은 크게 가질수록 좋습니다.”
나는 오경진 회장의 말을 듣다가 생각했다.
응.
반박하지 말자.
어차피 안 듣는다.
무슨 태극권의 달인도 아니고 내가 질 수밖에 없는 화법이다.
치사하겠시리.
*
그렇게 충분한 홍보가 이루어졌을 무렵이었다.
본격적인 전시가 개시되었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 사람이 엄청나게 많네요.”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한국에서 열린 전시라고는 감히 믿을 수가 없을 지경.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대충 감은 왔다.
‘홍보가 예상 이상으로 너무 잘 돼 버렸구나.’
이게 원인이었다.
한국에서 일반적인 사람들이 전시장을 자주 돌던가.
아니다.
정말 유명한 화가가 와도 한산하기 그지 없었다.
‘무료 전시도 그런데, 유료 전시면 더더욱 그렇지.’
당장 옆 나라 일본과 비교해도 그렇다.
그쪽은 유명한 전시가 열리면 입장까지만 해도 둘을 두세 시간씩 서야 할 때가 즐비했다.
하지만 한국은 정확히 같은 전시가 열리더라도 줄을 설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이번 전시도 별 호응이 없을 줄 알았더니마는,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언제 열리지?”
“얼마 안 남았대.”
우글거린다.
내 입장에서는 난감하기 짝이 없는 상황.
왜냐.
[작가와 만나다:이재하]내 위에 붙어 있는 현수막이었다.
그렇다.
나는 이번 전시전 출구 쪽에서 관람객들에게 사인을 해 주기로 선언한 참이었다.
“이거 어쩌죠?”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죠.”
심하윤 대표가 웃었다.
“그래도 걱정하지는 마세요. 작가님이 죽거든 제가 양지바른 곳에 묻어는 드릴게요. 작가님 몸값도 많이 오를 거예요. 원래 작가는 사후에 더 인정받잖아요.”
“······ 너무하셔라.”
“명예로운 죽음이잖아요.”
나는 마음속으로 죽었다고 복창했다.
또, 약삭빠르게 작품 활동이 끝나자마자 미국으로 도망간 토마스 킨케이드를 조금은 원망했다.
‘토마스 킨케이드, 당신이 옳았어.’
그렇게 개장이 시작되고 30분.
전시는 말 그대로 성황을 이루었다.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평생 간직할게요.”
덕분에 내 손이 쉴 일도 없었다.
사인지가 줄어드는 만큼, 내 손의 지문도 닳아 없어졌다.
‘와, 이거 죽겠네.’
놀라운 점이라면, 헤븐즈 도어에서 구매한 상품을 들고 찾아온 사람도 많다는 사실이었다.
또 거기에 사인을 요청하는 사람도 많았다.
‘뭐지? 한정판에 내 사인까지 붙여서 SSR급 한정판으로 만들려는 건가?’
나중에 가격이 조금 오르기는 할 것 같다.
피곤하긴 하다.
하지만, 그렇게 자리에 앉아서 전시를 둘러보고 있으려면 확실하게 느껴지는 사실이 있었다.
‘이번 전시는 성공했네.’
확실히 성공했다.
응.
누가 기획했는데 당연하지.
“나 사진 좀 찍어줘.”
“하나, 둘, 셋. 치즈.”
손님들은 저마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기 바빴다.
그렇다.
내가 의도한 그대로였다.
나는 이번 전시전에서 사진을 찍기 좋은 전시물을 사방에 배치했다.
‘날개 그림자가 생기는 작품, 그림자 괴물이 덮치는 작품.’
전부 사진을 찍기에 특화된 그림자 작품들이었다.
그런데, 그게 반응이 어지간히 좋았다.
‘다른 작품들보다 훨씬 낫네.’
당연하지만 저런 사진 찍기용 작품만 만든 게 아니다.
한 절반은 그림자를 소재로 삼은 일반적인 작품들로 구성해 주었다.
그런데 저런 작품들에 유독 사람들이 줄을 많이 섰다.
특히 연인들이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일이 많았다.
딱딱한 전시회보다는 일종의 놀이공원에 놀러 온 것만 같은 분위기.
‘와, 홍보 제대로 되겠다.’
그렇게 흐뭇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찰나였다.
“저기요.”
한 손님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네. 어떤 사인으로 해 드릴까요?”
“저 혹시 그림도 되나요?”
“좋지요.”
그렇게 내 지문이 계속해서 달아만 갔다.
‘응. 사인회 두 번 다시는 안 해.’
아참.
마지막 순서로 배치한 [아버지]에 관해서인데.
“······ 우와.”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
“흐아아암.”
그렇게 다음날 늦은 점심이 되어서야 일어나서 인터넷을 확인했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기침을 토하고야 말았다.
< 서울시립미술관 > 끝
ⓒ 이한이™
< 해외 진출 >
페이퍼.
한국 부동의 1위 포털 사이트.
그런데 이 사이트의 검색어 순위는, 예로부터 신뢰성에서 어마어마한 의심을 받아 왔다.
조작이다 뭐다 말이 많았지.
그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페이퍼가 어마어마한 광고비를 끌어모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했다.
그럴 만한 파급력이 있으니까.
이거 하나로 충분했다.
‘미래에는 SNS의 힘이 강해져서 좀 빛이 바랬지만, 이 시기의 페이퍼는 한국 최강의 매체라고 봐도 무방하지.’
하다 못해 인터넷 브라우저를 곧 페이퍼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정도이니 더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그런데 이 잘난 사이트의 검색어 순위.
그 순위가 좀 심상치 않았다.
[빛과 그림자 전 – 1위(-)] [토마스 킨케이드 – 2위(up)] [이재하 – 3위(down)]“어?”
정신이 없다.
어제 새벽까지 뒤풀이한다고 무리해서 정신이 비몽사몽 어지럽던 참이었는데, 포털을 보자마자 바로 잠이 깼다.
‘미친. 검색어 순위가 왜 이래.’
안 믿겨서 마른 세수를 하고 다시 봤는데도 눈앞의 광경에는 변화가 없었다.
사실상 이번 전시전이 독점하다시피 했다.
말이 안 되는 상황.
‘예전에 넥스트에서 홍보 막 했을 때도 1위까지는 못 갔는데.’
고작 전시전 하나가 이렇게 힘이 강한가.
헤븐즈 도어가 뒷돈이라도 찔렀나.
아니지.
이게 말이나 되나.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의심스럽다.
혹시 사고라도 터진 거 아닐까.
‘작품이 도난당했다거나.’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긴장하지 마라. 이재하. 그동안 단련된 검색 능력을 보여주는 거야.’
그렇게 본격적으로 검색을 시작하기를 잠시.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논란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배우 이영현 ‘빛과 그림자 전’ 방문 사진으로 대세 입증] [마스크로도 감출 수 없는 미모] [가수 송주도 방문해]몇몇 연예인들이 내 전시전을 방문했다.
그리고 사진을 찍어서 인터넷에 인증 사진을 올렸다.
‘······ 잠깐.’
정신이 한 번 더 깼다.
‘첫날에 연예인들이 이렇게 들렀어? 게다가 이거 하나로 이렇게까지 이렇게까지 검색어 순위를 찢었다고?’
이상할 만큼의 파급력이었다.
하지만 이 세상이 원래 그런 세상이었다.
어지간한 홍보보다도, TV와 그 TV 속에 나오는 연예인의 힘이 압도적으로 강한 시기.
또한, 연예인들만 방문한 게 아니었다.
[이른 아침부터 인산인해를 이뤄] [전대미문의 전시 행렬] [뒤늦게 참아온 사람들 아쉬움을 다셔] [참가까지 1시간? 버틸 가치 ‘있어’]유행을 타고 방문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기사에 실린 사진을 보아하니, 어제 내가 봤던 인파보다도 최소 두 배는 불어난 인원이 시립 미술관 앞에서 줄을 서고 있었다.
‘내 전시가 저럴만큼 대단한 전시였나?’
이제는 그걸 보고 있는 내가 다 신비로울 지경.
한국에서 전시회 대기 줄이 짧다고 누가 그랬던가.
내가 그랬다.
나, 다름 아닌 내가 그랬다.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잘난 아티스트의 전시를 방문해도 줄을 서 본 적이 거의 없었기에.
반면 일본에서는 누구 유명한 사람 전시 한 번 했다고 하면 입장까지 한 시간은 기본이었거든.
그런데 이건 대체 뭔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저렇게 기대감에 차서 방문해놓고, 막상 별거 없다고 내가 욕먹는 건 아니겠지?’
왠지 그럴 것 같다.
응.
무조건 그런다.
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미술이란 원래 호불호가 갈리는 것.
취향은 존중하면 그만이다.
“그보다는, 어디 보자······.”
훨씬 더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나는 다급히 또 다른 기사를 검색해 보았다.
타다닥. 탁.
[헤븐즈 도어]키워드를 치자 검색창 밑으로 연관 검색어가 주르륵 나타났다.
[헤븐즈 도어 콜라보 상품] [헤븐즈 도어 어디에] [헤븐즈 도어 빛과 그림자 전] [헤븐즈 도어 매진]그 마지막으로 적힌 단어.
매진.
이 단어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 키워드를 클릭했다.
그리고 반쯤 혼절하고 말았다.
[카페 프랜차이즈 헤븐즈 도어 콜라보 상품 전국적인 매진 이어져] [구하려고 해도 못 구해] [남은 ‘하나’ 가지려 몸싸움을 벌이기까지 해. 자본주의가 야기한 촌극]하루아침에 세상이 뒤바뀌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곳에는 무려 수십 통의 통화와 그 이상의 문자들이 밀려 있었다.
멍하니 앉아 핸드폰 액정만 바라보고 있기를 잠시.
‘응. 그냥 받아들이자.’
저거 하나하나 연락하는 데만 몇 시간은 걸리겠네.
체념하자 기분이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