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Art Student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79)
두 번 사는 미대생 79화(79/93)
*
적당한 시간이 흘렀다.
[스트로크!]는 다사다난한 과정을 지나 마침내 끝났다.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회식 자리.
술에 취한 장 PD가 크게 외쳤다.
“그동안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으하하하.”
장 PD는 현장에서의 모습과는 달리, 술을 마시자 급격하게 무너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예상외네.’
꼭 저렇게 생긴 사람이 술을 잘 마시던데, 단순히 내 편견이었단 말인가.
장 PD의 모습을 안주 삼아서 마시고 있는데, 임 작가가 내게 물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뭘요, 임 작가님이 고생 많으셨죠.”
“네, 제가 고생 많았죠.”
“······.”
당당하게 인정한다.
아주 맡겨 뒀다는 눈치.
나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많이 힘들기는 했나 봐요.”
“당연한 걸 물어보세요? 작가님도 양심은 있으시나 봐요.”
“이게 그 양심이라는 게 사실.”
“작가님이 말했잖아요. 앙심은 몰라도 양심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음.”
“앙심이 안 생길 수가 없더라고요.”
그녀가 소주를 한 모금에 들이켰다.
많이 힘들었구나.
나는 그녀의 잔에 한 잔을 채워주며 웃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28화에서 끝날 줄은 몰랐네요. 한 40화 넘게도 끌고 갈 줄 알았는데.”
그렇다.
[스트로크!]는 28화로 종영했다.성적치고 상대적으로 빠르게 끝낸 게 아닌가 싶은데, 임겨울 작가는 당연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24화로 기획한 걸 28화까지 끌고 간 것만 해도 대단한 거죠. 편성 꼬인다면서 위에서 말이 엄청 많았어요. 원래는 2편 늘리는 것도 간신히 하는 건데.”
“그래요? 어떻게 해결됐데요?”
“본부장님이 자기가 책임지겠다면서 밀어붙였다던데요.”
음.
최철근 본부장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이 고생하셨구나.
나는 그를 위해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1초, 2초.
끝.
“그래도 나름대로 잘 된 일 아닌가요?”
“뭐가요?”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시청률 40% 넘겼잖아요.”
그렇다.
[스트로크!]의 최종화는 시청률 42%를 기록하며 화려하게 끝을 장식했다.보통 드라마는 30%를 넘기면 대박이고, 40%를 넘기면 초대박으로 취급한다.
42%라면 말할 필요도 없는 수준이었다.
“사실상 작가님 커리어에서 원탑 아니에요? 앞으로는 깨지기 어려울 것 같은데.”
“이 작가님이 미워서라도 깨 버리려고요.”
임 작가가 포부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그녀의 말은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이었다.
왜냐.
시청자들은 점차 지상파 드라마에서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90년대처럼 전 국민이 TV 앞에서 대동단결이 되는 시대가 아니다 보니까 어렵겠지.’
하지만 또 모른다.
내가 드라마를 꿰차고 사는 것도 아니고, 그녀라면 또 뭔가 해낼지 누가 알겠는가.
“응원할게요.”
“어떻게 응원 하나를 해도 이렇게 열 받게 하세요?”
“······.”
저 말에서 열을 받는 게 이상하다.
하지만 이미 반년 가까이 함께 드라마 하나를 촬영하며 가까워진 사이이기에 별다른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렇게 별로 할 이야기가 없다 싶은데, 임겨울 작가가 물었다.
“앞으로 작가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글쎄요.”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직은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은데.”
사실 앞으로 할 일은 진즉 생각해 두었다.
얼마 전에 [스트로크!]의 해외방영이 결정되었다고 들었다.
원래는 큰 기대가 없어서 판권 계약도 어려울 듯싶었는데, 의외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나.
사실상 전생의 루트를 그대로 따라간 상황.
여기서 잘 풀리면 나도 해외 진출이다.
‘성공하면 좋고, 실패하면 어쩔 수 없고.’
이미 한 번 스토리가 완전히 달라진 이상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성공할 것 같다.
왜냐.
열심히 만들었으니까.
‘솔직히 이만큼 열심히 했는데 좀 팔려줘야 하는 거 아냐?’
그리고 아직 일이 끝난 것도 아니었다.
[스트로크!] 방영 중반쯤에 결정된 일이 하나 있었다.작중에 등장한 예술품을 실제로 전시할 예정.
나는 당분간 여기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방송은 끝났지만 제 할 일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쉴 틈이 없네요.”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죠.”
“아, 일하기 지겹다.”
그녀는 툴툴거리더니 말했다.
“나중에 또 비슷한 드라마 촬영할 일 있으면 같이 한번 해 보실래요?”
“언제는 저 열 받는다면서요.”
“시청률이 40%잖아요. 어쩔 수 없죠.”
“자본주의와 타협하셨군요.”
“상업 작가니까요.”
천연덕스러운 그녀의 말에 나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좋습니다.”
그 순간이었다.
“아참.”
임겨울 작가는 무언가가 떠오른 듯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까 그 마지막 작품이요. 아버지.”
“네.”
“그 작품 에피소드는 어떻게 생각하신 거예요?”
주인공 민호가 그의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서 마지막 그림을 그린다는 에피소드였다.
전형적인 신파극 마무리.
그런데 이번 에피소드는 사실상 내가 짜낸 내용이었다.
임겨울 작가가 살을 채웠지만, 뼈대는 내가 제공했다 정도.
“전 개인적으로 아주 감명 깊었거든요.”
그녀의 질문에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제가 부모님이랑 사이가 별로 안 좋았었거든요.”
“그래요?”
“네, 지금은 사이좋은데, 예전에는 서로 원수처럼 여겼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데, 임겨울 작가가 물었다.
“어떻게 회복했어요? 그림으로?”
그녀의 눈빛이 반짝이는데, 나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뇨. 돈으로 회복했죠.”
“······ 좀 깨네요.”
“자본주의잖아요. 돈으로 못 살 건 별로 없어요. 가족과의 화합도 당연히 살 수 있죠. 아무튼, 그래서 부모님과의 관계를 그림으로 회복할 수 있다면 어땠을까 싶었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전생의 나였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해 봤다.
사실, 이 드라마를 만드는 과정 자체에 전생의 내가 이렇게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반영했다.
그 피날레가 이것이었다.
부모님과의 관계를 외면하지 않고, 당당하게 인정받는 것.
‘덕분에 나도 위로받는 것만 같았지.’
이상한 기분이었다.
배우 두 명이 내 그림을 가지고 연기하는데, 그걸 보면서 원작자인 내가 감동해 버리다니.
아무튼, 그러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저는 먼저 들어갈게요.”
“왜요.”
그 모습에 임겨울 작가는 아쉽다는 듯 말했다.
“날이 날인데 좀 더 놀다 가지.”
“내일부터 전시 준비가 급해서요.”
“벌써요? 빠르게 시작하네요.”
“어쩔 수 없죠. 한창 시청자 반응이 화끈할 때 시작하는 게 나으니까.”
전시장소는 이미 정해졌다.
오성 라온 미술관.
그곳의 2층 전시장을 전부 [스트로크!] 특별 전시장으로 이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작중에 등장하는 작품만 전시할 수는 없는 노릇.
나도 내 나름대로 새 작품을 생각해 뒀다.
‘먹혔으면 좋겠네.’
이 작품은.
해외로 진출할 작품이다.
< 남자의 로망 > 끝
ⓒ 이한이™
< 사회현상 >
지난번 내가 [아버지]를 그리면서 크게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었다.
어떤 작품을 만들든,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을 내기 수월하다는 사실이었다.
‘인풋 없이 작품을 만들려고 해 봐야 놀이터 공터에서 돈 줍겠다고 삽질하는 거랑 다를 게 없지.’
주울 수도 있겠지만 보통은 어렵다.
인풋을 채우고 만들면 작품의 깊이 면에서 어마어마한 메리트를 얻을 수 있다.
아무튼, 이번에도 나는 괜찮은 인풋을 채웠다.
[스트로크!]라는 대박 드라마의 내용물 절반.그 거대한 인풋을 이용해서 내가 그리려고 하는 게 무엇인가 하면.
“만화를 그리시는 건가요?”
“비슷해요.”
홍경희 관장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스트로크의 원작 내용을 만화 비슷하게 그려 보려고요.”
만화 비슷한 작품이었다.
만화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다.
‘뭐, 스토리가 담긴 그림을 만화라고 하니까 이것도 만화겠지.’
다만 그림 스타일은 좀 더 가벼웠다.
SNS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누구나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스타일을 지향했다.
앞서 나는 제품을 만들 때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설명했었다.
무엇을 파는가.
누구에게 파는가.
어떻게 파는가.
지금 내가 팔려고 하는 건 예술품이다.
소비자는 [스트로크!]를 재밌게 본 시청자들이다.
‘엄청나게 예술에 관심을 품었다기보다는, 원작의 명성을 따라 가벼운 마음으로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겠지.’
나는 이 부분에 집중했다.
지나치게 무겁게 접근하고 싶지 않다.
가능한 한 누가 와도 재밌게 구경할 수 있는 전시회를 만들고 싶다.
이렇게 생각했을 때 처음 떠올린 게 만화였다.
‘만화만큼 접근성 끝내주는 미술은 없지.’
일본에는 수많은 전시전이 열린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관객 동원력이 좋은 게 만화가들의 전시전이었다.
유명한 만화가라면 수만 명을 동원하는 일도 흔했다.
‘일단 미술을 잘 몰라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좋지. 주위에 어디 다녀왔다고 자랑하기도 좋고.’
내게는 그게 이 그림이었다.
만화 비슷하게 그린 연작.
물론 이것만 전시할 생각은 아니었다.
“미술관 입장부터 퇴장까지 전부 방영 순서대로 채울 거예요.”
“방영순이요?”
“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이번 드라마의 시작부터 끝을 차례대로 전시하는 거죠. 시청자들은 그 과정을 걸으면서 28편의 드라마를 천천히 되새기는 거예요. 이미 드라마를 한 번 봤던 사람들은 추억을 회상할 테고, 아직 본 적 없는 사람들은 작품 하나 본 기분이 들지 않을까요?”
그렇게 미술관을 다녀가서 다시 드라마를 보러 간다면 더 좋다.
마치 무한동력과도 같다.
드라마와 미술관의 반복.
“드라마 촬영에 사용한 소품들과 배우들이 기증한 물건, 그리고 연출 콘티 같은 것도 여기에 전시할 거예요. 제가 그리다가 실패했던 작품들도 빼곡하게요.”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스트로크!]의 주인공 민호가 대학교 첫 수업에서 백지로 제출했던 그림이 있다.그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만들었던 수많은 실패작을 한데 걸어놓을 생각이다.
요는, 뭐든 말을 붙이기 나름이라는 것이었다.
“음, 그럼 헤븐즈 도어랑 콜라보하기로 한 거는요?”
“아 그거요?”
홍경희 관장의 질문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그쪽은 맛보기예요. 고객들이 미술관에 들르게끔 만드는 미끼죠.”
오경진 회장과는 이미 상의를 끝마쳤다.
서울 내 헤븐즈 도어 매장의 절반을 [스트로크!] 콜라보 매장으로 이용하기로 했다.
마찬가지로 콜라보 상품 발매도 결정되었다.
홍경희 관장은 살짝 놀란 듯 중얼거렸다.
“행동이 어마어마하게 빠르시네요.”
“기왕 써먹을 수 있는 거라면 써먹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헤븐즈 도어에서 상품을 구매하면 미술관 할인권을 주는 거군요.”
“네.”
역시 기업 사장이다.
그녀는 피식 웃더니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신성한 미술관 입장 할인권을 카페에서 팔 생각을 하시다니, 작가님도 대단하시네요.”
“너무 상업적인가요?”
“아뇨, 오히려 마음에 들어요. 미술관이라고 굳이 신성할 필요는 없죠. 그냥 물건 놓는 장소잖아요?”
물건 놓는 장소라.
내 생각과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말이었다.
이번 전시는 처음부터 대중에게 좋은 접근성을 제공하는 게 내 목표다.
고급지게 뭔가를 해 볼 생각은 없다.
‘자, 어디 한껏 대중적으로 가 보자. 대한민국 역사에 남을 뭔가를 해 보자고.’
나는 미술관의 향취를 한껏 들이쉬며 말했다.
“이번 전시는 크게 성공할 것 같네요.”
“성공은 당연한 거고, 얼마나 성공할지가 관건이겠죠.”
홍경희 관장은 팔짱을 낀 채로 웃더니 말했다.
“어떻게 보면 작가님은 사업가 기질이 강한 것 같아요.”
“그런가요?”
“예, 이런 말을 하면 조금 실례일 수도 있겠지만, 작가들은 대개 물정에 약하거든요.”
이해할 수 있는 말이었다.
작가들은 대개 물정에 약하다.
어려서부터 좋은 환경에서 그림만 그려온 경우가 많고, 현실적인 취업 문제보다는 자기 작품 세계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또 작가들은 대개 혼자 작업한다.
그 말인즉슨, 저기서 또다시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든다는 말이었다.
‘다소 편견에 가까운 말일 수도 있지만, 현실이 그러니.’
또 저게 작품 활동에 도움이 될 때도 많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나는 미술을 통해 소통을 강조하려고 했는데, 정작 작가들은 폐쇄적인 사람이 많다.
‘개성적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고 보면 내가 좀 별종일 수도 있겠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홍경희 관장이 말을 이었다.
“작가님은 어디 가서 사기는 안 당하실 것 같네요.”
“사기요?”
“주변에 사람이 많으시기도 하고 말이죠.”
“······ 제가 인복이 좋았죠?”
“인복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원래 이런 계획은 생각은 해도 실천에 옮기는 건 별개의 일이죠. 누구나 다 거창한 아이디어는 짤 줄만 알지, 막상 해 보라고 하면 핑계를 대면서 끝내거든요. 그런데 작가님은 주위에 작가님을 믿고 도와주는 사람이 다는 게 대단한 일이지요.”
“그게 사실.”
“평소에 작가님의 행실이 이런 곳에서 드러난다고 봐요.”
홍경희 관장은 나를 보며 말했다.
“제 눈이 맞았어요. 작가님은 조금 더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맞네요.”
“······.”
나는 생각했다.
‘와, 이 사람 자기 할 말만 계속하네.’
내 말을 계속 끊는다.
이게 대화가 맞는가.
일방통행인데.
이 정도면 보험사에서도 100:0을 부를 것 같다.
애초에 남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는 건가.
아니면 자기 말만 하는 게 습관이 된 건가.
아마 후자이리라.
어디 가서 그녀의 말에 함부로 끼어들 간 큰 사람은 잘 없을 테니까.
‘알면 알수록 무게감이 떨어진단 말이야.’
처음에는 위압감에 말 한마디 어렵게 느껴졌는데, 이제는 그냥 옆집 사는 아주머니 같이 느껴진다.
“우리 남편은 미술을 잘 몰라서 이런 걸 보면 시간 낭비라고 하는데, 나중에 한 번 데려와서 보여주고 싶네요. 누구 말이 맞았나 한 번 콧대를 눌러 줘야죠.”
응.
옆집 사는 아주머니 맞는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차이점은 있었다.
저기서 말하는 미술 잘 모르고 집에서는 속옷만 입고 돌아다니는 남자가, 재벌가의 일원이라는 사실이었다.
‘현실성 더럽게 없네.’
나는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
일본 도쿄 신주쿠 구의 한인 타운.
신오쿠보.
그곳에서는 최근 작은 유행이 돌고 있었다.
“아저씨, 스트로크 비디오테이프 없어요?”
드라마가 돌았다.
스트로크는 얼마 전 한국에서의 방영을 끝내고 일본 위성방송에서 방영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좀 감질났다.
‘모처럼 좋은 드라마인데 이미 완결까지 난 걸 기다려서 보라니.’
30대 주부 히토미는 이게 좀 답답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방송을 보고 싶다고 볼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다.
그래서 물어물어 한인타운까지 찾아왔다.
혹시라도 이곳에 오면 녹화본이라도 볼 수 있을까 싶었기 때문.
비록 한국어는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괜찮다.
다음 장면을 볼 수만 있으면 되니까.
나름대로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가 끝내 예상하지 못한 일이 있었다.
“이미 다 나갔어요.”
남들도 다 같은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네?”
히토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아까 연락했을 때는 있다고 했잖아요.”
“그사이에 찾아온 사람이 엄청나게 많습니다요.”
“얼마나 있는데요?”
“한 스무 명 정도?”
“그렇게나 많이요?”
히토미가 눈을 크게 떴다.
설마 드라마가 좀 재밌었기로니, 이렇게까지 찾아온 사람이 많다니.
“어떻게 할까요? 예약하고 가시면 조금은 기다려 드릴 수 있는데.”
“예약한 사람도 밀려 있죠?”
“한 아홉 명?”
히토미는 망치를 얻어맞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아홉 명이라.
엄청나게 많다.
저거 돌아올 시간이면 그냥 다음 방송 기다리는 게 빠를지도 모른다.
‘아, 이거 어쩌지?’
그렇게 이도 저도 못 하는 상황이었다.
뚜루루.
전화가 걸려왔다.
무슨 일인가 해서 보니, 그녀의 친한 주부 아야카였다.
“응, 아야카, 무슨 일이야?”
그렇게 대화를 나누길 잠시.
히토미가 다시 한번 눈을 크게 떴다.
“녹화본을 구했다고?”
아야카가 어딘가에서 녹화본을 구했다는 이야기였다.
심지어 같은 주부들끼리 모여서 상영회를 가질 예정이라는 말까지.
이건 빠질 수 없다.
“응, 지금 바로 갈게. 아저씨, 실례했습니다.”
히토미는 그렇게 드라마를 보러 급히 이동했다.
같은 일이 일본 전역에서 몇 번이고 일어났다.
위성방송에 불과한 [스트로크!]였지만, 주부들 사이에서 빠르게 입소문을 타며 알음알음 퍼져나갔다.
한 번 방송이 떴다 하면 녹화를 하고, 그 녹화를 주부들끼리 둘러보며 다음 방영까지 기다린다.
그런 일이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이 드라마가 그렇게 재밌다더라.”
“글쎄, 이거 보고 있으면 대학 시절 추억이 막 샘솟는다니까? 나는 대학도 안 가 봤는데.”
“아직도 안 봤어? 남들은 다 봤는데.”
“우리랑 같이 보자. 과자만 사와.”
그렇게 2달이 지났을 무렵.
[스트로크!]는 위성방송 드라마 역대 최고 시청률을 갱신했다.말도 안 되는 업적.
이 소식에 [스트로크!]의 판권을 수입한 NTK 방송국은 경악했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위성 드라마가 왜 이렇게 인기가 많아?”
“저희도 분석하느라 애를 먹었는데요. 듣기로는 주부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졌다고 합니다.”
“그게 말이나 돼? 입소문으로 이렇게 퍼진다고?”
“요즘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강동민을 동사마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
이미 드라마의 인기는 부정할 수 없다.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NTK의 국장은 선언했다.
“노는 저을 수 있을 때 저어야지. 방영 끝나면 바로 지상파로 옮겨서 방영해.”
재편성.
위성 드라마로 수입해 온 한국 드라마가 아무리 입소문을 탔기로서니, 지상파로 재편성해서 방영하자는 말이었다.
전례 없는 일에 부하 직원이 놀라서 되물었다.
“국장님, 진심입니까?”
“내가 아무런 말이나 하는 거 본 적 있어?”
솔직히 정신 나간 짓이었다.
방송국에서 편성 하나를 급하게 끼워넣는다는 건, 다른 방송 하나를 미룬다는 말과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반발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국장은 믿는 바가 있었다.
“방송은 시청률만 나오면 그만이야.”
자본주의였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다시 지났다.
[스트로크!]의 일본 시청률은.20%를 돌파했다.
외국 드라마 시청률의 이전 최고 기록을 2배나 뛰어넘은 수치였다.
그렇다.
[스트로크!]는 이미 사회현상이 되었다.< 사회현상 > 끝
ⓒ 이한이
< 뉴 뮤지엄 >
반년의 시간이 흘렀다.
[스트로크!]는 일본에서 대박을 터뜨렸다.그냥 대박이 아니었다.
역대 최고 기록.
동시에 동남아 각국에서도 큰 호응이 이어졌다.
그렇다.
이번 생의 [스트로크!]는 전생의 그 흥행을 그대로 따라갔다.
‘역사는 흐른다.’
이렇게까지 그대로 흘러갈 줄이야.
바라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진짜 이렇게 될지 긴가민가했던 참에 심히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설마 했는데.’
이번 생은 전생과 많이 달라졌다.
나 개인의 변화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사회적으로는 그 이상 바뀌었다.
[캐리커처 클래스 개설] [성인 취미반 오픈] [이번 주말, 가족들과 다 함께 교양 있는 미술인이 되어 보자]헤븐즈 도어가 큰 흥행을 끌었기 때문이었을까, 기존 미술 학원들은 앞다투어 미술 클래스를 개설했다.
적어도 서울에 한해서라면, 이제 미술을 배우고 싶은 사람이 환경 문제로 못 배우지는 않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요즘은 커플들이 주말에 같이 클래스를 다녀오는 유행도 생겼다고 했나.’
비록 아직 걸음마에 불과하지만, 변화가 찾아왔다는 사실은 자명해 보였다.
불과 반년 사이에 찾아온 변화였다.
그리고 마침 내게도 변화가 찾아왔다.
*
한예원 대강당 대기실.
“긴장되죠?”
“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이름도 모르는 총장이 흐뭇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 않습니까. 재하 학생의 학우들에게는 큰 기회가 될 테니 한번 잘 부탁합니다.”
고생은 젊을 때는 사서도 한다.
흔히 쓰이는 말이지만, 사실 나는 그리 안 좋아하는 말이었다.
왜냐.
내가 경험해 보니까 알았거든.
‘고생을 사서 해? 무슨 서민 체험도 아니고 그건 사서 고생해도 되는 사람들 이야기지.’
고생 안 해도 되는데 하는 것과 고생할 수밖에 없어서 고생하는 건 완전히 다르다.
‘당장 대학 생활만 봐도 그래. 없으면 없는 만큼 힘들어.’
매일매일 돈에 쪼들리는 대학 생활의 고통은 겪어 본 사람만 안다.
전생의 나는 학자금 틀어막겠다고 강사 일 뛰느라 바빠서 어디 놀러 갈 생각도 못 했다.
이게 스노우볼링이 된다.
자연히 교내 인간관계가 좁아진 건 물론, 성적 관리를 못 하니 장학금을 받기도 어려워졌다.
악순환의 반복.
‘분명 학기 내내 죽도록 노력한 것 같은데, 졸업할 때는 남들 평균도 따라가기 어려웠지.’
반면 이번 생은 어떠한가.
학비로 얼마나 필요한지 계산도 안 하고 살다 못해, 아예 남의 학비까지 도와주고 있다.
편의점에서 1200원짜리 먹기가 부담스러워서 1000원짜리를 고르는 이재하는 이제 없다.
국밥을 먹어도 특 사이즈를 자연스럽게 추가하는 남자.
그것이 지금의 나다.
‘예술인의 행복은 돈으로 상당 부분 치환된다.’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속으로 삼켰다.
“그럼 파이팅입니다.”
“네.”
나는 입구 문을 넘어 대강당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눈앞으로 2천 명도 넘는 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전부 내 강연을 들으러 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웅성거렸다.
“이재하 맞지?”
“와.”
그렇다.
지금 나는 한예원 대강당에 강연하러 왔다.
‘내가 여기서 잘난 사람이라도 된 마냥 서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런 거 있지 않은가.
강연.
잘난 사람들이 사기 경험담을 늘어놓는 그런 거.
그걸 내가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심지어 한예원 대강당에서 할 줄은 더더욱 몰랐다.
간혹 강연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체 얼마나 인생을 성공했기에 당당하게 설 수 있을까 싶었지.
그런데 지금 내가 섰네.
어쩔 수 없지.
내가 하자고 한 것도 아니고, 이쪽에서 나를 꼬드긴 건데 넘어가 주는 수밖에.
‘사람 엄청 많네.’
이 대강당 수용인원이 2천 명을 조금 넘는다고 들었는데, 내 눈에 보이는 사람은 그보다 더 많아 보였다.
자리가 꽉 차다 못해 바닥에 앉은 사람들도 많다.
학생 아닌 것 같은 사람들도 많은데, 아마 몰래 들어왔겠지.
다 내 이야기를 들으러 온 사람들이다.
‘기대감에 눈 반짝거리는 것 좀 봐.’
나는 길게 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이재하입니다.”
그 순간 사람들의 이목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하지만 긴장하지 않는다.
이미 사람들 시선에 긴장할 단계는 지나도 너무 지났다.
대신 입을 열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을까요?”
이번 강연을 위해 밤새워 외운 첫 번째 멘트였다.
관중들이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 나는 말을 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갑니다. 어머니의 뱃속을 나온 순간부터 그저 사는 게 목적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다가 죽는 게 과연 우리의 바람일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생물학적인 관점을 떠나서, 조금 더 로망 가득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제가 살아가는 이유는 이겁니다.”
그렇게 입천장에 달라붙을 정도로 되뇌었던 이야기를 다시 한번 꺼내려는 순간이었다.
부우웅.
호주머니의 핸드폰이 강력하게 울렸다.
‘핸드폰 꺼 놓는 거 까먹었네.’
이크.
내 실수다.
하지만 아예 안 받기도 그런데.
끊으려고 보니까 전화를 건 사람이 조금 특별했다.
[심하윤 대표님]심하윤 대표였다.
이거 끊으면 분명 삐지시겠지.
나는 이번 강연과 전화 사이에서 무게를 재다가 말했다.
“정답은 1분 뒤에 공개됩니다. 잠깐만 함께 고민해 주세요.”
그렇게 핸드폰을 빠르게 받은 순간이었다.
“······.”
뭔가가 터졌다.
나는 급하게 통화를 정리하고는 말했다.
“다시 여쭙겠습니다. 제가 살아가는 이유는 뭘까요?”
관객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내게 쏟아졌다.
그 다음 순간이었다.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정답은, 세계 정복입니다.”
관객석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농담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지.
‘농담 아닌데.’
이 말만 하면 다 웃더라.
가슴이 아리다.
오경진 회장님은 안 웃었는데.
*
다사다난했던 강연이 하나 더 끝났다.
“후우.”
50분 동안 쉬지 않고 떠들었더니 이마에서 땀이 다 쏟아졌다.
강연이 은근 쉬운 것 같으면서도 피로감이 크다.
적성에 맞는 사람은 이게 재밌다는데, 내 관점에서는 그냥 그림을 한 점 더 그리는 게 나을 것도 같다.
‘말하는 것도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야.’
어떤 야구 선수는 정해진 시간을 넘어 몇 시간씩 추가로도 잘 떠들던데.
어쩌면 그것도 일종의 재능 아닐까 싶다다.
‘그건 그렇고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지.’
나는 다시 한번 심하윤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대표님.”
[작가님.]나는 긴장이 묻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아까 그 말씀 사실이신가요?”
[물론이죠. 제가 해낸 거예요. 아니, 저랑 작가님이 해냈죠.]“농담 아니죠?”
[네, 백 퍼센트 실화, 트루 스토리, 제 말을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그녀가 한껏 웃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국 전시가 결정됐어요. 그것도 뉴 뮤지엄이에요.]그렇다.
미국 전시가 확정되었다.
그 사실을 깨달음과 동시에 입에서 웃음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뉴 뮤지엄이라······.”
[처음 들어보는 곳이죠?]아니다.
몇 번 들어본 장소다.
그동안 미국에서 내로라하는 전시장은 전부 알아봤는데, 설마 내가 모를 리가 있나.
반 년 동안 미국 진출은 내 목표에 가까웠다.
하지만 심 대표가 워낙 기뻐하는 상황이니 한 번 물어보았다.
“네, 설명해 주세요.”
[흠흠, 그래요.]그녀는 헛기침을 뱉더니 말했다.
[뉴 뮤지엄은요. 뉴욕에서 가장 현대적인 전시를 여는 갤러리예요.]“대단하네요.”
[네, 원래 뉴욕은 현대 미술의 중심지다 보니까 가뜩이나 미술관이 많은데, 뉴 뮤지엄은 그중에서도 아예 전시 특화로 만든 곳이라나 봐요.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작품 소장도 거의 안 한다네요. 상설 전시도 거의 없고.]대충 아는 이야기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뉴욕 뉴 뮤지엄.
미국에서 현대 미술의 상징쯤 되는 곳이었다.
‘개최하는 전시의 수 자체가 어마어마하다지.’
뉴욕에는 잘난 미술관이 많다.
그런 만큼 작가의 수도 많고, 쌓이는 작품의 수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옛날 유명 작품들 위주로 굴리게 됐지.’
젊은 현대 예술가들을 외면하게 되었다.
옛 작품들을 계속해서 돌려가면서 거는 데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 발상에서 시작한 게 뉴 뮤지엄이었다.
[가장 최신 작품 위주로 걸자.] [작가의 권위와 경력보다는 미래의 가치를 더 들여다보자.]뉴 뮤지엄에는 이러한 사상이 구석 곳곳에 진하게 배여 있었다.
전시의 기간을 줄이는 대신, 수 자체를 크게 늘렸다.
신인 작가들에게 집중하기 위해 상설 전시(언제나 걸어두는 전시)를 없앴다.
참신함의 극치였다.
‘뉴(새로운 것)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는 곳이야.’
나는 왠지 좋은 느낌을 받으면서 물었다.
“스트로크 전시 이야기인가요?”
[스트로크도 스트로크지만, 작가님의 전시라면 뭐든 환영이래요. 층 하나 안에 넣을 수만 있으면 뭐든 다 마음껏 하라는데요?]“조건이 좋네요.”
내게 자율적으로 맡긴다.
이보다 좋은 일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호기심이 생기는 점이라면 있었다.
“다른 미술관에서는 이야기가 없었나요?”
그렇다.
이곳 외에 다른 곳에서는 이야기가 없냐는 것이었다.
‘스트로크가 아시아 전역에서 워낙 대박을 쳤으니까 눈독을 들일 곳도 많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조용하단 말이지.’
사실 처음부터 미국 전시를 노렸었다.
하지만 통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스트로크 전시가 한국에서 대박을 터뜨리고, 일본에서도 꽤 잘 나갔고, 중국에서도 반응이 좋았는데 미국에서는 별다른 말이 없었지.’
드라마의 명성에 너무 기댄 건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궁금했다.
그동안 전시 관련 업무는 심하윤 대표에게 거의 위임한 상태였는데, 그녀도 열심히 알아보고 있다는 말만 할 뿐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그래서 반쯤 포기한 참이었는데, 갑자기 소식이 들려온 것.
[음, 그게 말이죠.]심하윤 대표는 다소 떨떠름한 목소리로 답했다.
[사실 작가님께서 기분이 나쁘실까 싶어서 감췄는데······ 기왕 일이 풀렸으니까 말씀드릴게요.]“제 걱정은 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네. 당황하지 마세요.]그녀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의 다 거절당했어요.]“······ 네?”
거절을 당했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경력 없는 사람한테 개인전을 열어줄 수는 없대요. 단체전이라면 어떻겠냐고 역제안이 들어와서, 그런 건 거절했어요.]“제가 경력이 없다고요?”
이래 뵈어도 이미 국내에서 굵직한 전시장은 전부 한 번씩 순회했다.
[스트로크!] 전시는 특히 어마어마했다.동원한 사람 수만 말하자면, 한국에서 역대 최대치에 이를 정도.
그런데 경력 없는 사람이라니.
“이상하네요.”
[미국 미술계는 콧대가 높아요. 아직 작가님을 인정하지 않는 걸 거예요.]“······.”
자기들이 나를 인정 안 하면 어쩌게.
그래서 뭐 어쩌라고.
대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직 미국에서 미국식으로 성공하지 않은 한국계 예술가에게는 허락하지 않겠다, 뭐 그런 느낌인가?’
내 추측에 불과하지만 좀 대단하긴 하다.
“그럼 뉴 뮤지엄은요?”
[거기는 도전 정신으로 투철한 곳이라 어떻게 잘 풀린 것 같아요. 오히려 그쪽에서 놀랐어요.]“음.”
어쨌든 저쪽에서 잘하면 그만인 일이었다.
더 큰 전시회에서 거절당했다는 건 아쉽지만, 그렇다고 뉴 뮤지엄이 작은 곳은 아니었다.
살짝 아쉬울 뿐.
‘그냥 있는 데서나 잘하자. 첫 진출이 어렵지, 한 번 길을 뚫어 두면 앞으로도 활로가 생기겠지.’
사실, 굳이 큰 곳에서 전시를 열고 싶었다면 토마스 킨케이드에게 요청하는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싫었다.
유명 작가에게 편승해서 날로 먹었다는 인식을 받고 싶지 않았다.
‘기왕 외국에서 여는 전시잖아. 그런 식으로 해 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어.’
그러니 첫 데뷔는 내 실력으로 어떻게든 해 볼 생각.
나는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말했다.
“대표님, 한 번 뉴욕 한복판에 깃발을 꽂아 보죠.”
모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 뉴 뮤지엄 > 끝
ⓒ 이한이™
< 이재하라는 브랜드 >
이번 생이 시작되고도 벌써 2년 반의 시간이 흘렀다.
한국 예술원 시각디자인과 3학년.
그것이 지금의 나다.
하지만 그간 이룬 일을 따지면 결코 적다고 말할 수 없었다.
‘한국에 클래스 시스템을 유행시켰고, 국내에서 굵직한 미술관은 다 정복했지.’
[스트로크!]의 대박 전후로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한국에서 이제 이재하라는 이름은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내 이름이 붙은 상품은 잘 팔린다.
JH 디자인이 작업한 벽화에는 프리미엄이 따라붙는다.
해외 전시도 열려면 열 수는 있다.
‘일본 아시타 갤러리를 돌았고, 중국 신현대 미술관에서도 전시했다.’
얼마나 잘난 곳에서 여느냐가 문제일 뿐.
내 작품의 흥행성은 기본적으로 보장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미국은 저 국가들과는 완전히 별개의 이야기였다.
“미국 미술 세계를 이해하려면 기본적으로 한 가지 전제를 깔아야 해요.”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국 예술계는 기본적으로 민족주의로 흘러가요.”
“민족주의? 어떤 민족주의? 막 한민족 그런 거?”
규태가 의아해하는데, 나는 설명을 보충했다.
“어느 계통의 예술가인지를 꽤 제대로 따진다는 거지. 내가 미국의 디자인 학교를 나온 미국인이냐, 아프리카계열 미국인이냐, 중국인이냐, 아니면 독일계열이냐 그런 걸 따진다는 거야. 배경 없는 작가로서는 아무래도 어려울 수 있어.”
이게 참 말이 안 되면서도 현실이 그러했다.
인종의 용광로라고 불리는 미국에서 출신을 따진다.
굳이 혈통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대학, 화풍, 유력 컬렉터의 후원 등 아예 저쪽에서 한 계통을 골라서 전시하는 미술관도 많았다.
또 그런 미술관이 꽤 잘 나가기도 했다.
‘당장 yBa가 그래.’
yBa(young British artist).
영국의 젊은 현대 미술가들이 뭉친 집단이었다.
데미안 허스트나 트레이시 어민 같은 영국의 스타 작가들이 그 주요 멤버였는데, 얼핏 보기에는 실력주의 집단 같다.
하지만 그 실상을 보면 절대 아니었다.
“대다수가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 출신에, 광고 재벌 찰스 사치가 의도적으로 작품을 사들이고 마케팅하고 팔아주지. 그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수익이 발생해. yBa는 창의적일 것만 같은 이미지와는 다르게 다분히 의도적인 집단이야.”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식으로든 배경을 가진 예술가들이 득세한다.
아예 맨바닥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흔치 않다.
해외 시장을 노린다면 이런 배경을 이해해야만 했다.
“그런가?”
규태는 그게 또 어려운지 물었다.
“그래도 백남준 같은 작가는 미국에서도 잘 먹히잖아. 그냥 아프리카 소국 출신 예술가들도 있고.”
“그렇지.”
“이건 또 무슨 일인데?”
“규태야, 생각해 봐.”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백남준이잖아.”
“백남준이 왜?”
“생각해 보래도. 예를 들어 마이클 잭슨이 클래식 음악을 전공했다고 쳐 보자, 대박 나겠지?”
“······ 아마도?”
“그거랑 똑같아.”
나는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백남준이니까 통했던 거야. 안타깝지만 한국인이랑 백남준은 별개인 거지. 내가 백남준처럼 할 수는 없어.”
당장은 인정해야 할 부분이었다.
나는 한국 작가다.
아직 미국에서 한국 작가의 이미지는 미진하다 못해, 없는 수준에 가까웠다.
‘백남준은 한평생 한국 미술계를 해외에 알리려고 했지만, 결국 백남준이라는 작가 개인으로서만 성공했지. 아예 맨바닥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거야.’
나라는 한 명의 한국인이 미국에서 먹히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원초적인 고민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