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Art Student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89)
두 번 사는 미대생 89화(89/93)
*
며칠 뒤.
뉴욕 센트럴 파크.
나는 어느덧 전시가 끝나고 한산해진 공원 산책길을 걸으면서 중얼거렸다.
“이제는 사람 좀 많이 빠졌네요.”
“그러게.”
한설 선배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로 막 북적거렸는데.”
“유행은 한철이라더니, 좀 매정하지 않아요?”
“전시 하나를 언제까지 울궈먹으려고.”
“그것도 그래요.”
나는 피식 웃었다.
내가 한국으로 복귀하는 일정을 남기고 며칠 안 남은 상황.
센트럴 파크 전시가 끝났다.
리처드 아이브스 사태 이후 한창 주목이 치솟았을 때는 일일 방문객만 50만 가까이 갔다고 했던가.
대단한 수치였다.
‘어쩌면 앞으로도 다시 없을 수치일지도 모르지.’
그 흔적이 아직도 눈에 보였다.
[RIP Nuclear Lee]저기 저수지 앞에 내 죽음을 추모하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나는 헛웃음을 터뜨리면서 말했다.
“와, 나 언제 죽었대.”
“죽으라고 기원하는 거 아니야?”
“그러게요.”
그렇다.
익명의 누군가가 팻말을 세워뒀다.
그런데 그 주변으로 사탕이나 음료수 및 촛불 같은 게 널브러져 있었다.
엄숙한 광경이다.
내가 안 죽었다는 사실만 빼면 말이다.
‘아무래도 뉴스를 제대로 안 봤나 보네.’
초기에 정보 혼선이 있었다고 했다.
앤소니 에드워드가 혼수상태인 게 아니라, 내가 혼수상태인 걸로 알려졌다고 했나.
덕분에 나를 아예 죽은 사람 취급하는 사람들이 좀 많았다.
[핵폭탄 리의 죽음을 추모합니다.] [우리들의 영원한 핵폭탄을 위해서] [그는 뉴욕의 심장에서 모두에게 기억될 것이다]이야.
감동적이다.
어이가 없어서 눈가를 씰룩이는데 한설 선배가 피식 웃더니 말했다.
“이쯤 되면 예의상 죽어줘야 하는 게 아니야?”
“유서에 누나 이름 적고요?”
“많이 안 바래. 50%만 받을게.”
“칼만 안 들었지 날강도가 따로 없네.”
내 말에 한설 선배가 큭큭 웃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미국에 온 지 얼마나 됐다고 그동안 난리가 아니었네.”
“음, 의도한 건 아닌데 그렇게 됐네요.”
“누가 보면 안 믿을 것 같아. 한국에 돌아가면 막 방송국에서 너 취재한다고 난리일 텐데 그것도 걱정이고.”
“죽었다고 하고 잠적할까요?”
“그것도 나쁘진 않겠다.”
진지하게 고민된다.
한국에서는 나를 무슨 영웅 보듯 하고 있었다.
그냥 잠적 탈까.
잘나가는 예술가들이 괜히 잠적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참.”
그런데 한설 선배는 뭔가가 떠오른 듯 물었다.
“너 다음 전시는 어떻게 하기로 했어.”
“다음 전시요?”
“응, 막 너 초대하려고 줄 섰다면서.”
“으음.”
그렇다.
이 말이 사실이기는 했다.
이번 일이 워낙에 크게 떴기 때문일까.
내 다음 전시를 유치하고 싶다는 미술관들의 초대장이 연이어 날아왔다.
“솔직히 당장 결정하기는 조금 그렇고요. 생각은 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왜?”
한설 선배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지금이 가장 시기 좋잖아. 쇠뿔도 단김에 때랬다고, 그냥 미국에서 좀 더 머무르면서 아예 끝장을 보지?”
“제가 그렇게 강심장은 아니라서.”
일단 미국이 좀 지겹다.
지겨워 죽을 것만 같았다.
‘총기가 없는 나라에 살고 싶다.’
아직도 그 때만 생각하면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우선 한국으로 돌아가서 휴양을 갖고 싶다.
그리고 다음 전시는 조금 더 쉰 다음에, 제대로 된 곳에서 열고 싶었다.
굳이 급하게 결정할 필요는 없지.
선택지는 널리고 널렸으니까.
어디든 고르려고 하면 고를 수 있다.
이건 내게 미술계의 영웅으로서 주어진 권리였다.
‘어디서 할까.’
그렇게 고민하던 참이었다.
아.
결정했다.
“누나, 저 다음 전시 어디서 할지 정했어요.”
“그래? 어디서?”
나는 입을 열었다.
“음, 일단은 MOMA 어떨까 싶어요.”
MOMA.
뉴욕 현대 미술관.
현대 미술의 금자탑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예전에도 여기서 한 번 열자고 말했잖아요.”
그 말에 한설 누나의 표정이 살짝 흔들렸다.
“와······.”
“왜요?”
“아니, 믿기질 않아서.”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말했다.
“예전에는 이런 말 하면 그냥 헛소리로 들렸는데, 이제는 꽤 그럴듯하게 들려.”
솔직히 나도 그렇다.
천하의 MOMA다.
이 세상의 그 잘난 미술가들이 줄을 서는 MOMA.
그런데 전시를 열려면 또 얼마든지 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전시다.
뉴욕 미술관들이 아무리 콧대가 높다고 한들, 이재하를 거절했다는 원성을 듣기 싫다면 받아들이겠지.
그런데 나는 한 가지 아쉬움이 남아서 신음을 흘렸다.
“으음. 생각해 보니까 별로 재미없을 것 같기도 하네요.”
“무슨 재미?”
한설 선배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나는 말을 이었다.
“미국에서 혼자 개인전 열어 봤자 별로 재미없을 것 같아요.”
“······.”
“이제 와서 어디서 개인전을 연다고 뭐 큰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기왕 할 거라면 더 성대하게 재밌는 걸 열어 보고 싶은데요. 콘서트보다는 페스티벌 느낌으로다가. 잘난 사람들도 팍팍 초청해서.”
그렇다.
개인전을 여는 거 좋다.
그런데 해외 땅까지 와서 혼자 지지고 볶아 봐야 딱히 재밌을 것 같지가 않다.
‘원래 게임 플레이어들도 1회차 끝나고 나면 2회차는 즐겜 모드로 하잖아.’
좀 오만한 생각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내 생각이 실제로 그러했다.
‘MOMA 개인전이 말이 개인전이지, 이미 여기서 몸값이 올라봐야 또 얼마나 오른다고.’
한 번 따다 놓은 당상이다 보니 생각보다 마음이 가벼웠다.
그런데 한설 선배는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단체전 열고 싶다는 거지?”
“비슷하죠.”
“그 에이펙스인가 아티펙스인가 하는 사람들이랑?”
“아뇨.”
나는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그쪽은 어차피 전시를 열고 싶어도 못 열어요.”
“왜?”
“제임스 울프 그 사람 폐인 다 됐어요. 뭘 하려고 하질 않던데요.”
제임스 울프 그 사람, 리처드 아이브스의 일을 겪고 난 뒤 심적으로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작품 공급책이 아니냐는 의심까지 샀다나.
아직까진 무혐의에 가깝다고는 하지만, 아직 조사가 끝난 게 아니라서 하루하루 사는 게 사는 기분이 아니라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정했다.
“그냥 제 사람들 모아서, 제가 열고 싶은 전시를 열려고요.”
< [RIP Nuclear Lee] > 끝
ⓒ 이한이™
< 졸업전시 >
다사다난했던 방학이 끝났다.
그리고 나는 한국으로 귀국했다.
이어서 쉴 틈도 없이 한예원 수업에 참석했다.
“이번 강의가 끝난 뒤 위원회에서 전달사항이 있으니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부산하게 흘러가는 강의실에서, 나는 오히려 현실감을 못 느꼈다.
미국에서 지나치게 소란스러운 방학을 보낸 탓이었다.
‘생각해 보면 몇 달 지나지도 않았는데 아주 별짓을 다 했네.’
미국에서 적당한 전시 하나 열러 갔다가, 어쩌다 보니 센트럴 파크에서 전시를 열었다.
그리고 빌런과 추격전까지 했다.
무슨 첩보 영화도 아니고, 보통 사람이 이런 삶을 사나.
‘내 인생의 장르가 현대 판타지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건 좀.’
전생에 소설 커뮤니티를 둘러보다 보면 그런 말이 있었다.
소설에서 현실성은 어차피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기도 했다.
당장 중세 프랑스에 줄리 도비니라는 인물이 있었다.
여자 귀족이었는데, 그녀는 검객 겸 오페라 가수 겸 양성애자였다.
그녀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이게 과연 현실이 맞기나 한지 의문스러울 지경이었다.
거기에 비하면 나는 차라리 낫다 싶다.
‘그래, 내 인생 정도면 무난하다.’
대충 그런 생각을 하면서 멍때리고 있는 사이 수업이 끝났다.
슬슬 짐을 챙기고 일어나려는 순간이었다.
“잠깐만 자리에 남아 주세요.”
강의실 앞으로 나온 조교가 입을 열었다.
“디자인과 학생들에게 있어서 4학년은 특별히 중요한 시기입니다. 어째서일까요?”
마치 누군가 일어나서 답해보라는 듯했다.
그런데 시선이 내게 향했다.
학생들의 눈도 못 박듯 내게 고정한 상태였다.
‘그래,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어차피 1학년 때부터 이럴 때면 늘 나를 일어나게 만들고는 했었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졸업전시회가 있어서 아닌가요?”
“예, 맞습니다.”
조교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졸업전시회는 학부생 4학년간 쌓은 결실을 선보일 기회일뿐더러, 앞으로 사회에 나가면서 내 얼굴을 대변할 명함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시각디자인과 학생이라면 누구나 졸업전시회에 성실하게 임해야 합니다.”
그의 말 그대로였다.
졸업전시회.
4년간 배운 것들을 갈무리하며 여는 전시.
보통 미대에서는 졸업전시를 해야만 졸업을 허락하는 게 규칙이었다.
다른 학과의 졸업논문과도 같다.
‘하기 귀찮다는 점도 똑같지.’
그런데 한예원의 졸업전시회는 타 학교의 졸업전시와 비교해서도 유독 특별했다.
조교가 말을 이었다.
“학과 측에서는 졸업전시 위원회를 결성해서 전폭적으로 지원할 예정입니다. 단체로 해도 좋고, 개인으로 해도 좋습니다. 따로 갤러리를 빌려서 열어도 좋습니다. 지도 교수님의 허가만 받으세요.”
그렇다.
어떤 식으로든 전시만 하면 장땡이라는 점이 달랐다.
‘보통 졸업전시라고 하면 학과 단위로 건물을 대관해서 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한예원은 어떻게 하든 간에 자기 맘이지.’
학부생 때 이미 두각을 드러낸 사람은 아예 그럴듯한 갤러리를 대관해서 홀로 진행할 때도 많았다.
아니면 아트 페어에 내놓거나.
당장 한설 선배가 그런 식으로 했다.
애초에 한예원의 규정 자체가 그렇다.
‘어디서 무슨 짓을 하든 교수한테 허락만 받으면 졸업전시로 인정해 주지.’
자유롭다.
그래서 과 전시와는 달리 따로 노는 사람들이 몇 명씩 나오고는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런 게 흔한 일이라는 말은 결코 아니었다.
인간이란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남이 하는 대로 묻어가려는 성향이 강하고, 졸업전시도 그럴 때가 많았다.
‘혼자 열었다가 아무도 보러 안 오면 무슨 망신이야.’
학부생이 개인전을 열고 사람을 유치할 만큼의 흥행력을 얻기는 힘들다.
또 비싸다.
어지간한 전시장은 대관료만 일주일에 수백은 기본이었다.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차다.
반면, 학부 단위 전시에 업혀 가면 좀 낫다.
‘일단 엔빵이 되니까.’
게다가 한예원의 졸업전시 단체전 정도 되면 보러오는 사람도 어마어마하게 많다.
업계 관계자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보러 들르는 정도.
그러니 굳이 혼자 튀어보겠다고 위험을 감수하려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래.
어디까지나 한설 선배가 이상한 것이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한설 선배가 이상했다.
‘내가 안 도와줬으면 그냥 혼자서 전시를 열려고 했나? 설이 누나도 참 대단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조교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참, 이재하 학생은 교수님께서 부르셨으니까 잠깐만 따라오세요.”
나를 왜 부르지.
*
갑작스럽게 찾아간 학과 사무실.
모처럼 다시 만난 정상희 교수가 싱글벙글 웃었다.
“오래간만입니다.”
“네, 교수님.”
“그동안 잘 지냈지요?”
“예, 물론입니다. 교수님 덕분에. 학과장 취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평소에 그렇게 딱딱하던 그녀가 지금만큼은 웃음을 한껏 머금었다.
마치 귀한 손님을 보는 듯한 눈치.
‘나한테 호감이 있어서? 정상희 교수님이 어떤 사람인데 그럴 리가.’
그녀가 이렇게 웃는 이유라면 알 것도 같았다.
나는 슬쩍 떠보듯 물었다.
“혹시 이번 전시 때문에 부르신 건가요?”
“예, 맞아요.”
역시.
이렇게 될 거라고 짐작했다.
‘내 전시라고 따로 챙길 것 같기는 했지.’
새삼스럽지도 않다.
나는 이미 한예원에서 학부생이면서도 학부생이 아닌 취급을 받는 상황이었다.
오히려 뭐라고 해야 하나.
살짝 간판에 가깝다.
그동안 한예원에서는 어떻게든 나를 행사에 동원하려 시도하고는 했다.
‘거의 다 거절했지만.’
정상희 교수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말했다.
“그동안 학교 측에서 이런저런 요청이 많았지요?”
“예, 교수님.”
“전부 거절했다고 들었습니다.”
정상희 교수의 말에 나는 헛기침을 뱉으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일이 너무 바쁘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이해합니다. 회사 일도 있고, 전시도 있고, 여기저기서 불려 다닐 일이 많았겠지요.”
그래.
많기는 했다.
특히 최근 들어서 많았지.
한국에 입국하고서는 아주 사방팔방에서 불렀다.
[뉴욕에서 ‘톱스타’로 부상한 이재하 공항 입국] [뉴클리어 리, 그의 다음 행보는?]정신이 사나울 정도로 불러댔다.
피곤하던 참이었기에 우선은 전부 거절했다.
그렇다고 언론이 가만히 있겠는가.
나는 한국에도 파파라치라는 게 존재한다는 걸 최근에 깨달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정상희 교수가 내 눈을 직시하며 말했다.
“그냥 바로 말하겠습니다. 학생이 바쁜 건 알지만 학과 졸업전시전에는 참여하도록 하세요.”
“······.”
아.
이 말이었구나.
내가 짐작했던 그 이야기가 맞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녀가 말을 이었다.
“학생이 그동안 학과 생활을 멀리한 건 알고 있습니다. 또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작가로서 보면 교내 생활보다는 작가 생활이 더 중요하니까요. 하지만 사람으로서 보면 또 다릅니다. 졸업전시는 평생을 살아가면서 단 한 번밖에 없는 일입니다. 가급적 다른 학과 학생들과 함께 보내 주었으면 합니다. 이건 학과장으로서의 요청이기 전에, 한예원 선배로서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나름대로 진지한 충고였다.
하지만 나는 그 말 뒤에 깔린 진짜 의도를 알았다.
‘하긴, 과 졸업전시에 내가 끼면 그거 하나만으로도 주목도가 완전히 달라지겠지.’
그렇다.
한예원에서 졸업전시를 열거든 한예원의 행사로 끝난다.
하지만 내가 참여하면 대중의 행사가 된다.
어쩌면 나 혼자서 전시를 여는 게 한예원 학부생 전체를 모아서 전시하는 것보다 화제성이 넘칠 수도 있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끌어들이려고 하겠지.
이 정도는 미리 짐작했다.
하지만 나는 바로 승낙하지 않았다.
“저기, 이미 제가 전시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던 곳이 있어서요.”
진즉 생각해 둔 곳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말에 정상희 교수는 의외라는 듯 물었다.
“어딘가요?”
“그게요.”
다음 순간.
정상희 교수가 눈을 크게 떴다.
“뉴욕 현대 미술관(MOMA)이요.”
“······.”
사무실에 잠시 침묵이 찾아왔다.
이해한다.
졸업전시전을 MOMA에서 한 사람은 한예원 역사상 없겠지.
어지간한 교수급 정도 되어도 MOMA에서 전시를 열기는 힘들다.
개인전은 어림도 없고, 단체전에서 구석에 끼기 힘들 정도다.
나는 분위기를 깨듯 입을 열었다.
“저도 졸업전시가 중요한 건 아는데, 그래서 최대한 좋은 전시 기회를 잡으려고 했어요.”
전시를 열기에 MOMA만 한 자리는 없다.
이 사실을 정상희 교수라고 모를 리는 없을 터.
그렇게 설득이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정상희 교수는 뭔가 고민하고는 말했다.
“꼭 그쪽에서 졸업전시를 열어야만 하나요?”
“네.”
내 말에 잠시 침묵이 찾아왔다.
정상희 교수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는 모양.
하지만 내 의지는 굳건하고 심지는 단단했다.
졸업전시 좋지.
좋아.
‘하지만 나 과에 친한 사람이 별로 없는걸.’
그렇다.
학부 생활 내내 너무 밖에서만 나돌았다.
시각디자인과 동기 중에서 그나마 대화를 나누고 사는 사람이라고는 다 합쳐 봐야 다섯이 안 된다.
이런 상황에 반년 동안 얼굴을 마주하면서 같이 작업하라니.
‘어림도 없지.’
졸업은 한다.
하지만 졸업만 한다.
이게 내 각오였다.
그렇게 무슨 말을 하더라도 물러서지 않겠다고 결심을 다진 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정상희 교수가 입을 열었다.
“학점 관리는 잘하고 있나요?”
“예? 학점이요?”
갑작스러운 말에 의아해하는데,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동안 바깥에서 일이 많아서 학점 관리가 어려웠을 것 같은데, 이 부분은 어떻게 하고 있었는지 듣고 싶군요.”
순간적으로 머리가 굳었다.
학점.
어떻게든 따려고 노력은 하고 있었지.
하지만 워낙 바쁘다 보니 정말 최소한으로만 따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머릿속으로 한 가지 직감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
잠깐.
설마 이 사람, 지금 졸업학점으로 나를 협박할 생각인가.
졸업전시에 참여하지 않으면 앞으로 학점에 깽판을 놓겠다는 건가.
‘아니, 교수씩이나 돼서 왜 이래.’
이게 한국 미대의 현실인가.
아직까진 내 추측일 뿐이었다.
하지만 언제든 실현될 수 있는 게 사실.
‘······ 그래도 협박에는 굴하지 않는다.’
나 이재하.
이미 한예원에서 꿀릴 게 없다.
여차하면 강경하게 나간다.
그런 생각으로 정상희 교수의 눈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이번 졸업전시에 참여하면, 앞으로 모든 수업에서 A+를 제공하지요. 수업에는 출석체크만 해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학점은 어쩔 수 없지.
*
“뭐야, 진짜로 단체 졸업전에 작품 내게?”
규태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와, 나는 너 그냥 무시하고 다른 데서 열 줄 알았는데.”
“어허.”
나는 그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사람이 사람답기 위해서는 사람의 본분을 이뤄야 하듯, 학생에게는 학생의 본분이라는 게 있는데 어찌 그럴 수가 있느냐. 인간이 이득만 따라서 행동하거든 언젠가 큰일을 그르치는 법이야.”
“네가 그 말 하니까 되게 안 어울린다.”
“······.”
그동안 학교생활을 개판 치기는 했다.
갑자기 학과 졸업전시회에 참가하겠다니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 나름대로 할 이유가 넘치는 거래였다.
‘학점 쌓겠다고 수업 듣고 과제 할 시간에 졸업전시용 작품만 몇 점 내놓으면 퉁 쳐주겠다는데. 이걸 무시할 수는 없지.’
그래.
이건 효율성의 문제였다.
사실 졸업전시를 한국에서 여나 미국에서 여나 큰 차이는 없다.
내게는 전시를 한 번 여는가, 두 번 여는가의 차이일 뿐이었다.
‘어차피 여기 내놓은 전시품은 나중에 재활용하면 그만이니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빈 강의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곳에는 학생 약 10명 정도가 미리 자리에 앉아 있었다.
졸업전시 위원회였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기왕 여는 전시다.
그렇다면 잘 열어야 한다.
< 졸업전시 > 끝
ⓒ 이한이™
< 디스카운트 >
“졸업전시 위원회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위원회장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안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 말에 집중하지 않는 듯했다.
대신, 모두 내 눈치만 흘끗흘끗 살폈다.
‘그래, 이렇게 될 줄 알았지.’
계속해서 회의 안건이 올라온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내 눈치를 살핀다.
마치 내가 불편해할까 주의하는 듯하다.
미안하지만 이러는 게 오히려 더 불편하다.
‘이러는 것도 이해는 하지만.’
정상희 교수님이 나를 설득했다.
앞으로 졸업하는데 필요한 모든 학점을 최소한의 출석만 해도 제공하는 조건이었다.
특혜가 맞다.
하지만 이 사실이 알려진다고 해서 불만을 가질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이번 전시는 그런 것이었다.
연극영화과 졸업영화제에 출품할 작품을 찍는데, 거기에 1000만 관객 배우가 학부생으로서 출연한다.
뭐라고 하겠는가.
그냥 우리랑 같이 작업해 달라고 어떻게든 끌고 가야지.
‘이해는 해. 하지만 이건 좀 너무 노골적이지 않나.’
시선이 뜨겁다.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사이에서 위원회의 안건은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그 순간이었다.
“가장 먼저 이번 졸업전시회를 진행할 전시장에 관해서인데.”
위원회장의 말에 한순간 모두의 시선이 번뜩였다.
졸업전시회장.
오늘 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안건이었다.
왜냐.
돈 빨아먹는 하마이기 때문.
졸업전시 자체가 원래 더럽게 돈을 먹어대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비싼 게 전시회장 대관료였다.
‘적어도 일주일에 수백만 원, 그럴듯한 전시장이라면 전시 기간 동안 수천만 원도 나간다.’
시각디자인과 과 인원인 스무 명으로 나눠도 인당 수십에서 백 이상이 나간다.
무겁다.
여기에 도록을 만들고, 브로슈어를 만들고 하면 추가로 수백이 빨려 나간다.
이렇게 비싼 돈을 내서 전시를 연들 꼭 아웃풋이 돌아오리라는 법은 없으니, 돈 없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었다.
‘하지만 전시를 안 하면 졸업도 못 하지.’
사실상 미대의 악습과도 같은 문화였다.
‘그래서 담당 교수의 허락만 받으면 학교 차원에서 지원금을 주거나 알음알음 면제해 주는 경우도 있었고.’
전생의 나도 대관료 때문에 돌아버릴 뻔했다.
그때 이래저래 다 합쳐서 거의 이백을 냈던가.
위원회 놈들이 어디서 내 돈을 횡령한 게 아닌가 의심스러워 불을 질러버릴까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그랬던 게 막상 실무자 입장이 되어 보니까 이렇다.
“일단 내가 조사해 온 회장으로는 아트팰리스가 그나마 접근성에서 좋을 것 같던데. 일주일 대관료는 400 정도 나가고.”
“작년 선배님들이 이용한 인사동 389갤러리도 나쁘지 않아. 위치도 좋고 주변 편의성도 좋고. 대신 조금 비싸더라.”
“얼만데?”
“주당 600.”
계속해서 자료가 나왔다.
하지만 마땅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과 동기들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말하기 부담스러운 액수이기 때문.
“할인해달라고 하면 안 될까?”
“그게 나도 작년 선배님들도 시도는 해 봤는데 거의 다 거절당했대. 저렴하게 해 줘 봤자 몇십만 원 정도라던데. 할인해주는 빌미로 사람들 올라오지도 않는 4층 5층 전시장 내 주는 경우도 있었고.”
“으음. 그럼 오히려 이쪽이 손해인데.”
사람이 살면서 하는 걱정 중 제일 골치 아픈 게 돈 걱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도 전생에는 이런 처지를 겪어 봤던 만큼, 이들의 상황에 심히 공감하는 바였다.
그래서 나름대로 도와줄 방법도 생각은 해 두었다.
‘슬슬 입을 열어도 되겠지.’
나는 머쓱하게 손을 들었다.
그러자 온통 내게 시선이 쏠리는데, 그 순간 입을 열었다.
“저기 혹시 내가 한 가지 제안을 해도 될까?”
“어, 응? 어.”
회의를 진행하던 학생이 말까지 더듬었다.
이게 권력의 맛이구나.
나는 묘한 기분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내가 아는 미술관에 전시를 요청하는 건 어떨까 싶은데.”
“아는 미술관이라면······.”
모두가 내 한 마디에 주목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입을 열었다.
“오성 라온 미술관은 어때?”
그 순간 모두가 움찔했다.
오성 라온 미술관.
현재 한국에서 사립 미술관 중에서는 최상위권의 지위를 가진 곳이었다.
‘저러다 심장마비 걸리겠네.’
학생들이 다 깜짝 놀란 시선이었다.
그래.
지금까지 어디 중소형 갤러리 이야기만 하던 중에 라온 미술관이 갑작스레 튀어나오니까 어처구니가 없겠지.
하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
나는 하던 말을 이었다.
“사실 아직 그쪽에 물어보지는 않았는데. 혹시 의견만 괜찮다면 문의해 봐도 좋은 것 같다.”
“하지만 그쪽 대관료가······ 좀 세지 않나?”
위원회장이 내 말을 마냥 거절하지는 못하고 알딸딸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건 지금부터 따로 협상해 봐야 할 것 같은데.”
아마 비싸겠지.
자세한 건 모르겠다.
그곳에서 이미 여러 번 전시해 봤음에도 나는 몰랐다.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지금까지 거기서 내 돈 내고 전시를 열어본 적이 없으니까.
‘개인전이 아니니까 공짜로 해달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 홍경희 관장님한테 내가 직접 부탁하면 좀 디스카운트를 해주실까.’
해 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안 해준다고 해도 큰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돈은 많다.
내가 적당히 내면 그만이다.
여기 학생들은 지금 몇백 정도의 금액을 비싸다고 느끼는 모양이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전시에 드는 비용 따위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몇백만 원 아끼느라 이상한 곳에서 전시하느니, 차라리 내가 좀 더 내고 말지.’
모든 고급품이 다 그렇다.
일정 가격대를 넘어서고 나면, 가격은 중요한 게 아니게 된다.
스포츠카도 그렇지.
고급 스포츠카는 몇십억을 호가하지만 언제나 예약이 밀려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몇 달간 열었던 전시로 얻은 소득만 해도 천문학적이었다.
‘청사초롱은 에디션 수천 개가 모조리 팔려나갔고, 홍살문도 뉴욕시에서 소장해갔다. 방송에서 그린 작품도 도널드 트럼프 본인이 사 갔지.’
요컨대 지금의 내게 돈이란 문제라고도 보기 어려웠다.
고작 몇백 때문에 이상한 곳에 가면 그게 더 문제다.
그보다는 차라리, 라온 미술관에 일정이 밀려 있지는 않을까 하는 게 더 걱정이었다.
‘전시를 당장 하는 게 아니니까 괜찮겠지만. 그래도 연락은 빨리 할수록 좋겠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일단 그쪽에서 전시를 할 수 있으면 할 거지?”
“하지만 대관료가.”
“그런 건 내가 알아서 하고. 일단 연락부터 한다.”
나는 대충 말을 끊고는 홍경희 관장에게 문자를 남겼다.
그런데 여기서 또 묘한 기분을 느꼈다.
‘내가 재벌 집안 사장님에게 무슨 식당 예약하듯 직통으로 연락을 보낸다니.’
어쩔 수 없다.
그쪽에서 할 말이 있으면 직통으로 달라고 했다.
이쯤 되자 무슨 옆집 아주머니에게 연락하는 기분마저 든다.
[안녕하세요. 관장님, 저 혹시, 라온 미술관 이용 관련해서 문의 좀 드릴 수 있을까요?]그렇게 문자를 보낸 순간이었다.
부우웅.
깜짝이야.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홍경희 관장님]쪽지를 보낸 지 얼마나 지났다고 바로 전화를 거는가.
이 사람 시간 많나.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네, 관장님.”
[어머, 작가님, 혹시 라온 미술관에서 전시 계획이 있으신가요?]오래간만에 들뜬 목소리지만, 상당히 들뜬 목소리였다.
“네. 그게 말이죠.”
그렇게 본격적으로 미술관 대관 이야기를 꺼내려는 참이었다.
[아참, 작가님 미국 전시 축하드립니다. 한국 돌아오셨나요? 왜 연락을 안 주셨어요.]“그게 제가.”
[깜짝 놀란 거 있죠? 당장이라도 비행기 타고 구경하러 가 버릴까 하다가 회사 일이 너무 바빠서 못 갔어요. 너무 아쉽네요. 그래도 인터넷에서 작가님 소식은 봤어요. 매진이라면서요?]“네, 그게.”
[그리고 또 리처드 아이브스 작가랑 어떤 일이······.]음.
이 사람 여전히 남의 말을 안 듣는다.
자기 말만 한다.
‘수다를 다 들어주고 있다가는 끝이 없을 것 같은데.’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녀의 말을 끊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래도 될까.
재벌인데.
고민된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위원회 사람들이 나를 썩 어색한 눈치로 바라보고 있었다.
“······.”
민망하네.
그래.
언제까지 남한테 기죽을 거야.
나 이재하다.
미국 재벌 앞에서도 할 요구 다 했던 이재하.
나는 각오를 다지고는 말했다.
[게다가 또 최근에 저희 남편이······.]“저기 관장님.”
[네?]“이번에 라온 미술관에서 전시를 열고 싶습니다.”
[아하. 그러시구나.]홍경희 관장은 웃더니 말했다.
[미리 말씀을 주시지 그러셨어요.]했는데요.
첫 마디가 그거였는데요.
[저 혼자서 너무 떠들었네. 부끄러워라.]그야 자꾸 자기 할 말만 하셨으니까요.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그녀에게 대화의 흐름이 넘어가기 전에 말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저 혼자서 여는 전시가 아니에요.”
[그럼요?]“제 학교 동기들이랑 다 같이 졸업전시회를 열려고 해요.”
[라온 미술관에서요? 한예원 동기들이랑 여는 건가요?]“네, 하지만 무료로 하려는 건 아니고요. 대관료를 말씀 주시면 좋겠습니다.”
[아, 그러시구나. 저는 또 무슨 일인가 했네요. 단체전이면 전시 면적은 어느 정도 필요하죠?]“최대 20명 정도가 들어가니까, 적어도 70평 이상 필요할 것 같아요.”
[그렇게 막 넓을 필요는 없겠네요? 잠시만요. 잠깐 일정 좀 볼게요.]잠시 뒤.
그녀는 상큼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침 7월 초부터 B홀이 비어 있으니까 그때 쓰세요.]“네?”
뭔가 너무 빠르게 답이 나왔다.
나는 어리둥절해져서 다시 물었다.
“잠시만요. 쓰는 건 좋은데 대관료가.”
그런데 홍경희 관장은 웃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 사이에 무슨 그런 걸 받아요. 지금 미술관 홍보도 사실 작가님께서 해 주신 건데요.]“······.”
무슨 그런 걸 받기는요.
적어도 몇천만 원은 나갈 대관료를 굉장히 푼돈처럼 말씀하시네요.
물론 누구 입장에서는 푼돈이 맞긴 하겠지만.
나는 목 끝까지 올라온 말을 간신히 참으며 말했다.
“제가 그렇게 받기만 하면 너무 죄송한데요.”
[우리 사이에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에요.]“······.”
우리 사이가 어떤 사이길래.
[정 고마우시면 나중에 그림 한 점만 그려주세요. 그거면 돼요.]아.
이게 본론이었구나.
마음의 빚을 지워서 작품 하나 받아내는 거.
‘역시 수완이 있는 사람이야.’
역시 공짜로 뭘 해줄 리가 없지.
나는 새삼스럽게 그녀가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느끼며 말했다.
“네, 그럼 그렇게 알겠습니다.”
[조만간 한 번 만나서 이야기나 듣죠. 미국에서 전시하셨던 그런 거 저도 궁금했는데요.]“네, 관장님, 조만간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전 회의가 있어서 끊을게요. 다시 연락할게요. 그때 자세히 이야기 나눠요.]그렇게 순식간에 통화가 끝났다.
몇 분도 안 되는 짧은 통화로 라온 미술관에 공짜로 전시할 기회를 얻었다.
얼떨떨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위원회 학생들의 기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라온 미술관에서 전시해도 된다네.”
“······ 지금 예약 잡았어?”
“응.”
위원회장이 조금 당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거기 대관료가 장난 아닐 것 같은데.”
“그게 말이지.”
나는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무료로 해주신다더라.”
“뭐?”
“일단 상세한 일정은 7월쯤으로 잡고.”
“······.”
잠시 말이 없었다.
위원회장은 뻣뻣한 동장으로 주위를 둘러보더니 말했다.
“너는 도록이랑 브로슈어 비용은 내지 마라.”
“낼 수 있는데.”
“아니, 내지 마.”
응.
디스카운트 해 줘서 참 고맙다.
그 돈으로 국밥이나 사 먹어야겠다.
< 디스카운트 > 끝
ⓒ 이한이™
< 호랑이가 될 상 >
일정이 확정되었다.
한예원 시각디자인과 졸업전시회는 오성 라온 미술관에서 전시하기로 했다.
가장 큰 안건이 끝났다.
남은 것들은 대관에 비교하면 자잘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들인데, 나는 딱히 수고스러울 일도 없었다.
“그럼 홍보 포스터는······.”
“우리가 할게.”
“팜플렛은?”
“그것도.”
모조리 졸업전시 위원회에서 알아서 하겠다고 한다.
‘이것 좀 봐라.’
조금이라도 내가 할 일이 있으면 끼어들어서 저지하는 것이, 마치 내 손에 물 한 점 묻히지 않겠다는 듯했다.
사실 내 입장에서는 이게 묘하게 아쉬운 점이기도 했다.
왜냐.
내 전시를 연다면 굳이 학부생의 손에 맡길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기왕 제대로 일을 벌인다면 JH 디자인을 통해서 작업하는 게 훨씬 더 낫다.
프로와 아마추어는 다르니까.
학부생이 제아무리 포텐셜이 뛰어나 봐야 학부생이었다.
한예원이라도 예외는 아닌데, 이건 선택과 집중의 문제였다.
‘학부는 원래 이것저것 찍어 먹어 보는 시기니까, 돈 벌기 시작하면서 아예 외길을 파고드는 프로를 이기기는 어렵지.’
내가 작정하고 내 의견을 밀어붙이면 이들은 말 그대로 안락한 승차감을 누릴 수 있을 터.
하지만 나는 굳이 그러지 않았다.
“그럼 일단 위원회 조 구성을 나눠야겠는데, 각자 지망하는 팀이 있으면 손 들어.”
위원회장이 말을 열자, 학생들이 차례차례 손을 들었다.
그 과정을 보고 있으니 즐거웠다.
‘이러는 게 다 추억이지.’
나는 알았다.
학부생들이 이렇게 졸업전시 위원회를 꾸리고, 함께 작업하는 과정 자체가 정말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도록을 만들기는 만들어야 하는데, 구성은 어떻게 하지?”
“내가 작년에 졸업전시회에서 일한 선배님 아는데, 도와달라고 꼬셔 볼게.”
“그럼 나는 다른 학교 애들한테 부탁해서 도록 좀 받아올게.”
편집팀.
“전시장에서 각자 배치할 때 어려울 것 같은데.”
“내일부터 나랑 갤러리 좀 돌아다니면서 구경하자.”
“인사동 먼저.”
기획팀.
“졸업전시니까 그래도 뭘 남기기는 남겨야겠다. 영상 좀 아는 사람?”
“나 연극영화과 애들이랑 친한데 그쪽에 물어봐야겠다.”
영상팀.
그 외에도 홍보팀과 회계팀.
“예산이 남아돌 것 같은데.”
“그럼 남는 돈으로 뒤풀이나 크게 하자.”
모두가 즐겁게 떠들면서 논의를 나눴다.
가진 게 없고 모자라도 각자 할 일을 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 과정이 중요했다.
이들은 훗날 사회에 나간 뒤 때때로 이번 전시를 떠올리리라.
그리고 옛날에 그런 때도 있었다면서 웃겠지.z`
여기에 내가 도와주겠다고 끼어들어서 잘난척하면 어떻게 될까.
‘편해지겠지. 그리고 남는 게 없어지겠지.’
졸업전시가 일개 전시와 다를 게 없는 물건이 된다.
그래.
나는 배려라는 이름으로 이들의 추억을 뺏고 싶지 않았다.
‘정상희 교수님이 참여하라고 했던 이유를 조금은 알겠네.’
얼마 전 정상희 교수님이 내게 했던 말이 있었다.
[학생이 그동안 학과 생활을 멀리한 건 알고 있습니다. 또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작가로서 보면 교내 생활보다는 작가 생활이 더 중요하니까요. 하지만 사람으로서 보면 또 다릅니다. 졸업전시는 평생을 살아가면서 단 한 번밖에 없는 일입니다.]그 말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나도 이번 전시를 무시하고 개인전을 열었더라면, 나중에 조금쯤은 후회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사실 전생에도 졸업전시회 참여는 해 봤다.
그래서 더더욱 빠지려고 했던 게 있었다.
힘들기만 할 뿐 보람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게 졸업전시라고 생각했으니까.
허울밖에 없는 전시라고 느꼈으니까.
그런데 어째서 지금은 이렇게까지 느낌이 다른 걸까.
이유라면 알 수 있었다.
‘마음의 여유 문제겠지.’
전생의 나는 뭐라고 해야 할까.
세상 모든 일에 필사적이었다.
과 동기들에게 실력으로 이기고 싶었고, 어떻게든 취업에 성공하고 싶어서 아득바득 포트폴리오를 채웠다.
그러면서 학원 일까지 병행해야 하니 정말 힘들어 토할 지경이었다.
그랬던 내게 졸업전시는 돈 먹는 하마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다.
이제 내게 졸업전시는 선택의 문제가 되었다.
‘이번에도 전시 때문에 힘들어할 애들이 있겠지.’
적어도 대관비는 내가 깔끔하게 지워줬다.
할 만큼은 해 줬으니까 나머지는 알아서 하겠지.
‘이제부터는 나도 남들 하는 만큼만 묻어가야겠다.’
그런데 위원회장은 그게 아닌 듯했다.
“재하야, 너 이번 주 주말에 시간 괜찮아? 일단, 라온 미술관에 한 번 들러서 보기는 봐야 할 것 같은데.”
“아마도?”
“그럼 다들 이번 주말에 괜찮지?”
“······.”
얘는 무슨 내 의견을 먼저 물어보고 다른 사람들 의견을 묻냐.
내가 안 된다면 일정 자체를 바꿔 버릴 기세다.
내 의견이 그렇게 중요한가.
‘와, 무슨 귀족이라도 된 기분이네.’
압도적인 우대감.
옆을 돌아보자 규태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왜 내 덕인데 네가 신났니.’
이걸 호가호위라고 하던가.
규태야.
너는 호랑이가 될 상은 아니구나.
안쓰럽다.
하지만 네가 그걸로 만족한다면 나는 괜찮단다.
이쯤 생각하고 있는데 위원회장이 말했다.
“그럼 일단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고, 앞으로는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진행하는 상황만 확인하자.”
대충 회의가 끝났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바깥으로 나가려는 참이었다.
“야.”
누가 나를 불렀다.
보니까 아까 회의에서 조용히 있었던 학생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적당히 왜소한 체격에 음침해 보이는 남학생이었다.
‘이름이 오태석이라고 했나.’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기다리는데, 오태석은 뭔가 각오했다는 듯 말했다.
“너 혼자서 잘난 것처럼 굴지 마.”
“······.”
그런 적 없는데.
오태석은 그 말을 하더니 내가 뭐라고 반응할 틈도 없이 저 멀리 뛰어갔다.
그러다가 다리를 살짝 헛디디더니 중얼거렸다.
“아이 씨.”
그는 그러고는 나를 한 번 돌아보더니, 쪽팔린 듯 이를 악물고는 다시 뛰어갔다.
‘이야, 저거 캐릭터 확실하네.’
나 지금 견제당한 건가.
갑작스러운 일에 어리벙벙한데 규태가 말했다.
“아까 그 말 들었지? 새겨들어.”
“······.”
내가 호랑이 자식을 길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