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Art Student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90)
두 번 사는 미대생 90화(90/93)
*
적당히 시간이 지났다.
졸업전시 일정이 완전히 확정되었다.
또 전시 테마도 결정되었다.
간단했다.
‘시간.’
제일 흔해 빠진 테마였다.
원래 졸업전시라고 하면 테마를 정해서 다 같이 색깔을 맞추는 경우가 잦았는데, 그중에서도 시간은 제일 흔했다.
‘이상한 부분에서 개성이 없네.’
뭐, 괜찮다.
남들도 다 하는 거니까.
하지만 나는 곧 소소한 문제점 하나를 발견했다.
‘그러고 보니까 시각디자인과다운 전시라면 뭐가 있었더라?’
그렇다.
시디과 졸업 전시에서 어떤 전시를 해야 하는가.
이게 은근히 골치 아팠다.
새삼 생각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해 왔던 전시는 시각디자인과다운 일과는 갈래가 좀 달랐다.
오히려 회화과 쪽에 가깝지 않을까.
시각디자인과 하면 떠오르는 제품 패키지, 포스터, 일러스트, 환경 디자인, 영상 등등은 지금까지 내가 했던 것들과 다소 거리가 있었다.
“이거 묘하게 어렵네.”
“왜?”
규태의 질문에 내가 팔짱을 끼고 소파 위로 몸을 기댔다.
“안 했던 거 하라니까 좀 그래서.”
안 하던 걸 하라니까 어렵다.
학부생 수준이니까 굳이 어마어마한 뭔가를 준비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게 또 어렵다.
안 쓰던 근육을 쓰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영상이랑 환경은 하기 싫고, 포스터는 뭐 나쁘지 않아. 하지만 팍 꽂히진 않아. 그럼 남는 건 일러스트랑 제품 디자인인데.’
뭐든 아이디어 자체는 있었다.
전생에 이미 한 번 해본 일.
다시 하라고 한들 못하겠는가.
‘텀블러를 끝장나게 만들어 볼까. 아니면 벽화에서 사용했던 디자인들을 응용해서 액자를 만들까. 일러스트가 역시 범용성이 높아서 좋아.’
아이디어 자체는 넘쳐흘렀다.
그런데 정말 고민은 따로 있었다.
‘뭘 해야 하는가.’
이게 고민이었다.
‘대충하기는 싫은데.’
나는 한숨만 뻑뻑 내쉬다가 옆을 돌아봤다.
그러자 규태가 스케치하고 있는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패션 디자인?’
옷 디자인이었다.
조금 현대적이면서도 전통적인 디자인을 가미한 게, 예전에 뉴욕에서 했던 디자인의 연장선이었다.
그런데 훨씬 더 세련되게 바뀌었다.
뉴욕에서 지내면서 영미권의 느낌을 많이 흡수한 덕분일까.
군더더기가 많이 사라졌다.
승부를 앞두고 체중감량에 들어선 복서를 보는 것 같다.
‘실력이 확확 느네. 얘가 그래도 한예원 학생이 맞긴 맞구나.’
나는 그걸 지켜보다가 물었다.
“그건 또 뭐야. 미국에서 내놓을 디자인?”
“미국?”
“너 뭐 거기서 이런저런 제안 좀 받았잖아.”
“아, 그건 그랬지.”
규태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그런데 그건 아니고, 그냥 이번 졸업전시 때 출품할 작품인데.”
“패션 디자인을 졸업전시에?”
순간적으로 눈가가 꿈틀거렸다.
얘가 패션 디자인과로 전과를 했나.
아닌데.
지난번 졸업전시 위원회 때도 나랑 같이 출품했잖아.
나는 무슨 생각인가 싶어서 물었다.
“옷 만들어서 내놓게?”
“아니.”
“그럼?”
“시안만 잔뜩 그린 다음에 편집해서 일러스트나 포스터 디자인이라고 사기 치게.”
“······.”
규태야.
그런 생각을 하였느냐.
나는 뭐라고 반박하려다가 말았다.
‘하긴, 어쩌면 이게 가장 규태다운 졸업작품일 수도 있어.’
꼭 시각디자인과 전시라고 해서 남들 하는 방향성을 따라갈 필요가 있나.
애당초 시각디자인이라는 것은 미대 내부에서도 꽤 다루는 분야가 넓은 학문이었다.
‘코에 끼면 코걸이고, 귀에 끼면 귀걸이지.’
덕분에 졸업전시회를 보러 가도 통일성이라고는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
이번 전시의 테마인 [시간]도 이런 이유로 정한 것일지도 몰랐다.
어차피 무슨 테마를 주든 맘대로 할 거 아니까, 그럴 바에야 대충 범용성 있는 테마로 던진 것.
그러니 지금 규태가 하는 것처럼 패션 시안만 잔뜩 그려두고 졸업작품이라고 주장하더라도 안 될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교수님 허락만 받으면 끝이지.’
그런데 여기까지 생각이 닿은 순간이었다.
‘가만. 그렇다는 말은······.’
뭔가가 떠올랐다.
나는 뭐라고 말을 하는 대신 스케치북을 꺼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하게?”
규태가 물어보는데 나는 씨익 웃고는 말했다.
“졸업작품 좀 만들고 온다.”
*
졸업전시 도록을 둘러보면 어느 학교 어느 학과에나 Be 동사처럼 붙어 다니는 키워드가 있었다.
[4년]저 멘트가 빠지지를 않았다.
하지만 딱히 거창한 의미가 담긴 말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졸업전시에 학부생 4년 간 배운 것들을 내놓는다는 말이었다.
‘4년에 졸업하는 사람 비율이 얼마나 될라나.’
이 4년이라는 게 중요하다.
인간의 창의성은 거기서 거기다.
막 엄청난 테마라고 해서 기똥찬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요컨대, 인간은 원래 하던 일을 잘한다는 말이다.
학부생 내내 했던 일 말이다.
‘나도 그냥 하던 거나 해야겠다.’
앞서 한번 말한 것이 있었다.
누구나 가슴 속에 우물을 품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래.
그 우물에 어떤 물건을 채워두었느냐에 따라서, 앞으로 어떤 작품을 내놓을 수 있는가가 달라진다.
[아버지]도 그러했다.좋은 경험을 담아 만든 덕에 훌륭한 작품이 나오지 않았던가.
‘생각해 보면 제임스 울프한테 그 돈 받고 넘긴 게 조금 아깝기는 하네.’
지금 돌이켜 보면 그의 투자는 대성공이었다.
뉴 뮤지엄에서 작품을 걸었을 때만 해도 일개 가능성 있는 신인이었던 내가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가.
불과 몇 달 사이에 그때와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몸값이 뛰었다.
제임스 울프는 설마 몰랐을 것이다.
물론 나도 몰랐다.
알았으면 안 팔았지.
아무튼, 미국에서 작업하며 쌓은 인풋이 있었다.
현실에서 있으리라고는 말도 안 될 만큼 화려했던 경험이었다.
나는 지금부터 그것들을 자서전의 형식을 빌려 그려내 볼 생각이었다.
‘글은 내가 쓰고, 일러스트도 내가 그린다.’
내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궁금한가.
주겠다.
내 책을 사라.
‘마침 편집 디자인이라고 적당히 돌려서 말하기에도 괜찮겠네.’
원래 책이라는 게 그러했다.
시각디자인과의 꽃, 편집 디자인.
책의 표지나 레이아웃, 내부 삽화 등을 다루는 분야였다.
그걸 책 한 권으로 못 낼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중요한 건 안에 들어갈 내용물인데.’
일러스트집처럼 만들고 싶다.
글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일러스트 위주로 그려서 뽑아내고 싶었다.
‘가끔 졸업전시에 동화책을 내놓는 애들도 있었잖아.’
어쩌면 만화책처럼 될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의 결과물이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뭐, 하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사삭.
나는 자잘한 걸 생각할 시간에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다행히도 시간은 많았다.
앞으로 거의 반년.
전시가 시작될 때까지는 반년에 가까운 시간이 남아 있었으니.
‘느긋하게 하자. 서두르지 말고.’
나는 그렇게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 나갔다.
이게 가장 나 다운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 호랑이가 될 상 > 끝
ⓒ 이한이™
< 4년 >
이번 전시의 테마는 시간이라고 했다.
그리고 여기서 시간이란 아마 지난 4년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4년 좋지.’
이 테마, 시시하다고 생각했는데 작품을 만들면 만들수록 의외로 마음에 들었다.
카페 헤븐즈 도어.
“누나, 여기 앉아 보세요.”
“왜?”
나는 한설 선배를 의자에 앉히고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또 나 그리게?”
“네.”
“뭐 그리는 건지 설명 안 해줄 거지?”
“어휴, 역시 현명하십니다.”
“그래,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한설 선배는 이제 반쯤 체념한 표정이었다.
그래.
이미 3년이나 나라는 사람을 겪었지.
그럼 슬슬 포기할 때가 됐다.
‘그래도 예쁘게 그려 드릴 테니까 봐 주십쇼.’
나는 속으로만 사과하면서 그림을 계속해서 그렸다.
한설 선배가 커피를 마시는 모습, 그림을 그리는 모습.
그리고 나와 떠드는 모습.
그 모습들을 내 스타일대로 빼곡하게 그렸다.
대충 몇 시간을 그렇게 보내자 드로잉북 4페이지 정도가 그녀의 그림을 가득해졌다.
“어때요?”
“오.”
한설 선배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그림 실력 되게 많이 늘었다.”
“······.”
그림 실력을 봐달라는 의미로 보여준 거 아닌데.
그냥 감상 말해달라는 건데.
그래도 칭찬받으니까 기분이 좋긴 하다.
좋으면서도 아쉬운 감정에 시무룩해져서 가만히 있으니 그녀가 킥킥 웃고는 말했다.
“농담이야. 이거 오늘 내 모습 그린 거지?”
“맞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이번 졸업전시에 쓸 작품이에요.”
“졸업전시?”
“네. 원래 뭘 그릴까 생각을 했는데요. 전 이게 맞겠더라고요.”
“설명해 봐.”
“누나, 혹시 스냅 사진이라고 아세요?”
내 말에 한설 선배는 잠시 갸우뚱하더니 말했다.
“그거 도촬 아니야?”
“······ 그렇게 불리기도 하죠.”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스냅 사진.
일상 속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장면을 순간 포착하듯, 사진을 찍어내는 기법을 의미했다.
그런데 자연스러우려면 뭘 해야 하는가.
사진을 찍히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말아야 했다.
‘조금이라도 렌즈를 의식하는 순간 행동에 부자연스러움이 섞이지.’
그건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나는 그래서 한설 선배에게 뭘 할 건지 말하지 않고 그렸다.
‘뭐, 본인이 내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은 눈치챘을 테니까 반푼이지만.’
그 정도는 재량껏 수정하면 된다.
그게 그림의 묘미니까.
“전 제가 한예원에 입학하고 1학년 때부터 보냈던 지난 시간을 스냅 사진처럼 그리기로 했어요. 모아서 책으로 엮으려고요. 권당 한 200페이지 정도?”
“흠, 양이 꽤 많이 나오겠네.”
“어마어마하게 나오겠죠.”
졸업전시에는 총 네 점을 출품하는 게 원칙이었다.
딱 좋다.
1학년부터 시작해서 4학년까지 그림으로 책 한 권씩 만들면 네 점이었다.
‘다 합쳐서 최소 800페이지 잡고, 하루에 네 장씩 그려도 200일이 걸리겠네.’
전시 일정까지 시간이 아슬아슬하다.
네 장이라는 게 말이 네 장이지, 안에 들어가는 그림은 페이지마다 수십 점에 달할 예정이었다.
말 그대로 시간이 블랙홀처럼 잡아먹히는 작품이다.
처음에는 뉴욕에서 있었던 일만 그리려고 했다.
하지만 하다 보니까 욕심이 생겼다.
해 보고 싶다.
한 번 하겠다고 정한 이상, 괜한 오기가 솟아서 물러서기 싫었다.
‘남들이 여행기를 그림책으로 만들어서 보여주는 것처럼, 나는 내가 보냈던 시간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거야.’
로망이다.
평생 남을 로망이다.
내 그림을 가장 보기 쉬운 형태로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지금 누나를 그린 건 4학년째에 들어갈 작품이에요.”
“좋네, 그럼 1학년 때부터 3학년까지는?”
“어느 정도는 상상에 의존해서 그려야죠. 한 번 보실래요?”
“응. 줘 봐.”
나는 가방에서 드로잉북을 꺼냈다.
그리고 1학년 때를 배경으로 그렸던 스케치 수십 장을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그 첫 페이지를 본 한설 선배가 작게 감탄을 터뜨렸다.
“와, 완전 추억이다. 이거 너랑 나랑 지훈 선배 처음 만났을 때잖아.”
그렇다.
여기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이 예전도 나쁘지는 않다.
서지원이랑 작품으로 열심히 다퉜던 거, 그걸 작품으로 그려볼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나중에 보면 쪽팔릴 것 같아서 뺐다.
또 초상권으로 따질까 걸리기도 하고.
‘아, 됐어, 나는 그런 사람 만난 적 없는 거야.’
200페이지는 가장 좋은 순간만 남기기에도 모자랐다.
“졸업전시치고는 들이는 공이 대단하네.”
“누나만 할까요?”
“내 것보다 네게 더하지.”
한설 선배의 말에 나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이거요. 이번 졸업전시 한 번으로 끝낼 거 아니에요.”
“그럼?”
“인쇄해서 정식으로 출간하려고요.”
그렇다.
정식으로 출간해서 유통하고 싶다.
판매 루트도 생각은 해 두었다.
“헤븐즈 도어를 통해서 팔려고요.”
“헤븐즈 도어? 서점을 통해서 파는 게 아니라?”
“이미 서울에는 헤븐즈 도어가 어지간한 서점보다 더 많거든요.”
얼마 전에 경기도권에서만 100호점을 넘겼다고 했던가.
이제 헤븐즈 도어는 단순한 카페 프랜차이즈를 넘어, 모두를 위한 종합 예술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여기서 내 책을 판매할 생각.
이미 해외 아트북을 소소하게 판매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여기에 내 책을 팔아서 한층 규모를 벌여 볼 생각이었다.
내 계획을 전부 들은 한설 선배는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그럼 날 제일 많이 그려야겠네.”
“왜요?”
“내가 1학년 때부터 너랑 제일 많이 붙어 다녔으니까.”
“······.”
그랬었나.
생각해 보면 규태랑 비등비등했던 것 같은데.
하지만 이걸 말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며 말했다.
“나중에 책 인쇄하면 누나한테 제일 먼저 보여 드릴게요.”
“옳지.”
*
이후로도 계속해서 그렸다.
기억을 되짚어서 그릴 수 있는 곳은 그대로 그렸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때는 현지에 방문해서 그리기도 했다.
모델을 섭외하기도 했다.
“응? 여기서 이렇게?”
“네, 포즈 잡으세요.”
헤븐즈 도어 사장님이 어색하게 포즈를 잡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손을 빠르게 옮겼다.
“내가 이런 모델 일을 해 본 적은 없는데.”
“해 본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헤븐즈 도어 사장님뿐만이 아니었다.
“작가님의 작품에 실릴 수 있다니, 아주 큰 영광이군요.”
“제가 영광이죠.”
오경진 회장님도 그렸다.
심하윤 대표님도 그렸다.
홍경희 관장님도 그리고, 이종이 교수님도 그렸다.
동민 씨도, 송주 씨도 그렸다.
“요즘 바쁘지 않으세요?”
“작가님이 저 찾으신다는데 바쁜 게 뭐가 대수겠어요.”
강동민이 씩 웃었다.
그는 최근 해외에서 인지도가 크게 오른 상황이었다.
특히 일본에서는 동사마라는 별명으로 국민 배우에 올랐다나.
“졸업전시로 책을 만드시는구나.”
“이상한가요?”
“아니요, 오히려 작가님다워서 좋네요. 음, 작가님만 괜찮으시면 저 이번에 책 나온 거 홍보 좀 해 드려도 될까요?”
“홍보요?”
“제가 이래 봬도 요즘은 좀 잘나가거든요. 작가님 책 들고 여기저기 얼굴 좀 비추려고요.”
오.
생각해 보니까 그런 수단이 있었네.
“해주시면 감사하죠.”
“저만 믿으세요. 주변에 동료 연예인들한테도 다 추천하고 다닐게요.”
뭔가 스케일이 커진 느낌이 든다.
이후로도 그냥 생각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찾아가서 그렸다.
“단골손님 덕에 이런 일도 다 겪어 보네.”
“제가 또 한 단골 하죠. 이 가게 유명해지면 자주 못 오겠는데요.”
단골 국밥집도 그렸고.
“우리가 이렇게 가난했던 적이 있었다고?”
“밥 나방은 밥 벌레였던 시절을 모른다더니.”
남운과 상민도 오래간만에 만났다.
그들은 게임이 성공적으로 오픈하면서 아예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 상황이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져서 어쩔 수 없다나.
“좀 잘생기게 그려 주라.”
“매출 보고요.”
“아, 그러고 보니까 이번 달 매출이 진짜 장난 아니었는데.”
남운이 낄낄 웃었다.
옛날의 그 빈곤했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역시 금융치료가 직빵이다.
이후로도 계속해서 모델들을 찾아갔다.
나랑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찾아갔다.
그리고 나는 적잖이 놀랐다.
‘의외로 거절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네.’
한 명쯤은 거절할 줄 알았더니마는, 모두가 긍정적으로 받아주었다.
이게 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전생에는 찾아갈 사람도 얼마 없었는데.’
이번 생은 찾아갈 사람이 너무 많아서 발이 아플 정도다.
역시 착하게 살고 볼 일인가.
그렇게 슬슬 전시를 두 달 정도 앞두었을 무렵.
나는 오래간만에 방송에 출연했다.
그동안 작품에만 빠져 사느라 모르고 있었는데, 장장 반년 만의 일이었다.
*
방송 참가 일정은 생각보다 매우 빠르게 잡혔다.
정확히 말하자면, 저쪽에서 안달복달했다고 말함이 옳았다.
‘방송 출연이 이제 일도 아니구나.’
기분이 신묘하다.
그렇게 입장했는데, 어느 거인 같은 덩치의 MC가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강동호 MC.
TV 화면으로 볼 때도 컸는데, 직접 보니까 생명의 위협이 느껴질 만큼 무서운 인상의 남자였다.
‘까불면 죽겠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순간 그가 몸을 배배 꼬더니 가래 끓는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요즘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예술가라고 하면 누가 있을까요? 데미안 허스트? 무라카미 타카시? 뱅크시? 아닙니다.”
“······?”
그 사람이 누군데.
잠깐.
이거 설마 하는데, 그가 나를 가리키며 크게 외쳤다.
“대한민국의 자랑,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예술가! 이재하를 소개합니다!”
방청객들의 환호가 쏟아져 나왔다.
실로 열렬한 반응.
나는 민망한 마음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돌겠네. 아니, 내가 데미안 허스트랑 뱅크시를 어떻게 이겨.’
지금 일시적으로 이름값이 오른 건 맞지.
하지만 그 사람들이랑 비교하는 건 조금 아니지.
폼은 원래 일시적인 거 모르나.
아무래도 내 모국이라 좀 띄워주는 게 있는 모양.
‘그래도 나중에는 거품 없이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노력해 봐야겠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다가 혼자서 식겁했다.
‘와, 이런 생각을 다 하네.’
언젠가는 따라잡으리라고 자신하는 거 자체가 신기하다.
소름.
아무튼, 방청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 재! 하!”
“이! 재! 하!”
거의 아이돌을 보는 것만 같은 열기.
미래의 어느 피겨퀸이나 이런 반응을 얻을 수 있을까.
‘대단하네.’
일개 예술인에게 이만한 호응을 주는 이유라면 알 것도 같았다.
지난 반년간 학교생활을 제외하고는 거의 잠적하다시피 했기 때문이었다.
JH 디자인 일은 반쯤 지훈 선배가 맡았고, 코인 소프트에서도 거의 손을 놓았다.
학교에 출석만 하면서 작품 만드는 데만 집중하고 있었다.
가장 뜨거워야 할 시기에 가만히 있다.
그러니 대중 입장에서는 몸이 달아오를 수밖에 없었겠지.
강동호 MC도 그 부분을 지적하듯 말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들이, 예, 작가님 이야기를 너무 궁금해하신 거 아십니까?”
마치 나를 추궁하는 듯하다.
나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미국 전시를 끝내고 귀국한 다음에 신작을 준비하면서 바빠서,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됐습니다.”
“신작이요?”
“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이번에 제가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 졸업전시회가 있는데, 거기에 낼 작품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야, 작가님이 굉장히 성실하시네요. 그런데 대학생이셨어요? 상상도 못 했는데.”
응.
나도 좀 의아하기는 하지만 대학생 맞다.
강동호 MC는 얼굴 근육을 꿈틀거리더니 말했다.
“그럼 이번에 미국에서 막 일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렇죠.”
“막 총을 딱딱 쏘고, 사람이 죽을 뻔하고 그랬다는데, 그 이야기를 한 번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그게 말인데요.”
이후로 몇 마디의 이야기가 오갔다.
최근 있었던 일의 근황 같은 것들.
마치 어둠의 다크에서 바람의 윈드를 맞듯 적당히 중얼거렸다.
하지만 크게 의의를 두진 않았다.
어차피 저런 이야기를 하려고 나온 게 아니니까.
대신 타이밍을 보다가 말했다.
“제 이야기를 전부 풀어놓기에 사실 방송 분량이 조금 짧지 않나요?”
“그렇지요?”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 남은 이야기를 풀까 합니다.”
< 4년 > 끝
ⓒ 이한이™
< 벼룩의 간 >
전시를 연다고 홍보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홍보 수단을 취해야 하는가.
‘미래라면 SNS에서 바이럴 마케팅을 하든 뭘 하든 하겠지.’
방법이야 많고도 많다.
하지만 이 시대에 쓸 수 있는 마케팅 방법이라면 썩 드물었다.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마케팅의 시대가 찾아오려면 앞으로 몇 년은 지나야 한다.
그래.
내가 다룰 수 있는 마케팅의 수가 좀 적다.
방송의 힘을 이용하면 조금 낫겠지.
하지만 이것만으로 만족할 생각은 없었다.
‘하나 더 한다.’
그 마케팅의 시작이 바로 지금이었다.
강동호 MC가 입을 열었다.
“아, 그럼 그 미국 이야기를 작품으로 내시는 거네요?”
“가깝습니다. 구체적인 건 전시에 와 주시면, 제가 또 최선을 다해서 좋은 전시를 보여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우선은 힌트를 드리자면······ 잠깐 그림 한 점만 그려도 될까요?”
“여러분, 우리 작가님께서 그림을 한 점 그리신다고 합니다!”
강동호 MC가 고함을 터뜨렸다.
‘목소리 한 번 엄청나게 크네.’
지금까지 TV에서 들었던 건 약과였구나.
나는 그의 목 내구성에 감탄하며 가지고 온 드로잉북과 펜을 꺼냈다.
그리고 평소에 해 왔듯 짧은 그림을 그렸다.
얼핏 보기에는 대충 그린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섬세한 디테일이 깃들어 있는 그림.
흔히 말하는 선 맛이 있는 그림이었다.
“우와-앗!”
강동호 MC가 감탄을 터뜨리자 방청객석에서도 감탄이 번져나갔다.
“이거 지금 여기 촬영장을 그린 거 맞지요?”
“네.”
나는 콘서트장에 온 스타와도 같은 기분을 느끼며 말했다.
“이 그림도 제 전시에 올라갈 겁니다.”
“이야!”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닙니다. 앞으로도 제 개인 블로그를 통해서 전시에 올라갈 그림을 매일 한 점씩 공개할 예정입니다.”
블로그.
현시대에 들어서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매체였다.
‘이제 이용자 수가 천만을 돌파했다고 했던가.’
나는 이곳에서 하루하루 그림을 한 장씩 공개하겠다고 하겠다고 말했다.
“하루에 한 장이 올라갈 수도 있고, 두 장이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시청자분들도 가급적 앞으로의 제 행보에 집중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가능하면 제 졸업전시회에도 방문해 주시면 더 감사할 것 같습니다.”
노골적인 홍보 멘트였다.
그런데 그래서 뭐.
기왕 TV에 나왔으면, 홍보 정도는 해야 할 것 아닌가.
그 말을 들은 강동호 MC가 크게 외쳤다.
“아니! 아니! 우리 작가님께서 전시에 와 달라고 광고를 하시는데요. 이거 우리가 광고비 받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 혹시 이 장면 편집되나요?”
방청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나도 함께 웃음을 터뜨리며 한결 두근거리는 기분을 느꼈다.
‘자, 이제 시작이다.’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
솔직히 말해서 이번 전시의 흥행 자체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내가 누군데.
부끄럽긴 하지만 어지간한 연예인보다 내 인지도가 더 높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전시가 정말로 크게 성공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본다면, 그건 또 확신할 수 없었다.
‘내 개인전이라면 모를까 단체전이지. 사실 아직 대한민국 전시 문화라는 게 덜 발전했기도 하고.’
과거 [스트로크!] 때는 그래도 드라마 자체가 성공했기에 사람들을 크게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떨까.
물론 성공이야 하겠지만, 기왕이면 최대한 크게 성공시키고 싶다.
그래서 방법을 고안했다.
‘그림을 그려서 블로그에 올린다.’
생각보다 정말 별것 아닌 행위였다.
하지만 원래 보잘것없는 행위가 쌓이면 무섭다.
‘어떤 마케팅이든 지속성이라는 면에서는 블로그를 이길 수 없지.’
미래라면 SNS가 있겠지만, 이 시대에는 없다.
대신 블로그가 있었다.
이제 막 블로그를 통한 마케팅의 힘이 대두될까 말까 하는 시절.
의외로 이 시대에 블로그란 천만 명이라는 규모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마케팅에서 큰 주목을 못 받고 있었다.
그저 새롭게 뜨는 마케팅 기법 중 하나라는 게 지배적인 인식.
사람들은 아직 블로그 마케팅의 진수를 몰랐다.
‘너무 단기간에 급성장해서 그럴 수도 있고.’
어차피 시간문제다.
그걸 조금 일찍 끌어다 쓸 뿐.
그런데 이런 블로그 마케팅에는 한 가지 특별한 효과가 있었다.
바로, 고객이 알아서 찾아온다는 점이었다.
알아서 찾아온다는 것.
이 사소한 심리적 변화가 별거 아닌 것 같으면서도 생각보다 컸다.
‘이 시대의 광고는 주로 고객들에게 일방향으로 보여주는 데에 집중했지. 하지만 미래의 광고는 고객들이 먼저 찾아오게 만드는 방법으로 진화했어.’
고객이 제 발로 찾아온다는 것.
나아가 고객들도 홍보대사로 만든다는 것.
그게 미래의 광고였다.
그리고 나도 비슷한 걸 이 시대에 해 볼 생각이었다.
“이게 그렇게 막 홍보 효과가 있을까?”
규태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나는 키보드를 마저 두드렸다.
“하루에 한 점을 올리는 건데. 어차피 손해 볼 거 없잖아. 얼마나 걸린다고.”
이거 하나면 충분하다.
가끔은 두 점을 올려도 된다.
그저 그림을 그려서 올릴 것이고, 사람들은 내 그림을 보러 내 블로그에 들를 것이다.
마음에 들면 주변 사람들한테 추천하겠지.
홍보 글을 써 주면 더 좋고.
나는 그런 생각으로 천천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
[Doodle#4]이어서 그려둔 그림을 업로드했다.
무슨 그림인지 자세한 내용 따위는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이런 잡담을 달았다.
[이번 한예원 졸업전시에 출품할 작품 중 하나입니다. 카메라의 성능 문제인지 느낌을 못 살린 것 같아서 아쉽네요. 날씨가 점점 후끈후끈해지고 있습니다. 더위 조심하세요.]이 정도면 충분하다.
자세한 내용은 오히려 독이다.
블로그에 찾아올 사람들에게 적당한 재미만 주면 충분했다.
매일 찾아올 재미.
가끔은 그림 이야기 외에 다른 이야기를 더 올리기도 했다.
[석관동의 유명한 소머리국밥집입니다. 국물도 국물이지만, 고기만 먹어도 배가 찰 정도로 푸짐한 고기가 진수입니다.] [모처럼 헤븐즈 도어에 방문해서 작업했습니다. 사장님한테 얻어먹었음.]정말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들.
하지만 이게 이 시대에는 생각보다 잘 먹혔다.
하루하루 늘어나는 조회수가 그 사실을 증명했다.
[Doodle#13] [조회수: 310888]훌륭하다.
아직 극초반임에도 불구하고 30만대를 넘은 조회수.
이 글이 다른 사이트로 퍼지면서 추가 홍보를 끌어올 것까지 생각해 보거든, 실제 파급력은 그 이상이라고 볼 수 있었다.
‘뭔가 너무 날로 먹는 기분도 드는데.’
생각해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하루에 한 편씩 글을 쓴다.
이 사소한 게 왜 그렇게 효과가 좋단 말인가.
왜 남들은 이걸 못하는가.
어쩌면 이게 먹힐 거라는 생각 자체를 못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아, 모르겠다.’
블로그가 마케팅에서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할 거라는 사소한 인식 차이.
여기에 미래의 SNS를 하듯 가벼운 일상 글의 조화.
그리고 내 유명세.
이 정도면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그렇게 낙서 업로드가 38일째 이어졌을 무렵이었다.
[Doodle#38]내 글들의 평균 조회수는 100만을 돌파했다.
“이야, 숫자가 예쁘네.”
기쁜 마음에 중얼거리는데, 규태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나도 블로그나 시작해 볼까.”
“······.”
내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규태는 움찔하더니 말했다.
“왜 그런 눈으로 쳐다 봐?”
“아니, 열심히 해 보라고.”
응.
다 그 생각으로 시작하고 망하더라.
하지만 응원한다.
너 고생하는 건 옆에서 구경하면 재밌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