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Art Student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91)
두 번 사는 미대생 91화(91/93)
*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한예원 시각디자인과 졸업전시에 쏠린 관심이 도를 지나쳤다.
일개 학교의 전시전에 불과하다.
그런데 거기에 전국적인 관심이 쏠리다니.
명백히 비상식적인 장면이었다.
그 탓에 전시 위원회 학생들만 바빠졌다.
“도록을 얼마나 찍어야 하지?”
“원래는 500부도 다 소화하기 힘든데······.”
“이제 더 고민하면 주문하고 제작할 시간도 없어. 슬슬 결정할 때야.”
도록(작가와 작품을 소개한 책자)을 얼마나 찍을지가 문제였다.
현실적으로 말해서, 일개 학부생의 졸업전시회를 보러 오는 사람은 드물다.
사실 도록은 돈 받고 파는 물건이기는 하다만, 현실적으로 봤을 때 판매되길 기대하고 찍는 물건이 아니었다.
오히려 안 팔리는 게 당연했다.
‘유명한 작가들 도록도 몇만 원 주고 사는 사람이 드문데, 일개 학부생들 도록에 몇만 원을 쓰려는 사람은 잘 없지.’
그런다.
이리도 돈이 아까운 데 왜 만드는가.
나무가 미워서?
업체와 커미션이 있어서?
둘 다 아니었다.
그냥 전시를 연 사람들끼리 나눠가지고, 주변에도 나눠주기 위해서였다.
사실상 졸업앨범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었다.
게임으로 치면 도전과제였다.
책장에 박아 두었다가, 있는 줄도 모를 만큼 먼 미래 추억을 회상할 때 더듬는 정도.
‘사실 돈 낭비라고 안 찍는 학교도 있을 정도였지.’
그것이 지금은 변질되었다.
아니, 본질을 되찾았다.
“무슨 도록 주제에 예약구매가 몇천 권씩 쌓여······.”
편집팀장을 맡은 동기가 질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렇다.
도록을 구매하려는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인터넷에 예약구매 신청 사이트를 열어 두었는데, 이미 육천 명이 예약구매를 신청했다.
그 덕에 사전에 입금된 비용만 억대였다.
‘이런 돈은 만져본 적도 없는데. 아니, 본 적도 없는데.’
덕분에 편집부 팀원은 예상치도 못하게 머리가 휘청거리는 듯했다.
“몇 부나 찍어야 하지?”
“······ 일단은 일만 부만 찍자.”
일만 부만 찍자니.
이것도 사실 어이가 없는 말이었다.
도록이라는 게 원래 비싸다.
아무래도 인쇄 퀄리티를 올려야 하다 보니 한 부당 삼만 원쯤 하는데, 많이 찍어 봐야 손해만 커지니 이삼백 부 정도만 뽑는 게 관례였다.
한예원쯤 되니까 오백 부를 뽑는다.
천 부를 찍으면 미친놈 소리 듣기 딱 좋았다.
그런데 일만 부라니.
제정신인가.
안타깝게도 지금 그게 현실이 되었다.
‘정신 나갈 것 같아.’
편집팀장이 끙끙 앓았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인가.
이재하 때문이었다.
‘아무리 예술에 이름값이 중요하다지만 이건 좀 너무하잖아.’
사실 도전 정신이 있는 사업가라면 이럴 때 노를 저을지도 몰랐다.
앞으로 얼마나 팔릴지 모르니까 우선 잔뜩 찍어놓고 보자고 당당하게 말할지도 몰랐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소심했다.
그렇게 한예원 시각디자인과 02학번 졸업전시회 도록 초판은 불과 일만 부밖에 찍히지 못했다.
일만 부.
서점에서 일반 서적 기준으로 볼 때 베스트셀러로 인정받는 마지노선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그들은 그들의 선택이 제대로 실수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오성 라온 미술관.
한국 최고의 사립 미술관으로 꼽히는 프리미엄 미술관.
이곳에는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
“와, 대체 몇 명이 선 거냐. 하나, 둘 셋, 넷.”
“그렇게 세다가 한참 걸리겠다.”
졸업전시 위원회 학생들이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람이 많이 와서 기쁘다.
하지만 좀 너무 왔다.
“긴장돼서 토할 것 같아.”
학생들은 유례없는 인파에 속이 쓰린 듯했다.
당연하다.
원래 사람이라는 게 백 명 앞에만 서도 주눅 들기 마련이다.
데뷔전이 이 모양인데 오죽할까.
하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나는 그저 안쓰럽기만 할 뿐이었다.
‘간이 작구나.’
고작 저 정도 인원으로 힘들어하다니.
나 때는 말이야.
응.
하루에 50만 명도 방문하는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응, 막 전시를 하고 그랬단다.
그렇게 말하려다가 말았다.
내가 생각해 봐도 이건 내가 이상한 게 맞았기 때문이었다.
옆을 돌아보니 규태가 아침밥 대신 빵을 씹고 있었다.
우적우적.
녀석, 긴장이라고는 쥐뿔도 없구나.
‘규태도 사람 다 됐네.’
그 간이 콩알만 하던 규태가 맞는지 모르겠다.
안쓰럽게 쳐다보고 있으려니 규태가 말했다.
“왜? 너도 한 입 줄까?”
“······.”
나는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두 입 내놔.”
“아주 벼룩의 간을 떼먹어라.”
< 벼룩의 간 > 끝
ⓒ 이한이™
< 쾌적한 전시를 위하여 >
이번 전시를 시작하기에 앞서 조금 놀란 점이 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한예원은 한예원이네.’
작품의 퀄리티가 상상 이상이었다.
‘사실 한예원이면 작품 퀄리티가 대단한 게 정상이기는 한데.’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한예원의 학부생들을 이제 경쟁자로 여기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전생에는 그들 옆에서 서지 못해 그렇게 몸부림쳤으면서, 이제는 아예 안중에 두지도 않는다니.
이유라면 대충 알 것도 같다.
‘한설 선배가 옆에 있는데 어중간한 작품을 본다 한들, 간에 기별이라도 갈 리가 없지.’
어쩔 수 없다.
원래 인간의 미적 감각이란 상대적인 물건이다.
굉장히 잘 그린 작품이라도, 미친 듯이 잘 그린 작품을 본 뒤에 보면 어딘가 덜떨어져 보인다.
이건 나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였다.
한설 선배를 보다 보니 안목이 알아서 붙었다.
여기저기서 돌아다니기도 많이 돌아다녔고, 그만큼 내 실력도 늘었다.
‘물론 아웃풋이 나온 데는 마케팅의 힘도 컸겠지만.’
말이 길어졌지만, 요는 간단했다.
한예원 학생들의 작품은 결코 어설프지 않았다.
‘역시 잘해.’
당장 현업 프로의 작업물이라고 봐도 무방할 수준의 작품이 즐비했다.
나는 전시장을 홀로 천천히 걸어 다녔다.
전시장에 사람들이 돌아오기 직전, 가장 한적한 때 전시를 즐길 수 있다는 건 관계자들에게만 주어진 작은 특권이었다.
영화관을 전세 내고 혼자서 보는 것보다 조금 더 좋다.
나는 입구부터 시작해서 전시전 관객들이 돌아다니는 순으로 따라 걸어 보았다.
‘일단 규태 작품이 훌륭해.’
규태의 작품이 썩 괜찮았다.
전시 작품의 90%를 디자인 시안 재활용으로 때웠다.
‘디자인 시안 실루엣으로 포스터를 만들고, 책갈피 만들고, 패키지 만들고, 아주 다 해 먹었네.’
날로 먹겠다는 그의 신념이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이게 또 맛이 괜찮았다.
시안 하나하나에서 개성이 돋보였다.
적당히 인터넷에서 보고 카피한 게 아니다.
거의 다 규태의 오리지널.
정말로 패션을 사랑하기에 다룬 방법이리라.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규태는 우리 과에서 덜떨어지는 축이 아닌 게 아닐까.’
그 사실을 직감하자 등골로 소름이 올라왔다.
어쩌면 생각보다 실력이 있을지도 모른다.
옆자리 학생의 작품을 보자 그 사실이 한층 더 공고해졌다.
‘규태의 작품을 보고 다시 보니까 좀 허술해 보인다.’
정말로 규태의 실력이 훌륭하단 말인가.
그래.
객관적으로 보면 맞는 말이겠지.
하지만 미적 의식이란 주관적인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내 신념을 밀어붙이기로 했다.
‘아직은 안 되지.’
그렇게 나는 회장을 천천히 걸었다.
걷기를 한참.
눈에 띄는 작품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이건······.’
굉장히 스타일리쉬한 작품이 있었다.
원색 위주로 화려하게 배치한 작품들.
흰색 검은색으로 짠 배경 소품들 위로 빨간색 노란색으로 포인트를 넣어 시선을 앗아갔다.
전시장에서도 내 눈을 확실하게 사로잡는 작품이었다.
‘이런 게 있었나?’
이틀 전에 왔을 때만 해도 못 봤는데.
한 번이라도 내가 봤더라면 잊어버릴 리가 없다.
아니.
애초에 전생에 이런 작품을 하는 사람을 못 봤다.
그렇게 의아한 순간이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시 안내 책자를 꺼냈다.
눈앞의 이 작품들을 만든 게 누구인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 탓이었다.
그렇게 뒤적이기를 잠시.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이거 지난번에 걔잖아.’
오태석.
나한테 혼자 경쟁심을 불태우고 사라진 동기였다.
[너 혼자서 잘난 것처럼 굴지 마.]그 학생이 내게 했던 말이었다.
“흠.”
그때는 그냥 이상한 사람이겠거니 생각했다.
왜.
미술 전공자 사이에서는 원래 남한테 이유 없이 경쟁심을 불태우는 사람이 많다.
오태석도 그런 사람이겠거니 했다.
나한테 반감을 품은 사람 한둘쯤이야 있어도 상관없으니.
그런데 이 작품들을 보니까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잘하네.’
잘한다.
디자인이 살아 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번 생에 내가 이 작품을 못 봤다는 건, 어쩌면 이런 거 아닐까.
‘이번 생에 나한테 경쟁심을 불태우면서 발전한 건가.’
내가 한설 선배를 보고 발전했듯,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나를 보고 발전했다.
그런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같은 과 동기 중에서 국내외로 혼자 따로 노는 사람이 있다.
따라잡기 위해서 아등바등했던 게 아닐까.
그냥 내 추측이다.
하지만 언젠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을 정도의 흥미는 생겼다.
‘이번 전시 끝나고 뒤풀이할 때 이야기나 걸어 봐야겠다.’
그렇게 나 혼자만의 관람이 끝났다.
잠시 뒤.
손님들이 몰아닥치기 시작했다.
*
“와, 역시.”
대충 예상한 광경이 벌어졌다.
“실물은 다르네.”
“이재하 그림은 무조건 직접 가서 봐야 한다고 그러더니.”
“응, 인터넷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좋다.”
전체 관객의 대다수가 내 작품 위주로 쏠렸다.
“그림 그렸던 게 시간순이었구나.”
“거의 벽 하나가 전부 그림만 있네.”
이번 내 전시.
수백 장의 일러스트를 벽에다가 빼곡하게 설치한 것.
사람들은 그걸 보러 몰려들었다.
다른 학생들의 전시와는 주목도부터 달랐다.
뭐라고 해야 하나.
저쪽은 거의 내 작품 보러오는 와중에 지나가는 길 정도 취급받는 느낌.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기만 했다만.’
어쩔 수 없었다.
말이 한예원 전시지, 실질적인 면을 따져 보자면 이건 내 전시가 맞았다.
이재하의 작품을 전시한다.
이재하가 홍보했다.
그러니 이재하를 보러 온다.
지극히 단순한 사고회로였다.
나만 이렇게 생각했던 건 아니고, 홍경희 관장도 이 부분은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솔직히 전 다른 학생들한테는 큰 관심 없어요. 작가님을 보고 작가님의 전시를 유치하는 거지요. 이 부분은 확실히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그렇게 내가 받아낸 전시 면적만 타 학생들의 열 배가 넘었다.
스무 명가량이 참여하는 전시이니, 사실상 나 혼자서 전체 전시 면적의 삼 분의 일을 차지하는 셈이었다.
전시할 공간이 모자라서 테이블 배치도 1cm 간격으로 조절하는 다른 학생들과는 달랐다.
도록도 마찬가지다.
말이 한예원 졸업전시 도록이지, 반쯤 내 굿즈라고 봐도 될 지경이었다.
“저기.”
“아, 네.”
“감사합니다.”
동기들이 전시품 앞에 멀뚱멀뚱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살짝 현자타임을 느끼는 동기도 보였다.
이 수많은 사람이 회장 내에 흘러넘치는데, 자기네 작품에 관심을 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압도적인 무시.
아직 학부생들은 얼마 느껴보지 못할 모욕감이리라.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원래 아이돌 그룹도 인기 있는 멤버 한두 명이 먹여 살릴 때가 많잖아.’
어찌 되었든 저들은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라도 감사하는 게 맞다.
내가 끼지 않았더라면 저 정도의 관심도 없었을 터.
지나가는 관객이 관심을 주지 않는 게 슬픈가.
자기들끼리 열었더라면 ‘지나가는 관객’ 자체가 없었을 터.
‘힘내라, 청춘들아. 이거 그래도 낙수효과다.’
그래도 모두가 무시를 당하는 건 아니었다.
“이거 괜찮은데?”
“그러게. 옷이 예쁘네. 역시 한예원이다.”
“그런데 이거 시각디자인과 전시 아니었나?”
그렇다.
규태를 비롯해 일부 실력 있는 학생들은 얼마 없는 기회를 잘 낚아채고 있었다.
관객 수가 많으면 그만큼 기회도 드러난다.
열 명 중에서 여덟아홉 명을 놓치더라도 나머지 한두 명의 발걸음을 붙잡을 수 있으면 된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쟤도 꽤 괜찮네.’
오태석이었다.
흰색과 검은색 베이스로 꾸민 무난한 디자인 위로, 빨간색이나 주황색 그리고 파란색 같은 원색의 강렬한 대비.
단연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학생들이 열 명 중 한 명밖에 못 잡는다면, 오태석은 거의 다섯 명 가까이 붙잡고 있었다.
‘대단한데.’
심지어 관객에게 말까지 걸리더니 명함을 받기까지.
무슨 명함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오태석이 깜짝 놀라는 걸 보면 뭔가 대단한 거겠지.
‘역시 어떻게든 실력이 있으면 눈에 띄는군.’
그래.
그렇게 기회를 붙잡아서 점차 발전하면 된다.
아무튼, 나도 기왕 온 전시다.
놀고만 있을 생각은 없었다.
[작가 이재하 사인회]전시장 한쪽에 사인회 부스가 설치되어 있었다.
도록을 구매한 사람 중에서 추첨해서 사인을 해주는 기획이었는데, 사람들이 내 앞으로 길게 서 있었다.
‘이야, 많네. 손목 관절 닳아 버리겠다.’
이번 도록이 일만 부 정도 뽑았다지.
과연 경쟁률이 얼마나 됐을까.
도록이 권당 3만 원쯤 한다.
여러 권을 사려면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사인회를 신청한 이유라면 알 수 있었다.
‘나한테 사인 받아가서 되팔면 이득 될 테니까.’
성공한 예술가는 일거수일투족이 전부 돈이다.
유명한 화가의 사인본은 그 자체로 몇억에 팔리기도 했다.
아주 먼 미래 내 작품도 그만큼 팔릴 수 있겠지.
‘그래, 기왕 팔리는 거 비싸게 팔려라. 어차피 내가 돈 주고 파는 것도 아닌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팔을 숨 가쁘게 놀렸다.
“제가 작년에 미국 뉴욕에 있었을 때 일입니다. 뉴욕 하니까 생각나는데요. 뉴욕이 스테이크로 또 유명했거든요. 그런데 스테이크라는 게 먹다 보면 또 물리는 게 있어요. 전 또 신토불이라고 한국 음식을 먹어야 힘이 나거든요. 그래서 작품을 만들다가 배가 고프면 학교 선배가 절 데리고 국밥집에 데려가고는 했는데······.”
슬슬 입에 붙은 말장난도 던지면서.
*
전시.
작품을 봐 달라고 늘어놓는 행위.
그런데 이 전시라는 게 원래는 기간이 좀 길었다.
많이 길었다.
‘보통 짧아야 이주에서 길면 서너 달 이상도 하지.’
사실상 영화 상영 기간과 맞먹을 정도.
그런데 졸업전시는 반대였다.
극단적으로 짧다.
보통 일주일.
길어야 보름이었다.
왜 이렇게 짧을까.
대학생들은 전시를 오래 열기 싫은 걸까.
아니다.
다른 이유가 있었다.
‘돈이 없어서.’
전시라는 게 일주일에 대관료만 500만 원은 기본으로 깔고 들어갔다.
학과 인원이 많으면 전시공간이 더 필요하니 요금이 더 늘어나고, 유명한 곳을 빌린다 치면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예외였다.
한국 최고의 사립 미술관인 오성 라온 미술관을 대관했으면서, 전시 기간도 남달랐다.
삼 주.
무려 삼 주나 빌렸다.
졸업전시치고는 압도적으로 긴 시간이었다.
홍경희 원장이 노렸기 때문.
실제로 그녀의 선택은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었다.
[첫날 방문 인원 2000명 돌파]실로 경이적인 인원이 방문했다.
하지만 사실 이것조차도 시작에 불과했다.
계속해서 불어났다.
[2500명 돌파] [2600명 달성]일개 졸업전시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수준으로 계속 불어났다.
이것도 전시장의 규모 문제로 줄만 서다가 돌아가는 사람이 많았기에 일어난 일.
그런데 아직 끝이 아니었다.
[대세 배우 ‘동사마’ 이재하 전시 방문해. 적극 추천. “이 시대를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즐길 수 있어.”] [댄스 가수 겸 멀티 엔터테이너 ‘송주’도 행렬에 참여해. “이재하의 그림은 언제나 내게 초심을 되새기게 한다.”고 소감 밝혀] [일본에서 전시 관람 상품도 생겨나] [국내 전시에 외국인이 찾아왔다고요?]한 번 불이 붙자, 계속해서 불어났다.
불어난다.
밑도 끝도 없이 불어난다.
그 덕분에 불만도 터져 나왔다.
[전시를 보러 갔는데 줄만 서고 돌아갔어요] [공간은 좁은데 사람이 너무 많네요] [회사 퇴근하고 가는데 이틀 연속으로 허탕만 쳤어요] [우리 아이가 다리 아프다고 울어서 어쩔 수 없이 돌아갔습니다] [작품을 구경하는 건 좋은데 한 점에 5초도 보기 힘들어요. 거의 걸어 다니면서 보는 기분입니다.] [조금 더 쾌적한 전시가 됐으면 좋겠어요]그렇게 졸업전시가 슬슬 끝날 시기가 되었지만, 막상 대중의 관심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지경이 되었을 때였다.
홍경희 관장은 새로운 제안을 했다.
“아예 전시장을 메인 홀로 옮기고, 기간을 늘려서 앙코르 연장 전시를 여는 건 어떨까요?”
< 쾌적한 전시를 위하여 > 끝
ⓒ 이한이™
< 어셈블 >
앙코르 전시.
전시의 반응이 너무 좋았으니까 조금 더 연장하자는 말이었다.
“대중이 이번 전시에 아쉬움을 느끼고 있어요. 아마 앞으로 두고두고 말이 나올 거예요.”
나는 그녀의 말에 수긍하며 중얼거렸다.
“하긴, 사람이 너무 많기는 했어요.”
그냥 많은 게 아니었다.
전국적으로 관심이 쏠리면서 인파가 매일같이 몰리는데, 아예 입장조차 못 하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언제쯤 입장 가능하냐?] [미치겠다. 나는 벌써 2시간이나 기다리고 있다] [첫날에 간 사람들이 승리자들이라니까. 가서 사인 인증한 거 봤냐? 부러워서 속이 펄펄 끓더라] [이제 날씨도 더운데]인터넷에 매일같이 불만이 올라왔다.
그래.
이건 병목 현상과도 같았다.
‘나라도 화가 나기는 할 거야.’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갔다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하루에 평균 2000명이 넘는 인원을 매일 소화했는데, 전시의 규모를 생각해 보면 고무적인 일이었다.
보통 블록버스터 전시 소리를 듣는 유명 화가들의 전시나 평균 2000명을 넘긴다.
예를 들자면 샤갈, 피카소, 다빈치, 고흐가 그러했다.
소형 별관에서 나 같은 국내 화가가 세운 기록치고는 고무적이다.
하지만 2000명은 절대적으로 보았을 때 절대 많은 수가 아니었다.
받은 관심에 비하면 오히려 많이 부족했다.
[이재하 작가의 전시 기간 연장을 바랍니다] [나도 보고 싶다] [솔직히 전시 기간이 너무 짧은 거 아니냐]전시 종료를 코앞에 두고 인터넷이 시끌시끌했다.
이렇게 아쉬운 마음을 남긴 채로 끝낼 것인가.
졸업전시는 졸업전시에서 끝낼 것인가.
‘아니면 한 단계 더 도약해 볼 것인가.’
나도 이걸로 한창 고민이 되는 참이었다.
“작가님도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홍경희 관장은 보리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했다.
“이번 전시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에요. 이렇게까지 국민의 관심이 쏠린 적이 또 있을까요? 물론 있었죠. 예전에 작가님의 스트로크 전시 때 이 정도의 힘이 있었어요.”
“음.”
뭐라고 말하려는 참이었다.
홍경희 관장이 말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엄연히 다르다고 봐야죠. 전 지금이 훨씬 더 낫다고 봐요.”
“어떤 점에서요?”
“그 당시에는 어디까지나 드라마의 힘을 업은 전시였어요. 작품이 드라마를 견인했다기보다는, 드라마가 작품을 끌고 간 것에 가까웠죠. 관객들도 드라마 체험의 확장 선에서 전시를 보러 온 거였어요. 미술은 부차적이었죠.”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 당시에만 해도 나라는 사람의 영향력은 딱 그 수준이었다.
괜찮다.
하지만 대체재가 영 없는 것도 아니다.
당장 이종이 교수라는 걸출한 인물 다음이지 않았던가.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
“지금의 작가님은 작가님의 이름 하나로 사람들을 모으고, 이만한 전시에 사람들을 줄 세울 수 있는 수준이 됐어요. 아마 국내에서 작가님보다 흥행력이 있는 사람은 없겠지요.”
부끄러운 말이었다.
나보다 흥행력 있는 작가가 없다니.
“아무리 그래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선배님들이 잔뜩 계시는데, 그건 좀 과장 아닐까요.”
“아뇨.”
멋쩍은 마음에 겸손이라도 떨어 보려는 순간이었다.
홍경희 관장은 고개를 젓더니 말했다.
“작가님보다 더 고가에 작품을 파는 작가님은 계시죠. 김환기, 이우환, 박서보, 박수근······ 유명한 작가라면 많아요.”
“네, 그렇죠.”
하나같이 작품 한 점을 수십억 원에 팔아본 적 있는 사람들이다
내 앞이 저기에 붙을 만할까.
그렇게 고민하는데 홍경희 관장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대중을 동원하는 능력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지금 이 시대에 이 상황에 작가님보다 많은 관객을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음.”
부끄럽기 짝이 없다.
볼이 달아오른다.
홍경희 관장이 나를 고평가하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지금은 반박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더더욱 민망했다.
“이번 전시의 성적이 증명하고 있죠. 작가님의 전시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아요. 너무 많아서 차마 전시장에 입장도 못 할 정도로요. 그래서 하는 말이에요. 전 이번 앙코르 전시에서 작가님에게 더 큰 기대를 걸고 있어요.”
“그냥 앙코르 전시가 아닌가 보네요.”
“네, 맞아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이번 앙코르 전시는, 앞으로 다시 없을 전시가 될지도 몰라요.”
그 말을 들은 순간이었다.
내 가슴으로도 뭔가 찌잉 울리는 게 있었다.
“대중의 관심이 최고조로 쏠린 시기예요. 어쩌면 작가님이 앞으로 가질 전시 중에서도 가장 큰 전시일지도 모르죠. 그래요. 이번 앙코르 전시는 졸업전시의 연장선을 떠나 작가님을 위한 작가님의 전시예요.”
이후로도 그녀는 계속해서 이번 앙코르 전시의 중요성을 계속해서 피력했다.
나라는 작가의 커리어에 피크를 찍어두려는 듯.
계속해서 설명하고, 설명하고 또 설명했다.
그런데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이 가득 차서 그녀의 말이 잘 들리지도 않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크게 될 수도 있는 전시라.’
예전부터 생각했던 게 있었다.
한국에서 내가 아는 드림팀을 모아서, 미국 MOMA에서 전시를 열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가장 재밌는 전시가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꼭 그 전시를 아껴야 할까.
드림팀을 모아서 전시한다.
기획 자체는 좋다.
하지만 꼭 반드시 미뤄야만 할까.
지금 이 자리에서 열면 안 될까.
‘전 국민의 관심이 쏠린 상황이야. 홍보도 할 수 있는 만큼 했고, 내 이름값도 이 이상 올리기는 어렵겠지.’
어떤 유명한 사람이든 살다 보면 전성기라도 불러도 좋을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그 시기는 마치 타오르는 불꽃과도 같았다.
어떤 일이든 거침없고, 손만 대면 전부 다 성공한다.
커리어 하이.
리즈 시절.
전성기.
어떤 말이든 좋다.
예술가들은 이 시기에 평생 남을 업적을 하나씩 쌓고는 했다.
그들은 훗날 이렇게 회고하고는 했다.
[전설이 될 수 있는 시기] [가장 빛나는 때] [태어나서 다시 만나기 어려운 순간] [마법의 계절] [몸에 신이 깃드는 시간]물론 이후에도 살아 있는 전설로서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는 있다.
하지만 예전과도 같은 화력은 없다.
그래서 이렇게 타오르는 시기에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그게 가장 중요했다.
이윽고 나는 직감했다.
‘지금이다.’
지금이 내가 전설이 될 시기가.
이 순간, 나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평생 되새길 업적을 만든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응원한다.
나를 기다리고 있다.
운명적이라고 해도 좋을 그런 직감이 들었다.
나는 입을 열었다.
“관장님.”
“네.”
“제가 예전부터 생각했던 전시가 있어요.”
*
[이재하 앙코르 전시]공식적으로 연장 전시가 발표되었다.
하지만 예전의 졸업전시와는 달랐다.
[화제의 작가 이재하가 보여주는 최고의 예술 세계.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그저 좋아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가 생각하는 예술이란 어떤 것인가. 작가 이재하는 어떤 예술 세계를 살아 왔는가. 팬들의 갈증을 풀어줄 전시가 다가온다.]이번에는 엄연히 내 전시였다.
하지만 개인전과는 달랐다.
단체전이다.
그저 내가 주도할 뿐.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을, 내가 모아서 전시한다.’
이게 핵심이었다.
작품을 전시하는 전시가 아니라, 작가를 전시하는 전시라고 봐도 좋다.
조금 보태서 [이재하와 아이들] 같은 타이틀을 붙여볼까 하다가 그건 부끄러워서 포기했다.
아무튼, 이제부터는 함께 전시할 사람을 모으는 게 중요한 시기가 되었다.
누굴 모을 것인가.
어떤 전시를 꾸릴 것인가.
기왕이면 어벤져스 같은 뭔가를 해 보고 싶다.
그런 생각을 품었다.
그렇게 나는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선배님, 이번에 저랑 전시 하나 하시죠.”
“전시? 어떤 전시?”
첫 타자는 김연우였다.
이미 헤븐즈 도어의 간판으로서 섬유예술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그녀.
그녀가 내 전시에 섬세함을 보태주기를 바랐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을 전부 모을 거예요.”
“너 지금까지 나를 그런 눈으로······.”
“아닙니다.”
“······.”
“한국에서 역대 가장 큰 관심이 쏠리는 전시가 될 거예요.”
“음, 솔직히 나도 거절할 이유가 없기는 한데.”
김연우 선배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말했다.
“참가하는 건 하는 건데, 나 하나만 부탁해도 돼?”
“어떤 건데요?”
“봉식이 아저씨도 같이 전시하고 싶어.”
“······.”
여기서 이 이름이 나오나.
김봉식.
과거 스위스 아트 페어에 같이 참가했던 사람이었다.
몇 년 사이에 그도 크게 성장했다.
김연우 선배가 헤븐즈 도어에서 예술 부문으로 간판이라면, 김봉식은 상품 부문에서 간판을 맡고 있었다.
그가 디자인을 맡은 제품은 매진을 기본으로 깔고 갈 정도.
‘그래, 이 사람도 있었네.’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저야 거절할 이유가 없죠.”
김연우 선배가 섬세함을 보여준다.
김봉식은 러프의 극한을 보여준다.
‘이 둘은 역시 바로 옆에 둘 때 케미가 잘 맞아.’
확신이 들었다.
그다음은 코인 소프트였다.
“게임을 전시하자고요?”
“네.”
아트를 담당하는 박유미 팀장이 언뜻 놀라는데 나는 말을 이었다.
“게임이라고 전시 못 할 이유가 없잖아요. 다 예술이에요. 마침 게임도 대박 났잖아요?”
그렇다.
[던전 앤 스토리]는 최근 동시 접속자 20만 명을 돌파하며 명백히 흥행 게임으로 자리매김을 했다.“전시는 해 본 적이 없어서 조금 부끄러운데, 그래도 해 볼게요. 어떤 작품이면 될까요?”
“작가님한테 믿고 맡길게요.”
박유미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로도 계속해서 사람들을 만났다.
“누나도 해야죠.”
한설 선배에게도 당연히 제안했다.
“나 작품 하나 만드는 데 시간 좀 걸리는데.”
“거짓말하지 말고요. 그 집에 쌓아둔 거 많잖아요.”
“그런 걸 전시해도 되나?”
“어쩌면 그게 더 좋은 방향일 수도 있어요.”
“음, 솔깃하기는 하네.”
지훈 선배나 규태도 당연히 영입했다.
한예원의 교수님들에게도 연락했다.
“제가 전시를 하는 건 몇 년 만이라 조금 부끄럽군요.”
이종이 교수는 좀 너무 기뻐하는 모습과 함께 승낙했다.
정상희 교수도 마찬가지.
‘슬슬 영입할 사람이 다 떨어져 가는 것 같은데.’
또 누가 있더라.
아.
그 사람이 있었구나.
나는 다음으로 오사무엘을 찾아갔다.
지난 스위스 아트 페어에서 껌-아트로 대성공을 이룩했던 한 학년 위 선배였다.
그는 지난 성공에 취해 아주 조금의 지체도 없이 빠르게 자퇴했다고 했다.
‘일류가 되었구나.’
하지만 정작 자퇴하고 난 뒤에는 일이 잘 안 풀렸던 모양.
‘원래 한번 잘 풀렸다고 막 나가면 인생 망하기 딱 좋지.’
새삼스럽다.
그는 혼자 은거해서 자기 작업물만 만들고 있다는 말이 돌았다.
어떻게 물어서 찾아가니, 껌 냄새로 가득한 작업실에서 그가 초췌해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왜 찾아왔어······.”
“왜기는요.”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세상에 선배님 작품을 보여 드릴 순간이 왔습니다.”
그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오사무엘은 움찔 떨더니 입을 열었다.
“그래, 지난 아트 페어 전시로부터 어느덧 2년. 슬슬 이 세상에 나라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알려줄 때가 도래했지. 기나긴 모멸과 핍박의 시간······ 지긋지긋하던 참이었다. 고맙다, 이재하.”
“아뇨, 됐습니다. 껌 좀 사 왔는데 필요하면 쓰세요.”
그 외에도 전시 제안을 거절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렇게 본의 아니게 영업사원 비슷한 일을 하면서 돌아다니다가 느낀 건데, 문득 이번 단체전은 내 지난 작품의 연장선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졸업전시 때는 내가 학부생 4년간 보낸 시간을 작품으로 만들어서 출품했었지.’
이번에는 4년간 쌓아온 인연을 전시로 만들었다.
그래.
내가 보냈던 시간 자체를 전시한다.
그런데 마냥 국내파에게만 전시를 권유하고 있으려니 좀 심심한 감도 들었다.
그래서 시도했다.
‘전화를 과연 받을까.’
애슐리 크루거.
그가 내게 알려주었던 연락처는 아직 유효할까.
‘뭐, 실패하면 어쩔 수 없고.’
나는 큰 기대를 하지 않으며 국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곧 답신이 왔다.
[작품은 가서 만들겠습니다.]곧 한국으로 여행을 오겠다는 말이었다.
연이어 토마스 킨케이드에게도 연락을 보냈다.
[좋습니다.]바로 오케이가 떨어졌다.
그렇게 여기저기 연락을 돌리기를 며칠.
예술계의 어벤저스가 결성되었다.
< 어셈블 > 끝
ⓒ 이한이™
< 역대급 >
규모가 커졌다.
시작은 졸업전시였다.
학부생들끼리 여는 단순한 졸업전시.
하지만 그게 조금 커졌다.
[이재하 앙코르 전시]차례차례 멤버가 늘어났다.
이재하와 학부생들.
여기에 한예원의 교수진이 합류했다.
헤븐즈 도어의 간판 작가들이 합류했다.
해외 유명 작가 몇이 합류했다.
국내에서 유망하다는 작가 한둘이 또 합류했다.
[이재하의 작품 세계의 뒤에는 이 작가들이 존재했다.]이건 뭐라고 해야 할까.
성공한 가수가 자기 좋아하는 가수들 모아서 페스티벌을 여는 것과 같았다.
그런데 외국에서 아예 비틀즈를 데려온 느낌.
점차 전시를 앞두고 시간이 흐를수록 대중의 관심은 계속해서 불타올랐다.
[이번 전시 라인업 봤냐] [진짜 한국에서 이런 전시를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엄마, 나 이재하 전시 보러 가] [이재하는 전설이다] [이재하가 인맥빨이라던 놈 나와. 아주 잘했어]대한민국에서 고작 전시 하나에 이렇게까지 관심을 준 적이 있었던가.
아니, 아마 없을 것이다.
서울에서만 50만 명을 동원하며 국내 미술전으로서는 최고 흥행을 이뤘다는 [샤갈 전]도 이보다 기대치가 높진 못했다.
그 덕에 방송국에서도 이번 전시를 두고 떠들기 바빴다.
[이번 전시가 한국 예술사에서 한 획을 그으리라는 사실은 확실합니다.] [한국이 이렇게 미술을 사랑하는 나라가 될 줄은 몰랐는데요. 제가 어렸을 때 이런 분위기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때는 미술 한다고 하면 굶어 죽으려고 하냐면서 부모님에게 두들겨 맞고 그랬거든요.] [하하, 저도 그랬습니다. 다 똑같나 보군요.]폭풍전야.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제대로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만 확실했다.
[D-day 5]이제 이재하 앙코르 전시는 전 국민에게 알려졌다.
이번 전시를 보러 체험 계획을 세운 초등학교만 해도 수십 곳을 넘어섰다.
[D-day 4]해외 언론에서 주목하기 시작했다.
[D-day 3]이번 전시 도록은 급하게 만들었음에도 불티나게 팔려갔다.
예약 판매만 10만 부.
누가 보더라도 베스트셀러라고 인정할 수치를 달성했다.
[D-day 2]전시를 앞두고 인근 지역 숙소에 타지 관광객이 대폭 늘었다.
일개 예술인의 전시를 보려고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몰리다니.
당혹스러운 상황이었다.
한국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해외에서조차 사람이 몰렸다.
[D-day 1]전시를 하루 앞둔 시점.
오성 라온 미술관 앞으로 텐트를 친 사람들이 나타났다.
[D-day 0]전시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