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화(1/190)
또 다른 문
“한범상 씨는 삶의 모토 같은 거 있어요?”
“모토라면···?”
“좌우명. 삶의 신조 같은 거. 없어요? 없으면 말고. 인터뷰 때 늘 물어보는 거라서.”
드라마 속 변호사들이나 입고 나올 법한 정장을 입은 남자는 처음부터 내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은 듯했다.
면접 내내 눈 한번 마주치지 않더니만, 끝나기 전 시큰둥한 표정으로 물었다. 딱히 내 대답이 궁금한 것 같지도 않았다.
“있습니다!”
힘주어 말했다.
그제야 그는 이력서에서 눈을 떼고 나를 봤다.
“그래요? 뭐예요?”
없다고 할 줄 알았나 보다. 아님, 대충 지어낼 줄 여겼던지.
근데, 진짜 있었다. 좌우명이라고 거창하게 떠들고 다니지는 않았어도, 마음에 새겨두고 힘들 때면 늘 떠올리는 문구가.
「When one door closes, another door opens.」
대한민국 최고 로펌 <김앤강> 입사 면접 자리.
그런 기회가 내게 찾아온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마지막 질문에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하나의 문이 열린다.」입니다.”
‘전화기의 아버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처음 말했다고 알려진 이 문구는 사실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쓰였다고 한다.
굳이 의역하자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쯤 되겠지만, 개인적으로 직역했을 때의 느낌이 좋다.
둘 다 희망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어도, 들었을 때 직역이 좀 더 설렌다고나 할까. 솟아날 구멍은 겨우 살 수 있는 공간처럼 들리지만, 다른 문을 통해 들어가는 곳엔 또 다른 모험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내 인생이 그랬다.
아버지가 행방불명되었을 때도, 어머니가 크게 다치셨을 때도,
문 하나가 닫히면 다른 문이 열렸다.
‘아버지의 아공간’도 그렇게 열렸고.
“그래요. 그럼, 다음 주부터 나와요.”
“예!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문 하나를 닫았더니 다른 문이 열렸다.
【001화 – 또 다른 문】
띠링-
“어서 오세···. 왔냐?”
“손님한테 왔냐가 뭐냐? 왔냐가.”
김앤강 면접을 보고 돌아오는 길, 기중이의 금은방에 들렀다.
우울했던 내 학창 시절 유일한 친구, 구기중.
녀석은 사고 치고 결혼해서 아버지의 금은방을 물려받았다.
녀석에게 부탁한 물건이 있었다.
“이 시간에 차려입고 어디 갔다 왔냐? 결혼식?”
“수요일 이 시간에 열리는 결혼식이 어디 있냐? 면접 보러 갔다왔다, 면접.”
“면접? 어디 면접? 당분간 백수일 것 같다고 했잖아.”
“그러게. 나도 그럴 줄 알았는데, 면접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네.”
“역시 이래서 ‘사’자 들어가는 직업들을 가지려고 그렇게 노력하는 건가? 이 불황에 면접 보러 오라는 데도 있고 말이야. 어디?”
괜히 호들갑을 떨 것 같아서 나중에 말해주려고 했다가 가게 안에 손님도 없고 해서 그냥 대답했다.
“김앤강.”
“김앤강?! 거기 되게 큰 데 아니야?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로펌이잖아.”
“뭐, 그렇지.”
“야, 너 그 정도였어? 아니라며. 거기는 실력이 있어도 들어가기 힘든 곳이라며. 니가 그랬잖아.”
그러게. 어떻게 된 거지?
나도 잘 모르겠다.
띠링-
“자기야, 어머님이 잠깐 오라고···아, 범상 씨 계셨구나.”
“안녕하십니까, 제수씨.”
때마침, 기중이의 아내, 미경 씨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어디 다녀오세요?”
“네.”
“자기야, 범상이 김앤강에서 오라고 했대!”
“진짜?
“응! 방금 면접 보고 왔대.”
“아, 잘됐다. 근데 김앤강이 어딘데? 좋은 데야?”
“응,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로펌.”
“아, 진짜?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와- 진짜 멋있다. 신기해요. 오빠 친구 중에 변호사가 있는 것도 신기한데, 그렇게 좋은 데에서 일하는 훌륭한 변호사라니···.”
“그게 근데, 저도 어떻게 된 건지는 잘 몰라서···그냥 운이 좋아서 된 것 같아요. 훌륭하다는 표현까지는 좀 민망한데···.”
“야, 왜, 훌륭하지. 고등학교 자퇴해서 대학교 장학금 받고 들어가는 게 어디 아무나 하는 일이냐. 거기에 이제는 변호사가 돼서 우리나라 최고 로펌 취직까지. 안 되겠다. 자기야, 오늘은 자기가 가게 좀 봐야겠다. 나 범상이 하고 한잔해야 할 것 같아.”
이럴까 봐 나중에 말해주려고 했다. 내 핑계 대고 술 마시자고 할까 봐.
“야, 됐어. 대낮부터 무슨 술이야.”
“백수 친구가 우리나라 최고 로펌에 들어갔는데 한잔해야지. 그리고 지금 네 시야. 마시다 보면 금방 해 져.”
“누가 들으면 범상 씨가 진짜 백수였는 줄 알겠네. 변호사 자격증이 있으시잖아. 그것도 미국 변호사.”
“자기야, 변호사도 백수 되는 세상이야.”
“됐고. 술은 나중에 하고. 어머니 찾으신다잖아. 내가 부탁한 거나 주고, 어머니한테나 가보셔. 나도 집에 가야 해.”
“나중에 언제? 이따 저녁에?”
“아니, 나중에.”
“그니까 나중에 언제?”
“주말에.”
“야, 주말은 너무 멀잖아. 오늘이 수요일인데.”
“안 멀어. 부탁한 거나 빨리 주고 가서 일 봐.”
“아- 새끼. 야, 내가 이따가 문자 할게. 야, 근데 너 요새 왜 이렇게 금을 사 가냐? 금테크 하려고?”
“묻지 말고, 그냥 줘. 다 쓸 데가 있다.”
“아! 너···아, 그래, 그렇지. 그런 기회를 얻으려면 금칠을 해야지. 그렇지.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는 거지. 이해한다.”
“뭐래. 이해하기는 뭘 이해를 해.”
“알지, 알아. 자, 여기. 부탁한 다섯 돈 골드바.”
“얼마냐?”
“됐다. 취직 선물이다.”
“미친. 이 새끼가 제수씨도 계시는데, 하나 있는 친구를 양아치로 만들고 있어. 야, 헛소리하지 말고. 얼마야?”
금 한 돈의 시세는 대략 35만 원 정도 했다.
정가대로 청구하라고 매번 말했지만, 기중이 녀석은 이윤은커녕 세공 값도 받지 않고 원가 150만 원만 요구했다.
“하나밖에 없는 친구니까 그런 거지. 둘이 있었으면 다 받았지. 나중에, 나중에 내가 변호사가 필요할 때가 오면 니가 꼭 맡아서 도와줘.”
“야, 그럴 일도 없겠지만, 그런 일이 생겨도 나는 국내법 변호사가 아니라서 국내 소송에는 별 도움 될 일이 없어.”
“혹시 또 아냐. 내가 국제 소송할 일이 있을지. 사람 일 모르는 거다.”
매번 같은 얘기. 녀석도 참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친구가 된 거겠지.
소송은 피곤한 일이다. 살면서 그런 일을 당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만약 그런 일이 녀석에게 생긴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약속을 지킬 것이다.
기중이에게 받은 다섯 돈 골드바를 들고 집으로 향했다.
-*-
아버지가 지은 우리 집은 언덕 위에 있었다.
지하철역에서 삼십 분가량 올라가야 나오는 단독주택.
추운 날이고 더운 날이고, 심지어 날씨가 좋은 날에도 오르다 보면 신경질이 난다.
삼십 년 넘게 살고 있지만, 솔직히 최근까지도 나는 우리 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 얼마 전 어머니가 큰 사고를 당했을 때는 정말이지 진지하게 집을 팔아버릴 생각까지 했었다.
엄마가 그렇게나 심하게 반대하지 않았다면 아마 그때 팔고 멀리 외곽의 아파트에라도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 나는 절대 이 집을 팔 생각이 없다.
“다녀왔습니다.”
“밥은?”
“먹었어.”
“뭐 먹었는데?”
나이가 서른다섯인데도 우리 엄마는 아들이 끼니를 잘 챙겨 먹고 다니는지가 제일 궁금하시다.
“시내에서 혼자 먹었어.”
“왜 혼자 먹었어? 친구 만나러 간 거 아니었어?”
세상의 어머니들이 다 그렇듯 우리 엄마 역시 자식에게 중요한 일이 있으면 그 걱정에 다른 일을 못 하시는 분이다.
어디 가는지 정확하게 말하지 않고 갔다 왔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결과가 나왔으니까.
“면접.”
“면접? 오늘 면접이었어?”
“응.”
“어디?”
“로펌.”
“그래? 그런 거 있으면 미리 얘기하지.”
“왜요? 머리 깎으라고 잔소리하시게?”
“그러게, 면접이 있었으면 머리도 좀 깎지.”
“이 봐, 이 봐. 이러니 말을 안 하지.”
“그래서, 면접은 잘 봤어?”
“응. 잘 봤어.”
“그래? 어딘데? 좋은 데야?”
“응.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데.”
“대한민국 제일 큰 데?”
“김앤강.”
“으응?! 김앤강? 거긴···내가 아는 그 김앤강?”
“응.”
“정말? 진짜?”
“응.”
“거기에 이력서 넣었었어? 언제? 말 안 했잖아.”
사연이 길다.
말을 꺼내면 괜히 새벽 기도를 시작하겠다느니 하실까 봐서 말씀을 안 드렸다.
“누가 넣어보라고 해서 넣었는데 갑자기 연락이 와서 오늘 보고 왔어.”
“그래서? 면접은 잘 본 거야? 그렇게 큰 데 면접이면 엄마한테 미리 얘기하지. 아침에 와이셔츠라도 새로 다려주게.”
“됐어. 그리고, 이숙영 여사님, 제 와이셔츠들은 구김 방지 셔츠들이라 다림질 안 해도 됩니다.”
“나는 그것들 싫더라. 구김 방지라고 해도 뭔가 빳빳한 느낌도 없고. 변호사가 항상 샤프해야지 신뢰가 가지.”
“충분히 샤프해. 그리고 요새 직장인들 다 그런 거 입어요.”
“그래도 변호산데···그래서 면접 결과는 언제 나오는 거야?”
“뭐래. 됐다니까.”
“응? 됐다고? 벌써? 그 자리에서 결과 알려준 거야?”
“응.”
“아이고. 잘됐다! 잘했어!”
말은 안 했어도 하나밖에 없는 자식의 백수 생활이 혹여 길어지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했던 모양이다. 엄마는 나보다 더 좋아했다.
“다음 주부터 출근하래.”
“그래? 잘됐네. 그럼, 와이셔츠 다 내놔.”
“뭘 다 내놔요. 다릴 필요 없다니까. 거의 다 구김 방지 셔츠들이야.”
“새로 빨려고 그래.”
“뭘 새로 빨아. 다 빨아서 넣어놓은 건데.”
“안 입은 지 몇 달 된 것들이잖아. 옷이고 사람이고 오래 사용하지 않은 것들은 다 티가 나는 법이야. 잔말 말고 내놔. 그리고 너도 가서 이발도 좀 하고.”
“이것 봐. 내가 뭐라고 했어. 잔소리한다고 했지. 됐어요. 내가 할게.”
“잔말 말고 내놔. 알았지?”
“엄마, 아들 장가 안 보낼 거유? 요새 여자들은 그런 거 해주는 엄마들 싫어해.”
“장가갈 마음은 있고?”
없다.
생각 없이 말하다가 정곡을 찔려버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빨리 결혼하는 게 효도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 생각이 바뀌었다.
이번 생엔 결혼할 생각 없다.
“알았어. 내가 해 놓을게.”
“방에 들어가서 확인할 거야.”
“알았다고. 그나저나, 엄마는 어디가? 병원 가는 날도 아니잖아.”
외출복 차림이었다.
“응, 요 앞에.”
“요 앞에? 요 앞에 어디? 설마, 가게 가려고?”
엄마는 작은 분식집을 하신다.
석달 전 교통사고를 당해 퇴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아···뭐 좀 확인하려고.”
“엄마!”
“의사 선생님이 몸을 슬슬 좀 쓰라고 하셨어.”
“나가서 운동하라는 거지. 일하라는 게 아니라고.”
“나는 일하는 게 운동이야.”
“엄마!”
“아우- 알았어. 누가 일 한대? 그냥 가게 상태만 보고 오려는 거야. 하도 안 나갔어서.”
“미치겠네. 엄마. 이숙영 여사님.”
“알았다니까. 그냥 운동 삼아 걸어갔다 올 거야. 그러니까 너는 신경 꺼. 아, 맞다. 너 없을 때, 그 사람들 다녀갔어.”
“은근슬쩍 말 돌리기는. 그 사람들? 무슨 사람들.”
“그 뭐 너 태양열 패널인지 발전기인지 뭔지 지붕에 설치하고 갔어.”
“진짜? 어, 나한테는 내일 온다고 했는데.”
“몰라. 아무튼 왔다 갔어. 나한테 뭐 이래저래 설명해 주기는 했는데, 나는 도통 뭔 말인지 모르겠으니까, 네가 전화해서 물어봐.”
“그래? 알았어.”
드디어 세팅이 완료!
기다리던 태양광 발전기 설치가 완료됐다는 말에, 나는 엄마에게 조심해서 다녀오시라고 인사를 건네곤 곧바로 옥탑방으로 달음질했다.
예전 아버지가 서재로 쓰던 방이었고 지금은 내 서재인 우리 집 옥탑방.
석달 전, 난 그 공간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기중이에게 받아온 골드바를 책장 뒤편 비밀 금고에 넣자, 한쪽 벽으로 보이지 않던 문이 나타난다.
‘아버지의 아공간’으로 향하는 문이 열렸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방
「한 돈에 한 평.」
왜 십진법이 아니라 척관법일까?
아무리 고민해 봐도 답은커녕 실마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사실 우리 집 옥탑방에 이런 환상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가 설명하기 힘든 일이기는 했다.
처음 발을 들였을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그저 칠흑같이 캄캄한 공간.
휴대폰 조명이 없었다면 어렸을 적 악몽이 되살아났을 게 분명했다.
그래, 아주 어렸을 적, 나는 이곳에 들어와 본 적이 있다.
어쩌면 그래서 찾아낼 수 있었는지도.
휴대폰 조명으로 사방을 비춰봤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너무나 신기하면서도 딱히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빈 공간일 뿐이었다.
곧바로 건전지로 작동하는 LED 스탠드를 가지고 다시 들어갔다.
인조 조명이었지만 빛이 생기니 공간이 훨씬 아늑해진다.
그제야 바닥과 벽의 재질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닥과 벽은 대리석같이 딱딱하고 반들반들했고, 무늬는 없었다. 정확하게 무엇으로 만들어진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반면, 천장은 매우 높거나, 어쩌면 아예 뚫려있는 듯했다.
첫날은 집 안에 있던 2미터 막대기를 들고 허우적거려 봤고, 다음 날에는 헬륨 풍선을 가지고 들어와 날려봤다.
조명이 확인할 수 없는 곳까지 날아간 풍선은 어두운 하늘로 사라진 뒤 돌아오지 않았다.
순간 살짝 서늘한 느낌이 들기는 했어도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좋게 생각했다. 적어도 천장이 무너질 일은 없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그다음에 확인한 것은 방의 크기였다.
정말 한 돈에 한 평인가?
사실이었다. 줄자로 쟀다.
처음 들어간 곳의 크기는 대략 가로 181.82cm, 세로 181.82cm의 정사각형 모양의 공간이었고,
다음 날 두 돈 양의 금을 금고에 넣고 들어간 환상 공간은 그보다 두 배 늘어난, 가로 257.13cm 세로 257.13cm의 정사각형 모양의 땅이었다.
한 평이 대략 3.3057제곱미터이니까, 257.13cm x 257.13cm와 같은 6.6115제곱미터의 크기는 두 평의 공간이었다.
금 한 돈에 대략 35만 원. 즉, 아공간의 가격은 평당 35만 원꼴.
비록 물도 전기도 공급되지 않는 공간일지언정 평당 35만 원의 공터는 서울에 매우 귀한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아공간이 진짜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