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00)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00화(100/190)
【100화 – 이래저래 자꾸만 달구는】
센터게이트빌딩 17층,
파이낸스팀 시니어 파트너 경수찬의 방.
“정 변호사한테 곤란하다고 했다고? 뭐가?”
경수찬은 범상을 세워둔 채 물었다.
언제나처럼 묻는 목소리는 차분했어도,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네, 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 클라이언트로부터 직접 받은 요청이라서요. 정식 의견서나 법률 의견이 담긴 문서라면 모를까, 자료 요청이나 진행 상황 확인 정도는 직접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미스터 나세르가 제게 그렇게 요청하기도 했고요.”
주니어 파트너 정세민에게 지시를 내렸다. 적당한 선에서 한범상을 커트하라는 식으로.
정세민이 구차스럽게 전달한 것 같기는 했어도 못할 말을 한 거는 아닌데,
“그래? 그 담당자가 한 변한테 그렇게 요청했다고?”
“네.”
세게 나왔다.
새파랗게 어린 어쏘의 대담한 행동.
그러면서도 자신보다 더 차분하게, 긴장 따위는 전혀 하지 않은 듯한 모습은 그의 침착함을 흔들었다.
배알이 뜨거워진 경수찬은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
“내가 일하는 스타일은 그게 아닌데.”
변호사들은 개인사업자들이다.
언제든 나가서 따로 사무실을 차릴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자기 클라이언트가 하나둘 생기고 머리가 굵어지면 태도가 과감해진다. 특히나 실력 좋은 주니어 파트너들은 이곳저곳 부르는 곳이 많아지다 보니, 위에서 사건 핸들링에 대해 도가 지나치게 재단하려고 한다든가, 자신이 펌에서 받는 대우가 부당하다고 느끼면, 들이받기도 한다.
당연하다. ‘밥그릇 싸움’은 로펌과 로펌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로펌 안에서도 치열하다.
‘그래도 어딜 감히 3년밖에 안 되는 놈이 20년 넘게 차이가 나는 파트너 앞에서···
벌써부터 싹수가 노란 새끼.
이 팀, 저 팀에서 찾는 곳이 많아졌다고 정말 제 혼자 잘나서 그리된 줄 알고 있네.
나하고 지금 기싸움을 하자고?
건방진 새끼.
낙하산 주제에.
아람코가 정말 제 하나를 보고 온 줄 아나.
내가 너 같은 애송이한테 휘둘릴 줄 알고? 흥!’
가뜩이나 이깟 놈한테 다들 질질 끌려다니는 듯한 모습이 눈꼴시었는데,
그래서 명분이 하나 생기길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잘됐다.
경수찬은 이참에 제대로 눌러줘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럼, 어떡해? 한 변이 곤란해하니, 내가 한 변호사 스타일에 맞춰야 하나?”
“···.”
“말해 봐? 왜? 정세민 변호사가 나이스하게 하니까, 거기다 가는 말할 수 있고, 내 앞에서는 못하겠어?”
“···.”
“다른 파트너들은 한 변호사를 어떻게 대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달라. 아람코 담당자하고 친분이 있다고 한 변이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야. 왜? 한 변 클라이언트 같아? 그럼, 어디 가지고 나가 봐. 여기 나가서, 혼자 해. 건방지게 잘난척하지 말고.”
경수찬은 강하게 밀어붙였다.
이참에 저 마음에 안 드는 대범함을 제대로 깨부숴 주겠노라고,
건방진 어쏘의 자아를 확실히 뭉개버리겠노라고.
밟아버릴 의도였다.
하지만, 돌아온 어쏘의 대답은 그가 예상한 범주를 넘어섰다.
“그러면 저는 빠지겠습니다.”
“뭐라고? 너 지금 뭐라고 그랬어?”
안타깝게도, 경수찬이 모르는 게 하나 있었다.
그는 절대 알 수 없는 것.
“미스터 나세르에게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앞으로 이 아람코 프로젝트는 저 없이 경 변호사님께서 핸들하실 거라고.”
한범상은 그냥 3년차가 아니다.
3 플러스 10이지.
-*-
센터게이트빌딩 12층,
주니어 파트너 최재민의 방.
‘정말 이게 현명한 선택일까?’
최재민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법무법인 이재로 같이 가자는 성일용의 제안에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다고 대답은 했다. 현재 90% 정도는 가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
그래도 망설여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밖이고 안이고 위로 올라가려면 어차피 경쟁은 심하다.
마음에 맞는 선배 따라 나갔다가 틀어졌다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들었다.
법무법인 이재 역시 지금은 안정되었지만, 초장기에 홍역을 앓았었다.
상황이 여의찮으면, 같이 일하는 선배하고도 경쟁해야 하는 직업.
가능만 하다면, 최재민은 김앤강에 남고 싶다.
하지만, 좀처럼 수가 보이지 않는다.
똑똑-
그런 생각이 재민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을 때, 한범상이 그를 찾아왔다.
“네.”
“변호사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 잠깐 괜찮으실까요?”
최재민은 한범상이 마음에 든다.
정말이지 아쉽다. 좀 더 같이 일해보고 싶었는데···
“어, 들어와. 무슨 일인데?”
“아람코 관련해서 상의드릴 게 있어서요.”
“아람코?”
“네.”
아람코라는 말에 산만했던 머리가 집중할 곳을 찾는다.
최재민은 복잡한 생각들을 잠시 한쪽으로 밀어두고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진짜 그렇게 말씀드렸다고?!”
“네.”
두 눈이 번쩍 뜨였다.
믿을 수 없어 다시 물었다.
“경 변호사님한테 사건에서 빠지겠다고 했다고? 지금?”
“네.”
“아람코 프로젝트에서?”
“네.”
그저 그런 대담함을 넘어선 행동.
보통 배짱이 아니다.
두 눈이 동그래진 최재민은 감탄과 경악 중간 어딘가에 있는 감정으로 범상을 바라봤다.
재차 확인했지만 믿기지 않는다.
“자신 있어?”
아람코가 널 따라올 거라는?
“모르겠습니다.”
그렇겠지.
아무리 담당자하고 친하다고 해도 김앤강이라는 배경이 없었다면 절대 얻을 수 없는 케이스니까.
국내 관련 일도 아니고 베트남 정유소 건설 투자건.
경쟁 로펌들이 국내 대형 로펌이 아니라 커크랜드, 매켄지 같은 변호사 수 3,000명~4,000명의 인터내셔널 로펌들이다.
“그런데도 그렇게 말씀드렸다고?”
사실 그래서 한 변호사를 이재로 데리고 가자는 안을 두고 성일용 변호사를 더 푸시하지 못 한 것도 있다.
어차피 변호사 100명밖에 없는 이재에서 핸들할 수 있는 급의 클라이언트가 아니었다.
당장 베트남 현지 변호사도, 사무실도 없는데.
부랴부랴 영입하고 꾸릴 수야 있겠지만, 그렇게 한다고 세계 1위 오일 회사 아람코가 만족스러워할까?
담당자가 그 위에 있는 결정권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어림없는 소리다.
“네.”
그런데도, 짧게 대답하는 한범상의 얼굴은 담담했다.
그런 사정들을 모르는 눈빛이 아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갓 조인한 신입이 국제중재가 해보고 싶다고 했던 게 고작 2년 전 일인데, 지금 자기 앞에 있는 그는 감정 따위에 사표를 던지겠다고 찾아온 애송이 변호사가 아니었다.
이미 그 급을 한참 넘어서,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신보다도 더 크게 느껴질 정도였다.
“한 변호사, 혹시 나 나간다는 말을 어디서 들었어?”
“네.”
10년, 20년 같이 일해도 밥그릇 싸움에 틀어지는 이 업계에서 후배가 먼저 신뢰를 보여주고 있었다.
‘왜 나를 찾아왔어?’라고 떠보려고 했던 최재민은 부끄러워졌다.
“한 변호사.”
“네.”
“한 변이 진짜 원하는 게 뭐야?”
“아람코 프로젝트를 제대로 해보고 싶습니다.”
충분히 이해한다. 변호사 커리어에 흔치 않은 기회니까. 근데,
“여기서 나가야 할 수도 있어.”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김앤강에 남아서 하는 게 제일 좋다는 거지?”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요.”
같은 생각.
진짜 오랜만이다.
누군가와 진정으로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는 게 이런 기분인가?
언제나 백 명 중에 살아남는 한 명이 되기 위해서 뜻이 맞으면 도왔다가도 상황이 틀어지면 경쟁하면서 살아왔는데···
내가 만난 모든 사람이 그랬는데···
내가 하고 있는 이 게임의 룰이 최후 1인만 살아남는 게 아니었나?
처음이다. 아니, 사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재민은 결심했다.
“오케이. 알았어. 한 변호사의 뜻이 뭔지. 일단 어떻게 할지 내가 생각 좀 해볼게. 한 변호사는···”
“네.”
“한 변호사는 그냥 하던 대로 해.”
늘 하던 대로.
지금처럼,
대범하게,
압도적으로 여유롭게.
“알겠습니다. 혹시 제가 할 일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그럴게.”
···
범상을 돌려보낸 최재민은 한쪽에 밀어두었던 생각들을 불러냈다.
여전히 복잡하다.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변수가 너무 많다.
그래도 뭘 해야 할지 명확했다.
‘아람코도, 김앤강도 포기하지 않는다.’
성일용 변호사님에게는 송구스럽게 됐지만, 재민은 범상을 선택하려 한다.
망설이던 가지를 쳐내고 선택한 계획에 살을 붙인다.
그래, 복잡했던 이유를 알겠다.
10% 미련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제 그런 건 없다.
올인이다.
띠리링- 띠리링-
-어이, 최 프로.
“선배님, 최재민입니다. 잘 지내셨죠?”
아람코 유치를 두고 싸우려면, 이재 급으로는 절대 상대에게 긴장감을 줄 수 없다.
최재민은 법무법인 대서양 리크루트팀에 수장으로 있는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년째 그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하고 있는 선배였다.
-최 프로가 웬일이야?
“그냥 요새 날씨도 좋고 해서 겸사겸사 전화해 봤습니다.”
-뭐야? 맨날 공 한번 치자고 해도 그렇게 바쁘다고 하더니만.
“죄송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전화드렸잖아요. 선배님, 이번 주말에는 어떠세요? 바쁘세요?”
그렇다고 김앤강을 버리겠다는 뜻은 아니다.
선배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좁은 업계의 생리를 이용해 보려 한다.
비록 아끼는 후배만큼 대담하진 못했지만, 정치와 처세술에 있어서는 아직 한 수 위.
국제중재팀 에이스 천하의 최재민이다.
-나야 최 프로가 치자면 쳐야지.
“아이, 또 왜 그러십니까? 선배님, 송도는 어떠세요?”
-송도 CC? 좋지.
“그러면, 제가 예약하고 문자 드리겠습니다.”
-멤버는? 혹시 같이 치려고 생각해 둔 사람은 있어?
“아니요. 저는 그냥 오랜만에 선배님이랑 치려고··· 근데, 티오프시간만 잡으면 올 사람은 많죠. 지난번처럼 정 변이랑 이 변 부를까요? 아니면, 오 변호사님한테 연락하셔도 되고요. 친하시잖아요?”
-아, 그러면, 음···나는 내가 일전에 말한 우리 펌 파이낸스팀에 이장익 변호사님이랑 나갈게. 최 변 한번 소개해달라고 그렇게 말씀하셔서 말이야. 괜찮지?
사실 그래서 계속 미뤄왔다.
이렇게 나올 것 같아서.
나갈 마음도 없는데, 괜히 불편할 것 같아서.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그럼, 저도 한 명 데리고 가겠습니다. 저희 팀 어쏘인데, 괜찮은 친구예요. 공도 잘 치고 빠릿빠릿하고.”
-난 좋아. 최 프로 좋을 대로 해.
“네, 그럼, 예약하고 문자 드릴게요. 주말에 뵙겠습니다.”
-그래, 들어가.
딸깍.
다른 로펌, 다른 시니어 파트너의 팀에 들어가는 일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실력을 보고 스카우트하는 거지, 그 안에서의 케미스트리는 알 수 없는 노릇.
그래서 성일용 변호사를 따라 이재를 선택하려고 했던 거고.
그런 상황이 닥치면 잘 해낼 자신이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옵션 하나를 더 만들자고 잡은 약속이 아니었다.
통화를 마친 최재민은 사내 메신저의 이름들을 쭉 살폈다.
그러고는 ‘스피커’가 되어줄 적당한 어쏘에게 실수 아닌 실수의 메시지를 보냈다.
[재민: 한 변호사, 이번 주 토요일에 대서양 이장익 변호사님하고 골프 치기로 한 거 잊지 않았지? 8시에 우리 집 앞에서 보자고, 한 차로 가게] [마이클: 변호사님, 메시지 잘못 보내신 거 같습니다.] [재민: 아, 쏘리. 창을 잘못 띄웠네. 변, 그냥 무시해.]다른 때 같았으면 굳이 이렇게까지 안 해겠지만, 이러면 훨씬 더 빨리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최재민의 술책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그냥 무시할 변이 아니었기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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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리링- 띠리링-
“네.”
-변호사님, 이정후 변호사님께서 찾으세요.
효과는 일주일 만에 나왔다.
“알았어. 바로 간다고 전해드려.”
3년 플러스 10년
변덕스러운 하늘의 뜻은 무엇일까?
어떨 때는 한없이 자애롭다가도 어떨 때는 인정사정없다.
어떨 때는 자기가 창조한 이 세상에 집요하리만큼 집착을 보이다가도, 또 어떨 때는 어떻게 되든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 태평하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해?”
이정후는 하늘에 오르고 싶다.
그러려면 남영수를 내보내야 했다.
“제 생각에는 이 선택이 최선인 듯싶습니다.”
“그래?”
“네.”
“흠- 알았어. 자네 생각이 정히 그렇다면, 그렇게 해야지.”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신 말이야···”
하지만, 이정후는 약속을 하나 해야 했다.
“아람코를 확실히 잡아. 놓치지 말라고.”
그 약속의 무게가 적지 않다는 것쯤은 이정후도 잘 안다.
그래도 해야 했다.
“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