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05)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05화(105/190)
【105화 – 니들은 한범상이 처음이지? II】
나무해운이 운용하는 배가 밴쿠버항의 다리를 들이박았다.
하지만, 배는 나무해운의 소유가 아니다.
나무해운은 용선자이고, 선박소유자는 따로 있다.
나무해운은 그리스 회사가 소유한 산타마리아호를 빌려 그 위에 화주들로부터 일임받은 물건들을 싣고가던 중이었다.
또한, 사고를 낸 사람 역시 나무해운이 고용한 선장이 아니라 도선사(marine pilot)였다. 항구 정박 시, 도선사라는 직책의 전문 항해사가 배에 올라 배를 몬다. 사고는 그의 지시를 따르다가 난 것이었다.
상황을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트럭을 임대해서 택배업을 하는 상황인데, 도착지 건물 주차장 관리인이 이곳은 주차가 복잡해 무조건 대리주차를 맡겨야 한다고 해서 차를 맡겼다.
그런데, 대리주차하는 사람이 차를 주차장 기둥에 박아버렸다.
안타깝게도, 주차장 발레 업체랑 건물주랑은 별개 업체.
박살 난 주차장 기둥 수리에, 차에 싣고 가던 화물들 손해, 거기에 지나가다 다친 인명피해까지. 손해가 막심하다.
법적으로는 당연히 대리주차를 한 사람의 책임이지만, 자기는 개인일 뿐 돈이 없다고 배 째라는 식.
결국 건물주랑 택배 화주 등을 상대로 배상 책임은 차를 빌려 택배업을 하는 사람이 지게 된 상황.
그게 지금 나무해운이 처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돈은 결국 나무해운의 보험회사인 웨스트 오브 잉글랜드에서 일단 지급될 것이었고.
제임스 매닝을 만난 뒤 호텔로 돌아온 범상은 무열이 형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형, 내일 조인트 서베이는 어려울 것 같아요.”
“역시나 제임스 그 친구가 하기 싫어해? 그럼 어떡할까? 이사님한테 전화해서 회사 차원에서 항의를 한번 해볼까?”
“그건 아니고요. 어차피 시간도 너무 늦었고, 다시 생각해 보니까, 지금 와서 모두를 설득해서 조인트 서베이를 하루 더 연장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하긴···.”
“일단 내일 회의는 예정대로 진행하려고요.”
“그래도 될까? 감항성 문제 관련해서 찾아볼 게 있다면서? 저쪽은 내일 잠정적이라도 선박에 문제가 없다고 단정을 지으려고 할 텐데···.”
“찾았어요.”
“응? 벌써? 어떻게? 한국에 기록이 있다면서?”
“저희 사무실 정 대리님한테 부탁했어요.”
“정 대리님이라고 하면? 너희 비서?”
“네.”
“뭐야? 김앤강 비서는 그 정도인 거야? 기록에서 뭘 찾아달라고 하면 뚝딱 찾아내기도 하고?”
“네, 김앤강 비서는 그래요.”
피식-
막상 그렇게 답하고 보니, 웃음이 난다. 진짜 믿는 눈치다. 이런 착각은 나쁘지 않다.
“형.”
“응?”
“좀 전에 제임스하고도 상의하고 왔는데, 감항성 이슈 관련해서 내일 전체 회의에서는 제가 맡을게요.”
“그럼 나야 좋지.”
“그리고, 이거. 이게 찾은 문서예요.”
찾은 게 도대체 무슨 문서냐고?
렌트한 트럭의 엔진에 결함이 있었을지 모른다는 증거,
어쩌면 대리주차하신 분의 책임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증거.
몇 년 전 맡긴 선박 비정기 검사 당시, 엔진에 문제가 있는 것 같으니 좀 더 정밀한 검사가 필요하다는 조선소의 의견이 담긴 소견서.
“이거야? 이게 뭔데?”
“저우샨 도크야드의 리포트.”
-*-
다음 날 오후,
조인트 서베이에 참여했던 모든 인사들이 밴쿠버항만공사 건물 대회의실 모였다.
모두가 집에 갈 생각에 회의는 산뜻하게 시작되었다.
그랬던 것이, 선박 감항성 이슈에 다다르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사고 선박 산타마리아호의 엔진 성능 관련해서 조사를 한 번 더 진행해야겠다는 범상의 발언에 참석자 대부분의 인상이 어두워진다.
역시나 제일 기분이 안 좋은 측은 선박소유자 회사의 직원들과 그들의 선임한 조사관 그리고 변호사들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선박소유자가 선임한 조사관이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며 범상에게 되물었다.
범상은 예의 바르게, 하지만 동시에 불친절하게 대답했다.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저희는 한 번 더 봐야겠습니다.”
“이유는요?”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꼼꼼하게 체크하지 못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죠?”
“원래 이틀로 예정되어 있던 공동 조사가 변호사님 때문에 사흘로 늘어났는데, 꼼꼼하게 체크하지 못했다고요? 저는 동의하지 못하겠는데요.”
“그만큼 중요한 조사이니까요.”
“그래서 용선자(나무해운) 측 뜻대로 이틀 할 거, 사흘 하지 않았습니까?”
“감사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또 한 번 요청드립니다. 며칠만 더 같이 조사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뭐라고요? 며칠?!”
조사관이 대신 말했을 뿐, 기분이 좋지 않은 선박소유자 측 인사들은 모두 인상을 찌푸렸다.
그 외 다른 참석자들도 즐거운 표정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불필요하게 일정이 길어질까 봐 하는 우려에서 그런 것이었지, 선박소유자만큼은 불편하지는 않았다.
선박소유자 측이 그렇게 불만족스럽게 나오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엔진 문제는 선박 감항성(안전 항해 기능)에 관한 문제였고, 선박 감항성에 문제가 있다고 밝혀지면, 도선사 책임일 거라고 기대하고 전략을 짠 그쪽은 문제가 심각해지기 때문이었다.
“제임스, 정말 이렇게 나올 거야?”
가만히 있던 선박소유자 측 클럽 클레임 담당자가 나무해운 측 클레임 담당자에게 확인을 구했다.
짧은 질문이었지만, ‘어차피 보험사인 너와 내가 이 분쟁일 비용을 댈 건데, 정말 일을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 거야?’라는 의미였다.
제임스 매닝은 양쪽 어깨를 한번 들썩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우리 변호사 얘기 들었잖아. 그게 우리 포지션이야.’라는 답이었다.
“정말 이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이런 식으로 할 거면 뭐 하려고 조인트 서베이를 하자고 한 거야?”
수천 개의 컨테이너를 싣고 가던 선박이 다리에 부딪혔다.
그로 인한 손해는 수백억 원에서 심지어 수천억 원에 달할지 모른다.
이런 대형 선박 사고의 경우, 신속한 원인 조사와 손해 분담을 논의하기 위해, 법적으로 요구되는 건 없지만, 조인트 서베이(joint survey: 공동 조사)를 진행하는 것이 관행이다.
그래서 이번 사건에도 모인 것이었다.
각자 전문가들을 데리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한 번에 조사를 마치자고.
그러면 합의도 빠르게 진행될 수 있고, 불필요한 소송도 피할 수 있으며, 혹여 꼭 소송에 가더라도 증거조사를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줄일 수 있으니까.
그런데, 용선자인 나무해운 측이 이런 식으로 나오니, 선박소유자는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책임을 자기네들에게 몰아가려는 듯해 보였다.
“추가 조사가 필요한 근거를 설명해 주지 않으면 동의하지 않겠습니다. 이유가 뭐죠?”
선박소유자의 보험사인 런던 뮤추얼의 클레임 담당자는 범상을 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범상은 시작 때와 똑같이 짧게 그리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엔진에 문제가 없었는지 확실히 하고 싶을 뿐입니다.”
“어제 확인했는데요.”
“네, 알지만, 한 번 더 확인하고 싶다는 것이 저희 측 의견입니다.”
“정말 납득할 수가 없는 요구네요. 그렇게 확인하고 또 확인하자니. 문제가 발견될 때까지 계속 확인을 요구하겠다는 건가요? 만약 우리가 동의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거죠?”
“아, 그럼, 어쩔 수 없이 소송을 통해서라도 확인할 수밖에요.”
“정말 막무가내이군요!”
범상은 기다렸다.
상대가 열을 낼 때까지.
너무 화가 나서 표정을 숨기지 못할 때까지.
그리고 그건 지금이었다.
“좋습니다. 정히 그렇게 어려우시다면···.”
“어려운 게 아니라 납득이 가지 않는 요구이지 않습니까! 다들 그렇게 생각 안 하세요? 조사 내내 사사건건, 문제도 없는 것들 자꾸 물어서 지연시킨 게 누군데요.”
“좋아요. 그러면 이건 어떨까요?”
“뭐요?”
“런던 뮤추얼 측에서 사고 당시 선박 엔진에 결함이 없었고 추후 결함이 발견되면 모든 손해를 책임지겠다는 보증장을 발행 주시면, 저희도 더 이상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그런 거라면 어렵지 않죠! 당장 위랑 얘기해 보죠. 기다려요.”
짜증이 난 선박소유자 측 보험사 클레임 담당자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당연했다. 선박의 감항능력은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범상은 놓치지 않았다.
선박소유자 회사에서 나온 직원이 표정이 움찔하는 것을.
‘그래, 니들은 알고 있었지?’
선박 엔진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건물만 한 배가 복잡한 항구에 정박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항로가 좁고 수심이 얕아지는 곳에서는 바닷속 지형을 잘 아는 사람이 운항을 지휘해야 좀 더 안전하였기에, 도선사라는 직업이 생겼다.
이들은 지역 항의 뱃길을 잘 아는 사람으로, 주로 큰 배의 선장을 오래 하다가 은퇴한 사람들이 자격을 취득하여 맡게 되는데, 지역 항에 배가 들어오면, 이들이 배에 올라 정박을 도와준다.
정박만 밥 먹듯이 하는 사람들.
베테랑들이다.
하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
캐나다와 미국은 붙어있어도 여러모로 다른 점들이 많다.
그중 하나가 추수감사절.
날짜에서 근 한 달 차이가 난다.
산타마리아호는 캐나다 추수감사절 연휴에 밴쿠버항에 들어왔다.
도선사 데이비드는 산타마리아호의 정박을 도와주라는 호출을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때로는 연휴가 사람을 더 조급하게 만든다.
얼른 마치고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가기 위해 데이비드는 평소보다 많이 서둘렀다.
위험하다고 느끼지는 못했다.
늘 하던 일이었기에, 백번도 넘게 해본 일이었기에.
사고는 그럴 때 일어난다.
그리고 역시나···
“빌어먹을! 선주가 거짓말을 했어! 엔진에 문제가 있는 게 맞았어!”
정박 지휘 시 뭔가 이상함을 느끼기는 했지만, 데이비드는 자기가 서두르는 바람에 사고가 났다고 여겼다.
변명할 생각 없었다. 그는 사고 직후 열린 항만공사 직원과의 면담에서 그렇게 진술했다.
그랬기에, 이해관계자들은 도선사의 실수가 원인일 거로 짐작했다. 조인트 서베이를 시작하기도 전에 다들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러면, 일이 빨리 마무리될 테니까.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나무해운의 보험사인 웨스트 오브 잉글랜드의 북미 클레임 담당자 제임스 매닝도 그중 하나였다.
“제임스, 일단 보험사끼리 합의를 하자고. 그러고 나서, 우리는 선주한테 구상을 들어갈 테니까.”
그리스 선주의 보험사인 런던 뮤추얼의 클레임 담당자 론 에반스도 그렇게 속단했었고.
둘 다 선박 사고 클레임만 10년씩 한 베테랑들이었다.
“우린 좋아. 좋은 생각 같네, 론. 합의서 초안이 나오면 연락해.”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법.
제아무리 능숙한 자라고 할지라도 서두르면 실수를 하게 된다.
그 실수의 대가가 런던 뮤추얼에는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