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06)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06화(106/190)
【106화 –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런던 뮤추얼의 론 에반스를 만나고 호텔 방으로 돌아온 제임스 매닝은 아내와 어린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추수감사절에 같이 있지 못하게 되어서 미안하다고, 일이 거의 다 마무리되었으니까 금방 돌아갈 거라고 전했다.
통화를 마친 제임스 매닝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도선사와 같은 실수를 할 뻔했다.
돌이켜보면 스스로도 이해가 안 간다.
수백만 달러의 클레임이 걸린 일인데,
혹시라도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 해서 진행한 조인트 서베이였는데,
고작 추수감사절에 가족과 함께 있으려고 서둘렀다니.
제임스는 도선사를 비난할 수 없었다.
자신도 같은 실수를 할 뻔했으니까.
한범상이 아니었다면.
띠리링- 띠리링-
-하이, 제임스.
“헤이, 로라.”
-그래서, 런던 뮤추얼하고는 얘기해 봤어?
“응, 방금 론 에반스를 만나서 하고 오는 길이야.”
훌륭한 계획이었다.
난생처음 보는 기발한 작전 같은 건 아니었지만, 한국 로펌의 변호사한테서, 그것도 조인한 지 고작 3년밖에 안 되는 어쏘 변호사한테서 그런 배짱과 전략을 볼 줄이야.
“합의하기로 했어. 다음 주 안에 합의서 주기로 했어. 나오면 연락할게.”
-오! 좋은 소식이네!
“응. 잘 됐어.”
선박의 감항성(안전 운행 능력)은 기본 중에서도 기본이다.
당연히 배에 문제가 있으면 운행되어서는 안 되고, 임대되어서도 안 된다.
보험도 들 수 없다.
그래서, 선박의 감항성을 보장해야 하는 선박소유자는 주기적으로 조선소에 배를 보내 배의 상태를 점검하고, 감항성이 적합하다는 증서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이 언제나 교과서대로 처리되는 것은 아니다.
여러 번의 손바뀜이 있었던 산타마리아호는 감항성에 문제가 있었고, 선주는 이를 감추려고 했었다.
보험 파기 혹은 배상 거부 사유.
그랬으면, 웨스트 오브 잉글랜드 처지에서는 일이 아주 복잡해질 뻔했다.
만약 런던 뮤추얼이 그리스 선주와 체결한 보험이 무효였다고 주장했거나 아니면 배상을 거부했다면, 웨스트 오브 잉글랜드는 사실상 무보험자나 마찬가지인 그리스 선주와 직접 협상을 해야 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이번 일은 훨씬 더 까다로워졌을 것이 자명했다.
게다가, 현재 그리스 선주는 산타마리아호를 포함 소유하고 있는 선박들 모두를 특수법인 형태로 각각 등기하고 있어서, 만약 그들이 법을 악용하러 든다면, 그래서 해당 특수법인을 파산해버리면, 웨스트 오브 잉글랜드는 독박을 쓸 수도 있었던 상황.
‘만약’이 아니다. 선박의 감항성도 속이려는 판국에 아마도 십중팔구 그렇게 나왔을 것이었다.
물론 법인격 부인 소송을 하든, 가압류를 걸든 방법을 찾아볼 순 있겠지만, 생각만으로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렇게 복잡하게 꼬일 뻔한 일이 수월하게 끝난 것이었다.
멤버가 선임한 한국 변호사가 런던 뮤추얼로부터 보증장을 받아냈기 때문에.
-보증장을 먼저 받아둔 게 신의 한 수였네.
“맞아. 그거 아니었으면 골치 아플 뻔했어.”
아니, 큰일 날 뻔했다.
그날 밤 범상의 문자를 받고 로비에 내려가지 않았더라면···
그가 그런 문자를 보내주지 않았더라면···
생각만 해도 눈앞이 캄캄하다.
그의 말대로 지연손해를 개인적으로 떠안을 일까지는 없었겠지만, 영원히 집에 있을 수 있었다.
그런 큰 실수를 범한 클레임 핸들러를 받아줄 보험사는 없으니까.
-그럼 우리는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건가? 나무해운에 그렇게 전해도 돼?
“응.”
-런던 뮤추얼은 골치 좀 아프겠네.
“응.”
-그래서, 아무리 관행이라고 해도 보증장은 그렇게 함부로 주는 게 아니야.
“그래, 맞아. 함부로 줘서는 안 돼. 이번에 또 한 번 뼈저리게 느꼈어. 돌다리도 한번 두드리고 건너야 하는 것을.”
절대 서두르지 않아야 하는 것을.
-그런데, 론 에반스는 왜 그랬대? 경험이 없는 친구도 아니잖아?
“경험이 없어서가 아니야. 나라도 그 상황이었으면 그랬을 거야.”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범상 한의 계획이었다.
추가 조인트 서베이를 하기 위해서 저우샨 도크야드의 소견서를 선뜻 보여주었다면, 런던 뮤추얼이 보증장도 줘야 했을 일도 없었을 것이고,
런던 뮤추얼의 보증장이 없었다면, 추후 조인트 서베이에서 엔진 결함이 발견되었다 한들, 사실상 무보험자가 되었을 그리스 선주와 직접 협상을 벌여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렸을 것이다.
그랬으면 이렇게 로라 브라이트와 웃으며 이야기하지 못했을 것이고,
아내와 딸에게도 그렇게 따뜻하게 전화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참, 로라.”
-응?
“전에 내가 왜 굳이 한국 로펌을 쓰냐고 했던 말 있잖아. 그 돈이면 영국 로펌을 쓴다고 했던 거.”
-응, 그랬지.
“취소해.”
-응?
“취소한다고. 내가 속단했어. 제대로 겪어보지도 않고 섣부르게 내뱉은 말이었어. 만약에 내 말을 멤버에게 전했다면, 내가 사과한다고 말해줘.”
-아직 말 안 했어. 사건이 꼬이면 말하려고 했지, 안 했어.
“그렇다면 다행이고.”
-뭐야? 이 태세 전환은. 그 같이 갔다던 한국 변호사가 잘했나 보네?
“아니, 그보다 훨씬. 기대 이상이야.”
-그 정도야?
“런던 뮤추얼에서 보증장을 먼저 받을 수 있던 것도 그 친구 덕분이었어.”
-아, 진짜?
“내가 빚졌지···아무튼 기회가 되면 멤버한테 전해줘. 실력 있는 변호사를 추천해 줘서 고맙다고.”
당연히 개인적으로도 말할 것이다.
고마웠다고.
-변호사가 제 몫을 톡톡히 해줬나 보네. 그러면 일이 편해지지. 제임스 네가 그렇게까지 얘기하니까, 궁금해지는데. 그래서, 그 변호사 이름이 뭐라고?
“범상.”
-범생?
“아니, 범상. 범상 한 변호사.”
몰라봐서 죄송하다고.
-*-
호텔 근처 한식당.
징징- 징징-
“어, 이사님이네. 잠깐만.”
“네, 받으세요.”
무열이 형과 저녁 식사 도중, 나무해운 법무팀 이사님으로부터 전화가 들어왔다.
“네, 이사님. 네, 식사 중이었습니다. 아니요. 통화 괜찮습니다. 네. 네, 네······.”
무열이 형은 전화기를 들고 잠시 나갔다가 5분 만에 들어왔다.
“미안. 서울 사무실에 이사님.”
“네. 뭐라고 하세요? 별일 없는 거죠?”
“응, 응. 없어. 다 끝났는데 뭐. 제임스가 말 한대로 런던 뮤추얼에서 합의하자고 정식으로 공문이 날라왔대.”
“잘됐네요.”
“네 덕분에 잘 끝났다. 한잔할까?”
“넵.”
신기하다. 외국에 출장 와서 마시는 소주는 또 좀 다르다.
계획했던 것보다는 출장이 살짝 길어졌지만, 그래도 다시 올 필요가 없어졌다.
때로는 일을 천천히 하는 것이 더 빨리 끝내는 것이기도 하다.
“야, 클럽 담당자가 네 이름을 물었다고 하더라.”
“로라 브라이트라는 분이요?”
“응. 거기가 우리 나무해운 담당이거든.”
사고가 밴쿠버항에서 발생하는 바람에 현지 클레임 담당자인 제임스 매닝이 조인트 서베이를 어레인지하고 참석했지만, 나무해운 관리는 로라 브라이트라는 분이었다.
“제 이름을요?”
“사실 너한테는 말하지 않았는데. 우리가 처음에 너 선임하겠다고 했을 때, 클럽에서 되게 시큰둥하게 나왔었거든. ‘레이트가 비싼 거 같다.’ ‘왜 영국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느냐.’”
대충 알고 있었다. 이런 일에 한국 변호사를 대동하고 가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으니까.
“고맙습니다.”
“고맙긴 내가 고맙지. 아니, 웨스트 오브 잉글랜드가 절을 해야지. 네 덕에 지들 돈 세이브한 게 얼만데. 아무튼 들어보니까, 클럽에서도 이번에 김앤강이랑 널 잘 본 거 같아. 네 이름도 묻고, 그러면 다음에도 계속 김앤강을 써도 괜찮냐는 이사님 질문에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는 거 보니까.”
“제임스가 잘 얘기해줬나 보네요.”
“그런 거 같아. 참, 처음에는 서베이 내내 인상을 팍 쓰고 있길래, 저 사람이 우리 편인지 아닌지, 짜증이 나려고 했는데,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
“그러면서 친해지는 거죠. 알아가는 거고.”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런 거지. 나도 너 처음 봤을 때는 표정이 없어서 ‘얘는 왜 이렇게 잘난 척이야.’ 했네.”
“에? 제가요?”
“너 가끔 그래. 몰랐지?”
“전혀요. 저는 그냥 눈에 띄지 않으려고 하는 거뿐이었는데.”
몰랐다.
“그러니까, 알아보면 다 사정이 있어.”
“그렇죠.”
“아무튼 이제 나무해운이 네 클라이언트니까, 잘 부탁해, 한 변.”
“제가 잘 부탁드립니다, 이 부장님.”
“자- 짠-”
일이 잘 끝났다.
새로운 클라이언트가 생겼다.
“그나저나, 그 저우샨 소견서는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찾았냐?”
“운이 좋았죠.”
“아무리 운이 좋아도 그렇지. 그 방대한 회생 기록 안에서, 그게 쉬운 일이 아닌데.”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운이 좋았던 것도 맞고.
현진상선 회생사건을 맡지 못했다면 놓치기 쉬웠을 테니까.
“말씀드렸잖아요. 우리 사무실 비서분들은 그냥 비서분들이 아니라고.”
“그러네. 일류 로펌은 비서들도 다르네. 하하하- 자- 짠- 마셔. 이건 나무해운이 사는 거야.”
비싼 위스키나 와인보다 소주가 맛있을 때가 있다.
특히 이런 해외 출장에서, 평범한 한식당에서 뜻이 맞는 사람과 기울이는 그 작은 술잔은 참 특별하다.
“형, 너무 마시는 거 아니세요? 내일 카길 담당자랑 미팅 있다면서요.”
“중요한 미팅 아니야. 그냥 온 김에 보는 거지. 그리고, 너랑 오늘 마시는 게 중요하지. 내일 일은 내일로. 오케이?”
“네. 하하.”
“자-”
짠!
평범한 술도, 평범한 음식도, 좋은 사람과 함께할 때는 특별해진다.
그게 케미스트리.
“아, 근데, 형. 요새 보는 만화 있으세요?”
“나? 있지.”
“뭐요? 재미있는 거 뭐 없어요? 추천해 줄 만한 거?”
“마법사랑해.”
“마법사랑해? 그건 뭐예요?”
“네이버 웹툰. 진짜 작화 미쳤다.”
“아, 그런 게 있었어요? 몰랐네. 근데 웹툰이에요? 온라인으로 밖에 못 보나.”
“아니, 출판도 됐어.”
“아, 그래요?”
“그럴걸.”
“한번 찾아봐야겠네. 다른 건요? 혹시 사냥에 관한 만화는 없나요?”
“사냥? 뭐? 헌터물?”
“아니요. 진짜 사냥. 사슴 잡고, 늑대 잡고.”
“하아···사슴 잡고 늑대 잡는 진짜 사냥 만화? 그런 게 있나···?”
역시 그런 거는 없으려나···
“아, 거기에 그런 장면이 좀 나온다. <창세의 타이가>라고 생존물 만화가 있는데, 거기 사냥하고 그런 거 좀 나와.”
“<창세의 타이가>요?”
“아, 그러고 보니, 같은 작가가 그린 그 전 작품에도 사냥 장면이 나오네. 잡은 사슴으로 육포 같은 것도 만들고.”
육포!
“아, 진짜요. 제목이 뭐예요?”
“<아일랜드>”
집짓기, 성과급 그리고 타이밍
“장군아—”
그 뒤로 늑대들은 더 이상 집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는다.
“멍멍!”
“장군이 왔어. 멍군이는?”
하지만, 언제 또 나타날지 몰랐다.
이곳의 생태계는 확장되고 있었으니까.
나는 장군이에게 약속한 대로 유기견 몇 마리를 더 데리고 들어왔다.
“월월!”
“멍군이 왔어? 아우- 귀여워. 우리 귀여운 멍군이 왔쩌요!”
“월월!”
형이 맛있는 간식 가지고 왔어. 멍군아, 장군아! 가서, 누나랑 동생들도 다 데리고 와.”
“월월!”
“멍멍!”
나와 장군이의 든든한 동료가 되어줄 여덟 친구.
아직은 애기들이지만, 이놈들도 금세 크겠지.
“재호! 준호! 지호! 일준이! 이준이! 삼준이! 사준이! 다 왔네! 아우- 똑똑이들.”
월월! 멍멍! 왕왕! 워프워프!
조용했던 아공간이 시끌벅적해졌다.
왜 진작에 식구를 늘리지 않았을까?
이렇게 든든한 것을···
“근데, 나비 누나는 또 어디 갔니?”
늑대가 나타나서 한동안 곁에 쏙 붙어있더니만, 좀 안전해졌다고 또 숨바꼭질 놀이를 하는 녀석이다.
“진짜 앤 또 어딜 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