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07)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07화(107/190)
【107화 – 집짓기, 성과급 그리고 타이밍】
“사장님, 테이블쏘 주문하셨죠? 이거 비닐하우스 안에 넣어드리면 되나요?”
“네, 그래 주세요. 감사합니다.”
늑대가 처음 나타났을 때, 집 주변으로 철조망을 쳤었다.
다급하게 설치했다 보니 보기엔 썩 좋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날카로운 철조망 가시에 다치는 강아지들도 생겨났다.
늑대들을 몰아내고 난 뒤, 나는 철조망을 걷어냈다.
그러곤 탄탄한 울타리를 대신 설치했다. 인터넷에서 주문한 철제 펜스를 가지고 들어와 세웠더니 딱히 어렵지도 않았다.
좋은 생각이었다. 보기에도 훨씬 낫고, 안전했고, 구멍이 뚫려있어 시야도 확보되고, 높이도 높아 쉽게 넘어 다닐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러고 나서 집을 보니 너무 허름하더라.
캠핑용 에어 텐트랑 폴들, 그늘막들 모두 멀쩡했고, 이곳저곳 필요할 때마다 보수해 가면서 쓴 판잣집(?)도 여전히 괜찮았다.
그러나, 근 십 년 만에 제대로 쳐다본 아공간 속 내 집은 초라했다.
나는 집을 다시 짓기로 결심했다.
그전에는 그럴 금전적인 여유가 없었지만, 지금은···
넉넉했다.
필요한 기계들과 재료들을 경기도 비닐하우스로 주문했다.
목재들은 아공간 세계에도 많았다.
오래 걸릴 일이란 거 안다.
‘1년? 2년?’
딱히 걱정은 하지 않는다.
“여기요? 파이프 배달왔는데요?”
“안녕하세요.”
“파이프 배달왔는데요. 어디다 놓을까요?”
“비닐하우스 안에 넣어주시면 돼요. 감사합니다.”
남는 게 시간이니까.
-*-
광화문,
센터게이트빌딩 12층.
[최재민: 출장 잘 다녀왔어?] [한범상: 네, 잘 다녀왔습니다.] [최재민: 윤상호 변호사님한테 들으니까, 웨스트 오브 잉글랜드인가 하는 선박 보험사에서 한 변을 잘 봤다고 하던데. 또 무슨 재주를 부린 거야? 이번에는 가서 불어라도 한 거야? 캐나다는 2개 국어 쓰지? 영어랑 불어.] [한범상: 그냥 현진상선 회생 때 봤던 자료가 좀 유용했습니다.] [최재민: 아무튼 이러다가 내 자리까지 넘보는 거 아니야?] [한범상: 왜 그러십니까;;] [최재민: 한 변, 지금 바빠? 바쁘지 않으면 잠깐 내 방으로 올 테야? 할 얘기가 좀 있는데. 바쁘면 나중에 해도 되고.] [한범상: 바로 가겠습니다.]밴쿠버 출장에서 돌아온 다음 날 아침,
최재민 변호사님께서 방으로 호출하셨다.
똑똑-
“변호사님.”
“어, 들어와, 한 변.”
방이 바뀌었다. 예전에 성일용 변호사님이 쓰시던 방을 이제 최재민 변호사님께서 쓰셨다.
「김앤강
국제중재팀
시니어 파트너 최재민.」
명함도 바뀌었다.
“어때? 방 넓지?”
“네, 넓네요.”
예전 최 변호사님의 방에는 소파가 없었는데, 이곳에는 있다. 확실히 시니어 파트너에게 제공되는 혜택들은 다르다.
“거기 좀 앉아서 얘기할까?”
“네.”
“차는?”
“저는 괜찮습니다.”
“그래, 나도 괜찮아. 그럼, 그냥 얘기하지, 뭐.”
“네.”
아람코 프로젝트를 수임하면서 사무실 내에 인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덕분이라고 하면 조금 웃기지만, 개인적으로는 최재민 변호사님하고 좀 더 돈독해진 계기가 되었다.
“다른 거는 아니고, 연말이잖아. 우리 할 얘기가 좀 있지?”
변호사님한테서 사건을 배당받기 시작했을 때는 이런 미팅 자체가 긴장됐었다.
어는 순간에는 가벼우시고, 또 어는 순간에는 심각하셔서, 그 장단을 어떻게 맞춰야 하는 건지 감이 오질 않았었는데.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다. 타이밍이 보인다. 그리고 그 익숙함은 좋은 느낌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고 부른 줄은 대충 예측할 수 있었다.
매년 이맘때면 파트너들 앞에 불려 간다.
“성과급. 우리 성과급 이야기해야지.”
조용히 기다리니, 예상대로 변호사님께서 말씀을 이으셨다.
“이건 뭐 웬만한 주니어 파트너급 수준이야. 내가 한 변 연차 때는 정말 꿈도 못 꾸어본 액수인데. 좋겠어, 한 변은.”
“고맙습니다.”
“나한테 고마울 거는 없고. 한 변이 잘해서 가져가는 거니까. 자, 이거야.”
최재민 변호사님께서는 아까부터 들고 있던 종이를 내 앞에 내미셨다.
그게 뭔지 몰랐다. 작년에는 그냥 말씀해 주셨는데···
나는 두 손으로 종이를 받아 펼쳐봤다.
거기에는 이번 성과급의 금액과 정산 명세가 담겨있었다.
“헉!”
깜짝 놀랐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어도, 이 정도 금액일 줄을 몰랐는데.
“왜?”
“부족해?”
“아니요!”
“그럼, 만족스러워?”
“네.”
“다행이네. 나는 또 더 달라고 하면 어쩌나 했네.”
농담이다. 어느 어쏘가 이 금액을 성과급으로 받았는데 인상을 찌푸린다는 말인가.
“해상팀하고 파이낸스팀하고 특허팀하고 다 체크해서 산정한 거야. 명세서 내용에 궁금한 게 있으면, 나한테 와도 되고 해당 팀 파트너 변호사님한테 찾아가 봐도 되고.”
게다가 명세서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럴 일 없을 것 같습니다.”
“혹시 혼란스러워할지 해서 얘기해주는데, 그 마지막 줄에 있는 금액은 세후 금액이야. 그게 한 변 통장에 찍히는 금액이라고.”
“네.”
“알고 있었어?”
“여기 쓰여있는데요. ‘세금 공제 후’라고.”
“아, 그래? 에이- 서프라이즈였는데. 그래서 뭐 할 거야, 그 돈으로?”
“아···어머니 좀 드리고, 집···.”
짓는 데 좀 쓰고···.
“그래, 집 사는 것 좋지. 뭐라고 해도, 대한민국에서 아직은 부동산은 제일 안전하니까.”
“고맙습니다.”
“고마울 건 없고, 내년도 잘 부탁해. 아람코는 한 변만 믿고 가는 거야. 오케이?”
“넵.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근데, 한 변, 혹시 몸 키워? 몸이 좀 다부져진 거 같다. 요새 운동해?”
“네? 아, 운동은 늘 조금씩 하기는 하는데···.”
“그러고 보니 신기하네. 출장 가기 전에 봤을 때는 이렇게까지 크지는 않았던 거 같은데···.”
딱히 근육을 키우지는 않았다.
요새 힘 좀 쓰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티가 나나?
“그냥 출장 가서 치즈버거 같은 거랑 기름진 음식들을 많이 먹어서 그런 거 같아요.”
라고, 대충 얼버무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실 얘기가 끝난 줄 알았다.
“그래?”
“네.”
“근데, 어디 가?”
“네?”
끝난 게 아니었다.
“나는 아직 할 얘기가 남았는데?”
“아! 그러신가요?!”
“방에 꿀 발라놨어? 얘기도 안 끝나는데, 일어나.”
“아니요. 죄송합니다.”
“다른 거는 아니고. 성과급 얘기하는 김에 내후년 유학 얘기도 하자고.”
“아, 네.”
“그래서? 생각해 봤어? 유학은 어디로 갈지?”
유학.
파트너로 가는 길.
-*-
센터게이트빌딩 12층,
도하영의 방.
방주인의 얼굴이 심각하다.
-도 변, 그래서 학교는 정했어?
-예일로 갈 거야? 도 변, 거기 로스쿨 나왔잖아.
-영국으로 간다고 했던가?
로펌 변호사에게 유학은 소위 파트너 트랙(Partner track)이라고 부르는 ‘파트너로 가는 길’의 시작이다.
한때는 5~7년 다니면 로펌에서 당연한 보내주는 거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세상이 바뀌었다.
변호사가 많아졌고, 경쟁이 심해졌다.
안 보내주기도 하고, 심지어 보내주고 나서도 돌아왔을 때 파트너 자격을 주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도하영 역시 기대하고 있었다.
어디에 지원할지도 이미 마음속으로 정해놨다.
영국의 옥스퍼드대학.
김앤강 조인 전에 자비로 유학을 다녀온 그녀였지만, 그것과 이것은 별개.
그녀가 김앤강에서 지난 5년간 열심히 일한 것에 대한 보상과 앞으로 그녀에 거는 기대를 반영해서, 로펌에서 보내주는 것이었다.
유학을 다녀오면, 그녀는 파트너가 된다.
로펌에 조인한 순간부터 기다려 온 순간.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그래서 동기 중에서는 빨리 가는 편이었다.
그런데, 지난주 성과급 협상에서, 그녀를 망설이게 만드는 이야기를 최재민으로부터 들었다.
「“도 변이 먼저 다녀오면, 내년에는 한 변이 갈 거야.”
“내년에 한 변호사님이 가나요?”
“응, 그렇게 될 거야.”
“아···.”
“그래서, 생각해 둔 데는 있어? 도 변 성적이랑 실력 정도면 어디든 갈 수 있지. 어디? 예일? 하버드?”
“네?”
“학교 정했냐고? 내년 9월 입학이면 슬슬 원서 넣어야 하잖아.”
“아···네···.”
“뭐야? 얘기하다 말고. 갑자기 제출하지 못한 증거라도 생각났어? 왜 그래?”
“아니요. 그런 거는 아니고···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도 변답지 않네. 언제나 준비된 도 변이. 뭐, 알아서 잘하겠지만, 빨리 정해서 원서 넣으라고. 도 변 선배 중에서도 미루다가 갑자기 사건들이 몰려서 그해 못 가고 다음에 간 어쏘도 있었으니까.”
“아, 네, 알겠습니다.”」
당연히 한범상 변호사도 사무실에서 유학을 보내줄 줄은 알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원하는 엘리트인데, 당연한 일.
다만, 그 타이밍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미처 몰랐다.
‘한 변호사님이 내년에 간다고···?’
그녀의 머릿속엔 이제 옥스퍼드도, 예일도 중요하지 않다.
「미루다가 갑자기 사건들이 몰려서 그해 못 가고 다음에 간 어쏘도 있었으니까.」
지난주 시니어 파트너 변호사가 해주었던 얘기만 맴돌 뿐.
똑똑-
“도 변호사님.”
“아! 한 변호사님!”
“죄송해요. 놀라게 해드리려고 한 거는 아닌데. 문이 열려있어서···.”
“아니에요. 들어오세요. 왜요? 아, 출장은 잘 다녀오셨어요?”
“네.”
“밴쿠버는 어땠어요? 여행 갔다 온 친구들은 좋다고 하던데.”
“겨울이라서 그런지, 있는 내내 비만 오더라고요.”
“어떡해.”
“출장이었는데요, 뭐. 그래도 마지막에 오기 전에 산에 잠깐 다녀왔는데, 거기는 좋더라고요. 눈이 와서.”
“아, 네···.”
하영의 얼굴이 살짝 상기된다.
놀라서 그렇게 된 건 아니다.
“변호사님, 혹시 연어 좋아하세요?”
“연어요? 네, 좋아하는데.”
“연어 육포도 좋아하세요? 새몬 저키요.”
“네, 좋아해요.”
“아, 그럼, 이거···.”
“이게 뭐예요?”
“공항 면세점에서 엄마랑 친구네 것들 사면서 몇 개 더 샀는데, 저는 맛이 좋더라고요. 괜찮으시면, 도 변호사님도 한번 드셔보시라고요.”
“아, 정말요? 고맙습니다!”
“제가 고맙죠. 맨날 제가 스무디랑 차 얻어 마시는데요. 한 번 드셔보세요. 캔디드 저키(candided jerky: 사탕절임 육포)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달고 짜서 계속 먹게 되더라고요. 제 입맛에는 맞아서···.”
“네, 먹어볼게요. 아, 맛있겠다.”
“그럼, 오늘도 파이팅.”
“파이팅!”
뜻밖의 선물.
갑자기 신이 난다.
“아, 한 변호사님.”
하영은 돌아나가는 범상을 불렀다.
“네, 변호사님.”
“혹시 최 변호사님하고 얘기는 하셨어요?”
“무슨 얘기···?”
“유학 얘기요.”
“아, 네. 안 그래도 방금 최 변호사님하고 그 얘기를 하고 오기는 했는데.”
“아, 그러셨구나···한 변호사님.”
“네.”
“혹시 한 변호사님은 어디 가시고 싶은 학교가 있으세요?”
“아니요. 떠오르는 데가 몇 개 있기는 한데, 아직 어디로 정한 데는 없어요. 도 변호사님은요? 도 변호사님은 내년에 가시죠?”
잠시 머뭇거린 하영은 범상의 질문에,
“저도 아직 생각해 둔 곳은 없어서··· 근데 내년에 사건이 좀 많을 것 같아서··· 내년에 갈 수 있을지···.”
얼굴이 붉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