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08)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08화(108/190)
108화 오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저택을 지으려는 건 아니었지만, 제대로 짓고 싶은 마음에 하나, 하나 챙기다 보니 진척이 더뎌졌다.
건축이나 목공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고, 어려운 게 당연했다.
기둥이나 대들보로 쓸 큰 목재들은 밖에서 주문해서 들여왔다.
성과급도 받았겠다. 웬만한 것들은 주문했다.
어설프게 내가 하는 것보다는 전문가가 깎아놓은 것들을 사용하는 게 이래저래 나을 듯싶었다.
“멍멍!”
“어때? 기둥만 세웠는데도 제법 근사하지?”
간편한 세상이다.
혼자 집을 지을 때, 벽과 지붕은 어떻게 세우는 건지, 수도관은 어떻게 설치해야 하는지, 보온재는 어떻게 삽입해야 하는지 등 자세하게 나와 있다.
심지어 간단한 전기 공사까지도.
도면은 예전 디트로이트 출장 갔을 때 샀던 책에 나와 있는 것을 사용했다.
침실 하나짜리 오두막집 설계 도면인데, 상상해 본 집보다 작기는 했어도 녀석들하고 다 들어가 있을 수 있을 만큼은 돼서 그걸로 정했다.
뚝딱뚝딱.
쿵! 쿵! 쿵!
씨이잉- 씨이잉-
첫날 목재들을 들여왔을 땐 사실 막막했다.
‘내가 이걸 왜 샀지? 이걸 언제 다 세우고, 다 채우지?’
그냥 에어 텐트 하나 더 사서 설치하면 될 일을 괜히 크게 만든 건가 하는 후회가 몰려왔다.
그렇게 한 이틀을 그냥 멍하니 놔두고 있다가, 운동하는 셈 치고 기둥 하나를 세워봤다.
그렇게 시작했다.
하나씩.
하나씩.
머릿속에서 계속 생각한 일이라 그런지, 막상 시작하고 보니, 또 굴러갔다.
하나씩.
하나씩.
덜렁 하나 세워져 있던 기둥이 둘이 되고, 넷이 된다.
넷이 되고, 여덟이 되었다.
어느덧 기둥 공사가 끝났다.
“후우—”
기둥만 세웠을 뿐인데,
반쯤은 끝난 기분.
신기하게도 힘든데, 보고 있으면 또 힘이 난다.
목표가 있는 일이란 원래 그런 거지 않나.
보고 있으면 힘이 나는.
한동안 날카로운 기계음들과 둔탁한 소리가 아공간을 메울 듯싶다.
“야옹-”
얼마나 일했을까,
기계들을 멈추고 잠깐 쉬고 있는데, 내 옆으로 나비가 다가왔다.
“바쁘신 우리 한나비 씨 오셨어요?”
“야옹-”
“배고파?”
“야옹-”
꼬르륵-
“고프냐? 나도 고프다. 뭘 만들어 먹을까? 나비야, 뭘 만들어 먹으면···잠깐. 근데, 너 코에 그거 뭐냐?”
“야옹-”
“또 어디를 다녀왔길래, 코에 이런 까만 거를 묻히고 다녀 지저분하게.”
“야옹-”
“이거 뭐야? 진흙이야? 아닌데. 뭔데, 끈적거리는 게 지워지지도 않아. 이거 뭐니, 나비야?”
【108화 – 오일】
12월.
한남동,
도하영의 집.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직접 만든 모과차를 한 모금 마신 하영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너무 밍밍한가? 아주 단 거는 또 안 좋아하는 것 같던데···.’
유자청을 만들려다가 이번에는 다른 것을 만들어 주고 싶어, 모과를 사서 직접 말려봤다.
청보다 좀 더 정성이 들어가 보일 것 같았다.
근데, 평소 마시던 차가 아니라서 그런지, 맛이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심각한 표정으로 몇 번 더 마셔 보는 하영.
바로 그때, 그녀가 모과차를 홀짝거리고 있는 주방 안으로 동생 하석이 들어왔다.
“뭐가 그렇게 심각해? 변비야?”
“야, 이거 한번 마셔 봐?”
“뭔데? 싫어.”
“먹어.”
하영은 거부하는 동생에게 모과차를 건넸다.
용돈을 주는 누나의 명은 어길 수 없다. 연노란색의 액체를 받는 하석. 향은 나쁘지 않다.
“뭐야 이거?”
“마셔.”
“네.”
맛은···잘 모르겠다.
맛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막 좋은 것 같지도 않은. 조금 떫은 것 같기도 하고.
“어때?”
“별로.”
“다시 마셔 봐.”
젠장, 그냥 맛있다고 할걸.
이런 거 먹으려고 주방에 들어온 게 아닌데.
“두 번 마시니까, 괜찮은 거 같기도.”
“이 새끼가, 똑바로 말 안 해?”
“아, 진짜! 그럼, 뭐라고 해?! 맛없다고 하면 맛있다고 할 때까지 마시게 할 거고, 맛있다고 하면 똑바로 말하라고 지랄하고. 나더러 어쩌라고!”
“야, 왜 화를 내고 그래? 싫으면 싫다고 하지. 야, 내놔.”
하영은 하석의 손에서 모과차를 빼앗았다. 삐쳤다.
성공이다. 이럴 때 심하다 싶을 정도로 오버액션을 해야 빨리 끝난다. 오랜 세월 남매로 살아오면서 터득한 노하우. 안 그랬으면, 두어 잔 더 마셨을 게 뻔했다.
“근데, 진짜 뭐야? 커피 매니아가 저번에 왔을 때 스무디도 그렇고, 차까지 만들어 마시고. 아! 몸이 안 좋구나? 나이가 드니까. 그렇지, 누나도 이제 똥···아니, 연식이 좀 되지.”
피하는 노하우는 피하는 노하우고, 긁는 건 또 해야 한다. 마치 혼날 걸 알면서도 말썽을 피우는 강아지처럼.
그것이 남동생의 숙명.
“뒈지고 싶냐?”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냉장고를 뒤지고 싶었을 뿐입니다.”
“뭐래.”
평소 같았으면 한 대 쥐어박을 수도 있었겠지만, 하영의 머릿속엔 오직 모과뿐이다.
누나가 발끈할 줄 알았는데 잠잠하니, 뭔가 이상하다. 하석은 냉장고를 열며 누나의 표정을 살폈다.
확실히 뭔가 있다.
“누나 연애하지?”
“···.”
“맞네. 연애하네. 지난번에 블루베리 스무디도 그렇고. 맞지?”
“신경 꺼라.”
“헐- 진짜네. 도도하신 도하빵께서 스무디를 갈길래, 내가 이상하다 했다. 누구야? 회사 변호사?”
“끄라고 했다.”
“오피스 허즈번드?”
아무렇지 않던 그녀가 허즈번드(husband: 남편)라는 단어에는 반응한다. 하영의 볼이 살짝 달아오른 것 같다.
“맞네. 이것도 그 사람 가져다주려고 만드는 거? 헐- 그렇지. 아무리 건강 때문이라도 사 먹으면 사 먹었지, 이런 걸 만드는 인간이 아닌데, 내가 ‘왜 이러나?’ 했다. 누군데? 변호사?”
“세 번 말 안 한다. 꺼지라고 했다.”
“설마 유부남?”
딱!
“아!”
“니가 오늘 정말 죽고 싶구나?”
“야, 그렇다고 머리를···아니면 말지···”
기어코 한 대 맞는다.
하석은 뒷머리를 만지며 냉장고에서 제일 먼저 보인 것을 꺼냈다.
아프지 않다.
재미있다.
이 정도 고통은 참을 수 있다. 누나를 놀릴 수만 있다면.
“그래서 아닌 거야? 남자 없는데 청승맞게 그런 거나 만들고 있는 거야?”
누나를 놀릴 수만 있다면.
“내가 아는 형 중에 우일이 형이라고 있는데, 소개팅 자리 한번 만들어 봐? 괜찮은 형이야. 어때? 해줄까?”
하영은 이제 대꾸도 하지 않는다.
“누나도 시집은 가야 하지 않겠어? 그래야 또 나도 갈 수 있고. 원하면 문자 한번 넣어볼까? 어때 생각 있어? 흠- 이거 뭐지? 맛있는데.”
“괜찮아진 것 같기도 하고···.”
모과차에 꿀을 한 스푼 타서 마셔 볼 뿐.
“괜찮다고? 좋다고?”
“아닌가, 아직도 좀 떫나?”
한 스푼 더 타본다.
“쩝쩝. 이봐요, 도하영 씨. 사람이 말을 하고 있으면 좀···.”
“아- 이제는 또 너무 단 거 같고.”
“도하영 씨? 쩝쩝. 도하빵.”
“너 지금 뭐 먹냐?”
계속 무시하고 모과차에 집중하던 그녀를 흔든 건 동생의 놀림이 아니었다. 그의 손에 들린 음식.
“응? 몰라. 연어인가? 되게 맛있네.”
범상이 준 사탕절임 연어 육포.
하영의 두 눈이 분노로 이글거린다.
아끼고 있었는데 감히···
“이 새끼가-”
“왜? 왜?! 왜 또? 내가 뭘 어쨌!!!”
퍽!
“악!”
퍽!
“으악! 아! 엄마! 누나가 때···악! 엄마! 얘 미쳤어, 엄마!!!”
퍽! 퍽! 퍽! 퍽!
-*-
[최재민: H405-2507건 회의 좀 할까?]메시지를 받은 하영은 리걸 패드를 챙겨 회의실로 향했다.
잠시 뒤, 최재민과 주니어 파트너 김정욱도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상대방 측에서 들어온 서면 다들 봤어?”
“네.”
“예.”
성일용의 퇴사로 시니어 파트너 자리를 꿰찼지만, 그렇다고 하던 일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최재민은 사건 하나, 하나 챙겼다.
“저쪽 주장이 일리 있어 보이던데, 김 변호사는 어떻게 생각해?”
“제 생각에는···”
회의는 늘 하던 대로 신속하고 간결하게 진행됐다.
기록에 철해놓을 목적으로 하영은 요점들을 노트에 적었다.
“혹시 더 할 말들 있어? 다른 의견이라든지?”
“없습니다.”
“저도요.”
후배들이 없다고 하자, 최재민은 철을 덮었다. 그러고는 다른 사건에 관한 용무를 꺼냈다.
“그럼, 이 건은 이쯤하고. 아람코 베트남 건 관련해서 말이야. 다들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파이낸스 김창균 변호사님 팀하고 같이 핸들하고 있잖아. 그래서 우리 팀에서는 나하고 한 변호사가 어싸인되어 있는데, 한 명이 더 필요할 것 같아. 이게 혹시라도 한 변이 다른 사건 때문에 급하면 나 말고 밑에 한 명 더 있는 게 맞을 것 같거든. 그래서 말인데, 김 변호사, 요새 워크로드가 어때?”
“워크로드요? 아···.”
무슨 이유에서 인지 주니어 파트너 김정욱은 머뭇거렸다.
최재민은 곧바로 이유를 물었다.
“왜? 업무량이 많아?”
“네. 요새 사건이 좀 몰려서요. 박정태 변호사님이랑 하는 싱가포르 중재 건도 다음 주부터 기일들이 잡혀있기도 하고···.”
사건이 몰려서 아람코 사건을 거절한다고?
그럴 리가.
인간들의 관계는 복잡하다.
자리에 올려줬다고 팀을 단번에 장악하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위 기수 몇 명을 제치고 오른 자리. 이런 ‘보이지 않는’ 반항들이 있을 거라 최재민도 예상했다.
주니어 파트너 김정욱은 그가 제친 위 기수 선배 중 한 명인 박정태 변호사와 친했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러면, 도 변이···아, 도 변은 유학 준비해야지. 그럼, 누구를 하는 게···.”
“제가 할게요!”
도하영에게 지시하려던 최재민은 말꼬리를 흐렸다.
그녀를 배려해서였다.
그런데 도하영이 치고 들어왔다.
대답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커서 살짝 놀랐다.
“깜짝이야.”
“괜찮으면 제가 해보고 싶은데요.”
최재민은 도하영을 봤다.
“괜찮겠어? 유학 준비도 해야 하는데? 도 변이 지금 하고 있는 사건들 수가 적지 않은데.”
“괜찮습니다.”
“진짜?”
“네.”
진심이다. 눈이 반짝반짝거릴 정도로.
최재민은 도하영을 아낀다.
결코 사건을 적게 주고 있는 게 아니다.
일이 많아서 번아웃 같은 게 오지 않는 선에서 일을 주고 싶다.
그렇다고, 본인이 하겠다는데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그래, 그럼. 도 변이 같이해. 그러면, 일단 기록부터 먼저···도 변?”
“네.”
“신나? 아니, 사건 주겠다는데 무슨 로또 당첨된 사람 같은 표정을 짓고 있어.”
“네? 아- 아람코잖아요. 세계 1일의 오일 회사.”
그리고 범상이 맡고 있는 클라이언트.
신이 난다. 출근 전 동생 놈이 연어 저키를 먹어버리는 바람에 기분이 별로였는데,
“그렇게 안 봤는데, 은근히 야망이 있어. 아무튼, 그럼, 도 변한테도 배당할 테니까, 오늘부터 기록들 훑어보고 다다음주 출장에 같이 가자고.”
“네.”
기분이 좋아졌다.
점심때, 가져온 모과 말린 것을 줘야겠다.
-*-
같은 시각,
범상은 인터넷 검색에 푹 빠져있다.
>원유 색깔
>원유 성분
>석유 생성 원리
>원유 테스트하는 법
···
아무리 봐도, 나비가 코에 묻혀온 물질이 석유 같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