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1)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1화(11/190)
【011화 – 식량, 공간, 그리고 커리어】
토요일 오전, 도대기는 사무실에 나왔다.
리크루트팀에 있다고 사건이 없는 건 아니다.
인재 관리는 엑스트라 업무일 뿐, 본업은 변호사다.
신기하게도 주말에 나와서 일하면 능률이 높다.
필요한 문서들이 있으면 직접 찾아봐야 하는데도 뭔가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 느낌이다.
사무실이 조용해서 그런가.
오후 3시.
예상했던 것보다 한 시간 정도 빨리 끝낸 도대기는 인재 관리 폴더를 펼쳤다.
이제 또 조만간 새로운 인턴생들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한다.
매년 채용하는 신입 변호사의 수는 조금씩 다르다.
적을 때는 40명 정도일 때도 있고, 많을 때는 70명이 넘게도 뽑는다.
그래도 언제나 다른 로펌들보다 많다.
신입 50명을 뽑는다손 치면 적어도 70~80명 정도의 로스쿨 인턴생들은 뽑아야 한다.
이제 내부 실무인턴 경험 없는 지원자는 뽑지 않는 게 원칙이다.
하계 인턴, 동계 인턴, 로스쿨 1학년 인턴생, 로스쿨 2학년 인턴생, 1차 면접, 2차 면접, 3차 면접···
관리해야할 게 너무 많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국가가 양성하던 시절이 편했다.
300명 이상의 지원자 중에서 선발된 117명의 로스쿨 인턴생.
내년에는 이 중에서 70명에게 영입 제의를 하게 될 예정이다.
그렇게나 많이 뽑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그중 35명은 1년 뒤에 그만두게 될 것이니까. 남은 35명 중 17명은 2년 뒤에 그만두게 될 거고. 그리고 5년 뒤 한 5명쯤 살아있으면 많이 남아있는 것이다.
로펌은 그런 곳이다. 파트너가 되기 전까지 끝없이 경쟁해야 하는 곳. 아니, 나가기 전까지 끝없이 경쟁해야 하는 곳.
“이 기록이 왜 여기 있지?”
인턴 관리 파일을 검토하고 있던 도대기는 한범상의 기록을 발견했다.
기억난다. 맨 처음 지원 서류를 받았을 때 어디다 넣어야 할지 몰라 인턴생 파일에 넣어놨었다.
규격 외 인물.
따로 폴더를 만들지 않는 이상 어디에 넣어도 맞지 않는 지원자.
신임 외국 변호사 고용 절차는 국내 변호사들과 별도로 진행된다.
상시 지원을 받는 형식.
그렇다고 아예 손 놓고 ‘올 사람 와’하는 식은 아니다.
해외 유수의 로스쿨에서 세미나도 갖고 와인-앤-치즈 이벤트를 통해 로펌 홍보도 한다.
십 년 전만 해도 아이비리그 출신 신임 외국 변호사를 뽑으려면 로펌 쪽에서 구애를 해야 했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아이비리그 출신 신임 변호사들도 제법 지원한다.
물론 한국계들이 대부분이지만.
뭐가 됐든 한범상은 여기도, 저기도 맞지 않는다.
미국에서 인턴은커녕 학교도 다녀본 적이 없는 허울뿐인 미국 변호사.
게다가 하필이면 워싱턴DC 자격증이다. 미 정치인이나 로비스트가 될 생각이 아니라면 정말이지 쓸모없는 자격증.
그래서 여기다 넣어두었던 모양이다. 다른 외국 변호사들은 별도의 인턴 프로그램이 필요 없는데 ‘낙하산’은 따로 교육이 필요한 지원자 같아 보여서.
‘그런 놈이 어떻게···.’
도대기는 며칠 전 백인찬 변호사와 나눴던 대화가 떠 올랐다.
「“도 변호사.”
“변호사님.”
“한 변호사 있잖아.”
“네.”
“해상에 들어오기로 했으니까, 그렇게 알라고.”
“네?”
“한범상 변호사 말이야. 내 밑에서 일하기로 했으니까, 그렇게 정리하자고.”
“아···한 변호사도 동의한 건가요?”
“어? 도 변호사하고 먼저 얘기하고 하려고.”
“음- 한 변호사가 해상팀에 들어가고 싶다고 얘기는 했다는 말씀이신 거죠?”
“그건 아닌데. 아무튼 올 거니까, 그렇게 알라고. 왜? 무슨 문제있어?”
“아니요. 한 변호사가 그러겠다고 하면 문제없습니다. 그러면 한 변호사와 확인한 뒤에 그렇게 정리하겠습니다.”
“그러라고.”」
해상팀의 백인찬. 괴짜 중의 괴짜로 업계에 소문이 자자하다.
누구는 악질이라고 하고 누구는 천재라고 한다.
평가가 상극으로 갈리는 인물이다.
젊었을 때는 후배 변호사뿐만 아니라 마음에 들지 않은 선배들에게까지도 “병신,” “또라이,” “멍청이새끼” 등 경멸적인 표현을 거침없이 썼고,
심지어는 법원 여판사에게 ‘이 여자가 진짜. 재판 똑바로 안 해!’라고 호통쳤다는 소문도 있다.
그래도 실력 하나는 끝내줘서 국내 해상 1위 변호사가 누구냐는 질문에 국내 변호사들은 물론 해외 변호사들까지도 주저 없이 백인찬의 이름을 언급한다.
연세가 들어 많이 유해졌다고는 하나, 거친 욕만 하지 않을 뿐 까다로운 거는 변함없다.
해상팀에 변호사 네 명밖에 없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로펌에서 인턴생들이나 신입 변호사들을 의도적으로 해상팀에 보내지 않는 것이 아니다.
저 노인네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보내는 인재들을 족족 유령 취급해서이다. 말이 좋아 유령이지, 이건 왕따나 다름없다.
한 달 동안 아무 일도 시키지 않는데 버틸 신입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나가라는 거지.
경쟁을 시키더라도 최소한의 교육은 해야 한다.
그래서 로펌도 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인턴생들을 뽑고 관리하고 신입을 육성하는 것이다. 5년 뒤 살아남을 5명을 위해서.
그런 노력조차 하려 들지 않았기에 해상팀이 세대교체에 실패했고 지금의 작은 팀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더 놀랍다.
‘도대체 이 규격 외 인물은 어떻게 그 괴짜 노변의 마음을 사로잡은 거지?’
아무리 봐도 모르겠다.
해대(海大)를 나온 것도 아니고,
선원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전 로펌에서 해상사건을 다룬 것도 아니고.
그런데 묘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은 이 느낌은 뭐지.
정확하게 콕 짚을 수는 없지만, 어쩌면 백인찬이 한범상한테서 느낀 것이 자신이 범상을 해상팀에 보내본 이유와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한 변호사.”
“네, 변호사님.”
“해상팀에 들어가고 싶다고 백 변호사님한테 말씀드린 적 있어?”
“아니요.”
“백 변호사님은 한 변호사가 해상팀에 들어왔으면 하는 것 같던데.”
“그렇게 말씀하셨나요? 저는 아직 못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 변호사는 해상팀에 들어가고 싶은 거고?”
“아···.”
“왜?”
“저한테 선택권이 있습니까?”
“있어. 여기가 무슨 군대도 아니고. 신입이 원한다고 다 들어갈 수는 없지만, 가기 싫은 곳에 가라고 하지는 않아.”
“가기 싫은 건 아닙니다.”
“그럼?”
“커리어가 달린 일인 만큼 가능하다면 좀 더 다양하게 경험한 뒤에 신중하게 결정하고 싶습니다.”
“말했어. 신입이 원한다고 어느 팀이든 다 들어갈 수는 있는 건 아니라고.”
“예.”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은 없을 수도 있어.”
“새로운 문이 열리려면 때론 과감하게 눈앞의 문을 닫아야 할 때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
“대한민국 최고 로펌인 김앤강의 다양한 분야를 좀 더 경험해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한 변호사가 경험해 보고 싶은 분야가 뭔데?”
“국제중재입니다!”」
웃기는 놈이다.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는 말에 저딴 말을 하는 놈은 처음 봤다.
도대기는 범상의 기록을 인턴생 폴더에서 외국 변호사 폴더로 옮겼다.
그러곤 휴대폰을 들었다.
[대기: 최 변] [재민: 와이] [대기: 월요일에 외국 변호사 한 명 그쪽으로 보낼 테니까 한 석달만 일 좀 가르쳐 봐.] [재민: 우리 자리 없어. 다른 데 보내] [대기: 강 변호사님 낙하산이야. 받아] [재민: 오, 진짜? 그 서명대 나왔다는?] [재민: 그러면 받아야지. ㅎㅎ 궁금했는데 잘됐네. 오케바리] [재민: 국제중재 경험은 좀 있고?] [대기: 없어.]한범상이라는 작은 돌멩이
김앤강 법률사무소,
국제중재팀 사무실.
월요일 아침, 출근한 도하영은 그 주 처리해야 할 업무들을 정리 중이었다.
띠리링- 띠리링-
“네, 도하영 변호사입니다.”
-도 변, 잠깐 내 방.
“네.”
국제중재팀 ‘주니어 파트너’ 최재민 변호사의 호출을 받았다.
도하영은 하던 일을 놓아두고 파트너 변호사의 방으로 향했다.
“부르셨나요.”
“왔어? 거기 잠깐 앉지.”
“네.”
주니어 파트너였지만 사실상 팀의 ‘살림’을 담당하는 실세 중 실세. 능글맞고 처세술이 좋았다. 동기 중에서 빨리 치고 올라가는 변호사 중 한 명이었다.
“요새 일은 어때?”
“재미있습니다.”
“재미있기는 뭐가 재미있어, 남의 일들 뒤치다꺼리하는 일이.”
말은 그렇게 해도 자기 사건들은 꼼꼼하게 처리하는 사람이었다. 실력도 있고.
도하영은 말 대신 미소로 대답했다. 그냥 하는 말이라는 걸 알기에. 그리고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물어보려고 부른 게 아니라는 것도.
“도 변, 한범상 변호사가 누군지 알지?”
“네, 들어봤습니다.”
“유명인이야. 들어온 지 6개월도 안 됐는데 다들 알고. 혹시 도 프로한테 들었어? 한 변호사 우리 팀에서 일하기로 한 거.”
못 들었었다.
“아니요.”
“솔직히 말해봐? 둘이 안 친하지.”
“회사 일에 대해서는 사적으로 말씀 안 하세요.”
“그 인간이 그렇지. 안 봐도 보여. 작은아빠가 돼서 조카한테 팁도 좀 주고 정보도 미리 주고 그래야지. 안 그래?”
도하영은 딱히 할 말이 없다. 작은아버지가 있어서 들어온 회사가 아니었다.
“아무튼 오기로 했어. 이따가 점심 먹고 오후에 이쪽으로 올 거야. 내가 오후에 외부 미팅이 있어서 오리엔테이션을 못 해줄 것 같아. 도 변 옆 방으로 오니까, 도 변이 좀 알려주라고.”
“네.”
“아, 중재팀에 조인하는 거는 아니고 한 삼 개월 인턴처럼 일하는 거니까, 뭐 자세하게 가르쳐줄 필요는 없고. 그냥 대충 국제중재팀이 뭐하는 데인지 맛만 보여줘.”
“알겠습니다.”
“번역은 잘한다고 하니까, 도 변이 하는 사건 중에 변역이 필요한 거 있으면 줘.”
“번역이요?”
“응. 잘한대.”
도하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말을 마친 최재민 변호사는 질문 있냐고 물었고, 하영이 없다고 하자, 짧은 미팅은 끝났다.
하영은 방으로 돌아와 하던 일을 계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