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10)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10화(110/190)
110화 플레이어 체인지
아람코는 국영기업인 베트남페트로사(社)를 통해 베트남 정부와 협상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베트남페트로의 대표가 횡령으로 체포된 사건이 터진 것이었다.
일당 체제 국가답게 사건처리는 신속했다.
한 달도 안 되어 후임자가 선임되었고, 협상은 재개되었다.
같은 사건이 미국에서 벌어졌다면 아마도 재개되는 데에 1, 2년도 더 걸렸을 것이다. 재개될 수 있다면 말이다.
구속된 전 대표의 권한부터 시작해서 어쩌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도 전에 소송부터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추후 선임된 대표가 협상을 재개하려고 해도, 이전 대표의 횡령 소송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는 둥 수많은 사법 리스크가 튀어나왔을 게 뻔했다.
그러니, 베트남 정부의 신속한 대응에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사건이 일으킨 파문의 전부는 아니었다.
“미스터 나세르, 지분구조부터 다시 한번 검토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람이 바뀌면 게임의 규칙도 바뀌는 법.
“뭐라고요! 지금 뭐라고 하셨죠, 미스터 팜? 지분구조를 재협상하자고요?!”
새로 선임된 베트남페트로의 대표는 협상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식으로 나왔다.
【110화 – 플레이어 체인지】
“지분구조를 다시 논의하자고? 그게 무슨 헛소리야!”
지난 1년간 협의해 온 내용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자, 가장 시간을 많이 할애한 사안이 바로 합자회사의 지분구조였다.
프로젝트에서는 이런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아는 앤드류 나세르였지만, 그래도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한, 무슨 방법이 없는 거야? 이걸 정말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거야?”
법률이 명확하고, 법치가 설립된 나라였다면, 앤드류의 질문에 대한 답은 좀 더 규격적일 수 있었다.
이전에 체결된 양해각서에 따라 부당함을 강조하고, 프로젝트가 결렬되었을 경우 비용 등 문제에 대해 그간 양 당사자들 사이에 합의된 책임과 의무 조항들을 고려하여···등등 법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의견을 조언하면 된다.
그러나, 이곳은 베트남이었다.
사법부의 독립성이 명확하게 보장되어 있지 않은, 공산당 1당 체제의 사회주의 국가.
그렇기에 후임자가 신속하게 선임되었고, 그의 권한에 대해 의심할 필요가 없었으며, 그의 주도하에 협상이 곧바로 재개될 수 있었지만,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았다.
“반 변호사님이 내부 사정을 알아보는 중이야. 이전 대표가 구속되면서 내부 인사들에도 많은 변화가 있는 모양이야. 일단 하노이로 출장을 갔으니까, 돌아오면 바로 정리해서 보고할게.”
당연히 정치적인 부분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고,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반탄쩐 변호사님에게 일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답답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답답함은 앤드류도 마찬가지였다.
“한, 나도 알아, 이전 대표와의 협상은 김앤강이 선임되기 전부터 진행해 왔던 것이고, 최악의 경우, 현 상황에서 협상이 결렬된다고 해도 법적으로 베트남페트로나 정부를 압박할 방법이 별로 없다는 것쯤은.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매켄지나 앨렌 오버리 같은 국제 로펌들을 놔두고 김앤강을 선임했을 때는, 베트남 정부의 추천도 있었지만, 김앤강에 대한 기대가 있어서였어.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어?”
베트남은 가파르게 성장하는 시장이었다.
그러한 경제 성장의 속도를 부족한 인프라가 버겁게 따라가는 중이었고, 법률 체계나 서비스 역시 상황이 비슷했다.
1992년 중국이 법률시장을 개방했을 때도 그랬다. 중국 시장의 폭발적인 잠재력을 보고 홍콩과 싱가포르에 이미 거점을 두고 있던 영미계 대형 로펌들이 너도나도 베이징, 상하이로 진출했었다.
그 수가 너무 많고 속도도 빨라 이제 막 변호사법이 제정되어 자국 내 법률시장이 형성되고 있을 뿐인데 이렇게 국제 로펌들이 쏟아져 들어오면 중국 시장 역시 그들에게 먹힐 것이라는 예견까지 나올 정도였다.
실제 그렇게 된 지역들이 많으니까. 전 세계에서 외국계 로펌이 기를 못 펴는 몇 안 되는 나라가 한국이다.
다시 중국의 예로 돌아가 좀 더 이야기하자면, 초반 레이스가 끝나고 중반으로 들어가면서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인력과 자본은 물론이거니와 국제 관계에 있어 누구보다 노하우가 쌓여있는 그들이었음에도, 10년 만에 많은 국제 로펌들이 중국 사무실을 폐쇄하고 돌아가야만 했다.
원인은 현지화 실패. 급격하게 변화하는 현지 법률과 체제에 적응하지 못했고, 사회주의 국가의 특수성을 간파하지 못한 것이었다.
물론 살아남은 곳들도 있다.
사회주의 국가의 특수성을 간파한 로펌들.
앤드류가 내게 하려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정확하게 알아들었다.
김앤강이 베트남에서 살아남아 매켄지나 앨런 오버리 같은 티어(tier) 1 로펌이 되려면, 해결 방법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설사 그것이 전통적인 변호사의 업무가 아니라 할지라도.
-*-
서울, 광화문,
사직빌딩.
“아참, 경 변호사, 베트남페트로 대표가 횡령으로 체포되었다고 하던데, 그 소식은 들었어?”
이정후의 호출로 불려 갔던 파이낸스팀 시니어 파트너 경수찬은 그곳에서 기업법무팀 시니어 파트너 양호락을 마주쳤다.
“네, 들었습니다.”
모를 리가.
베트남 쪽 사정을 잘 아는 경수찬이었다.
게다가 아람코를 빼앗겼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혹시 뭐 아는 거 있어?”
평소 같았으면 짧게 대화를 끊었을 경수찬이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좀 다르다.
안 그래도 이정후의 신임을 잃은 거 같아 조급한데, 이렇게라도 자기가 아람코 베트남 정유시설 프로젝트에 적임자라는 알리고 싶은 심정이다.
“새로 온 후임자가 하노이 출신 야심가라 쉽지 않을 거에요?”
“그래?”
재미있는 사실은 양호락 역시 딱히 베트남 프로젝트의 향방이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가 궁금한 건 최재민팀이 과연 이 일을 성사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였다.
“그래도 1년간 협상해 온 것을 백지화하지는 않겠지.”
“흥, 그건 공산당 정부를 잘 모를 때나 하는 말이죠.”
“그래? 그래도 백지화할 것 같지는 않은데. 아람코가 투자하겠다는데, 그걸 거절하겠다고? 베트남 정부가 그럴 이유가 없잖아.”
“그러니까, 그건 공산당 정부를 몰라서 하는 얘기죠. 자본주의적 관점으로 대하면 큰일 납니다.”
“?”
베트남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양호락이었다.
“십오 년 전에 삼전에서 베트남 타이응우옌이라는 지역에 핸드폰 공장을 세우겠다고 들어갔어요. 베트남 정부랑 합의각서 체결하고 관련 부처로부터 투자 허가증이랑 건설 허가증까지 다 받고, 이제 첫 삽을 뜨려고 하는데, 갑자기 베트남 정부에서 멈추라는 명령이 떨어진 거예요.”
“그런 일이 있었어?”
기사에도 난 적이 없는 사건이었다.
“이유가 뭔지 아세요? 공장 입구 방향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고작 공장 입구 때문에?”
“웃기죠? 지들 건설부에서 허가까지 다 내려놓고, 막판에 건물 입구 방향 때문에 멈추라고 하는 게. 근데, 그게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황당하다. 몇천억 원짜리 프로젝트의 일정을 고작 문 하나 때문에 그르치다니.
헛웃음이 나오는 일화지만, 비단 남의 나라 일 같지만은 않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그 프로젝트 결국 잘 진행됐잖아. 삼전에서 문을 바꿨나?”
양호락은 일화의 결말이 궁금해졌다.
“아니요. 그게 그렇게 쉽게 되는 건 아니죠.”
“하긴, 일반 공장도 아니고 해외 핸드폰 공장이면, 시큐리티나 로지스틱스를 다 고려해서 설계했을 테니, 쉽게 문의 위치를 바꿀 순 없었겠지. 바꾼다고 해도 시간이 걸렸을 거고. 일정이 지연됐겠네.”
“아니요, 원안대로 진행되었어요.”
“어떻게 설득했어? 문제가 문 방향이 아니었던 건가?”
“표면적인 문제는 문 방향이 맞아요. 베트남도 풍수지리니 미신 같은 게 꽤 많으니까. 근데, 진짜 문제는 다른 데 있었던 거죠.”
“다른 데?”
“처음부터 정부 담당자가 부지 선정이나 설계할 때는 풍수지리를 고려해야 한다는 측의 언급을 몇 번 했는데, 삼전 측은 그게 그냥 하는 소리인 줄 알고 고려하지 않았던 거죠. 그게 쌓이고 쌓여서 결국엔 마지막에 터진 사건이었어요.”
역시나 황당하다. 하지만, 본질이 뭔지는 알 것 같다.
“체면이라는 거네.”
양호락의 대답에 경수찬은 고개를 슬쩍 끄덕였다.
“중국 공산당도 마찬가지지만, 베트남 공산당도 똑같아요. 정부 권력 구조나 소통의 방식 같은 건 차이가 나도, 이 체면, 체면 구기는 일은 참지 못하거든요.”
중국이 시장을 오픈했을 때 많은 투자자가 무작정 들어갔다가 실패한 이유.
미엔즈(面子). 체면.
체면의 뜻은 어렵지 않다.
다만, 어떤 일에 자존심이 상하는지, 자존심이 상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그 나라의 문화를 잘 알지 못하면 해결할 수 없다.
“그런 문제라면 김창균 변호사가 해결할 수 있겠네”
“흥!”
경수찬은 대놓고 콧방귀를 크게 뀌었다.
“왜? 김창균 변호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 사태야?”
“김 변호사님의 베트남 경험이야, 호찌민 백화점 프로젝트가 고작인데, 하노이 쪽은 잘 모르죠. 베트남 공산당과 중국 공산당의 차이는 후자는 중앙 집권적인 반면에 전자는 세력이 분산되어 있다는 점이에요. 누구를 뚫어야 답이 나오는지 모르면, 정말 하찮은 걸로도 틀어질 수도 있고. 누구를 뚫어야 답이 나오는지를 알아도, 어떻게 뚫는지 모르면, 영원히 해결 못할 수도 있고.”
경수찬의 거만한 태도가 거슬렸지만, 양호락은 그가 왜 그런 식으로 나오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경 변호사는 그 후임자를 잘 안다는 거야?”
“네, 하노이에서 같이 골프 친 적도 있고요.”
과장된 표정이 신뢰가 가지는 않지만, 그런 걸 거짓말할 사람은 아니다. 아마도 진짜 골프를 친 적은 있는 모양.
“중국이랑 같네. 결국 베트남도 꽌시(關係)가 중요하다는 말이잖아.”
“띵깜(情感)이라고 하죠. 꽌시하고도 또 좀 다릅니다.”
그게 뭐냐고 물으려던 양호락은 그만두었다. 그 이상 궁금하지는 않다.
꽌시가 됐든, 띵깜이 됐든, 최재민이 해결하지 못했으면 하는 마음일 뿐.
“잘하면 경 변호사한테 또 기회가 올지도 모르겠네. 그래, 그럼. 들어가 봐. 이 변호사님이 기다리시는 듯하니까.”
이정후가 기다린다는 양호락의 말에 경수찬의 두 눈이 반짝였다.
무슨 일로 부르는 건지 듣지 못했는데, 양호락의 분위기를 보니 아람코 베트남 관련인 것이 확실했다.
경수찬은 선배 양호락에게 인사를 한 뒤, 이정후의 방으로 향했다.
-*-
늦은 밤, 범상은 사무실에 혼자 앉아있다.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각.
범상은 불도 끈 채, 몇 시간째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이 맞을까?
그래도 여기 있고 싶다.
아공간의 근사한 자연이 이번에는 집중력을 흐트러뜨릴 것만 같다.
무한의 시간이 소용없는 문제.
아공간의 특전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정말 오랜만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데도 온몸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듯하다.
무기력하다.
똑똑-
“아직 퇴근 안 하셨어요?”
“도 변호사님.”
반가운 얼굴이 들어왔다.
“힘들죠?”
“네, 조금.”
“와, 진짜 힘든가 보다. 한 변호사님 이런 표정은 처음인 거 같다.”
“그냥, 좀, 답답해서···문제가 뭔지는 알겠는데, 도대체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서요.”
“그렇죠? 저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
“일단 반 변호사님이 그쪽에서 알아보시고 결과를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그게 맞는 거 같아요. 어차피 베트남 쪽 사정은 반 변호사님이 제일 잘 아실 테니까.”
“네.”
평범한 대화.
근데 묘하게 힘이 난다.
“퇴근하시려고요?”
“네. 한 변호사님은 퇴근 안 하세요?”
“저는 좀 더 있다가···.”
“그럼, 저 먼저 갈게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아, 그리고, 이거···”
“이게 뭐예요?”
하영이 범상의 방은 찾은 건 그냥 대화 몇 마디 나누려고만은 아니었다.
“제가 딱히 할 수는 건 없는데, 그렇다고 손 놓고 가만히 있기도 뭐해서, 그냥 좀 찾아봤어요.”
“?”
“베트남하고 사우디 사이의 지난 10년간 수출입 동향과 경제 협력 관계 같은 것 좀 찾아봤어요. 혹시라도 도움이 될지 해서···.”
“아.”
“알아두면, 두 나라 사이의 관계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도 있고···저는 문제가 안 풀리면 가끔 이렇게 그냥 생각나는 대로 리서치 하고 한 발 뒤로 물러서서 보는 것도 좋아해서요.”
“고마워요.”
“그냥 너무 생각이 막히면 한번 보시라고요. 그럼, 저는 가볼게요.”
하영은 USB 메모리를 두고 떠났고, 범상은 그녀가 준 메모리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컴퓨터 포트에 끼웠다.
딱히 특별하거나 극비의 정보가 담겨있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멈췄던 뇌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