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11)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11화(111/190)
111화 게임 체인저, 인맥 초월자
호찌민,
베트남페트로 빌딩,
범상은 새로 취임한 대표 팜반카이를 만났다.
“그래서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미스터 한?”
영어가 편한 언어가 아니었음에도, 범상의 발언에 팜반카이 대표는 영어로 대답했다.
외국인이 베트남어를 쓴다고 공식적인 회의 자리에서까지 베트남어를 쓰지 않겠다는 의도였다.
취임 후 가진 첫 만남 때부터 그는 그랬다.
“비록 MOU(Memorandum Of Understanding: 양해각서)일 뿐이지만, 양사 간에 약속이 담긴 서류입니다. 잠정적이기는 했어도 투자 규모와 지분구조 등에 대한 어느 정도의 합의가 담겨있고, 그러한 합의는 귀사와 아람코 사이의 1년간 협상을 통해 문서로 남긴 일종의 계약입니다.”
범상 역시 영어로 소통했다.
“그래도 이전 대표가 체결한 MOU일 뿐이에요.”
“무슨 말씀이신지는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전(前) 대표가 독단적으로 결정한 사안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 건 관련해서 만들어진 베트남페트로의 TF팀 팀원들은 대부분 그대로 남아있고, 실무진들의 의견이 하루아침에 바뀐 것은 아닐 텐데요.”
“결정권자가 바뀌었어요.”
팜반카이 대표의 대답들은 간결하고 사무적이었다.
범상의 정중함은 대표의 벽을 뚫지 못하는 듯했다.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양사가 투자한 1년간의 노력을 한순간에 뒤집어 버리신다면, 아람코 역시 베트남 정부를 신뢰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범상은 말투를 좀 더 공격적으로 바꾸었다.
“지금 나를 협박하는 건가요?”
“대표님께서 말씀하셨듯이 MOU일 뿐입니다. 이것으로 저희 클라이언트가 소송을 걸거나 어떠한 법적 조치를 취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저희 클라이언트는 여전히 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고,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양국 간의 교류가 한 단계 상승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예요.”
“그렇다면 원하는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최대한 성실하게 검토한 뒤에 조율할 수 있도록 중간에서 노력하겠습니다.”
“내가 원하는 건 이미 전달했어요. 합자회사의 지분구조 조절과 경영진 구성 재조정.”
“요구만 말씀하셨을 뿐, 이유를 설명해 주시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설명해 주지 않았다고요? 그러지 않았을 텐데. 분명히 말했지만, 베트남 정부가 제공하는 혜택들을 고려했을 때, 현재 논의되고 있는 지분구조와 경영진 구성은 너무 불공정해요. 지분은 그전에 논의된 것보다 적어도 5% 이상 우리 베트남페트로가 가져가야 할 것이고, 경영진 구성에서도 최고 법무이사 자리를 포함해 이사회 자리 두 개가 늘어나야 할 겁니다. 그게 공평한 합의고 내가 원하는 거예요. 자, 이제 설명이 되었나요, 미스터 한?”
그것은 설명이 아니었다.
달라고 떼쓰는 것일 뿐.
하지만, 범상은 예상하고 왔다.
이렇게 나올 줄을.
팜 대표의 표현 중에 빤짝이는 것이 있다.
“대표님께서 무엇을 원하시지는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것만으로는 1년간의 협상을 백지화하고, 새로 시작하자고 클라이언트에게 조언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범상은 간결하게 대답한 뒤 다음 말을 잇지 않았다.
대표를 똑바로 바라보며 시선을 떼지 않는다.
대표 역시 범상의 시선을 마주 본다.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침묵이 길어지자, 미팅에 같이 참석한 반탄쩐은 목이 타기 시작했다.
“미스터 한, 미스터 한이 소속된 로펌이 김앤강이라고 했나요?”
“네, 그렇습니다.”
“베트남에서 그래도 10년 넘게 프랙티스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17년째입니다.”
“벌써 그렇게 됐나···실력이 좋다고 들었는데, 앞으로도 계속 베트남에 있을 생각이 아니었나요?”
말투는 담담한데, 내용은 협박 같다.
마치 이번 협상을 성공시키지 못하면 그것은 김앤강의 책임이고, 그렇게 되면 김앤강은 베트남 사무소를 접어야 하는 말처럼.
그런 능력이 그에게 있을까?
그런 일은 벌어져야만 알 수 있는 법. 다만, 이렇게나 신속하게 후임자로 선임된 것이며 이런 식으로 배짱을 부리는 것을 보았을 때, 그에게 그만한 영향력이 있음을 짐작해 볼 순 있다.
허투루 한 말은 아닌 듯싶다.
사무소를 접어야 한다니.
섬뜩한 말.
반탄쩐은 순간 뒷목이 뻣뻣해졌다.
그의 직장과 터전이 달린 일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팜반카이라는 남자 자체가 뿜어내는 냉철함 때문도 있었다.
권력을 사용해 본 사람이고 자기 목적을 위해 과감하게 휘두를 수 있는 남자처럼 보인다.
그런 남자를 두고 전혀 졸지 않고 협상하고 있는 범상이 대단해 보일 지경.
더 신기한 사실은 조금 전 그 섬뜩한 말을 듣곤, 아이러니하게도, 범상의 표정이 더 좋아진 듯했다는 것이었다.
“팜 대표님, 이번 딜을 통해서 대표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인가요?”
좀 전에 했던 질문과 말만 다를 뿐 같은 질문. 하지만, 분위기가 달라졌다. 확실히 같은 것을 묻고 있는 게 아니다.
뭔가 있다. 팜반카이 베트남페트로 대표는 앞에 있는 젊은 외국 변호사가 내밀 카드가 궁금해졌다.
“방금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았다고 하지 않았나요?”
범상은 잠시 뜸을 들였다.
신중함을 보이기 위해서였다.
“대표님이 원하시는 게 무엇인지 알 것 같지만, 솔직히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괜히 기분을 상하시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좀 되고요. 좀 전에는 요구하시는 사안들이 무엇인지는 잘 알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지금은 왜 그런 것들을 요구하시는 건지 짐작해 보았다는 뜻이었습니다.”
“말이 길군요. 자신이 없습니까, 미스터 한?”
더는 뜸 들이지 말라는 말.
범상은 알아들었다.
“자신이 없었으면 애초에 이렇게 찾아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게 제시할 카드가 뭐죠?”
범상은 준비해 간 자료들이 담긴 USB 메모리를 팜 대표에게 건넸다.
“여기에는 뭐가 담겼죠?”
“방금 드린 발표 자료는 아람코의 변호사로서 드린 것이 아닙니다. 아람코는 제가 이런 자료를 만든 사실 자체를 알지 못하고, 당연히 발표 자료를 준비하는 데에 쓴 시간도 청구하지 않을 겁니다.”
“위험한 발언처럼 들리는데···.”
“아니요. 전혀요. 대표님께서 원하시면, 아람코 측에 알려도 상관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아람코의 변호사로서 내게 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그 이유는 여기에 담긴 자료는 아람코와는 협의가 되지 않은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생각?”
“양사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서 서로가 이루려는 바를 오래 고민해 봤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고민 끝에 두 나라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예상해 봤습니다. 그 안에는 그렇게 추측해 본 예상을 바탕으로 제가 그려 본 로드맵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팜반카이 대표는 잠시 범상의 발언을 곱씹었다.
그러곤 범상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이걸 보고 미스터 한의 생각이 틀렸으면 아람코와는 별개이니 무시하고 넘어가라?”
“정확하십니다.”
“만약에 미스터 한이 그려봤다는 로드맵과 내가 원하는 것이 일치한다면? 그때는 무엇을 원하나요?”
“저는 저희 클라이언트를 설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재미있다.
아주 흥미로운 변호사다.
클라이언트보다 협상 상대인 자신을 먼저 찾아오다니···
팜반카이는 한범상이라는 젊은 변호사에 관심이 확 생긴다.
“좋아요. 한번 검토해 보죠.”
“감사합니다.”
짧으면서도 긴 듯한 미팅은 그렇게 끝났다.
범상과 탄쩐은 베트남페트로 사(社)의 대표실을 나왔다.
【111화 – 게임 체인저, 인맥 초월자】
“후—”
반탄쩐은 베트남페트로 빌딩을 다 빠져나와서야 참았던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으세요?”
“한 변은 괜찮아?”
“사실은 저도 긴장했습니다. 포스가 있는 분이시네요.”
“아직 좀 젊지만, 공산당 내부에서도 실력으로 인정받고 있는 남자야. 야망이 있다고 들었어.”
그래서 오늘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팜 대표에게 준 자료에는 뭐가 담겨있는 거야?”
반에게는 자세하게 말하지 않았다.
팜 대표에게 말한 그대로 그 안에 담긴 것은 개인적인 견해가 담긴 자료였고, 통하지 않으면 범상은 정말 자신의 개인적인 시도가 실패한 걸로 넘어가길 바랐다.
“사우디와 베트남 양국의 관계에 대한 것들이요.”
“사우디와 베트남의 관계? 경제·통상에 관한 것들?”
“네.”
“통계자료들?”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나가는 것이 좋을까도 한번 생각해 봤어요?”
“로드맵이라고 말한 거?”
“네.”
대충은 알 것 같은데, 그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탄쩐은 자세하게 묻지 않았다.
상의가 필요한 내용이었다면, 벌써 털어놓았을 범상이었기에.
탄쩐은 범상을 잘 알았다. 진작부터 범상을 후배로 보고 있지 않은 그였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한 변이 팜 대표에게 준 것이 판도를 좀 바꾸어 놨으면 좋겠네. 계기가 없으면 지금 이대로는 협상을 재개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아.”
“그러게요. 잘 됐으면 좋겠네요.”
그제야 살짝 긴장해 보이는 범상.
탄쩐은 그런 범상이 신기했다. 좀 전 회의 때는 정말 여유로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밤 비행기로 가는 거야?”
“네, 내일 오후에 참석해야 하는 미팅이 있어서요.”
“바쁘네. 비행기 타기 전에 맥주라도 한잔하려고 했더니만.”
“좋습니다.”
“괜찮겠어?”
“네.”
다시 여유로운 모습으로 돌아간다.
-*-
같은 시각,
김앤강 사무실.
경수찬은 하노이 KPMG 회계 법인에 근무하고 있는 학교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리링- 띠리링-
-선배님.
“정식아, 잘 지내냐?”
-네, 저야 잘 지내죠. 선배님은요? 잘 계시죠? 베트남 한번 안 들어오십니까?
“가야지.”
고등학교, 대학교 모두 같은 곳을 나왔다.
-한번 오십시오.
“왜? 좋은 데라도 알아놓은 거야?”
-아이, 그럼요. 제가 또 베트남은 꽉 잡고 있지 않습니까.
“진짜 한번 가야겠네.”
-네, 언제든 오십시오. 공항으로 바로 튀어가겠습니다.
경수찬은 그런 부류 중 하나이다.
인맥 또한 능력이라고 믿는.
그리고 인맥은 1~2년 만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여기는.
왜 부유층이나 전문직들이 자식들을 좋은 초등학교, 심지어는 좋은 유치원에 보내려고 그렇게 노력하겠는가.
“오케이, 조만간 들어갈게.”
-정말이세요?
“가서 볼 일도 좀 있고.”
-언제쯤 오십니까? 날짜만 알려주십시오. 스케줄 만들어 놓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날짜는 확실히 정해지면 알려줄게. 멀지는 않을 거야.”
-네, 알겠습니다.
슬쩍 밑밥을 던져놓은 경수찬은 은근슬쩍 본심을 꺼냈다.
“맞다, 그때 그 중앙위원회 위원장이셨던 분이 이번에 베트남페트로 대표가 되었다면서? 성함이 팜반카이였던가?”
-아, 네, 팜 위원장님이요. 이번에 대표로 취임하셨죠.
“정식아, 혹시 괜찮으면, 이번에 갔을 때, 자리 한번 만들어 볼 수 있어?”
경수찬은 알 턱이 없었다.
한범상이 게임의 판도를 바꿀 무언가를 이미 주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