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12)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12화(112/190)
112화 원하든 원치 않은 한번은 치러야 할 전쟁의 시작
로펌에는 고문(顧問)이라는 자리가 있다.
‘특정 관직 후보자가 어디 로펌의 고문 출신이다.’, ‘이번에 은퇴하는 판사 누구누구가 어느 로펌 고문으로 갔다.’라는 뉴스가 신문에 나올 정도로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한 직위.
김앤강에는 150명이 넘는 고문들이 있고, 그중 97명은 변호사 자격이 없는 비법조인들이다.
로펌은 왜 고문이 필요할까?
돌아볼 ‘고(顧)’에, 물을 ‘문(問)’
사전에 ‘고문(顧問)’을 검색하면 이렇게 나온다.
「어떤 분야에 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자문에 응하여 의견을 제하고 조언하는 직책.」
누구는 그렇게 말하기도 한다. 대형 로펌의 경쟁력은 누가 그 로펌에 고문으로 있느냐를 보면 알 수 있다고.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10년이 넘게 파트너급 연봉을 받아 가는 고문 중에는 계약 기간 동안 회사에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저 그들의 이름이 ‘고문’으로 올라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존재들.
그래서 고문을 직책이라고 해야 할지, 직위라고 해야 할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물론 그렇다고 그저 이름만 올려놓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들만 있는 건 절대 아니다.
1986년 서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이듬해 21회 외무고시에 합격한 안재선은 외교원 교육 기간을 포함해 7년간 본부에서 근무한 후, 1995년 주한미국대사관 2등서기관으로 첫 재외공관 근무를 시작했다.
그 뒤로는 탄탄대로였다.
경력이 화려하다.
-주미대사관 1등 서기관
-외교부 차관 보좌관
-주제네바 참사관
-외교부 세계무역기구과장
-주싱가포르 참사관
-외교부 통상국장
-주상하이 총영사
-외교부 국제법률국장
-주일 대사
-외교부 제2차관
현재 김앤강의 국제통상 및 무역협정 전문가로 등재되어 있는 그는 단순히 홈페이지에 이름만 올려놓고 녹만 받아 가는 고문이 아니었다.
물론 그의 전화 한 통화에 현 외교부 차관들이 일부러 시간을 낼 정도의 영향력이 있는 그였지만, 단순히 인맥만으로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한국·싱가포르 FTA 외교부 TF팀 경험에서부터 시작해서 한미 FTA, 한중 FTA에 실질적으로 참여한 적이 있는 실력자였다.
-그럼,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고문님.
“알겠습니다, 최 변호사님. 제가 좀 더 검토해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딸깍.
국제중재팀 시니어 파트너 최재민과 통화를 마친 안재선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조금 전까지 한범상이 주고 간 자료들을 검토하고 있었다.
베트남과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경제교류에 관한 정리 자료.
지난 30년간의 자료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얼마나 깔끔하고 명료한지, 지나간 페이지를 다시 들춰볼 필요가 없다.
단순히 30년간의 역사만 정리해 놓은 것이 아니다.
현재 상태와 앞으로 10년을 위한 비전까지.
양국 간의 관계를 정확히 몰라도 국제정세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고, 이런 자료를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단번에 요지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작성되어 있다.
베트남·사우디아라비아 FTA(Free Trade Agreement). 한범상이 준 자료는 양국 간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의 로드맵이었고, 협상 시작을 위한 포석이 될 법한 자료였다.
‘이걸 한범상 그 친구가 정리했다고? 어떻게?’
불과 한 달 전이었다.
한범상이 찾아와 국가 간의 FTA 체결 관련해서 물은 것이.
그때 만에 해도 기초적인 것들을 상담하려는 줄만 알았는데.
물론 생생한 경험담을 들으려고 하고, 그 뒤로도 세부적인 것들에 관해 물어온 것이 인상적이기는 했지만, 한 달 만에 이런 방대한 자료를 취합하고 정리해 만들었다는 건 좀처럼 믿기 어렵다.
TF팀을 꾸려 최소 반년 정도는 굴려야 나올 자료였다.
정확히 언제부터 준비했는지, 몇 명이 붙어 준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경험이 많은 그의 입에서 감탄사나 나올 정도였다.
‘왜?’
두 번째로 드는 의문은 이유.
베트남이나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작성하거나, 아니면 그들이 고용한 리서치 전문 펌에서 작성할 것을 왜 최재민 팀에서···?
솔직히 베트남 정부나 사우디 정부에 이만한 자료를 만들어 낼 만한 인재가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베트남 정유공장 프로젝트 관련해서 사우디 아람코의 의뢰를 맡았다는 소식은 안재선도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전문 자료를 만들 이유가 있을까? 의뢰인의 요청이 없었다면···.
생각이 거기까지 도달한 안재선은 그를 김앤강으로 스카우트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단순히 기술적인 면만 보고 조언할 사안이 아니었다.
띠리링- 띠리링-
-여보세요.
“여보세요. 안재선입니다. 김 변호사님하고 상의해야 할 일이 생겼는데, 자리에 계시는가요?”
【112화 – 원하든 원치 않든 한번은 치러야 할 전쟁의 시작】
며칠 뒤,
성북동,
담이 유독 높은 집.
“안녕하셨습니까, 변호사님.”
“어서 와, 안 차관.”
관직에서 물러난 지가 벌써 몇 년인데, 은퇴해도 의원이라 불러주는 것처럼, 그들 역시 그것이 관습처럼 되어 있다.
김한은 안재선을 정원에서 맞이했다.
예전에 찾아왔을 때와 다르다. 색색의 초목들이 빼곡히 채우고 있던 정원은 온데간데없고, 다 뒤집어 놓은 흙바닥만 있을 뿐이다.
“마음에 안들어서 다시 정리 좀 하려고.”
“아, 네.”
“고민, 고민해서 심었다고 생각했는데, 내 뜻대로 나오지 않네.”
“예.”
“저것만 남겨뒀어. 어디서 굴러왔는지 언제부터 저기 저렇게 자라고 있더라고.”
김한이 가리킨 곳에는 작은 묘목 하나가 서 있다. 무슨 나무인지 모르겠는데, 딱히 특별해 보이지는 않는다.
“아, 그러신가요.”
“그래서? 국제중재팀에서 가져온 자료가 괜찮다고?”
이 사람을 언제 처음 봤지? 그때가 20년 전 주한 미국대사가 개최한 저녁 만찬 모임이었던가?
그때하고 다른 게 하나 없다.
자신은 검었던 머리가 회색이 되었고, 이마의 주름도 깊어졌는데 말이다.
국내외 수많은 권력가를 만나봤지만, 그중에서도 김한이 풍기는 기이함은 독보적.
내일모레 예순을 바라보고 있는 안재선이었지만, 신입사원처럼 깍듯이 대답했다.
“예, 솔직히 국내외 탑 리서치 펌에서 의뢰했어도 이보다 더 잘 만들기 쉽지 않을 겁니다.”
“그래?”
“예.”
김한은 안재선의 발언을 곰곰이 곱씹는 듯, 말없이 별거 없는 정원을 잠시 바라봤다.
“오 국장은 뭐래?”
오성식 국장은 현재 외교부 국제경제국 국장으로 베트남 및 동남아시아 정세에 빠삭한 인물.
“자료도 정확하고 제시하고 있는 비전도 현실성이 있다고 합니다. 다만···.”
“결정권이 있는 사람들의 뜻을 모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겠지.”
“예.”
김한은 다시 정원을 바라봤다.
사실 이미 전화로 통화한 사안들.
안재선의 얼굴을 보고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 그러면, 안 차관이 한번 힘을 좀 써 봐.”
김한의 지시에 안재선의 동공이 살짝 커졌다.
의외다. 최재민과 한범상에 관련된 소문을 어느 정도 듣고 있는 안재선으로서는 김한의 속마음이 궁금해지는 결정이었다.
하지만, 묻기엔 조심스러운.
“알겠습니다.”
“최재민 변호사도 뭔가 생각하는 게 있으니까, 자네한테 전화해 요청한 거겠지.”
“예.”
“일단 자네가 도와줄 수 있는 것들은 지원해 줘. 선을 넘는 것이 있다 싶으면 말하고.”
“예.”
“사우디하고 베트남이라···허, 참···.”
사우디아라비아와 베트남이 자유무역협정을 협의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재미있는 건지, 아니면 그런 협상에 자기가 설립한 김앤강이 참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 재미있는지,
무엇이 되었든 김한은 헛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분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안재선 역시 그를 따라 일어났다.
“그러면, 좀 더 알아보고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래, 수고 좀 해.”
“예, 그럼, 저는 이만···.”
“아, 안 차관.”
“네, 변호사님.”
“그 자료들을 자네한테 가져온 사람이 강 프로가 추천해서 들어온 친구라고 했던가?”
“예, 한범상 변호사가 저한테 가지고 왔습니다. 한 달 전쯤에 처음 물어온 사람도 한 변호사였고요.”
“허, 참···.”
또 한 번 지은 헛웃음.
그 뒤에 무슨 말이 있었지만, 혼잣말에 가까워 정확히 무언지 알아듣지 못했다.
안재선은 고개 숙여 인사하고 담이 높은 집을 나왔다.
그땐 아리송했다.
김한의 속마음이 무엇인지.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김앤강의 하늘이라 불리는 절대권력자의 심경에 어떠한 변화가 왔는지 알게 되는 데까지.
그리고 그가 눈치챘을 땐, 김앤강에 다른 사람들도 의심하기 시작했다.
-*-
다음다음 날,
성북동 담이 높은 집에 또 다른 이가 찾아왔다.
이정후였다.
“자네 왔어?”
“네, 박사님. 날씨가 벌써 덥습니다.”
“기후가 많이 변했어.”
이정후는 이틀 전 안재선이 찾아왔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또 갈아엎으시게요?”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갈아엎어야지.”
이정후가 휑해진 정원을 보고 묻자, 김한은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했다.
그간 이곳에 가장 많이 찾아온 손님 중 하나였다. 이정후는 김한이 몇 번 이렇게 정원을 뒤집어엎은 걸 본 적이 있다.
“하하하- 박사님도 참···.”
“늙은이가 손에 시간이 많이 남아서 그런다고 생각 중이지?”
“아닙니다. 박사님이 여기에 얼마나 공을 들이시는지 저도 잘 알죠. 그런데, 저거는 왜 남겨두셨어요? 의미가 있는 나무인가요?”
이정후는 휑한 정원 한구석에 남아있는 묘목을 가리켰다. 딱히 근사하거나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생뚱맞아 보이기까지 하다.
“블루베리 나무야.”
“블루베리요?”
“내가 심은 게 아닌데, 이 기사가 가져온 흙에 있던 건지, 아님 어디서 날아온 건지, 어느 날부터 거기서 자라고 있더라고. 신기하지, 맨날 나와서 보던 정원인데도 몰랐다는 게. 자네, 블루베리가 몸에 얼마나 좋은 줄 알아?”
“하하하- 그래서 남겨두셨나요? 블루베리를 따서 드시려고요? 하하하.”
이정후의 농담에 김한은 블루베리 묘목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미소를 지었다.
이정후는 그 미소의 미묘한 뉘앙스를 눈치채지 못했다. 자기가 하러 온 말에 들떠있는 그였다.
“무슨 일이야? 사우디 아람코 관련해서 할 말이 있다고?”
“네, 안재선 고문의 힘이 좀 필요할 일이 생길 듯싶어서요.”
“안 차관?”
“네.”
“어떤 일로?”
“일전 말씀드렸듯이, 얼마 전에 베트남페트로 대표가 바뀌면서 아람코하고 베트남페트로 사이의 협상에 문제가 좀 생긴 거 같습니다. 경수찬 변호사가 이번에 베트남에 다녀오면서 그쪽 인사들을 좀 만나봤는데, 잘하면 중간에서 우리 김앤강이 좀 할 수 있는 일들이 생길 것 같아요.”
“그 건은 최재민 변호사한테 맡겼다고 하지 않았어?”
“일단 그렇게 하기는 했는데,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까, 베트남 경험이 적은 최재민 변호사가 핸들하기에는 조금 어려워 보여요. 아직 명확히 정해진 것은 없지만, 기회가 생겼을 때, 스무스하게 치고 들어가려면, 미리 준비를 좀 해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만약에 이번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하면, 우리 김앤강도 비난을 면치 못할 것 같고요.”
“그래서 안 차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네.”
“사우디하고 베트남 사이 FTA 체결에 윤활유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으려면?”
!!!
“아니···그걸 선배님께서 어떻게 벌써···?”
아무리 그가 모르는 소스가 있다고 해도 이상하다. 엊그제 베트남에서 돌아온 경수찬으로부터 막 보고를 들은 사안인데, 어떻게···?
이정후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사이, 김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블루베리 나무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며 중얼거렸다.
“자네도 많이 늙었네. 전에 안 치던 뒷북을 치고 말이야.”
혼잣말이었지만, 들으라고 하는 말이었다.
이정후는 그제야 사태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걸 눈치챘다.
자신이 보지 못하고 있던 게 있다는 것을.
유심히 보고 있었는데···
놓치고 있던 게 있었다.
이정후 두 눈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
그 순간, 그는 더 이상 ‘신선’이 아니었다.
-*-
센터게이트빌딩 12층,
시니어 파트너 방.
“네, 고문님. 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네, 들어가십시오.”
딸깍.
안재선과 통화를 마친 최재민은 너무나 기쁜 나머지 살짝 상기되기까지 했다.
아람코와 베트남페트로 사이의 교착 상태로 지난 몇 개월간 골머리가 아픈 그였다.
그의 현 자리는 아람코 위에 세워져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안재선 고문이 적극적으로 나와준 것.
고무적인 일이었다. 안재선 고문이 이렇게나 적극적으로 대응해 준다는 것은 ‘하늘’의 재가가 떨어졌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었다.
잘하면 이 황당한 플랜이 이륙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반가운 소식을 계획의 주인공에게 바로 전하고자, 최재민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
띠리링- 띠리링-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가 들어왔다.
“네, 최재민입니다.”
-변호사님.
재민의 비서였다.
-조금 전에 김근용 비서실장님한테서 전화가 왔는데요.
“누구?”
-김근용 실장님이요. 대표 변호사님 비서실의···
김근용 비서실장이 누군지는 최재민도 안다.
최재민이 다시 물은 이유는, 그가 사무실의 누구한테 전화할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김 실장님이 왜?”
-대표님께서 변호사님께 전하실 말씀이 있다고, 통화 끝나고 전화하시라고 메시지 남기셨어요.
“김한 변호사님이?”
-네.
하늘이 그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