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16)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16화(116/190)
116화 시니어가 짊어져야 하는 무게
예전에 한 선배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파트너가 된 이후로 잠을 설친 적이 많다고.
팀의 수장이 된다는 것이 그런 것이라고.
걱정거리가 많아지는 것.
[재민: 이 변호사님, 잠깐 중회의실에서 뵐까요?]KLS 에너지 미시간주 공장 폭발 사건.
2년 전쯤 선배 이태오 팀이 하던 사건을 맡아 해결했었다.
종결된 줄 알았던 사건이 살아서 돌아왔다.
최재민은 이태오를 불렀다.
“이거 변호사님 목소리 맞죠?”
국제중재팀 중회의실,
태블릿 PC를 들고 들어온 최재민은 대화 파일 하나를 재생했다.
파일에 여러 음성이 담겨있기는 했지만, 그중 하나는 분명히 이태오의 목소리였다.
99% 확신이 있었어도, 본인과의 확인 절차가 필요한 법.
그래서 불렀다.
“이게 내 목소리냐고?”
“네.”
2년 전, 아침 드라마 같은 일이 사무실에 일어났다.
마흔 살이 훌쩍 넘은 남자 파트너 변호사와 서른도 안 된 여자 어쏘 변호사가 불륜을 저지르고 함께 도망쳤다.
황당한 사건이었다. 난리가 아니었다. 변호사, 직원 할 것 없이 한동안은 다들 그 얘기만 해댔다.
하지만, 더 황당한 사건은 그다음에 벌어졌다.
두 남녀주인공께서는 한 달 반 만에 복귀했고, 그 후 여자 어쏘는 곧바로 사표를 쓰고 나갔지만, 남자 파트너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회사에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모르겠는데. 이게 뭔데?”
“좀 더 들어보세요.”
‘아내하고 딜이 있었네’, ‘여자 아버지가 칼 들고 일본까지 쫓아왔네’ 등 말들이 많았지만, 확실한 건 하나였다.
한 번도 아니고 몇 번씩이나 이런 사고를 치고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회사에 나올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
뻔뻔한 그는 후배의 명령 아닌 명령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이게 뭐냐고?”
“좀 더 들어보시라고요.”
재민은 이딴 일을 설명해 줘야 하는 상황 자체가 짜증이 났다.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재민의 태도에 기분이 상한 이태오는 인상을 더 심하게 찌푸리며 그제야 음성 파일에 집중했다.
뻔뻔한 사람인 것은 맞지만, 황당하게도 사실이었다. 이태오는 파일에서 흘러나오는 대화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그래서 인상을 쓴 것도 있었다.
좀 더 들어보는 이태오.
기억이 날 듯 말 듯 하려는데, 스피커에서 “이 변호사님, 이거 괜찮은 건가요?”라고 묻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당시에는 과장이었던 현(現) KLS 에너지 법무팀 윤경철 부장의 목소리.
그 순간, 가물가물했던 기억이 돌아왔다. 이제 이태오는 음성 파일이 언제, 어디서, 누구와 나눈 대화인지 떠올랐다.
“아, 기억나네. 이거 KLS 에너지 미시간 공장 회의실인가? 아닌가? 거기 로컬 변호사 사무실이었던가? 아무튼 그때 사고 터지고 나서 얼마 안 돼서, 거기서 피해자들하고 가졌던 회의네. 맞지? 근데, 갑자기 이건 왜?”
재민은 대수롭지 않은 듯 자신을 쳐다보며 되묻는 선배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
이유를 진짜 모르는 듯싶다.
‘하-’
내뱉을 수 없는 한숨이 속에서 터져 나왔다.
뉴스를 보면 가끔 황당한 의료사고들이 나온다.
수술 후에 가위 빼지 않고 환자의 몸을 봉합했다느니, 오른 다리를 잘라야 할 수술인데 왼 다리를 절단했다느니.
‘아니, 도대체 일을 얼마나 개떡같이 하면, 저런 말도 안 되는 사고가 나는 건데!’라는 탄식이 절로 나오게 만드는 사고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큰 병원에서도 일어난다.
그런 황당한 사건은 로펌에서도 일어난다.
다만, 대상이 환자가 아니라 복잡한 사건이다 보니 기사화되지 않을 뿐.
이제 본인이라는 건 확인했고.
재민은 문제가 되는 발언이 나오는 부분으로 파일을 돌렸다.
역시나 설명은 본인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걸로 갈음했다.
「“사고원인이 배터리 활성화 공정에서 일어난 것 같다면서요? 분류 과정에서 근로자 개인의 과실이 사고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해도, 어차피 개인한테 청구하기 힘들 정도의 손해액이라서, 보험사도 이거는 실익이 없어서 안 할 거예요. 그냥 합의금에 조금 더 얹어주는 걸로 하고 차라리 사고 뒤처리 안전 위반 사실에 대해 함구하게 하는 게 전략적으로 더 현명할 듯싶은데···”」
【116화 – 시니어가 짊어져야 하는 무게】
광화문.
사직빌딩 9층,
김앤강의 ‘신선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그래서 예상 배상액이 얼마라고?”
한때는 김한과 강태산을 포함해 열두 명까지 참여했던 회의가, 모일 사람들이 전부 모였음에도, 이제는 고작 여섯밖에 없다.
사고 관련해서 이정후의 간략한 설명을 들은 박재록이 물었다.
그의 밑으로는 금융규제팀과 국제통상팀이 있다.
“현재로서 최대 예상 금액은 육백만 불 정도 된다고 들었는데. 금액도 금액이지만, 시끄러워지면 미시간주 정부 측에서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고, 그래서 만약 공장 가동에 문제가 생기면, KLS 에너지 측에서 그냥 넘어갈 것 같지 않다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자신보다 나이가 세 살이나 많은 박재록의 질문에 이정후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래서, 이 변호사는 어떻게 하자라는 거야?”
다음 질문을 한 사람은 국내 소송팀의 고중석이었다.
일흔이 넘은 그가 이 자리에서는 최고 연장자였다.
그렇다고 그의 지분이 제일 많은 건 아니었다.
“그것을 상의해 보고자, 오늘 이렇게 다들 모신 것 아니겠습니까?”
그 외 미팅에 참석한 조세의 이성헌, 특허의 김운영, 방위산업의 김덕현은 말을 아꼈다.
주도적으로 말하고 있는 셋보다 후배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딱히 어떻게 되든 크게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라도, 반세기 로펌을 운영하면서 다사다난한 사건들이 많았다.
“지금 중재팀 시니어가 최재민인가?”
사실 ‘시니어네,’ ‘주니어네’ 부르는 건 내부적으로 교통 정리를 하기 위해서 부르는 명칭일 뿐. 대부분 명함에 ‘주니어’, ‘시니어’라는 단어를 붙이지는 않는다.
박재록이 중재팀 시니어가 최재민이냐고 물었을 때는 기수를 물어본 게 아니라 그가 해당팀의 책임자냐는 걸 묻는 것이었다.
“예.”
“아직도 좀 어수선한가?”
현재 국제중재팀 내 상황은 조금 복잡했다.
확고한 수장이었던 성일용이 퇴사하면서 바로 밑에 기수가 아닌 한참 밑에 있는 ‘주니어’ 파트너 최재민에게 팀 수장직이 맡겨진 상태.
어차피 ‘시니어’든, ‘주니어’든 지분 없이 허울(?)만 있는 파트너지만, 사건 배당권이라는 막대한 권력이 그에게 간 것이었다.
즉, 기수로만 본다면 ‘주니어’급이었지만, 최재민은 ‘시니어’ 파트너급 권한을 갖게 된 것이었고,
그러다 보니, 그보다 선배인 변호사들이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와 같이 되어버린 건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검찰청이었다면 나가라는 인사 결정이었겠지만, 로펌은 조금 달랐다.
다들 일단은 붙어있었다.
“그럴 수밖에요.”
사실상 최재민이 그 자리에 올라간 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 그였음에도, 이정후는 마치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이 그렇게 되었다는 것처럼 무심하게 말했다.
“뭐가 됐든, 현재 시니어인 최재민이 책임져야지. 그리고, 해당 사건을 마지막에 합의한 것도 최재민이었다면서? 그럼, 됐네.”
이정후와 다른 신선들은 박재록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고중석은 아니었다.
“시끄럽게 하느니, 그냥 깔끔하게 인정하고 정리하는 게 낫지 않아?”
박재록은 그의 발언이 이해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중석을 봤다.
“지금 사무실에서 책임지자는 말씀이신가요, 고 변호사님?”
박재록의 질문에 고중석은 자신의 발언을 부연했다.
“들어보니까, 사무실에서 생긴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최재민이한테 사건이 넘어간 거라면서? 그리고 2년 전이면, 성 변호사 때 결정으로 그런 게 된 것일 텐데, 괜히 서로 ‘네 잘못이네’, ‘내 잘못이네’ 하면서 우리끼리 손가락질하기 시작하면 밖으로 모양새만 안 좋아질 게 뻔하잖아.”
“그래도 문제가 생기면 해당팀 시니어가 책임지는 게 관례잖아요.”
“그렇기는 한데, 어수선한 상황에서 경험도 없는 최재민 변호사가 잘 해결할 수 있을지가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야.”
병원이 의료사고에 대비하여 보험을 들 듯, 로펌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과실 사고 관련해서도 보험 상품이 존재한다.
많지는 않다. 최대 100억까지 배상해 주는 국내 보험사 상품이 있지만, 인기가 많은 상품은 아니다.
이유는 여럿 있다.
과실 사고가 많이 안 나서?
그건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
다만, 분명한 건 자체적으로 수습 불가능 사고가 그렇게 자주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법을 잘 아는 로펌. 자신들의 실수임이 분명해도 어떻게든 해결 방법을 찾아낸다.
찾아내야 한다. 그건 로펌의 능력과도 직결되어 있다.
그래도 해결할 수 없는 과실 사고가 물론 일어난다.
문제는 그런 사건을 보험으로 처리하면 공식적인 기록이 남는다.
평판이 전부인 서비스업계에 그런 기록은 사건 자체보다 치명적일 수 있다.
그래서 과실 사고 발생 시, 분쟁이 일어나지 않게 최대한 조용히 합의로 마무리하는 것이 원칙이다.
설사 보험에 가입했어도 안심용일 뿐이지, 보험사에 청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별산제인 김앤강은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
수습 불가능한 과실 사고가 나면, 일차적으로 해당팀 시니어 파트너가 책임을 지고, 이차적으로 지분 파트너들(신선들)이 책임을 진다.
해당팀 시니어 파트너가 진다는 의미는, 그가 개인적으로 진다는 것이 아니라, 그해 해당팀 수입에서 해결한다는 뜻.
하지만, 해당팀 수입에서 지분 파트너들에게 돌아가는 것을 제외한 뒤에 남은 수익에서 공제되는 것이기에 어찌 보면 시니어 파트너 혹은 시니어 파트너들의 개인 성과급에서 공제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배상 때문에 밑의 어쏘들에 성과급이나 월급을 주지 못하게 되면, 그의 밑에서 일하려는 어쏘는 아무도 없게 된다.
결론적으로는 개인적으로 지는 것과 다름없다.
“이런 상황에서 내부 총질이나 하려 놈이면 애초에 시니어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일단, 최재민 변호사가 어떻게 하는지 보고, 그때까지 사무실 차원에서 어떻게 할지 말지 결정해도 늦지 않잖아요.”
이런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간 김앤강이 처리해 온 방식에 따르는 제안이기는 했다.
박재록의 발언에 고중석을 제외하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문제가 심각해질까, 우려돼서 하는 말이지.”
예상 배상액 육백만 달러.
한화로 80억 원이 넘는 돈.
적은 금액은 아니다.
하지만, 고중석이 더 걱정하는 건 돈보다도 평판.
일이 이렇게까지 된 게 창피하다.
경험 없는 ‘시니어’에게 책임을 미루는 것보다 아예 초장에 사무실 차원에서 대응하는 게 낫다는 것의 그의 의견이었다.
하지만, 그랬을 때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국제중재팀을 관할(?)하고 있는 이정후가 뜨뜻미지근했다.
얼굴에 불만족스러움을 드러냈지만, 고중석은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일단은 지켜보죠.”
“그게 다수의 뜻이라면···.”
김앤강의 ‘신선들’은 결정을 내렸다.
최재민이 어찌 해결하는지 보기로.
-*-
이태오와 설전을 벌이고 돌아온 최재민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는 걸 겨우 참았다.
차라리 같은 주니어 파트너였다면 일을 뭐 그따위로 하냐고 신랄하게 까주고 왔을 텐데, 지금은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어수선해진 팀을 어떻게든 붙들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육백만 달러···.’
80억 손해.
팀 매출로 해결하기 쉽지 않은 금액이다.
해결하면, 올해 국제중재팀 파트너급 변호사들의 성과급은 없게 된다.
그러면 내년 시니어 파트너 자리는···
이정후와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고, 기약하기 쉽지 않다.
김한 대표가 불렀다고 해도, 약속된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하아-”
최재민의 입에서 누르고 눌렀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걸 어떻게 해결한다···’
고민하던 최재민은 휴대폰을 꺼냈다.
「한범상」
일단 수습 차원에서 미시간에 먼저 보낸 한범상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리링- 띠리링- 띠리링-
‘회의 중인가?’
띠리링- 띠리링- 띠리링-
받질 않는다.
끊고 같이 간 도하영에게 걸려던 최재민은 마음을 바꾸었다. 대신 사무실 전화기로 비서를 연결했다.
-네, 변호사님.
“모레 디트로이트행 비행기 있잖아. 그거 내일 비행기로 바꿔.”
-내일 오후에 연성그룹 회의 있으신데 괜찮···.
“그거 내가 전화해서 연기할 테니까, 비행기 일정 내일로 앞당겨.”
아무래도 이 일이 더 우선이다.
최재민은 모레 조인하기로 한 일정을 내일로 앞당겼다.
-네, 알겠습니다.
재민은 알 길이 없었다.
바로 그 시각, 미시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
미국,
미시간주 주도 랜싱.
“Get the fuck out of my property or I’m gonna shoot your head off!”
(씨발, 내 땅에서 꺼져! 대가리를 쏴버리기 전에.)
화가 난 유가족 중 한 명이 범상의 머리에 총을 겨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