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17)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17화(117/190)
117화 파트너, 무게를 나누어 지는 사람
「사건이 터졌다.
“한 변, 한 변이 먼저 좀 가줘야 할 것 같아.”
KLS 에너지 미시간 공장 폭발 사고.
“네, 알겠습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결국에는 옷매무새가 어그러진다고 했던가.
팀 내 다른 파트너가 맡아 하던 일을 중간에 이어받았다.
꼼꼼하게 체크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녹음이 존재했다.
“나는 여기서 KLS 에너지하고 대책 회의를 좀 하고 따라갈 테니까, 한 변이 먼저 가서 MG 측하고 먼저 좀 만나 봐. 토마스 뮐러 변호사가 한 변을 좋아하잖아.”
최대한 침착하게 설명하셨지만, 눈에 보였다. 적잖이 당황하신 모습이. 평소에는 그런 일이 별로 없는 최재민 변호사님인데.
“네.”
현재 국제중재팀은 최적이라고 할 수 없었다.
나간 사람도 많고, 내부적으로도 파벌이 갈렸다.
후배가 선배를 제치고 올라가면 흔히 생기는 사태.
그것만으로 부담감이 만만치 않을 텐데, 나간 사람들이 하던 사건들을 빈틈없이 이어받으려고 하는 와중에 이런 일이 터져버렸으니···
누구라도 당황할 법한 상황이었다.
“일단 박세현 변호사랑 가.”
“박 변호사님이요?”
의외였다.
사건을 이어받을 때, ‘최재민 팀’ 전체가 투입되었기는 했지만, 추후 협의 과정에서는 박세현 변호사님보다는 장석훈 변호사님이 담당 시니어 어쏘였기 때문이었다.
내 의아함을 감지하셨는지, 최 변호사님은 곧바로 이유를 설명해 주셨다.
“원래 장석훈 변호사가 같이했던 사건이라, 장 변호사를 같이 보내면 좋겠지만······장 변호사가 다음 달에 퇴사하겠다고 해서 말이야···.”
처음 듣는 이야기.
전혀 그런 기미는 느끼지 못했는데.
“장 변호사님이 퇴사하시나요?”
“그렇게 됐어. 나중에 다 알게 되겠지만, 일단은 한 변호사만 알고 있어.”
“아···네.”
“그나마 박세현 변호사가 장 변하고 한 변 제외하면 이 사건에 대해서는 제일 많이 알잖아. 한 변호사가 혼자도 잘하는 거 아는데, 그래도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의뢰인 눈치도 봐야 하고···. 박세현 변호사와 함께 가는 건 어때? 이참에 다른 어쏘가 서포트 해주는 게 더 편할 것 같으면, 말해. 새로 배당해도 난 상관없으니까.”
왜 그랬을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최 변호사님이 그때 하신 말씀에는 큰 배려가 숨겨져 있었다.
나를 ‘보조’해 줄 변호사를 나한테 지목하라고 한 것이었다.
웃기게도 당시에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도하영 변호사와 같이 가면 일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었을 뿐.
“그렇다면, 도 변호사님이 낫지 않을까요? 그때 미시간 출장에 같이 간 것도 도 변호사였는데···.”
“나도 그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닌데, 이 사건이 언제 끝날지 모를 것 같아서.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약 정말 소송이라도 가게 되면 2, 3년은 미니멈으로 걸릴 거야. 차라리 새로운 어쏘를 어싸인하는 게 낫지 않아?”
“아···.”
“도 변이 아무리 늦어도 8월 말에는 출국할 거야. 그전에 유학 준비랑 뭐다, 정신없을 것 같은 사람을 보내는 게 현명한 건가, 확신이 안 서네. 한 변은 도 변이 좋아?”
“네? 아, 아니, 처음부터 도 변호사와 같이했던 사건이라서···.”
“흠- 그렇게는 해. 도 변이 한다고 하면야, 나도 좋지. 근데, 이게 참······.”
최재민은 아끼는 어쏘에게 약속한 안식년을 미루게 하고 싶지 않았다.
범상은 최재민의 마음을 알아챘다.
“알겠습니다. 박세현 변호사님과 함께 가겠습니다.”
“알았어. 그건 내가 좀 더 생각해 볼게. 그래도, 일단은 그렇게 하자고.”
“네.”
그래서 그때는 박세현 변호사님과 출장을 가게 될 줄 알았다.」
【117화 – 파트너, 무게를 나누어 지는 사람】
나흘 뒤,
미시간, 랜싱.
“한 변호사님!”
“도 변호사님, 괜찮아요. 거기 계세요.”
대형사고의 유가족들과 협상을 해본 사람은 안다.
이게 얼마나 섬세하고, 침착함을 요구하는 일인지.
“씨발, 내 땅에서 꺼져! 대가리를 쏴버리기 전에!”
KLS-MG 합작 배터리 공장의 폭발 사고.
사망자 다섯 명을 포함해 총 서른여덟 명의 사상자가 난 큰 사고였다.
서른여덟 명이나 되는 피해자들.
각기 다른 정도의 피해.
그들의 유가족들.
대게 협상은 그룹별로 이뤄진다.
이런 대형사고의 경우, 피해자들 모두가 한뜻이 되어 협상하는 경우는 운이 좋은 케이스다.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해 있는 피해자들은, 처음에는 공동 대응을 할 것처럼 하다가도, 나중에는 그룹별로 나눠지게 된다.
돈이 급한 사람,
시간이 걸려도 최대한의 보상을 받고 싶은 사람,
돈 따위는 상관없고 책임자를 벌하고 싶은 사람,
위로가 필요한 사람···
당장 치료비가 없어서 돈을 빨리 달라고 하는 것뿐인데, 어떤 사람들은 그들을 비난한다. 가족이 그렇게 됐는데, 돈 얘기부터 한다고.
물론 정말 돈 얘기만 하는 유가족도 있다.
변호사 관점에서 그런 사람들은 상대하기 쉬운 사람들이다.
법은 ‘사과’나 ‘위로’를 강요할 수 없기에.
결국 모든 게 금전적인 것으로 치환되어야 하는 시스템.
그래서 변호사에게 가장 어려운 상대방은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다.
“한 변호사님!”
“도 변호사님, 괜찮아요. 제가 말해 볼게요. 미스터 카힐?”
“그 이름은 입에 담지도 마!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가 미스터 카힐이었어!”
미스터 코맥 카힐은 공장의 현장 책임자 중 한 명으로 폭발 사고로 사망한 다섯 사람 중 한 분이었다.
KLS 에너지 변호사라고 설명하자, 그의 아들 코너 카힐은 집안에서 라이플총을 가져와 내 머리에 겨눴다.
“알았어요, 코너. 진정해요.”
“진정하라고? 너희 그때도 이랬지? 이런 식으로 갑자기 찾아와서, 사람 협박하고. 나는 내 여동생이랑 달라. 안 통한다고, 쓰레기 같은 새끼들.”
사망자 다섯 중에는 사고 당시 폭발 지점 근처에 있었던 사람도 있지만, 치료를 받다가 병원에서 사망한 사람도 있었다.
미스터 코맥 카힐은 후자였다.
사고 당시 현장 책임자로서 폭발 사고 직후 대피 및 수습을 지휘하다가 유해가스 중독으로 쓰려진 후 일어나지 못한 안타까운 케이스였다.
“우리가 좋지 못한 타이밍에 온 것 같네요. 그냥 돌아가라고 하면 가겠습니다. 우린 그냥 코너, 당신의 사정을 좀 더 자세하게 들어보고 싶어서 왔을 뿐입니다.”
“그런 거면 내 변호사를 찾아가야지. 왜 날 찾아와?”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면 좀 더 쉬운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까 해서요.”
“흥, 안 그래도, 내 변호사가 당신네가 이렇게 나올지 모른다고 경고했어. 변호사가 있는 상대방을 이렇게 막 찾아오는 건 비윤리적인 거 아니야? 내 변호사는 그렇게 이야기하던데. 너희 변호사라면서.”
“그게 일반적인 것은 맞지만, 엄밀히 말하면 모회사인 KLS 에너지의 한국 변호사라서 상황이 좀 달라요.”
“또 말장난질이네. 그딴 소리나 할 거면, 꺼져. 내 변호사랑 얘기해. 난 할 말 없으니까.”
“미안해요. 내가 실수했네요. 맞아요. 협상 이야기라면 당신 변호사와 이야기하는 게 맞아요. 우린 오늘 그런 이야기를 나누려고 온 게 아니었어요.”
“웃기는 소리하고 있네. 그럼, 뭐? 날씨 이야기라도 하러 온 거야? 레모네이드라도 한잔 마시면서? 대갈통에 총알이 박혀야 정신을 차리지!”
“아니요.”
“그럼, 뭐, 이 새끼야!”
“사과하려고 왔습니다.”
최대한 진심을 담아 대답했다.
라이플총의 총구가 내 머리를 겨누고 있어서가 아니라, 정말 그런 의도로 왔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진심으로 사과하기 위해서 왔다고.
“뭐? 뭘 하러 왔다고?”
“사과를 하러요.”
“···.”
“제 동료가 했던 행동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머리를 숙였다.
-*-
서울, 광화문.
이른 아침, 최재민은 사무실에 나왔다.
공항 가기 전, 처리해야 할 급한 일들이 여럿 있었다.
의뢰인은 내 변호사의 다른 의뢰인에게 닥친 급한 일에 관심이 없다.
내가 고용한 변호사가 사람들이 많이 찾는 실력 좋은 변호사이기를 바라지만, 동시에 그가 내 사건을 제일 우선으로 처리해 주기를 바라며, 절대 다른 사건 때문에 내 사건을 소홀히 하지 않기를 바란다.
당연하다. 그건 변호사가 알아서 해야 하는 정리. 관심을 둘 이유가 없다.
어젯밤 새벽 두 시까지 일한 그였지만, 그 몇 시간 사이에 또 다른 이메일들이 들어와 있다.
「박 변호사,
F251-0712건.
답변서 검토하고
한국 시각으로 내일 오후 1시에 화상회의.
-JMC-」
「이 변호사,
터키 공사 중재 관련
연성그룹 최 이사님이랑 통화한 뒤에
사핀에 보낼 메일 초안 작성
-JMC-」
진짜 중요한 것들은 기록에 포스트잇까지 써서 붙였다.
가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을 꼼꼼하게 마무리한 최재민은 여덟 시 반이 다 되어서야 회사 차에 오를 수 있었다.
“차장님, 10시 반 비행기예요. 최대한 빨리 가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출근 러시아워,
이 시각에 인천공항까지 한 시간 만에 가는 건 쉽지 않다.
한 시간 만에 간다고 해도 탑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슬아슬하다.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마음을 조금 놓을 수 있는 건, 오후에 뜨는 도쿄 경유 비행기에 좌석도 예약해 놓았기 때문.
그래도 10시 반 직항을 타면 좋겠다.
해 뜬지 세 시간밖에 안 됐지만, 벌써 눈이 아프다.
어깨가 묵직하다.
재민은 뒷덜미를 만지며, KLS 에너지 미시간 공장 사건을 정리해 놓은 메모를 꺼냈다.
잘 마무리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녹음 파일이 남아있을 줄이야.
그의 잘못은 없었다. 전임자의 실수였고, 인수 과정에서 전임자와 의논할 기회조차 없었다.
그래도 수습은 그의 몫.
못하면 그의 책임이 된다.
그게 시니어 파트너라는 자리다.
‘이걸 어떻게 해결하지···’
유가족 합의는 매우 섬세해야 하는 절차이다.
그러면서도 신속해야 한다.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조율하면서 누구 하나 불공평한 보상이 이뤄져서는 안 된다.
그런데 다들 원하는 게 조금씩 다르다.
전임자 이태오는 신속하게 해결하고자 각각 나눠진 그룹별로 협상을 진행했다.
거기에는 잘못이 없다.
그런 방식이 효율적일 때도 있으니까.
다만, 그런 방식을 취할 때는, 그룹별로 진행되는 협상 동안 정보 보호 및 공유에 있어서 특별히 더 조심해야 한다.
무언가를 감추려는 듯이 불투명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민감한 정보를 함부로 나눠서도 안 된다.
그래서 더 어렵다. 게다가 자칫 잘못하면 이런 경우가 발생한다.
사고 당시 현장 책임자 중 한 명이었던 피해자 코맥 카힐의 유가족은 돈이 급했다.
이태오 변호사는 그 점을 이용했다.
그리고, 또 하나.
당시 이슈 중 하나가 폭발 원인 말고도 폭발 직후 수습 절차의 적절성이었는데, 그 문제를 어떻게든 묻어보려고 책임자 위치에 있었던 코맥 카힐을 이용했던 것이었다.
추후 조사에서 사고 수습 절차에 관한 지침 및 대응이 적절했다고 밝혀졌다.
당시에는 불투명했기에 묻으려고 했지만, 애초에 그럴 필요가 없었던 이슈.
나중에 봤을 때 그럴 필요가 없었다라는 것이지, 당시에는 KLS나 MG 모두 덮고 싶어 했다.
이태오 변호사는 의뢰인들의 요청대로 한 것뿐이었다. 다만, 섬세하지 못했을 뿐.
코맥 카힐에겐 과실이 없었다.
그런데 그럴지 모른다는 뉘앙스로 유가족을 압박했던 것이었다.
해당 이슈에 관한 조사가 덜 된 상황에서 그 점을 이용해 코맥 카힐과 우선으로 합의했고, 그러한 합의가 추후 합의를 수월하게 이끌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것도 사실이었다.
그걸 이용했다는 것이 최근 밝혀졌고, 유가족들 사이에서 마치 카힐의 가족들이 공장 측과 한편이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복잡하다.
왜 이렇게 꼬여버렸을까?
최종 합의서 조항에 따르면 그전에 있었던 어떠한 협의보다 우선한다고 되어 있기에, 법대로 하자면 추가 배상에 대한 요구는 막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그 과정에서 이태오의 발언이 녹음된 파일은 공개될 것이다.
그가 법적인 책임이 될 만한 발언을 했다기보다는 윤리적인 면이 컸고, 김앤강의 입장에선 자신들의 변호사가 그런 녹음이나 당했다는 게 더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KLS 입장에서는 겨우 수습해 놓은 폭발 사고를 이런 일로 다시 불타게 만들어 괜히 여론 관심을 받게 되면, 겨우 정상화된 공장 가동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어디서부터 풀어야 하지? 처음부터 풀어야 하나?’
미시간으로 직접 날아가고 있는 최재민이었지만, 답이 보이지 않았다.
MG 측이 좀 적극적으로 나와주길 바랄 뿐이었다.
띠리링- 띠리링-
꽉 막힌 도로,
차가 아직 내부 순환도로를 빠져나오지도 못한 상황,
KLS 에너지 법무팀의 윤경철 부장으로부터 전화가 들어왔다.
“네, 부장님.”
-변호사님, 윤경철입니다. 공항이신가요?
“가고 있습니다. 차가 좀 막히네요.”
-아, 네.
‘뭐지? 재촉하려고 전화한 건가?’
머릿속이 복잡하니 이런 통화에도 괜스레 민감해진다.
“만약에 오전 비행기를 못 타면, 도쿄 경우에서 들어가는 좌석도 예약해 놓았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오늘 꼭 출국할 겁니다.”
-아, 네. 걱정해서 전화 드린 거는 아니고···아, 근데, 혹시 연락받으셨나요?
하지만, 윤경철 부장이 전화한 목적은 재촉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연락이요? 누구한테요?”
-한 변호사님한테서요. 유가족 측에서 소송 제기 안 하겠다고 했답니다.
!!!
“네?! 정말인가요?”
-아직 한 변호사님한테서 연락을 못 받으셨죠? 하긴, 지금 거기도 정신이 없으실 테니까. 그래서 전화 드렸습니다.
무슨 말이지?
-한 변호사님이랑 도 변호사님이랑 어제 랜싱에 가서 유가족을 만났다고 하네요.
“유가족을 만났다고요?”
뭐지? 왜 유가족을 만난 거지?
토마스 뮐러를 만나라고 한 건데···
-얘기가 잘 돼서, 유가족들이 문제 삼지 않겠다고 방금 현지 공장 측에 전해왔다고 하네요.
“그게 무슨···?”
-저도 자세한 얘기는 못 들었는데, 가시기 전에 변호사님도 아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일단 보고 받고 바로 전화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
‘유가족 측이 갑자기 소송을 안 하겠다고 나왔다고? 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지만, 궁금증만 생긴 건 아니었다.
좀 전까지 딱딱하게 굳어있었던 어깨가 부드러워진다.
막혔던 도로도 풀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