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18)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18화(118/190)
118화 파트너, 함께 걷는 사람
이태오 변호사님의 발언은 부적절했다.
의뢰인과의 내부 회의에서 나온 발언이었다면 문제가 될 게 없었겠지만, 병원에 있는 유가족을 찾아가 한 말이었다.
녹음의 불법성, 변호사-의뢰인 비밀유지특권 등을 주장하여 해당 녹음이 법정에서 증거로 사용될 수 없게 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어도, 이미 다른 유가족들도 알게 된 상황에서 공론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유가족을 달래는 것밖에 없어 보였다.
“미안합니다. 그런 오해를 사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오해?”
“사고 직후에는 많은 부분이 조사가 안 된 상황이었고, 그러다 보니 여러 가능성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협상을 진행해야 했어요.”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는 내 여동생을 협박했다?”
“당신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해합니다. 같은 상황이었다면 나도 같은 생각을 했을 거예요.”
“그럼, 내가 얼마나 지금 네 머리를 날려 보내고 싶은지도 알겠네.”
누군가를 달래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특히 그것이 소중한 사람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면.
“아버님께서는 사냥을 좋아하셨나요?”
“!”
“지금 내게 겨누고 있는 그 총, 308구경 레밍턴 700 ADL 1988? 1989?”
“···.”
“나도 같은 기종의 라이플총을 가지고 있어요. 그 총은 아버님이 사용하시던 건가요?”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세이프티 핀을 밀지 않았어요. 지금 상태로는 방아쇠가 당겨지지 않을 거예요.”
“!”
“코너, 우리가 오늘 여기 온 이유는 당신에게 재협상을 하자고 온 것도 아니고, 어떤 약속을 하러 것도 아니에요. 아까도 말했지만, 사과하러 왔어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원하는 건 사과야.”
“잘됐네요. 그걸 하러 온 거니까.”
“그런 형식적인 사과 말고! 다른 유가족들이 있는 데서. 정식으로. 우리 아버지 잘못이 없었다는 걸 명확하게 밝히고, 니들이 멋도 모르는 내 여동생을 이용한 거라고 밝혀. 그럴 마음이 없으면 당장 꺼져.”
“하죠.”
“뭐?”
“그렇게 할게요. 원하면 오늘 밤이라도 당장. 유가족을 모아줄 수 있나요? 공장 측에 연락할 수도 있지만, 왠지 그런 것보다는 당신이 그들을 부르는 게 낫지 않을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코너, 당신 생각은 어떤가요?”
“진···진심이야?”
“네, 진심입니다.”
처음부터 침착하고 차분한 모습을 보여준 동양 남자는 신뢰가 가는 얼굴을 가졌다.
목소리는 온화했고, 태도 또한 예의가 발랐다.
화를 주체할 수 없었던 코너 카힐은 그와 대화하는 동안 어느새 많이 진정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해명이 듣고 싶어졌다.
자리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에 잠시 고민한 코너 카힐은 곧바로 같은 타운에 사는 유가족들을 불러 모아 주었고,
그렇게 범상과 하영은 유가족들을 달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118화 – 파트너, 함께 걷는 사람】
다섯 시간 뒤,
KLS 배터리 공장 회의실,
“수고하셨습니다, 변호사님.”
“부장님도 늦게까지 고생하셨습니다.”
갑작스레 성사된 유가족들과의 미팅이었지만, 결과는 아주 좋았다.
유가족들을 돌려보낸 뒤, 범상과 하영은 KLS 에너지 측 현지 담당자와 인사를 나눴다.
“젊으신 분이 대단하시네요. 이 사람들 쉽지 않은 사람들인데···.”
“옆에서 도움을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뭘요. 저야, 그냥 옆에 서 있었던 것뿐인데요, 뭐.”
“아닙니다. 갑작스러운 요청이었는데, 부장님께서 재빠르게 자리를 마련해 주시고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분위기를 조절해 주셔서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변호사님이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진심입니다. 처음 봤습니다. 이렇게 험악한 분위기에서도 긴장 하나 없이 하실 말씀 다 하시고, 들어주실 것들은 또 다 들어 주시고. 아무튼 변호사님 덕분에 큰 고비 넘겼습니다.”
면담 시작 때에는 말끝마다 쌍욕을 붙이던 유가족들이었지만, 끝날 때쯤엔 모두 진정했다.
협상 과정에서 생긴 오해는 어느 정도 풀렸고,
공장 측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겠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소송 제기를 유보하자는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근데, 변호사님.”
“네.”
“이건 그냥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그런 건데, 그렇게 사과해도 되는 건가요?”
법에서 ‘사과(謝過)’는 이중적인 기능을 한다.
잘못을 인정하는 증거로도 사용되지만, 처벌을 면해주는 근거로도 사용된다.
불필요한 소송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소송을 피할 수 있게도 해준다.
범상은 사과했다.
법적인 책임에 대한 부분이 아니었다.
섬세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것이었고, 긴박한 상황 속 그룹별로 보상 협의를 진행하면서 부득이하게 밝힐 수 없던 점이 있었던 부분에 대해 해명했다.
유가족들이 제일 원했던 것.
그래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사실이 밝혀지면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해명을 듣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는 행동은 막을 수 있었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사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찌 됐든 저희 사무실의 변호사님이 실수한 거니까요.”
“아하-”
현지 공장의 담당자는 젊은 변호사의 당당함에 감탄했다.
법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그의 그런 태도가 오늘 밤 유가족들을 설득한 것은 분명했다.
“호텔로 가시죠?”
“네, 이 시간에 디트로이트로 가기는 너무 늦어서···.”
“모셔다드릴게요.”
“아닙니다. 여기서 십분도 안 걸리는데요, 뭐. 걸어가겠습니다.”
“그래도, 많이 늦었는데, 제가 제 차로 태워다 드리겠습니다.”
“위험한가요?”
“아니요, 아니요. 이 동네는 이 시간 때 다녀도, 그렇게 위험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호텔까지는 가로등도 잘 되어 있고, 괜찮습니다.”
“그럼, 그냥 걸어가겠습니다. 바람도 셀 겸.”
“그러시겠어요?”
“네. 도 변호사님도 괜찮으시죠?”
“네, 좋아요.”
“알겠습니다. 가능 방법은 아시죠?”
“네. 구글맵도 있습니다.”
“그렇죠. 하하. 그럼, 저는 내일 아침에 호텔로 찾아뵙겠습니다.”
“넵.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변호사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들어가십시오.”
“네에-”
긴 하루가 짧은 영화처럼 끝났다.
현지 공장의 KLS 측 담당자와 인사를 나눈 범상과 하영은 공장을 나와 호텔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
터벅터벅.
또각또각.
스물네 시간 가까이 깨어있는 것 같은데 정신이 또렷하다.
아까 카힐의 집에서 생긴 일 때문일까?
걷는 게 어떻겠냐고 먼저 제안한 건 범상이었지만, 하영도 시원한 밤공기가 간절했다.
“시원하네요. 아- 좋다.”
하영은 범상을 뚫어지라 쳐다봤다.
뭐지, 이, 남자는?
몇 시간 전 총을 맞을 뻔했을 수도 있었던 그 남자 맞나?
왜 이렇게 담담한 거지?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왜?
어떻게? ······
“왜요?”
자신을 보는 하영의 시선을 감지한 범상이 물었다.
“한 변호사님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으세요?”
“네?”
“한 변호사님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으시냐고요. 아까 그 사람이 총으로 한 변호사님을 겨눴어요.”
하영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생각만 했을 뿐인데.
그때 기분이 되살아난다.
“아- 어떻게 아무렇지 않겠어요. 무서웠죠.”
“무서운 사람이 어떻게······.”
“살짝 무서웠는데, 자세히 보니까, 세이프티 핀이 잠겨있더라고요. 그때부터는 조금 침착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기억난다. 잠긴 세이프티 핀 관련해서 범상이 코너 카힐에게 했던 말.
총에 대해서 잘 아는 듯한 발언들.
같은 모델을 가지고 있다고도 한 것 같은데,
그냥 한 말이겠지?
뭐가 됐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근데 왜?
하영이 궁금한 건 범상의 그다음 행동이었다.
“알려줬잖아요. 세이프티 핀이 잠겨있다고. 왜 그랬어요? 그랬다가 그 사람이 풀 수도 있잖아요.”
“세이프티 핀이 있는 줄도 모르는 사람이 정말 그랬을까요?”
“그래도 한 변호사님을 겨누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당황해서 잘 보지 못했는데, 그 사람의 눈을 보니까, 쏠 사람 같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너무 위험했어요! 총이었다고요!”
“그렇기는 한데, 그 순간에는···.”
범상은 하려던 말을 멈췄다.
설명하려고 하영을 향해 돌아섰는데, 그녀의 어깨가 파르르 떨리는 게 먼저 시야에 들어왔다.
미안했다.
그런 상황을 마주하게 될 줄이야.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 그럴 줄 알았다면 절대로 오자고 하지 않았을 텐데.
코너 카힐의 유가족을 만나러 가자고 한 사람은 범상이었다.
그래서 더 미안했다. 떨리는 하영의 어깨를 감싸 안아 주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미안해요.”
범상은 대신 고개를 숙였다.
그래서, 하영의 눈에 핑그르르 돈 눈물을 보지 못한다.
“제가 너무 독단적으로 결정해서··· 죄송합니다.”
“그래서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놀랐을 뿐이에요···
많이···
“미안해요.”
묻고 싶은 말이 정말 많다.
그 위험했던 순간은 몰랐더라도 일이 이렇게 될 줄 알고 유가족을 만나러 오자고 한 건지,
유가족 면담에 대해 미리 준비를 한 건지,
도대체 얼마나 준비했으면 그 질문들에 대한 답들을 다 숙지하고 있는 건지,
얼마나 연습한 건지,
그리고 정말 총에 대해서는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있는 건지···
“후우-”
하지만, 미안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모든 게 상관없어진다.
내일 또 궁금할지언정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중요치 않았다.
그저 고마울 뿐.
그 사람이 옆에 있다는 사실이.
그저 편안할 뿐.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피곤함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힘드시죠? 그냥 차 태워달라고 할 걸 그랬나. 또 저만 생각해서···.”
“아니요.”
“지금이라도 우버 불러볼까요?”
“이 시간에요? 걸어서 10분도 안 되는 거리를?”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저도 걷고 싶었어요.”
도하영은 이미 많이 좋아하고 있다.
“미안해하지 말라고 그냥 하시는 말 같은데···”
“그렇다면요?”
“네? 아···아! 그럼, 제가 업어···드릴까요?”
역시나 범상치 않은 이 남자.
내일 아침 맛있는 커피 한 잔 사다 주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네?! 하하.”
근데 그래보고 싶다.
언젠가는···
“진짜로 걷고 싶었어요. 아- 밤공기 좋다.”
하영은 씩씩하게 앞서 걸었다.
그녀의 발걸음 위로 촉촉한 잔디 냄새가 올라왔다.
-*-
다음 날 아침,
디트로이트 시내,
MG 사(社) 빌딩,
총괄 법무이사실.
똑똑-
“들어와.”
방주인의 허락이 떨어지자, KLS 에너지 사건을 담당하는 사내 변호사가 들어왔다.
“미스터 뮐러.”
“무슨 일이야?”
총괄 법무이사의 질문에 사내 변호사는 방금 랜싱의 공장으로부터 들어온 소식을 보고했다.
“유가족들이 소송 제기를 유보했다고 합니다.”
“잘됐네.”
안 그래도 살짝 신경이 쓰이는 일이었는데.
“이유는?”
“김앤강의 한 변호사가 어젯밤에 유가족들을 만나서 설득했다고 합니다.”
“그래? 어젯밤에?”
“네.”
토마스 뮐러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예전에도 느꼈지만, 확실히 재주가 있는 놈이다.
“어떻게 했대?”
“그게···.”
“하긴, 설득했으면 오늘이나 내일쯤에는 이리로 오겠네.”
“네, 안 그래도, 이따가 오후에 저희랑 미팅을 좀 했으면 좋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 만나서 직접 들어보지.”
그 무용담.
“네, 알겠습니다. 그럼, 두 시쯤으로 할까요?”
“그러지 뭐. 아, 아니다. 아예, 다섯 시쯤으로 잡고, 끝나고 식사 같이하지.”
“그렇게 할까요?”
“응. 그게 좋겠어. 플레밍으로 잡아.”
“알겠습니다.”
이렇게 빨리 해결할 줄이야.
한쪽만 올라갔던 입꼬리가 이제 양쪽으로 번졌다.
일 처리가 마음에 든다.
그럼, 이제 이쪽도 보여줘야지.
“케빈.”
“네.”
“그럼, 우리도 오늘 미팅 전에 정리해 두는 게 좋겠어. 케일만에 전화해서 유가족들 들쑤신 로컬 변호사 기록들 좀 다 조사하라고 해.”
“네.”
“확실히 해야지.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