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19)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19화(119/190)
119화 파트너다운
디트로이트 시내의 호텔.
체크인하기가 무섭게 재민은 범상과 하영을 찾았다.
“그 돌아가신 분의 아들이 한 변한테 총을 겨눴다고?”
“네! 저희가 누구라고 설명하자마자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더니, 이만한 총을 가지고 나와서는···”
오는 길 내내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는데, 이야기는 시작부터 스펙타클했다.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된 거야? 유가족들을 설득했다면서? 면담은 어떻게 열게 됐어?”
“설득했어요.”
“설득? 장총을 들고나왔다면서.”
사정을 들으려고 근 스무 시간 가까이 기다렸다.
마음이 급하니까, 자꾸 재촉하게 된다.
다행인 건, 그 마음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
“저는 너무 놀라서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는데, 한 변호사님이 사과하러 온 거라고 침착하게 설명하니까······”
하영이 자신의 질문에 착착 답을 해주며 이야기를 이어 나가자, 조급했던 재민의 마음도 조금씩 차분해지기 시작한다.
재촉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최재민은 자신만큼이나 열렬한 도하영이 설명을 끝낼 수 있게 입을 다물었다.
“허!”
그리고, 그녀가 긴 이야기를 끝냈을 땐 재민의 입에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기가 막혔다.
더 기가 찬 건 옆에서 남의 이야기처럼 듣고 있는 주인공이었다.
“한 변호사.”
“네.”
막상 이름을 불렀는데,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무슨 말을 해줘야 하지?
잘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보고도 안 하고 일을 멋대로 진행하면 어떻게 하냐고 호통을 쳐야 하나.
위험한 상황은 본인도 예상하지 못했을 테니, 그것을 두고는 뭐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유가족에게 한 사과(謝過)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사과는 소송을 피할 수 있게 해주는 아주 효율적인 도구이지만, 동시에 성가신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는 양날의 검 같은 것.
“죄송합니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서. 유가족들을 단체로 만나는 일은 카힐을 먼저 한번 만나본 뒤에 변호사님께 상의드리고 진행하려고 했는데···.”
코너 카힐이 총을 들고나왔다.
그 후로 일이 어떻게 발전된 건지는 조금 전, 도하영이 열정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누가 봐도 아찔한 상황.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운이 좋았다고 볼 수도 있다.
전화위복이라는 사자성어가 딱 들어맞는다.
그래도, 총구를 앞에서 협상할 생각을 한다니···.
예측했다고 해도 마주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변호사 일을 하다 보면 간혹 험악한 상황에 맞닥뜨릴 때가 있다.
특히 이런 대형 사고의 유가족들은 감정적일 수밖에 없기에, 자칫 위험한 꼴을 당할 수 있다.
그래봤자, 한국에서는 밀침을 당하거나, 달걀 세례를 받는 것 정도일 뿐인데.
아, 선배 변호사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있다. 유가족들이 식칼을 들고 찾아와서는 뒤로 문을 걸어 잠그고 협상한 적이 있다고.
사과에 관해서 물으려고 했던 재민은 그만두었다.
들어보니, 긴급하게 돌아간 상황 속에서 노련하면서도 현명한 대처였다.
‘내가 그 상황에 있었어도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법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발언은 하지 않았고, 그러면서도 유가족들이 궁금해하는 점, 불만스러운 점들을 잘 풀어낸 듯했다.
아니, 풀어냈다. 그러지 않고서야, 소송하겠다고 불타오른 그들이 돌연히 태도를 바꾸어 진정할 수 있었겠나.
최재민은 한범상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고 싶었지만,
“수고했어. 잘했네.”
그건 나중에 따로 소주 한잔하면서 물어보리라 마음먹었다.
“아닙니다.”
언제나처럼 간결한 대답.
지금은 그거면 충분했다.
“한 변이랑 도 변이 유가족들을 잘 진정시킨 것 같으니까, 자, 그럼, 이제 승산도 없는 일을 가지고 그 유가족들 들쑤신 변호사를 잡으러 가야지!”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막고 있으라고 보낸 어쏘 둘이 자기가 해야 할 일의 반을 이미 끝내버렸다. 비행기 안에서 한잠도 못 자 피곤한 최재민이었지만, 수고한 어쏘들 앞에서 파이팅을 보이고 싶었다.
그런데···
“변호사님, 그건 신경 쓰시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내가 서울에서 KLS 에너지 담당자하고 회의했는데, 애초에 그 변호사가 발단이야. 이번에 확실하게 해야지, 괜히 어물쩍 넘어갔다가 후에 또 문제가 생긴다고. 거기가 랜싱에 있는 작은 사무실이지? 변호사 열 명인가? 일단, MG의 토마스 뮐러를 만나서 먼저 상의해 보고···.”
“안 그래도 어제 디트로이트에 올라와서 미스터 뮐러부터 만났습니다.”
“아, 그랬어?”
녀석들, 거참 일 처리 참 빠르네.
“네, 연락드리려고 했는데, 오고 계시는 중이라···.”
“하지 그랬어. 비행기에서 와이파이 열어뒀는데. 그래서, 토마스가 뭐래? 여전히 자기네들 일 아닌 것처럼 그래? 그럼, 내가 만나서···.”
“아니요.”
“아니야?”
“네. 유가족들 부추긴 랜싱 변호사는 자기네가 알아서 조처하겠다고 했습니다.”
“···.”
“이미 케일만이라고 이런 일을 잘 처리하는 자기네들 로펌에 조사를 맡겼다고 합니다. 결과 나오면 정보 공유하겠다고 했습니다.”
“아······그렇게 말했어, 토마스 뮐러가?”
“네.”
그 순간, 최재민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왜 온 거지?’
“변호사님, 비행기에서 식사는 좀 하셨나요?”
“응? 아니, 뭐, 입맛이 별로 없어서···.”
“점심이 좀 이르기는 한데, 저희가 아침을 못 먹어서요.”
“아. 어. 그래? 그럼 먹어야지.”
“근처에 우거지 해장국을 잘하는 한식당이 생겼다고 해서 거기 가려고 하는데, 변호사님은 어떠세요? 같이 가실래요?”
“우거지 해장국?”
“네.”
디트로이트식 우거지 해장국으로 먹으러 왔단 말인가?
“어···그래, 같이 가지 뭐.”
이제 급한 일도 없는데.
【119화 – 파트너다운】
디트로이트에 다녀온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한동안 정신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래서 기어를 몇 단계나 올려 사건들을 처리해 놓았더니.
한가한 시간이 생겼다.
오랜만에 사건 말고 국제중재팀 구성원들 목록을 보고 있던 최재민은 서울에 돌아와 한범상이랑 나눴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랬다가 유가족 측에서 사과를 안 받아줬으면 어떻게 하려고 했어?”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소송을 통해서 해결할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닌가요?”
“그쪽에서 한 변의 사과를 물고 늘어졌을 수도 있어.”
“리스크에 비해 얻을 수 있는 게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말은 옳다.
리스크에 비해 얻을 수 있는 게 훨씬 컸다.
조직의 관점에서 말이다.
문제는 그 리스크를 누가 짊어질 거냐는 것이었다.
사과했다가 상대방 쪽에서 물고 늘어진다면, 사과한 사람은 성가신 일을 겪게 될 것이 뻔했으니까.
그래서 이런 상황에선 대개 아무도 사과하지 않는다.
서로 자기 잘못이 아니라며 미루기 바쁠 뿐. 이태오처럼.
잘리는 꼬리가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최재민은 솔직하게 말해줬다.
「“잘못은 다른 사람이 했는데, 엉뚱하게 한 변이 책임지게 되었을 수도 있었어.”
“네.”
“그런데도 했다고? 왜?”
“최 변호사님도 같은 생각을 하신 게 아니신가요? 그래서 미스터 토마스 뮐러를 먼저 만나시려고 한 게 아니신가요?”」
정확하다.
그래서 MG 사(社)의 법무이사 토마스 뮐러를 먼저 만나려고 했다.
어찌 됐든 로펌의 실수. 의뢰인의 원했던 방향으로 행동한 것은 맞지만, 섬세하지 못했던 부분.
KLS 에너지와 MG가 문제 삼지 않도록 그들을 먼저 포섭한 뒤에 유가족을 만나 해결해 보려고 했다.
그 와중에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러려고 했다.
왜?
그가 이 사건의 책임자였으니까.
국제중재팀의 시니어 파트너였으니까.
그런데, 먼저 보낸 한범상이 그걸 다 해버린 것이었다.
“아무튼 웃기는 놈이야.”
최재민의 입에서 감탄 섞인 혼잣말이 새어 나왔다.
띠리링- 띠리링-
파트너 같은 어쏘 덕에 사건이 정리됐다.
자, 이제 사건 관련해서 내부적으로 정리해야 할 일들이 남았다.
시니어 파트너로서 그가 해야 할 일.
-네, 변호사님.
“장 변호사, 오늘 저녁에 약속 있어?”
-아···아니요. 없습니다.
“그러면, 퇴근 후에 한잔 어때? 아홉 시쯤.”
-좋습니다.
“오케이. 그러면 이따가 보자고.”
딸깍.
최재민은 장석훈과 약속을 잡았다.
그러곤, 사내 메신저 채팅장을 열었다.
[재민: 이 변호사님, 지금 잠깐 중회의실에서 뵐까요?] [태오: 무슨 일인데?] [태오: 급한 거 아니면, 이따가 얘기하지. 지금 보고 있는 게 있어.] [재민: 급한 일입니다.]···
그날 저녁, 퇴근 후,
광화문 근처 해장국집.
“여기요. 수육 하나랑 모둠전 하나 주세요.”
“네에-”
주문을 마친 최재민은 먼저 가져다준 소주병을 열었다.
“자, 한잔해.”
“네.”
퇴사하겠다는 후배를 불러 술 한잔하며 달래는 풍습(?)은 어느 직장에나 있다.
로펌도 비슷하다.
하지만, 술잔을 받아 든 장석훈은 살짝 긴장했다.
최재민은 그런 풍습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자기한테 꼭 필요한 후배들은 잘 챙기는 타입이나, 교체가 가능한 어쏘들에 딱히 애정을 쏟지는 않았다.
평소 농담도 잘하고 부드럽게 보여도, 이미 나가겠다고 한 후배에게 환송주 같은 걸 따라줄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그래서, 어디로 가?”
“네?”
“아직 못 정했어? 왜? 오라는 데가 너무 많아서?”
“아···아니요.”
“장 변 정도면 뭐 어디든 환영이지.”
다 같이 하는 회식 자리에서 수고했다고 술을 따라준 적은 있었어도, 이렇게 단둘이 마신 적은 2년차 때인가, 3년차 때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칭찬에 박한 사람인데···
장석훈은 분위기가 어색했다.
“미안해.”
“네에?!”
“내가 신경을 좀 더 써줬어야 했는데.”
“아···아닙니다.”
“장 변도 눈치챘겠지만, 솔직히 나도 내 앞가림하느라고 정신이 없었어. 유학까지 다녀왔는데도 이런 술자리 한번 마련하지 못하고. 미안해.”
“아닙니다.”
의아했다.
‘왜 이러시는 거지?’
술을 마실수록 풀리는 게 아니라 더 긴장됐다.
혹시라도 말실수할까, 장석훈은 정신을 바짝 차렸다.
사표는 썼지만, 함부로 할 수 있는 선배는 절대 아니다. 좁은 업계에서 최재민 같은 사람과 척을 져서 좋을 게 하나 없다.
그런데, 소주 두 병이 끝날 무렵, 그런 무서운 선배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을 건넸다.
“장 변호사.”
“네.”
“그 결정 번복할 수 없는 건가?”
“네?”
“나는 장 변이 가지 않았으면 좋겠네.”
“아···”
“팀이 정신없는 상황에서 이런 말 하는 게 미안한데, 그래도 장 변이 우리 팀에 있어 줬으면 좋겠어서. 뭐, 이미 사인한 거면 어쩔 수 없고. 근데, 아직 결정된 게 아니라면, 붙잡고 싶어서 오늘 한잔하자고 한 거야.”
“······.”
“변호사님······.”
“내가 지분 파트너도 아니고 이제 막 팀을 맡아서 장 변한테 딱히 뭘 약속해 줄 수 있는 건 없는데, 그래도 내가 그리는 그림에 장 변이 있었어. 그래서 나간다고 하니까, 한편으로 서운하고, 그러면서도 내가 부족한 부분이 있었던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변호사님···.”
“같이 8년 가까이 일한 선배로서 그건 말해주는 게 맞지 않나 싶어서, 오늘 한잔하자고 한 거야.”
언제나 날카롭고 실력 좋은 선배 변호사.
배울 게 많은 선배라는 생각은 늘 갖고 있었고, 퇴사를 통보한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없다.
다만, 믿고 따를 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회의감이 한편에 늘 있었는데···
처음이었다.
최재민의 이런 모습.
번복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