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2)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2화(12/190)
【012화 – 한범상이라는 작은 돌멩이】
같은 시각,
도대기는 한범상을 불렀다.
“점심 이후에 12층 국제중재팀으로 가면 자리가 마련되어 있을 거야.”
“네, 알겠습니다.”
사람이 샤프해졌다.
살이 좀 빠진 건가?
면접 때하고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무슨 기대를 하고 국제중재가 해보고 싶다고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해보고 싶은 거라면 적극적이어야 할 거야.”
“넵.”
“일이 많아서 가만히 있어도 책상 앞에 일이 척척 쌓이는 해상팀하고는 달라.”
“명심하겠습니다.”
국제중재팀은 변호사 120명의 대형팀이다.
같은 로펌이라고 해도 파트너 변호사만 4명 있는 해상팀하고는 판이하게 다른 스타일로 돌아간다.
무엇보다도, 그 120명 중 80명이 외국 변호사(외국법률 자문가)이고, 나머지 40명의 국내 변호사 역시 대부분 미국이나 영국 변호사 자격을 갖추고 있다.
한범상 같은 이력의 변호사는 당연히 들어갈 수도 없거니와 운 좋게 들어간다고 해도 치일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최재민에게 연락했다.
다른 파트너들은 거절했거나 마지못해 수락했다 한들 그림자 취급할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권력 지향적이고 능글맞은 최재민은 적어도 관심을 보일 거라는 걸 알았다.
어찌 보면 백인찬하고는 180도 다른 부류의 변호사.
궁금하기도 했다. 최재민은 한범상을 어떻게 평가할지가.
“열심히 하면 일을 주는 타입이니까, 많이 배울 수 있을 거야.”
“네.”
“그래도 말조심하고. 뭐가 됐든 자네가 그 팀에 있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뭐가?”
“기회를 주셔서요. 따뜻하게 조언도 해주시고···.”
“조언 아니야. 주의지.”
“주의하겠습니다.”
“가봐, 그럼.”
“넵!”
말은 차갑게 했지만, 조언이 맞다.
도대기는 평소 인턴이나 신입 변호사에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해상팀으로 가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살아남는 게 어려운 로펌에서 괴짜였든 간에 백인찬 급 파트너에게 간택(?)당하는 것 자체가 사실 드문 일이니까.
그리고 국제중재팀은 다르다. 변호사층이 두터운 곳이다. 1년차, 2년차, 3년차, 4년차···10년차, 15년차 겹겹이 쌓여있다.
그런 곳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을까?
그래서 해줬다,
조언.
그 정도는 알고 있어야, 나올 때 나오더라도 사건이라도 하나 경험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
“안녕하십니까, 변호사님. 한범상입니다.”
예고된 대로, 점심 직후, 신입 변호사가 방으로 찾아왔다.
하영은 재민을 대신하여 그에게 국제중재팀에 관한 간략한 오리엔테이션을 해주었다.
“정 대리님이 중재팀 폴더 패스워드랑 자료들 어디 있는지는 알려주셨죠?”
“네.”
“파일들이나 기록은 정 대리님이나, 정 대리님이 안 계시면 다른 비서분들에게 물어보시면 알려주실 거예요. 필요한 텍스트북이나 판례집들은 회의실하고 사무실 공용책장에 보관되어 있고요. 없으면 변호사님들 방에 있을 수도 있어요. 가져가서 보시고 안 돌려놓으시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까. 웨스트로 계정 비번은 받으셨어요?”
웨스트로(Westlaw)는 온라인 법률 데이터베이스로 렉시스넥시스(LexisNexis)와 함께 영미계 변호사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리서치 도구이다. 영미 쪽 판례나 논문, 공공 기록 등을 찾아야 할 때 사용한다.
“해상팀에서 일할 때 받았습니다.”
“아니요. 그걸 쓸 수는 있겠지만, 원칙적으로 팀마다 따로 구독하기 때문에 이제 국제중재팀 로그인 아이디랑 패스워드로 들어가셔야 해요.”
별산제. 매출과 지출이 팀마다 각각 산정된다. 같은 지붕 아래 있지만 오히려 협력사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아, 그렇나요?”
“그것도 정 대리님에게 물어보시면 알려주실 거예요.”
“알겠습니다. 확인하겠습니다.”
이름처럼 평범했다.
딱히 비범함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뭔가 있으니까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있었겠지 여겼다.
근데, 첫인상에서는 별반 느껴지지 않았다.
최재민 변호사와 같이 일하는 변호사들 방을 돌며 신입 변호사를 소개해 준 하영은 방으로 돌아가기 전, 범상에게 물었다.
“더 궁금하신 거 있으시나요?”
“네. 혹시 실무 관련해서 추천해 주실만 한 책들이나 논문 같은 것들이 있을까요?”
“네?”
“학교에서 국제중재 코스도 듣고 모의 중재도 해보기는 했는데, 사실 그것 이외에는 경험이 없어서요. 혹시 실무 관련해서 봐두면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이 있으면 알려주십시오. 교과서도 좋고 논문도 좋고. 아, 만화책같이 가벼운 것은 더 좋고요.”
그래도 독특한 부분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석광현 교수님 책들은 보셨죠?”
“네, 봤습니다.”
“김갑규 변호사님 책도 보셨을 거고.”
“법무법인 대서양의 김갑규 변호사님 말씀이시죠?”
“네.”
“봤습니다. <중재실무강의>.”
“그 정도가 단데. 뭐, 옥스퍼드에서 출판한 <프랙티셔너즈 핸드북 온 인터내셔널 커머셜 아비트레이션(Practioner’s Handbook on International Commercial Arbitration, 국제상사중재 실무자들을 위한 안내서)>정도 미리 읽어보는 것도 저한테는 도움이 많이···.”
“프랭크-번드 위갠드 변호사님이 집필하신 거 말씀이신가요? 읽어봤습니다!”
언급한 교과서들은 유명한 서적들이다.
국제중재 변호사들치고 안 읽어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신임 변호사가 그것들을 다 읽어봤다고?
그런 신임은 많지 않다.
범상을 보던 하영의 눈빛이 살짝 달라졌다.
“제가 아는 건 그 정도뿐이네요.”
“아, 그런가요. 사실 세 번씩 읽어봤는데 제가 실무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뭔가 눈에 잘 그려지지 않아서요. 혹시 도움이 될 만한 게 있나 해서 여쭤봤습니다.”
‘세 번씩 읽어봤다고? 진짜?’
그녀도 그렇게까지 읽어보진 않았다.
“저도 배우고 있는 처지라서요.”
“아, 알겠습니다. 혹시 시키실 일이나 조언해 주실 일이 있으면 언제든 불러주세요.”
“변호사님도 궁금하신 게 있으면 언제든 노크하세요. 메신저로 물으셔도 되고요. 일한 지 고작 2년 됐지만, 제가 아는 거면 알려드릴게요.”
“네, 고맙습니다.”
“일단 제가 최재민 변호사님이랑 하는 사건들의 파일 번호를 알려드릴게요. 중재팀 폴더에 가면 기록들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종이 문서 기록은 정 대리님한테 부탁하시면 가져다줄 거고요. 보고 계시면 아마 최 변호사님이 일 주실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오리엔테이션을 마친 하영은 인사를 하고 나왔다.
최재민이 번역을 맡기라고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
외부 미팅이 늦어졌다.
원래는 회사에 들렀다 나오려고 했던 최재민은 미팅 장소에서 동기들 모임이 있는 자리로 곧바로 갔다.
“어이, 최 프로. 늦을 것 같다더니 일찍 왔네?”
“그렇게 됐어. 강남 쪽에 있던 미팅이 늦게 끝나는 바람에 회사 안 들르고 바로 왔어.”
“아우- 회사에서 인정받는 변호사라 신수가 훤해.”
“그러는 너는 얼굴이 왜 그러냐?”
“내 얼굴이 왜?”
“술 좀 그만 마셔. 얼굴이 까매.”
“이 새끼가 진짜···야, 요새 공치러 다녀서 그래, 인마.”
“그럼, 선크림을 발라. 피부암 걸려.”
친하다.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만나는 그룹
김앤강에 같이 입사했다가 다른 로펌으로 옮긴 동기들도 있다.
원래는 초창기에는 도대기도 같이 참석했었다.
어떤 모임이든 세월이 지나면 작아지는 법.
딱히 사이가 틀어져서라기보다는 모임 자체를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대기는 그런 부류였다.
주식, 부동산, 업계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동기들은 토픽이 끝나갈 때쯤 ‘강태산 변호사의 낙하산’을 꺼냈다.
“아, 맞다. 강태산 변호사가 니네 회사에 외국 변호사 한 명 꽂았다며?”
“서자라는 소문이 사실이야?”
“누구야? 박사님은 아무 소리 없고?”
경영 승계 이야기는 남의 집 불륜 이야기와 비슷하다.
딱히 나하고는 상관없어도 궁금하다.
“소문이 거기까지 난 거야?”
“김앤강이잖아. 강태산 변호사고.”
일반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변호사들에게는 재벌가 총수만큼이나 관심의 대상인 사람.
그러니 날 수밖에.
“그래서 진짜 서자야?”
“서자는 무슨···.”
“그런데 어떻게 들어갔어? 뭐가 있으니까 들어갔을 거 아니야.”
“서명대라며?”
“응.”
“들어갈 수 없는 스펙인데 뭐. 그럼, 뭐가 있는 거지.”
“나도 몰라.”
“모르는 거야? 모르는 척하는 거야.”
정말 모른다.
“도 변이 뭐 알려준 거도 없어? 리크루트팀이잖아.”
“없어.”
“야, 도대기가 안다고 뭐 누구한테 알려줄 성격이냐.”
“하긴.”
“진짜 뭐야. 서자도 아니면. 강태산 변호사님 완전 독고다이 외톨인 줄 알았는데, 그런 게 아닌가. 뭐 은인의 아들 그런 건가?”
“드라마를 써라.”
“아무튼 다들 별로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묻기는.”
“우리야 뭐 김한 변호사님 포함해서 김앤강 내부 반응이 궁금한 거지. 박재록 변호사님이나 다른 변호사님들은 아무 소리 없고?”
그거다.
낙하산이 누군지가 궁금한 게 아니라.
낙하산에 대한 로펌 경영진의 반응이 궁금한 것이다.
무심코 떨어진 작은 돌멩이 하나가 일으킬 드라마틱한 전개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국제중재팀의 메커니즘
중재란 무엇인가?
법원에 갈 분쟁을 다른 곳에 가서 결판내는 것이다.
굳이 왜 그러냐고?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역시나 비용이다.
소송은 비싸다.
그러면 중재는 싸냐고?
그 대답은 어느 나라에서 소송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지만, 평균적으로 봤을 때 중재 절차가 소송보다 저렴하다.
두 번째 이유는 시간이다.
사실 이 두 번째 이유는 첫 번째 이유와 연관이 있다.
절차가 빠르면 그만큼 들어가는 비용도 줄어드니까.
중재는 빠르냐고?
그에 대한 대답 역시 어느 나라 소송과 비교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지만, 평균적으로 봤을 때 중재 절차가 소송보다 신속하다.
자, 여기까지 봤을 때, 아니 그러면 다들 중재를 하지 왜 소송을 하냐고 물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놀라실 분들도 있겠지만, 다른 OECD 나라들에 비해 대한민국의 민사 절차는 비싸지 않다.
물론 소송가액에 따라 내야 하는 인지대 등 비용들이 제법 있지만, 일부만 청구한 후 나중에 증액하는 방식으로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도 있고, 아무튼 대한민국 정부가 제공하는 다른 공공서비스들처럼 타국에 비해 저렴하다. 어쩌면 제일 저렴할지도.
속도 관련해서도, 대한민국의 민사 절차는 다른 OECD 국가의 민사 절차보다 신속하게 진행된다. 3~4주마다 기일을 잡는 스케줄로 분쟁을 처리 해주는 법원이 세계에 많지 않다.
판사에게 사건들 빨리 쳐내라고 닦달하는 나라이다.
중재 절차가 법원 소송보다 조금 더 빠르게 진행될 순 있어도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중재는 참 계륵 같은 절차이다.
세계적으로 대세라서 버릴 순 없지만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는 메리트가 없는 절차.
그게 대한민국 중재 기구들이 싱가포르나 홍콩에 있는 센터들처럼 커질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국내 소송절차가 비용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봤을 때 더 효율적이어서 국내 기업들도 이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기업들과 거래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소송보다 중재를 선호하는 세 번째 이유는 바로 신뢰도다.
미국 기업과 한국 기업이 어떤 거래를 위해 계약서를 작성하려고 한다고 가정해 보자, 당연히 미국 기업은 분쟁 해결 관할권을 미국 법원으로 하고 싶을 것이고 한국 기업은 한국 법원으로 정하고 싶을 것이다.
비용과 시간적인 측면에서도 그게 유리하니까.
하지만, 그 두 가지 측면을 차치하더라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하나가 있다.
바로 해당 국가 법원의 공명정대함이다.
한국 법원이 한국 기업의 편을 들지 않을까?
미국 법원이니까 미국의 편을 들지 않을까?
대놓고 편을 들지는 않더라도 어떻게든 자국 기업에 유리하게 판결하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질문들의 정답이 뭔지 궁금해할 필요는 없다.
그러한 의구심이 든다는 것만으로도 선택에서 제외되어야 하는 것이니까.
의심스러운 배심원을 배제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국제 상거래에서 중재가 선호되는 것이고, 김앤강에서 120명이나 되는 외국법 전문가들을 뽑아 국제중재팀을 꾸린 것이다.
하지만 ‘주니어 파트너’ 최재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 30명 정도만 진정한 팀원일 뿐, 나머지 90명은 익스펜더블(expendable), 언제나 교체될 수 있는 소모 인력이다.
“한범상 변호사? ”
“안녕하십니까. 한범상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팀원과 익스펜더블을 나눌까.
학벌? 출신? 인맥? 로열티?
최재민은 지금부터 그걸 확인해 보려는 중이다. 한범상이 팀원감인지 아니면 나머지 90명과 같은 익스펜더블인지.
“나는 최재민. 만나서 반가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