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20)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20화(120/190)
120화 다 계획이 있구나
선배 성일용의 바통을 이어받으려고 했다.
조금 구식이기는 해도 김앤강의 국제중재팀이 이렇게나 성장할 수 있었는 데에는 그의 방식이 통했다고 볼 수 있으니까.
최대한 끌어안으려고 했다.
이미 열 명 가까이 되는 경력자들이 퇴사한 상황이었기에, 부족한 인력이 채워질 때까지는 웬만한 실수는 눈감아주고 달래가면서 이끌렸고 했다.
“뭐라고? 지금 뭐라고 그랬어?”
“어쏘들의 미시간 출장비 포함해서 이번 일로 쓴 시간들을 연말 변호사님 성과급에서 공제하겠다고 했습니다.”
최재민은 마음을 바꾸어 먹었다.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어차피 뭘 해줘도 자신을 믿지 않을 거라는 진리를 깨달았다.
그들을 끌어안겠다고 짚고 넘어가야 하는 잘못까지 묵인하게 되면, 묵묵히 일하는 팀 내 변호사들의 신뢰까지 잃게 될 거라는 판단이 섰다.
“하하하. 참나- 누구 맘대로?”
“제 결정입니다.”
시니어 파트너라고 함부로 사람을 내보낼 순 없다.
어쏘도 아니고 파트너를 내보내기는 더욱이.
‘너, 나가.’ 한다고 ‘예, 알겠습니다.’ 하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진 않다.
어떻게 보면 근로기준법으로 보호되는 사무실 직원들보다 쉽다고 할 수도 있다.
특히나 이태오처럼 뭐가 많이 묻은 사람이라면.
“최재민!”
“불만이 있으시면, 대표 변호사님한테 가서 말씀하시든지요.”
추행이나 희롱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어쏘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할 수 있다고 해도 타이밍을 놓쳤다.
하지만, 업무태만은 다른 문제.
한 달 반씩이나 ‘사랑의 도피’를 다녀온 이태오는 입에 두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게다가 이번 녹음 사건은 누가 봐도 그의 잘못.
전 시니어 파트너 성일용이 보호해 줘서 넘어간 거지, 다른 팀 같았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야, 너,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정말 이렇게 나올 거야?”
솔직히 일 잘하는(?) 변호사라는 평이 있기는 했다.
잘 생기고, 말주변 좋고, 수완 좋고.
실수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일 처리가 능동적인 인물.
그래서 인기도 많고.
KLS 에너지 사건도 처음에는 그에게 맡겨진 것이고.
그렇다고 자기 멋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이면 큰 착각이다.
근로기준법상, ‘업무태만’만으로 근로자를 무작정 자를 순 없다.
법무법인의 소속 변호사는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판례는 많다. 심지어 구성 변호사로 등기되어 있다고 하더라고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하고 있다면 근로자의 지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판결도 있다.
그 관점에서 ‘주니어 파트너’인 이태오는 근로자가 맞다.
함부로 해고할 수 없다.
“조용히 나가시면 내부적으로 정리하고요.”
“뭐?!”
“시끄럽게 하시면, 어디 다른 데서 일하기 힘드실 거예요. 적어도 대형에서는.”
법이 그렇다고 해도, 변호사는 사실상 근로기준법 외 직군이다.
애초에 김앤강이라는 조직 자체가 그러하다.
“이 새끼가 어디서···. 야! 최재민!”
이태오의 고성이 회의실 밖으로 흘러나왔다.
내용까지 들리지는 않아도 짬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충 무슨 일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얼굴이 새빨개진 이태오가 회의실을 박차고 나온 순간, 짐작은 공식화된다.
이태오는 바로 다음 날부터 사무실에 나오지 않았다.
변호사는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이라고 얘기했던가?
그렇다고 그렇게 다 내팽개치고 출근하지 않는다니···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바뀌지 않는 인간들이 있다.
일을 잘한다고 평이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다.
아무튼 그런 돌발 행동은 주목을 끌고, 소문을 양산하는 법.
최재민과 면담 직후 이태오가 출근하질 않자, 시니어 파트너 자리에 올라간 후배가 선배들한테서 사건들을 빼앗고 내쫓는다는 말이 돌았다.
다음 대상은 누가 될 거라며 수군댔다.
이정후와의 딜이 그거였다는 억측까지 나돌았다.
안 좋은 여론.
최재민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 말들이 돌 줄 모르고 한 행동이 아니었다.
솔직히 얼마 전까지는 두려웠다.
어수선한 상황에서 일찍 찾아온 기회, 능력이 있어서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라 ‘윗분들’ 권력 싸움 끝에 어부지리로 올라왔다는 평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최대한 현상 유지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근데, 그게 답이 아니었다.
이태오 사건이 터지기 전부터 이미 저런 말들은 나돌고 있었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실력을 증명해 내야 하는 것.
애초에 성일용과 함께 떠나지 않고, 이곳에 남기로 한 건 최재민의 국제중재팀을 만들기 위해서였고,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한범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재민은 자신에 주어진 권력과 책임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돌아봤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지도.
곁에 둬야 하는 사람은 붙잡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과감하게 쳐내야 한다.
쉽지 않은 일.
그렇지만 그 일은 권력이자 동시에 책임이다.
능력 좋은 후배의 멋진 세이브를 헛되이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낭비해서는 안 되었다.
결국 그 사람이 정말 필요했던 사람인지 아닌지는 그 사람이 사라지고 나면 알 수 있다.
최재민은 확신했다.
당장은 말이 돌아도, 이태오를 아쉬워할 사람은 없을 거라고.
【120화 – 다 계획이 있구나】
늦은 시각,
사무실 근처 참치전문점,
최재민은 도대기를 불러냈다.
목이 말랐는지, 참치가 나오기도 전에 소주 한 병과 맥주 세 병이 사라졌다.
“장석훈 변호사랑 한잔했다면서?”
최재민은 나간다고 한 어쏘의 마음을 돌렸다.
연봉을 올려준다고 한 것도 아니었고, 새로운 걸 약속한 것도 아니었다.
잘해줘서도 고마웠다고, 좀 더 같이 일하고 싶었다고 말했을 뿐이었다.
“아무튼 이놈의 사무실은 소문 하난 빨리 돌아.”
때론 그런 말 한마디가 모든 걸 다 해결해 줄 때가 있다.
“그런 소문 나는 게 싫으면 멀리 가서 마시든가. 사무실 근처에 있는, 그것도 유명한 해장국집에서 술을 마시면, 누가 볼 거라는 생각은 안 했어?”
“거창하게 자리를 만들면 계산적일 것 같아 보일까 봐서 그랬어.”
“그 말이 계산적이었다는 뜻이네.”
“그래, 계산적이었다. 왜? 그럼, 어떡해? 나가지 말아야 할 사람은 나간다고 하고, 정작 나가야 할 사람들은 뻔뻔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가뜩이나 위에서는 저 새끼 어떻게 하나 눈을 켜고 지켜보고 있고.”
그나마 동기 앞에서는 속내를 드러내 보일 수 있다.
“그럼, 올라가면 쉬운 줄 알았어?”
“안 쉬운 줄 알았어. 안 쉬운 줄 알았지만, 위가 아니면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어. 도 변도 알잖아? 어떤 상황이었는지.”
잘 안다. 나가기 전에 자신을 찾아왔었던 최재민이었으니까.
말은 담담하게 했지만, 사실 도대기는 내심 감탄하고 있다.
사건 다루는 실력이 있는 줄은 알았지만, 100명이 넘는 변호사들을 관리하는 시니어 파트너는 사건만 잘해서 올라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해상팀 백인찬 변호사만 봐도 알 수 있다.
제아무리 소송을 잘해도 사람을 다루는 능력이 없으면 절대 큰 팀을 이끌 수 없다.
그리고 그런 리더쉽은 단순히 능력만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노하우가 축적되고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어야 나올 수 있는 것이었다.
요 몇 달 사이 최재민의 모습이 많이 바뀌었다.
더 이상 권력 지향적인 주니어 파트너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
김앤강의 인사를 책임지고 있는 리크루트팀 도대기의 평가였다.
“이태오 변호사님 나간다며?”
“사실상 나갔지 뭐. 나오지도 않는데.”
“계획은 있고?”
“계획은 늘 있지.”
일은 늘어나는데, 사람은 줄고 있다.
그런데도, 자신만만하게 계획이 있다고 말하는 최재민.
도대기는 누구 영입할 인재가 있다고 얘기할 줄 알았다.
그래서 자리를 마련한 줄 알았다. 영입할 수 있게 리크루트팀에서 좀 도와달라고.
“뭔데?”
그게 아니었다.
“한범상과 도하영.”
“뭐?”
“내 계획은 한범상과 도하영.”
도대기는 최재민은 물끄러미 쳐다봤다.
농담을 잘하는 인물이라, 그냥 하는 소리인가 하고 봤다.
그런데, 다음 말이 없다.
아끼는 어쏘들(그중 한 명은 도대기의 조카)을 한번 추켜세우기 위해 그냥 뱉은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의도였다면 그다음에 스카우트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데,
다음 말이 없다.
“고작 어쏘 둘이 계획이야?”
“음음. 그냥 어쏘 둘이 아니야.”
최재민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가며 대답했다.
“한범상과 도하영이지.”
그 모습이 어찌나 거한지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술에 취하면 종종 그런 모습이 나오는 최재민이기는 했어도, 둘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눈에 보일 지경이다.
“취했어? 왜 그래?”
“두고 봐. 둘이 분명히 사고 친다.”
“사고 치면 안 되지. 사고 쳐서 이 사달이 났는데.”
“그런 사고 말고.”
도대기는 농담이었는데, 최재민은 아니었다.
“솔직히 우리도 모르잖아. 김 변호사님이랑 강 변호사님 두 분 다 일선에서 물러나셨고, 그 밑으로 계신 분들도 연세가 적지는 않잖아. 지금이야, 다들 목에 힘주고 계시지만, 10년 뒤, 20년 뒤에는 사무실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잖아.”
“물러나신 건 맞아?”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그렇잖아.”
“그래서? 10년 뒤, 20년 뒤에는 한범상이 거기 있을 거라고?”
“왜 자기 조카는 빼?”
“그래서 둘이 김앤강의 주인이 될 거라는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최 변호사가 그 자리에 올라가고 싶은 거 아니었어?”
“10년 뒤에는 나와 도 프로가. 20년 뒤에는 우리 한 변이랑 도 변이. 뭐, 그러면 좋겠다- 그런 말이지.”
도대기는 최재민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오히려 어쏘 시절에는 더 쉽게 할 수 있는 말.
지금은 조심스러운 말.
사실 로펌 변호사들이라면 꿈꾸는 게 있다. 네임드 파트너(Named partner). 자신의 성(姓)이 사무실 이름에 추가되는 것.
아직 취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술기운에 기분이 업된 건 사실인 듯하다.
“취했네.”
“어때, 도 프로? 도 프로도 원하지 않아? 그러니까, 그 성가신 리크루트팀 업무도 몇 년씩 맡고 있는 거잖아. 근데, 좀 지겹지 않아? 그 정도면 경영수업은 충분히 한 거잖아. 누구 물려줄 때 안 됐어? ”
“일단 국제중재팀이나 잘 꾸리지? 당신 코가 석 자인 거 같은데.”
“계획이 있다니까.”
“한범상과 도하영?”
“그리고 도대기.”
?
“그건 또 뭔 소리야?”
“어때, 도 프로? 나랑 같이 국제중재팀 하지 않을래?”
취하지 않았다.
계획이 있었다.
-*-
다음 날,
센터게이트빌딩 12층,
최재민의 방.
똑똑-
“부르셨다고···.”
“어, 들어와, 도 변호사.”
출근 시간이 조금 지난 시각, 재민은 하영을 불렀다.
“바쁘지?”
“괜찮습니다.”
할 얘기가 있다.
“유학 준비 때문에 정신없을 텐데.”
“···.”
“그래서? 어디 넣었어?”
“예? 아···이곳, 저곳···.”
준비만 하고 있는, 넣지는 않고, 그런 상황···
“추천서 같은 건 필요 없나?”
“네?”
“하긴, 도 변 정도면 사무실 추천서 같은 건 필요 없겠지. 입사 때 제출한 성적표 보니까, 성적이 장난이 아니던데. 예일대 로스쿨 졸업했을 때 숨마쿰라우데였던가?”
「숨마쿰라우데(Summa cum Laude: 수석 졸업).」
“아, 네···.”
하영은 말꼬리를 흐릴 수밖에 없다.
언젠가는 말해야 하는데.
사건 때문에 바빠서 못했다고.
근데, 입이 안 떨어진다.
되도록 추가로 일을 안 주려고 했던 사실을 잘 알기에.
다행히도, 그럴 필요가 없게 된다.
“도 변.”
“네, 변호사님.”
“내가 정말 미안한데.”
“네.”
“도 변 유학 말이야. 한 해만 미루면 안 될까?”
“네?”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내년에는 보내줄게.”
“내년에는 한 변호사님···.”
“한 변도 보낼 거야. 그러니까, 나한테 1년만 더 시간을 줘. 미안해.”
아
싸.
모든 것이 계획한 대로 될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