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21)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21화(121/190)
121화 돌이킬 수 없는 결정
2017년식 지프 랭글러 루비콘 언리미티드 에디션.
“마일리지는 있지만, 관리를 잘해서 앞으로도 10만 킬로미터는 거뜬할 거야. 좋은 차야. 힘 좋고, 튼튼하고.”
오렌지색 페인트칠이 되어 있었지만, 색상과 달리 투박하고 단단해 보였다.
보디 밖으로 튀어나온 우락부락한 네 바퀴 위로 30cm가량 붕 떠 있는 몸체는 물웅덩이 몇 개쯤 우습게 건널 듯싶었다.
“시 운전을 해볼 수 있을까?”
“물론이지.”
크하하하항- 크르르르릉-
지프차는 날카로운 시동 소리를 낸 후 으르렁댔다.
배기음이 크다.
“내가 손 좀 봤어. 멋지지?”
“조금 멀리 가봐도 될까?”
“멀리? 오케이.”
“비포장도로로 가봐도 돼?”
“당연하지. 그러려고 사는 차인데.”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승차감이 좋은 차가 아니라는 걸.
시트는 딱딱했고, 핸들링도 무거운 편이었다.
대신 힘이 좋았다.
반쯤 찌그러져도 굴러갈 것 같은.
6.4-리터 헤미 V8, 4WD.
내가 찾고 있던 차였다.
“어때? 끝내주지 않아?”
“그래서 얼마라고?”
“이만 팔천.”
“이만 이천 달러에 주면 지금 당장 전액 현금으로 결제할 수 있는데.”
“와-앗? 노노. 절대 안 돼.”
“절대로?”
“절대로.”
“쩝, 그럼, 아쉽지만···어쩔 수 없네.”
“커몬, 맨- 인터넷 찾아봐. 이 가격보다 싼 매물 찾기 힘들어.”
“알고 있어.”
“그럼, 뭐가 문제야?”
끝까지 28,000달러를 고집했어도 구매할 생각이었다.
이것저것 서류들을 제출해야 하는 중고차 딜러에게 살 수 없는 상황에서 이렇게나 마음에 드는 개인 매물을 찾기는 쉽지 않으니까.
그래도 흥정 한번 해봤다.
예전에 나 같았으면 그냥 줬을 텐데.
변호사 일을 하면서 배운 게 많지만, 그중 실생활에 가장 쓸모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기다려! 이만 오천. 그 밑으로는 절대 안 돼.”
그건 협상력이었다.
“미안해. 가져온 돈이 이만 이천 달러밖에 없어. 보라고.”
“오- 맨- 그 가격에는 절대 못 팔아. 안 돼.”
“정말 안 돼?”
“정말 안 돼.”
“그러면, 지금 나랑 이 차를 몰고 내 스토리지까지 가주면, 거기서 삼천 달러를 더 줄게.”
【121화 – 돌이킬 수 없는 결정】
나 혼자 집을 짓고,
나 혼자 길을 깔고.
해보니까 알겠다.
내가 얼마나 많은 문명의 이기를 누리고 살고 있는지를,
우리가 얼마나 서로에게 도움을 받고 살고 있는지를.
크하하하항- 크르르르릉-
한 번에 끝나는 일은 없다.
그 뒤에도 유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미시간에 몇 번 더 다녀와야 했다.
다행히 MG 측에서 유가족들을 부추긴 현지 변호사를 잘 정리해 놓았기에 추후 협상은 수월하게 마무리될 수 있었다.
이 일로 더는 문제 제기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함께 추가 특별 보상금을 지급했다.
금액이 많을 필요는 없었다. 법적으로 줘야 하는 돈이 아니었기에.
하지만, 추후 복잡한 상황들을 미리 방지할 수 있는 돈.
출장비 포함 법률 비용 등은 청구하지 않는 조건으로 공장 측에서 내기로 했다.
잘 마무리되었다.
“얘들아, 타!”
마지막 미시간 출장 날, 키지지(Kijiji, 미국의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중고차 한 대를 구입했다.
2017년식 지프 랭글러 루비콘 언리미티드 에디션.
오래전부터 오프-로드 차들을 보고 있었는데, 마침 딱 좋은 매물이 눈에 들어왔다.
랜싱에서 조금 떨어진 농장에 사는 사람이었다.
찾고 있던 매물이기도 했지만, 서류 같은 걸 요구하지 않아서 그 자리에서 계약했다.
랜싱에 렌트한 창고까지 배달해 주는 조건으로 25,000달러에 샀다.
나쁘지 않은 거래였다.
“삼준! 사준! 뭐해, 안 타고!”
좋은 차였다.
눈에 띄는 색상, 시끄러운 소리, 그리고 힘.
전주인의 취향이 많이 묻어있었지만, 녀석들과 아공간 세계를 모험하는 용으로 최적합이었다.
“웡! 웡!”
이제 동쪽의 숲을 탐험해 볼 준비가 됐다.
“가자!”
-*-
광화문,
사직빌딩 9층.
화창한 날씨, 여름의 기운이 닫힌 블라인드 사이로 스며들어 오고 있다.
아까부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방주인은 느끼지 못했다.
-KLS 에너지 측에서 추가 보상금은 부담하기로 하고 정리되었습니다.
실력이 있는 놈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수완이 좋을 줄이야.
자리에 올라가 앉아보기 전에는 자리의 무게나 책임을 알지 못한다.
앉혀놓으면 누구나 다 할 것 같아 보여도 그렇지 않다.
물론 운이 좋은 놈들은 있다. 능력이 부족해도, 상황이 좋아 부족한 능력이 드러나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상황이 안 좋을 때는 제일 먼저 드러나는 것이 책임자의 능력이다.
어쏘 시절부터 자질이 보였던 최재민.
밀어주면 언젠가는 시니어 파트너 자리에 앉아있을 놈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잘할 줄이야.
못할 거로 생각해서 앉힌 건 아니었지만, 너무 잘 해내고 있다.
상황이 좋지 않은 데도 말이다.
-출장비와 법률 비용은 중재팀 매출에서 정산하겠습니다.
이정후는 최재민이 내심 삐끗하기를 기대했다.
회사가 안 되기를 바르는 게 아니라, 점점 더 자기 손에서 벗어나고 있는 듯한 이 상황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하늘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여겼는데···
발밑에 있던 구름이 어느새 다시 머리 위에 떠 있다.
“그럼, 사무실에서 신경 쓸 일이 없겠네.”
“최재민이 잘 해결했네요.”
“싹이 보이더니 능력이 있네. 아- 도대기 변호사가 국제중재팀에 합류한다고 하던데.”
어디서부터 잘못 둔 수일까.
성일용을 내치려다가 이렇게 되었던가?
성일용이 아람코를 욕심내었기에?
애초에 아람코는 어떻게 들어온 거지?
김한이 최재민을 불렀다.
능구렁이 같은 양반.
사무실 운영에 관심 없는 척하면서도 다 보고 있다.
‘김’이고 ‘강’이고 다 그래왔다.
이제 막 시니어 파트너가 된 변호사가 두려운 건 아니지만, 돌아가는 판이 신경 쓰이는 건 사실이다.
쥐고 있던 보물이 손가락사이로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띠리링- 띠리링-
이정후는 누군가에 전화를 걸었다.
오랫동안 저장되어 있던 번호, 하지만 최근 십 년간 통화한 적이 없던 사람.
띠리링- 띠리링-
-여보세요.
“석 변호사, 나야.”
법무법인 이재의 대표 변호사,
석윤재.
-*-
강남의 한 술집,
노태규는 남영수를 만났다.
둘 다 한때는 김앤강에 속했던 변호사들.
지금은 아니다. 한 명은 법무법인 광종의 변호사고, 한 명은 금융위 산하 한국자산관리공사 비상임 고문이다.
“변호사님, 오랜만 이렇게 술을 따라드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게. 노 변호사랑 마지막으로 마신 게 3년 전인가?”
“아, 기억하시네요. 네, 맞습니다. 3년 전에 정 의원님 취임식 뒤풀이 자리에서 뵙고, 처음인 것 같습니다.”
“세월 참 빨라. 그게 벌써 3년 전 일이고.”
“네.”
현재 법무법인 광종 기업법무팀의 한 파트를 담당하고 있는 노태규는 얼마 전 한국자산관리공사 관련 일로 남영수에게 연락을 취했다.
국유지 관리업무 관련해서 부탁할 것이 있었다.
김앤강에서 내쫓기듯 나왔다고 해서 힘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여전히 나름의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고, 김앤강의 김한 대표하고도 여전히 연락하며 지내는 듯했다.
이정후와의 권력 싸움에서 밀려서 나왔을 뿐이지 커리어가 끝난 건 아니었다.
그럴 리가, 그래도 김앤강의 ‘신선’이었던 사람인데.
부탁을 처리해 준 데에 대해 감사도 할 겸, 노태규는 자리를 만들었다.
“변호사님, 한 잔 더 하시겠습니까?”
“아, 그럴까? 노 프로, 어디 좋은 데 알고 있어?”
“다니던 가게 마담이 이번에 가게를 차렸는데, 한번 가보시겠습니까? 변호사님, 혹시 생음악 좋아하시나요?”
“아- 좋지.”
단둘이 만나서 술을 마셔보니 알겠다.
왜 이정후한테 밀렸는지.
전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빈틈이 있는 사람이다.
일 얘기가 끝나고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보던 노태규는 슬쩍 늘 궁금했던 것을 질문했다.
“그런데요, 변호사님.”
“어- 왜, 노 프로?”
“그 소문이 사실인가요?”
“무슨 소문?”
“그 강태산 변호사님이 꽂은 외국 변호사가 사우디 아람코 일을 받아왔다는 게?”
“사실이야.”
이제는 관련 없는 사무실.
술도 거나하게 마셨겠다, 매혹적인 여성이 무대 위에서 감미로운 목소리로 노래도 부르고 있겠다, 민감할 수 있는 질문에 남영수는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
“아, 사실이었습니까? 아람코는 이정후 변호사님 라인이 아니었던가요? 케이오일이랑.”
“흥, 라인은 무슨. 아니야.”
“아, 그러면, 강태산 변호사님이 알고 있던 경로로···.”
“아니야.”
“아니에요?”
“한범상 그 친구가 김창균 변호사가 하던 베트남 프로젝트 도중에 아람코 관계자를 만났고, 거기서 연이 닿아서 수임하게 된 거였어. 이정후 변호사는 관련이 없어.”
화를 내는 건 아니지만, 억울함이 느껴지는 답변이었다.
노태규는 그만하려다가 질문을 좀 더 했다. 궁금했다.
“아, 그럼, 이정후 변호사님하고는 관련이 없는 거였네요.”
“그렇다니까. 거기하고는 관련이 없어.”
“근데, 그러면, 아람코가 한범상 그 친구를 보고 김앤강을 찾았다고···.”
“그런 거나 다름없지.”
“아—”
노태규는 한범상을 경험해 봤다.
경험이 적다고, 학벌이 초라하다고, 우습게 보면 안 되는 변호사라는 걸 잘 안다.
“자네, 한범상이 그 친구랑 일해본 적이 있나?”
“네, 현진상선 회생 때, 잠깐···.”
“그러면 노 프로도 알겠네. 똑똑한 친구인 거.”
“네, 실력이 좋더라고요.”
“그냥 실력이 좋은 게 아니라고 하던데, 우리 김 프로 말로는?”
“김창균 변호사가 그렇게 말하던가요? 그냥 좋은 게 아니라고?”
“나한테는 아주 극찬하던데. 일당백 하는 변호사라고.”
그래, 인정한다.
딱히 떠올리고 싶은 기억은 아니지만, 인상적인 어쏘 변호사였다.
“네, 잘하더라고요.”
노태규는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할 건 하더라도 변호사 된 지 몇 년도 안 된 어쏘한테 진 것은 별로 기분 좋은 기억은 아니다.
그래서 주제를 돌리려고 하는 순간, 그러한 씁쓸함을 단숨에 날려버릴 정도로 흥미로운 이야기가 남영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신경이 더 쓰이겠지, 흐흐흐.”
신경이 더 쓰인다고?
“누가요?”
“누구긴 누구야, 이정후지.”
“이정후 변호사님이요?”
“노 프로, 자네, 이정후 변호사가 왜 그렇게 한범상이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줄 알아?”
이정후 변호사가 한범상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라고?
아, 그러고 보니까, 몇 년 전, 양호락 변호사한테서 비슷한 푸념을 들었던 것 같다. 이정후 변호사가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시는 것 같다고.
“그거야, 강태산 변호사님의 낙하산이라서 그런 거 아닌가요?”
“그러니까. 강태산 변호사가 내려보낸 낙하산을, 왜 그 잘난 이정후가 그렇게나 신경을 쓰느냐 말이야? 그것도 외국 변호사일 뿐인데.”
“···이정후 변호사님이 왜 그렇게 신경을 쓰는 건가요?”
“궁금해?”
“변호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하하-”
“하하하하- 하하하-”
남영수는 큰소리로 웃었다.
본인이 말을 꺼냈으면 뜸을 들였다.
얼마나 큰 비밀이 있길래.
노태규는 가만히 기다렸다.
그러자, 남영수는 나쁜 짓을 하기 전 흥분한 아이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분 때문이야.”
“지분이요?”
“하하하- 제 눈을 제가 찌른 거지.”
그건 또 무슨 소리지?
“강태산 변호사가 은퇴 발표까지 한 마당에 그런 실력 좋은 낙하산을 떨굴 줄을 자기도 몰랐겠지. 하하하.”
노태규는 여전히 무슨 말 하는지를 모르겠다. 하지만, 남영수의 다음 말에서 눈치챌 수 있었다.
“김한 변호사님 아들이 들어올 때, ‘동업약정서’ 문구를 수정했거든. 그때 그거 반대한 사람들을 앞장서서 입 다물게 한 사람이 이정후야. 흐흐흐흐. 하하하.”
그래서, 강태산의 지분이 한범상에게 갈 수 있다고?
진짜 그런 일이 가능해?
애초에 김앤강이라는 조직 자체가 그러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