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22)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22화(122/190)
122화 갑작스러운 제안
법원의 여름철 휴정기인 이맘때가 로펌의 휴가철이다.
해외 소송과 중재를 주로 다루는 국제중재팀은 그와 상관없다.
센터게이트빌딩 11층, 12층은 ‘열일’ 중이다.
같이 하는 사건 관련으로 소회의실에 모인 하영과 범상.
회의가 끝난 뒤, 아무래도 올해 유학을 가지 못하게 될 것 같다고 설명한 하영은 은근슬쩍 범상에게 물었다.
“한 변호사님은 생각해 두신 학교가 있으세요?”
“아직···.”
“구체적으로 말고라도.”
아람코 베트남 프로젝트에 이어 이번에 다녀온 미시간 출장까지.
사실, 같이하는 사건들이 처음부터 꽤 있었다.
그래도 이번 출장은 조금 특별했던 것 같다.
아주 편해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둘 사이 대화에 불필요한 어미가 사라졌다.
“아— 생각해 본 학교라······ 모르겠네요. 제가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아서···.”
“왜요?”
“성적이 딱히 좋다고 할 수 없어요. 좋은 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고···.”
“그런 거 전혀 상관없는데.”
발끈하는 하영.
미간에 주름까지 잡혀서 화가 난 줄 알았다.
“한 변호사님이 담당한 사건들이 어떤 건들인데요! 지난 4년간 맡은 사건들 리스트만 보내도 될 거예요!”
어찌나 단호한지 다음 말을 하기가 미안할 정도.
범상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항변해 보지만, 통하지 않는다.
“들어보니까, 아무리 경력이 많은 현직 변호사에게 가산점을 준다고 해도, T14 로스쿨들은 출신 학교랑 로스쿨 때 성적을 본다고 하던데···.”
“그걸 다 씹어먹는 경력이라니까요, 한 변호사님은!”
평소와 다른 말투.
범상도 흠칫했지만, 뱉은 본인도 놀랐다.
동생한테 하는 모습이 살짝 나와버렸다.
“저 다닐 때도 그런 분들 계셨어요. 잘 알려지지 않은 로스쿨을 나오셨는데, 7년간 인권변호사 일을 하시다가 들어오신 분도 있었고. 중국 로펌에서 10년 근무하시고 들어오신 분도 있었고.”
예일대 로스쿨에서 석사학위를 이미 취득한 하영.
순간 발끈해서 올라간 목소리를 진정시키며 경험담을 말해준다.
“저는 이제 고작 4년밖에 안 돼서···.”
하지만, 앞에 있는 남자가 자꾸 도발한다.
차분하게 말하려고 하는 걸 방해한다.
“왜 4년이에요. 5년이지. 김앤강 들오기 전에 다른 곳에 1년 있었잖아요. 그것도 포함해야죠.”
“아, 네, 그건 그렇네요.”
“한 변호사님, 이러면 안 돼요.”
“네?”
“이러시면 안 된다고요. 지원서 넣고 1차 합격하면 인터뷰 보는데, 이렇게 자신 없는 모습 보이면 안 돼요. 사건 할 때처럼, 유가족들과 협상할 때처럼! 잘하시잖아요.”
이것은 혼냄인가, 칭찬인가.
당황한 범상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더 자신 없는 모습을 보이기가 민망해질 정도로.
“지원은 해볼 거예요.”
그래서, 용기 내어 말했는데, 앞의 여자는 만족스럽지 않다.
“당연하죠.”
“···네.”
“어디요?”
“일단···”
“다 넣어요.”
“네?”
“제가 도와줄게요.”
“다라면···?”
“T14다. T14 생각해 봤다는 말 아니에요?”
「T14: ‘TOP 14’의 약자로 미국변호사협회 승인 197개 로스쿨 중 티어 1에 해당하는 열네 개의 학교. 매년 순위가 바뀌기는 하지만, 하버드대, 예일대, 스탠퍼드대, 뉴욕대 등은 고정적으로 포함된다.」
“아, 네···그러면 좋은 것 같은···.”
“같이 가요.”
“네?”
“같이 가자고요.”
이렇게 단호한 사람이었던가?
갑작스러운 제안에 살짝 어리둥절했지만, 범상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122화 – 갑작스러운 제안】
“형, 여기요.”
며칠 뒤, 범상은 광화문 근처의 주점에서 나무해운에 근무하는 선배 무열을 만났다.
“미안하다. 많이 기다렸어?”
“아니요. 저야 사무실이 여기인 데요.”
“버스 탈까, 지하철 탈까, 고민하다가 사무실 나오는 데 마침 딱 오는 게 보여서 버스 탔는데, 지하철 탈 것 그랬다. 생각보다 많이 막히네.”
“괜찮아요. 제가 강남으로 가도 되는데, 이쪽으로 와주셔서 제가 고맙죠.”
“바쁜 김앤강 변호사님을 보러 내가 와야지.”
“왜 그러세요. 형도 바쁘시잖아요. 다음에는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 ”
범상도 바빴지만(?), 부장으로 승진한 무열도 바빴다.
지난 몇 년간, 나무해운 창립자인 이남우 회장이 조만간 은퇴하겠다는 말들을 해왔는데, 그 시기가 정말로 가까워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무열이 속한 법무팀 역시 승계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실 판 짜는 거나 계획은 화율에서 다 하고 있고, 우리는 그냥 회장님 비서실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것밖에 없는데. 그래도 분위기가 분위기다 보니까, 정신이 좀 없기는 해.”
“그래도 경영권 다툼 이슈나 그런 거는 없잖아요? 뉴스 보니까, 이미 오래전부터 큰 아드님이 물려받을 걸로 내정돼서 경영수업 받아온 것처럼 이야기하던데.”
“그렇기는 한데, 그렇다고 알력 싸움이 전혀 없는 건 또 아니라서.”
“아-”
“내부 사정이라 자세한 걸 이야기해 줄 수는 없는데···.”
“아니요. 말씀 안 해주셔도 돼요. 그냥, 바쁘신 이유가 그거일 것 같아서 물어봤을 뿐이에요.”
“아무튼 이게 복잡한 문제가 많이 얽혀있어. 장자가 물려받기로 결정됐기는 하지만, 어찌 됐든 둘째 아들이랑 딸한테도 상속은 해줘야 하잖아. 삼전이나 현진처럼 밑에 자회사 하나씩 때주고 끝낼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어쩔 수 없이 지분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아버지가 첫째에게 물려주겠다는 의지를 밝혔다고 해서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말.
그런 시대가 아니다. 설사 형제들이 회장 아버지의 결정을 순순히 따른다고 해도, 상속 재산을 나누는 일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최대 상속세가 50%나 되는 상황에서, 경영에 참여하지도 못하는데 맘대로 팔 수도 없는 지분을 상속받아 세금 부담만 떠안게 되는 걸 바라는 동생들은 없다.
“그렇겠죠.”
“그리고, 이게 복잡해도, 아들이 경영을 잘하면 문제가 없을 텐데, 그분 자질이나 경영 능력에 대해서 말들이 많다 보니까, 이게 더 술렁이는 거지. 쩝.”
사실상 가족 경영체제가 만연한 대한민국 재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제.
지분싸움, 경영권분쟁.
“회사 분위기가 뒤숭숭하겠네요.”
“그렇지 뭐. 근데, 또 우리 같은 월급쟁이들은 누가 됐든 간에 그냥 빨리 승계 마무리하고 안정되기를 바라는 거지.”
“네.”
“너희는 어때?”
“우리 사무실요? 왜요? 우리 사무실도 무슨 문제가 있나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니네 사무실이잖아.”
“저는 그런 거 잘 모르는데.”
“왜 거기 남영수 변호사님 나가시고 성일용 변호사님도 나가시고 한동안 시끄러웠잖아.”
“아- 그렇기는 한데, 들어오는 사건들이 많으니까, 그거 하느라 다들 정신이 없어서, 어쏘들은 딱히···.”
“그렇겠다. 근데, 로펌에는 그거는 있어. 누구를 데리고 들어와 앉히려고 해도, 그게 마음대로 안 되는 거. 김한 변호사님도 실패했잖아. 거기 아들 데리고 왔는데도 안 됐잖아. 그러고 보니, 너는 본 적 있어? 김한 변호사님 아드님.”
김한 대표변호사의 아들 김재후 변호사.
김앤강에 다니고 있다.
“아니요. 저랑은 하는 사건들이 달라서···.”
“하긴, 거기는 국내 변호사지. 아무튼, 로펌은 아들한테 물려주겠다고 해서 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우리 같은 문제는 없겠지.”
틀렸다. 그건 이무열이 김앤강의 <동업자약정> 대해 알지 못했기 때문에 하는 말이었다.
김앤강의 <동업자약정>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런 약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언급된 적은 있었어도 그 내용에 대해선 알려진 바 없었으니까.
“그나저나 너 이제 슬슬 유학 준비해야 하지 않아?”
“어, 형이 그걸 어떻게 아세요?”
“어떻게 알기는 어떻게 알아. 저번에 해상팀 윤상호 변호사님하고 통화할 때 들었지. 너 내년에 유학 가는 거 정해졌다고. 이야- 진짜 대단하다. 4년 차에 유학도 결정 나고. 그것도 외국 변호사가. 그래서, 생각해 둔 데는 있고?”
외국 변호사에게 유학 기회를 주는 건 극히 드문 케이스.
7년 차 때 안식년을 주기는 해도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해 주는 유학은 국내 대형 로펌에서도 흔치 않은 일이었다.
“아직이요. 내년 9월이나 갈 텐데요.”
“야, 지금부터 준비해야 해. 내가 아는 선후배 변호사님들 다 1년 준비해서 가더라. 하긴, 뭐, 너야 영어는 잘하니까, 딱히 그 부분을 준비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보통 10월, 11월에 지원서들 작성해서 내야 하니까.”
나라마다 다르고,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충 일정이 그렇다.
“안 그래도, 회사에 동료 변호사님 중에서 같이 가는 분이 있어서, 같이 보고 있어요.”
“아, 그래? 잘됐네.”
“그래서, 어디? 뉴욕? 캘리포니아?”
질문에 잠시 머뭇거린 범상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보스턴 쪽 케임브리지···.”
“하버드?!”
-*-
삼청동의 한 식당.
한때는 이런 식당들이 골목에 꽤 많았는데,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 건물이 들어서고 현대식 고급 식당들이 들어와 있다.
이 식당은 오래전부터, 김앤강이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을 때부터 이정후가 다녔던 곳이다.
“변호사님, 오셨습니까.”
“아이고, 사장님, 오랜만입니다. 아직도 나오시네요.”
“가끔. 가끔 나옵니다.”
나이가 이정후보다 많은 할머니가 그를 반겼다.
이제는 뉴욕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그의 아들이 가게를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었다.
반가운 얼굴, 간단하게 인사를 주고받은 이정후는 예약된 방으로 들어갔다.
아직 손님이 오지 않았다.
“찬이라도 먼저 내올까요?”
“아닙니다. 오면 그때 주세요.”
이정후가 대답하자, 창업자 할머니는 따뜻한 차가 담긴 주전자와 컵을 두고 나왔다.
큰 방에 혼자 남은 이정후는 후배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많은 생각이 그의 머리를 지나친다.
그러고 보니 이 방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대기업 회장들, 국회의원들, 장관들은, 심지어 대한민국 대통령이 된 사람도 이 방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마치 과거로 여행을 온 것과 같다.
김앤강에 조인하고 얼마 뒤, 김한 그리고 강태산과도 이 방에서 술과 식사를 한 적이 있다.
그때와는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김앤강도 많이 달라졌다.
‘그래도 달라져서는 안 되는 것이 있어!’
‘김앤강’이라는 이름.
가치.
뉴욕의 빅로(BigLaw, 대형로펌)들 중에는 어쏘를 뽑을 때 T14 출신이 아니면, 심지어는 T3가 아니면 아예 인터뷰도 하지 않는 데가 수두룩하다.
왜 그러는 줄 아나.
다들 편견이 심해서? 다들 정치적이고 파벌 중심적이라서?
아니다. 자산이 사람밖에 없는, 구성원이 전부인 로펌이기 때문이다.
다들 자신들이 속한 로펌의 ‘네임’을 ‘네임 밸류’를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노력하는 것이다.
그는 ‘김앤강’이라는 이름에 ‘이’를 붙이고 싶었던 적이 없다.
진심이다.
김앤강이라는 로펌을 최고로 유지하고 싶은 마음뿐.
지난 몇 주간 이정후는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가 내린 결론은···
드르륵-
“석 변호사.”
앞으로 그가 하려는 일로 인해 김앤강이 한동안 시끄럽게 될망정, ‘최재민과 한범상을 반드시 김앤강에서 내보내야 한다.’
이정후는 오랜 앙숙이자 한 때는 후배였던 법무법인 이재의 석윤재를 그 추억 많은 방에서 만났다.
“왜 보자고 하셨습니까?”
데리고 들어올 생각이다.
김앤강으로.
법무법인 이재 전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