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25)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25화(125/190)
125화 함께하고 싶은 사람, 나비 그리고 열매
아공간 속 드넓은 땅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이곳을 인류의 쓰레기장으로 만들면 어떨까?’
처음 이 안에서 기름이 나왔을 때도 가지고 나갈 방법이 있을까 고민해 본 적이 있다.
막연히 생각해 본 것들.
이 안에 홀로 있으면 생각이 많아졌다가 사라진다. 그리고 또 많아진다.
‘아무도 모르게 당첨된 로또 1등처럼 몰래 공유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이 같은 생각도 해봤다.
아공간을 발견한 지 얼마 되지 않을 땐 독점하고 싶었다.
그다음에는 친구와 함께 들어와 같이 놀고 싶었다.
엄마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우리 가족이 풀지 못한 아버지의 행방불명에 대한 실마리 같은 거였으니까. 아버지가 우리를 버리고 도망친 것이 아니라는, 우리는 버린 받은 게 아니라는.
그러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한편 실망스러웠다.
소중한 사람들과 공유하지 못한다는 건 안타까웠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특별한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그곳이 오롯이 나만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 모순적인 안도감이었다.
세상 아무도 모르게 당첨된 로또 1등처럼.
‘간접적으로나마 증명하면, 그래서 믿게 하면, 공유할 수 있을까?’
포털들이 생긴 지금, 우회적으로 증명할 방법들이 없는 건 아니었다.
타인과 있을 때는 아공간의 문이 열리지 않아 직접 보여줄 순 없어도, 베트남에 있는 물건을 몇 초 만에 가지고 온다든지 하면 증명해 낼 수 있을 테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엄마는 거의 동시에 두 나라에 있는 내 모습이 담긴 CCTV 기록 같은 걸 보여주지 않아도 믿어줄 테니까.
그런데,
‘그렇게 해도 공유할 수 없으면?
알려진 순간, 문이 영원히 닫혀버리면?
아공간이 사라져 버리면?’
생각이 거기에 도달하자, 증명에 대한 갈망은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더 이상 엄마에게 아공간의 영상을 보여주려 한다든지 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언젠가는 방법을 찾겠다는 의지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다.
다만, 미뤄두고 있었을 뿐.
그런데,
「한 변호사님, 나중에 저도 한번 보여주지 않으실래요?」
공유하고 싶은 사람이 또 한 사람 생겼다.
방법을 찾아보고 싶었다.
···
아공간 속 동쪽 숲,
목뼈가 부러진 채, 의식을 잃어가고 있던 순간,
마지막으로 떠오른 사람은 엄마도, 아버지도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야옹-
“나비? 어디 갔었어? 걱정했잖아.”
야옹-
사라졌다 돌아온 나비는 내 입안에 무언가를 집어넣었다.
콩알만 한 무엇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게 느껴졌다.
【125화 – 함께하고 싶은 사람, 나비 그리고 열매】
토요일 점심,
광화문 근처의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화장이 짙은 한 여성이 이제 막 식당 안으로 들어온 도하영을 불렀다.
“네사야!”
그녀가 쳐다보지 않고 다른 쪽으로 두리번거리자, 여성은 다시 한번 크게 불렀다.
“버네사!”
그제야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본다.
자신을 부른 여성을 발견한 하영은 그녀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다가갔다.
“언니!”
“이게 얼마 만이야. 잘 있었어?”
“네, 언니는요?”
“왜 이름을 불러도 몰라.”
“아-, 하하, 버네사라는 이름으로 불려본 지 너무 오래됐어요. 언닌 어떻게 지냈어요?”
“잘 지냈지~”
몇 년 만에 만난 학교 선배 수연은 하영을 가볍게 포옹했고, 하영 역시 그녀의 인사를 반갑게 맞이했다.
“서울에는 무슨 일이에요? 휴가?”
“휴가. 일. 겸사겸사.”
“일? 클라이언트를 만나러 왔어요?”
“아니.”
수연은 아리송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영이 깜짝 놀랄 이유일 거라 좀 더 뜸을 들일 생각이다.
“그럼, 왜?”
두 살 터울인 수연과는 같은 대학과 로스쿨을 나왔다.
국내 대학 졸업 후 예일대 로스쿨에 입학한 그녀는 뉴욕주와 워싱턴주 변호사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었고, 뉴욕의 로펌 <앨런 앤 폴>에서 일한 지 근 10년이 다 되어갔다.
한국 기업들의 뉴욕 소송을 가끔 맡기는 했어도, 그녀의 클라이언트는 한국 기업들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다양한 클라이언트 포트폴리오를 가진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무슨 일로 5년 만에 한국에 왔는지 궁금한데, 일부러 뜸을 들이는 것이 보이자, 하영의 호기심은 더 커졌다.
“일단 우리 음식부터 시키자. 나 배고파.”
“알았어요.”
그렇다고 애처럼 재촉하는 하영은 아니다. 기다리면 수연이 말해줄 것을 안다.
하영은 손을 들어 멀찌감치 서 있는 점원을 불렀다.
“뭐 먹을 거예요?”
···
따뜻한 식전 빵이 먼저 나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손을 뻗은 둘은 이스트 향이 물씬 나는 빵을 쪼개 먹으며 주문하느라 잠시 멈췄던 대화를 이어갔다.
“그래서, 토요일인데도 나와서 일하는 거야?”
“언니도 뉴욕에서 그럴 거 아니에요.”
“나? 아니.”
“에이- 동기들 들어보니까, 뉴욕 로펌들도 다 그런다고 하던데.”
“그건 어쏘들이나 그러지.”
“언니, 파트너 됐어요?”
수연은 기다렸다는 듯이 작은 명함 지갑에서 새로 뽑은 명함을 꺼내 하영에게 건넸다.
거기에는 「Partner」라는 직함이 당당하게 박혀있다.
“언니! 축하해요!”
“지분은 없는 거나 다름없어. 그냥 직함만이야.”
“그래도요!”
대단한 것이었다.
시민권이 있는 그녀였어도, 다른 나라에서 고등교육 및 대학을 나온 사람이 천 명이 넘는 뉴욕 로펌 사무실의 파트너가 된다는 건 드문 일이었다.
“진짜 축하해요. 잠깐, 우리 샴페인이라도 한잔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시킬까요, 언니?”
“나중에.”
“언제? 오늘 저녁에 약속 있어요?”
“응. 있어.”
“그럼, 내일은?”
“내일은 친척들 만나야 해.”
“그럼, 월요일 저녁에 볼까요?”
“하하, 월요일엔 뉴욕으로 돌아가.”
“뭐야- 그럼, 지금 밖에 없잖아.”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만나고 헤어진 사람처럼 친한 사이가 있다.
수연과 하영이 그런 사이였다.
“다음에 하자.”
“다음 언제요? 5년 만에 나온 건데···.”
“이번 달 말에 또 들어올 것 같아. 그리고 잘 되면···.”
“이번 달 말에 또 들어와요, 언니? ···응? 잘 되면?”
좀 전까지 뜸을 들였던, 수연은 그제야 한국에 온 이유를 털어놓았다.
“우리 법무법인 지화랑 합작해서 서울에 합동법무법인 사무실 차려.”
법무법인 지화
변호사 수: 850명
연 매출: 3,300억 원
대한민국 로펌 규모 및 매출 순위 5위.
“진짜요?”
십오 년 전, 우려 속에 국내 법률시장이 개방되었다.
국제 시장에 비교해 턱없이 작은 국내 법률시장이 영미계 대형 로펌들에 타격을 입을 거라는 예측이 많았다.
아니나 다를까, 첫해 서울에 사무실을 연 국제 로펌만 여섯 곳이었다.
그 후로 우후죽순 늘어나서 몇 년 전에는 서른여섯 곳까지 되었다.
하지만, 개방 초기 외국계 로펌들은 한국 법률시장을 너무 얕봤다.
서울에 사무실만 차려놓으면, 미국과 유럽 등 해외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그들의 기존 한국 기업 클라이언트들이 당연히 한국 로펌들을 바이패스하고 자기네에게 직접 올 줄 예상했던 것이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국내 로펌들의 경쟁력이 상당했고, 국내 기업들의 로열티 또한 대단했다.
결국 심슨 앤 대처 등 짐을 싸서 나가는 로펌들도 생겨났다.
“그냥 서울에 사무소 하나 내려고 하는 거 아니야. 초기 인원만 서른 명 정도 될 것 같아.”
“와- 많다. 잠깐, 아! 그럼, 언니가 합작법무법인 파트너로···.”
“호홋. 역시 우리 네사는 눈치가 빨라. 아마도 그렇게 될 것 같아.”
보통 해외 로펌 국내 사무소에는 열 명 안팎의 변호사가 고작이었다.
사무소 하나 내려고 하는 게 아니라는 수연의 말은 허투루 하는 게 아니었다.
“근데, 이런 거 나한테 말해줘도 되는 거예요?”
“안 되지. 아직 사인 안 했으니까.”
“걱정 마요. 아무한테도 얘기 안 할 거니까.”
“알아.”
짧게 대답한 수연은 하영을 바라봤다.
뒤에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다.
이 민감한 극비 내용을 하영에게 미리 귀띔한 이유.
그녀와 친해서도 있고, 그녀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더 중요한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얘, 근데 너 연애하니? 왜 이렇게 예뻐졌어.”
일단 운을 띄워났으니, 달 말에 확정이 되면 제안할 생각이다.
“그런, 언니는 마크랑 언제 결혼하는데요?”
“나? 헤어졌어.”
“네에?!”
-*-
월요일 오전,
센터게이트빌딩.
[최재민 님께서 도하영 님과 한범상 님을 초대하였습니다.] [재민: 10분 뒤에 소회의실에서 회의 좀 할까?]메시지를 받은 하영은 범상과 함께 소회의실로 향했다.
파트너 최재민은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아람코 프로젝트를 비롯해 하영과 범상이 같이 배당된 사건들의 파일들이 놓여있다.
하영과 범상이 앉자, 재민은 파일을 하나씩 펼쳐가며 회의를 시작했다.
“먼저 아람코 베트남 건부터 볼까?”
“네.”
“어떻게 되고 있지?”
“지난 금요일에 앤드류 나세르랑 통화했습니다. 부지 선정에 대한 회의는 끝났고, 조만간 1차 협약서 작성이 필요할 거 같다고 합니다. 그리고···.”
파트너의 질문에 대답하는 범상.
하영은 그를 힐끔 쳐다봤다.
평소의 모습과 크게 다른 건 없다.
근데, 분위기가 달라졌다.
딱히 뭐가, 어떻게 달라졌냐고 하면 설명할 수 없는데, 무언가 달라진 것 같다.
“도 변호사, KLS 에너지 추가 합작공장 설립 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
“지난달에 MG 사에 온 수정 제안서 검토한 거 KLS 에너지 윤 부장님에게 전달했고, 그쪽 사업팀에서 검토 후에 코멘트 달아서 조만간 MG 사에 전달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도 변이 MG에 전화해서 조금 늦어진다고 미리 알려줘. KLS 에너지 일이기는 하지만, 이번에 토마스 뮐러가 도와준 것도 있고 하니까, 잘해주자고. MG하고 그런 식으로 직접 하는 커뮤니케이션은 타임 시트에 별도로 기재해. 그건 청구 안 하고 사무실에서 처리할 테니까.”
“네.”
“그리고 말이야···.”
쌓여있던 파일들이 하나씩 다른 쪽으로 옮겨진다.
오래 걸릴 듯싶었는데, 생각보다 금세 끝났다.
할 말을 끝낸 최재민은 이제 어쏘들에게 혹시 놓친 것들이 있는지 물었다.
“혹시 회의해야 하는데 못한 안건이 있어? 아니면, 여기 사건들 관련해서 내가 알아야 하는 보고 사항이라도?”
“없습니다.”
도하영이 먼저 대답했다.
“한 변은?”
한범상은 있다.
“이건 현재 저희가 하는 사건 관련은 아니고요. 지난 금요일 통화 중에 앤드류가 얼핏 언급한 내용인데요.”
“뭔데?”
“아람코에서 LA 토랜스에 정유공장을 인수 검토 중이라고 한답니다.”
“아, 그래? 근데?”
“저희 사무실은 왜 LA에 사무실이 없는지를 묻더라고요.”
“LA에? 왜? 있으면 우리한테 자문이라도 맡기려고?”
“네, 그럴 생각이 있다고···.”
농담처럼 물었는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앤드류 나세르가 한범상을 많이 신임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최재민은 살짝 당황했다.
“앤드류가 동아시아 벤처 담당 아니었어?”
“이번에 베트남-사우디 FTA 협상 조율로 회사 내에서 인정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동아시아 지역뿐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경영에 있어서 자유롭게 의사를 내고 있는 듯합니다. 원래 미국 변호사이기도 하고.”
하긴, 베트남-사우디 FTA가 그만한 일이기는 하지.
최재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LA 사무실은 그의 결정권 밖에 있는 이야기였다.
“알았어. 일단, 그건 좀 더 정식으로 문의해 오면 어찌할지 생각해 보자고.”
“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솔직히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는 모르겠다.
아무리 아람코라고 해도, 하나의 의뢰인을 보고, 해외에 그것도 미국 LA에 사무실을 내는 건 김한 대표나 내릴 수 있는 큰 결정이었다.
“이게 단가?”
“네.”
“이렇게 보니, 둘이 하는 큰 케이스가 의외로 많네. 딱히 일부러 그렇게 만든 건 아닌데. 둘이 내년에 같이 유학을 가면, 빈 공간이 크겠는데···.”
“···.”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일단은 열심히들 해줘.”
“네.”
“예.”
회의가 끝난 줄 알았다.
그래서 노트를 챙겨 일어날 준비를 하는데,
“도 변호사는 가도 되고.”
“한 변은 잠깐만.”
재민이 범상을 남겼다.
“네.”
하영은 리걸 패드를 챙겨 먼저 일어났다.
일어선 그녀의 시선에 범상의 목덜미가 들어왔다.
‘어, 저건 뭐지?’
제법 큰 상처 자국이 와이셔츠 깃 위로 보인다.
‘무슨 상처지? 원래 저런 상처가 있었나?’
하영이 머뭇거리자, 재민은 하영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도 변호사, 혹시 나한테 할 말이 남았어?”
“아, 아니요.”
“그래, 그럼. 나가 일 봐. 한 변하고는 다른 사건으로 회의할 것이 있으니까.”
“네.”
‘아닌데, 없었는데···.’
회의실을 나가는 도하영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한 변호사, 국내 소송팀에서 사건이 하나 들어왔는데 말이야···.”
-*-
같은 시각,
고현대학병원 수술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요, 변호사님. 수술 잘 끝내고 깨어나실 때 옆에 있겠습니다.”
주치의는 마취실까지 찾아와 강태산을 안심시켰다.
이대로 눈을 감으면 다시 눈을 뜰 수 있을지 솔직히 확신이 들지는 않았지만, 강태산은 두렵지 않았다.
완벽했다고 할 수 없는 인생. 여한이 없다고 하면 거짓이겠지만, 그렇다고 미련만 남아 있는 것도 아니다.
뜨거운 마취제가 몸 안으로 들어왔다.
다시는 눈을 못 뜰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 더 정신을 차리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미 그의 의식은 그의 몸을 떠나고 있었다.
‘아!’
그 순간, 27년 전 교통사고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난 한범상의 부친이 쓰러져 있는 그의 입에 콩알만 한 작은 열매를 넣어준 사실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