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28)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28화(128/190)
128화 최애의 어쏘
대한민국 소송은 매우 신속하게 진행된다.
소장을 접수하면 보통 두세 달 안에 첫 기일이 잡히고, 그 후 3~4주 간격으로 변론기일들이 잡힌다.
그렇게 진행된 소송은 대부분 6개월에서 8개월 안에 끝이 난다.
물론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길 수도 있고 복잡한 사안은 더 오래 걸리기도 하지만, 다른 나라, 특히나 영미권 국가들의 소송 절차보다는 훨씬 빠르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는 중재가 매력적인 대안이 아니다.
게다가 해외에서 하는 중재?
더 하기 싫어한다.
왜?
-유 변호사님, 그냥 국내 소송으로 진행하면 안 되나요?
민사소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용이다.
기업끼리의 소송은 특히나 더.
승소 확률이 100%라고 해도 변호사 비용조차 나오지 않는 소송을 제기하고 싶어 하는 기업은 없다.
‘비싸게’ 이기는 걸 좋아하는 클라이언트가 어디 있겠는가.
싱가포르 중재 이야기에 클라이언트는 불만을 표출했다.
당연히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
유장희는 흡족했다.
“저는 국내에서 진행해도 충분히 승소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는데, 국제중재팀의 의견이 저와 다르네요.”
유장희는 국제중재팀이 이겨도 곤란하게 만들 생각이다.
-저희가 이렇게 큰 소송이 처음이라서 잘 모르겠는데, 변호사님이 여전히 그런 생각이시라면, 저희는 그냥 유 변호사님이 계속 맡아서 진행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당연하지. 이렇게 나오는 게.
“저도 그렇게 몇 번을 강조했는데, 국제중재팀에서 워낙 세게 나와서. 최재민 변호사하고는 이야기해 보셨죠?”
아무리 한범상과 최재민을 곤란케 만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어도, 대형 클라이언트였다면 이런 식으로 하지 않았다.
무조건 잡았지.
작은 기업이었다. 첫 사건이었고.
중형 로펌을 주로 써온 회사였는데, 이번 분쟁에 회사의 명운이 달려있었기에, 특별히 김앤강을 찾아온 것이었다.
아마도 이번 사건의 승패와 상관없이 또 찾아올 일은 없을 듯싶었다.
-예, 이야기는 해봤는데······
만족스럽지 않았던 모양이다.
담당자가 말꼬리를 흐렸다.
수화기 반대편, 유장희의 입꼬리는 올라갔다.
-그러면, 이거 하나만 여쭈어볼게요, 변호사님. 전에도 여쭈어보기는 했는데···
“네.”
-변호사님이 보시기에도 싱가포르에 가서 영국법으로 다투는 것이 국내 법원에서 다투는 것보다 승소 확률이 높은가요?
사실 유장희도 알고 있다.
국내 소송의 리스크를.
만약 국내 소송으로 진행했다면, 분위기를 보고 적당한 시기에 고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별 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똑바로 하지 않을 생각이다.
【128화 – 최애의 어쏘】
똑똑-
“변호사님, 서누엔지니어링 김 사장님이 오셨습니다.”
벌써 다섯 번째 미팅이다.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했는데, 좀처럼 클라이언트의 신임을 얻기가 쉽지 않다.
“알았어.”
최재민은 의뢰인이 기다리고 있는 회의실로 향했다.
···
“안녕하십니까, 변호사님.”
“안녕하십니까.”
회의실 안에는 법무팀 이사와 직원 그리고 실무팀 팀장까지 총 네 명이 와있다.
한범상과 같이 들어오고 싶었지만, 다른 회의에 참석 중.
이 사건에 배당된 다른 변호사는 없다.
할 수 없었다.
비용에 민감한 클라이언트였기에.
“변호사님, 정말 싱가포르 중재가 가면 이길 수 있는 겁니까?”
벌써 몇 번째 확인하는 질문.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회사의 명운이 달린 사건이니까.
재민이 거슬리는 건 의뢰인이 이렇게 확신을 갖지 못하게 하는 누구 때문이었다.
“어느 변호사도 ‘이 사건은 무조건 이긴다.’ 혹은 ‘이 사건은 무조건 진다.’라는 확신적인 대답을 드릴 수는 없을 겁니다. 다만, 제가 보기에는 중재로 갔을 때 승소 확률이 매우 높고, 리스크가 낮습니다.”
“근데, 유 변호사님께서는 국내에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하시던데···.”
나쁜 새끼.
“유 변호사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나요?”
“네.”
“그렇다면, 아마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표현을 살펴봐야 할 듯싶은데···. 흠,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국내 법원에서도 승소할 가능성은 분명히 있습니다. 법원이 관할 항변에 관해 어떻게 판단할 것이냐 달린 문제인데, 사장님께서 싱가포르 중재를 중지시켜 놓고 국내 소송을 진행하셨는데, 만약 국내 법원이 관할 없음이라고 판단해 버리면, 그때는 어쩔 수 없이 싱가포르 중재를 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렇지만, 국내 법원에서 이기면 저쪽에서 합의하자고 나올 가능성이 있고, 그때 가서 싱가포르 중재를 해야 한다면, 국내 법원 승소 판결이 있으니까, 더 유리한 거 아닌가요?”
선입견이 생겨버린 클라이언트를 설득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나 뒤에서 계속 그 선입견을 강화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때는 더욱이.
사내 변호사가 있었더라면 설명하기 쉬웠을 수도.
법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분들이 선입견을 깨기가 어렵다.
마음 같아서는 유장희 변호사가 불러와 클라이언트 앞에서 깨주고 싶지만, 차마 그럴 수 없다.
제 얼굴에 침 뺏기일 테니.
“사장님, 국내 법원에서 진행했을 때 예상되는 비용보다 더 많이 나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재민은 최대한 눈높이를 맞춰 설득했다.
···
긴 회의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 최재민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후우우—”
국내 소송을 일단 멈춰놓고 싱가포르 중재를 선(善) 진행하기로 결정 내린 지 벌써 석 달이 다 되어갔다.
처음 말이 나왔을 때부터는 넉 달.
갈팡대는 클라이언트로 인해 진행된 게 하나도 없었다.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그렇지, 사건 핸들 정말 뭐같이 하네, 이씨···.’
선배고 뭐고, 정말이지 당장 5층으로 내려가 면상에 쌍욕부터 박아주고 싶지만, 그런 개싸움이나 하자고 붙은 게 아니었기에 참는다.
유장희도 분명히 안다.
국내 소송의 리스크를.
본안 관련해서는, 그러니까 분쟁의 원인인 계약 파기 관련해서는 클라이언트의 주장이 유리하다.
하지만, 관할 항변 관련해서는 위험 요소가 존재한다.
클라이언트와 상대방 기업 간에 체결된 공급 계약상의 관할은 싱가포르 중재.
그와 관련해서 유장희가 하려던 주장은 이거였다.
「양 기업의 본사가 모두 국내에 소재해 있고, 주고받은 대부분의 통신(증거)이 국어로 되어있으며, 계약 대금 또한 국내에서 집행되었기에, 분쟁의 실질적인 관계는 한국에 있고, 따라서 한국법원에서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
국내법에 관련 규정이 있고, 뒷받침하는 판례도 있으니까.
문제는 자유계약의 원칙.
관련된 주(主) 사업이 해외 프로젝트였다.
프로젝트 모(母) 계약과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싱가포르 중재를 선택한 것이었고,
무엇보다도 그러한 합의를 하는 데에 있어서 위계나 압력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즉, 클라이언트가 조항의 효과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동의한 조항이라는 사실이었다.
이런 점들을 모두 고려했을 때, 싱가포르 중재가 유리했다.
관할 이슈에서 지면 아무리 본안에서 유리해도 법원은 판결하지 않는다.
그래서 ‘리스크’인 것이다.
그럼에도 클라이언트에게 국내 소송을 추천한 이유도 안다.
법률 비용에 민감한 클라이언트. 리스크가 있더라도 비용적인 면을 고려했을 때, 충분히 시도해 볼만 하다고 생각했겠지.
전략은 여러 가지 있는 것이고, 변호사마다 관점이 다를 수 있으니까.
유장희 본인도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을 테니까.
다 좋다.
하지만, 자기 입으로 싱가포르 중재원에서 하자고 했으면,
아무리 내부적으로 의견이 갈리고 못마땅한 점이 있더라도,
적어도 클라이언트에게는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게 프로페셔널이잫아!”
화가 머리끝까지 난 최재민의 입에서 생각이 튀어나왔다.
“치사한 새끼. 끝나기만 해봐. 내가 진짜 이 새끼를···.”
그렇지만, 그를 제일 화나게 만든 건 회의 끝 무렵에 나온 클라이언트의 질문이었다.
「“그러니까, 최 변호사님도 그렇고 한 변호사님도 영국 변호사 자격은 없으신 거죠?”
“네.”
“그래도 싱가포르 중재에서 변론하실 수 있는 거죠? 영국법 관련해서.”
“네, 전혀 문제없습니다. 저희 팀에 영국 변호사도 있고요.”」
중재 절차는 법원에서 진행되는 소송 절차와 다르다.
변호사가 아닌 사람이라도 변론이 가능하다.
그래서 변호사 자격이 없을지라도 해당 분야에 전문가라든지, 법대 교수 등도 변론할 수 있다.
또한, 준거법 관련해서도 꼭 그 나라에서 자격을 받은 변호사일 필요는 없다.
물론 그렇게들 많이 하지만, 뿌리가 같은 미국 변호사나 캐나다, 호주 변호사들이 영국법 쟁점 관련하여 변론하는 사례가 드문 건 아니었다.
클라이언트로서 당연히 물을 수 있는 질문이었다.
불안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전까지 전혀 이상하게 생각지 않았다가, 이번 미팅에 대뜸 확인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아- 그러시구나. 네, 그럼, 안심입니다. 유 변호사님께서 얼핏 말씀하신 게 기억이 나서.”
“유장희 변호사님이 뭐라고 하셨길래···?”
“아니요. 그냥, 영국 변호사는 아니지만, 최 변호사님께서 중재 경험이 많으셔서 잘하실 거라고···.”」
사건 기록을 찾아보면, 맨 첫 미팅에서 영국 로펌을 선임할 필요 없다고 조언한 사람이 유장희였다.
클라이언트가 비용을 걱정하니까, 한 말이었기는 해도.
분명히 그가 했던 말이다. 김앤강에도 영국법 전문가들이 많으니 외부 로펌을 선임할 필요 없다고.
그래 놓고, 이제 와서···
“후우우—”
최재민의 입에서 또 한 번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제라도 영국 변호사 자격이 있는 어쏘를 투입하려니 비용을 민감한 클라이언트가 인상을 찌푸리는 게 벌써 보인다.
그렇다고 범상을 빼고 영국 변호사에게 배당하려니, 그러려고 유장희의 도발을 받아들인 게 아니었다.
지는 게 죽기만큼 싫은 최재민인데, 그 상대가 유장희 같은 놈이니 더 환장하겠다.
“으아!”
한숨이 괴성으로 바뀌었다.
바로 그때,
똑똑-
“누구야?”
“변호사님.”
최애의 어쏘가 들어왔다.
“어, 한 변호사, 들어와. 왜?”
“변호사님께서 찾으셨다고···.”
“내가? 아- 좀 전에 서누엔지니어링에서 찾아와서, 있으면 같이 미팅에 들어갈지 했는데, 자리에 없어서 나 혼자 들어갔다 왔어.”
“죄송합니다.”
“아냐, 아냐, 갑자기 찾아온 건데, 뭐? 어디? 파이낸스팀 회의?”
“네.”
최재민은 한범상을 쳐다봤다.
회의에서 오고 간 사안들을 공유할지 고민한 최재민은 그만둔다.
머릿속이 좀 더 정리가 된 이후에 상의할 생각이다.
유장희의 의도가 빤히 보이는 지금, 그 치사한 놈의 장단에 놀아나고 싶지 않다.
“서누엔지니어링에서는 뭐라고 하던가요?”
“똑같지 뭐? 갈팡질팡하고 있어.”
“이제는 결정해야 하는데. 더 미루면 안 될 것 같은데요.”
“그렇게 말했어. 더 지연시키면 비용만 낭비될 뿐이라고. 정히 싱가포르 중재가 석연치 않으면, 그냥 국내 팀이랑 한국법원에서 소송 진행하시라고.”
“아···.”
순간이었지만, 최재민은 한범상의 실망스러워하는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왜? 하고 싶어서?”
“네.”
그렇겠지, 자존심이 걸린 문제인데.
“걱정하지 마. 하도 갈팡질팡하길래 마지막에 그냥 한 말이지, 싱가포르 중재가 답이라고 얘기했어. 그리고 비용도 국내 소송 비용 이상으로 청구하지 않다고 했고. 빨리 결정하라고 한 말이었어. 중재로 갈 거야.”
“네.”
최애의 어쏘가 이렇게까지 하고 싶어하는 사건인데···
범상이 나가면 최재민은 서누엔지니어링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한 번 더 설득할 생각이다.
“한 변, 이 사건, 무조건 이겨야 해.”
“네!”
“하하- 잘하겠지.”
그와 일한 지 4년.
승률 100%라는 건 현실에 없지만, 최재민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놈은 유니콘이다.
“그래, 그럼. 나가서 일 봐.”
“변호사님, 한가지 부탁드릴 게 있는데요.”
“한 변이 나한테? 뭐?”
“제가 석달 전에 SQE 1을 쳤는데, SQE 2 면제 관련해서 변호사님 추천서가 필요해서요.”
“SQE 1을 쳤다고?!”
“네.”
“그런 말 없었잖아?”
“급하게 결정한 거라서 일단 결과 보고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잠깐, 석달 전이면, 결과 나왔겠네?! 어떻게 됐어?”
SQE(Solicitors Qualifying Examination): 영국 변호사시험
1차 시험 SQE 1과 2차 시험 SQE 2로 나뉘어 있고, 자격이 되는 외국인도 칠 수 있다.
특히 실무 경험이 있는 경우, 2차 시험은 면제받을 수 있다.
“패스했습니다.”
“진짜?!!”
“??”
“야, 너는 그런 걸 했으면 진작에 말을···.”
“아···죄송합니다···저는 결과를 보고 말씀드리려고···”
“잘했어! 아주 잘했어!”
“근데 왜 화를···.”
이놈은 유니콘이다.
영국 변호사시험은 한 달 만에 따버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