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3)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3화(13/190)
【013화 – 국제중재팀의 메커니즘】
“정 대리님, 이 서류 좀 번역센터에 보내주세요. 다음 주 수요일까지 부탁드린다고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변호사님.”
하영은 늘 하던 대로 외주 번역업체에 번역일을 맡기고 있었다.
동료 변호사 마이클 변이 다가와 끼어들었다.
“도 변, 번역해야 할 거 있어? 한 변호사한테 맡겨.”
거슬렸다.
나이는 같은데 일 년 먼저 들어온 한국계 미국 변호사. 고등학교 1학년 때 이민한 거라서 영어보다 한국말을 더 잘한다.
밉상. 동의한 적도 없는데 첫날부터 계속 반말이다. 그럴 거면 차라리 영어를 쓰던가.
그래서 거슬린 건 아니었다.
“번역일은 외주주는 거 아니었어요?”
“응? 최 변호사님이 시키라던데. 잘해. 오타도 없고. 시켜.”
아닌가? 그래서 거슬린 건가? 아무튼 말투도 밉상이다.
“괜찮아요. 정 대리님 그냥 맡겨주세요.”
“와이?”
학교 다닐 때 제일 싫어하는 부류였다.
겉으로는 아닌 척하면서 사람들 줄 세워 자기한테 필요한 사람과 아닌 사람한테 대하는 행동이 달라지는 부류.
처음 강태산 변호사가 꽂은 변호사라는 말을 듣고는 엄청나게 관심이 보이더니, 딱히 특별한 관계가 아닌 것 같아 보이자 바로 자기 밑에 있는 사람처럼 대한다.
하영은 무시하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또 다른 동료 변호사가 서류 하나를 들고 옆방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딱 봐도 번역 부탁이었다.
하영은 그가 돌아가기를 기다렸다가 범상의 방을 노크했다.
똑똑-
“안녕하세요, 도 변호사님.”
“한 변호사님, 잠깐 시간 괜찮으세요?”
“네? 아, 네, 괜찮습니다.”
하영은 문을 닫았다.
“변호사님, 번역은 정말 급한 거 아니고는 인하우스 번역하시는 분이나 외주업체에 위임하는 게 원칙이에요.”
“아, 네.”
김앤강에는 통번역을 전문으로 하는 직원들이 따로 있다.
다만 늘 일이 차고 넘쳐 파트너 변호사들이 주는 업무가 우선이었다.
그래서 인턴들에게 넘어가고 외국 변호사에게도 넘어간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외국 변호사가 국내 로펌에서 하는 일이 뭐야? 국내 변호사 통번역하는 거 아니야?’라는 관점이 팽배했다.
그래서 실력 있는 외국 변호사들이 들어왔다가도 도로 나갔다.
이제는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이제 원칙은 「번역은 통번역 직원이, 그게 여의찮으면 외주 업체에게」이다.
하영은 웃으며 넘어가려는 듯한 범상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래는 그렇게까지 하려고 하지 않았는데, 다시 한번 분명하게 말했다.
“좋은 게 좋은 식으로 하나둘 받다 보면 계속 번역 일만 맡길 거예요.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원칙이 그냥 바뀐 게 아니다.
싸워서 바뀐 거다.
그리고 그 싸움은 계속 해야 하는 싸움이다.
어디 적혀있는 것도 아니고, 고작 10년 된 문화니까.
“다들 바빠서 부탁하는 것 같더라고요.”
‘뭐지, 이 사람은?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한 거야?’
답답했다. 첫인상이 멍청한 사람 같지는 않았는데···
‘왜 자기 가치를 자기가 낮추려는 거지?’
“다들 말은 그렇게 해요. 안 바쁜 사건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저희가 쓰는 외주 번역업체들은 로펌의 바쁜 스케줄을 잘 아는 곳들이라 급행으로 가능하고, 진짜 급한 것들은 번역하시는 인하우스 패러리걸들에게 부탁하면 다 스케줄 조정해서 해주고요.”
도하영이 이렇게 발끈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쟤네 아버지가 주원대학교 로스쿨 학장이잖아.
-에이- 그럼 뭐 걱정 없겠네.
-쟤, 작은아버지인가가 김앤강 리크루트팀 담당 일 걸.
-그렇게 된 거구나.
-할아버지가 법무부 장관 출신이래.
-이너서클이네, 이너서클.”
여기까지 오면서 귀에 딱지가 들어앉을 정도로 많이 들었다.
고등학교 때는 오히려 나았다. 자기들끼리 안 들리게 했다.
대학교에 오고 로스쿨에 오니 앞에서 대놓고 비아냥대는 인간들도 많았다.
-너는 좋겠다. 아버지한테 얘기하면 추천서 받을 데가 많은 거 아니야?
-김앤강 인턴십 됐다며? 하긴···야, 나도 어떻게 안 되냐?
-근데, 그때 법무부 장관이셨으면 니네 집 되게 부자겠다. 그럼, 일제 강점기 때 일본에 가서 공부하신 거야?
여러 번 설명도 해봤다.
LEET(법학적성시험) 점수가 몇 점인지,
김앤강 말고도 또 어디 어디에서 인턴십 제안이 왔는지,
무료 법률상담소를 운영하시던 군법무관 출신 할아버지가 어떻게 법무부 장관직은 맡게 되셨는지.
하지만 그들은 관심 없었다.
그들에게 그녀는 그저 기득권층의 자식일 뿐.
그녀가 한 노력 따위는 쉽게 깎아내려도 되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래서 거슬렸다. 동료 변호사들이 한범상을 ‘낙하산’으로 치부하고 그가 김앤강에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를 무작정 부정한 비리로 단정 지어버린 것이.
의문을 품는 건 이해할 수 있다.
분명 일상적인 일은 아니니까.
그러나,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제멋대로 판단하고는 뒤에서 선동하는 짓은 최악이었다.
정작 파트너한테 가서 물어볼 용기도 없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저는 괜찮습니다. 번역하면서 사건 배경도 공부할 수 있고요. 나중에 일이 많아지면 그때는 거절하겠습니다.”
‘나중에 번역 일만 많아진다고요!’
소리칠 뻔했다.
매년 50명에서 70명의 변호사를 뽑으면 30명에서 50명의 변호사가 김앤강을 퇴사한다. 더 많이 나갈 때도 있다.
초임 변호사의 연봉이 평균 1억 8천에 달하는 곳이다. 이는 2, 3위 로펌보다도 3, 4천만 원이 많은 수준이다. 연차가 쌓일수록 격차는 더 벌어진다.
그런데 왜 그렇게나 많은 사람이 퇴사할까?
업무량이 고돼서?
물론 그런 이유도 있다. 혹은 다른 개인적인 이유로 자발적으로 퇴사하는 사람들도 있고.
하지만, 대부분은 ‘내쳐지는’ 것이다.
자기 연봉에 맞는 일을 ‘찾아 하지’ 못해서.
그렇다. 로펌이라는 조직은 그런 곳이다.
결국은 자기 벌이를 자기가 찾아서 해야 하는 곳.
1, 2년차 때는 번역 일 잘하고 사건 정리만 잘해도 괜찮다.
그러나, 연차가 쌓였는데 그런 일만 하고 있으면 조직은 가차없다.
내보내고 다른 사람 뽑아 쓰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익스펜더블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싸워야 하는 것이다.
파트너들에게 일을 달라고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준비됐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
특히나 외국 로펌 문화가 이상하게 들어와 있는 이 국제중재팀에서는 더더욱.
“네, 알겠습니다. 그럼.”
하영은 더 말하지 않고 범상의 방을 나왔다.
그런 로펌의 메커니즘을 그 자리에서 다 설명해 줄 수도 없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그가 세상의 시간을 다 가진 듯 느긋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언 고맙습니다, 도 변호사님.”
그날 하영은 그가 석달 뒤 다른 팀으로 갈 거라 예상했다.
그래서 그 뒤로 같은 조언은 두 번 다시 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우려한 대로 석달 간 계속 번역 일만 계속했다.
하지만,
석달 뒤 다른 팀으로 갈 거라는 그녀의 예상은 빗나갔다.
-*-
국제중재팀,
최재민 변호사 사무실.
“김 과장, 어쏘 변호사들 지난 세 달간 쓴 타임 시트 좀 출력해서 가져다 줘.”
“네, 변호사님.”
타임 시트(Time sheet)란, 변호사가 무슨 업무를 봤고, 해당 업무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썼는지가 기록된 문서이다.
타임 시트를 보면 해당 기간에 변호사가 어떤 일들을 처리했는지 한눈에 볼 수 있고, 얼마나 효율적으로 일했는지도 알 수 있다.
오래전에는 수기로 기록했지만, 이제는 프로그램이 따로 있다.
변호사는 업무 시작과 함께 프로그램의 타이머 버튼을 누르고 끝이 나면 종결 버튼을 누른다. 그러면 해당 사건을 본 시간이 자동으로 기록된다. 그리고 비고란에 본 업무에 대한 간략한 서술을 기재하면 끝. 자동 전산처리 된다.
따라서, 비서에게 부탁하지 않고 컴퓨터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최재민은 어쏘 변호사들의 석달 치 기록을 전부 달라고 했다.
비교해 보려는 의도.
보좌하는 변호사의 지시를 정확하게 파악한 비서는 최재민 변호사가 관리하는 어쏘 변호사들의 석달 치 타임 시트를 보기 쉽게 액셀 시트에 출력해서 올렸다.
정기적으로 하는 일.
다만 이번에는 ‘임시직’이 포함되어 있을 뿐.
최재민은 한 명씩 체크해 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한범상의 기록.
길다.
한범상의 석달 치 타임 시트를 검토하던 최재민은 다른 어쏘 변호사들의 타임 시트와 비교해 가며 검토를 이어갔다.
다른 어쏘 변호사 타임 시트를 검토할 때보다 세 배가 더 걸렸다.
꼼꼼하게 끝까지 크로스체크한 최재민의 얼굴이 재미있는 표정을 지었다.
뭔가 흥미롭거나 기대 이상의 결과가 나왔을 때 짓는 표정이었다.
최재민은 회사 메신저를 켰다.
[재민: 도 프로] [재민: 낙하산 우리 팀에 석 달 더 데리고 있을 거야. 그렇게 알아.]자질, 에이스 그리고 두름성
-최 변호사, 왜 그 친구를 데려갔어? 이번에 들어온 신입 중에 하버드 로스쿨 출신도 있었는데.
팀원을 뽑는 데에 있어 최재민은 학벌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아이비리그같이 프라이드가 강한 학교 출신 신입 변호사들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우리 팀에는 이 친구가 더 쓸모 있을 것 같아서요.
좋은 로스쿨 나온 친구들을 폄훼하는 건 아니다.
그런 학교를 나온 친구들이 그렇지 못한 친구들보다 평균적으로 경쟁심이나 이해력이 높은 건 사실이다.
다만, 그런 학교를 나온 친구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문제점은 모두가 에이스가 되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김앤강에 들어온 이상 그들이 경쟁해야 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또래가 아니다.
그들보다 경험이 많은 선배들과도 경쟁해야 하고, 연차가 쌓이면 비용적으로 싼 후배들과도 경쟁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에이스가 되기만을 고집하고 자기 포지션을 찾지 못하면 하버드 로스쿨 숨마쿰라우데(Summa Cum Laude, 수석 졸업)가 와도 낙오시킬 수밖에 없다.
프라이드 강한 학교를 나온 신입 변호사들이 종종 착각하는 사실이 있는데, 그건 이곳이 NBA나 MLB 같은 리그가 아니라는 점이다.
로펌은 차기 르브론 제임스를 뽑고, 차기 오타니 쇼헤이를 발굴하려는 게 아니다.
시간당 백만 원짜리 파트너가 시간당 삼십만 원짜리 일들을 대신 해줄 어쏘를 구하는 것일 뿐.
“부르셨습니까, 변호사님.”
“왔어. 거기 잠깐 앉지.”
어쏘 변호사들의 타임 시트를 체크한 최재민은 한범상을 방으로 불렀다.
“시간을 많이 썼네.”
“번역 일이 좀 많았습니다.”
「시간을 쓰다」 변호사들은 일했다는 말을 그렇게 표현한다.
타임 시트에 시간을 쓰지 않은 업무는 의미 없다. 의뢰인에게 청구할 수 없으니까.
김앤강 어쏘 변호사에게 요구되는 최소업무량은 월 180시간.
근로계약서에 쓰여있다. 이는 휴가를 가는 달도 포함이다.
파트너가 되기 전까지 이 조건은 변하지 않는다.
파트너가 돼도 자기 클라이언트가 없으면 변함없다.
“그래도 월 240시간씩 쓴 거는 대단한데.”
한범상은 국제중재팀에 있는 지난 석 달 동안 매달 대략 240시간씩을 썼다.
매일 8시간씩 주말에도 나와 일해야지만 채울 수 있는 업무량.
하지만 그래서 부른 게 아니었다.
월 240시간씩 3개월. 열심히 한 것은 맞으나, 그렇다고 이렇게 따로 불러 격려할 만한 기록은 아니다. 도하영도 220시간씩 썼다.
“근데, 정말 여기 있는 여든세 건 전부 관련해서 중재 결정문들하고 증거들 번역한 거야?”
최재민이 수임하고 있는 사건 중에서 지난 3개월 동안 진행이 있던 사건의 수는 총 105건. 그중 83건에 한범상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었다.
아무리 번역 일만 도와줬다고 해도 믿기 힘든 숫자였다.
그래서 불렀다.
직접 확인해 보려고.
“네.”
이유가 뭐든 객관적으로 들어올 수 없는 사람이 들어왔다.
창립 멤버가 꽂았단다.
최재민이 팀원감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데에 있어서 보는 건 딱 하나. 팀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였다.
그게 인맥이든 출신이든 영업력이든 상관없다. 심지어 일을 못 해도 된다. 아버지가 성공한 사업가라서 매년 팀에 100억 원 상당에 소송·자문 의뢰를 맡긴다면 그는 팀원 자격이 있다.
리걸마인드가 없어 소송 전략을 못 짜는 변호사라고 해도 자료 조사를 신속하고 꼼꼼하게 해올 수 있다면, 팀원 자격이 있다.
들어올 수 없는 사람이 들어와도 상관없다.
팀에 쓸모가 있다면 말이다.
강태산 변호사의 낙하산이라기에 관심이 생겼다.
딱히 충원이 필요 없는 상황이었지만, 창립 파트너가 특별하게 생각하는 신입이라면 펌으로부터 베네핏이 있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받았다.
그리고 변호사들이 가장 꺼리는 업무를 줬다.
반응을 보려는 의도.
한범상의 반응이 궁금했다기보다는 창립 파트너의 반응을.
그런데, 기대하지 못했던 상황이 벌어졌다.
“그럼, 케이스들을 어느 정도 다 파악했겠네?”
“사실관계랑 법률 이슈 정도는 정리해 두었습니다.”
“그래? 그럼, GL 디스플레이 싱가포르 중재 건도 정리했어? 여기 보니까 그 사건 증거서류들 번역도 한 거 같은데.”
“네, 기록들 검토했습니다.”
“잘됐네. 오늘 변 변호사랑 참석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코로나에 걸려서 결근했네. 그럼, 이따 오후에 나랑 같이 미팅 참석하자고.”
“네, 알겠습니다.”
이제 최재민은 한범상의 자질이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