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30)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30화(130/190)
【130화 – 각성】
광화문 근처의 식당,
일반적인 저녁 시간이 조금 넘은 시각,
국제중재팀 변호사들이 늦은 식사를 하고 있다.
범상과 하영도 보인다.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범상이 입을 열자, 자리에 있던 모든 변호사의 시선이 그에게로 모였다.
“아, 진짜?”
“네.”
“왜?”
“영국법상 특정 이슈에 관해 다른 나라의 법을 적용해야 할 경우, 해당 법률에 관한 논쟁을 법률문제로 보지 않고 사실관계의 문제로 판단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러니까, 해당 판례에서 영국법원이 한국법상 판단한 부분은 사실관계에 대해 내린 결정일 뿐이라고 주장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래도, 이미 1심 판결이 나왔잖아. 새로이 제출할 수 있는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걸 항소심에서 뒤집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원론적으로 따지면야, 영국법원의 한국법 판단 부분이 법률적 판단이 아니고 사실적 판단이니까, 항소심에서 다시 봐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영국 항소심 법원이 과연 프레시하게 봐줄까? 솔직히 한국법 판례들도 갈리는 이슈인데.”
“그래서, 일단 영국에서 항소를 제기해 놓고, 한국법원에서 결정을 받은 뒤에 영국에 제출하면 흐름을 바꿔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요.”
“그건 좋은 생각인데···저쪽에서 안티-슈트 인정션을 신청하지 않을까?”
안티-슈트 인정션(Anti-suit injunction):
‘소송금지명령’이라 하여, 본 법정 이외에 다른 포럼에서 소송 등의 행위를 금지 혹은 중지하는 명령.
국내에는 없지만, 영미법 국가에 주로 있는 절차.
“그걸 역이용하는 거죠.”
“그걸 역이용한다고?”
“한국법 관련 사안에 대해서 가장 권위가 있는 결정은 대한민국 법원이라는 주장에는 저쪽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테니까, 상대방이 안티-슈트 인정션을 신청한다면, 그 이유가 영국 1심법원의 한국법 관련 판단에 오류가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어서라고 반박하는 겁니다.”
“흠···.”
“물론 그 이유 말고도, 시간과 비용 등의 이유를 들고나올 수는 있겠지만, 한국 소송의 신속함과 어차피 영국 소송에서 다퉈야 하는 부분이기에 중복 비용이 아님을 강조하면, 충분히 반박할 수 있을 거고요. 그래도, 영국법원이 상대방의 안티-슈트 인정션 신청을 허가한다면, 추후 영국법원 결정을 국내에서 집행하려 할 시에 한국법원에 이의를 제기하고 집행 불가를 다투면 될 듯싶어요. 그때는 안티-슈트 인정션이 오히려 우리 쪽 증거로 사용할 수 있을 거고.”
청산유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의견.
어떤 선배는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박수가 나올 만큼 기발한 전략은 아니었다.
하지만, 20년, 30년 경험의 파트너 변호사도 아니고, 5년밖에 되지 않은 어쏘가, 식사 자리에서 사실관계만 듣고는 진단을 내려버리는 모습은,
말들을 안 했을 뿐이지, 흠칫 놀라게 만드는 판단력이었다.
설사 그의 전략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말이다.
“괜찮은 전략이네···오케이, 클라이언트한테 그렇게 한번 제안해 봐야겠다. 한 변, 땡큐.”
“아닙니다.”
우연히 다른 어쏘들과 같이하게 된 저녁 식사, 어색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맞은 편에 앉은 하영은 범상을 바라봤다.
문득 5년 전 옆방으로 이사 온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남자가 언제 이렇게 됐지?
어느새 주인공이 되어있다.
···
“도 변호사님, 아이스크림 하나 안 드실래요?”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몇몇은 당구를 치고 들어가겠다고 쪼개지고, 또 몇몇은 급하게 들어가 봐야 할 것 같다면 앞서 걸어가고.
자연스레 남게 된 둘. 범상이 하영에게 물었다.
“좋아요.”
“폴바셋?”
나도 거기로 가자고 하려고 했는데!
하영은 범상이 자신의 마음을 읽어주어 신이 날 뿐이다.
“좋아요.”
둘은 걷고 있던 길에 있던 아이스크림 전문점을 지나 멀리 떨어져 있는 프랜차이즈 커피숍으로 향했다.
겨울에도 소프트아이스크림을 파는 곳이다.
맛이 있기도 하지만, 멀리 있어서 더 좋다.
“아참- 영국 변호사 자격증 따셨다면서요?”
“어, 어떻게 아셨어요?”
“어제 저녁때 최 변호사님하고 식사했는데, 그러시던데요. 다들 한 변호사 좀 본받으라고, 이제 제도도 바뀌어서 영국에 유학 가지 않아도 변호사 자격증 딸 수 있는데, 왜 안 따냐고. 공부해서 따두라고.”
“왜 또 그렇게까지···아직 자격증이 나온 거는 아니고, SQE만 패스했고, 인터뷰 봐야 해요.”
“당연히 되겠죠.”
“네. 사실, 그러려고 신청했습니다. 하하.”
분위기가 달라졌다.
뭐가 달라졌냐고 물으면 정확하게 꼬집어 설명하기는 어렵다.
자신감 같은 것이 생겼다고나 할까.
아니, 그것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전에도 자신감은 있었던 남자니까.
다만 전에는 보이지 않는 껍질 같은 게 그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여유로움을 감싸고 있었다면, 이제는 그 껍질이 없어진 것 같다.
좀 전에 식당에서도 그랬다.
원래는 둘이 먹으려고 나가다가 우연히 로비에서 마주쳐 다 같이 하게 된 식사.
어색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자리 끝에 앉아있지만, 식사가 끝날 무렵, 대화를 주도하고 있는 건 범상이었다.
그렇다고 말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니었다.
다들 자연스레 그의 말에 귀 기울였다.
이제 국제중재팀에서 그의 실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건 단순히 시니어 파트너 최재민이 밀어주는 어쏘라서가 아니었다.
같이 일해보면 안다. 변호사가 된 지 6년밖에 안 된 그의 지식이 얼마나 방대한지.
“도 변호사님, 주말에 뭐 하세요?”
“주말에요? 이번 주말?”
“네. 혹시 약속 있으신가요?”
“아니요. 없어요.”
“그럼, 괜찮으시면, 토요일에 만나서 유학 신청서 같이 작성할까요?”
“좋아요!”
“어디서 볼까요? 저는 아무 데나 괜찮은데.”
“저도요!”
“그럼, 코엑스 같은 데서 볼까요? 거기 도서관에서 작성하고, 시간이 되면 영화도 한 편 볼 수 있으면···.”
이 남자, 확실히 달라졌다.
“네!!”
토요일이 오려면 아직 며칠 남았지만, 하영의 심장은 벌써 뛰기 시작한다.
-*-
국제중재팀 시니어 파트너실,
좀 전 다른 팀 파트너 변호사와 식사를 하고 돌아온 최재민은 그에게 들은 이야기를 곱씹었다.
-최 프로, 소송팀 유장희 변호사랑 한바탕했다면서?
하하- 그 인간이 언젠가 누구랑 한번 붙을 줄은 알았는데, 그게 최 프로가 될 줄을 예상 못 했네.
소송은 잘하는데, 인성이 좀···.
그래도 적당히 해. 너무 날을 세우지는 마, 악착같은 면이 있어서 동기들도 피한대.
미친개가 무서워서 피하는 건 아니잖아.
변호사에게 있어서 ‘악착같다’라는 표현은 칭찬에 가깝다.
남을 위해 싸우는 것이 업(業)인 변호사들에게 지기 싫어하는 기질과 사소한 거에도 끈덕지게 매달리는 성격은 마이너스보다는 플러스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러한 기질과 성격이 그릇된 방향으로 표출되면···
-안 그래도, 벌써부터 다른 데에 가서 최 프로에 대해 안 좋게 말하고 다니는 거 같던데.
한 방 먹였으면, 그냥 무시해.
붙어봤자, 좋을 거 없는 인간이야.
안타깝게도, 최재민은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다.
‘악착같다’라는 말은 상대했던 변호사들이 최재민에게도 썼던 표현이다.
싸움은 저쪽에서 먼저 걸어왔다.
입마개로 안 되는 미친개는 몽둥이가 답이다.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면···
띠리링- 띠리링-
-어, 최 변호사, 무슨 일이야?
“선배님, 안녕하셨어요? 선배님, 이성그룹에 아시는 분이 계신다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내쫓아야지.
쌍방대리전
「쌍방대리(雙方代理),
동일한 변호사가 양측을 동시에 대리하는 형태.」
‘나를 대리하고 있는 변호사가 나랑 소송 중인 반대편도 대리한다고? 그런 무슨 말도 안 되는···’
상식적으로도 선뜻 이해가 안 되지만, 변호사법과 민법에서도 금지하고 있는 그런 기이한 형태의 상황이 대한민국의 최고 로펌에서는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