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36)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36화(136/190)
【136화 –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12층의 국제중재팀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도 전 최재민은 불평은 내쏟았다.
“아우- 진짜 무슨 말이 통해야지. 저러니까 다들 도망가지. 아우-”
어느 정도 공감하나, 범상은 최재민의 푸념에 동참하기 어려웠다. 백인찬 변호사님. 제일 먼저 알아봐 주신 분이다, 자신의 재능을.
누구랑 일하기 더 편하냐고 물으면 당연히 최재민이었지만, 감사함의 척도에서는 우열을 가릴 수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해상팀으로 좀 더 기운다고 할 수 있을지도.
“아니, 선택하기는 뭘 선택해? 당연히 삼전이지. 아, 정말, 김 변호사님한테 찾아가?”
찾아갈 생각 없다.
하도 답답해서 그냥 하는 말.
찾아가면 김한이 자신의 편을 들어줄 거라는 확신은 있다.
백인찬과 그렇게까지 얼굴 붉히게 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다.
해상팀이 한범상에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안다.
“제가 빠진다고 하면 안 될까요?”
“어떻게 빠진다고 해. 본사전략팀 오정진 상무가 한 변을 콕 짚어서 지시를 내렸다고 하는데.”
삼전은 초대형 클라이언트이다.
시가총액으로나 매출액 기준으로도 전 세계 30위 안에 드는 기업.
그 리스트에서 투자회사와 석유회사들을 제외한 뒤 제조회사만 남기면, 탑 5위에 들어가는 세계적인 회사.
전 세계 탑 로펌들이 클라이언트로 만들고 싶어 하는 기업이고, 국내 대형 로펌들은 어떻게든 기회를 잡아보려고 온갖 연줄을 만든다.
삼전 본사 법무팀 이사가 뉴욕에 뜨면, 뉴욕 대형 로펌 파트너들은 너도나도 최고 좋은 식당들을 예약하고,
삼전 법무팀 변호사가 퇴사하면, 국내 대형 로펌에서 흡수한다.
그런 파워를 가진 기업이다.
2년 반쯤 전에 있었던 특허팀 사건 이후로, 본사전략팀 오정진 상무가 국제중재팀의 최재민, 특허팀의 유경민, 파이낸스팀의 김창균에게 일을 주기 시작했다.
전통적으로 이정후를 통해서 들어오던 관례가 바뀌기 시작한 것.
그렇게 된 데에는,
“한 변호사한테 배당이 안 됐다고 하면 오 상무가 좋아하지 않을 거야.”
범상의 활약이 컸다.
이정후가 특허팀에게 준 부영 SD 사건에서부터 시작해서 하노이 배터리 R&D 센터 확장 프로젝트까지.
차근차근 신뢰를 쌓아왔다.
범상은 최재민의 딜레마를 공감했다.
오정진 역시 삼전 내부의 오래된 관습과 싸우고 있는 상황.
그가 별도의 법무팀이 있는 자회사 삼전 디스플레이의 사건을 김앤강 국제중재팀에게 의뢰하라고 했다면, 그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니까.
사우디 아람코의 앤드루로부터 의뢰가 들어온 사건을 사무실 컨플릭트 때문에 받지 못한다고 해야 한다면, 그건 퇴사를 고민할 만큼 심각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그런 계산만으로 해상팀을 버릴 순 없었다.
“아무튼 알았어. 내가 삼전 전략팀하고 좀 더 이야기해 볼게.”
범상이 하고 있는 고민이 무엇인지 아는 재민은 당장 선택을 종용하지 않았다.
주니어 파트너 때와는 다르다.
“네.”
-*-
김앤강이 절대 받지 않는 사건이 있다.
그건 노동조합 측의 의뢰다.
‘친(親)기업’ 로펌이 노동조합 측을 변호하기 시작하면, 그건 그저 클라이언트 하나를 잃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
‘조합 측 변호사’라는 태그가 붙으면 기업 클라이언트들은 노사분쟁이 아니더라도 떠나간다.
사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보험자 측을 주로 대리하는 변호사는 피보험자를 대리하지 않는다.
당장 의뢰받은 사건에 컨플릭트가 없다고 해도 거절한다.
‘피보험자 측 변호사’라는 태그가 붙으면, 보험회사들이 의뢰를 꺼리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은 해상 업계에도 있다.
선주(船主) 측을 주로 대리하는 변호사 사무실과 화주(貨主) 측을 주로 대리하는 변호사 사무실이 따로 있다.
김앤강 해상팀은 전통적으로 전자였다.
고로, 선주들에게 선박 보험을 제공하는 클럽들이 김앤강의 해상팀의 주 고객들이다.
물론 화주 중에서도 큰 고객들은 많다.
하지만 김앤강 해상팀은 화주들의 의뢰를 거절해 왔다.
심지어 세계 최대의 곡물회사인 카길의 의뢰도.
컨플릭트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쌓아온 ‘신뢰 가는 선주 측 변호사’라는 태그에 물음표를 붙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파트너들과 회의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 범상은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만약 아람코 석유를 싣고 가던 배가 사고를 당하면 어떻게 하지?’
석유 같은 기름은 흔히 ‘탱커(tanker)’라 불리는 유조선에 실어 운반한다.
다른 선박들에 비해 훨씬 더 꼼꼼하게 관리되는 선종(船種)이라 사고가 드물지만, 한번 사고가 나면 그 피해가 광범위하기에 일반 뉴스에 꼭 나온다.
아람코 석유를 싣고 가던 배가 대한민국 영해에서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이번과 같은 컨플릭트가 생길 확률은 거의 없다.
아람코와 클럽 둘 다 해당 국가의 변호사에게 갈 테니까.
근데, 대한민국 영해에서 사고가 난다면?
그리고 사고 배의 클럽이 김앤강의 고정 클라이언트라면?
둘 다 김앤강에 온다면?
‘그럼, 난 누구를 선택해야 하지?’
누가 보면, 양손에 사과와 배를 두고 고민하는 것 같겠지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사과를 고르면 배를, 배를 고르면 사과를 영원히 먹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실제로 비슷한 일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이십 년 전, 범상이 입사하기 한참 전, 대한민국 서해에서 거대한 유조선 사고가 났었다.
기름띠가 서해안 전체를 덮을 정도로 심각했다.
사고 직후, 해당 탱커의 선박 보험자인 클럽이 김앤강 해상팀을 찾아왔다.
동시에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 Funds)도 해상팀을 찾아왔다.
기금은 대형 기름 사고의 피해 보상을 위해 설립된 국제기구로, 그들 역시 해상팀의 오랜 클라이언트였다.
긴 고민 끝에 해상팀은 클럽의 의뢰를 맡기로 했다.
어쩔 수 없이 기금은 국내 다른 로펌을 찾아 의뢰했다.
그렇게 김앤강 해상팀은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이라는 클라이언트를 잃었다.
물론 기회를 얻은 다른 로펌이 잘해서 그렇게 된 것도 있었지만, 신뢰란 그런 것이다.
한번 틀어지면 복구하기가 쉽지 않다.
범상은 그런 생각마저 든다.
이번 선택은 단순히 삼전이냐, 클럽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에게 있어선 국제중재팀이냐, 해상팀이냐의 문제인 것 같은.
선택과 동시 다른 쪽 일을 영원히 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르는.
김앤강, 도대체가 사건·사고가 끊임없는 곳이다.
당연하지.
로펌인데.
‘어쩌지···?’
시간이 많다고 해결될 것 같지 않은 문제.
신기하게도 그 까다롭고 복잡한 문제의 해답을 준 사람은 기중이었다.
까톡-
[구기중: 바쁘냐?] [구기중: 놀자] [구기중: 와이프 친정 갔다]-*-
삼전 본사,
강남.
전략팀 오정진 상무를 기다리는 최재민은 살짝 초조해졌다.
해상팀 백인찬을 설득하는 일이 삼전을 설득하는 일보다 어려울 거로 판단한 재민은 삼전 법무팀에 전화를 걸어 의뢰하려는 사건에 관해 물었다.
사건을 의뢰하겠다는데, 변호사가 간을 보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기에, 최대한 정중하게 문의했다.
목적은 하나.
만약에 선주와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이슈가 없다면, 김앤강에서 선주 측과 삼전 측을 동시에 대리해도 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삼전이 화주이기는 했지만, 선박 사건의 경우, 화주는 보험자에게 보상받고 나면 딱히 사건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해상팀은 탐탁지 않아 하겠지만, 삼전이 괜찮다고 해주면, 그 후 백인찬을 설득하는 일이 조금은 수월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변호사님, 전략팀 오정진 상무님이 잠깐 볼 수 있겠냐고 하시는데요.
사건 관련해서 본사전략팀 상무 오정진이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최재민은 괜한 욕심을 부렸나 하는 후회가 살짝 찾아왔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백인찬과 담판을 먼저 냈어야 했나?
아님, 차라리 그냥 깔끔하게 이해충돌 때문에 못 한다고 하는 게 나을 뻔했나?’
이렇게 되니, 괜히 정말 클라이언트를 떠보려고 문의를 한 것처럼 보이는 것 같다.
“변호사님, 들어오시죠.”
기다리고 있던 최재민은 비서의 안내를 받아 전략팀 상무실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최 변호사님. 앉으시죠.”
“안녕하셨습니까, 상무님.”
“올해 되고는 처음 뵙는 것 같은데.”
“네, 맞습니다.”
오정진, 언제봐도 참 날카로운 사람.
삼전 왕국의 내부 사정에 대해 자세히 아는 건 아니지만, 이자가 삼전 왕자의 오른팔이다.
인사를 마친 최재민은 먼저 본론을 꺼냈다.
“상무님, LA항 사고 관련해서 말입니다···.”
최재민은 간략하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곤 양해를 구했다.
“···그래서 혹시 해상팀의 선주 측 대리가 괜찮으시다면, 삼전 디스플레이 대리는 저희 국제중재팀에서 맡아서 하겠습니다.”
최재민의 설명을 듣는 동안, 오정진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딱히 기분 나빠 하는 표정도, 그렇다고 좋아하는 표정도 아니다.
설명을 다 들은 그는 짧게 대답했다.
“그게 김앤강의 대처입니까?”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 137화
B와 D 사이의 C
“우리 하율이는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엄마.”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나온 딸의 대답에 기중은 토라진 척을 했다.
“흥, 그럼, 아빠도 하율이보다 하준이를 더 좋아해야지~”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했을 뿐인데.
돌아온 아빠의 반응이 어린 딸은 당황스럽다.
동생을 더 좋아하겠다는 말.
막상 들으니, 기분이 묘하다.
좋지는 않다.
아니, 서운하다.
하지만, 자기도 엄마라고 대답했으니···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순진한 눈망울에 물이 고인다.
이제 지켜보고 있던 삼촌은 울먹거리려고까지 하는 조카가 안쓰럽다.
왜 그런 유치한 질문은 해가지고···
범상은 하율이를 달랬다.
“아니야, 하율아. 울지마, 아빠가 장난치는 거야. 아빠는 하율이랑 하준이 똑같이 좋아하지, 하준이를 더 좋아하는 거 아니야. 울지마. 울지마.”
다행히 크게 마음이 상한 건 아니다.
아빠의 이런 질문이 처음이 아닌 모양. 아이는 금세 기분이 좋아져서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범상은 기중을 타박했다.
“야, 너는 잘 노는 애를 불러서 왜 그런 쓸데없는 질문을 하냐?”
“다 교육이야.”
“교육 같은 소리하고 있네. 어렸을 때, 저런 질문들 하는 어른들 진짜 싫었어.”
“쟤도 알아. 장난인 거.”
“너는 장난일지 모르겠지만, 애한테는 스트레스야.”
“오바 떨기는. 넌 몰라.”
“뭘 몰라?”
“애 낳아봐. 그럼 알게 될 거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미혼인 친구가 상황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그냥 넘어가려던 기중은 되물었다.
“그래서, 지금은 어떤데?”
“그건 또 뭔 소리야? 지금은 어떠냐니.”
“우리 어렸을 때, 그런 질문들 많이 받았잖아. 그래서 지금은 어떠냐고? 그때 받은 질문들이 무슨 트라우마도 됐어?”
“그건 아니지만···”
“야, 스트레스가 다 트라우마가 되는 건 아니야.”
“그렇다고 잘 노는 애를 불러서 스트레스를 줄 거는 또 뭐냐?”
“교육이라니까.”
“헛소리 좀 하지 마. 괜히 지가 놀리고 싶어서 그런 거면서.”
“그래, 맞아. 근데, 인생이 그렇잖아. 선택의 연속. 지금이야 엄마, 아빠가 항상 같이 있으니까, 다 좋고 행복하지만, 학교 가면 다른 거 너도 알잖아? 요새 애들이 더 할 걸?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라는 질문에 어떻게 대처할지도 모르는 아이가 학교 가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냐?”
“···.”
‘살아남는다’라는 표현.
누구에게는 과할지 모르겠지만,
둘에게는 그렇지 않다.
“나는 아니라고 본다.”
갑자기 진지해진 기중의 답변에 범상은 소파에서 놀고 있는 조카를 바라봤다.
동질감이 느껴진다.
비약적이기는 했어도 친구 말엔 진실이 담겨 있다.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지?’
범상은 문득 회사 일이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