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37)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37화(137/190)
【137화 – B와 D 사이의 C】
프랑스의 철학가 장 폴 사르트르는 말했다.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
똑똑-
“변호사님.”
다음 날, 출근과 동시에 범상은 백인찬의 방을 찾았다.
“어, 한 변호사, 들어와.”
“LA항에서 난 사고 관련해서 상의드릴 게 있어서요.”
“뭔데?”
어제는 오랜만에 기중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시간이 날 것 같다면 놀자고 하길래, 동네 술집에서 보자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제수씨가 둘째 하준이만 데리고 가는 바람에 녀석의 집으로 가게 되었다.
“어제 말씀하신 걸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요. 아무래도 저는 이번 사건을 맡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
“네.”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단순한 질문이지만 정말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아이의 정서에 좋지 않은 질문이라는 연구가 나와 예전만큼 많이 들리진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서에 좋지 않으니 자제하라면서 제일 상처가 될 수 있는 이혼 법정에서 가장 많이 한다.
비약적이기는 했어도 기중이의 항변에는 진실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매일 이런 종류의 질문들을 듣고 산다.
원하든 원치 않든 선택을 강요받는다.
거부할 수도, 피할 수도 있지만, ‘선택할 거야? 말 거야?’에 대한 선택 역시 책임과 결과를 동반한다.
“그럼, 할 수 없지, 뭐.”
“죄송합니다.”
“아니야. 어쩔 수 없지. 그게 한 변호사의 초이스라면.”
백인찬 변호사님은 이유를 묻지 않으셨다.
그렇다고 화를 내시는 것도 아니었다.
내 딴에는 논리적일 거라고 준비해 간 변명거리 역시 필요가 없었다.
그저 존중해 주셨을 뿐.
엄마라고 대답한 아이에게 서운하지 않은 아버지처럼.
“이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가 봐.”
“네.”
“아, 한 변호사.”
“네.”
“대신 다음에도 이런 상황이 생기면, 그때는 해상팀 일 하는 거야.”
농담이었다.
그래 주길 바라신다는 의미.
약속을 강요하는 게 아니었다.
“네!”
나는 결정했다.
양쪽 다 하지 않기로.
-*-
선택은 책임을 수반한다.
일단 하고 나면 그에 따르는 책임을 져야 한다.
원망을 들을 수도 있다.
결국, 선택 역시 B와 D 사이의 C다.
원망(blame)과 책임(duty) 사이에서 할 수 있는 걸(capable) 하는 것.
[재민: 한 변, 잠깐 내 방으로. LA항 사건 관련.]막상 내리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때가 많다.
때론 선택에 따른 결과보다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나는 상황 자체가 더 무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백인찬 변호사님에게 내가 내린 결정을 보고드리고 방을 돌아오니, 최재민 변호사님으로부터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범상: 네, 알겠습니다.]안 그래도 바로 가서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잘됐다.
메신저에 답변을 쓰고 변호사님 방으로 향했다.
똑똑.
“네-”
“변호사님.”
“왔어. 좀 앉을까?”
최 변호사님께도 내 결정을 말씀드렸다.
“조금 전에 백 변호사님한테 상의드리고 왔습니다.”
“아, 그랬어? 뭐라고?”
“아무래도 저는 이 사건을 맡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 진짜?”
“네.”
“그랬더니? 뭐라고 하셔? 노발대발하셨어?”
“아니요.”
“그래? 하긴 모든 사람한테 그러셔도 한 변한테는 그러지 않으시겠지. 그래도, 뭐라고 하지 않으셨어? 그냥 오케이 하셨어?”
“네, 그냥 다음번에 또 이런 상황이 오면 해상팀 사건을 해주었으면 좋겠다라고만···.”
“참나- 애도 아니고, 이번에는 양보하니 다음번에는 내 편을 들어달라는 거야, 뭐야?”
“그냥 하시는 말씀인 것 같았습니다.”
“하아- 진짜 백 변호사님도 참, 그렇게 쿨하게 양보하실 거면, 어제 그냥 그렇게 나오시지. 괜히 사람 모양새 빠지게···쯧, 그랬으면, 오 상무한테 그런 아쉬운 소리를 들을 필요도 없었잖아.”
“오정진 상무님을 만나고 오셨나요?”
“만나고 오기는 했는데···”
최 변호사님은 어제 삼전 본사에 다녀온 일을 말씀해 주셨다.
“아, 네···.”
그런 일이···
죄송스러웠다.
클라이언트 대응을 잘하시는 분이다.
삼전이 어떤 반응을 보일 줄 모르고 그런 부탁을 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분이 클라이언트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죄송합니다.”
“뭔 소리야, 그게?”
“제가 좀 더 일찍 결정해야 했었는데.”
“한 변호사.”
“네.”
“한 변 앞에서 이해조정 하나 제대로 못 하고 이런 말을 하는 게 우습지만, 파트너들을 너무 허수아비로 생각하지는 마.”
꾸짖는 말씀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가볍게 하시는 말씀도 아니었다.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다고 대답하려다가 그냥 들었다.
“대한민국 최고 로펌이다 보니까 이런 일이 간혹 벌어지는데, 대한민국 최고 로펌이니까 벌어지는 거야.”
대한민국 최고 로펌이니까 벌어진다는 말.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어?”
“네.”
이해할 수 있었다.
최 변호사님이 삼전을 찾아간 건 나 때문이었다.
내가 삼전 일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삼전 내부 이해충돌 때문에 의뢰인의 동의 없이 내가 선뜻 사건을 맡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설명하기 위해서.
이 일로 내게 불똥이 튀지 않게 하도록.
그것밖에 없었다.
“내가 미안하네. 파트너가 돼서 이런 것도 해결해 주지 못해서.”
“아닙니다.”
“그래서, 클럽 사건을 안 할 거면, 삼전 쪽 의뢰를 맡겠다는 거야? 그게 한 변의 선택이야?”
아니다.
‘둘 다 하지 않겠다’가 내 결정이다.
“아니요. 최 변호사님이 괜찮으시다면, 저는 이번 사건에서 빠지고 싶습니다.”
“응?”
“하고 있는 사건들만으로 좀 버거워서요. 하버드 로스쿨 인터뷰랑 유학 준비도 해야 하고···.”
순간 최 변호사님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내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 건가?
그래서, 준비해 간 설명을 하려고 하는데···
“하하하- 그렇지. 한 변이 하고 있는 사건 수가 많지. 하하하- 진짜 많지. 맞아. 유학도 가야 하고 말이야. 내가 그걸 잊고 있었네. 하하하.”
“···그래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시면···.”
“아니야. 한 변의 결정이 현명한 거 같아. 무리할 필요는 없지. 중요한 시기인데. 오케이, 그렇게 하자고.”
백인찬 변호사님과 마찬가지로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네.”
“알았어. 삼전에는 내가 설명할게.”
“고맙습니다.”
아니, 한 변호사, 내가 고마워.
“그럼, 이번 건은 그렇게 정리하자고.”
“네.”
“그래, 바쁠 텐데, 가서 일 봐.”
“네.”
“아참, 한 변호사 하버드 로스쿨 인터뷰가 언제지? ”
“다음 달 초입니다.”
“준비 잘하고 있지? 꼭 들어가야 해.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네.”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고. 다른 팀 일들은 모르겠지만 우리 팀 일은 내가 커버해 줄 테니까. 필요하면 휴가라도 쓰라고. 눈치 보지 말고.”
“네, 고맙습니다.”
그렇게 나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파트너의 방을 나왔다.
···
한범상이 나가고 혼자 남은 방,
최재민의 얼굴에 미소가 드리워진다.
삼전은 초대형 클라이언트다.
김앤강 매출의 15% 기여하고 있는 클라이언트.
당연히 눈치가 보이고, 눈치를 보고 있다.
그렇다고 김앤강이 ‘삼전의 로펌’은 아니다.
무작정 ‘을’이 아니라는 말이다.
최재민은 한범상이 고마웠다.
현재 삼전이 국제중재팀에게 주는 사건은 많지 않다.
적어도 아직은.
그걸 점차 늘려가고 싶어 게 목적이기는 해도, 그렇다고 무조건 그들이 1순위로 놀 의도는 없다.
다양한 의뢰인 리스트에 삼전이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일 뿐.
그러한 최재민이 삼전을 찾아간 이유는 한범상 때문이었다.
사건 배당권은 시니어 파트너에게 있다.
이해충돌을 해결해야 하는 책임도 시니어 파트너에게 있다.
솔직히 두 클라이언트 모두 한범상의 클라이언트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뒷짐 지고 ‘니가 결정해’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찾아갔다.
그리고 부탁했다.
한범상이 두 사건 모두 할 수 있도록.
그게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결과에 대한 원망이 다른 팀에서 삼전 일을 하고 있는 한범상에게 가지 않도록.
“제가 드리는 제안입니다.”
삼전이 어떻게 나올지 예상 못 한 건 아니었다.
생각보다 조금 더 세게 나오기는 했어도 불평을 들을 줄 알았다.
그게 김앤강의 대처냐고 묻는 오정진 상무의 반문에 최재민은 그렇게 대답했다.
이제 마음이 편해졌다.
한범상이 사건을 하지 않겠다고 의사를 밝혀준 이상, 최재민은 한결 자유로워졌다.
쓰윽
[백인찬: 클럽한테 컨플릭트 때문에 사건을 맡지 못한다고 방금 메일 보냈으니까, 삼전 사건 해.]‘아무튼 무대뽀 같은 양반. 인제 와서 자기가 하라고 하면 다 그렇게 되는 줄 아나, 참나-’
하지만, 최재민은 백인찬이 슬슬 좋아지기 시작한다.
띠리링- 띠리링-
당연히 삼전의 신뢰를 얻고 싶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정후가 될 생각은 없다.
-삼전 전략팀 상무실입니다.
“김앤강의 최재민 변호사라고 합니다. LA항 사고 관련해서 상무님한테 상의드릴 것이 있어서 전화했는데, 자리에 계시면 통화를 좀 할 수 있을까요?”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
“안녕하십니까, 상무님, 최재민입니다.
어제 의논드린 것 관련해서 사무실에 돌아와 해상팀하고 얘기를 좀 더 했습니다.
짧게 말씀드리면, 해상팀에서 선주 측 대리를 맡지 않는 걸로 결정이 났습니다.
그래서, 이해충돌 이슈 없이 삼전 디스플레이 대리를 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한범상 변호사는 몇 달 뒤에 유학을 가야 해서요.
지금 시점에서 신건을 배당하는 건 무리가 있다는 판단입니다.
부디 이해해 주신다면······.”
어제와는 다르다.
왕국 후계자의 오른팔을 만나는 속국의 대신이 아니다.
.
.
.
그런 담대함과 자신감이 통했을까.
일주일 뒤,
로스앤젤레스.
-한 변호사, 방금 삼전 디스플레이에서 전화가 왔는데 말이야.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 138화
셀프 스토리지를 좋아하는 양파 같은 남자
봄바람이 따뜻한 밤.
범상과 하영은 저녁 식사 후 청계천을 걸었다.
“이렇게 좋은 산책길이 근처에 있는데,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오는 게 전부인 것 같아요.”
“그러게요. 저도 여기 와본 지 진짜 오래된 것 같아요.”
생각보다 사람이 많다.
낯선 사람들 사이를 함께 걸으니,
좋다.
가까워진다.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시작해서 종각을 넘어
제법 많이 내려왔는데도 둘 다 돌아갈 생각은,
없다.
멀리 가면 갈수록 돌아오는 길이 길어지니까.
“아, 맞다. 공연. 내일이죠? 혹시 다른 분이랑 가기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범상은 같이 보러 가기로 했던 공연이 떠올랐다.
“환불받았어요.”
아쉽다.
같이 갈 수 있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좀 더 지켜볼걸.
잠깐, 그런데···
“아, 공짜 티켓이 아니었나요?”
“네.”
아차.
말실수.
하영도 인지했다.
재빨리 부연한다.
“원래 친한 언니가 아는 사람이랑 보려고 산 티켓이었는데, 못 가게 되어서 저를 준 거였어요. 근데, 저도 못 갈 것 같다고 돌려준다고 하니까, 그냥 환불받아서 밥 사 먹으라고··· 미국에 사는 언니인데 요새 로펌 일 때문에 자주 한국 와서···.”
구구절절 디테일을 붙인다.
“아-”
다행히 범상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래도 죄송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지켜보고 말씀드릴 걸 그랬어요.”
“한 변호사님도 몰랐잖아요. 상황도 정신없었고. 괜찮아요.”
“다음에 보러 가요.”
평소의 그녀라면 ‘언제 볼까요?’라고 물었겠지만, 조금 전 말실수가 들킬까, 하영은 성급히 주제를 돌렸다.
때마침 덤불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야옹-
“어머, 귀여워-”
“야, 한나비! 니가 여길 어떻게···.”
아니었다.
나비와 비슷하게 생겨서 순간 착각했다.
그럴 리 없지.
아공간의 나비가 여기에 나와 있을 리가···
자세히 보니 앞발에 있는 무늬가 다르다.
그래도 진짜 비슷하게 생겼다.
어찌나 놀랐는지, 불쑥 이름이 튀어나올 정도로.
“한나비? 한 변호사님, 아는 고양이예요?”
“같이 사는 고양이랑 너무 닮아서 그만···.”
처음 듣는 이야기.
같이 일한 지 근 5년이 되어가는 고양이를 키운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 남자 은근히 비밀스럽다.
“한 변호사님, 고양이 키우세요?”
“네? 아, 네.”
아공간 식구들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동물병원이나 반려동물센터에 갔을 때나 필요시 모르는 사람에게 언급한 적은 있어도 주위 사람들에게 말한 적은 없다.
티 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불쑥 튀어나와 버렸다.
“풉.”
“왜요?”
“말이 재미있어요.”
“뭐가요?”
“방금 같이 산다고 해서요. 그리고 그냥 ‘나비’가 아니고 ‘한나비’라고. 많이 좋아하나 봐요.”
“뭐, 네. 같이 오래 지내다 보니까···.”
“오래 키우, 아니, 같이 사셨어요?”
한 10년.
내 생명을 구해준 녀석.
다른 사람이 물었으면 그냥 얼버무렸을 텐데, 하영에게는 그러고 싶지 않다.
다 밝힐 순 없지만, 그렇다고 꼭꼭 감추고만 싶지도 않다.
“네.”
“귀엽겠다.”
“덩치가 큰 놈이라서 귀여운지는 잘···.”
“얘처럼요?”
야옹-
범상은 덤불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고양이를 다시 한번 봤다.
진짜 닮았다.
근데, 얘는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왔지?
나비를 닮은 고양이는 범상을 다리 사이를 돌며 엉덩이를 비비고는 튀어나왔던 덤불로 사라졌다.
길고양이인가? 길고양이치곤 너무 깨끗했는데.
흔히 보이는 품종도 아니고···
“와- 신기하다.”
“뭐가요?”
“고양이가 한 변호사님을 좋아하는 거 같아요. 제가 손대려고 하니까 쓰윽 피하던데. 역시 집사라는 걸 알아본 걸까요?”
“집사요?”
“어? 그렇게 부르는 거 아니었어요? 주위에 고양이 키우는 친구들을 그렇게 부르던데, 자기가 고양이 집사라고.”
“아-”
“나비도 저렇게 생겼어요?”
“네.”
“보고 싶다.”
범상은 보고 싶다고 말한 하영의 얼굴을 봤다.
정말 보여주고 싶다.
그녀에게는.
“그럼, 언제 제 밭에 한번 놀러 오실래요?”
“밭이요? 한 변호사님 밭이 있으세요?”
“네.”
이 남자, 정말 까도 까도 새로운 게 나온다.
“좋아요! 언제요?”
“언제든. 변호사님이 편한 시간에.”
“그럼···내일?
그렇게 다시 약속을 잡은 둘.
하지만, 또 다른 방해꾼(?)이 나타나는 바람에 약속은 또 미뤄져야 했다.
24시간 뒤, 범상은 LA행 비행기에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