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4)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4화(14/190)
【014화 – 자질, 에이스 그리고 두름성】
국제 중재에 관한 책들을 찾아 읽었다.
생각보다 많지는 않았다.
도하영 변호사가 왜 그 정도만 읽으면 될 것 같다고 얘기했는지 공감할 수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변호사님.”
“안녕하세요, 과장님.”
“빨리 오셨네요.”
“오늘은 평소보다 차가 안 막히데요. 늦을 줄 알아서 빨리 나왔더니.”
“그럴 때가 있더라고요. 그래도 막히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그럼요.”
“근데, 오늘은 마이클 변호사님이 아니라 다른 분이 오셨네요?”
“네, 코로나 걸렸어요. 오늘은 우리 팀 다른 외국 변호사.”
“그러시구나. 저런-”
“이쪽은 한범상 변호사.”
“안녕하십니까, 한범상입니다.”
해상법은 그 양이 방대했다.
단순히 드라이 케이스, 웻 케이스로만 나뉘는 게 아니라, 보험 관련 문제, 책임 제한 문제, 국제 통상 문제, 심지어는 해적 관련 문제까지···
수백 년 발전해 온 법인만큼, 양도 양이지만 깊이도 깊었다.
솔직히 어느 전문 분야가 안 그러겠냐마는, 1년간 책 십여 권 공부했다고 이해했다고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었다.
중재는 조금 달랐다.
참고할 만한 것이 그리 많지 않았다.
중재 제도의 역사 길지 않아서도 그렇겠지만, 중재법은 권리와 이익을 규정하는 실체법이 아닌 절차를 규정하는 법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더 쉬웠냐고?
절대 그렇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봐야 할 것들이 더 방대하다고 느껴졌다.
“변호사님, 저희는 당연히 DULL 사(社)하고 체결한 글로벌 크로스 라이센싱 계약하에서 가능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사용한 IP이거든요.”
“글로벌 크로스 라이센싱을 체결했다고 해도 안티-트러스트 규제는 여전히 적용되는 부분이고, 라이센싱 계약서 74조 3항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계약 당사자가 각각 책임지기로 명시되었기에 단순히 그렇게 생각했다는 주장은 전략적으로 추천해 드리기 힘듭니다.”
“그러면 어쩌죠, 변호사님?”
“일단은 사용하신 IP 관련해서 DULL 사(社)하고 주고받은 공문들, 담당자 회의록 등 기록 중에서 ‘관련 리스크에 대해 DULL에서 고지했었다.’라고 주장할 만한 증거를 찾는 게 우선일 것 같아요.”
크로스 라이센싱(Cross Licencing) 계약.
계약 당사자들이 소유하고 있는 기술이나 판권, 상표권 등 지적 재산을 서로 좀 더 자유롭고 포괄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체결하는 계약이다.
애플-마이크로소프트, 삼성-구글 등 많은 국제적 대기업이 이 같은 계약을 체결하고 서로의 지적 재산을 사용하고 있다.
얼핏 들으면 ‘너는 내 거 써. 나는 네 거 쓸게’ 같이 들리지만, 결코 단순한 계약이 아니다.
특허법 관련 가장 복잡한 계약이고 반독점법 및 같은 국제 규제 등을 꼼꼼하게 살펴야 하는 아주 까다로운 계약이다.
플러스, 만약 의뢰인이 그와 같은 계약을 여러 다른 파트너사와 맺고 있다면 각 계약 간에 충돌하는 부분은 없는지 세부적으로 살펴야 하는 부분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그러면 이걸 왜 국제중재 변호사가 하고 있냐고?
특허법팀이나 반독점법·컴플라이언스팀이 하지 않고?
“저도 돌아가서 앨런 앤 오버리하고 EU 규제 관련해서 피해갈 수 있는 구석이 있는지 다시 한번 회의해 볼게요.”
“저희 전무님이 요새 이 케이스 때문에 아주 신경이 곤두서있습니다.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변호사님.”
“네, 저희도 혹시 놓친 방법이 있는지 다방면으로 조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로펌 내 특허법팀이나 반독점법·컴플라이언스팀은 국내 팀이다.
주로 국내 특허와 국내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규제·준법감시) 관련해서 자문한다. 즉, 외국 기업이 국내 특허법이나 국내 규제법 관련하여 문의가 있을 때 찾는 팀이다.
다른 나라 법·절차 관련해서 자문을 구할 것이 있으면 해외법무팀을 찾아야 한다. 이때, 만약 이미 국외에서 소송이나 중재가 제기되었으면 국제중재팀이 맡게 된다.
그것이 국제중재팀이 이 사건을 핸들하는 이유이다.
···
생각보다 회의는 길지 않았다.
하지만, 한 시간 남짓 오고 간 정보의 양은 절대 적지 않았다.
“어때? 회의 내용 이해했어, 한 변?”
“네, 어느 정도는 한 것 같습니다.”
이 사건 관련해서 마이클 변 변호사가 번역을 부탁했다.
유럽 내 특허법 관련해서 자문을 구하는 이메일에 첨부될 국내 서류들이었다.
꼼꼼하게 봤다.
번역해야 할 서류할 문서들뿐만 아니라 기록 전체를 처음부터 착실하게 검토했다.
그래야 오역이나 놓치는 것 없이 번역을 잘할 수도 있었기에.
다만, 그게 전부이지는 않았다.
“그럼, 나하고 추가로 회의하지 않아도 앨런 앤 오버리에 후속 이메일 쓸 수 있겠어?”
“네, 할 수 있습니다.”
여기는 대한민국에서 최고라고 불리는 로펌이었다.
이쪽 분야에서는 가장 똑똑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일하는 곳.
운이 좋게도 그런 곳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나는 에이스가 아니다.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간신히 변호사가 됐다.
서울대? 하버드?
아버지의 아공간을 미리 발견했으면 갈 수 있었을까?
솔직히 어려웠을걸.
그런 내가 기회를 달라고 아우성치면 줬을까?
국제중재팀 들어와서 이 팀에 소속된 변호사들의 학력과 경력들을 찾아봤다.
내가 파트너 변호사라고 해도 나한테 주고 싶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일을 열심히 하지 않을 것 같아서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학력이나 경력 같은 객관적인 지표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하는 것이 또한 확률적으로 현명한 결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벤치 끝에 앉아있는 후보 같은 존재다.
그런 내가 할 수 있는 건 결원이 생기는 순간을 기다리며, 언제든 투입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 그럼, 초안 잡아서 보내기 전에 나한테 보여줘.”
“예.”
-*-
김앤강,
최재민 변호사 사무실.
「<변호사님, 말씀하신 앨런 앤 오버리 이메일 초안입니다>
from 한범상 변호사」
퇴근 무렵 한범상으로부터 이메일 초안이 들어왔다.
몇 군데 손봐야 할 데는 있지만, 들어가야 할 내용은 하나도 빠짐없이 들어가 있다.
아니, 아까 회의 때 논의하지 않은 질의도 포함되어 있다. 수정 시, 재민이 추가하려고 했던 이슈. 사건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지만 캐치할 수 있는 포인트였다.
국제중재는 진입장벽이 높지 않은 분야다.
하지만 우습게 생각하고 들어왔다가는 손가락만 빨고 있게 되기 십상이다.
두루두루 널리 알아야 하고 원하는 정보나 도움이 어디 있는지 찾을 줄 알아야 하는 분야다.
그리고 어느 분야의 변호사보다 버서타일(versatile, 두름성이 있는) 해야 한다.
한범상이 보낸 이메일 초안을 검토하던 최재민의 얼굴이 재미있는 표정을 지었다.
흥미롭거나 기대 이상의 결과가 나왔을 때 짓는 표정.
띠리링- 띠리링-
최재민은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변호사님.
“GL 디스플레이 싱가포르 중재 건 있잖아.”
-네, 변호사님.
“그거 마이클 변 변호사 빼고, 한범상 변호사한테 줘.”
-배당을 바꾸라는 말씀이신가요?
“응.”
또 다른 문 II
“도 변, 그 얘기 들었어? GL 디스플레이 중재건 BS에게 재배당됐다는 얘기?”
한범상의 존재가 불만스러운 어쏘 변호사들은 그를 ‘BS’라고 불렀다.
누가 왜 그렇게 부르는 거냐고 물으면, 범상의 영어 이니셜을 따서 그렇게 부른다고 대답하겠지만, 사실은 영어 욕 ‘Bullshit’(소똥, 헛소리)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낙하산’이라고 부르면 티가 나니까 바꾼 별명이 고작 그거였다.
“네, 들었어요.”
“마이클이 화가 엄청나게 났던데, 사건 빼앗겼다고. GL 디스플레이 중재건이 꽤 큰 건 아니었어? 정말 강태산 변호사랑 뭐가 있나···근데, 도 변, 도 변은 아까부터 왜 그렇게 입꼬리를 씰룩거려?”
“그럴 일이 있어서···.”
하영은 자꾸 입꼬리가 올라갔다.
고소했다. 낙하산이라고 그렇게 무시하면서 인턴생 부리듯 시시콜콜한 번역까지 다 맡기더니 쌤통이다.
마이클 변이 맡았던 사건만 재배당된 게 아니었다.
그에게 번역일을 맡겼던 어쏘 변호사들의 사건 중 몇 개가 한범상에게 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런가 보다 했다.
재배당이 종종 있는 일은 아니었어도 파트너 재량에 따라 간혹 있는 일이니까.
그를 못마땅해하는 어쏘 변호사들은 크게 동요했다.
하영은 모른 척, 관심 없는 척 굴었다.
그래도 내심 놀랐다. 최재민 변호사는 도움이 될 만한 어쏘가 아닌 이상 그렇게 일을 시킬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새로운 사건을 그에게 배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정말 궁금해졌다.
한범상이 어떻게 증명했는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