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41)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41화(141/190)
141화 이제 보이기 시작했다
아람코의 토랜스 정유공장 인수 관련해서 진행되었던 LA 미팅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 편을 알아보던 중, 최 변호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띠리링- 띠리링-
“네, 변호사님.”
-한 변호사, 어떻게, 보러 간 일은 잘되고 있어?
“네, 일단 첫 단추는 잘 끼운 것 같고요. 한 달 뒤에 다시 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내일 돌아가려고 비행기 편을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그걸 왜 한 변이 해? 사무실에 전화해서 시키지.
“주말이라도 자리가 있으면 바로 티켓 구매해서 출발하려고요.”
예상했던 것보다 일정이 길어져 어떻게 된 상황인지 물어보려고 전화하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다른 용건이 있으셨다.
-이걸 어쩌지? LA에 며칠 더 있다가 와야 할 것 같은데.
“?”
-한 변호사, 방금 삼전 디스플레이에서 전화가 있는데 말이야···
삼전에서 의뢰가 들어왔다.
【141화 – 이제 보이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 선생님으로부터 ‘지구촌’이라는 말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한 기억이 있다.
「통신과 교통의 발달로 이제 세계가 무척 가까워졌어요. 지구 반대편에 사는 친구와 통화도 할 수 있고, 비행기를 타면 스물네 시간 안에 지구 어디든 갈 수 있지요.」
핸드폰도, 인터넷도 없었던 시절, 솔직히 이해가 잘 가지 않는 설명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구 마을이라니.
비행기는커녕 지구 반대편에 어떤 나라가 있는지도 몰랐던 내겐 거짓말처럼 들렸다.
“하이, 제임스.”
“하이, 범상.”
물론 지금은 선생님의 말씀에 100% 공감한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각종 SNS에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클릭 한 번이면 누군가의 팔로워가 혹은 ‘친구’가 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까.
한국행 비행기를 미루고, 노스 오브 잉글랜드 클럽의 미주 클레임 담당자 제임스 매닝을 만났다.
시애틀에 주둔하고 있는 그였지만, 얼마 전, LA항에서 발생한 선박 사고 때문에 내려와 있었다.
“LA에는 웬일이야? 컨플릭트 때문에 이번 사건을 수임할 수 없다고 듣기는 했는데.”
“다른 일 때문에 왔어. 아참, 수임 거절은 미안하게 됐어. 일이 좀 꼬이는 바람에 그렇게 됐어.”
“나한테 사과할 일은 아니지. 그리고 크게 한 일도 없었을 것 같아.”
“그래? 다행이네.”
“응. 그나저나 다른 일 뭐?”
밴쿠버 교각 사건으로 꽤 친해진 그였다.
규모가 큰 사건이었다 보니 어느 정도 해결되는 데까지 근 1년 반 가까이가 걸렸다.
사실 그것도 빠른 편. 6~7년도 넘게 걸리는 사건들도 많다.
만난 건 그때 한 번뿐이었지만, 그간 주고받은 메일들이 많아서 그런지 오래 알고 지낸 사이 같은 기분이 든다.
“아람코. 토랜스 정유공장 인수를 검토 중이거든.”
솔직히 대답했다.
비밀도 아니고. 검색 창에 「아람코」라 치면, 첫 페이지에 기사가 나오는 정보이다.
“너 아람코도 대리해?”
“응.”
“와우-”
“뭘 그렇게까지 놀래. 아람코를 대리하는 로펌이 미국에만 해도 한둘이 아닌데.”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왠지 시시한 일로 불려 온 건 아닌 거 같은데. 게다가 토랜스 정유공장 인수면 수억 달러짜리 딜이잖아.”
“딜에 대해 알고 있어?”
“알고 있냐고? 정유공장이라고. 탱커(tanker, 유조선)들이 오고 나가는. 당연히 알고 있지.”
하루 최대 16만 배럴의 원유, 연간 1,800만 배럴의 휘발유를 생산하는 토랜스 정유공장은 LA항과 롱비치항을 통해 한국, 일본을 포함 환태평양 지역의 여러 나라에 석유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당연히 해운업계하고도 관련이 있다.
유조선들이 정기적으로 공장의 석유들을 실어 나른다.
그중에는 노스 오브 잉글랜드 P&I 클럽이 보장하는 유조선들도 포함되어 있다.
“자세히 알고 있느냐는 뜻이었어. 너무 반갑게 이야기하길래.”
“그건 아니고. 뉴스에 나온 정도. 왜? 딜이 틀어졌어?”
“아니. 잘 진행되고 있어. 적어도 지금까지는.”
제임스가 궁금해하는 것들을 먼저 대답해 준 나는 그의 질문이 끝나고 난 뒤 얼마 전 LA항에서 난 사고에 관해 물었다.
“그래서? LA항 사고 조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
“양쪽 다 우리 클럽 소속 선주들 선박이라서 신속하게 처리될 것 같아.”
LA항 앵커리지에서 선박 두 척이 충돌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그래도, 선박과 싣고 있던 화물들이 입은 피해는 제법 컸다.
사고 당시 선장은 공동해손(General Average)을 선포했고, 그에 따라 조사는 과연 사고가 공동해손의 요건들을 전부 갖추었는지부터 시작되었다.
선장이 공동해손을 선포하면 사고 당시 배에 실려있던 화주들 또한 사고로 인한 손해와 비용을 분담해야 하기에, 조사가 좀 더 까다로워지고 정산 역시 복잡해진다.
이를 조사하는 전문가가 따로 있다.
“아, 그래?”
“응, 둘 다 우리 멤버의 선박들이야.”
일 년에 대략 30,000~40,000척의 화물선들이 아시아 대륙과 북아메리카를 오고 간다.
그중 90% 이상이 전 세계 스무 개도 안 되는 대형 선박회사의 배들.
그리고 그 배들은 전 세계 열 개도 안 되는 대형 클럽(선박보험회사)들에 가입되어 있다.
그러다 보면 이렇게 같은 클럽에 가입된 선박회사들의 배끼리 충돌사고 날 때도 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냐고?
일이 훨씬 수월하게 처리된다.
어차피 같은 주머니(보험회사인 클럽의 재정)에서 나가야 하는 돈이고, 그 돈은 결국 피보험자들인 멤버들이 충당해야 하는 돈이기 때문에 사소한 것들로 싸우지 않는다.
클럽은 보험회사이지만, 보험료로 수익을 내는 일반 보험회사들과는 조금 다르다.
멤버들의 모여 만든 일조의 조합 같은 형태이기에, 수익은 이월되고 지출이 많아 손해가 생기면 멤버인 선주들은 가입한 선박의 톤 수만큼 다음 해에 충당해야 한다.
“그러면 적어도 선주끼리는 중재도 없겠네.”
“아마도 그럴 것 같아. 일단 1차 조사를 진행했는데, 화주 측도 뭐 딱히 문제를 제기할 것 같지는 않고.”
다행이다.
물어보기가 좀 더 수월해졌다.
“사실은 내가 MV 글로리아 호에 실려있는 삼전 디스플레이 화물 관련해서 수임받은 사건이 하나 있는데 말이야···.”
···
코로나로 인한 엠바고가 끝나고 한 1년쯤 지났을 때였다.
캐나다 밴쿠버의 중고차와 중고 대형 전자제품의 가격이 급상승했다.
심지어 1년 된 중고와 새 제품의 가격 차이가 나지 않은 예도 있었다.
이유는 시장에 신제품들이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왜 신제품 공급이 지연되었냐고?
원인은 다양했다.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생산력이 떨어진 상태였기에 정상화되기에는 당연히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생산력 저하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해운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북미에서 판매되는 전자제품이나 차의 상당량은 해외 공장 생산품들이 차지하고 있다.
당연히 주된 운반수단은 선박.
가장 중요한 항구는 소위 산페드로 베이 포트 콤플렉스라고 불리는 LA항과 롱비치항. 수입차의 경우, 북미 물량의 50%가 이 두 항구를 통해 들어오고, 전자제품의 경우 40%가 들어온다.
코로나로 인해 물동량이 줄자, 두 항구의 관리회사들은 인원을 감축했다.
어쩔 수 없는 일.
하지만, 코로나가 끝나고 수요가 다시 정상화되었을 때, 해당 인원 감축은 생각보다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화물을 실은 선박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는데, 하역량을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애초에 다른 항구들을 그만한 선박 물량을 감당할 수 없었고,
갈 데가 없는 선박들은 화물을 실은 채 몇 주, 심지어 몇 달을 기다려야 했다.
기다림은 돈.
가만히 있는 배는 돈을 벌고 있지 않는 것이고, 대신 유지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쌓인다.
그 비용은 보험료로, 보험료는 다시 선주의 비용으로, 선주의 비용은 화주의 비용으로, 화주의 비용은 소비자의 비용으로 전가된다.
당장 차가 필요한 사람은, 냉장고가 필요한 사람은 웃돈을 주고라도 중고 제품들을 사야 했다.
LA 항구의 하역 인부 수가 줄었을 뿐인데, 캐나다 밴쿠버의 중고 물건 가격이 급상승했다.
이처럼 세계 경제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웃집 고양이가 죽으면 우리 집 창고에 쥐덫을 놔야 하는 것처럼, SNS가 없었던 그 시절에도 이미 우리는 지구촌이었다.
띠리링- 띠리링-
-헬로우. 누구지?
“안녕하세요, 미스터 뮐러. 김앤강의 한입니다. 범상 한.”
LA항 앵커리지에서 선 박 두 척이 충돌했다.
그중 한 선박에는 삼전 디스플레이가 포드사(社)에 공급하는 OLED 패널들이 실려있었다.
제임스 매닝으로부터 사고 원인에 대해 들은 나는 MG 사(社)에 있는 ‘1촌’ 제너럴 카운슬 토마스 뮐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 한, 어떻게 지냈어? 지금 디트로이트인가?
“아니요. 아람코 일 때문에 LA에 있습니다.”
-아람코? 그럼, 앤드류랑 같이 있겠구먼.
“예.”
-근데, 무슨 일이야?
선박이 충돌해서 OLED 패널 화물이 손상되었는데, 왜 MG 사(社)에 전화를 하냐고?
“미스터 뮐러, 요새 전기차 시장은 어떻게 되고 있나요? 많이 떨어졌다고 하던데.”
모든 일들은 연결되어 있다.
이제 좀 보이기 시작한다.
-*-
서울, 강남,
월요일.
삼전 본사 전략팀 상무실.
얼마 전 LA항에 발생한 사고 안건 관련해서 회의 중이다.
“그래서 포드에서는 뭐래?”
“계약을 파기하겠다고 했답니다.”
“금액은?”
“한화로 387억이라고 합니다.”
삼전 디스플레이 법무팀에서 해결해야 할 일지만, 청구 금액이 적지 않다.
게다가, 상대가 MG 社(사)와 함께 미국 자동차 산업을 양분하고 있는 포드.
자동차 배터리 시장의 패권을 두고 경쟁하고 있는 삼전.
본사 전략팀이 이 사건을 주시하고 있는 이유였다.
“너무 큰데. 단가가 85억 원 정도라고 하지 않았어? 거기에 지연손해 플러스 50% 정도 예상한다고 했었잖아.”
“처음 삼전 디스플레이 법무팀에서 보고 받기로는 그랬는데, 오늘 오전에 통화했을 때, 저쪽에서 2,900만 달러 청구서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사이에 OLED 패널 가격이 그렇게 올랐을 리는 없고. 이유가 뭐야? 명세는 받았어?”
“네. 가장 큰 원인은 LA항에 백로그가 심해 보충 물량을 구한다고 해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거라는 게 이유였습니다.”
“아무리 잔량이 많다고 해도 그건 좀 심한데. 북미에 이미 들어가 있는 우리 쪽 물량은 없어?”
“대체할 만한 물건이 현재 북미 내에는 없답니다.”
“흠···.”
향후 좀 더 큰 비즈니스 파트너가 될지도 모르는 포드와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 웬만하면 분쟁 없이 해결하고 싶지만,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청구 금액이다.
“우리 측 로펌은 뭐래?”
“일단 금액의 합리적인 부분을 검토해 봐야겠지만, 청구 항목 상으로는 전부 청구 가능한 것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때 말한 제너럴 에버리지(General Average, 공동해손)인가에는 포함시킬 수는 없는 손해인 거야? 선주 쪽에 부담시킬 방법은 없어?”
“그렇다고 합니다. ‘책임 제한’인가 하는 제도가 있어서 제삼자 간의 계약에서 발생하는 지연손해 부분까지는 선주에게 청구하기 힘들 것 같다고 합니다. ”
“무슨 법이 그래?!”
삼전의 잘못으로 사고가 난 것도 아닌데.
선박 손해는 같이 부담해야 하면서, 화주 측 손해는 전부 청구할 수도 없단다.
어찌 보면 선원들의 잘못으로 부딪힌 건데,
화주인 삼전 디스플레이가 덤터기를 쓰는 꼴.
이해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 오정진은 살짝 짜증이 났다.
하지만, 이런 일에 화를 내는 인물은 아니다.
“알았어.”
“네.”
부하직원을 돌려보냈다.
직원이 나가자, 노크를 하고 들어오는 비서.
똑똑-
“네.”
오정진의 대답에 문이 열리고 비서가 들어왔다.
“상무님, 회의 중에 김앤강 최재민 변호사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전화 달라고 했습니다. 전화 연결할까요?”
“무슨 일인데?”
“LA항 사고 관련해서 상의드릴 게 있다고 했습니다.”
LA항?
“알았어. 연결해.”
“네.”
비서가 나가고, 잠시 후 전화가 울렸다.
최재민이었다.
“네, 최 변호사님.”
-안녕하십니까, 상무님.
“LA항 사고 관련해서 저와 상의하실 일이 있으시다고요?”
-네, 좀 전에 LA에 있는 한범상 변호사와 통화를 했는데요···
실력 있는 변호사인 건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만능 해결사를 기대하진 않았다.
아람코의 동아시아 벤처 담당자랑 친분이 있다기에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을 뿐.
그런데,
“포드 측 변호사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요?”
오정진은 이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각성한 한범상의 진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