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42)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42화(142/190)
142화 경영의 영역
미시간, 디어본,
아메리칸 로드 1번지.
“미스터 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이번 만남이 양사 간의 좋은 관계의 시작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그러기를 희망합니다. 돌아가서 사장님과 의논한 후에 추후 미팅 관련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포드사(社) 경영진과의 미팅을 마치고 나온 오정진은 돌아서 그 역사적인 빌딩을 다시 한번 올려다봤다.
12층밖에 되지 않은 땅땅한 건물.
건물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스틸과 유리가 구식 에어컨을 연상시킨다.
21세기에 들어서 지어진 미 서부 IT 기업들 헤드쿼터에 비교하면 특색도 없고 평범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 어느 건물보다 단단해 보인다.
‘이 단단한 곳을 한범상 변호사, 그 친구는 어떻게 뚫었을까?’
포드 본사 건물의 외관을 둘러보며 한범상을 떠올리고 있는 사이, 그를 태우고 갈 차가 앞에 섰다.
동행한 전략팀 직원이 그를 위해 뒷좌석 문을 열자, 오정진은 차에 올라타면 그에게 물었다.
“차 팀장.”
“네, 상무님.”
“차 팀장은 회의 마지막에 들어와 잠깐 인사하고 나간 사람이 누군지 알아?”
“아···잘 모르겠습니다.”
“윌리엄 포드 주니어야.”
“아! 그분이 윌리엄 포드 주니어인가요?”
윌리엄 클레이튼 포드 주니어,
창업자 헨리 포드의 손자,
전임 CEO, COO 그리고 현 이사회 의장.
“포드의 실질적인 주인이지.”
“그런 분이 일부러 찾아와 상무님과 인사를 나누고 간 거면, 저쪽도 그만큼 진지하다는 뜻이 아닐까요?”
속단은 금물.
오정진은 첫술에 김칫국부터 마시지 않는다.
공항으로 향하는 길, 차창 밖으로 미시간의 미국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오정진은 다시 한번 한범상을 떠올렸다.
‘밑에서 일하는 전략직 직원은 윌리엄 포드 주니어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그 친구는 어떻게 내 머릿속을 읽었지?’
서울에 돌아가면 한범상을 불러 직접 물어볼 생각이다.
그전에 먼저 지시할 일이 있다.
“차 팀장.”
“네, 상무님.”
“디스플레이에 연락해서, LA항 사고 관련해서 선주 측에 클레임한 거 취하하고, 공동해손인가 하는 것도 적당한 선에서 합의해 주라고 해.”
“예,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합의할 때, 김앤강 해상팀을 통해서 하라고 해.”
“김앤강 해상팀이요?”
“응.”
【142화 – 경영의 영역】
광화문,
센터게이트빌딩 9층.
“네. 네. 네, 알겠습니다. 이 건 관련에서는 저희가 선주 측을 대리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노스 오브 잉글랜드 클럽 일을 자주 해서 담당자도 잘 알고 하니까, 일단 전해주신 대로 합의 의사는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이사님.”
딸깍.
삼전 디스플레이 법무이사였다.
백인찬은 까닭을 모르겠다.
LA항 사고 관련해서 왜 화주가 김앤강 해상팀에 연락을 취해왔는지.
띠리링- 띠리링-
“네, 한범상입니다.”
-한 변호사, 잠깐 회의 좀 할까?
백인찬은 한범상을 불렀다.
···
똑똑-
“변호사님.”
“들어와. 바쁠 텐데. 급한 거는 아니고, 방금 삼전 디스플레이에서 전화가 왔는데 말이야···”
한 달 반쯤 전, LA항에서 선박 충돌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관련해서 선주 측 보험자인 노스 오브 잉글랜드 클럽에서 의뢰가 들어왔다.
수임하고 싶었지만, 백인찬은 컨플릭트(conflict of interest: 이해관계 충돌) 이슈로 의뢰를 거절했다. 화주 중 하나인 삼전 디스플레이의 의뢰가 국제중재팀으로 들어왔단다. 삼전 본사에서 한범상을 찾았단다.
다른 때 같았으면 끝까지 싸웠겠지만, 백인찬은 클럽의 의뢰를 포기했다.
한범상을 위한 배려였다.
나중에 국제중재팀이 삼전 디스플레이의 의뢰를 거절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솔직히 짜증이 조금 났다.
‘그럴 거면 왜 클럽 일도 못 하게 해서는···.’
최재민을 불러다 따질까도 생각해 봤지만 그만두었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 눈앞의 일에는 불같아도 이미 지나간 일에는 세상 누구보다 초연한 사람이다.
백인찬은 잊어버렸다.
그런데···
이 일로 클럽으로부터 다시 전화를 받은 건 한 달 전쯤이었다.
삼전 디스플레이 측 대리를 하고 있냐는 질문이었다.
왜 묻냐고 되물었더니, 클럽의 미주 클레임 담당자가 LA에서 한범상 변호사를 만났는데, 아니라고 들었다는 것이었다.
사실이라고 확인해 주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그러면 자신들을 대리해 삼전 디스플레이에 연락을 해줄 수 있느냐는 의뢰가 들어왔다.
잠시 고민한 백인찬은 거절했다. 대신 삼전 디스플레이 담당자에 연락은 해줄 수 있다고 했다.
그 역시 한범상을 위한 배려였다. 삼전 디스플레이의 의뢰를 거절한 국제중재팀 사정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이미 못하겠다고 한 사건. 다시 맡아서 복잡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한범상이 클럽 측 대리를 할 생각이었다면, LA에서 미주 클레임 담당자를 만났을 때 보고가 왔을 거라 여겼다.
그런 일련의 사건들이 있고 난 뒤 한 달,
백인찬은 조금 전 삼전 디스플레이 법무이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엄밀히 말하면 대리해달라는 의뢰는 아니었다.
단순히 매우 호의적인 합의 의사를 클럽에 전해달라는 요청.
이미 선임한 로펌도 있는 상황에서 김앤강 해상팀을 연락해 왔다.
‘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한 변호사가 삼전에 무슨 선물이라도 줬어?”
한범상일 것 같았다.
“선물이요?”
“아니면 굳이 이걸 우리를 통해서 클럽에 전달할 이유가 없는데. 선임한 변호사가 없는 것도 아니고. 이러면 마치 우리가 해결한 것 같은 모양새가 되잖아.”
“아, 어쩌면··· 포드 쪽하고 생긴 분쟁이 하나 있었는데, 잘 해결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의견을 줬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포드하고 생긴 분쟁에 의견을 줬는데, 왜 삼전 디스플레이가 갑자기 선주 측하고 원만하게 합의하겠다고 나와?”
“그게 다 연결된 일이라서요.”
“LA항 사고랑?”
“네.”
해상 관련 일만 보고 있었던 백인찬.
그의 오른쪽 눈썹이 올라갔다.
그렇게만 들어서는 여전히 모르겠다.
하지만, 뭐가 됐든 수임하지 않기를 잘했다는 느낌이 든다.
“한 변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나는 그냥 클럽 측에 합의 의사를 전달만 할 생각인데, 혹시 내가 뭐 알아야 하는 게 있어?”
“없습니다.”
“알았어. 그래, 그럼. 가서 일 봐.”
“네.”
“수고했어.”
“해상팀 일을 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한 변이 뭘 했으니까, 일이 이렇게 쉽게 풀린 거겠지. 방금 한 변이 말했잖아.”
다 연결되어 있다고.
-*-
삼전 전략팀 상무실,
오정진은 한범상의 경력을 검토 중이다.
화려하다.
믿겨 지지가 않을 정도.
변호사 된 지 고작 6년, 김앤강에 입사한 지는 5년밖에 안 되는 어쏘 변호사가 이렇게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해봤다는 게 진위를 의심케 만든다.
경력이야 과장도 하고, 대표가 꽂은 낙하산이라면 사건에 이름만 올려놓고 참여했다고 할 수도 있는 거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결과물들은 그럴 수 없다.
몇 년 전 다른 사건에서 김앤강 특허팀이 가져온 소송 전략을 재검토하고 있던 오정진은 홈페이지의 나와 있는 한범상의 경력이 어쩌면 그의 진짜 실력을 다 담고 있지 않은 게 아닐까 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상무님, 혹시 인도네시아에 배터리 공장 설립을 염두에 두고 계시나요?
한 달 전, 한범상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LA항 사고를 두고 포드 측 변호사를 만나고 싶다면서 그렇게 물어왔다.
“내가 그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그게 왜 궁금한 지 한 변호사의 설명이 우선되어야 할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삼전이 인도네시아에 배터리 공장 설립을 고려하고 있다는 점이 전제되어야 제가 생각해 본 전략이 통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의아했다.
인도네시아에 배터리 공장을 짓는 아이디어를 검토 중이기는 했지만, 그걸 삼전 디스플레이 패널 사건을 맡긴 변호사가 물어온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연결고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럼, 일단 유선상으로 간략하게 제가 생각해 본 것들을 말씀드리고, 그러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기까지 제가 검토한 자료들과 자세한 로직은 전략팀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오정진은 한범상이 보내온 자료들을 다시 꼼꼼하게 검토하는 중이다.
이젠 놀랍다.
사실 몇 년 전 특허 소송 때도 한범상의 발표와 준비 자료에 놀랐지만, 지금은 그때와 또 달라졌다.
그때는 이미 나와 있는 공식 자료들을 기반으로 수립한 특허 소송 전략을 제시하는 정도였다면, 이번에는 시장 전체를 고려하여 삼전의 사업 전략을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한 분석이었다.
‘꿰뚫어 봤다’라는 표현이 100% 정확하지 않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급변하는 세계 정세 속에서 삼전 내부에서조차 다음 스텝에 관해 경영진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니까.
인도네시아에 배터리 공장을 설립하자는 안건을 두고 삼전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으니까.
하지만, 오정진은 한범상이 꿰뚫어 봤다고 느꼈다. 그가 제시한 전략이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그림이었기 때문이었다.
똑똑-
“상무님, 한범상 변호사가 왔습니다.”
“들어오시라고 해.”
“네.”
오정진은 한범상을 불렀다.
물어볼 것이 많다.
“안녕하셨습니까, 상무님.”
비서가 나가고, 잠시 후 한범상이 들어왔다.
오정진은 한범상을 바라봤다.
평범하게 생긴 얼굴.
키도 크지 않다. 177cm? 178cm?
하지만, 단단해 보인다.
이상하게도 열다섯이나 어린 그에게서 연륜 있는 사람한테서 나오는 아우라가 느껴졌다.
“한 변호사님, 이쪽으로 앉으시죠.”
오정진은 존댓말을 사용했다.
“대화가 길어질 것 같은데, 일단 차부터 한잔하실까요?”
“네, 좋습니다.”
-*-
같은 시각,
광화문, 센터게이트빌딩 12층.
공교롭게도 최재민 역시 범상이 삼전 전략실에 보낸 자료들을 검토하고 있었다.
2013년 7월, 미국 의회는 이란에 좀 더 강력한 경제제재를 가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이란의 지속적인 핵무기 개발에 대한 대응으로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도 같은 급의 제재를 가하고 있었지만, 2013년 제재는 그 파급력이 컸다.
그 결과 이란으로 통하는 자금 경로가 사실상 막혀버렸고, 당시 이란 기업들과 사업 중이었던 국내 기업들을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대한민국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것보다 이란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이라는 이름을 가진 대로가 강남에 있을 정도이니.
예전 같지는 않다고 해도 이란을 포함한 중동은 한국 경제에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이란 기업들과 사업을 하는 해외 기업은 똑같은 제재를 받을 거라고 경고했고,
이란으로부터 받을 돈이 있거나 갑자기 끊을 수 없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던 국내 대기업들은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그때 해결책을 낸 것이 김앤강이었다.
오래전 이란 정부가 대한민국 은행에 예치해 놓은 자금이 있었는데, 미국과 유럽의 이란 제재에 걸리지 않게 해당 예치금을 이용해 결제할 방법을 고안해 낸 것이었다.
예치해 놓은 자금이 상당했기에 대한민국 기업들은 당장 급한 불을 끌 수 있었다.
그런 예치금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방법은 누가 고안했는지 김앤강 내부에서도 쉬쉬했다.
김한 대표와 이정후 변호사가 대기업 총수들을 만난 오프-더-레코드로 조언했다는 이야기만 파트너들 사이에 알려졌었다.
당연히 기업들도 조용히 처리했다.
떠들며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것과 한범상이 한 일은 전혀 다른 성격의 일이었다.
다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있어서 묘하게 기시감이 느껴졌다.
이건 법무의 영역이 아닌, 경영의 영역이다.
파일 검토를 마친 최재민은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김한 대표에게 연락을 취했다.
LA 사무실을 열자고 건의할 생각이다.
그러려면, 먼저 한범상을 파트너로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