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44)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44화(144/190)
144화 숲속의 늑대들
“뭐? 국제중재팀이 뭐를 알아보고 있다고?”
당황스러운 소문을 들었다.
국제중재팀에서 LA 사무실 개소(開所)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라는 것이었다.
자기보다 몇 기수나 어린 최재민이 김한 대표를 찾아가 재가를 얻어냈다는 소문은 절대 유쾌할 수 없었다.
베트남 일을 그르친 이후로 조용히 쭈그리고 있었던 파이낸스팀 시니어 파트너 경수찬은 배알이 뒤틀렸다.
가뜩이나 눈엣가시 같은 한범상을 감싸고 있는 팀.
‘이정후 변호사님이 이걸 그냥 내버려 두신다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경수찬: 변호사님, 저녁때 시간 괜찮으십니까? 괜찮으시면 퇴근 후에 술 한잔 어떠십니까? 변호사님이랑 술 한지도 오래된 것 같아서요. 의논드릴 것도 있고.]경수찬은 이정후에 대해 제일 잘 알만한 사람, 기업법무팀 시니어 파트너 양호락에게 문자를 넣었다.
[양호락: 그러지 뭐. 일곱 시쯤 어때?] [경수찬: 좋습니다. 그럼, 그때 이 변호사랑 같이 갔던 삼청동 그 한정식집으로 예약하려고 하는데, 괜찮으신가요?] [양호락: 그 집 괜찮지.] [경수찬: 그럼, 거기로 예약하겠습니다.] [양호락: 오후에 클라이언트 미팅이 있어. 끝나고 그리로 갈 테니까, 거기서 보자고.] [경수찬: 네, 알겠습니다.]【144화 – 숲속의 늑대들】
삼청동의 한정식집,
가벼운 이야기로 인사를 주고받은 경수찬은 음식이 다 나오기만을 기다렸다가 조심스럽게 본론을 꺼냈다.
“변호사님, 그 얘기 들으셨습니까?”
“무슨 얘기?”
“국제중재팀에서 LA에 사무실을 알아보고 있다던데···.”
“응, 알고 있어.”
양호락은 경수찬이 왜 보자고 했는지 이미 알고 있다.
질문에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최재민 변호사가 박사님을 댁으로 찾아가서 재가받았다는 것도 사실인가요?”
“그랬다네. 나도 이정후 변호사님한테 들었어.”
‘그런데도 가만히 계신다고?’
경수찬은 두 눈이 동그래졌다.
“그러면, 이정후 변호사님도 알고 계시는 거네요?”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이야? 자네도 아는 걸 이 변호사님이 아시는 게.”
“네? 아, 그건 아닌데···최재민이가 그렇게까지 제멋대로 구는 것을 이 변호사님께서 가만히 두시는 것이 좀 이상해서요.”
속마음을 들켜버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경수찬은 본심을 까뒤집어 내보였다.
자신의 처지를 잘 아는 경수찬이었다. 지금 양호락과 심리 게임을 할 처지가 아니라는 걸 안다.
양호락은 그런 경수찬을 보고 웃었다.
같잖게 자신을 떠보려고 했으면 상대해 주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배를 까 보이는 자세가 마음에 든다.
“경 프로.”
“네, 변호사님.”
“경 프로는 이 변호사님께서 지금 손 놓고 가만히 있으실 거로 생각해?”
“그게 아니면···?”
“잘나갈 때는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이야. 재판해 봐서 알잖아. 판사가 상대방 편을 들어줄 때는 그냥 내버려 두는 게 낫다는 거. 백날 ‘이의 있습니다’라고 외쳐봤자, 우리만 다급해 보일 뿐이잖아. 저쪽 변론이 끝나고 난 뒤, 우리 변론 차례가 왔을 때 움직여야지.”
양호락의 말이 무슨 뜻인지는 이해했다.
하지만, 그러면 ‘우리 차례’가 언제 온다는 말인가?
그리고 ‘우리 차례’가 왔을 때 뭘 어떻게 하시겠다는 뜻이지?
경수찬은 알맹이가 궁금하다.
양호락은 그런 그를 한참 어린 후배 대하듯 보며 설명을 이었다.
“해외에 사무실을 내는 게 어디 쉬운 일이야?”
“쉽지는 않죠. 근데, 듣기에는 아람코에서 들어오는 돈으로 사무실 비용이 충당될 거라고 했다던데···.”
“누구 비용? 한범상이 비용? 한범상이 다음 달에 유학 가잖아? 뭐, 능력 있는 놈이니까, 제 유학 비용 정도 되는 거겠지. 경 프로, 박사님이 겨우 변호사 한 명 가 있으라고 LA에 사무실을 내라고 허락하셨겠어? 괜히 일만 벌였다가 수습 못 하면, 가만히 안 계실 거야.”
‘그러지는 않으셨겠지만···그래도 최재민도 자신이 있었으니까, 직접 찾아가 건의하지 않을까?’ 정보가 많지 않으니, 경수찬은 혼란스럽다.
파이낸스팀 시니어 파트너 경수찬은 이정후 라인이다.
큰 사건들은 이정후에게서 받는다.
그가 없으면 서른 명이나 되는 주니어 파트너들과 어쏘들 연봉을 줄 수 없다.
만약 지금의 권력 구도에서 이정후가 떨어질 것 같다면, 빨리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양호락도 안다, 경수찬이 그래서 자신을 찾아왔다는 것을.
인간이 정치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미래에 관한 생각이 모두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매년 1.5조 원의 매출을 발생하고 대한민국 법조계 한 기둥 역할을 하는 조직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
동시에 자신의 미래.
얽혀있다.
현대의 정치는 다수의 정치다.
선거를 치르는 데에 있어서 수장도 필요하지만, 캠페인을 치러줄 지지자들이 필요하다.
경수찬이 김앤강에 있으려면 ‘신선’ 이정후가 필요하다.
이정후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 시점에는 지지자 한 명이 소중하다.
양호락은 이정후를 대신해 경수찬에게 계획을 알려주었다.
“법무법인 이재가 들어올 거야.”
“네?!”
“이 변호사님이 작년부터 석윤재 변호사님하고 만나고 계셔.”
“아! 아···석 변호사님이 들어오는 게 아니라, 이재가 들어온다고 하시는 거면···.”
“떨어져 나가는 변호사들 몇 명은 있겠지. 그래도 거의 다 올 거야. 김앤강인데.”
‘이재가 들어온다고?’
이건 국제중재팀의 LA 사무실 오픈보다 더 쇼킹한 뉴스다.
경수찬은 조금 전 양호락이 했던 말들을 재빨리 리와인드 했다.
「“경 프로는 이 변호사님께서 지금 손 놓고 가만히 있으실 거로 생각해?”
···
“저쪽 변론이 끝나고 난 뒤, 우리 변론 차례가 왔을 때 움직여야지.”
···
“한범상이 다음 달에 유학 가잖아?”
···
“괜히 일만 벌였다가 수습 못 하면, 가만히 안 계실 거야.”」
‘아! 이거였구나!’
경수찬은 ‘언제’, ‘무엇을’, ‘어떻게’ 대한 질문의 답을 알았다.
법무법인 이재가 하는 사건들과 겹치는 것이 없는 그의 처지에선 환영할 일이었다.
반대로, 최재민은···
“그럼, 성일용 변호사님도 다시 돌아오는 간가요?”
“당연한 거 아니야?”
매우 곤란해진다.
그리고 만약 그 타이밍이, LA 사무실 개소와 한범상 유학과 겹친다면···
“제 생각이 짧았네요. 이 변호사님이 가만히 계신 것이 아니셨네요.”
최재민이 김한을 찾아갔다는 소문을 듣고 난 후, 처음으로 경수찬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진다.
-*-
늦은 밤,
서재를 찾은 이정후는 최근에 구매한 책을 펼쳤다.
유명한 석학이 인간에 관해 쓴 책이라는데, 제법 재미가 좋다.
오랜만에 다른 생각 없이 올곧이 독서를 즐겨본다.
나이 오십도 안 된 젊은 놈이 잘났다고 설쳐대봤자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을 거로 생각했다.
실컷 설쳐대다가 지치면 알아서 와서 고개를 숙일 거라 여겼다.
과소평가했다.
혼자가 아니었다.
인간은 참 신비로운 존재다.
하나와 하나가 만나 머리를 맞댔을 뿐인데, 결과물이 십(10)이 나올 때가 있다.
한범상과 최재민의 시너지가 그렇게 좋을 줄이야.
문득 저런 녀석들이 밑에 있으면 참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정후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저런 부류는 어두운 시간이 왔을 때 견뎌내지 못한다.
볕이 쨍쨍 내리쫴 줄 때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어나가지만, 해가 사라지고 캄캄해지면 살아남지 못한다.
유신정권과 함께 시작한 김앤강이 항상 볕이 따뜻한 양지에만 있었다고 생각하는가.
1970년대 법조계는 혼란기였다.
군사정권 이후 처음으로 재판부다운 법원조직과 제도가 갖춰졌고, 사법연수원을 통해 법조 인력이 양성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막강한 권력을 가진 검찰이었다.
사법부는 행정부의 권력을 견제할 힘이 없었다.
대법관들이 대통령과 골프를 치며 장관처럼 따라다녔다.
변호사는 검사, 판사 아랫급 법조인 취급을 받던 시절.
재판 도중 의뢰인 앞에서 변호인에게 인신 모독에 가까운 호통을 치는 판사가 당연했고,
변호사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의뢰인을 설득해 사건을 취하시키라고 압박을 넣는 검사가 흔했다.
판례가 없어 일본 법원의 판결문을 번역해서 증거로 제출하라 하면서도 그 외 다른 나라 법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시절.
법 위에 정부가 있던 시절.
사회 많은 분야에 법이 아예 없거나 미흡했던 시절.
당시 기업들은 분쟁의 해결책을 법원에 가서 찾을 수 없었다.
그런 시절을 거처 지금의 자리에 오른 김앤강이다.
그건 과거라고?
푸하하하- 모르는 소리.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는 전쟁의 무서움을 모른다.
권력의 무자비함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는 이권을 위해 인간들이 얼마만큼이나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 모른다.
자신과 뜻이 다르다는 이유로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어떻게까지 할 수 있는지를.
이제는 법이 있으니, 법이 보호해 줄 거라고?
하하하하-
법은 자연의 법칙 같은 영원불멸의 원칙이 아니다.
힘이 있는 자들이 정한 규칙일 뿐.
언제든 바뀔 수 있고, 누가 해석하느냐에 달라질 수 있다.
힘없는 나라의 기업은 다른 나라의 정부가 팔고 나가라고 해도 할 수 있는 게 없듯, 거기에 대고 법이 어쩌고저쩌고 운운하는 변호사는 세상을 모르는 애송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최대 암흑기로 평가되는 유신이 끝난 지가 벌써 4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임기 5년밖에 되지 않는 대통령이 부르면 여전히 대기업 총수들이 한걸음에 달려가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권력은 그만큼 무서운 것이고,
김앤강 역시 그러한 권력 앞에서는 한낱 조직일 뿐.
누구도 함부로 하지 못할 힘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무너질 수 있다.
1년에 사무실 한번 나오지 않는 전관들을 수억 원에서 십수억 원의 연봉을 주며 영입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지?
가장 꼭대기에 있는 사람을 따르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만큼 까 그 자리에서 떨어지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많다.
김앤강이 무너지기를 바라는 사람들,
정말 많다.
이 기이한 형태의 조직을 다시는 재기할 수 없게 찢어버리고자 하는 이들이 서초동에도, 여의도에도, 사방에 존재한다.
그래서, 김앤강은 최재민과 한범상같이 실력 좋고 열심히 하는 변호사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 꼭대기에 올라가서는 안 된다.
강태산처럼, 백인찬처럼 후배들의 존경을 받으며 묵묵히 자기 일만 하면 된다.
대신 경영에 참여하면 안 된다.
어두운 시간이 왔을 때, 조직을 지켜낼 깜냥들이 없는 인물들이다.
김한이 주인이었기에 지금의 김앤강이 있을 수 있었다.
강태산이었으면 살아남지 못했다.
그래도 최재민은 자질이 있는 듯싶은데···
편을 잘못 선택했다.
이정후는 웅크리고 있다.
우습게 생각하고 밑에 두려다 한번 제대로 물렸다.
다음번에 버릇을 들일 때는 확실하게 잡을 생각이다.
느낌이···
징징- 징징-
이정후는 읽든 책과 쓰고 있던 안경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 휴대폰의 발신인을 확인했다.
입꼬리가 올라간다.
기다리던 전화다.
“석 변호사.”
-변호사님, 석윤재입니다. 잠깐 통화 가능하신가요?
“그래, 내가 했던 제안은 생각 좀 해봤고?”
-네, 대신 그 전에 조건들을 논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당연하지.”
-그리고, 김한 변호사님도 뵙고 직접 말씀을 듣고 싶고요.
“그것도 걱정하지 마. 때가 되면 나와 같이 찾아뵐 거니까.”
조만간 때가 올 듯싶다.
-*-
범상은 오랜만에 숲을 다시 찾았다.
언제까지 두려워할 수만은 없었다.
숲 역시 아버지가 남긴 이 아공간에 한 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