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48)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48화(148/190)
148화 성장, 도전 그리고 뉴욕
“도 변호사님, 보스턴에 가면 차부터 사려고요. 뉴욕까지 차로 4시간 정도면 가더라고요. 한가한 주말에는 여행 다녀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한 변호사님.”
“아닌가? 놀러 다닐 시간이 없으려나. 괜한 짓일까요?”
“아무래도 저는···못 갈 것 같아요.”
못 간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어디에 못 간다라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이 유학이라는 걸 알았을 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정신을 차리고 겨우 한 말이,
“아- 그렇게 됐구나···하하, 어쩔 수 없죠, 뭐. 그러면, 저 혼자 가야겠네요.”
···였다.
【148화 – 성장, 도전 그리고 뉴욕】
도대기와 대화를 나눈 최재민은 곰곰이 생각해 봤다.
효경인더스트리 사건 기록을 읽었고,
박진우 이사와 통화했다.
도하영과도 한 번 더 대화를 나눴고,
좀 더 종합적으로 상황을 검토했다.
그러곤, 김한을 다시 찾았다.
“엘에이뿐만 아니라 뉴욕에도 사무실을 내겠다고?”
“네, 대표님.”
재민은 챙의 넓은 모자 아래서 김한의 입꼬리가 실룩거리는 것을 봤다.
웃어서 그렇게 되는 게 아니었다.
긴장된다.
대표의 입에서 다음 말이 나오기 전에 재빨리 설명을 덧붙였다.
“로스앤젤레스 사무실 설립에 대해 알아보면서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김앤강의 미국 첫 진출이 될 도시로는 엘에이보다 뉴욕이 좀 더 적합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자꾸 들었습니다. 파이낸스팀 김창균 변호사랑 특허팀 유경민 변호사하고도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그쪽 팀들도 역시 엘에이보다 뉴욕에 내는 안을 훨씬 더 환영한다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금융 관련 업무들은 뉴욕의 중심이다 보니까요.”
살짝 구차스러운 느낌.
어쩔 수 없다.
LA 사무실 설립안을 설명하러 왔을 때는 자신이 있었다.
감당할 수 있는 규모의 프로젝트.
승인만 떨어지면, 재정적으로나 인적으로 국제중재팀 내에서 관리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었다.
지금은 사정이 조금 달랐다.
LA와 NY 두 도시의 사무실.
국제중재팀 단독으로 끌어갈 수 없는 프로젝트이다.
사무실의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고, 다른 팀들의 도움이 전제되어야 하는.
나름대로 세팅을 꾸려서 대표 앞에 왔지만, 어떻게 반응이 보일지 전혀 감이 오질 않는다.
안 된다는 대답을 듣고 돌아가고 싶지 않은데,
아람코처럼 뭔가 확 끌어당기는 후크(hook)가 없다.
“최 변호사.”
“네.”
“곰곰이 생각한 거 맞아요?”
“네,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흠···.”
“왜 그러십니까?”
“무리하는 거 같은데.”
재민은 뜨끔했다.
어느 정도 동의하는 지적.
모험을 감수해야 하는 결정이니까.
그런데도 이렇게 김한을 다시 찾은 이유는···
“사무실이 어려운 시기를 겪을 때도 대표님께서는 늘 확장이 답이라고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내일 당장 오픈한다고 해도, 엘에이와 뉴욕 사무실에 지원해 줄 수 있는 사건들은 충분합니다.”
“당장이 문제가 아니라는 건 최 변호사도 잘 알 텐데.”
그렇다.
당장이 문제가 아니라.
숙제는 미래다.
과연 스스로 유지가 가능한가.
많은 외국계 로펌들이 대한민국에 들어와서 실패하고 나가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폐쇄적인 문화, 규제, 언어 등등.
하지만, 그 모든 걸 한 구절로 줄이면, 결국 ‘자립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압축할 수 있다.
모두가 핸드폰을 들고 다니고,
수천 페이지가 되는 자료들을 몇 초 만에 전송할 수 있으며,
인터넷이 되는 곳이면 화상 통화까지 가능 시대에 ‘현지에 가서 일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분사무소는 무용지물.
영업을 해야 한다.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가치는 언제나 있지.”
“그 어느 때보다 적기라고 생각합니다.”
“적기?”
“네.”
김한은 재민을 쳐다봤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려던 그는 질문을 바꿨다.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그때 날 찾아와 했던 것과 같은 건가?”
재민은 그때 이유를 뭐라고 설명했는지 상기했다.
한범상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도하영도 있다라고 대답했다.
믿음이 가는 똑똑한 친구들.
다르게 대답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그때와 같게 대답하려는 순간, 그의 뇌리에 무언가 번쩍했다.
하늘이 듣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 것 같다.
재민은 짧게 대답했다.
“네.”
“그럼, 왜 그때 찾아왔을 때, 뉴욕에도 내겠다고 안 했지?”
이 질문이 따라올 줄 알았다.
재민은 번쩍 떠오른 대답을 내놓았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때는 반 정도만 걸고 드린 제안이었습니다.”
“반?”
“지금은 올인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대화를 시작했을 때와는 사뭇 달라진 모습.
재민의 얼굴에서 긴장이 사라졌다.
어쏘들을 대할 때 나오는 특유의 능글맞은 표정까지 엿보인다.
감히 하늘과도 같은 김한 앞에서···
당당하다.
“승인해 주신다면 뉴욕 사무실에 제가 가 있을 생각입니다.”
미쳤냐, 최재민?
어디에 가 있겠다고?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 줄을 알고 그런 제안을 하는 거야?
이 시기에 자리를 비울 거라고?
미쳤구나!
“자네가 뉴욕 사무실에 가 있겠다고?”
“네.”
“그럼, 서울에는? 국제중재팀은 어떻게 하고?”
“도대기 변호사가 있을 겁니다.”
도대기가 해줄 거다.
상의가 된 내용이냐고?
아니.
지금 막 떠오른 아이디어인데 상의는 무슨.
근데, 동의할 거다.
뉴욕에 사무실을 내주라고 말했을 때, 녀석의 표정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래,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하하하- 내가 72년도에 서울에 돌아와서 태산이한테 같이 합동 법률사무실을 차리자고 했었지. 그때 그 친구는 서울지법에 있을 땐데, 나를 황당한 표정으로 봤어. ‘도대체 내가 왜 법복을 벗고 당신이랑 그 모험을 할 거로 생각하십니까?’ 하하하- 그럴 만했지. 그 당시에 변호사는 판사, 검사가 못 된 떨거지쯤 취급받을 때였으니까. 반년을 설득했나 그래.”
“그런 스토리가 있었는지는 몰랐습니다.”
“오래된 이야기지. 그래서, 도대기 변호사랑도 얘기가 된 거고?”
“네.”
“흠-”
“대표님, 대표님하고 강태산 변호사님께서 큰 뜻으로 세우신 사무실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흠- 그때가 생각나네. 최 변호사가 안식년하고 돌아와서 파트너 되고 난 후 다른 파트너들이랑 같이 술자리를 했을 때. 그때 자네가 그러지 않았나? 선배님들이 한국 최고로 만든 김앤강을 우리가 세계 최고로 만들겠다고.”
술기운을 빌려 그런 말을 했었다.
대표의 눈에 띄고 싶은 맘도 있었고.
“기억납니다.”
“재미있었어.”
“대표님께서 시간이 되시면 언제 또 그런 자리를 가져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하하하- 그러지. 언제 한번 도 변호사랑 같이 술자리를 갖자고.”
됐다.
‘하늘’은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면, 승인해 주신다는···.”
“실력 있는 젊은 후배가 전부를 걸고 도전하겠다는데 막을 수야 없지.”
“감사합니다.”
“다만 말이야.”
하지만 그냥 허락하지는 않는다.
“이번 건은 나 혼자 결정할 사안이 아닌 거 같아. 엘에이 사무실 운영 비용이야, 국제중재팀에서 낸다고 해도, 뉴욕 사무실은 사무실 전체가 감당해야 하는 문제니까. 파이낸스팀하고 특허팀에서 좋다고 해도 이건 좀 다른 듯싶네. 나는 반대하지 않지만, 다른 에퀴티 파트너들 설득은 최 변이 별도로 준비해야 할 거야.”
조건을 내걸었다.
-*-
친구를 사귀는 일은 늘 어려웠다.
초등학교 때는 그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또래 앞에 서면 주눅이 들기 시작했다.
겁이 날 때도 있었다.
그랬던 것이, 그나마 나아진 건 대학에 들어가고 나고부터였다.
숨통이 트였다.
그렇다고 갑자기 사교적인 사람이 될 리는 없었다.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는 너무 급하게 다가갔고,
갑자기 다가오는 사람에게는 거리를 두었다.
인간관계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나아지기는 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어울리는 방법을 알 것도 같았을 땐, 다들 이미 친구 사귈 시기가 지난 듯했다.
솔직히 그렇게 적극적이지도 않았고.
기중이가 있었으니까.
그래도 사교적인 사람들을 보면 한편으로 부러웠다.
그리고 궁금했다.
그러나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다 아물었어도 흉터가 남아 있었다.
그렇게 어느덧 서른이 되어서 내가 터득한 건,
사람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인간관계를 최대한 미니멀하게 갖는 것이었고,
그 방법은 첫 직장이었던 법무법인 양아를 다닐 때 아주 유용했다.
양아치 같은 상사 밑에서 1년을 일할 수 있었다.
그러한 경험이 밑거름돼서 첫 해 김앤강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
「“한 변호사님, 잠깐 시간 괜찮으세요?”
“네? 아, 네, 괜찮습니다.”
“변호사님, 번역은 정말 급한 거 아니고는 인하우스 번역하시는 분이나 외주업체에 위임하는 게 원칙이에요.”
“아, 네.”
“좋은 게 좋은 식으로 하나둘 받다 보면 계속 번역 일만 맡길 거예요.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5년 전, 국제중재팀에 막 들어왔을 때, 옆방의 그녀가 찾아와 충고했다.
말투는 차가웠고, 표정은 도도했다.
너무 예뻤다.
다가가기 어려울 만큼.
일부러 신경을 껐다.
일 때문에, 아공간 때문에 정신이 없었던 것도 있었지만, 그런 것들이 없어도 친해져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이유도 모른 채 낙하산 낙인이 찍혀있던 난 2년만 버티고 이직을 생각하고 있었다.
문을 닫았다.
그런 내게 그녀는 계속 노크해 주었다.
「“그럼, 퇴근하고 근처에 스크린 골프 치러 가실래요? 잡는 법이랑 기초 스윙 정도는 가르쳐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
“한 변호사님, 혹시 블루베리 좋아하세요?”
···
“제가 딱히 할 수는 건 없는데, 그렇다고 손 놓고 가만히 있기도 뭐해서, 그냥 좀 찾아봤어요. 베트남하고 사우디 사이의 지난 10년간 수출입 동향과 경제 협력 관계 같은 것 좀 찾아봤어요. 혹시라도 도움이 될지 해서···.”
···
“그걸 다 씹어먹는 경력이라니까요, 한 변호사님은!”
···
“제가 도와줄게요. 같이 가요.”」
그랬는데, 나는 뭐라고?
‘아- 그렇게 됐구나···하하, 어쩔 수 없죠, 뭐. 그러면, 저 혼자 가야겠네요.’
멍청이 같은 놈.
이유도 제대로 물어보지 않고 있던 내게 그녀는 미안하다는 말까지 하며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혼자 설렜던 것이 부끄러웠고, 마치 고백도 하기 전에 차인 것 같아 감정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멍청이 같은 놈.
고백은커녕 손 한번 제대로 먼저 내민 적도 없으면서.
바뀌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친구를 사귀는 데에 있어서는 여전히 제자리다.
그러고 싶지 않다.
그녀와는 친해지고 싶다.
친구 이상으로.
이번에는 내가 먼저 손을 내밀 거다.
똑똑-
“네.”
“변호사님.”
“한 변, 무슨 일이야?”
그러려면 먼저 최 변호사님과 상의가 필요했다.
“배당에 관여하려는 건 아니지만, 꼭 같이 하고 싶은 사건이 있어서 부탁을 드리러 왔습니다.”
“같이 하고 싶은 사건? 무슨 사건?”
“H486-0707 효경인더스트리 사건이요.”
“어! 한 변!”
“?”
“통했네.”
“···?”
“안 그래도, 그건 관련해서 한 변호사랑 얘기할 게 좀 있었는데. 뭐야? 이제 하다, 하다 독심술까지 하는 거야?”
뭐지?
이건.
그래도 내가 먼저 손 내민 거다.
“원래는 도대기 변호사랑 먼저 상의하고 한 변이랑 얘기하려고 했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내 계획을 말해줄게. 사실은 말이지, 내가 조금 전에 성북동에 다녀왔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