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5)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5화(15/190)
【015화 – 또 다른 문 II】
기중이는 기중이 아버님이 하시던 금은방을 물려받는 중이었다.
평일에는 대개 기중이가 가게를 보고, 주말에는 아버님이 나와 계셨다.
토요일 오전, 난 기중이 함께 이케아 광명점을 찾았다.
“이걸 다 사게?”
“응.”
“그 작은 옥탑방에 이게 다 들어가냐?”
“생각보다 작지 않다. 그리고 작을수록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선 정리 정돈을 잘해놔야 하는 거야.”
책장과 이동식 선반들을 사러 왔다.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아공간에 서류들과 책들이 쌓여간다.
“회사는 어떠냐? 바쁘냐?”
“괜찮아.”
“그러게, 얼굴은 괜찮아 보이네.”
“너야말로 얼굴이 왜 그러냐?”
“야, 너도 애 낳아봐. 아주 피곤해 죽겠다. 24시간이 모자라.”
“내 시간 좀 줄까?”
“그래, 줘. 얼마면 돼? 한 시간에 오만 원? 십만 원?”
피곤해 보였지만 그래도 애 이야기를 할 때면 행복해 보인다.
“그래도 우리 하율이 보고 있으면 살맛 난다. 그래서, 회사에 예쁜 비서는 없냐?”
“하율이 얘기하다가 갑자기 예쁜 비서는 왜 찾냐?”
“아니, 드라마 같은 데 보면 비서들이 엄청 예쁘잖아. 너희 회사에는 없어?”
“있으면 니가 뭘 어쩌려고?”
“내가 뭘 어쩐다는 게 아니라. 너 인마, 너. 결혼해야지. 번듯한 직장도 생겼는데.”
“생각 없다.”
“왜?”
“부럽다며?”
“뭐가?”
“내가 월급 타서 게임기기 사는 게.”
“그건 그거고 인마. 너 그래서 진짜 결혼 안 할 거야?”
“안 해.”
“야! 해!”
“뭐야. 우리 엄마도 아무 소리 안 하는 걸 왜 니가 잔소리야.”
“해! 니가 빨리 결혼해야지, 나중에 애기들 데리고 부부 동반으로 해외여행도 다니고 하지.”
신기하게도 기중이는 이상한 것들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나이 들어서 친구끼리 부부 동반으로 패키지 해외여행을 가는 것이었다.
십 년 뒤에 신혼여행지에 다시 가보는 거, 우정 문신하기 등등 어렸을 때부터 참 이상한 것들을 하고 싶어했다.
“그건 포기해라.”
“아, 왜-? 비서들이 못생겼어? 그럼, 동료 변호사 중에는?”
“야, 가서 이거랑 같은 전구나 여섯 개 더 들고 와.”
“응, 알았어.”
결혼? 아이?
어머니는 좋아하시겠지.
왜 그랬을까? 문득 아공간 안에서 놀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가능은 할까?’
얼마 전 아공간에 화초 하나를 들고 들어갔었다.
생명체를 가지고 들어간 것은 처음이었다.
나 이외에 생명체가 그 안에 존재할 수 있는지를 알아본 첫 번째 실험.
화초는 죽지 않았다.
죽지 않은 화초를 두고 나왔다.
며칠 뒤, 다시 들어가 봤더니 그대로 있었다. 자라거나 시들지 않은 채, 놓고 나갔을 때 모습 그대로.
내가 아공간에서 나오면 아공간 속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가설을 증명해 주는 또 하나의 증거였다.
그렇다고, 그 안에서 화초를 키울 수는 없었다.
해가 없기에. 그리고, 해를 대신하여 그만한 빛을 지속해서 제공할 할 수 있을 만큼의 전력 수급은 불가능했다.
아직은···
“이 정도면 된 거 같다. 가자.”
“이것들이 다 정말 니네 옥탑방에 들어간다고?”
“몇 개는 회사 사무실에서 쓸 거야.”
“회사 사무실? 어쩐지 많다 했다. 자, 그럼, 이제 집으로?”
“아니. 홍대로.”
“홍대? 홍대는 왜?”
“책 좀 사게.”
“무슨 책?”
“만화책.”
-*-
토요일 오후,
김앤강 사무실,
언제나처럼 도대기는 회사에 나와 밀린 사무를 보고 있었다.
까톡
[재민: 어디야?]휴대폰에 메시지가 들어왔다.
[대기: 사무실]답장을 보내고 정확하게 3분 뒤, 발신자가 문 앞에 나타났다.
“그래서, ‘빅 마운틴’하고 낙하산하고는 진짜 무슨 관계인 건데?”
같은 학교를 나와 같은 해에 사법연수원에 들어갔고, 졸업 후 도대기는 검찰로 최재민은 김앤강으로 갔다.
둘은 검사를 그만둔 도대기가 김앤강에 들어오면서 다시 만났다.
서로를 친구라 부르진 않지만 친하다.
새파란 어쏘 시절, 둘은 강태산 변호사를 ‘빅 마운틴’이라고 불렀다.
“모른다니까.”
“정말 모르는 거야? 아니면 알면서도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거야.”
“어느 쪽이 됐든, 번지수 잘못 찾았어.”
“쓰읍- 참 알 수가 없어. 데리고 있으면 한 번쯤은 내려와 보실 거라고 예상했거든. 전화 한 통 없데.”
“왜? 내려와서 잘 부탁한다고 한마디쯤 해주실 줄 알았어?”
“빅 마운틴께서 직접 내려오시지는 않아도, 공 변호사님이라도 와서 물으실 줄 알았지.”
공혁 변호사는 강태산 대표변호사의 십 년 후배로 김앤강의 또 다른 미스터리한 존재이다.
보통 강태산 변호사의 지시는 그를 통해서 내려왔다.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가서 묻든가.”
“뭐라고? ‘한범상이 정말 변호사님의 혼외자인가요?’라고? 재미있겠는데.”
“그건 아냐.”
“응?”
“양성규 변호사님이 공 변호사님께 슬쩍 물어봤대. 아니래.”
“아니래? 진짜? 거짓말 아니야?”
“거짓말이면 어쩌게? 유전자 검사라도 하자고 하게.”
“뭐야? 왜 이렇게 반응이 미지근해. 이런 경우에 리크루트팀이 나서서 봉기를 들어야 하는 거 아니야? ‘이런 인사 청탁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변호사님!’ 하면서.”
강력하게 반대했었다.
지금은 미지근해졌지만.
“그러는 당신은 왜 더 데리고 있겠다고 한 건데?”
“응? 나? 좀 더 지켜보려고. 하하하.”
“사건도 배당했다며?”
“응.”
“전략을 바꿨어? 첫 3개월은 번역만 줬다면서. 이제 잘 보이려고?”
“뭐 그런 의도도 없지 않아 있지. 근데, 생각했던 거보다 자질이 있어 보이데.”
“그래?”
“그래라니? 그래서 나한테 보낸 거 아냐?”
테스트해 보고 싶었다.
정말 자질이 있어서 해상팀 백 변호사님이 데려가고 싶어 하신 건지. 아니면, 충원이 간절해 대충 말 잘 듣는 외국 변호사가 필요하셨던 건지. (물론 후자일 가능성은 작았지만.)
국제중재팀에는 차고 넘치는 게 외국 변호사였다.
그중에서도 최재민이 이끄는 팀은 어쏘들에게 인기가 많은 팀.
거기서도 인정을 받는다면 그건 진짜 자질이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껄렁껄렁 좋은 게 좋은 것처럼 어슬렁거려도 쓸모없는 어쏘는 가차 없이 내치는 최재민이었으니까.
“국제 중재가 해보고 싶다고 해서 보낸 거야.”
“낙하산이 그렇게 말했어?”
“응.”
“이런. 난 아직 정식으로 받아줄 결심이 서지는 않았는데.”
“그런 거 치고는 사건을 너무 배당하는 거 아니야?”
“사건이야 못하면 재배당하면 그만이지. 뭐, 아무튼 석 달 뒤에 보자고. 더 데리고 있을지, 아니면 가차 없이 버려버릴지, 그때 정할 테니까.”
“한 변호사가 다른 데 간다고 할 수도 있어.”
“국제중재팀에 오고 싶다고 했다면서?”
“국제 중재가 해보고 싶다고 했지, 가고 싶다고 한 적은 없어.”
“그게 그거지.”
“해상팀에서 데려가고 싶어 한다는 얘기 못 들었어?”
“안 그래도, 들었어. 백 변호사님이 누굴 좋게 보기도 하는구나. 그래도 거기보다야 국제중재지. 거기 뭐 변호사 4명밖에 없는데, 무슨 비전이 있어. 그래도 가겠다면···어쩔 수 없고. 아무튼 석 달 뒤에 얘기해.”
최재민이 나가자, 사무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대수롭지 않은 척 말하고 갔지만, 이렇게 와서 묻고 간 사실 자체가 그에게 관심이 많다는 걸 의미했다.
도대기는 외국 변호사 폴더에서 범상의 기록을 클릭했다.
「고등학교 중퇴. 검정고시. 그저 그런 대학. 서명대 국제법률대학원」
정말이지 어디 하나 특별한 구석을 찾을 데가 없다.
그런데, 저 까다로운 인간이 말했다.
“근데, 생각했던 거보다 자질이 있어 보이데.”라고.
도대기는 석 달 후가 기다려졌다.
-*-
이케아 광명점에서 홍대를 들러 집에 돌아오니 다섯 시가 조금 안 됐다.
기중이는 저녁 전에 들어가야 한다며 돌아갔다.
다음에 저녁을 사기로 하고 헤어졌다.
어머니는 가게에 계셨다.
나는 녀석이 함께 옮겨준 책장들과 선반들을 아공간으로 옮겼다.
그러곤, 곧바로 조립을 시작했다.
몇 번 해봤다고 속도가 빨라졌다.
금세 완성된 책장들과 선반들.
회사에서 가져온 중재 사건 기록 사본들을 그 위에 정리했다.
미국 아마존 사이트에서 주문한 특허법, 국제상거래법, 규제 조약에 관한 원서들도 꽂아 넣었다.
인터넷이 되지 않는 아공간에서 일을 하려면 나만의 도서관이 필요했다.
바닥에 놓아두었던 서류들과 책들을 책장에 정리한 뒤, 기존에 있던 가구들과 발전기 등을 재배치했다.
정신없이 널브러져 있던 것들이 정돈되니 숨어있던 공간이 나온다.
아직은 여유가 좀 있다.
하지만, 이 속도라면 조만간 이 30평 공간도 금세 비좁아지겠지.
재배치를 마친 후, 잠시 휴식을 취한 나는 밖으로 나갔다.
밖의 세상은 아직 여섯 시도 되지 않았다.
두 달 전 기중이로부터 받은 골드바들을 보관해 둔 책상 서랍을 열었다.
다섯 돈의 골드바가 남아있다.
그중 금 한 돈짜리 골드바를 하나 꺼냈다.
그걸 들고 다시 책장 뒤 비밀금고 안으로 들어간다.
기존에 놓아둔 서른 돈 골드에 한 돈짜리 골드바 하나를 더 올려놓으니, 이제 총 서른한 돈이 된다.
나는 비밀금고 한쪽 벽에 나타난 반투명한 문을 통해 아공간으로 들어갔다.
「한 돈에 한 평.」
그런데 공간이 늘어나지 않는다.
대신 한쪽 벽으로 문이 하나 생겼다.
30평을 초과하면 생기는 문.
처음 저 문을 발견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고민을 많이 했다.
‘혹시라도 저 문을 열면 바깥세상으로 통하는 문이 닫히지 않을까?’
‘아버지가 행방불명이 된 이유도 혹시···.’
딱히 겁이 난 것은 아니었지만, 나마저 사라지면 홀로 남게 될 엄마가 걱정되었다.
그래서 아예 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후!”
나는 문을 열었다.
.
.
.
다행히도 바깥세상으로 통하는 문은 닫히지 않았다.
변변찮은 변 변호사
로펌의 변호사들은 매달 타임 시트(Time sheet)라는 ‘성적표’를 받는다.
내가 그달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썼는지’를 사건별, 날짜별로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성적표.
변호사에게는 시간이 금(金)과 같다.
어느 직업이 안 그러느냐고?
맞다. 우리 모두 시간을 쓴 만큼 버는 거니까. (그런가?)
다만, 변호사에게 위의 진리는 훨씬 더 직관적이다.
신임 변호사가 로펌에 입사하면 제일 먼저 받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방, 책상, 컴퓨터, 휴대폰, 명함···입사 보너스?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데 필요한 이런저런 것들을 받는다. 만약 로스쿨 시절 대단한 자질이나 능력을 이미 증명한 적이 있다면 입사 보너스나 차가 나오는 일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유형의 물건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아월리 레이트(Hourly rate), 시간당 청구 요금이다.
로펌이 이제 막 로스쿨을 졸업해 사회에 나온 초년생 변호사에 개인 사무실도 주고 듀얼 모니터가 달린 컴퓨터에 신상 휴대폰, 심지어 입사 보너스가 줄 수 있는 건, 그가 입사 첫 달부터 그 모든 비용을 커버할 수 있을 만큼 벌어다 줄 수 있다는 기대? 아니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확신은 바로 신임 변호사의 아월리 레이트와 월 180시간 근무에 근간한다.
이게 ‘성적표’하고 무슨 관련이 있냐고?
자, 그러면 이제 계산이 된다.
시간당 300,000원의 신입 변호사가 한 달에 180시간을 일했을 경우, 로펌은 그가 일한 대가로 총 54,000,000원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법조계의 수익배분 원칙은 1:1:1. 1은 비용, 다른 1은 로펌이, 그러고 나서 남은 1을 일한 변호사가 가져간다.
물론 사무실이 잘 돌아간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사건이 없어 비용만 많이 들어가면 당연히 로펌이 챙기는 몫도 작아지고 어쏘 변호사가 가져가는 몫도 작아진다.
그러면 비용 빼고 1:1이라고 생각하면 되냐고?
그것이 일반적인 규칙인 것은 맞다.
다만, 사건이 별로 없는 작은 로펌으로 가면 얘기가 좀 달라지고, 김앤강처럼 로펌의 이름이 갖는 브랜드의 힘이 압도적인 곳에서도 달라진다.
또한, 180시간을 청구했다고 의뢰인이 전부 주지 않을 때도 있다.
그리고 성공보수라는 것도 존재하고.
아무튼 신입 변호사의 보수를 계산할 때는 ‘1/3 규칙’을 대입하면 얼추 정확하다.
김앤강 1년차 변호사의 연봉은 대략 1억 8천.
왜 대략이냐고? 아까 말했듯이, 로스쿨 때부터 이미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는 지원자들에게는 입사 보너스가 지급된다.
그 외, 그해 변호사시험 1등이라든지, 상징적인 입사자에게는 입사 보너스가 지급되기도 한다. 동기들보다 연봉을 조금 더 올려주기도 하고.
변호사들은 자신의 급여를 말할 때 세후 얼마라고 계산하는데, 연봉 1억 8천이면 각종 세금 및 국민연금 등을 제하고 대략 월 천만 원이 조금 넘는 돈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로펌 어쏘 변호사에게 월 180시간이라는 기준선은 매우 중요하다.
만약 한 해 동안 월평균 180시간을 지키지 못했다면, 그건 ‘낙제’ 점수를 받은 것과 같다.
로펌마다 ‘낙제’한 어쏘에게 가해지는 페널티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경고’ 이후 ‘퇴출’. 어떤 곳은 곧바로 연봉을 깎기도 한다.
대신 한 해 동안 월평균 180시간을 초과해서 일했다면 부상이 나오기도 한다.
만약 그해 로펌 수입이 좋고 어쏘가 월평균 200시간 이상씩 일했다면, 초과한 부분만큼 보너스를 두둑이 챙겨주기도 한다.
거기에 승소율까지 높다면 동기들보다 연봉 상승률을 높게 책정해 주기도 하고.
변호사에게 시간은 정말 금(金)인 것이다.
그렇기에 로펌 변호사들은 타임 시트에 민감하고, 사건 배당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얼마나 많은 사건을 배당받느냐가, ‘성적’과 직접 관련되기에.
“에이씨!”
범상의 타임 시트를 보고 있던 마이클 변은 불쾌함을 표출했다. 그에게 배당되는 사건이 많아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