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53)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53화(153/190)
【153화 – 범상한 로이어 스트레인지】
효경인더스트리 v. 듀혼 영업기밀 유출 소송.
팩트 #1: 효경인더스트리의 아다마크론과 듀혼의 비브라는 거의 동일 제품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비슷한 구조를 가진 합성 섬유들임.
팩트 #2: 듀혼이 비브라를 먼저 개발했음.
팩트 #3: 효경인더스트리의 직원들이 듀혼 사의 전직 연구원을 만났음.
팩트 #4: 전직 연구원에게 비브라에 관해 물었음. 자료도 받았음.
팩트 #5: 그 이후에 효경인더스트리가 아다마크론을 출시했음.
팩트 #6: 현재 경제스파이방지법(Economic Espinage Act) 및 부패 및 조직범죄 처벌법(Racketeer Influenced and Corrupt Organization Act) 위반 혐의로 FBI 조사 중.
팩트 #7: FBI 초기 조사 중 전직 연구원을 만난 사실과 비브라에 관해 질문한 사실에 대해 거짓으로 증언한 것이 드러남.
팩트 #8: 조사 중인 효경인더스트리 전·현직 임직원을 위한 배상책임보험을 보험사에 고의성 범죄였다는 주장을 하며 배상 거부 중.
뉴욕, 맨해튼,
화이트 앤드 체이스 사무실.
김앤강 변호사들과의 디스커버리 미팅이 끝나고, 태너 카일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이는 개인사무실로 돌아왔다.
‘시간을 끌어봤자, 저쪽에 좋을 게 하나 없는데, 도대체 왜···?’
한 달 전쯤, 그들을 처음 만났을 때는 솔직히 우습게 봤다.
로펌을 두 번이나 바꾸더니, 이젠 한국 변호사들을 보내왔네. 포기한 건가?
뉴욕주와 DC 변호사 자격증이 있다는 사실은 들었다.
그들이 속해 있는 로펌이 변호사 1,500명의 한국 1위 로펌이라는 얘기도.
그게 뭐 대수라고.
태너 카일의 눈에는 어떻게든 합의해 보려고 온 초라한 메신저들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내심 쾌재를 외쳤다.
효경인더스트리 내부의 문제가 심각해졌다는 사인으로 받아들였고,
조만간 백기를 들 거라 기대했다.
그랬는데···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 거지?’
지금은 달라졌다.
플레이 스타일이 심상치 않다.
영업비밀 침해 주장을 반론하는 방법은 여럿 있다.
해당 정보가 법적으로 영업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변론,
해당 정보가 영업비밀이었다면 해당 기밀을 지키려는 합리적인 조치를 마련하지 않았다는 변론,
해당 정보를 얻기는 했지만 사용하지 않았다는 변론,
해당 정보에 정당한 권리가 다른 사람에게 있다는 변론 등등.
전형적인 디펜스들이 있다.
효경인더스트리의 이전 로펌 변호사들 역시 그런 변론들 내세웠다.
하지만, 그들도 알고 있었다.
이 사건의 사실관계 상, 법원이 그런 변론을 받아줄 확률이 높지 않다는 것을.
태너 카일은 적당히 밀고당기기를 하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유리한 게임이었다.
FBI 조사가 진행 중이고 임원책임배상보험 아래에 비용 보상이 거절된 이상,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비용의 부담과 형사 조사의 압박으로 효경인더스트리는 불안해질 것이고, 불리한 불확실성에 주가는 계속 떨어질 테니까.
대리하는 로펌이 두 번이나 바뀐 것도 좋은 징조였다.
태너 카일은 적당한 타이밍에 받아낼 수 있는 최대 합의금을 제시해서 얻어낼 계획이었다.
그러다 재판이 시작돼도 문제 될 건 없었다.
승소 확률이 높았으니까.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한 달 전과 달라진 팩트는 없는데, 느낌이 좋지 않다.
똑똑-
“들어와.”
조금 전 김앤강 변호사들과 주고받은 회의 내용을 복습해 보고 있는 중,
미팅에 같이 들어갔던 주니어 파트너가 노크하고 들어왔다.
“태너.”
“왜?”
“저쪽에서 요청한 리사이클 공정 관련해서 어떻게 하실 건가요? 클라이언트에 요청할까요? 아니면, 증거공개 명령을 신청하게 내버려 두실 건가요?”
미국의 민사소송 절차는 디스커버리(discovery)라는 조금은 독특한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증거개시 절차’ 혹은 ‘증거공개 절차’쯤으로 번역할 수 있는 이 제도는,
변론 절차를 시작하기에 앞서 양 당사자들끼리 재판에 인용될 증거들을 요청·공유하는 절차로,
판사 앞에 서기 전, 모든 증거를 숨김없이 공개하는 데에 주목적이 있다.
당사자들이 솔직하게 증거들을 공유하여 법정을 기만하려는 의도를 사전에 차단하고,
재판 전에 합의점을 찾을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적 장치로도 활용되기에,
디스커버리 중에 상대방이 요청한 자료를 합당한 이유 없이 거절하거나 숨길 경우,
벌금은 물론 요청한 증거로 증명하려 하는 상대방의 주장을 인정할 수 있을 만큼 중요시된다.
“리사이클 공정에 대해서는 왜 묻는 걸까?”
“그냥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으니까, 이곳, 저곳 찔러보는 게 아닐까요?”
주니어 파트너의 대꾸에 태너 카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블러핑이 아니다.
분명 뭔가가 있다.
지난 한 달간 저들을, 특히 한범상을 유심히 지켜본 태너 카일은 그의 여유로움이 단순한 느긋한 성격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걸 눈치챘다.
답답한 건, 그 원천이 뭔지를 모르겠다는 것.
“그러면 그냥 내버려 둬 볼까요? 정말 증거공개 명령을 신청하는지? 어차피 시간도 우리 편인데.”
맞다.
시간은 우리 편이다.
증거공개 명령을 신청하면 이의를 제기하고, 그래도 제출하라고 하면 정보 보호 명령을 신청해서 카운터하고···
이러면 디스커버리 절차가 길어진다.
그럴수록 답답해지는 건 저쪽일 것이다.
‘그런데 왜 내가 쫓기고 있는 기분이 드는 거지?’
태너 카일은 확률을 맹신하는 변호사가 아니다.
그는 사람을 본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가 지켜본 한범상은 특별하다.
“그러지 말고, 일단 알았다고 해.”
“네.”
“그리고, 팩트 체크해 봐.”
“팩트요?”
“한 달 전하고 정말 변경된 사안이 없는지. 다시 한번 꼼꼼하게 체크해. FBI 조사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보험사 DMP 파리바하고의 분쟁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도 알아보고.”
“네, 알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변동 사항이 없으면, 클라이언트에 리사이클 공정에 관해서 저쪽에서 요청한 자료들을 제공해 줄 수 있는지 물어. 제공해 줄 수 있다고 하면, 자료를 받은 다음에 내부 검토부터 하고, 저쪽에 제출할지 말지 결정할 거야.”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다음 미팅은···”
태너 카일은 다음 수를 내기 전에 다시 한번 꼼꼼하게 체크해 볼 생각이다.
“2주 미루자고 해.”
그렇게 느껴지는 이유가 정확하게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습게 봐서는 안 될 듯싶다.
“네.”
-*-
화이트 앤드 체이스 사무실이 있는 빌딩을 나온 재민과 범상은 ‘아메리카의 대로’라고 불리는 6번가를 걸었다.
“한 변, 한 변 생각에는 저쪽에서 어떻게 나올 것 같아?”
“지금까지는 계속 압박해 왔지만, 앞으로는 조금 신중할 것 같습니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확실히 만만한 변호사는 아닌 것 같아.”
“네.”
범상의 의견을 들은 재민은 잠시 좀 더 고민해 본다.
역시나 시간이 우리 편에 있지 않다.
여기서 ‘우리 편’이라고 하면, 효경인더스트리 내에서도 여전히 김앤강에 사건을 맡긴 것에 대해 불만이 있는 세력이 있다는 걸 고려해서 하는 말이다.
“시간을 끌면 우리한테 불리한데···.”
“그래서 말인데요. 이제부터 우리가 압박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우리가?”
“저쪽에서 답을 주겠다고는 했지만, 기다리지 말고 법원에 증거제공 명령을 신청하는 건 어떨까요?”
“기다리지 말고?”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그 전략에 문제점은 오히려 클라이언트에 있다.
무조건 합의로 종결하라는 지시만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는 효경인더스트리를 설득하는 일.
“그래, 나쁘지 않은 것 같아. 그건 내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그러면 한 변은 증거제공 명령 신청을 준비해 줘.”
“네, 알겠습니다.”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을 동시하고 있던 재민이 대명사로 주어를 대신했지만, 범상은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
“오케이. 그렇게 하자고.”
“네.”
“바로 보스턴으로 올라갈 거지?”
“예, 내일 오전에 강의가 하나 있어서요.”
“바쁘겠네. 무리하지 말라고 해주고 싶지만, 미안해서 그 말도 못 하겠네.”
“아닙니다.”
“주차 어디에다 했어? 같이 걸어가 줄게.”
“아, 아닙니다.”
“왜? 멀리 댔어?”
“네, 조금 멀리···.”
“괜찮아. 머리도 식힐 겸, 같이 걸어가면서 회의도 하고 좋지, 뭐. 어딘데?”
아, 이러시면 곤란한데.
“그게···.”
“왜? 혼자 걷고 싶어서?”
“···네.”
“은근히 혼자 걷는 거 좋아한단 말이야. 점심 먹으면 꼭 혼자 잠시 걷고 오겠다고 하고. 한 변, 원래 그런 타입이었어? 혼자 걸으면서 생각하는? 예전에 내가 아는 선배님이 꼭 그러셨는데, 복잡한 사건이 있으면 사무실 근처 걸으시면서 생각하시는.”
“네! 제가 바로 그런 타입입니다!”
“그랬어? 한국에서는 안 그랬잖아?”
“그랬는데요.”
“그래?”
“네, 처음 해상팀에 들어갔을 때, 점심때 걷다가 오고 그랬습니다.”
“아, 그랬어? 몰랐네.”
“네···.”
“그래서 점심 먹고 혼자 걷고 오면 그렇게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오는 거였구나. 알고 보니 그게 비밀이었네!”
“네! 하하···하···”
“나도 그럼, 같이 걸어볼까?”
“아니요!”
“왜?”
“방점이 ‘걷기’에 있는 게 아니고 ‘혼자’에 있습니다.”
“그런 거야?”
“네.”
“단호하기는. 하하, 알았어. 방해 안 할게. 그럼, 조심히 올라가고. 신청서 준비되면 보내 줘.”
“네.”
태너 카일은 한범상의 여유로운 예리함이 어디서 나오는 건지 도대체 모르겠다.
감도 오지 않는다.
당연하다.
같은 사무실에서 5년을 같이 일한 선배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데, 뭐.
드디어 혼자가 된 범상은 ‘뉴욕 생텀’으로 향했다.
어디에나 있는 이정후 같은 빌런
기업은 조직이다 보니, 간혹 그런 일이 발생한다.
원하든 원치 않든, 기업 내부의 갈등에 휘말리게 될 때가 있다.
-도 변호사님, 죄송합니다. 이게 다 제가 능력이 부족해서···일단은 제가 할 수 있는 데까지 계속 설득을 해보겠습니다. 하지만, 일단은 전략기획실 여 전무님이 지시하는 대로 해야 할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그동안 취했던 자세를 바꾸어 압박하는 전략을 쓰려했더니, 클라이언트가 제동을 걸어왔다.
이렇다 할 설명도 없이 하지 말라고.
알고 보니, 이 불리한 상황을 타개하고 나가려면, 효경인더스트리 내의 계파 갈등부터 정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