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54)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54화(154/190)
【154화 – 어디에나 있는 이정후 같은 빌런】
미국 법정 드라마 <슈츠>의 시즌 II, 에피소드 6에 나오는 상황이다.
주인공의 술꾼 친구가 호텔 카지노에서 자기 회사를 담보로 걸고 삼백만 달러를 빌린다.
친구는 그 돈으로 포커를 친다.
결과는 드라마 좀 봤다는 사람은 충분히 예상이 가능한 전개.
패(敗).
그런데, 알고 봤더니, 돈을 빌려준 상대가 나쁜 놈. 친구의 회사를 노리고 그 큰돈을 빌려준 것이었다.
포커 한 판에 회사를 잃게 생긴 친구.
주인공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하버드 로스쿨 출신만 뽑는 걸로 악명(?) 높은 뉴욕 대형 로펌 피어슨 하드만의 파트너 변호사인 주인공은 먼저 담보 약정이 담긴 계약서를 확인한다.
우습게도 계약서는 냅킨 한 장 위에 수기로 쓴 것이 전부.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니 계약으로 인정될 만한 법적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
주인공은 곧바로 호텔 카지노의 CCTV 증거를 확보한다.
쉽게 얻을 수 없는 증거지만, 수완 좋은 주인공은 다 방법이 있다.
다행히도 확보한 CCTV 기록에는 친구가 냅킨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 술을 꽤 많이 마시는 장면들이 담겨있다.
계약서 자체에는 문제가 없으니, 체결 당시에 친구의 의사능력이 없는 상태였다는 점을 파고들어 법률행위 무효를 주장할 의도.
합의할 계획이다.
팩트에서는 밀리나, 소송 결과의 불확실성을 담보로 채무자와 협상을 벌일 생각이다.
그렇지만, 모든 이야기 속 주인공에 주어지는 문제가 대부분 그러하듯, 이번 난관에도 트위스트가 있다.
알고 보니, 주인공에게 오기 전, 술꾼 친구는 스스로 해결해 보고자 했던 것.
다음 날, 채무자에게 찾아가 합의 제안을 한 것이었다.
그것은 의사능력이 없는 상태였다는 주장을 어렵게 만드는 행동이다.
우리의 주인공은 사건을 맡았을 때보다 더 어려운 상태에 빠지고 만다.
“이제 어떻게 하죠, 변호사님?”
보스턴 비컨 힐,
하영의 아파트.
범상은 하영과 함께 노트북 앞에 앉아있다.
노트북 스크린에는 뉴욕에 있는 최재민의 얼굴이 띄워져 있다.
효경인더스트리 사태 관련해서 영상통화 중이다.
-흐음···
하영의 질문에 최재민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사태를 예견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사건을 처음 의뢰받았을 때부터 우려했던 일이었다.
“제가 한국에 가서 박진우 이사님과 직접 얘기를 나눠볼까요?”
그래도 별 소용없을 것 같다.
하지만, 누군가는 누구와 이야기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한다.
-아니야. 내가 가볼게.
최재민은 그 ‘누구’가 박진우가 아니라 판단했다.
-내가 가서 사장님하고 직접 이야기를 나눠봐야겠어.
“변호사님이요?”
-응. 같이 가면 좋겠지만, 도 변은 다음 주 내내 담당 교수님하고 스터디 플랜 미팅들이 있다면서? 여기 구글 캘린더에도 뜨네.
효경인더스트리가 로펌을 두 번이나 바꾼 데에는 사정이 있다.
듀혼 사(社) 비브라 섬유에 관련된 정보를 빼내려고 했던 게 사실이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지시를 내렸던 사람은 바로 효경인더스트리의 사장이었다.
임직원들에 대한 미국 FBI의 조사가 시작되자, 효경인더스트리는 처음 겪는 일에 당황했다.
국내 로펌을 쓰자니, 소문이 날 것 같고.
그렇다고 미국 로펌을 직접 컨택하자니, 그들을 제대로 컨트롤할 수 있을지 우려가 되었다.
결국, 그 문제로 내부에서 다툼까지 일어났다.
표면적으로는 로펌 선정을 두고 일어난 일이었지만, 사실은 더 큰 갈등이 숨겨져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어느 선에서 꼬리 자르기를 할거냐였다.
사장이 내린 지시.
당연히 공식적인 기록 따윈 없다.
아직 초기 조사 단계이고 기소 결정도 내려진 것이 아니긴 하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 15년을 미국에서 감옥살이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
한국이었으면 오히려 쉽게 협박이든 회유든 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미국 내 형사절차이다 보니 선뜻 나서는 이가 없다.
내홍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법무팀은 힘을 잃었고, 전략기획실이 지휘를 잡게 되었다.
사주(事主) 가문의 가신(家臣)로 대부분 채워진 전략기획실은 사장을 보호하기 급급한 나머지, 제일 먼저 선임한 외국 로펌 변호사에게 거짓말을 했다.
그런 정신없는 상황에서 짜낸 거짓말이다 보니, 이야기의 앞뒤가 안 맞는 게 당연.
몇 번의 경고에도 클라이언트는 계속해서 일관되지 않은 정보를 제공했다.
첫 번째 로펌은 그런 식으로는 소송이고 협상이고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끝내 의견 불일치를 이유로 사임했다.
두 번째 로펌은 지인을 통해 소개받았다.
크기는 작은 로펌. 하지만 자기네들 뜻대로 군소리 없이 움직여 주는 로펌이었다.
일관되지 않은 정보를 줘도 알았다고 끄덕이고, 시키는 대로 하는 로펌.
당장은 입맛에 맞을망정, 당연히 시간이 갈수록 문제가 커졌다.
멀리 보고 전략을 짜는 사람은 없고, 당장 자기 목소리들 내기만 급급하니, 이곳저곳에서 문제가 터졌다.
비공식으로 조사를 시작했던 FBI는 정식으로 조사절차를 시작했고, 임원 배상책임 보험사는 법률 비용 지급을 거부했다.
민사소송은 화이트 앤드 체이스에 질질 끌려갔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문제점들이 사주 측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상황이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전략기획실의 여창욱 전무 때문이었다.
그가 이 이야기의 빌런이었다.
“변호사님, 다음 주에 뉴욕 중재 기일이 있지 않은가요? 그리고, 이 사건 관련해서 증거공개 명령 신청한 것도, 갑자기 법원에서 연락이 오면 유학생 신분인 저나 도 변호사는 참석할 수 없는데요.”
-참, 중재 기일이 있었지.
회의 중인 효경인더스트리 사건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다른 사건의 중재 기일을 잠시 잊어버렸다.
가려면 스케줄 조정이 필요할 듯싶은데, 두 달 전에 잡힌 중재 기일을 다른 사건을 이유로 바꾸기는 민망하다.
뉴욕을 떠나기 쉽지 않은 상황.
그렇다고 미뤘다가는 여창욱 전무가 이제 좀 풀릴 것 같은 상황을 또 어떻게 꼬아버릴지 모른다.
이걸 어쩌지···
“제가 만나보고 오겠습니다.”
스크린 속 최재민이 고민하는 와중, 범상이 나섰다.
-한 변이?
“한 변호사님은 다음 주에 중동법 강의 시간에 발표가 있잖아요.”
범상의 스케줄을 잘 아는 하영이 먼저 대답했다.
“금요일이에요. 내일 출발해서 월요일 미팅하고 화요일에 돌아오면 돼요.”
“그럼, 보스턴에 돌아왔을 때는 수요일인데요. 괜찮겠어요?”
“발표 준비는 하루면 충분해요.”
자신 있게 대답하는 범상.
자신 있어서 자신 있게 대답했을 뿐.
하지만, 콩깍지가 씐 하영의 눈엔 범상이 자신을 위해 희생정신을 발휘하는 거라 보인다.
-그래 주면 좋을 것 같긴 한데···정말 괜찮겠어, 한 변? 힘들 것 같으면 내가 스케줄 조정해 보고.
“괜찮습니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시간은 문제 될 것 없었다.
진짜 문제는 외부인으로서 회사 내부의 정치 상황에 어떻게 접근하느냐.
-알았어. 그럼, 상황이 어쩔 수 없으니까. 이번에는 한 변이 다녀오는 걸로 하고. 효경인더스트리 사장님과 직접 만날 방법은 내가 알아볼게. 될 수 있으면 여 전무님이 알기 전에 먼저 만나는 게 좋으니까.
“예.”
-그럼, 비행기 스케줄 확정되면 우리 팀 구글 캘린더에 올려주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틱-
뉴욕에 있는 시니어 파트너와의 화상 회의가 끝났다.
하영은 미안한 눈초리로 범상을 바라봤다.
자신이 가야 하는걸, 그가 대신 가는 것 같다.
“정말 괜찮겠어요?”
“괜찮아요.”
“교수님한테 얘기해서 스터디 플랜 미팅을 다다음 주로 미뤄도 되는데···.”
“이미 저번에 한국 나갔다가 오게 되면서 한번 미룬 거잖아요.”
“그건 상관없는데, 어차피 길게 생각하고 있어서···.”
“저도 상관없어요.”
아공간이 있어서.
“그래도···.”
“대신 하나만 부탁할게요.”
공식적인 미팅을 하러 가는 것이니, 출입국 기록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비행기로 이동해야 한다.
그렇게 이동하는 시간을 하늘에서 버리게(?) 되는 것이 살짝 아깝기는 하지만, 발표 준비는 비행기 안에서도 할 수 있고,
그게 여의찮으면, 언제든 아공간에서 할 수 있다.
“뭐요?”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박진우 이사님을 따로 좀 만났으면 해서요.”
“박 이사님을요?”
“제가 연락해서 만날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도 변호사님을 좀 더 신뢰하시니까, 가기 전에 미리 연락을 해주시면, 좀 더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네,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고마워요.”
“근데, 박 이사님하고는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고요?”
“내부 상황을 좀 더 정확하게 들어봐야 할 것 같아서요.”
“아, 그렇죠. 그게 좋겠네요. 네, 알겠어요. 제가 미리 통화를 해둘게요.”
“고마워요.”
범상은 하영과 헤어져 방으로 돌아왔다.
잠시 고민한 범상은 ‘포털 문’을 열었다.
이렇게 된 거, 발표 준비를 먼저 끝내버리는 게 속 편할 듯싶다.
아공간 들어갔다.
아공간 나왔다.
발표 준비 끝났다.
-*-
마포,
효경인더스트리 본사.
전략기획실 전무 여창욱은 심기가 불편하다.
상황이 꼬여 듀혼 사(社)와의 분쟁의 주도권을 잠시 법무팀에 넘겨주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법무팀 맘대로 하라는 건 절대 아니었다.
내부적으로 누가 책임지고 물러날 건지 결정되고 해당 직원을 설득(?)하고 나면, 다시 주도권을 가지고 올 의도였다.
지금이야, 해당 직원이 말을 안 듣고 버티고 있어서 그가 짠 전략이 통하지 않고 있지만, 일단 적당한 협박과 회유를 통해 ‘자를 꼬리’가 정해지면 끝이었다.
그런데,
“누가 사장님한테 연락을 해왔다고? 김앤강의 최재민 변호사?”
법무팀이 선임한 변호사가 자기를 패싱하고 사장님에게 직접 연락을 취했다.
그것도 따로 한번 통화한 변호사였다.
법무팀 박진우 이사는 말이 안 통하는 친구였다.
하지만, 딱히 걱정하지는 않았다.
사내에 세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상황이 안 좋을 동안만, 적당히 방패막이로 세워뒀다가 책임을 씌운 뒤에 권한을 빼앗아 올 작정이었다.
그래서, 그가 이제 막 파트너를 단 ‘초짜’ 김앤강 변호사를 선임한다고 했을 때,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추기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그러고는 혹시나 해서 그 위 시니어 파트너한테 전화 한 통화를 넣었다.
내부 상황을 자세하게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박진우가 결정권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주위에 아는 법조인에게 물어보니,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고 했다.
통화해 보니 말이 통하는 변호사처럼 느껴졌다.
그 후 여창욱은 걱정을 놓고,
내부 갈등 해결에 먼저 신경을 썼다.
자기 말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을 내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박진우를 통해 보고가 들어왔다.
김앤강으로부터 협상 전략을 수정하겠다는 제안을 왔고, 검토했는데 좋은 전략이라 그렇게 진행하겠다는 것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여창욱은 곧바로 최재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던 대로 하라고 했다.
그런데, 말을 들을 줄 알았던 최재민이 자기를 건너뛰고 사장님에게 연락을 취한 것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그런 건지는 듣지 못했지만, 눈치챌 수 있는 것이었다.
“요놈 봐라.”
여창욱은 먼저 김앤강을 잘라야겠다고 결심했다.
똑똑-
“무슨 일이야?”
“전무님, 김앤강의 한범상 변호사가 찾아왔습니다.”
한범상이 찾아왔다.
“들어오라고 해.”
치킨 게임
소송 전 협상은 포커와 비슷하다.
확률 게임이다.
바닥에 깔린 패와 상대의 베팅 패턴을 보면 감이 온다.
‘아, 이 자식, 들고 있는 카드가 별 볼 일 없구나.’
문제는 확률은 확률일 뿐이라는 점.
마지막 패가 깔리기 전엔 아무도 결과를 확실할 수 없다.
실력 있는 포커 플레이어는 양쪽에 똑같이 적용되는 이 불확실성을 자기 패로 이용할 줄 안다.
“이게 공개되면 시끄러워질 것 같은데요.”
“시끄러워지겠지.”
효경인더스트리가 세 번째로 고용한 김앤강의 변호사들이 비브라 섬유의 리사이클 공정을 공개해달라고 요구했다.
촘촘하게 엮으면 총과 칼도 뚫을 수 없는 초강력 섬유는 해어지거나 절단되면 그 미세 끝이 너무 날카로워 다시 사용할 수 없다.
‘리사이클 공정’이라 부르지만, 사실상은 폐기.
불에도 물에도 분해되지 않는다.
인간의 관점에서는 영구적인 물질.
환경에 치명적이다.
더 큰 문제는 발암성이다.
“그렇다고 효경의 아다마크론 섬유는 다를까요?”
“아니, 다르지 않을 거야.”
“그러면 왜···?”
“자신들에게도 불리할 이 자료를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거냐고?”
“네.”
“치킨 게임을 하려는 거지.”
“네? 정말 그렇게까지 할까요?”
‘리사이클 공정’ 자료가 세상에 공개되면 듀혼은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이미 비슷한 전적이 있는 기업.
이것이 터지면 단순히 제품을 팔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과거의 악몽이 되살아나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렇지만, 효경인더스트리도 안전하진 못하다.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사실상 동일 물질인 아다마크론 역시 위험한 물질이라는 사실이 밝혀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단순히 제품을 생산하지 못하게 되는 것뿐만 아니라, 아다마크론의 위험성을 숨긴 나쁜 기업으로 낙인이 찍히게 될 테니까.
김앤강의 전략을 알았다.
치킨(겁쟁이) 게임.
「같이 죽기 싫으면 이쯤에서 합의해!」
어느 한쪽이 양보하지 않으면 양쪽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극단적인 게임.
그렇다면 문제는 그들이 과연 어디까지 달릴 것 같냐는 거다.
‘정말 효경인더스트리가 이런 무모한 전략에 동의했을까?’
화이트 앤 체이스의 시니어 파트너 태너 카일은 협상 테이블 반대편에 앉아있던 한범상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이상한, 설명할 수 없는 여유로움.
그 밖으로 슬쩍슬쩍 내비치는 예리함.
생각하면 할수록 예사롭지 않다.
“듀혼의 제이크 쏜튼하고 약속 잡아.”
“합의하자고 하시게요?”
“아무래도 벼랑 끝까지 달릴 놈 같아.”
같이 죽을 순 없다.
잃는 게 더 많은 쪽은 듀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