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traordinary Lawyer’s Subspace RAW novel - Chapter (155)
범상한 변호사의 아공간-155화(155/190)
【155화 – 치킨 게임】
미국 법정 드라마 <슈츠>의 시즌 II, 에피소드 6의 결말은 이렇게 난다.
주인공 하비는 도박판에서 건네 냅킨 계약서 한 장으로 친구의 회사를 먹으려는 채무자에게 찾아가 세 가지 선택을 제시한다.
회사 기술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는 친구가 문제점을 폭로하고 같이 망하든지,
아니면 도박판에서 빌린 원금과 이자를 받고 합의하든지,
그것도 아니면, 회사와 빌린 돈을 걸고 포커를 치든지.
박진우 이사를 만난 범상은 효경인더스트리의 대표를 만나기 전, 전략기획실 여창욱 전무를 찾아갔다.
“최재민 변호사가 바쁜가?”
여창욱은 직접 찾아오지 않고 밑에 ‘부하’를 보낸 것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한범상이다.
“네, 바쁘십니다.”
여창욱은 다음 말을 잇기 전에 서 있는 범상을 훑어봤다.
그 순간, 범상은 자기 앞에 앉아있는 여창욱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직감적으로 파악했다.
그런 부류다.
“그래서? 왜 찾아왔지? 죄송하다고 하려고 온 건가?”
“아닙니다.”
너무나 당당한 대답.
여창욱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무서운 얼굴이다.
하지만, 상대는 겁 따위는 전혀 먹지 않았다는 듯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여 전무님의 전략대로는 이 분쟁을 절대 해결할 수 없다라는 것을 설명해 드리러 왔습니다.”
이 자식이 감히 어디서···
-*-
범상이 치킨 게임 전략을 제안했을 때, 재민은 망설였다.
도박성이 짙은 전략이었지만, 그래서 그런 건 아니었다.
상대에게 패가 다 읽혀버린 상황에서 확률로도 이길 가능성이 희박한 게임의 분위기를 바꾸려면 파격적인 전략이 필요했다.
재민이 망설인 이유는 클라이언트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건 하영이 이 사건을 맡겠다고 했을 때 그가 망설인 까닭과도 일맥상통하는 점이었다.
‘여창욱.’
이전 변호사들이 남긴 기록을 보니 답답했다.
애초에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확인되지 않아, 첫 번째 대리인은 소송 전략을 잘못 잡았고.
두 번째 대리인은 애초에 사건을 해결할 마음이 없는 듯했다. 클라이언트가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배가 산으로 가고 있음에도.
사건을 수임하고 얼마 뒤, 효경인더스트리 여창욱 전무한테 연락이 왔다.
통화가 끝난 후, 재민은 왜 이전 변호사들이 사건을 그따위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는지 단번에 이해가 됐다.
클라이언트 회사 내에 빌런이 숨어 있었던 것이었다.
몇 년 뒤면, 김앤강 변호사 경력 20년.
재민은 여창욱 같은 인물들을 제법 많이 만나봤다.
여느 조직에나 있는 부류들.
권력을 위해서라면 조직이 반 토막이 나도 상관없는 인간들.
김앤강에도 있다.
흔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리를 하다 보면 간혹 클라이언트 내부의 이런 정치적 상황에 휘말리게 된다.
아주 성가신 상황이다.
이럴 때, 대리인으로서 가장 속 편한 대처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 것.
내부적으로 알아서 해결하게 두는 것이 가장 덜 성가시게 일을 마무리하는 방법이다.
딜레마는 이번처럼 빌런의 계략과 변호사로서의 자존심이 직접적으로 충돌했을 때 발생한다.
사건 자체는 아주 재미있는 분쟁인데, 옆에서 훈수 두는 빌런 때문에 재미없게 될 판국이다.
‘문제는 여창욱의 영향력이 얼마나 크냐에 달려있느냐인데···’
신임이든 경력자든, 변호사들이 종종 혼동하기 쉬운 것이 있다.
클라이언트는 기업이다.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 사건의 의뢰인은 효경인더스트리지, 효경인더스트리의 여창욱 전무가 아니라는 말이다.
심지어 효경인더스트리의 사장도 아니다.
최재민은 변호사로서의 자존심을 선택했다.
언젠가 김앤강의 주인이 되고 싶은 큰 야망을 품고 있는 그이지만, 최재민의 선택은 언제나 자존심이었다.
앞으로도 그럴 거고.
징징- 징징-
[태너 카일 변호사,화이트 앤 체이스]
“헬로.”
-헬로, 화이트 앤 체이스의 태너 카일입니다. 이번 주에 합의 관련해서 미팅을 좀 했으면 좋겠는데, 언제가 좋으실까요?
때마침 적당한 카드가 손에 들어왔다.
-*-
마포,
효경인더스트리 본사,
전략기획팀 전무실.
여창욱은 조금 전 나간 한범상의 말을 떠올렸다.
아니, 떠올려졌다고 하는 게 정확하다.
속이 부글거린다.
「“여 전무님의 전략대로는 이 분쟁을 절대 해결할 수 없다라는 것을 설명해 드리러 왔습니다.”
“뭘 하러 와?”
“지금까지 했던 대로 진행하면 듀혼과의 소송에서 효경은 점점 더 불리해질 겁니다. 그렇게 되면 회사는 큰 손해를 입게 될 거고요.”
“한 변호사라고 했나? 그러니까 한 변호사 말은, 내가 틀렸다는 거야? 그걸 말해주려고 왔다는 거야?”
“네.”
“건방지게 지금 누구한테···자네, 자네가 지금 여기 와서 이러는 거 자네 위에 파트너 변호사도 알아? 최재민인가 하는 그 변호사 말이야.”
“예, 여러 번 검토하고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서 직접 설명드리려 왔습니다.”
“이대로는 안 돼? 이것들이 진짜···김앤강 변호사 중에 건방진 것들이 있다고는 들었는데, 말로만 들었지만, 막상 이렇게 보니까, 황당하구먼. 니들 뭐야? 돈 주고 고용한 변호사들이 의뢰인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어쩔 건데?”
“전무님, 현재 효경인더스트리는 듀혼을 상대로 법적인 측변에서도, 사실관계에서도 매우 불리한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이 상황을 타개하고 협상의 주도권을 가지고 오려면 전략을 좀 더 똑똑하게···.”
“어이, 자네.”
“네.”
“자네가 효경인더스트리 직원이야?”
“아닙니다.”
“직원도 아닌 주제에 뭔 말이 그렇게 많아. 누가 자네더러 전략을 짜라고 했어? 변호사로서 상대방 변호사에게 우리 의견을 전달하면 되는 거야. 자네가 뭘 알아?”
“소송 기록을 꼼꼼하게 검토했습니다. 지금 상태로는···.”
“그깟 소송 기록 좀 봤다고 회사를 다 파악한 줄 알아? 그냥 시키는 대로 해. 클라이언트가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않으면 되지, 뭔 군말이 그렇게 말아.”
“전무님, 저희 설명을 좀 더 들어보시고···.”
“뭔가 제대로 착각하고 있구먼, 이 친구. 자네한테 그따위 설명 같은 거 들으려고 이 자리에 있는 거 아니야. 결정은 회사에서 내릴 거니까, 자네들은 그냥 하라는 대로 해. 내 말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
“전무님, 꼬리 자르기식 대처로는 이번 상황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뭐라고?!”
“FBI 조사를 그렇게 우습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리코법은 전무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강력하고 무서운 법입니다. 일단 듀혼과 합의를 하는 게 우선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허, 뭔 말이 그렇게 많아! 하라는 대로 할 것이지! 이거 안 되겠네. 믿고 맡겼더니, 아주 그냥 제멋대로 하려고 드네. 변호사가 이러는 거 변호사 윤리에 어긋나는 거 아니야!”
“잘못된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 걸 보고 가만히 있는 것이 윤리에 어긋나는 것이죠.”
“뭐?”
“그리고 회사를 위한 법률 전문가의 조언을 듣지 않으려는 전무님께서야 말로 지금 효경인더스트리 임원의 임무를 저버리고 계신 것이 아니신가요?”
“뭐라고? 이것들이 진짜···. 나가. 말 길게 할 필요 없고. 시키는 대로 하기 싫으면 그만둬. 오늘부로 해임이니까, 김앤강은 손 떼. 의뢰인 지시도 제대로 따르지 않는 것들이 무슨 변호사라고···손 떼!”
“그건 곤란할 것 같습니다.”
“뭐가 어째?”
“저희는 효경인더스트리와 수임 계약을 맺었지. 전무님과 수임 계약을 맺은 게 아니니까요. 만약 전무님께서 회사가 전무님에게 일임한 권한을 남용해 이대로 저희와의 수임 계약을 해지하신다면, 저희 역시 기록에 분명히 남기겠습니다. 전무님께서 저희의 전략을 거절하셨다는 사실을요.”
“남용? 뭐 지금 협박하는 거야? 남겨! 그깟 기록을 내가 무서워할 것 같아!”」
쾅!
“새파랗게 어린 새끼가 어디서 건방지게···.”
분이 풀리지 않은 여창욱의 입에서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
돈 받고 일하는 변호사 주제에 감히 누구를 찾아와서···
생각하면 할수록 더 화가 난다.
겁은커녕 당당하기까지 한 어린놈의 눈빛.
그가 한 말에 틀린 게 없으니 더 분이 차오른다.
당장 그만두게 만들 것이다.
띠리링-
-네, 전무님.
“박진우 이사한테 전화해서 지금 당장 내 방으로 오라고 해.”
여창욱은 법무팀 박진우를 불러 변호사 관리를 어떻게 했냐고 박살을 내줄 예정이었다.
하지만, 자리에 없다.
똑똑-
“전무님.”
“왜?”
“박 이사님이 지금 자리에 안 계신답니다.”
“자리에 없다고?”
“네.”
“어딜 간 거야! 알았어. 지금 사장님 뵈러 갈 거니까. 박 이사 들어오면 어디 가지 말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해.”
짜증이 난 여창욱은 박진우를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사장실을 찾았다.
그런데···
.
.
.
박진우가 자리에 없었던 이유는 사장실에 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 전무, 마침 잘 왔네. 안 그래도 부르려고 하는 참이었는데. 자네, 여기 한 변호사를 만난 적이 있나?”
한범상과 함께.
교묘 한범상
「한국에 들어와서 박진우 이사님을 먼저 만나봤다.
하영 씨를 통해서 듣기는 했지만, 효경인더스트리 내부 상황이 어떤지를 직접 들어보고 싶었다.
여창욱 전무라는 분이 어떤 사람인지 좀 더 정확하게 알고 싶었다.
“변호사님에게 이런 것까지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는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그래도 제가 찾아 뵙고 일을 부탁드렸는데 일하시는 데에 불편을 드리고 있으니, 어느 정도 설명해 드리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이게 말입니다. 왜 이렇게 되고 있느냐 하면은···.”
박진우 이사님은 경우가 있으신 분이었다.
회사 내부의 그런 알력 다툼 때문에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는 걸 부끄럽게 생각하시는 듯했고, 대척하고 있는 여창욱 전무에 대해서도 감정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신의를 아시는 분이었고,
하영 씨가 왜 이사님의 사건 의뢰를 거절할 수 없었는지 한편으로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러면, 제가 한번 여 전무님을 만나보겠습니다.”
“변호사님이요?”
“네, 만나서 설득해 보겠습니다.”
“쉽지 않으실 겁니다. 고집이 워낙 세신 분이라···어쩌면 최 변호사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냥 사장님을 직접 만나보시는 편이 더 수월하실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결정권자를 직접 만나는 것이 더 빠르고 쉬운 방법이다.
하지만, 박진우 이사님의 말씀을 직접 들어보니, 좀 더 근본적으로 이 상황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듯싶었다.
지금 당장은 넘어갈 수 있어도 추후 협상 과정에서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래도 한번은 만나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대신 박 이사님께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네, 무엇이든지요.”
“조금 곤란해하실 수도 있습니다. 어려울 것 같으시면 거절하셔도 괜찮습니다.”
“무슨 부탁이길래···.”
“일단 여 전무님을 만나보고 결정해야겠지만, 믿고 맡겨주시면 더 이상 이런 정치적인 이유로 박 이사님이나 저희가 골머리 아플 일은 없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 방법이 있습니까? 그런 거라면 당연히 해야죠. 저한테 부탁하실 일이 무엇인가요?”
“여 전무님을 설득하지 못하면, 그길로 바로 사장님을 뵐 생각입니다. 그때 박 이사님도 같이 가주시겠습니까?”
사건을 잘 마무리 지으려면, 이번에 여창욱 전무 리스크를 확실하게 해소해야 했다.」